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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15 호
단기 4340. 1. 23 (음력 12.05) / 발행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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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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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2007 '문학동네신인상' 공모
문학의 순수성과 존엄을 지켜나갈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품을 모집합니다. 미등단의 예비문학인은 물론 젊은 문학인들 모두에게 응모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야심찬 문학인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 바랍니다. 모집부문 중단편소설 2편 이상 / 시 5편 이상 / 평론 1편 이상 분량 소설부문 : 200자 원고지 각 80장에서 200장 사이
상금 소설 1,000만원 / 시 500만원 / 평론 500만원
발표 『문학동네』 2007년 가을호 보낼곳 413-756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도시 513-8 (주)문학동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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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내 인생은 나를 울화통 터지게 만드는 어떤 바보의손에 달려 있다.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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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고전/구비/신화 |
老子 - 道德經 : 第四章 (노자 - 도덕경 : 제4장) |
道沖 而用之, 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도충 이용지 혹불영 연혜사만물지종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담혜사혹존 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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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 유재용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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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장
직역
도는 비어 있음을 사용하니 가득 차 있지 않는 듯하다. 깊도다. 온갖 것의 근원 같다. 그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그 얽힘을 푼다. 그 빛을 조화롭게 하고, 티끌을 고르게 한다. 맑도다. 혹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지 못하나, 상제보다 먼저 있는 것 같다.
해석
우리가 건물에 들어간다. 그럼 건물의 벽을 쓰는 것인가 건물의 빈 공간을 쓰는 것인가. 내가 길을 갈 때 바닥에 깔린 아스팔트를 사용하는가. 비어 있는 길 위의 공간을 사용하는 것인가. -잠시 생각하라-
우주가 비어 있지 않다면 지구는 존재할 수 있는가. 인간은 존재할 수 있는가. 비어 있는 것을 사용할 때 그 비어 있음은 다함이 있는가. 그럼 비어 있음을 규정지을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깊다고 한 것이다. 그 천정이 보이지 않는 하늘처럼 깊고 그윽한 것이다. 이 도는 그래서 온갖 것의 으뜸 같은 것이다. 비어 있음은 도의 한 표현이다. -명심할 것이 있다. 도덕경에서 도를 규정지은 것은 없다. 나도 물론 없다. 단지 비유를 들뿐이다. 비유에 집착하지 말기 바란다.- 너와 나 사이에 빈 공간이 없다면 무엇으로 너와 나를 구분 지을 수 있겠는가. 만물이 만물로 인식되는 것은 만물 사이에 있는 빈 공간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날카로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정으로 강한 자는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는 자는 내면에 약함이 있기 때문이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날카로움을 무디게 한다는 것은 날카로운 칼의 날을 못쓰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 날카로움이 극에 달하면 무디게 되는 것이다. 앎이 극에 다다르면 자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어지러움은 구분에서 생긴다. 나누고 나눌수록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나누지 마라. 도는 비어 있음 하나로 만물을 포용한다. 집단과 집단 나와 너, 나와 사물을 구분할 수록 세상은 어지럽게 된다.
빛이 뛰어남은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다. 남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남들과의 조화 자연과의 조화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다. 자연에 반대하라 그럼 빛이 날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다.
도는 티끌과 사물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도의 차원에서 보면 잘나고 못난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 그 나름대로의 독특함이 있다. 그 독특함이 다른 것에 대한 우월은 아니다. 온갖 사물은 각기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어 있음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실체를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누구의 아들, 아들은 개별성과 개체성을 가진다. 따라서 즉 구체화된 사물로서 알지 못하다고 한 것이다. 단지 상제보다 앞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추측을 할뿐이다. 여기서 상제의 象은 이미지이다. 물건이 만들어지기 전의 형상태이다. 제는 上帝로 해석이 된다. 그러나 이 상제의 진정한 의미는 나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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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글 가장 새로운 글 노자 - 김석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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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는 텅빈 그릇이지만 그것은 또한 무궁무진하게 사용할 수 있다. 동시에 언제나 흘러 넘치는 일도 없다. 그것은 심원하여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된다. 도는 안에서의 만물의 날카로움은 무디어지고, 어려움은 풀리며, 그 빛은 부드러워져 만물의 티끌과도 같이 하건만, 그 청칭함은 언제나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도가 누구집 자식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상은 천지를 다스리는 상제보다도 먼저인 것이다.]
주
도충: 만물의 근원인 도는 '텅빈 그릇이다'라는 의미임. 충은 충(빈 그릇)과 의미가 통하며, 충(충성할 충)으로 표기된 책도 있음. 이는 같은 음끼리의 차자임. 원래 한자는 차용을 할 때 그 소리만 취하지 않아 글자와 사물의 관계는 없으며 그 경우 글자는 단순히 기계적인 부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의 경우 충은 발음기호의 구실만 하고 실제 의미상으로는 충(빈 그릇)이 되는 것이다. 연혜: 깊고 아득함. 종: 만물의 근본, 근원을 뜻함. 동기진: 세속의 일상적인 걱정, 근심이 제거된 상태로 풀이하는 학자도 있음. 세속적으로부터의 초월과 정적이 노자 철학의 골격이라 보고 내린 해석임. 그러나 이 장은 도의 무궁무진한 작용과 원만한 융통성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도는 날카로움을 모르며 항상 원만하게 만물을 동일한 차원으로 보는 도는 차별, 배척, 제거 등의 개념을 알고 있지 않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일 것이다. 도는 무엇하나 버리지 않고 만물의 티끌과도 함께 한다. 그러나 그 청칭한 본바탕은 오염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 이상이 노자가 말한 요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 필자는 '동'을 글자의 원래의 뜻을 취하여 만물의 티끌과 '함께 한다'로 풀이하였다.
상제지선: 상은 어떤 불가사의한 이미지를 의미함. 명상과 직관에 의하여 도가 하나가 되었을 때 얻어지는 모종의 신비한 체험을 뜻함. 이상을 본뜬다, 같다로 해석하는 학자도 많음. '상제지선'은 세계에 질서를 가져다준 제왕보다 시간상 앞서 있다는 것을 표시 한 말임.
해
도는 천지를 주재하는 상제보다 먼저 있었다. 그것의 참모습은 맑고 깊어서 그 존재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초월적 내재 자로서 만물을 넘어서 그 안에 있는 그 무엇이다. 도는 모든 물건이 들어 갈 수 잇는 빈 용기이다. 물건의 근원을 소급하면 그것이 다 도에서 흘러나옴(유출)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조화의 근원으로 극에 달하면 원점으로 되돌아간다(극즉반). 도의 움직임을 지각하지 못하며 신비스럽기만 하다. 그것을 우리는 나온 곳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실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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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경제/경영/성공 |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 - 박태견 지음
POWER 020 세계의 경영대학: INSEAD
프랑스 파리 서쪽 퐁텐블로에 위치한 유럽경영학연구소European in-stitude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곧 INSEAD는 전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권위 있는 전문경영인 양성소답게 해마다 1월 전세계로 부터 30세에서 50세 사이의 신입생 450여 명만 엄선해 차원 높은 중견경영인 수업을 시키고 있다. 과거에 명성이 높던 미국의 하버드 대학 MBA(경영 석사) 과정을 비롯해 전세계의 MBA는 최근 들어 세계 경제계에서 수업내용이 지나치게 아카데믹하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인기와 신뢰도가 크게 줄어들어 입학생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수업료가 2만 7,500여 달러로, 전세계 MBA 가운데에서 가장 비싼 이곳만은 1994년 신입생 모집 때에도 2,500여 명이 지망할 정도로 인기와 신뢰도가 변함이 없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이곳 졸업생들의 능력에 대한 세계 대기업들의 신뢰도가 대단해, 이곳만 졸업하면 취직과 동시에 미국 하버드 대학이나 스탠포드 MBA 졸업생의 연봉 6만여 달러 보다 훨씬 많은 평균 7만달러의 연봉을 받들 수 있기 때문이다. 1994년 들어 유럽 금융계에서 명망이 높은 안토니오 보르제스 전 포르투갈 은행 부총재가 새 학장으로 취임하면서 유럽경영학연구소는 또 한차례 대대적 변화를 겪고 있다. 보르제스 학장은 취임 후 즉각 최첨단 멀티미이어 기법을 이용한 커리큘럼 개편 등 전면적 개혁작업에 착수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그가 중점적으로 손을 댄 부분은 교육 커리큘럼 분야이다. 기존의 낡은 교육시스템을 가지고서는 냉전종식후 급속히 진행중인 국제화와 정보혁명 시대에 앞서 나갈 수 있는 만능 경영인을 키워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보르제스 총재는 이에 '최신 산업 마케팅 전략(AIMS)'라는 새 커리큘럼을 확정, INDUSTRAT라 불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이용해 학생들이 유럽 최고의 경영인들로 구성된 교수진들의 도움을 얻어 각종 복잡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하고 있다. 그는 특히 유럽 통합과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에 따라 다국적기업의 대대적 사업영역 확장, 기업 인수합병이 왕성해지는 데 부응해 다양한 외국어 교육과 새로운 기업경영 기법, 국제법 지식 등을 집중적으로 기르치고 있다. 또한 환투기자본의 출현으로 대단히 불안정해진 국제금융시장에 적극 대처토록 하기 위해 파생금융상품 등 새 금융기법 전수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밖에 짬짬이 각 사업현장에 실습근무를 시킴으로써 생생한 현장감각도 키워주고 있다. INSEAD 교육의 또다른 특징은 각국에서 온 학생들을 골고루 한 반에 섞어 팀워크를 키우게 함으로써 이들이 비즈니스 세계에 진출해서도 서로 힘이 될 수 있는 '국제적 커넥션'을 구축하도록 돕는 일이다. 이같은 독특한 교육방식은 학생들의 외국어 능력을 단기간에 배양하는가 하면,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높여 이들이 장차 기업을 대표하여 해외로 진출했을 때 불필요한 문화충돌을 최소화하는 부수이익도 얻고 있다. 최근 INSEAD에는 기존 서구권의 경영자 지망생들 외에 새로운 시장경제하에서 자본주의 경영을 배우려는 러시아 등 동구권의 신흥기업가들이 앞다퉈 모여들고 있어,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해 세계최고의 고급경영인 배출학교라는 명성이 유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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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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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모녀
섣달 그믐도 며칠 남지 않은 어느 추운 날, '맑은물 목욕탕'의 유리문을 열고 80살쯤 된 할머니를 업은 중년의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저런 착한 며느리가 없지. 아니, 며느리가 아니고 딸인가?" 벌써 여러번 보아 온 광경이지만 주인은 그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숱이 없는 엉성한 은빛 머리칼,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 할머니는 몹시 쇠잔해 보였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은 중년 여인은 샤워기를 틀어 노인의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씻겼다. 조심조심 머리를 감기고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 양치질까지 해주더니 밖으로 나와 옷을 입히고 편안히 바닥에 눕혀 주었다. 그리고 다시 욕탕 안으로 들어와 샤워를 하자 옆에 있던 여자가 아는 체를 했다. 여인이 목욕을 하는둥 마는둥 금새 밖으로 나가자 몇몇 여자들이 인사를 건네던 여인에게 물었다.
"잘 아시는 분인가 보죠?" "그럼요. 이웃인걸요. 할머니는 꼭대기 무허가 판자집에 혼자 사시는 분이구요. 할머니 아들이 십년전 교통사고로 죽자 며느리가 집을 나갔대요. 아까 그 아주머니도 식당일을 다니면서 어렵게 사는데 수시로 할머니를 보살펴 드린다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목욕탕까지 업고 오다니, 딸이라도 하기 어려운 일을..."
여자들은 놀라서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탈의실로 나온 중년 여인은 노인의 스웨터 단추를 꼼꼼히 채우더니 다시 등에 업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카운터 앞을 지나는데 주인 남자가 등뒤에서 불렀다.
"아주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오래오래 사십시오." "고맙습니다."
중년 여인이 총총히 문을 나서자 주인 남자는 기분이 좋아졌다. 뽀얀 유리문 너머로 어느샌가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저런, 두 모녀가 눈을 맞겠는걸. 하지만 즐거운 새해를 맞으라는 축복일거야."
빈터를 보면 꽃씨를 심고 싶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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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철학에 이르는 길 - 강영계
제3장 논리적인 생각은 왜 필요한가
2.연역과 귀납
추론을 말할 때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연역만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추론에는 연역과 아울러 귀납이 있다. 연역이란 수학, 철학, 신학 등에서 순수한 사고형식을 통하여 추론하는 것을 말하며 귀납이란 경험적인 자연 과학에서 사용하는 추론방법이다. 연역과 귀납은 흔히 연역법 그리고 귀납법이라고 일컬어진다. 우선 귀납 추론을 살펴보기로 하자.
예 1) 이 한국 여인은 허리가 길다. 저 한국 여인도 허리가 길다. 그러므로 한국 여인은 아마도 모두 허리가 길 것이다. 2) 링컨은 대통령이며 인자하였다. 레이건도 대통령이며 인자하다. 마르코스도 대통령이다. 그러므로 마르코스도 인자할 것이다.
귀납 추론이 연역 추론과 다른 점은 연역 추론은 필연적임에 비하여 귀납 추론은 개연적이라는 점이다. 개연적이란 다른 말로 하면 확률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귀납 추론에서 사용되는 전제들은 결론에 대한 부분적인 증거만을 제시하므로 보편성을 가진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인공 위성을 발사할 경우에도 귀납 추론을 사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인공 위성이 달이나 금성에 도착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달이나 금성에 도착할 것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인공 위성을 발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경험적인 자연 과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추론은 귀납 추론에 해당한다. 그러면 연역 추론은 어떠한가?
예 1) 모든 사람은 생각한다. 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귀납 추론의 결론은 "아마"와 같은 말을 포함하며 개연성을 띠지만 연역 추론은 필연적이다. 귀납 추론은 경험적이며 개연적이다. 여기에 비하여 연역 추론은 필연적이다. 연역추론이 대표적으로 적용되는 분야는 수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학에서는 필연적 형식만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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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어원 |
'지치다'는 원래 '설사하다'라는 의미
'피곤하다'는 뜻으로 곧잘 '지치다'란 말을 쓰지요. 그런데 이 '지치다'란 말은 원래의 뜻이 '설사하다'란 것이었습니다. 설사하는 행위의 결과로 신체에 나타나는 상태를 '지치다'로 하니까, 자연히 '피곤하다'는 의미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하다'로 쓰이던 '즈다'가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훈몽자회에도 지칠 설, 지칠 사로 되어 있습니다.(이것은 현대의 표기법으로 바꾸어 쓴 것입니다)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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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2. 너 자신을 알라
대왕님! 햇살이 가리니 좀 비켜 주시오
디오게네스(Diogenes, BC 412?-323?)라는 불가사의한 인물이 기원전 4세기경에 고대 그리스에 살았다. 흑해 연안 지노베에서 태어났는데 디오게네스란 이름은 '신으로부터 태어났다'는 뜻이었다. 몇 권의 책을 썼다고 하지만 전해지는 것은 없고 그의 말이 여기 저기 단편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디오게네스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자기 집도 없이 초라한 차림으로 밥을 구걸하며 다녔다. 광장이나 신전에서 자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회나 연회장은 아주 싫어해서 일부러 피해다녔다. 그러나 디오게네스가 하는 말은 호소력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어느 날 그는 램프를 들고 아테네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를 알아 본 한 시민이 그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나는 인간을 찾고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아테네에는 지식인이 많았지만 제대로 또한 인간은 램프를 들고 찾아야 할 정도로 어두운 시대였음을 풍자한 행위였다. 디오게네스는 인간의 욕망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난폭한 행동을 조심함으로써 인생을 조용히 명상 속에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검소한 생활, 높은 이상, 개와 같이 욕심이 없고 자유로운 생활이라는 의미에서 견유학파 또는 튀닉(Kynik)학파라고 불린다. 당시에는 디오게네스의 흉내를 내려는 사람까지 나타날 정도였다.
어느 날 그리스 전역을 통일하고 이름이 드높았던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의 평판을 듣고 그를 만나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왕이 불러도 디오게네스는 왕을 찾아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왕은 직접 그를 찾아갔다. 마침 디오게네스는 코린트 거리에서 늘 하던 대로 작은 통나무집에 앉아 있었다. 소문으로 디오게네스가 기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대왕은 디오게네스에게 물었다.
"나는 알렉산더요, 그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오?"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대왕님! 햇살이 가리니 좀 비켜 주시오. "
그리스를 통일하고 동방 정복의 야심을 키우던 알렉선더 대왕과 아무것도 가지려 하지 않았던 디오게네스의 만남을 상징해 줄 만한 일화이다. 돌아가는 길에 알렉산더 대왕은 조용히 말했다고 전해진다.
"만일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으리라."
기이하게도 두 사람은 똑같이 기원전 323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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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지식/생활/건강 |
전통주
술을 담기 전에 알아두어야할 상식
약주를 담을때
1. 국화주 같은경우는 약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사용한다. 만일 약을 사용한것을 한다면 물에 하루정도 담궈놓은 다음 사용한다 2. 구하기 어려운 것은 한약방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용기에 관하여
1. 용기는 유리제품을 이용한다. 2. 알코올이나 술의 향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밀폐성이 높은것을 사용한다. 특히 입구가 큰 병일경우에는 밀폐성을 높이기 위해서 속뚜껑이 있는 것을 사용한다. 속뚜껑이 없을 경우 통기성 없는 랩등으로 입구를 봉한후 보관한다. 3. 전용의 용기가 아니더라도 커피병, 잼병등을 사용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밀폐성을 꼼꼼히 확인후 사용하도록 한다. (기름, 식초, 장류등의 병은 삼가토록 한다.) 잼이나 컴피병, 각종 모양 있는 병을 골고루 이용하면 장식성의 효과도 있다.
과일주를 한번 담아 볼까요!
1. 밑준비 생과일로 과일주를 담그는 경우에는 완숙 과일을 기본으로 화되, 미완숙과일을 20%정도 섞도록 한다. 구입한 과일은 깨끗하게 씻어서 물기를 완전히 거둔 상태에서 담근다. 2. 재료는 나중에 추가로 첨가해도 OK 술을 담그는 재료 중에서는 고가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한번에 많이 하기가 부담스럽다면 조금씩 몇번에 나누어 넣어도 괜찮다. 먼저 담가둔 재료는 그대로 둔채로 더 첨가해도 상관 없다. (술이 탁해진 경우 체에걸러 숙성시킨다.) 3. 설탕첨가시 과일주를 담을때(약주도 마찬가지)에 설탕을 첨가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첨가를 하고 싶다면 술과 같이 넣으면 설탕이 녹지 않기 때문에 재료와 섞어 1주일~2주일정도 상온에서 보관후 담그면 독특한 향을 느낄수 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에서 참고 하였습니다.) 4. 찌꺼기 거르기 집에서 담그는 술은 일반적으로는 숙성시키는 과정 중에 침전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냥 마셔도 상관 없지만 깔끔하게 먹고 싶다면 발이 고운 거스 손수건이나 키친타월을 이용해 찌꺼기를 거른다. 5. 과정을 기록한다. 술을 담글 때는 전반적인 과정등을 알기 쉽게 기록한다. 언제, 어느정도의 분량, 효과등을 라벨에 적어 용기에 붙여둔다. 이렇게 해두면 첨가 재료를 건져내는 시기, 다음 술을 담글 때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과일주 담그기 귤주 딸기주 레몬주 매실주 멜론주 밀감주 바나나주 배주 사과주 오렌지주 키위주 토마토주 파인애플주 포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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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사회/문화 |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5 캄캄한 서양 반짝이는 동양
3. 미국을 깨우처 주고 싶은 우리의 마음
개혁개방을 거쳐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중국이란 나라는 틀림없이 그 찬란한 문화에 걸맞는 위대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는 세계 경제불황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준다. 1978년에서 1995년에 이르기까지 경제성장률은 매년 평균 9.4퍼센트였다. 이러한 속도는 확실히 미국을 겁먹게 했다. 미국의 소위 경제제재라는 것이중국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미국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그래서 미국은 또 무슨 '중국위협론'인가를 퍼트려 중국과 그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이간시키고 있다. 진실로 아시아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는 미국이다. 한국, 필리핀.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와 군사력은 결코 평화의 상징이 아니다. 최근 대만해협에서 조성된 긴장 국면은 도둑이 도둑 잡으라고 소리치는 미국의 희극이었다. 중국은 자기 영해에서 군사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은 항공모함을 끌고 왔던 것이다. 이는 공공연하게 리떵후이 같은 무리들을 도와 중국을 분열하고자 한 짓이다. 대만은 중국의 대만이다. 두 지역의 통일은 역사의 대세이다. 미국과 대만의 관계는 알게 모르게 고조되고 있는데, 중국 인민의 강한 불만을 야기하는 것 외에 미국이 더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1997년 7월 1일이 곧 다가오고 있다. 한 세기 반이라는 세월 동안 '차용'된 홍콩이 곧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려 하고 있다.홍콩은 중국근대사에서 최초로, 그리고 최고로 비참했던 역사다. 중국 인민은 굴욕과 불행으로 가득 채워진 이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기억했다, 홍콩의 반환은 미국으로 하여금 대만을 생각하게 했고 미국은 항상 골칫거리인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만을 중국대륙에서 멀리 떨어트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대만이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미국의 것도 아니고 또 영원히 미국의 것이 될 수도 없다, 대만문제를 중국대륙에 갖다붙여 정치상 성가시게 만들면서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려는 것이 미국의 시커먼 속마음이다. 미국은 아직 냉전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미국이란 유일하고 초강대국인 나라는 큰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권세가 권위를 대체할 수 없다. 권세를 믿고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사람들의 미움을 살 뿐이다. 미국은 월권하여 '연합국'이라는 강단을 이용해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처럼 연설하고 연기했다. 관중은 갈수록 적어지고 심한 경우 그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연기를 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미국은 '진리의 기준'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을 깨우치게 해야 한다. 미국은 진리 기준을 만드는 자가 아니며 국제 사무의 최후 중재자도 아니다. 미국은 사막 위에 세워진 나라가 아니다. 왜 다른 나라의 소리를 듣고 생각해 볼 수 없는 것인가? 만일 진리가 미국쪽에 있다면, 경찰 꼴을 하고 세계 각지에서 함부로 수족을 휘두르며 야단법석을 떨 필요가 없다. 만일 진리가 미국쪽에 있지 않다면, 항공모함을 끌고 나오고 정보위성을 띄운다 해도 진리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협할 수가 없다. 세계는 이미 21세기의 문턱에 와 있다. 중국 인민도 이미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중화민족의 창조력, 지혜, 근면성과 인내력은 이 새로운 장에서 충분히 발휘되어 부유하고 달콤한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활에 대한 갈망은 일찍이 서구 열강과 역사의 잘못으로 인해 모욕당하고 억압당하고 유린당한 적이 있다. 그러기에 이제는 중국을 억누르려는 어떤 음모도 더이상 실현될 수 없다. 만일 미국의 기억력에 문제가 없다면 매카시즘시대라는 것이 있었음을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미국이 건맘증이 심하다면 가장 최근의 역사, 예를 들자면 레이건시대를 들 수 있다. 그 해 미국이 기획한 '별들의 전쟁 계획'의 창끝은 주로 소련을 겨냥하고 있었다. 미국의 전략무기 연구 제조가 소련의 군사산업을 미국과 견줄 만한 수준에까지 끌어올렸따. 미국은 올가미를 만들어 결과적으로 소련이 경제적으로 참담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미국의 진정한 전략 의도는 바로 군비경쟁을 통해 소련의 경제력을 약화시켜 '무혈입성'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음모 즉, 전지구의 전략방어체계가 부분적으로 목적을 달성했다. 베를린 성벽이 무너짐에 따라 미국은 '사회주의는 이미 끝남'이라는 데이터를 낸 것 같다. 이 세상에 역사의 잘못은 있지만 잘못된 역사란 있을 수 없다.
혜겔의 견해대로 '역사의 간계'라고 불리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 파쇼 독일은 유태민족을 멸망시키려 했으며 또 소련의 사회주의를 '전멸시키려고 했다. 결과는 어떤가? 사회주의 소련은 '전멸'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욱 볼 만하게 되었다. 동구가 사회주의의 등불을 밝힌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자의 퇴장도 명백하다. 소위 '동아공영(東亞共榮)'이라는 것이 마지막에는 일본에게 패전국이라는 치욕을 남겨 주었다. 역사의 변증법은 무정한 것이다. 만일 미국이 정말 이 점을 이해하고 있다면 미국도 더이상 미국이 아니다. 미국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앞뒤가 맞는 사실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시장경제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것이 또 한번 오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중화민족이 강한 생명력과 창조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응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중국경제의 지속적인 고도성장은 미국의 제재나 억압 및 봉쇄로 뭉그러지지 않는다. 반대로 일단 중국 국민이 패권주의와 강권정치의 진면목을 분명히 인식했다면 일어설 것이다. 중국의 성어에 있듯이 '어떤 어려움에도 몸을 곧추 세우고 나설' 것이며, 길 위의 장애물을 깨끗이 없앤 다음 계속 전진할 것이다.
미국은 늘 중국 국민의 민족적 응집력을 경시하고 있다. 이런 웅집력은 외환(外患)의 중요한 시기일수록 강해진다. 비록 오늘날은 이미 '북한을 도와 미국을 쳐부수고 조국과 민족을 보위한다'라던 때가 아니지만,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평화와 발전이 세계 주류인 이 시대에는 중국으로부터 더더욱 그 어떤 것도 쉽게 얻어갈 수 없다. '중국위협론'은 미국이 만들어낸 풍차이다. 이로써 아시아 일부 지역의 '반중국' 정서를 선동하자는 것이 첫째요. 미국의 억압정책과 전략에 핑계거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 둘째요, 중국이 개발도상국이라는 현실을 혼란시키자는 것이 셋째요. 중국 국민의 심리를 겨냥해 중국이 이미 '경제대국'이라는 허상과 향락에 빠지게 하여 전투 의지를 없애고 자아도취에 빠지게 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이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닉슨과 키신저, 그리고 브레진스키의 글을 좀 읽어보아야 한다. 특히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그 부분을 읽어야 한다. 또한 공자는 '나는 하루에 나 자신을 세 번 반성한다"라고 했다. 미국에 이렇게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 미국을 일깨워줄 수는 있으며 자신이 한 언행에 대해 시간을 내어 좀 생각해 보도록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미국이 ' 중국위협론'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한 논거 중 하나는 '중국은 부단히 국방력을 강화하고 군비 지출을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거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1994년을 기준으로 할 때 미국의 국방비는 일인당 평균 1천 달러인데 비해 중국의 국방비는 일인당 평균 6달러도 못 되었다. 중국의 국방비가 국민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단히 적다. 만일 미국이 아시아에서 위협을 느꼈다면 그것은 이 지역의 경제발전 추세와 각국 인민의 대화, 협력의 강화 때문일 것이다. 진정으로 세계와 아시아 지역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미국의 패권주의, 강권정치이다. 결국에는 이 패권주의, 강권정치가 자신을 위협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의 이런 놀이법은 갈수록 다른 나라와 그 인민들의 흥미를 끌 수가 없게 되고, 또 갈수록 제3세계 인민들의 반대와 분노를 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재가 필요한 것은 미국의 패권주의이다. 미국은 손을 너무 길게 뻗었다. 만일 손을 뻗은 것이 정의와 평화 그리고 협력과 교류를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매우 좋은 일이다. 미국이 손을 뻣으면 대개 조소와 냉담 그리고 거절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인민들은 미국이 손을 내민 의도가 시비를 야기하고 혼란한 틈을 타서 한몫 하려는 것이며 또 무력을 과시하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는 아마도 할리우드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나보다. 자신과 못하는 것이 없는 은막 상의 영웅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현실과 영화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할리우드라는 몽상 제조공장은 확실히 미국에게 끼친 해가 적지 않다. 영화 속의 연기는 그래도 관중에게 오락거리라도 주지만 현실의 미국은 분명 관중을 썩 기분좋게 하지는 않는다. 확실히 미국의 연기가 적지 않은 관중을 속였다. 그러나 침착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있는 관중이라면 연기가 더욱 충실하다고 해도 그 의도를 간파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의 연기는 표면적으로는 매우 다채롭지만 반복해서 보거나 그 속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본다면 관중으로 하여금 오히려 반발심리가 생기게 한다. 은막상의 미국 영웅이 있다면 은막상의 영웅적인 미국은 또다른 문제이다. 국제정치무대와 영화산업과의 거리를 미국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그렇지 않다면 미국의 '정치'와 '영화'는 모두 불리해 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만일 국제정치무대에서 실력을 과시하려고 한다면-감독과 주연 일인이역을 하려 한다면-역할을 확실히 구별하고 기술을 터득해서,주연을 할 때 자신이 감독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고 감독을 할 때 역시 자신이 주연을 맡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클라이막스는 아직 더 있어야 나오지.' 감독이 말한다. '내가 보기엔 영화는 끝났는데.' 주연이 말한다. '이게 어떤 대목이지?' 관중이 말한다. '진짜와 가짜가 뒤석여 있다. 진짜를 가짜라고 하고 가짜를 진짜라고 하니,' 평론가가 마지막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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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본승의 조선사 나들이
나라를 세웠으면 역사를 고쳐야지
고려사 개수
쿠데타에 성공한 정권이나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정권을 탈취한 집단은 반드시 자신들이 무너뜨린 정권을 부도덕한 정부였다고 매도하고, 그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일본 제국이 조선을 강점하여 식민지로 통치한 36년 동안 일관되게 자행했던 가장 악랄한 행위는 단연 우리의 역사를 왜곡 .훼손하기 위해 얼마나 무섭고 참혹한 것이면 주권을 회복한 지가 50년이 되어도 아직 우리는 그 식민지 사관의 어두운 그늘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겠는가. 그 후에도 군사 쿠데타나 그와 유사한 정변으로 수립된 정권은 예외 없이 자신들이 무너뜨린 정부를 무능하고 부도덕하며 부패한 정권으로 매도하면서 그 당위성을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 등재하였던 일들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지만, 자행하는 집권 시나리오나 다를 바가 없다.
잘 다스리게 되면 반드시 흥하였고, 어지럽게 반드시 망하는 것이니, 어찌 전대의 역사를 보지 않겠는가. "태조실록"에 적혀 있는 구절이다. 이는 이성계의 역사 인식일 수도 있으나 발설하게 된 계기가 "고려사"의 개수를 명한 때이므로 그 순수성은 희석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태조 이성계도 집권과 동시에 자신이 무너뜨린 왕부인 고려왕조의 역사를 왜곡, 훼손해서라도 자신들의 역성 혁명이 정당하고 불가피하였음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고려 시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현존하는 사서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두 가지뿐이지만, 바로 이 두 사서 모두가 조선 시대 초기에 자행되었던 '고려사 개수' 작업의 일환으로 쓰여진 것인데,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사수관인 김종서가 임금에게 올린 전문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보인다.
태조강헌대왕께서 먼저 보필하는 신하에게 명하여 "고려사"를 찬수하게 하였으며, 태종공정댕왕께서 명하여 그릇된 것을 교정하게 하였으나, 마침내 완성하지 못하였습니다. 세종장헌대왕께서는 신성하신 자질로 문명의 교화를 편찬하게 하시면서 '전사를 먼저 편수하고, 편년을 편수하라' 하셨습니다.
이 전문이 올려진 말이 문종 원년 3월2일이요, 태조 이성계가 고려사의 찬수를 정도전 정총 등에게 명한 것이 즉위 초의 일이었다면 개수의 시작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장장 59년의 세월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새로 쓰여진 "고려사"가 태조에게 올려진 것은 동왕 4년 1월이었다. 이성계의 트집으로 이 "고려사"는 수난에 거듭하였다. 태종 이방원도 다시 쓸 것을 명했고 성군 세종 또한 다시 쓸 것을 명하였지만, 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다음인 문종 원년에서야 비로소 완성이 되었으니 "고려사"의 집필에는 조선 초기의 석학들이 모두 동원되었고 거기에 투입된 노고는 헤아릴 길이 없었다. 그 어처구니없는 노고의 산물인" 고려사"와"고려사절요"를 읽으면서 우리가 고소를 금치 못하는 것은 그 문장에 기막힌 대목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태조가 해주로부터 벽란도 에 이르러 유숙하니, 태종이 달려가서 아뢰기를, '몽주가 반드시 우리 집안을 해칠 것입니다' 하였으나, 태조는 답하지 않았다. (중략) 태종이 또 화 등과 의논하여 공정왕을 보내어 아뢰기를, '만약 몽구의 당을 심문하지 않으면 신 등을 죄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 구절을 "고려사절요" "공양왕"조에 실려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태조란 물론 이성계를 말하는 것이며, 태종은 이방원, 공정왕은 정종인 방과를 말한다. 전조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후조의 임금에게 왕칭을 하는 것을 기록6하는 사람들의 역사 인식에도 문제가 있지만, 읽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운 일일 수가 없다. 바로 이런 일이 역사를 고쳐 쓰면서 빠지게 되는 함정일 것이다.
역사를 기술하는 사람들을 사관이라 하고, 그들이 선비의 대명사가 되는 것은 직필해야 하는 소임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춘추시대, 진나라의 사관에 동호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영공은 포악 무도하기로 유명하였다. 백성들의 고혈을 따서 궁중의 담장을 호화롭게 장식하는가 하면 누대에 올라가 사람들을 던져서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곰 발바닥을 덜 삶았다 하여 주방장을 죽여서 난도질하고 그 시체를 삼태기에 담아 궁녀로 하여금 머리에 이고 온 궐내를 돌아다니게 하였다. 정승 조순이 이를 만류하는 직간을 올리자 영공은 자객을 보내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자객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스스로 나무에 머리를 받아 자결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순의 사촌동생 조천은 분노를 참지 못하다가 마침내 영공을 죽이고 말았다. 이 시해 사건을 짐작하고 있었던 조순은 잠시 국경 근처로 몸을 숨겼다가 영공이 죽은 다음에 조정으로 돌아왔으나, 자신은 이미 살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사관 동호가 '조순이 국군을 시해했다'고 사서에 적어 놓은 것이었다. 조순은 극구 변명하려 하였으나 동호는 당당하게 말했다.
"국난 중에 정승의 몸으로 도망간 것만도 잘못된 일인데 돌아와 역적을 다스리지도 않았으니 시해의 장본인은 바로 당신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사관의 소임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서릿발 같은 책망이 아닐 수 없다. 이때부터 동호는 사관의 대명사가 되었고 '춘추필법'이라는 말과 함께 '동호직필'이라는 고사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역사가 정론이어야 하는 까닭을 여기서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듯이 역사를 왜곡하고 훼손하면 국민 정서를 해치게 된다는 사실도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치란의 역사는 후세의 귀감이 되 때문에 역사를 기술한 책인 "자치통감"이나 삶의 귀감이 되는 내용을 담은 "명심보감" 등의 책 이름에 거울 감자(字)를 쓰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역사가 전대를 살피는 거울임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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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양
기독교에서는 죄 지은 사람들을 곧잘 길 잃은 양에 비유한다. 누가복음 14장 4절 이하에 나오는 말. 양 백 마리를 가진 자가 그 중의 한 마리를 잃었다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잃었던 양을 찾게 되면 잃지 않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더 기뻐할 것이다. 이와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더 기뻐할 것이다. 이상이 성경에 적혀 있은 말인데 이는 곧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낸 것으로서 여기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 길 잃은 양은 죄인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바라심은 죄인의 회개함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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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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