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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108 호
단기 4340. 1. 16 (음력 11.28) / 발행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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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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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2007년 상반기 <민족문학연구소와 함께 하는 젊은 작가와의 대화>
1. 기획 취지 : 최근 창작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민족문학연구소>가 주목함으로써 그 작가의 창작 의욕을 더욱 고취하고, 한국문학에 생산적인 지평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 무엇보다 <민족문학연구소와 함께 하는 젊은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출판상업주의로 경사되고 있는 ‘한국문학의 젊음’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21세기 한국문학의 미적 갱신을 향한 지혜와 실천이 결합된 새로운 장을 마련. 여기에는 <민족문학연구소>에 소속된 젊은 비평가들이 특정한 문학섹트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상호 문학 공적 소통의 장을 통해 한국문학의 비평과 연구에 창조적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임.
2. 배경 ① 한국문학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전복적 상상력’의 측면에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음. ② 새롭고 젊은 세대의 문학을 열린 마당에서 점검해봄으로써 한국문학의 새로운 마당이 열리고 있다는 데 대한 문화적 과정을 가질 필요가 있음. ③ 각 문예지 중심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고립적 인식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통큰 문학’을 향한 장(場)을 마련할 필요성 대두. ④ 한국문학의 미래를 걸머질 수 있는,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탐침할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을 이 시대의 비판적 비평가들이 집중 조명. ⑤ 문학인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문학적 소통의 장(문학 공간)을 창출. 이곳에서 한국문학의 젊음을 직접 조우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을 창출.
3. 기대 효과 ① 이 심포지움을 통해 ‘지금, 이곳’의 젊은 문학에 대한 젊은 비평가들(<민족문학연구소>의 젊은 비평가들)의 새로운 조망을 통해 한국문학의 새로운 질적 도약의 계기를 가져올 수 있음. ② 무엇보다 이러한 역할을 <민족문학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함으로써 문학의 공적 소통의 장의 생산적 역할을 다 할 수 있음. ③ 특히, 특정한 섹트주의를 넘어서서, 명실공히 한국문학의 ‘통큰 문학’을 위한 장을 <민족문학연구소>가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음. ④ 21세기 문학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음. ⑥ 한국문학의 예비문인 및 독자들에 대한 관심사 제고.
4. <민족문학연구소와 함께 하는 젊은 작가와의 대화> 대상자 - 한국문학의 문인. 한국문학 연구자. 국문과 및 문예창작과 학생. -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젊은 비평가. 출판 문학담당자. 독자
5. 진행 - 매 달 1회 <민족문학연구소>가 주목하는 젊은 작가 초대. - 초대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간략한 발제 및 대담. - 발제를 중심으로 한 작가의 작품 세계에 관한 대화. - 청중(연구원, 비평가, 문인, 일반 독자)과의 자유스런 대화.
6. 2006년 하반기 진행 상황 ① 9월: 박금산(소설)편-고명철(발제) ② 10월: 김재영(소설)편-서영인(발제) ③ 11월: 김서령(소설)편-홍기돈(발제) ④ 12월: 심윤경(소설)편-오창은(발제)
7. 성과 ○. 2006년도 하반기부터 실시된 ‘<민족문학연구소>와 함께 하는 젊은작가와의 대화’는 매달 1회 <민족문학연구소>에 소속된 젊은비평가들과 일반독자들이 함께 초대작가의 작품세계를 중심으로 한 대화의 시간을 가져옴.
○. 출판사와 특정 문예지 중심의 스타 시스템으로 인해 정작 주목받아야 할 작가의 문학에 대한 소외가 현재 한국문단의 기형적 성장을 가져왔다는 데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함.
○. 지난 해 9월부터 12월까지 모두 4회에 걸쳐 진행되어오면서 젊은작가들 사이에 호평을 받아옴. 무엇보다 비평가와 독자들이 가까운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초대작가의 문학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가졌다는 데서 큰 의의를 둘 수 있음.
○. 참석자들의 말에 따르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문학 모임 중에서 가장 건실하고 모범적인 모임으로 평가하고 있음.
○. 이와 같은 호응에 힘입어 2007년 상반기에도 가능성 있고 한국문학의 미래를 전망해볼 수 있는 작가들을 매 1회 초대하여 대화를 갖기로 함
8. 향후 진행 : 지난 해에는 소설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올해부터는 시와 소설을 번갈아 초대하여, 대화를 갖기로 함. ① 1회: 류외향(시)편 - 발제: 박수연(문학평론가, 카이스트 대우교수) - 일시: 2007년 1월 19일, 금요일, 오후 5시-7시 - 장소: (사)민족문학작가회의 3층 강당 ② 2회: 손홍규(소설)편 - 발제: 고인환(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 일시: 2007년 2월 23일 금요일 오후5시-7시 - 장소: (사)민족문학작가회의 3층 강당 ③ 3회: 김경주(시)편 - 발제: 이명원(문학평론가, 성균관대 강사) - 일시: 2007년 3월 ④ 4회: 김이은(소설)편 - 발제: 고영직(문학평론가) - 일시: 2007년 4월 ⑤ 5회: 박후기(시)편 - 발제: 하상일(문학평론가, 동의대 교수) - 일시: 2007년 5월 ⑥ 6회: 이재웅(소설)편 - 발제: 고명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 일시: 2007년 6월
7. <민족문학연구소>의 성격 - (사)민족문학작가회의 산하 조직으로 민족문학의 창조적 갱신을 위한 소장 비평가들로 구성됨. 가장 큰 특징은 현재 한국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소장 비평가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비평과 문학 연구를 생산적으로 접맥시켜 민족문학의 미적 갱신을 위한 실천적 담론을 지속적으로 병행하고 있음. - 구성원: 김재용(연구소 소장, 원광대 교수), 고명철, 고영직, 고인환, 서영인, 오창은, 박수연, 이명원, 하상일, 홍기돈 등 10명으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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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시간이 없다./ 테레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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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경제/경영/성공 |
세계를 움직이는 127대 파워 - 박태견 지음
Power Group II 세계를 움직이는 황금의 마이너스
"초국가기업은 궁핍화된 인간사회라는 바다 위에 표표히 떠 있는 하이테크 군도를 형성할 것이다." - 리카르도 페트레스
인류역사상 최초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전세계의 경제를 완전 지배하게 된 지금, 금융시장은 각국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가진 골리앗이 됐다. 바야흐로 '자본 황금시대'가 활짝 막을 홀린 것이다. 동서 냉전종식 후 사회주의권의 30억 인구가 새로 시장경제권에 편입되었고 1990년대 들어서만 증권시장 등 자본시장을 신설한 개발도상국만 50개국이 넘을 정도이다. 모두가 돈을 빌려다 자국경제를 일으키는데 총력을 쏟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전세계적으로 자본에 대한 수요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금융자본은 그 어느 때보다 가공할 힘을 지니게 됐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본은 정치권력의 통제로부터 급속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민간자본은 통신과 네트워크망을 타고 전세계를 마음대로 왕래하고 있다.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단기이익에 집착하는 이들 자본은 가장 큰 이익이 보장되는 곳에서만 잠시 발길을 멈출 뿐이다. 사실상의 세계은행인 미국연방 준비이사회의 앨런 그린스팬 이사장은 "지금 세계금융 시장은 칸막이가 없는 거대한 유조선과 같다. 한쪽에 구멍이 뚫리면 전체가 무방비로 침몰할 위험이 크다"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1993년 한 해 동안에만 3조 달러 가까운 천문학적 투자자본이 1일 평균 1조 달러가 거래될 정도로 부지런히 세계각지를 휘젓고 다녔다. 이들의 행보는 나날이 빨라져, 1994년에는 하루 평균 1조 3천억 달러가 국경을 넘나들며 투기행각을 벌여 국제외환시장과 증시, 선물시장을 교란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 해소와 경제성장 지속을 위해 외화를 필요로 하는 세계 각국은 이들 자본에게 자국의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이른바 '악마에게 혼을 파는 계약'을 속속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종전의 자본은 정치권력의 엄격한 통제 아래 놓여 있었다. 정부의 통제 아래 놓여 있는 은행 등 제1금융권이 그들의 주된 자금 공급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증시, 채권시장 등 제2금융권이 그들의 주된 공급원이 됐다. 1990년만 해도 은행융자를 통한 자본이 4,680억 달러이고 주식, 채권시장을 통해 모금된 자본은 7,560억 달러였다. 그러나 1993년 들어서는 은행융자 자본이 5,550억 달러에 달했다. 자본이 더이상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투기성 이동자본의 주축을 위태위태한 아메리칸 머니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국제금융시장의 중핵이었던 1970년대의 오일 머니나 1980년대의 저팬 머니는 흑자국의 여유있는 돈들이었다. 따라서 단기차익보다는 장기적 이익을 찾아 돈이 움직였다. 그러나 1990년대 국제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아메리칸 머니는 4조5천억 달러의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이 외국에서 빌려 온 돈이다. 그런 까닭에 이들은 장기투자에는 관심이 없고 단기 환차익에만 관심이 있다. 자칫 한번 돈의 흐름이 엉키게 되면 전세계 시장경제는 일순간에 가공스러운 금융공황에 빠질 위험이 크다. 마이너스들이 지배하는 '자본 황금시대'의 도래. 이는 어쩌면 이미 인류가 결코 건너서는 안 될 루비콘 강을 건너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적신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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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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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이사가던 날의 후회
이사를 갔습니다. 집안의 가재도구를 모두 꺼내어 다시 정리하느라 어수선했습니다. 빨리 일을 끝내려는 욕심에 마음이 급했고 그럴수록 일은 더욱 더뎌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남루한 옷차림에 핼쑥한 얼굴을 한 젊은 여자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머뭇 거리더니 말했습니다.
"아저씨, 쌀 좀 주세요. 시어머니가 누워 계시는데 죽을 쑤워 드릴 쌀이 없어요."
힘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애처로웠지만 그때 저는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음에 오십시오. 지금 정신이 없어서....."
그리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내 주번을 서성이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말했습니다.
"조금이면 됩니다. 조금이라도....."
그때 옆에서 이 말을 듣던 짐 부리는 사람이 참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아, 동사무소에나 가보십시오. 거기엔 영세민에게 쌀을 무료로 준다오. 왜 남의 집에 와서 그러시우. 어서 동사무소로 가 보라니까요."
퉁명스러운 말투에 그녀는 고개를 수그린 채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대충 짐을 옮기고 집안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그 여자 얘기를 했습니다. 얘기를 들은 아내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오죽했으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돈도 아니고 쌀을 달라고 했겠느냐는 아내의 말에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황급히 나가 그녀를 찾아보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라고 끝은 맺지 못한 그녀의 말이 하루종일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조문현 님/서울시 은평구 역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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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철학 |
철학에 이르는 길 - 강영계
제 2장 철학이란 무엇인가
1.경탄과 의심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갓난 아이 때부터 불확실한 것을 피하고 확실한 것을 찾으려고 한다. 확실한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앎의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동물은 불확실한 것을 피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심리학자들이 개에게 행한 실험의 예를 살펴보기로 하자. 개에게 원을 지시하고 그것을 물어오면 맛있는 먹이를 상으로 준다. 그리하여 "원!" 하고 소리치면 원을 물어오게 한다. 다음으로 개에게 같은 방식으로 타원을 물어오게 한다. 그러나 전차로 원에 가까운 타원을 물어오게 하다가 원과 거의 같은 타원을 던져놓은 다음에 개에게 "원!" 또는 "타원!"이라고 외치면 개는 던져져 있는 것이 타원인지 원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어 불안하게 행동한다고 한다. 개의 경우는 본능적일 것이다. 인간의 경우도 개의 경우와 유사하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직접적인 본능이 아니라 앎이 문제이다. 우리들 인간은 앎의 문제와 밀접히 연관하여 여러 가지 무수한 행동의 영역에서 선을 행하려고 할뿐만 아니라 혼미스러운 판단과 느낌 속에서 아름다움과 목적에 대한 판단과 느낌을 가지려고 하며 나아가서는 구체적으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이 왜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 참다운 앎과 선과 아름다움의 통일은 지혜이다. 인간의 의식적인 모든 활동은 지혜를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을 전체적으로 보자면 식물이나 동물과 유사한 점도 있지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그가 삶의 목적, 곧 지혜를 전제로 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인간은 본성상 앎을 추구한다."라는 말은 "모든 인간은 본성상 지혜를 추구한다"라는 말로 바뀔 때 참다운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간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인간과 다른 존재자들과 똑같은 차원과 아울러 구분되는 차원을 가진다. 우선 인간은 그저 있다는 점에서 무기물과 동일하며, 영양분을 섭취하고 성장하다가 죽어간다는 점에서 식물과 다를 것이 없으며, 감각을 지니고 운동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자가 다른 존재자들과 구분되는 것은 그가 지혜를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학생이 단순히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을 넘어서서 그 공식이 성립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리를 알려고 하는 것, 여인이 자신의 몸매를 곱게 단장하며 아울러 지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니려고 하는 것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의 가치관에 따라서 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행하려는 것은 모두 지혜에 대한 추구가 아닐 수 없다. 지혜에 대한 추구, 곧 지혜에 대한 사랑은 철학함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왜 지혜를 추구하는가? 그리고 모든 인간은 언제나 현실적으로 그리고 또한 능동적으로 지혜를 추구하는가? 지혜에 대한 추구의 근원은 자기 확인 및 자기 반성이며 자기 구성이다. 자기 반성이란 단지 주관적으로 제한된 개인만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근원을 성찰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탐구하였다"고 하는 옛 철학자의 말은 첫째로 개인적인 자기 반성을 뜻하며, 둘째로는 그와 같은 자기 반성이 성립할 수 있는 근거로서의 세계 근원에 대한 반성, 곧 지혜에 대한 사랑의 출발점이다. 세계 근원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것들을 있게끔 해주는 궁극적인 근거 내지는 원인을 말한다. 이 세계가 왜 있는가라고 물을 때 우리들은 세계 근원은 불심이며 도교적인 입장에서의 세계 근원은 도이다. 형이상학적(또는 쉽게 말해서 철학적)입장에서의 세계 근원은 존재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지혜에 대한 사랑은 구체적으로 있는 존재자인 나의 의미를 반성하며 나아가서 나를 성립하게 해주는 근거인 세계 근거, 다시 말해서 존재 자체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추구이자 물음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처음부터 지혜에 대한 사랑을 능동적, 현실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매일을 살아가면서 일반적으로 인간은반복적이며 무의미한 삶을 이끌어나간다. 이러한 일상적인 삶의 특징은 일상성이다. 일상성에는 현실적인 지혜에 대한 사랑이 은폐되어 있어서 지혜에 대한 사랑이 오로지 가능적으로 있을 뿐이다. 일상성 속에서 우리들 인간은 오직 씨앗으로서의 지혜에 대한 사랑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지혜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싹을 돋아나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들이 일상성만을 소유한다면 문화적인 발전을 생각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일상성 속에 물들은 채로 일상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비록 일상성 속에 지혜에 대한 사랑이 꿈틀거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씨앗의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씨앗이 앞으로 싹, 줄기, 잎, 꽃, 열매가 될 모든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일단 씨앗이 싹으로 성장하지 않는 한 씨앗은 완전하게 현실적인 식물의 역할을 행사할 수 없다. 이것은 인간 의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의식이 그저 의식으로만 머물고 전혀 자기 반성 및 전체성에 대한 통찰을 결여할 때 그러한 의식은 일상성의 의식으로서 반복한다. 우리들이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 것, 일요일에 빠짐없이 교회에 가는 것 등은 반복하는 일상성으로서 그러한 행동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구성해주기 힘들다. 어떤 하나의 상태가 질적으로 다른 상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일상적, 기능적으로 은폐된 지혜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 위해서는 특정한 계기가 요구된다. 그것은 바로 경탄과 의심이다. 혼미한 일상생활의 반복 속에서 우리들은 앎과 선과 아름다움의 통일인 지혜와는 상관없이 물질적인 풍요, 사회적 권위 및 개인의 건강과 안락만을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들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의심은 일상적인 모든 현상에 일단 의문을 제기한다. 때때로 감각은 우리들에게 명확한 것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감각은 혼미한 일상성의 한 단면을 대변해 준다. 감각을 이랬다 저랬다 하는 심리 현상과 직결하여 앎과 선과 아름다움의 척도를 흐리게 한다. 물 속의 구부러져 보이는 나무토막, 비 개인 뒤 몹시 가까이 보이는 산봉우리 등 나의 감각이 제시해주는 대상은 사물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꿈 역시 혼미한 일상성을 대변하여 준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꿀 때, 장자 자신은 인간인데 잠시 나비가 된 꿈을 꾸는지, 아니면 그 자신은 나비이고 장자라는 인간은 그 나비가 꾸는 꿈 속의 대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장자 속의 꿈에 관한 좋은 예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들은 종교적인 신 또는 철학적인 존재 자체를 의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왜냐하면 습관에 따라서 우리들이 은연중에 그러한 것들을 가정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가운데는 무조건 의심한다던가 모든 것을 의심한다고 주장하는 매우 극단적이 입장을 취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의 주장은 "모든 견해는 무가치하고 오직 내 주장만이 옳다"고 하는 독단론을 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의심은 방법적인 의심이어야만 지혜에 대한 싹을 키울 수 있다. 예컨대 최군은 피양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송군은 피양을 추하다고생각하는 경우, 최군과 송군은 각자가 결국 "그대가 생각하는 피양과 내가 생각하는 피양은 서로 다르니까 우리들은 피양이 아름다운지 추한지 알 수 없다" 고 결론을 내린다면 이러한 의심은 방법적인 의심이 아니다. 방법적인 의심은 진리 내지는 지혜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한다. 여기에 작은 돌 한조각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이 돌은 수정일까 아니면 금강석일까?"라고 의심하는 것은 방법적인 의심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심은 참다운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심이 무조건 의심하는 허무주의적인 독단적 의심이 아니고 지혜에 대한 싹을키울 수 있는 긍정적인 의심이 되기 위해서는 놀라움, 곧 경탄을 동반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경탄을 다른 말로 흥미 또는 관심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혼미한것을 혼미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혼미한 것을 극복할 수 있으며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생각할 때 참다운 아름다움을 구성할 수 있다. 어떤 여인이 내 앞으로 지나갈 때 저 여인은 어떤 여인인가 하는 의심이 없으면 나는 그 여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뿐 아니라 그 여인이 더없이 아름다운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혀 아무런 감탄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여인과 더욱더 상관이 없다. 이것은 어느 경우에나 마찬가지이다. 내가 다음과 같은 수학문제를 대하고 있다고 하자. "달걀 9개가 있는데 그 중 1개는 곪은 것이어서 가볍다. 천평에 두 번 달아서 곪은 달걀을 골라내도록 하라." 그러면 나는 4알씩 먼저 달 것인지 아니면 3알씩 달 것인지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는 경탄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의심과 관심이 전혀 없을 때 그 수학 문제는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러므로 의심과 아울러 은폐된 것을 개방된 것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는 또 하나의 힘은 우리들의 의식에 간직되어 있는 경탄이다. "경탄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에게는 철학함의 시초"였다는 말은 바로 지혜에 대한 사랑이 필연적으로 경탄과 의심을 동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나 수학 문제를 무조건 암기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현실적으로 좋은 점수를 갖다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철학함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단순한 암기는 전적으로 경탄과 의심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값비싼 겉치레 치장이 참다운 아름다움을 구성해주지 못하며 한낱 방편에 지나지 않는 행위는 선을 실현시키지 못한다. 일상적인 삶은 오직 경탄과 의심의 계기를 통해서만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전개될 수 있다. 만일 인간이 차등의 경탄과 의심이 없이 하루하루를 반복하여 보낸다면 그의 의식은 언제니 일상성 속에서 방황하고 지껄이며 모든 것을 그저 지나쳐버릴 것이다. 경탄과 의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반성이라는 내면적 행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은 자기 반성에 의하여 비로소 자기 자신의 의미를 물으며 앎과 가치와 아름다움 및 있음의 한계와 가능성 및 의미도 아울러 탐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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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어원 |
애국가 가사 중의 '바람서리'는 '풍상'(바람 풍, 서리 상)이란 뜻
애국가의 가사 2절 중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이 중에 '바람서리'를 간혹 '바람소리'로 잘못 알고 계신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바람서리'입니다. 그 뜻은 '풍상'이란 뜻입니다. 즉 '바람 풍, 서리 상'이지요. 즉 '풍상에 불변함은'이란 것인데, 조사인 '-에'가 생략되었습니다.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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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세계사 |
역사 속의 말, 말 속의 역사 - 김덕수, 송충기 지음
2.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399)의 이름을 제일 먼저 연상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들의 무지를 질타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지식을 직접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를 통해서 진리에 접근하게 하려 했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할 때 전제는 '너'가 아니라 '나'였다. 즉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었다. 그는 차례차례 질문과 대화를 해나가면서 상대방의 모든 편견, 자부심, 독선 등을 깨뜨려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결국 자기 밖의 세계를 알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기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알고 있는가에 대해 성찰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즐겨 사용했던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자주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만들어 낸 말은 아니다. 그리스 현자인 솔론이 처음 그 말을 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치 않고, 원래 아폴론의 신전에 새겨진 격언이었다. 아폴론 신전은 어떤 곳이었고 왜 그 말이 거기에 쓰여 있었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은 학문과 지혜의 신이었다. 그리스인들은 학문과 지혜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리스의 곳곳에는 아폴론 신전이 있었다. 아폴론 신이 관장하는 특수업무 가운데 하나가 신탁이었다. 신탁이란 인간의 판단이 미치지 않는 것을 신에게 물어 보는 것을 말한다. 아폴론은 아버지인 제우스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중계자이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이 아폴론의 신전을 즐겨 찾았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신탁 때문이었다. 그 중에 가장 인기있던 아폴론 신전이 델포이에 있었다.
사진 : 델포이 신전 유적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150km 떨어진 코린트만의 산 중턱에 위치한 델포이 신전은 지금은 그 주춧돌만이 남아 있다. 그 델포이 신전의 지하에 신탁소가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개인의 일상사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에도 신에게 먼저 묻는 것이 상례였다. 지하에는 깊은 동굴이 있고, 퓌티아라는 처녀 사제가 가만히 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대개 여사제의 질문에 신은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전할 뿐이었다. 결국 신탁은 그 여자 사제가 일종의 환각 상태에서 구술하는 것이었으나 신탁을 구하는 자들에게 전달되는 공식적인 응답은 남자 사제들이 기록한 운문의 글이었다. 따라서 그것을 전달받은 사람은 잘 해석해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인생의 고민에서 국가가 전쟁하는 시기, 방법에 이르기까지 신탁의 소재는 다양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줄줄이 아폴론 신전을 방문했다.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심리적으로 델포이 신전을 찾는 사람들에게 더 큰 신뢰감과 위안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그리고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도 자신의 장래를 알거나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 용한 점쟁이를 찾는 현상을 보면 이성을 중시하던 그리스인들이 델포이 신전을 열심히 드나들었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오늘날에는 그 일을 드러내 놓고 하기보다는 은밀하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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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세계사 - 안효상
62. 보살의 출현을 믿은 일본 국군주의의 시조
1936년 2월 26일 새벽 5시. 전날에 내린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도쿄시내 곳곳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이로부터 24시간 동안에 일본제국의 내대신, 재무대신, 교육총감 등이 살해되고 수상, 천황의 측근들이 피습되었으며 경시청, 육군성, 참모본부 등이 일단의 청년 장교들이 이끄는 1,500여 명의 병사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이른바 `2.26사건`의 반발이다. 이 쿠데타는 국가주의 사상과 중국에 대한 무력 진출을 주장하는 육군의 위관급 장교가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중국 문제 등에서 미국, 영국 등 서구 열강의 눈치를 보며 무력 진출을 망설이고 있고 농민 경제의 파탄 등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난하면서 정부각료, 정당, 재벌 등 국내 지배 계층의 제거와 천황 친정을 거사의 목적으로 삼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명치유신에 빗대어 `소화유신`이라고 불렀다. 이들의 무력에 굴복한 정부와 군 수뇌부는 이들을 사태 수습을 위한 계엄군의 일부로 편성시켜 쿠데타는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들이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숭배하고 있던 천황이 쿠데타군을 용납하지 않았다. 26일 아침 사건 보고를 받은 천황 히로히토는 “저들이 내 오른팔과도 같은 궁정대신을 죽이고 이제 내 목을 조이려 드는구나”라며 즉각 진압을 명령했다. 일이 틀린 것을 깨달은 청년 장교들은 천황의 명령에 의한 `영예로운` 자결을 호소했다. 그러나 히로히토는 “자결하려거든 너희들 맘대로 하라”며 자결명령 칙사파견을 거절했다. 결국 주모자 17명이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이후 일본은 쿠데타에 동정적이었던 일본 국민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중일 전쟁, 국가총동원체제, 태평양 전쟁으로 내달리게 되었다. 그런데 사형수들의 명단 중에는 검찰당국이 `수뇌`로 지목한 민간인 한 명이 있었다. 그가 바로 `일본 파시즘의 교조`, `순정 파시스트`, `혁명의 실천가` 등으로 불리며 청년 장교들의 숭배 대상이었던 기타 이키였다. 당시 55세. 19세 때 오른쪽 눈을 실명한 외눈박이 청년 기타는 1906년 23세의 나이로 <국체론 및 순정사회주의>를 자비로 출판, 당시 저명한 사회주의자들에게서 `자본론에 버금가는 저작`, `기성 학자 계급에 대한 정복` 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후일 세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은 일본 군국주의 시조치고는 역설적인 데뷔가 아닐 수 없다. 손문이 만든 중국동맹회의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이어 중국에서 신해 혁명이 터지자 상해로 건너갔다. 거기서 중국 국민당 초대 당수였던 송교인과 깊은 친교를 맺고 8년 동안 중국 혁명의 성공에 매진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손문의 중국 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것을 비난했다. 일본은 영일동맹을 파기하고 영국과의 전쟁을 통하여 영국을 동아시아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으로써 영국의 압제에서 벗어난 중국은 소비에트 러시아와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동양은 서양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성취할 수 있고 이 과정은 동양의 맹주인 일본의 사상적 지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같은 생각은 동양과 서양의 대결이라는 허울 아래 실제로는 조선에 이어 만주, 중국도 일본이 장악해야 한다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성을 드러낸 것이다. 기타의 이 주장은 혈기 왕성하고 호전적인 젊은 장교들을 사로잡았다. 젊은 장교들은 중국에 대한 무력 침략을 지상 과제로 여기게 되었고 1930년의 만주사변, 1937년의 중일 전쟁으로 몰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기타는 원세개의 집권과 북경 군벌의 발호 등으로 퇴색한 중국 혁명에 실망하고 1919년 상해의 한 여관에서 그의 혁명사상을 정리한 <국가개조안원리대강>을 집필했다. 이 책은 곧 이은 그의 귀국과 함께 일본의 우익 인사, 청년 장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아 우익의 바이블로 불리기 시작한다. 2,26당시 지도자였던 한 장교는 처형되기 전 남긴 옥중수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가개조안원리대강>은 한 자 한 획도 수정하지 않고 완전히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대강은 절대진리이다. 그 누구도 이것을 평하고 또는 훼손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된다.” 그럼, 그 내용은 무엇인가? 기타는 소화유신을 이룩하기 위해서 당, 재계, 군, 관료의 제거를 주장했다. 그는 천황을 등에 업고 군사력을 동원해서 3년간 헌법을 정지시키고 귀족원(전후참의원), 중의원을 해산시켜 버리려고 했다. 또한 25세 이상의 모든 남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당시는 납세액이 10엔을 넘는 남자만이 선거권을 갖고 있었다) 선거에 의해 국가개조의회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개인의 사유 재산과 기업 자본금의 한도를 정해 그것을 초과한 액수는 국유화하여 국가가 통일적으로 관리하게 했다. 국영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경영과 수지결산에 관여할 수는 없으나 그 대신 중의원을 통하여 국가의 모든 생산에 발언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참여하게 했다. 대외적으로 기타는 일본을 아시아의 우두머리로 인식했다. 그에게 한국은 언어와 풍습의 차이만 있을 뿐 나라의 기본인 사상면에서는 일본과 완전히 같아 다른 나라라기보다 훗카이도와 같은 서간도일 뿐이었다. 또 대영토를 이뤄 일본의 안녕을 위협하고 있는 영국과 러시아의 압박에서 맞서 호주와 극동시베리아의 점령을 주장했다. 이을 위해 군비의 확장을 주장했다. 기타의 이론에서는 노동자, 농민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보이지만 이것은 기성 계급을 견제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패전 때까지 일본 군국주의는 민중에게 천황에 대한 충성과 국가에 대한 헌신만을 강조하면서 전쟁터로 내몰았을 뿐 어떠한 민중을 위한 정책도 구상조차 하지 않았다. <국가개조안원리대강>을 완성하고 난 후 기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고 매일 법화경을 암송하면서 소일했다. 신비롭고 카리스마 같은 분위기의 그는 자신을 따르는 젊은이들에게 법화경에 나오는 `보살의 출현`이야말로 혁명의 성취를 예언한 것이라며 소화유신의 실행을 선동했다. 그가 죽고 난 후 그를 죽인 군상층부에 의해 추진된 군국주의화정책은 바로 그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 출현한 것은 보살이 아니라 원자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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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4장 생각하고 나서 행동하는 중국 - 꾸칭생(古淸生).자유기고가
15. 자기비하보다는 세계를 보는 자신감으로
매주 일요일에 펼쳐지는 갑조 축구 리그전을 보면 나는 중국인의 생명 속에 숨겨진 격정을 느끼게 된다. 그 파도처럼 밀려드는 함성소리는 온화하고 우아한 우리 민족의 또다른 일면이다. 나는 이러한 모습과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을 찾고 싶었다. 마침내 나는 키보드를 두드려 다음과 같은 문장을 완성했다. '생명의 봇물을 터트리다.' 그렇다. 정말 중화민족은 감정이 풍부한 민족이다. 이것은 생활의 모든 면에서 감지할 수 있다. 이런 격정은 경제건설을 위한 대결전 속의 중국인을 연상하게도 한다, 나는 이런 대결전 같은 것을 몹시 싫어했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 (大慶) 유전건설과 같은 대결전이건 대약진운동이건 간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모두 민족정신을 구현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확실히 바람이고, 불꽃이며, 창조 속에서 배어나오는 놀라운 격정이었다. 나는 줄곧 중국인이 이러한 격정을 시종일관 유지함과 동시에 고도의 과학적 이성을 갖출 수만 있다면, 머잖아 중국의 발전에 세계가 주목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즉 외국과 비교하기만 하면 모두들 자신감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러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의 칭찬에 우리는 턱없이 기뻐하면서, 외국인이 우리에 대해 무언가 왜곡한다고 느끼면 또한 지나치게 화를 낸다. 우리는 이것을 민족적 자존심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외국인들이 우리를 보고 앞서간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고, 외국인이 우리를 형편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사실과 다른 말이다. 우리는 적어도 외국인보다는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은 자신감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지, 민족의 자존심과는 무관하다.나는 중국 정부가 중국인구 중 7천만 명이 기아로 허덕인다고 공표한 사실은 매우 솔직하며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 여긴다. 이는 우리 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사업에 어떤 믿음을 지니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놀랄 만한 기사가 있었다. '천재' 학자들이 뜻밖에 식민 문화'라는 개념을 내놓은 것이다. 그 뜻은 서구 과학기술의 도입에 따라 우리의 문화가 이미 모두 상실되어 일종의 '후식민문화'가 되었다는 말이었는데, 이것은 정말 해괴망측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문화는 서로 교류하는 것이며, 문화와 문화 사이에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이 {퐁네프의 연인}을 보고 감동하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적인 면을 말했기 때문이지 그것이 미국인이 쓴 소설이나 혹은 영화 이기 때문이 아니다. '후식민문화' 개념은 스스로의 민족문화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말과 같다. 문화는 옮길 수 있으며 서로 보완될 수 있다. 어떤 것은 심지어 그대로 모방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넥타이를 매는 방식과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삼가는 것, 성인이 된 후에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을 수 있다는 것 등은 결코 식민문화적 표현이 아니다. 경제 운영방식은 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사람이 창조한 과학적 방법으로 실제로 효과적이며 합리적이라고 증명된 방법이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옷집의 만두 빚는 법을 배우는 것같이 아주 정상적인 것이어서 여기에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선진적인 것을 배우고 낡은 경제 운영방식을 개혁하는 것 등은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바로 국제화에 접목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식민문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인은 왼쪽으로 차를 몰고. 미국인들은 오른쪽으로 차를 몬다. 그들 모두가 서양사람이다. 우리가 세 번째 방법을 찾을 수 없을 뿐이다. 관건은 역시 행동하는 것이다. 행동이 취해지고 나면 모든 사정이 달라진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인공위성을 띄웠다고 거리로 뛰쳐 나가 축하했고. 난징의 창장대교가 건설되었다고 전중국이 떠들썩했었다. 지금은 어떤가. 양자강에는 이미 22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우리는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많은 시간을 이미 잃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가슴 아파하고 후회해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지금의 문제는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현실 속에 있지 않으면 일을 이루기 어렵다. 지금부터 중국인은 마음을 다잡고 10년 간 낮잠을 즐기지 말아야 한다. 패전 후의 일본인들처럼 한 마음 한 뜻으로 경제부흥에 온 힘을 집중해야 한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언제 이렇게 멀리 달려 왔는가 하고 뒤돌아 보게 될 것이다.
10년 전을 생각해 보라, 그때 일본은 중국인에게 흑백 텔레비전을 생산해 팔아먹었다. 지금도 일본이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1994년에는 386 소동을 빚었으나 1996년에 이르러서는 IBM이든 컴팩이든 감히 중국에다가 재고처분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金長城), 리엔샹 같은 컴퓨터 회사가 엄연히 존재하고 이들의 시장 점유율도 낮지는 않다. 10년간 낮잠을 자지 말고 국제경쟁에 참여하자는 말이 우습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는 않다.중국의 노동인구를 5억으로 보고 매일 한 시간의 노동시간으로 계산해도 5억 노동시간이다. 한 시간을 10원()으로 친다면 50억 원(元)의 생산액이 증가하는 셈이다. 중국인의 습관인 낮잠만 자지 않아도 단 하루에 50억 원의 생산이 늘어나는 것이다. 중국인의 잠재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수치이다. 믿음은 일의 성과에서 오는 것이고, 빈말을 늘어놓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컴퓨터 거리인 쫑관춘에 가 보았을 때 1년 전에 여공이었던 아가씨들이 이제는 컴퓨터 매장의 점원이 되었다. 이 아가씨들은 매장 주인이 직업소개소에서 데려왔는데 컴퓨터 용어를 줄줄 입에 달고 있다. 아가씨들의 얼굴에는 햇빗에 탄 불그스름한 및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고, 손의 살결도 그다지 곱지 않은 것으로 보아 속성 컴퓨터학원을 막 졸업 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그들은 3년 전에는 컴퓨터라는 것에 대해 듣도보도 못했지만 지금은 고객에게 컴퓨터를 설명할 정도가 되어 IBM은 어떻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떻고. 레인보우는 어떻고, 컴팩은 어떻고. 하면서 줄줄이 꿰고 앉아 그 차이점이나 성능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처음 그들을 대했을 때는 그들의 과거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전산학과를 졸업했거나 무슨 석사학위를 받은 것쯤으로 여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공 출신이었고 여공 출신이 IBM, 마이크로소프트, 레인보우, 컴팩등을 운운하면서 소개하고 판매한다. 전혀 나쁠 것이 없지 않은가! 지금은 중국인이 현대화로 가는 중요한 길목에 서 있다. 사실 우리는 남보다 못할 것이 없다. 다만 우리의 출발이 좀 늦었을 뿐이다. 다른 것들은 우리가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여 생긴 잡념에 불과한 것이다. 2천 년전의 일과 2천 년 후의 일을 함께 비벼 놓은 이론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며, 남색(藍色) 문명과 황색(黃色) 문명을 허구로 꾸미는 것도 필요없는 짓이다. 중요한 것은 당당하고 자신있게 출발하는 것이며. 아직은 좀 거친 상품일지라도 들고서 전세계를 누비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조금도 없다. 누구나 처음 시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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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64가지 믿음 - 정호승
발레리나를 꿈꾸던 소녀
소녀는 발레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
"저 애는 발레에 소질이 있어. 열심히 노력하면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될 거야."
소녀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말을 한 마디씩 하곤 했다. 소녀 또한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권위 있는 발레단의 단원이 되어 '백조의 호수'의 오테트 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오로라 공주 같은 배역을 맡아보는 게 최대의 꿈이었다. 소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 살 때부터 발레 학교에 들어가 수업을 받았다. 다른 학생들이 한 시간쯤 연습을 하면 그녀 스스로 두 시간 이상씩 연습을 했다. 소녀에 대한 교사들의 기대는 컸다. 소녀의 천부적 재능도 재능이지만 남다른 노력과 성실성을 높이 샀다. 물론 스스로에 대한 소녀 자신의 기대도 컸다. 그런데 소녀가 열 다섯 살이 되던 날이었다. 소녀는 발레의 기본 동작 몇 가지를 연습하다가 갑자기 발목이 시큰하게 아파 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려니 하고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갔으나 날이 갈수록 시큰시큰 발목 부위가 아파 왔다. 소녀는 너무 지나치게 연습을 많이 한 탓으로 발목에 잠시 무리가 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잠시 발레 연습을 중단했다. 그러나 통증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나중엔 걸음조차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관절염이었다. 소녀에게 그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소녀는 발을 잘 쓸 수 없게 된다는 사실보다 발레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 앞에 절망했다. 그러나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토슈즈(발끝으로 추기 위해 발끝 부분이 단단하게 만들어진 발레용 구두)를 들고 학교로 갔다. 친구들의 연습 장면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발레를 계속했다. 그러나 소녀는 결국 발레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절의 염증은 가라앉아 걸음을 걷는 데에는 큰 불편이 없었으나 심한 운동이 요구되는 발레만은 할 수 없었다. 소녀는 하루하루를 방안에서 눈물로 보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고자 하는 꿈을 포기한다는 것은 소녀에게 곧 죽음을 의미했다. 소녀는 정말 죽어 버리고 싶었다. 더 이상 살아야 할 삶의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으로 발레를 한번 추어 보고 죽어 버리겠다고 결심을 했다. 햇살이 눈부신 봄날, 소녀는 토슈즈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 신나게 발레를 추었다. 그러나 곧 발목에 통증을 느끼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화가 났다. 미칠 것만 같았다. 이제는 발레를 포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는 들판 한가운데로 걸어가 우물 속에다 토슈즈를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 우물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우물 속에는 파란 봄 하늘과 맑은 구름이 지나갔다. 소녀는 자신도 토슈즈처럼 우물 속으로 내던져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소녀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는 사람이 있었다. 소녀가 다니던 발레 학교의 젊은 여교사였다.
"선생님, 전 더 이상 살 의미가 없어요. 발레를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소녀는 교사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토닥토닥 소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 젊은 교사가 말했다.
"울지 말고, 이 꽃을 봐라. 그리고 저 바위도. 산다는 것에 의미 따위는 소용없어. 장미는 장미답게 피려고 하고, 바위는 언제까지나 바위답겠다고 저렇게 버티고 있지 않니. 그저 성실하게, 충실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게 제일이야. 그러다 보면 자연히 삶의 보람도 기쁨도 느끼게 되는 거야. 너무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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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본승의 조선사 나들이
채찍으로 읽는 역사, 길잡이로 읽는 역사.
사마천의 사기
나는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수많은 드라마를 집필한 바가 있는데, 악역으로 그려지는 인물들의 후손들이 찾아와서 선조의 수치스러운 악행을 아예 빼주거나 순화해 주는 조선으로 수천만 원의 금품을 제공하게 하겠다고 제의하는가 하면, 때로는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아 눈물로 애원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였다. 반대의 경우에는 평가 절하되어 있던 선조들의 행적이 새로운 사료에 따라서 재평가되기라도 하는 날이면 문중(종친회)의 대표들이 대거 몰려와서 은혜를 갚겠다고 아우성치는 광경도 여러 차례 경험해 보았다. 선조들의 행적을 아름답게 간직하려는 이 엄연한 현실을 다른 말로 바꾸면, 우리의 답답하고 암울했던 근대사나 현대사가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역사 왜곡의 주역들이나 훼손에 협조한 사람들의 행적이 적나라하게 영상으로 옮겨질 것이며, 쿠데타를 찬양했던 문장이 교과서에 등재되었다가 설혹 삭제되었다고 해도 그 문장은 전문이 다시 살아나면서 이미 세상을 떠났을 당사자의 명성은 고사하고, 아무 잘못도 없는 그들의 후손들에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수치심에 시달리게 할 것임은 불문가지의 일일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화제로 삼을 때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사마천의 "사기"를 연상하게 되지만, 막상 사마천의 "사기"에 대하여 소상히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가 않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사기" 보다 3백여 년이나 앞서 기술된 그리스의 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대해서 소상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나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그 내용이 방대하여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지만, 그것을 기술하게 된 동기에 관해서는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쓰게 된 동기를 스스로, 나는 궁형(남자의 상징물을 제거하는 형벌)에 항거하여 이 책을 쓴다. 라고 피력하였다.
한나라의 장군 이릉이 흉노와의 전쟁에서 포로가 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사마천은 무제의 면전에서 그를 구하기 위한 직간을 서슴지 않았다. 이 용기 있는 직간이 무제를 격노하게 하였고, 급기야 사마천의 남근을 거세하는 궁형에 처한다. 형벌은 여기서 끝나질 않았다. 무제는 사마천에게 남근이 없다 하여 비빈들의 거처를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사마천은 죽음보다 더한 수치심의 늪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그의 수치심은 곧 분노로 변했다. 마침내 그 분노가 사마천으로 하여금 역사를 기술하게 하였던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열전"의 분량이 많다는 사실은 그가 역사를 기술하면서 인간의 양식이 빚어내는 영광과 오만이 불러들이는 패망의 가치를 소중히 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또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기술하면서, 신은 인간의 오만에 대해서 보복할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 라고, 자신의 역사 인식을 명확하게 밝혀 놓고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동서분쟁이라는 관점에서 클라이맥스라고 볼 수 있는 페르시아 전쟁이 주된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그 또한 페르시아가 패망하게 된 원인을 크세록스의 오만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한 것이었다. 신은 인간의 오만에 대하여 보복할 것이라는 헤로도토스의 신념은 장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사실로 입증되었고,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그런 유형을 체험하게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사마천, 헤로도토스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은 권부의 정상에 있지도 않았고 어떤 집단이나 세력의 핵심에 있지도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가 자신의 실익보다 세계사적인 흐름을 주도할 진실된 삶을 몸소 실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비로소 호도되지 않은 역사 인식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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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
고양이가 어찌나 쥐를 잡아먹는지 견디다 못한 쥐들이 자기 방어의 수단을 강구하고자 회의를 개최했다. 그리고 갖가지 해괴한 방법이 논의된 끝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고 만장일치 합의를 보았다. 자, 그러면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가느냐 - 쥐는 서로 눈치만 보다가 모두다 꽁무니를 빼고 만다.
이것은 어린이들까지도 알고 있는 '이솝이야기'의 한 토막이지만, 확실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즉 '위험하고 성공의 가망이 적은 일'을 앞장 서 하려면 여간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 하물며 오늘날과 같이 갖가지 사회악이 만연하고 폭력이 활개치는 시대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로버트 케네디'나 '킹'목사 처럼 죽음의 희생마저 각오해야 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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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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