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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47 호
4339.11.01 (09.11)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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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옮기는 책들이 조금씩 늘어나죠? 하루 독서량을 정한 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관심가는 부분만 읽으셔도 되고 다 읽으셔도 되고요. 저도 같이 읽으니까요. 점심 식사하시고 쉬면서 차근 차근 읽으시면 좋을 듯합니다. 앞으로 두가지정도의 책이 더 늘어나 연재가 될 건데요, 원하시는 장르가 있으시면 해당 장르를 찾아 권장할 만한 책으로 연재해 드리겠습니다. - 風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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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시며 → 자유글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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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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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과학은 아무리 발달해도 지혜가 아니고 상식이다.지혜란 지식과 판단력이 조화된 것. / 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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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과학/예술/교육 |
- 조화유의 미국영어 - 일반인을 위한 경제생활 영어
38. That color is a little loud.
양복점을 경영하는 어느 교포한테서 편지를 받은 일이 있는데, 그는 미국 손님들한테 "이 옷은 너무 야하다." 또는 "이 색깔이 너무 야하다"라고 할 때 '야하다'는 말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좀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야하다'는 것은 색깔이나 스타일이 너무 '요란하다'는 뜻인데, 미국 사람들은 loud란 말로 표현한다. loud는 원래 '소리가 크다'는 뜻이지만 '야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우리도 '색깔이 요란하다'는 말을 쓰는데 '요란하다'는 말은 원래 '소리가 크다'는 뜻이다. '야하다'는 뜻으로 flashy와 showy 그리고 gaudy 란 말도 많이 쓴다. This dress is too flashy for an eldery lady.는 "이 옷은 나이든 부인에게는 너무 야하다'는 말이다.
Salesgirl: Hi. May I help you, sir? Customer: Yes. I'm looking for a tie. Salesgirl: Here are the ties-a variety of patterns and colors to choose from. Customer: (Picking one)Do you think this tie goes well with my jacket? Salesgirl: I'm afraid that color is a little loud, sir. How about this one? Customer: The color is all right, but I don't like the loud pattern. Salesgirl: You are right, sir. That pattern is a little too loud for your conservative suit. Custoer: (Picking another) I'll take this one. Salesgirl: I think you picked the right color and pattern. 점원: 안녕하세요. 뭘 드릴까요? 손님: 넥타이 좀 볼까 합니다. 점원: 넥타이는 여기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무늬와 색깔이 있으니 골라 보세요. 손님: (하나를 골라) 이 넥타이가 내 양복 상의하고 어울립니까? 점원: 그 색깔은 좀 야한 것 같습니다. 손님, 이것은 어떻습니까? 손님: 색깔은 괜찮은데 그 야한 무늬가 마음에 안 들어요. 점원: 네, 그렇군요. 그 무늬는 손님의 점잖은 양복에는 좀 야한 것 같습니다. 손님: (다른 것을 골라서는) 이것을 사겠습니다. 점원: 무늬와 색깔을 잘 고르신 것 같습니다.
Salesgirl: May I help you? Customer: I think I'll buy a pair of pants. Salesgirl: have any particular brand in mind? We have many name brands. Customer: Levi's is my favorite. Salesgirl: What's your waist size? Customer: 29. Salesgirl: Here they are. We have two styles-regular and slim. Customer: I'd like slim. Salesgirl: All right. Try them on in the fitting room over there. Customer: Thank you. 점원: 뭘 보시겠습니까? 손님: 블루진 하나 살까 합니다. 점원: 특별히 찾으시는 상표라도 있습니까? 유명 상표가 많이 있습니다. 손님: 난 '리바이스' 상표가 좋아요. 점원: 허리 크기가 얼마죠? 손님: 29(인치)입니다. 점원: 여기 있습니다. (바지 통 모양에 따라)보통 스타일과 홀쭉한 스타일-두 가지 스타일이 있습니다. 손님: 슬림 스타일(바지 통이 홀쭉한 것)을 원합니다. 점원: 알겠습니다. 저기 옷 입어 보는 데가 있으니 한번 입어 보세요. 손님: 감사합니다.
* '바지 하나'는 a pants 또는 a trousers라고 하지 않고 바지 통이 두 개니까 반드시 a pair of pants 또는 a pair of trousers라고 한다. a pair of를 꼭 써야 하는 명사는 이 밖에도 a pair of shoes(구두 한 켤레), a pair of socks(양말 한 켤레), a pair of glasses(안경 하나), a pair of scissors(가위 하나)등이 있다.
* Laughing is the best rest. - 웃음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
A man put a coin in a vending machine and watched helplessly while the cup failed to appear. One nozzle sent coffee down the drain while another poured cream after it.
"Now that's real automation!" he exclaimed. "It even drinks for you!"
어떤 사람이 자동 판매기에 동전을 넣었다. 컵이 나오지 않았으나 그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 구멍에서 커피가 나와 흘러내려갔고 다른 한 구멍에서는 뒤따라 크림이 나왔다.
"이거야말로 자동이군!" 그가 외쳤다. "사람 대신 기계가 마셔주기까지 하니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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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지식/생활/건강/의학 |
- 음식 토정비결 - 전영순,하정화
<과실류>
36.잣 - 우리나라의 특산물
잣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옛날 중국의 진나라가 멸망할 때 많은 궁녀들이 난리를 피하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먹을 만한 것이 별로 없어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이 때 그들 앞에 신선이 나타나더니 근처에 잣나무 숲이 있음을 알려주고는 그것을 따먹도록 했다. 그래서 궁녀들은 신선이 가르쳐 준대로 잣을 따먹으며 지냈더니 배고픔도 덜 수 있었고 얼굴에는 윤기가 흐르며 늙어서까지 머리가 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화에서 등장하는 잣은 우리나라산과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진짜 잣나무는 우리나라 북부와 중부의 산중턱이나 골짜기 사이의 기름진 땅에 자생하거나 또는 재배된다. 세계적으로 잣이 분포하는 곳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만주, 시베리아, 아무르 지방 등이지만 원산지는 우리나라다. 잣은 한랭한 곳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잘 자란다. 땅에 습기가 있고 부식물이 많으며 모심이 깊어야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자라는 곳은 압록강 유역으로, 그 면적이 무려 22만ha에 달한다. 백자, 송자, 해송자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잣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잣나무의 여문 씨를 말하는데, 솔방울처럼 생긴 굳은 껍질 속에 들어 있다. 잎은 바늘 모양으로 5개씩 뭉쳐난다. 따라서 학술적으로 정의하면 잎이 5개씩 모여서 나는 소나무류를 합하여 잣나무류라고 한다. 그래서 잣나무를 오엽송이라고 한다. 잣나무는 암수가 한 그루로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 나는 잣나무류에는 잣나무, 눈잣나무, 섬잣나무 등이 있다. 눈잣나무는 잎이 짧아서 주로 7cm 미만이며 섬잣나무는 종자에 날개가 있는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보통 잣나무의 경우 종자에 날개가 없으며 길이는 15mm, 폭은 10mm, 두께는 7mm 정도이다. 잣나무의 꽃은 5월경에 피며 10∼11월경에 열매가 익는다. 이렇게 오랫동안 꽃이 피고 진 잣나무 중에서는 밑둥의 지름이 15m, 높이가 30m에 달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수령은 300∼500년 가량 된 것도 많다.
성분
잣은 기름기가 많아 그 맛이 고소하다.
잣은 지방 70% 정도, 단백질 16%, 탄수화물 11.7%, 각종 비타민 및 아연, 동, 니켈 등의 미량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철, 인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올레산, 리놀산, 리놀레인산 등의 불포화지방산이 많아서 혈압을 내려주며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 또, 이러한 불포화지방산은 콜레스테롤과 같은 혈액 속의 노폐물을 억제하여 동맥경화 및 중풍을 예방하고 정력을 왕성하게 한다. 잣은 칼슘보다는 인의 함량이 많아서 산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잣은 예로부터 자양 강장제로 유명할 뿐 아니라 심기를 보강해주고 기력을 높여주며 식은땀을 멎게 해주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비위도 튼튼하게 해주고, 눈과 귀를 밝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뇌신경 쇠약에도 효과가 있다. 옛 의서에는 잣의 효능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명의별록}을 보면 '잣은 신경마비류의 질환, 한기, 허기를 다스리고, 허약한 몸을 보해주며, 오장을 살찌게 하며, 피부를 윤택하게 해준다'라고 적혀 있다. {본초강목}에는 '잣은 폐를 윤하게 해주고 기침을 다스린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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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새
잣은 주로 약용 및 식용으로 쓰이는데 전통음료의 감미료로도 많이 쓰인다. 기운이 없거나 입맛을 잃었을 때, 또는 병중이나 병후 회복기에 잣을 곱게 갈아 뭉근한 불에 은근히 끓여 잣죽을 만들어 먹으면 좋다. 또한 수정과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대용차를 마실 때 잣을 서너 알 띄워서 함께 먹는 것도 독특한 운치가 있다. 잣을 약용으로 쓸 경우에는 주로 볶아서 사용한다. 한방의학에 의하면 '잣은 성질이 온(온)하여 오장의 기운을 따뜻하게 하고 허약함을 도와주며 기의 운행을 원할하게 한다. 또한 독이 없어 부작용이 거의 없고 맛은 달다'고 한다. 잣은 칼로리가 높은 식품일 뿐만 아니라 빈혈에도 좋은 식품이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하루에 60∼80개 정도의 분량이 적당하다. 또 잣은 봄이 지나면 영양가가 떨어진다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n있다. 민간요법으로 기침이 날 때 잣과 호두를 물에 개어서 먹는 방법이 있다. 잣 뿐만 아니라 잣나무의 잎도 한약재로 쓰이며 목재는 고급 가구재로 쓰인다. 잣잎은 해독작용을 하며 신경통도 낫게 한다. 잣잎은 봄철에 나는 것을 쓰는데 새순을 잘게 썰어 날마다 밥 먹기 전에 술을 약간 넣은 따뜻한 물에 타서 8g 정도씩 먹는다. 잣잎의 원래 맛은 소나무 이파리처럼 떫어서 먹기가 힘들지만 계속 먹다 보면 향긋한 맛에 길이 들어 먹을만하게 된다. 잣잎을 이렇게 복용하면 대부분의 잔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다이어트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처럼 잣은 중요한 한약재로서 변비, 마른기침, 고혈압, 불면증, 정력 감퇴 등에 탁월한 효과를 내며 피부 미용제로도 손색이 없다. 건강 장수식품으로서 잣을 일반 가정에서는 쌀과 함께 죽을 쑤어 먹으면 좋다. 이밖에도 잣은 맥주나 양주 등의 술안주로도 많이 사용되며 봄이 지나면 영양가가 떨어지므로 껍질째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토종
잣은 그 자체가 우리나라의 특산 토종이다. 비슷한 나무가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비슷할 뿐이지 우리가 말하는 잣과는 다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잣은 우리나라 고유의 수종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잣을 한자로 적을 때 잣 백으로 적는데 이는 우리 잣을 표기하는 것이 아니고 중국의 비슷한 수종을 지칭하는 말이다. {훈몽자회}에 의하면 '백'은 측백나무를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당나라 때의 {해약본초}에서는 잣의 생산지를 신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명나라 때의 {본초강목}에서도 '신라송자'라고 칭하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패사} 라는 고서에는 '신라의 사신들이 오실 때마다 잣을 많이 가져왔으며 이것을 고관들의 집에 선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미 이 때부터 중국인들은 우리나라산 잣의 질을 인정하고 귀하게 생각했다는 증거이다. 아니면 당시 잣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고유한 토종이었다가 이후에 중국에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잣나무는 세계적으로 그 질의 우수성을 인정 받아 왔다. 이것은 잣나무가 우리의 기후 풍토에 적합한 나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일찌기 중국의 여러 고서에도 우리나라산 잣나무를 칭찬한 기록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잣은 고유의 토종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잣나무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잣을 유실수로 따로 재배하기도 하지만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 않아서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잣은 주로 우리나라의 한강 이북 지방에 많이 분포하는데 특히 가평군 일대에 많이 난다. 가평의 특산물 하면 으례히 잣을 떠올릴 정도다. 근래에는 중국산 잣이 다량 수입되고 있는데 이것은 대체로 열매가 굵지만 윤기가 떨어진다. 또한 씨눈이 그대로 붙어 있고 먹을 때 바삭바삭한 느낌이 있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이에 반해서 토종잣은 중국산에 비해 윤기가 나고 잘더라도 크기가 균일하다. 또한 씨눈이 붙어있지 않고 먹을 때 끈기가 있으며 뒷맛이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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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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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사회, 문화생활 이야기) - 한국역사연구회
무당의 입김이 천하를 호령하다 - 정학수(경기도사 편찬위원회 집필위원)
서슬 푸른 무당의 권세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이 임지에 부임하면 그 지방의 유력한 신들을 찾아 인사를 드려야 했다. 만약 이것을 어기면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한 때 등주(함경남도 안변)의 성황신이 여러 번 무당에게 내려 국가의 길흉과 화복을 신통히 알아 맞추었다. 그 지방의 관리였던 함유일은 성황당에 제사할 때 고개만 숙이고 절하지 않았다 하여 파면당하였다. 이처럼 고려시대에는 토속신들과 그 신들을 섬기는 무당들의 권세가 대단하였다. 그러면이들은 어떻게 이같은 권세를 누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이 신령들이 국토를 지켜주고 백성을 보살펴 준다고 여겼고, 권력이나 재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재난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사람들의 바람을 신령과 교감하는 무당을 불러 기우제를 지냈다. 1021년(현종 12)에는 뜰 가운데에 흙으로 용을 빚어 놓고 남녀 무당들을 모아 비가 오기를 빌었고, 1132년(인종11)에는 관청 앞에 무당 300여 명을 모아 놓고 비를 빌었으며, 6월에 또 무당을 모아서 비를 빌었다고 한다. 1173년(명종3)에는 정월부터 비가 내리지 않아 개울과 우물이 모두 마르고 곡식들이 말랐으며 전염병까지 발생하여 사람들이 많이 굶어죽었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는 사람의 고기를 파는자가 있게 되자 무당을 모아 놓고 비를 빌었으며, 근신들을 전국에 파견하여 명산 대천에서 또 빌었다. 이런 때에 왕은 불기운을 멀리하고 물기운을 끌어오기 위하여 물과 관련되는 것이면 명산 대천 어디에든 기우제를 지내고, 여기에서 무당을 동원하여 의식을 담당케 하였다. 1146년(인종24) 왕이 병들자 무당에게 점을 쳐 보게 하니 모반죄로 축출당한 척준경이 그 병의 원인이라른 점괘가 나왔다. 이에 왕은 무당의 지시에 따라 척준경에게 문하시랑평장사라른 벼슬을 추증하고 그 자손들에게 관작을 주었다. 그리고 내시를 파견하여 김제군에 신축한 벽골제의 뚝을 헐어버리게 하였다. 이 사례는 무당의 점복과 치병의 기능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편 무당과 관련된 폐단도 많았다. 고종 때 홍복원은 자신의 집에 머물던 왕족인 영녕공 준을 미워하여 무당을 시켜 몰래 저주하게 하였다. 그 무당은 왕준의 형상대로 나무인형을 만들어 손을 묶고 머리에 못을 박은 다음 땅에 묻거나 우물에 넣어 저주하였다. 또 충렬왕 때에는 무당과 술승들이 공주를 저주하여 병들어 죽게 한 사건이 있었다. 영험하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던 신령의 권위를 빌려 위세를 떨치고 농간을 부린 무당의 사례도 있다. 충렬왕 때 심양이라는 사람이 공주 지방의 관리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장성 지방에 한 여자가 있었는데, “금성대왕이 나에게 내려와서 ‘네가 만약 금성신당의 무당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반드시 네 부모를 죽일테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놀라운 나머지 무당이 되었다”라고 떠벌였다. 그 때 그녀는 같은 지방 사람인 공윤구와 사통하고 있었다. 그녀가 귀신의 말이라 하면서 “내가 장차 원나라에 가겠는데 반드시 공윤구를 데리고 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나주의 수령이 역마를 그에게 내주었다. 나주출신의 관리가 왕에게 그 무당이 신기하고 영험하다고 말했으므로 왕은 그 무당을 맞아다가 접대하려 하였다. 때문에 무당 일행이 지나가는 고을에서는 수령이 예복을 입고 교외에까지 나가서 맞이하여 후하게 접대하였다. 그런데 그녀가 공주에 도착하였으나 심양은 그들을 맞이하지 않았다. 무당이 화를 내면서 귀신의 말이라며 “나는 반드시 심양에게 재앙을 내릴 것이다”라고 하고는 되돌아가 다른 곳에서 숙박하였다. 심양이 사람을 시켜 그들을 엿보게 하였더니 그녀는 공윤구와 함께 자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을 체포하여 문초하자 모든 사실을 자백하였다. 무당들은 귀신을 전문적으로 받들면서 신령과 교감하는 역할을 국가로부터도 인정받아 사회의 안정을 가져오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위와 같이 때로는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을 악용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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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사회/문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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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문화의 이해 - 공일주
2. 인간의 신에 대한 관계
다섯 가지 기둥
이슬람의 교리와 실천에는 이론적이고 교의적인 면과 실천적인 면을 포함한다. 전자는 신조, 신앙의 조항으로 종교의 기초 또는 뿌리라고 부르고, 여기에는 신의 유일성이나 교의학이 들어 있다. 이는 또한 사변신학이라고도 불린다. 이슬람의 교의학에서는 모든 진실한 무슬림이 믿어야 할 신앙의 항목들을 다룬다. 이것이 곧 이슬람의 여섯 가지 믿음이었다. 두번째 부분은 실천적인면으로 계명과 교훈을 지키고 의무를 완수하며 규율과 관습을 준수해야 할 것으로, 이는 일반적으로 피끄흐라 불리는데, 여기에는 샤리아법과 다음 다섯 가지 기둥이 들어 있다. 이슬람의 다섯 가지 기본 기둥은 모든 이슬람의 종파가 받아들인다. 이 다섯 기둥의 준수는 모든 무슬림에게 요구된다. 다섯 기둥 중 네 가지를 지키지 못했다 해도 이행을 거절한 것이 아니면 이슬람에서 이탈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왜냐 하면 사실 모든 무슬림들이 일상생활에서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신앙고백을 빼고 네 기둥을 다 지키는게 아니다. 그라나 신앙고백은 필수적인 것이어서 아무도 이것을 시인하지 않고는 무슬림이라고 할 수 없다. 대부분 무슬림들은 두 번째 가장 중요한 기둥으로 기도를 든다. 영적이고 율법적인 이 기도의식은 여성이 월경시 일시적인 경우는 제외하고는 면제되어야 할 근거가 없다. 나머지 다른 세 기둥은 연장되거나 제도적인 이행면제를 받을 수 있다. 이 다섯 기둥에는 증거, 다섯 번의 기도, 규정된 양의 자발적인 종교세, 일생에 한 번 메카에 순례, 라마단달 동안의 금식 등이다. 그러나 카와리즈파는 지하를 여섯째 번 기둥으로 삼기도 하나 순니 이슬람(전세계 무슬림의 83%)에서 의무적인 것은 아니다. 이제 다섯 기둥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샤하다
동사 shahida(잘 보다, 증거하다, 증명하다, 증인이 되다)에서 온 말이다. 샤하다는 이슬람의 기본이 되는 증언이다. 이슬람의 다섯 기둥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첫째 가는 기둥인 것이다. 알라에게 복종하는 결과는 곧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 샤하다는 다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보고 감지하는 행위를 포함하므로 본 것과 감지한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것이다. 보고 감지하고 관찰한다는 뜻은 ‘증거하다, 증인이 되다’라는 의미와 상호 보완적인 의미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진리를 위해 죽다, 순교하다. ’라는 의미로 발전하기도 한다. 샤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알라 이외에는 신이 없음을 증언한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Messener)임을 증언한다.” 이슬람에서 구원의 한 조건은 위 샤하다를 완전히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샤하다는 금단의 과일을 먹은 아담의 실수를 삭제해 준다는 것이다. 아담은 알라 대신에 실재(Reality)의 대상을 본 것이다. 샤하다의 의미는 절대자 알라만이 실재라는 것을 각자가 인정하는 것이다. 알라가 아니라면 실재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샤하다의 의미는 무함마드가 정의를 내린 것으로 그를 통한 알라로부터의 메시지, 즉 계시로서의 창조나 현시의 관계를 규정한 것이다. 가끔 구원을 받기 위해 샤하다를 단 한 번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과 다양성 속에 살고 있으므로 그의 증언과 시인의 깊이는 단 한 번으로 표현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샤하다는 반복되어야 한다. 샤하다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샤하다는 인간을 끝없는 대양 즉 영원으로 던진 것이고, 둘째 샤하다 즉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라는 말은 무함마드가 알라의 예언자이고 계시자라는 것이다. 무함마드는 유일한 실재로부터 오는 배이다.
기도
동사 Salla(신성하게 하다, 깨끗하게 하다, 신에게 바치다)에서 온 말로 아랍어 사전(리싼 알 아랍)에서 Salah는 ‘몸(상반신)을 구부리다, (머리)를 숙이다. 무릎을 굽히다’라는 Ruku(루쿠으)의 뜻과 ‘땅에 이마를 대다, 머리 숙여 절하다, 엎드리다, 경배하다’라는 Sujud(쑤주드)의 뜻이 들어있다. Salah는 아랍어가 아닌 아람어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슬람의 용어로 확정되면서 의식적인 정규의 기도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이 밖에 자진해서 임의적으로 하는 신에 대한 기원을 dua(두아)라고 한다. 라크아(Rak'ah)의 단어 뜻은 원래 ‘서 있는 자세에서 상반신을 굽히는 것’을 말하는데, 이슬람의 기도에서는 의식적인 동작과 성구의 한 주기를 말한다. 물론 법학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라크아의 규정된 수효가 각 쌀리(기도)를 이룬다. 기도자는 청결의식을 먼저 행하고 다음 다섯 가지 기도의 기본동작을 한다. 이것이 라크아이다. 기도는 메카를 향해 서서 기도하겠다는 표현 “나는 알라에게 아침 기도를 할 작정입니다. ”로 시작된다. 1. 양손의 엄지를 귓볼 가까이에 올리고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가장 위대하다)’라고 외운다. 2. 직립자세로 쿠란의 제1장(개경장)을 외운다. 3. 상반신을 구부리고(루크으) ‘수브하나 랍빌 아딤(위대하신 나의 주께 평강이 있으라)’을 3번 반복한다. 4. 무릎을 땅에 대고 엎드려(쑤주드) ‘수브하나 랍빌 아알아(가장 지고하신 나의 주께 영광이 있으라)’를 말한다. 5. 앉은자세(잘싸)에서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운다. 이 때 개경장과 쿠란의 다른 구절을 소리내지 않고 외우기도 한다. 이상과 같이 의무적인 기도는 기도시간에 맞춰 행한다.
(ㄱ) 아침기도 : 두번의 라크아를 소리내서 한다. 알 파즈르라고 하는데 동틀녘의 시간 사이에 행하는 기도를 말한다. (ㄴ)낮기도 : 소리내지 않고 4번의 라크아를 한다. (ㄷ)늦은 오후기도 : 소리내지 않고 4번의 라크아를 한다. (ㄹ)일몰기도 : 라크아를 처음 두 번은 소리내서 하고 마지막 한 번은 소리내지 않고 한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진 후 4분 후에 시작한다. (ㅁ)밤기도 : 4번의 라크아를 하는데 처음 2번은 소리내서, 나머지 2번은 소리내지 않고한다. 밤이 되어 새벽이 되기 전에 하지만 되도록 한밤중 이전에 하는게 좋다. 낮기도와 늦은 오후기도는 아주 더운 시간을 피하기 위하여 지연되기도 하는데, 둘 다 한꺼번에 하는 경우도 있다. 일몰기도와 밤기도는 여러 대중집회로 인해 불가능할 경우에는 한꺼번에 행한다. 기도하기 전에 각 사람은 의식적인 청결을 유지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전체 세정(구쓸:흐르는 물에 씻음)과 부분 세정(우두)그리고 부드러운 모래로 씻는 따얌뭄이 있다. 기도는 메카를 향하고 목욕탕, 묘지, 도살장이 아닌 깨끗한 장소에서 행한다. 메카 방향을 모를때에는 카바 안에서 하는 것처럼 어느 방향으로 해도 된다. 남자의 옷은 배꼽에서 무릎까지 덮어야 하고, 여자는 목에서 팔꿈치 아래, 그리고 발목(복사뼈)까지 덮는다. 구두는 기도의 장소에서 벗어야 한고 일부 이맘들은 모스크 안에서만 슬리퍼나 샌달을 신을 수 있다. 전세계 무슬림이 사우디의 메카 카바를 향해 같은 언어로, 같은 표현으로, 같은 의식을 행하는 기도는 인종과 피부 빛깔과 상관 없이 형제애와 무슬림 고향을 찾는 마음, 그리고 가난한 이웃의 얼굴을 찾는다. 그리고 무함마드에게 기도는 죄를 씻어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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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범밭에 심은 꿈
올해도 우리마을엔 밤이 많이 열렸을 것이다. 밤나무가 많은 우리 마을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저절로 익어 떨어진 밤 줍기에 바쁘다. 어릴 때 여동생과 나는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커다란 자루를 들고 밤을 주으러 가곤 했다. 해거름까지 줍고 나면 두세 자루에 둥그런 밤이 가득했다. 주워도 주워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밤들을 보고 동생과 나는 괜히 들떠서 펄쩍펄쩍 뛰어 다녔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저쪽에 가서 다람쥐나 쫓아 버려라"고 야단을 치셨다. 다람쥐들과 숨바꼭질을 하느라 달음질쳐 가다 보면 멀리까지 나간다. 그러면 또 어머니가 멀리서 손짓하며 부르셨다. "순호야! 해영아!" 아버지는 지게에 밤자루를 짊어지고 어머니는 머리에 얹으시며 "됐다, 이제 집에 가자"하시면 동생과 나는 남겨 두고 가는 밤이 아까워 주머니가 불룩해질 때까지 밤을 밀어 넣었다. 어머니가 쫓아와 큰소리를 치실 때까지......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거적을 깔고 밤을 쏟아 놓으면 난 툇마루에 앉아 그것들을 쳐다보다가 잠을 들곤 했다. 그러나 그 밤은 우리 것이 아니라 돈 많은 어느 도회지 사람의 것이었다. 밤을 줍는 아이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그렇게 밤이 떨어지던 어느 해 나는 고향을 떠나왔다. 어머니는 빛깔 고운 생밤을 가방에 넣어 주시며 "언제든지 다시 오고 싶으면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내가 결심한 것을 다 이룰 때까지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 결심이란 돈을 버는 것이었다. 돈을 모으는 것이 무슨 계획이냐고 나 스스로도 부끄러울 때가 많았으나 굽은 어머니의 등과, 갈라진 아버지의 손등을 기억해 내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져 먹었다. 내가 이곳 구미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동안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을만 되면 계속 남의 밤밭에 가셔서 밤을 주웠을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도 그 밤밭을 사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조그만 논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그 논을 일구며 여러 자식들 잘 키워 주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 그 밤밭을 사서 그곳에 가을이 찾아오면 열심히 밤을 주울 것이다. 비록 가시에 찔려 눈물이 찔끔 날지언정 난 행복할 것 같다.
정순호 님/경북 구미시 공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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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철학사 100장면 - 김형석
37 - 철학과 신학의 조화: 토마스 철학의 근본문제들
그때 세계에서는 1271년: 이탈리아 마르코 폴로, 동방여행길에 오름
아우구스티누스는 철학을 멀리하고 신학을 높이 받아들인 편이다. 그러나 토마스는 오히려 철학과 신학의 융화를 꾀했다. 다만 신학은 주격이 되고 철학은 시녀격으로 되었으며, 신학은 내용이 되고 철학은 방법이 되는 위상으로 정착되었다. 그것은 다시, 이성은 계시를 단절시키지 않고 계시는 이성을 포함하면서도 초월하는 것으로 보았다. 신앙은 비이상적이거나 반이성적이기보다는 초이성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자연이성에서 계시의 관계로 상승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어린이의 생각과 같으나, 신의 계시는 철학자의 사유에 비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것이다. 따라서 이성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있어도, 신의 본질은 계시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다. 자연은 은총의 선구이며, 은총은 자연이성을 완성시킨다고 설명한다. 이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다. 개신교에서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뱅, 최근에 와서 키에르케고르와 카를 바르트를 잇는 신학이 계시의 절대성을 계승하는 데 비해, 카톨릭은 이성과 신학의 동질성을 인정하는 융화성을 갖는 신학을 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신교는 위로부터의 구원을 강조하나, 카톨릭에서는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길과 위에서 내려오는 길의 합치를 말하는 차이가 여기서 생긴다. 그 배후에는 플라톤이 아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도 성격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그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복잡한 이론을 여과시켜 건전한 상식적 결론으로 유도한 인상을 준다. 인식의 문제도 그렇다. 대상존재가 주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감관을 통해 경험한다. 그 경험한 내용을 오성이 사유한다. 사유란 지적 가공 작용인 것이다. 거기에서 보편개념을 얻으면 되는 것이다. 어떤때는 더 평이하게, 사물과 존재는 인식의 기본이되며 그것을 정신적으로 묘사해서 사유의 내용으로 삼아 지식을 산출시킨다고 설명한다. 칸트의 주관적 이성작용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중심의 인식론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따라서 진리는 이미 주어진 것이다. 그 주어진 것을 얼마나 정확하고 타당성있게 받아들이는가 함이 문제인 것이다. 진리는 사유와 존재의 일치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그의 형이상적 존재론도 극히 상식적이며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가장 핵심 되는 원리가 있다면 존재의 유사성이다. 유사성은 단계성을 전제로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해석을 내리면, 존재는 질료(materie)에서 형상(form)에의 길을 따른다. 그 질료와 형상의 단계에 따라 다섯 가지의 구별이 생긴다. 가장 낮은급에 속하는 질료뿐인 질료, 식물적 생명에 속하는 영양적 영혼, 동물적 생명인 감관적 영혼, 이성적 영혼에 속하는 인간, 순수 영에 속하는 천사, 절대적 형상에 속하는 신의 등급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인간은 이존현상의 가장 낮은 급에 속하며, 질료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질료적 형상의 위치에 속한다고 보았다. 중간존재가 되는 셈이다. 말하자면 질료 자체와 질료적 형상과 이존형상의 단계를 구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질료적 형상을 위해 시간과 공간의 기능 을 가미시켜 그 내용을 보충해준다. 어떤 때는 영혼은 소재가 없는 질료를 떠나 있기 때문에 영존성을 갖는다고 본다. 물론 신은 세계의 원인, 작용인이면서 제1의 원인이 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해석을 내린다. 그는 윤리에 있어서도 이성적인 보수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존재는 하나이며, 참이며, 선이다. 이미 그렇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윤리는 존재와 사유와 당위성의 일치가 문제다. 아는것은 행하게 되어 있으며, 이성이 진리로 받아들인 것을 행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덕은 플라톤의 4덕으로 되나, 신앙적 덕은 믿음.소망.사랑이 되어야 한다. 전자는 세상에, 후자는 교회에 속한다. 그것을 실천함에 있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 때부터 전래되는 이성주의.주지주의를 윤리에 접목시킨다. 정치 면에 있어서도 그의 귀족다운 보수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오직 다른 점이 있다면 모든 선과 정치의 궁극적 표준은 신의 섭리에 일치되어야 하며, 신의 은총의 질서에 합치된다면 정치체제나 제도는 가릴 필요가 없다고 본다. 카톨릭이 세계정치와 잘어울릴 수 있는 성격은 여기에서 주어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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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개'는 '디히개 > 디이개> 지이개 > 지개 > 찌개'로 변화한 말
'장아찌'를 말씀드리니까,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찌개'입니다. '찌개'는 역시 '지'와 연관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된장찌개, 고추장찌개, 비지찌개, 굴비찌개, 북어찌개' 등 그 종류도 많습니다. '찌개'는 고기나 채소를 쪄 내서 다시 끓인 반찬'을 뜻하니까, 여기서 말하는 '쪄 내다'의 '찌다'와 연관된 단어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셨던 분이 계시다면, 그 생각을 바꾸셔야 하겠습니다. 만약에 이 '찌다'의 '찌'에 접미사 '-개'가 붙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만든 단어인 '찌개'는 아마도 '찌는 도구'를 뜻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찌개'는 '디히개 > 디이개> 지이개 > 지개 > 찌개'로 변화를 겪은 것이지요. 그런데 접미사 '개'는 대개 동사의 어간과 연결되는 것이 더 많아서 '덮개, 깔개, 발싸개, 이쑤시개' 등으로 쓰이지만 '찌개'처럼 명사에도 붙기도 합니다.'부침개, 털이개' 등이 그것이지요.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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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 - 역사 속으로 찾아가는 죽음 기행 : 맹란자
제1장 죽기가 힘들었던 사람들
5원짜리 관에 묻힌 마지막 황제 부의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것은 그의 자서전을 소재로 한 영화 마지막 황제 푸이 덕분이다. 그래서 귀뚜라미와 놀던 어린아이가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1908년, 큰아버지인 광서제가 죽자 부의는 세 살의 어린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아버지 순친왕의 섭정을 받으며 3년간을 황제로 있었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면서 그 이듬해에 제위헤서 물러나야만 했다. 부의가 퇴위함으로서 268년에 걸친 만주국의 중국지배와 2000년간에 걸친 황제 지배체제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는 인민공화국으로부터 북경에 있는 궁전에서 살도록 허용이 되었으나 1924년, 몰래 빠져나와 천진으로 갔다. 거기서 일본인 조계로 거주지를 옮기고 그들의 비호를 받으며 만주국의 집정관이 되고 28세 되던 1934년에는 만주국의 황제로 추대된다. 그는 일본 천조대신을 신봉하도록 강요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울분을 삼키며 굴욕적인 황제 자리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의 계략임을 처음부터 그는 알지 못했다. 부의는 실권없는 허수아비 왕이 되어 불우한 11년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1945년 일본이 망하자 그는 통화로 도망치는 길에서 제3차 퇴위조서 를 반포하게 되며 그 후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적탑과 백리라는 곳에 억류되었다. 부의 그는 5년 뒤 중국으로 송환되어 전범재판을 받게 된다. 1950년부터 시작하여 특사로 풀려 나오기까지 10년간을 그는 중국 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냈다. 중국의 황제이던 그가 자유의 몸이 된 것은 쉰세 살이 되어서였다. 그것도 평민으로서였다. 이른바 교육개조를 거쳐 정부의 특사를 받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이 된 것은 1959년 12월 4일이었다. 그립던 북경으로 그가 돌아온 것은 자금성을 떠난 지 꼭 34년 만의 일이었다. 북경에 돌아온 부의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의 말대로 옴짝달싹 못하던 왕위 그 어의를 벗어 버리고 평민으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1962년, 56세 되던 해에 부의는 아내를 새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식물원의 기계수리 상점에서 일을 하면서 나머지 후반생을 조용히 마쳤다. 부의에게는 황후와 비, 그리고 2명의 귀인이 있었는데, 모두 비극적인 관계로 끝났다. 나중에 만난 간호사 이숙현과 비로소 참다운 부부애를 느끼며 범부로서의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명나라 마지막 황제가 목매어 죽은 현장을 찾아보았는데 그때 동행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숭정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데 숭정은 포위 당해 도망갈 길이 막혔다. 황후와 후궁들이 잇달아 자결하자 그는 이 나무에 목을 맨 것이다. 자칫 세상이 잘못 풀렸던들 나도 이 나무에 목을 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62년 피섞인 오줌을 누기 시작하던 부위는 그것이 신장암의 징조인지 몰랐다. 인민병원과 협화병원에 아홉 번이나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후 병세는 날로 심해져 병원에 다니는 일마저 어렵게 되었다. 시내 버스를 타자니 사람이 많아서 오를 수 없고, 세 바퀴차를 불러타고 싶었으나 홍위병들이 남을 압박한다 고 할 것 같아 그만 두었으며, 정협의 협조를 받자고 하여도 문을 닫아걸고 업무를 담당한 사람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매일 부의를 부축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서 병원으로 가야만 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특히 혼자 있기를 싫어해서 항상 병원침대 머리맡에는 그의 아내가 지키고 있었는데 세상을 떠날 때도 그의 곁에는 나 혼자밖에 없는 외로운 처지였습니다.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죽음의 병상에서 부의는 아내 이숙현의 손을 꼭 쥐고 이렇게 말했다. 내병은 고칠 수 없소, 나는 한 평생 황제 노릇도 했고, 평민도 되었으며, 늘그막엔 당신 곁에서 인간생활의 단맛을 보았소. 당신과 생활하는 이 몇 해 동안 나는 진정한 생의 즐거움과 사람을 알게 되었소. 당시 수상이던 주은래는 그들의 뒤를 잘 돌보아 주었다. 부의가 위독할 때도 수상이 특별대우 라는 네 글자를 써 주었기에 입원이 되었다. 그래서 마지막 며칠간을 병원에서 지낼 수 있었다. 1967년 10월 17일 새벽 2시 30분. 소매여! 숨이 막힐 것 같다 는 말을 남기며 마지막 황제 부의는 숨을 거두었다. 목숨이란 것은 목에 숨이 붙어 있는 것 이라고 한다. 나를 외롭게 남겨두고 가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그 분은 한쪽 눈을 뜨고 있었고, 입도 벌리고 있었다. 안심하세요. 내 걱정 말고 고이 잠드세요. 그의 눈을 감겨주던 지금 이 손에는 그때의 슬품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 고 이숙현은 당시를 회고했다. 그의 아내는 5원을 들여 산 값싼 관에 시신을 넣어 지게 송장으로 장례를 지냈다.
그가 황제 복권으로 청나라 황제들의 능이 있는 하북성, 서릉에 다시 안장된 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이었다. 부의는 세 살에 황제가 되고, 39세에 포로가 되었다. 광해군은 49세에 폐위되어 죄인이 되었다. 부의는 14년간을 제위에 있었고 15년간을 포로로 지냈다. 광해군은 15년간을 왕위에 있었고 18년간을 죄인으로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61세와 67세의 나이로 자연사할 때까지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진행되던 시대적인 상황, 그래서 때를 만나든지 못 만나든지 하는 우, 불우는 하늘의 탓이라고 했던가. 역사에는 명에 사로잡혀 자신의 명을 가볍게 버린 사람도 많다. 그러나 기를 쓰고 살고 싶어하는 쪽이 오히려 더욱 인간적이랄수도 있다. 무릇 생명이란 살려고 하는 의지이며 살고 싶어하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이다. 목숨이란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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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세계사 - 안효상
1. 바벨탑의 수수께끼를 푼다
현재 지구상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은 100개가 넘는다. 그리고 그 말이 민족을 구별하는주요 지표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에 따라 제각기 다른 말을 쓰게 된 것은 하늘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벌을 내린 결과라고 한다. 성경 창세기 제 11장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동쪽으로 옮아 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는 의논했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야훼께서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 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 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후일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말을 쓰는 이유가 바벨탑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탑에 대해서만은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다. 바벨탑은 실재했던 것일까? 실재했다면 그 위치는 어디일까? 사람들은 이 바벨탑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졌다. 특히 이것은 기독교도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수수께끼의 하나였다. 바벨이라는 것은 원래 `신의 문`이라는 뜻이며 후에 그리스인들은 바빌론이라고 불렀다. 7세기 이후 이 지역 사람들은 이슬람 교도가 되었지만 바벨탑의 신비를 쫓는 서유럽 기독교인의 방문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바벨탑의 흔적을 발굴한 것은 금세기 초 독일 조사단이었다. 이들은 18년 동안이나 땅을 파 옛 바빌론의 모습을 발굴했으며 바빌론에서 가장 신성한 에사기라(성역)내에서 그 옛날의 7층탑(지구라트)의 흔적을 찾아냈다. 흔적밖에 없었지만 면밀한 조사를 통해 탑의 첫번째 층은 각변이 91미터, 일곱번째 층은 24미터이며 높이는 약 90미터라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1차대전 이후 영국·미국 합동 조사대가 이라크 남부의 고대 유적을 10년에 걸쳐 발굴했다. 그 결과 그곳이 기원전 2000년 전의 수메르 인의 도시 국가 우르의 흔적임을 알 수 있었고 이 유적 가운데 탑도 있었다. 어쨌든 오늘날 메소포타미아에는 계단 모양의 신전이 40개 이상 발견되어 있다. 이것을 지구라트라고 부른다. 이 지구라트가 아마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벨탑일 것이다. 하지만 40개가 넘는 탑 중에서 어느 것이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탑이 필요했을까? 문명 발생지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지역에 수메르 인들이 자리 잡은 것은 기원전 4000년경이었다. 이들은 작은 도시 국가들을 세웠고 도시의 중심에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웠던 것이다. 동부 산악지대 출신인 이들은 처음에는 신을 평지보다 한 단 높은 곳에 모셨지만, 메소포타미아 지방이 두 강(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으로 인해 홍수 피해가 심한 곳이었기 때문에 단을 높이 쌓아 그 위에 신전을 모셨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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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 피터 마크 로제트 박사는 90세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는 73세부터 유명한 ‘동의어.반의어 사전’을 편찬하기 시작하여 나이 90세에 28판이나 출판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로제트의 ‘동의어.반의어 사전’에 의하면, ‘사랑’의 동의어는 404개이지만 ‘미움’의 동의어는 107개밖에 없다고 한다.
이동도서관(bookmobile)을 최초로 이용한 사람은 나폴레옹이었다. 그는 독서광이었기 때문에 전쟁에 나갈 때 50,000권의 책을 싣고 다녔다.
미국 국회도서관에 있는 책은 20,000,000권이 넘는다. 또 이책을 진열하는 서가(書架)의 길이는 858킬로미터나 된다.
마가렛트 미첼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쓰기 위해 자료 수집에만 20년을 바쳤다. 기본(Gibbon)도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쓰는데 20년을 소비했고, 웹스터가 그 유명한 ‘웹스터 사전’을 만드는 데는 36년이나 걸렸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구텐베르크 성경’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는 성경이다. 하지만 구텐베르크가 그것을 인쇄할 당시에는 자금이 모자라 빚을 지고 고소당하여 모든 기계와 도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1970년 경매에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인 2,500,000달러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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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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