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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45 호
4339.10.30 (09.09)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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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 風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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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시며 → 자유글판 |
바위 위에 피어나는 연꽃 - [ 연화바위솔 ]
[ 연화바위솔은 바위틈, 전통 기와집의 기왓장을 좋아합니다.]
이파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해안가 절벽이나 바위틈, 척박한 땅에서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꽃이 있습니다. 이파리가 연꽃을 닮아 '연화'요, 바 위틈에서 자라기 때문에 '바위솔'이라는 이름을 얻은 꽃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바위연꽃'이라고도 합니다.
[ 꽃몽우리 가득안고 오랜 시간 기다립니다. ]
물에 피어나는 연꽃과 삶의 터전이 대비되는 꽃, 바위에 피어나는 연꽃인 셈입니다. 타는 목마름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고, 꽃을 피운 후 고사하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피어나는 꽃이 연화바위솔입니다.
연화바위솔이 바위에서 자라는 비밀, 그것은 다육질의 이파리에 있습니다. 수분을 충분히 저장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아침이슬 혹은 바람 타고 오는 습기까지도 소중하게 자기 몸에 간직했을 것입니다.
[ 다른 각도에서 본 연화바위솔 ] 원산지는 한국이며 제주도 해안 절벽에 자생한다고 식물도감에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아직 자연 상태에서 만난 적은 없습니다. 아마도 아주 예쁜 자태 때문에, 보이는 족 족 그를 탐하는 이들에게 뽑혀나간 까닭일 것입니다.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으면 절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자연이니까요.
[ 무성하다 못해 빽빽하게 피어난 꽃입니다.]
자연상태의 꽃, 그것은 억만장자라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미 사람의 손길을 타는 순간 야생화가 아닌 원예종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런 점에서 들에 핀 꽃을 보고 행 복해 할 수 있는 사람은 부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모 든 이의 것으로, 자연의 것으로 알고 또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 출처 : 오마이뉴스
호단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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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식 |
'민족문학인협회' 30일 금강산서 결성식 "해방 후 첫 남북 단일문인조직, 민간단체 주축 첫 남북 단일조직"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북한 핵실험 등으로 성사 여부가 불투명했던 남북한 문학작가 모임인 '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식이 마침내 30일 금강산에서 열리게 됐다.
'6.15민족문학인협회 남측협회'(이하 남측협회) 회원 및 남측 문인들은 29일 오전 서울을 출발, 오후 금강산 방문증을 수령해 방북함으로써 2박3일 간 진행될 결성식 일정에 돌입했다.
결성식에 참가한 남측 인원은 결성식 남측 단장을 맡은 평론가 염무웅씨를 비롯해 회장단 신세훈(시인), 임헌영(평론가), 정희성(시인)씨 등 문인 50여 명과 취재진 등 모두 70여 명으로 구성됐다.
도종환, 나희덕, 박범신, 박수연, 신달자, 윤정모, 은희경, 이문재, 정양, 최인석씨 등의 문인들이 참가했으며 북측에서는 소설가 김덕철, 홍석중, 남대현, 시인 장혜명, 오영재씨 등 30-40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남측 문인들은 30일 결성식에 이어 양측 회장단이 작년 7월 평양에서 열린 '민족작가대회'에서 합의한 ▲'6ㆍ15 통일문학상' 제정 ▲협회기관지 '통일문학' 발행 등을 위한 실천방안을 논의한 뒤 시와 산문을 낭송하는 '금강산 문학의 밤' 행사를 갖는다.
◇해방 후 첫 남북 단일문인조직
"민족문학인협회 결성은 기나긴 통일운동사의 과정에서 한 획을 긋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전개될 모든 예술교류의 차원과 형식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민족문학인협회 결성은 남과 북이 분단 이후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단일한 문학인조직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우리 문학사에서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로 기록될 전망이다.
우선 분단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반세기가 넘도록 내용과 형식면에서 크게 다른 길을 걸어온 남북 문학이 처음으로 직접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과 분단으로 인해 1세기가 넘도록 진행돼온 남북한의 기형적이며 이질적 언어 환경을 서서히 통합해나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남측협회는 "우리 민족은 일제에 의해 36년 동안이나 언어공동체를 빼앗겨왔고, 또다시 반세기가 넘도록 언어영토가 분단된 환경에서 살아왔다"면서 이제 '모국어공동체'를 가꿔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한 참여 문인 구성도 다양하다. 남한의 경우 작가회의를 주축으로 한국문인협회 회원들, 문인단체에 소속하지 않은 문인 등이 참여했으며 북측에서도 다양한 문인들이 참여해 나름대로 범 문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협회는 "이제 남북 작가들의 공동 취재와 공동 집필, 또 문학 작품 교류 등의 사업을 협회 내부에서 토론하고 집행하게 될 것"이라며 "남북 문단이 바야흐로 본격적 문학교류를 시작하게 된 셈"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민족문학인협회는 남북한 민간 단체가 주축이 돼 구성한 첫 남북 단일조직으로, 최근 북핵실험 여파로 정부 차원에서 뿐 아니라 민간 차원까지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 남북 교류에 어떤 기여를 하게 될지도 주목된다.
◇1년5개월 '3전4기'끝에 거둔 결실
'남북 첫 문학인조직', '민간 주도 첫 단일조직'이라는 의미가 상징하듯 실제 결성식이 열리기까지는 1년5개월 여라는 긴 준비 기간과 수차례의 진땀 나는 고비를 넘겨야 했다.
남북 작가들이 민족문학인협회를 구성하기로 한 것은 작년 7월 평양에서 열린 '민족작가대회'에서다. 당시 양측은 각각 결성식 조직위를 구성하고 연말까지는 협회를 결성키로 했다.
그러나 순조롭던 결성식 준비 작업은 먼저 해외 동포 문인들의 참가문제가 불거지면서 암초에 부딪혔다.
남측은 북한이 해외 동포 문인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정치성을 지향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했고, 북측은 남측 문인들이 "지나친 문학지상주의를 내세워 해외 인사들을 배제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결국 양측이 한발씩 양보해 난제로 보였던 문제들이 하나 둘 풀리면서 마침내 7월29일 금강산에서 결성식을 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행사 하루 전 북측이 일정을 잠정 연기하면서 결성식은 또 다시 난항을 겪었다.
더구나 북측이 결성식 연기를 통보한 것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여파로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에 빠진 시점이어서 결성식이 실제 열릴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해 보였다.
특히 최근 북핵실험이라는 초대형 악재가 터지면서부터는 협회 결성 계획 자체가 백지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강하게 제기됐다.
남측협회는 이달 초순께 북측 조직위로부터 "30-31일 사이 금강산에서 결성식을 열자"는 내용의 공문까지 받아놓은 상태였지만 이날 서울을 출발해 방북하기 직전까지 누구도 성사 여부를 장담하지 못했다.
민족문학인협회 결성에 깊이 관여해 온 고은 시인은 "티끌이 더해져 싹이 생겨나듯 우리들의 작은 행위들이 언젠가는 큰 바위(통일)를 뚫게 될 것"이라며 협회 결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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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명언 / 격언 |
과거 없는 성인, 미래 없는 죄인은 없다. / 고대페르샤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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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과학/예술/교육 |
- 조화유의 미국영어 - 일반인을 위한 경제생활 영어
36. 나는 기성복을 주로 사 입습니다.
미국에서는 맞춤옷(custom-made suits)이 매우비싼 편이므로 기성복(ready-made suite)을 사 입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동양 사람들은 체구가 미국 사람들에 비해 워낙 작기 때문에 대체로 기성복은 너무 크다. 그래서 어른들 옷이 걸려 있는 곳에 가서는 가장 작은 사이즈를 찾기 마련이고, 그것마저도 클 때는 아예 애들 옷이 걸려 있는 곳에 가서 제일 큰 사이트를 찾는 편이 빠를 때가 있다. 한번은 키가 작은 어느 교포가 아동복부에 가서 제일 큰 사이즈를 고르고 있으니까 점원이 와서는 What's your boy's jacket size?(당신 아들 윗저고리 사이즈가 얼마냐?)고 묻기에 자기가 입을 거라고 말하기는 창피해서 어물어물하다가 나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기성복을 주로 사 입는다"는 말을 영어로는 Usually I buy my suits off the rack.라고 한다. rack는 옷을 걸어 놓는 스탠드를 가리키므로 buy off the rack는 '기성복을 산다'는 뜻이다. 반대로 "나는 항상 옷을 맞춰 입는다"는 I always have my suits custom-tailored.라고 하면 된다. custom-tailored는 custom-made와 같은 뜻이다. suit는 남녀의 옷(아래 위 한 벌)을 다 가리키지만 일반적으로 여자의 옷은 dress라고 하므로 여자가 "나는 옷을 항상 유명 양장점에서 맞춰 입는다"고 하는 말은 I always have my dresses custom-made by famous dressmakers.라고 하면 된다. 기성복을 살 대 옷을 약간 고쳐 입고 싶으면 Do you do alterations? 라고 하거나 Can you alter it for me?라고 하면 된다.
A: Wow, you got a brand-new suit. Where did you have it custom-tailored? B: It's not custom-made. I bought it off the rack. A: Really? It fits you perfectly. B: Thank you. It didn't fit me at first, so I had a little alterations made. A: 야, 너 새 양복 입었구나! 그거 어디서 맞춘 거니? B: 맞춘 게 아니고 기성복을 사 입은 거야. A: 정말? 아주 썩 잘 맞는데 그래. B: 고마워. 처음엔 맞질 않아서 약간 고친거야.
Customer: How do I took in this suit? Salesman: The Sleeves are a little too long and it's a little too big in the chest. Customer: Oh, yeah? Do you do alterations here? Salesman: Yes, we do. 손님: 이 양복 입으니까 어때요? 점원: 소매가 좀 길고 품도 좀 크군요. 손님: 그래요? 여기서 고쳐 줍니까? 점원: 예, 고쳐 드립니다.
Customer: I'd like to have a suit made with this wool-blend fabric. Tailor: All right, sir. Can I take your measurements? Customer: Sure. A few minutes later- Tailor: Can you come back for a fitting Friday? Customer: Yes. 손님: 이 양모가 섞인 천으로 양복을 맞추고 싶군요. 재단사: 알겠습니다. 치수를 잴까요? 손님: 그럽시다. 몇 분 후- 재단사: 금요일에 가봉하러 오실 수 있겠죠? 손님: 예.
A: Does this green tie go with my brown jacket? B: I don't think so. Try this red-and-white one. A: 이 초록색 넥타이가 내 갈색 양복 저고리에 어울리니? B: 안 어울리는 것 같애. 그 빨강과 흰색이 섞인 것을 매 봐.
* Laughing is the best rest. - 웃음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
The best place to hide money in is the Bible. Those who would open the Bible wouldn't steal, and those who would steal would never open it. 돈을 감춰 두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성경책 속이다. 성경은 펴 볼 만한 사람은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고 도둑질을 할만한 사람은 성경을 펴 보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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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지식/생활/건강/의학 |
- 음식 토정비결 - 전영순,하정화
<과실류>
34.도토리 - 옛날엔 개밥에 도토리, 지금은 미용건강식
우리나라 옛 속담에는 '마음이 맞으면 도토리 한알로도 시장기를 멈춘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가난하여도 서로 마음만 맞으면 모든 역경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된 속담이다. 여기서 도토리는 아주 작은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맞서는 모양을 보고 '도토리 키재기'라고 한다. 이처럼 도토리는 우리 조상들에게 작고 하찮은 것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도토리는 흔한 만큼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대에는 '개밥의 도토리'처럼 여겨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기근이 들어 굶주림에 허덕이던 일반 서민들에게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중요한 식량원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토리와 기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함수관계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엣 문헌을 통해서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동문선}에는 상실가 라고 하여 탐관오리에게 수탈 당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가 실려있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늙은이만 남아 빈집을 지키는데 사흘을 굶다가 산으로 도토리 주으러 간다. 권세가여 너는 아느냐, 너희들의 진수성찬이 도토리 줍는 늙은이의 눈밑에서 흘러나오는 피라는 사실을..."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7년을 고비로 가뭄이 들거나 난리가 난다는 말이 일반화될 정도로 기근이 많았다. 그러나 재난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탐관오리와 세도가라는 인재 또한 서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이 노래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젊은 자식 내외는 전쟁터로, 혹은 부역을 하러 나가버리고 혼자 남아서 집을 지켜야 할 노인은 식량을 수탈 당하여 하는 수 없이 그 떫은 도토리라도 주으러 산으로 가는 고단한 생활상이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노래이다. 만일 산에 도토리라도 없었더라면 이들은 무엇으로 연명했을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한톨한톨 주워온 도토리는 그냥 먹을 수가 없었다. 도토리맛은 무척 떫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유의 가공방식으로 떫은맛을 제거하고 묵으로 만들어서 먹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 구미를 당기게 하는 도토리묵의 시초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배고픔을 달래는 구황식품이었던 도토리묵은 오늘날에 와서 별미로 일반화되어 도토리값이 쌀값보다 비쌀 정도가 되었다.
한편, 도토리에 관한 각 지역의 속신은 다양하게 전래되어 내려온다. 예컨데 경상도지방에서는 꿈에 도토리 나무를 보면 행운이 따른다고 믿는다. 반면에 서울 지방에서는 임산부가 도토리묵을 먹으면 유산한다는 속신이 있다. 우리가 흔히 도토리라고 일컫는 것에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모밀잣나무, 너도밤나무, 침엽수 등의 참나무 열매에 대한 총칭이다. 한자명으로는 상실, 곡실 등으로 부른다. 북반구의 온대, 난대, 아열대에 걸쳐서 약 2백 여종이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13종 정도의 참나무속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주종을 이루는 것은 신갈나무다. 도토리는 우리나라 야산 어디든 흔하게 자생하고 있다.
성분
도토리의 주성분은 녹말이며 그 함유량은 60∼80%에 달한다. 이밖에 지질, 단백질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도토리에는 탄닌이라는 특수성분이 들어 있어 날것으로 먹으면 떫은 맛이 난다. 옛 문헌에서는 다음과 같이 도토리의 효능을 밝히고 있다. {당본초}에 '도토리는 치질을 다스리고 하혈을 멈추게 한다'고 되어 있다. {일화자본초}에서는 '도토리는 장을 튼튼하게 하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본초강목}에는 '도토리를 찐 다음 말려서 가루로 하여 먹으면 대장을 튼튼히 하고 설사를 그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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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새
도토리는 예로부터 구황식이나 별식으로 널리 이용되었으며 위와 장에 좋은 식품으로 각광받아 왔다. 특히 도토리는 열량이 적으므로 비만증에도 좋다. 그러나 탄닌 성분은 점막을 수축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변비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도토리를 재료로 하여 만든 식품으로 우리는 흔히 도토리묵을 떠올리지만 이것 뿐만이 아니다. 도토리 껍데기를 벗겨 물에 오랫동안 담가 떫은맛을 뺀 다음 잘 말려 가루를 낸다. 그 가루로 죽을 쑤면 도토리죽이 되고 가루로 떡을 만들면 도토리떡이 되고, 밀가루와 섞어서 도토리국수를 만들며, 꿀에 재어서는 도토리마식, 묵을 만들면 도토리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들 식품 중에서 단연코 인기있는 것은 도토리묵이다. 이 도토리묵은 열량이 아주 적으므로 비만증에 좋은 건강식품이다. 요즘은 가공기술이 발달하여 전혀 떫은 맛이 나지 않은 도토리묵이 널리 보급되고 있다.
이밖에도 도토리는 다음과 같이 민간요법의 재료로 쓰인다. 치창출혈에는 도토리 가루, 찹쌀가루, 각 1되를 물에 개어 떡을 만든 다음 밥에 얹어서 쪄 먹는다. 비만증에는 식사대신 도토리묵을 수시로 먹는다. 설사에는 까서 말린 도토리를 분말하여 약처럼 복용한다. 도토리 알맹이를 쪄서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장이 튼튼해지고 설사를 다스린다고 한다. 또 어린 도토리는 피를 잘 돌게 하여 소변을 이롭게 하며, 치질을 다스리고 하혈을 멈추게 한다. 도토리나무의 껍질을 달여먹으면 충과 대하증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다.
이것이 토종
우리 나라 산간지방 어디를 가더라도 도토리는 흔하게 구할 수 있지만 강원도 철원은 특히 도토리가 많이 나는 곳이다. 우리나라산 도토리는 알이 동그랗고 같은 부피라도 속이 꽉 차 있어서 무게가 훨씬 더 나간다. 또한 색깔은 옅은 검회색으로 선명하며 윤기가 있다. 그리고 맛을 보면 도토리 고유의 냄새와 떫은맛이 강하다. 반면 외국산은 대체로 알이 길쭉하고 색깔이 검은 편이며 오랫동안 보관하는 도중에 퇴색이 되어 선명한 빛이 나지 않는다. 또한 도토리 고유의 떫은맛과 향기가 덜하고 이상한 약품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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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국사/세계사/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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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사회, 문화생활 이야기) - 한국역사연구회
고려인들은 어떤 의료혜택을 받았나 - 김미엽(성신여대 박사과정)
사람 살리던 이름난 약손
당시 국가간의 교류는 의학서와 의사 양성의 경우도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유명한 의사도 많이 들어 왔다. 이들 외국인 의사들은 주로 왕실 치료와 의술 교육을 담당하였다. 문종 때 마세안이라는 송나라 의사는 두 차례에 걸쳐 고려를 방문하여 의술을 가르쳤다. 한편 1279년 (충렬왕 5)에는 원나라 세조가 연덕신이라는 의사를 보냈다. 그는 특히 방중술에 뛰어나 고려왕의 총애를 받았다. 연덕신은 양기를 보완하는 환약을 조제하여 왕으로 하여금 복용케 하였는데 고려의 관리 오윤부라는 사람은 이 약이 왕의 몸에 좋지 못하여 자손을 번성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분통히 여겼다. 결국 공주가 해마다 태기가 있었으나 왕이 연덕신이 지은 환약을 복용함으로 인해 17년간 임신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중국의 의사가 고려와 왔을 뿐 아니라 고려인으로 중국에 가서 이름을 빛낸 자도 있었다. 원 간섭기에 활약하였던 설경성은 경주사람으로 설총의 후예임을 자처하면서 통일신라 전통 의술을 익혀 대대로 의술을 업으로 삼았다. 그는 상약국의 의원으로 발탁되어 충렬왕의 병을 고쳤고 이후 충렬왕의 주치의가 되었다. 그런데 원나라 세조가 병이 나서 고려에 의원을 구하다 충렬왕의 비인 안평공주가 그를 원나라에 보냈다. 설경성은 원세조를 위해 약을 조제하였고 그 약이 효험을 보자 원나라에서는 그를 궁중에 머물게 하였다. 2년이 지나 그가 고려로 돌아가려 하자 원세조는 그를 만류하였고, 결국 가족을 데리고 원으로 돌아오도록 당부하면서 보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원나라로 돌아가지 않았다. 뒤에 원나라 성종이 병이 들자 다시 원나라에 들어가 그를 치료하였다. 그는 키가 크고 풍채가 아름다웠으며 성품이 곧고 후덕하였다. 비록 원나라 황제와 고려 왕에게 신임을 받았으나 자손을 위해 은혜를 구하지 않았으며, 원나라 공주가 고려출신의 비를 모함하자 원 황실에서 간여하여 그로 하여금 이 일에 참여하게 하였으나 잘못된 사실을 밝히고 오직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였다고 한다.
일반 백성을 위해 의술을 베푼 사람으로서는 채홍철과 배덕표를 들 수 있다. 채홍철은 충렬왕 때에 과거에 합격하였는데 일찍 이 집 북쪽에 전단원이라는 집을 짓고 승려를 두어 약을 조제하여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게 하였다.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받고는 그곳을 ‘사람을 살리는 집’이라 불렀다고 한다. 공민왕 때의 배덕표는 관직에서 물러나 김해에 작은 집을 짓고 살았다. 그는 약초를 캐어 정성껏 조제하여 동네에서 병자가 생기면 곧 치료해 주고,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면 자신의 곡식을 나누어 주었으며, 백성들이 곤란한 일을 당하면 관청에 가서 구원하여 주었다. 그 자신도 병이 있어서 항상 지황을 이용해서 치료하였고, 이 지황을 뜰 안에 길렀으므로 아호를 황정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환자를 치료하고 도운 배덕표, 그는 바로 고려의 백성을 돌본 슈바이처이며 고려를 지킨 의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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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사회/문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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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문화의 이해 - 공일주
2. 인간의 신에 대한 관계
여섯 가지 믿음
쿠란에서는 죽음과 부활, 최후심판, 천국, 지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수라 3장 182절에서 죽음은 모든 인간의 몫이다. 인간이 죽을 시간이 다가올 때 아즈라필 죽음의 천사는 그의 조력자와 함께 나타난다. 이들은 영을 목구멍에까지 끌어내어 독이 있는 창으로 꿰뚫을 때 몸에서 완전히 분리된다. 그리고 나서 아즈라필이 그 영을 쥐어잡는다(수라 31장 11절 참조). 매장된 직후 두 천사가 무슬림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 그의 무덤을 방문한다. 이들 천사들을 문카르 천사, 나키르 천사라 부른다. 이들은 죽은 자의 믿음을 알라의 유일성과 무함마드의 신적 사명에 비추어 조사한다. 무함마드는 죽어서 육체는 이 땅에 남지만 일부는 썩지 않고 마지막 때까지 남아 있다고 가르쳤다. 알라의 뜻에 따라 마지막 날에 새로운 육체가 창조된다. 아까 말한 썩지 않은 부분이 씨가 되어 재생하게 된다. 부활이 이루어지는 정확한 때는 아무도 모른다. 부활의 시기는 알라만이 안다. 그 날이 오면 별들이 빛을 잃고 하늘이 쪼개지며 산들이 먼지가 되어 날린다(수라 77장 7절에서 10절). 그러나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이 다가옴은 이보다 앞에 오는 징표로 알 수도 있다. 이들 징표는 큰 징표와 작은 징표로 나뉜다. 그 때가 바로 다가온다는 징표로 나팔(트럼펫)을 부는 것이다. 첫 나팔소리를 불면 모든 피조물은 공포와 두려움에 떤다. 알라가 원하는 자를 제외하고 하늘과 땅이 있는 자가 의식을 잃는다. 이렇게 한 차례 분 다음에 두 번째 나팔소리가 들린다. 그 때 알라가 이런 운명에서 제외된 피조물을 빼고는 모든 피조물은 천국과 지상에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이미 말한 첫 나팔소리와 두 번째 나팔소리의 중간 시기, 즉 무감각해지고 죽음이 계속되는 중간기 속에 머문다. 몽고메리와트는 알 바르자크를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이라 하였다. 이 중간기에 알라는 알라의 보좌 아래에 있는 물에서 지급되는 비나 이슬을 만들어 지상에 보낸다. 이것을 생명의 물이라 한다. 지상에 내려와 12피트 깊이로 들어간다. 이 물의 효력과 가치로 인해 죽은 육체가 어머니 자궁에서 나온 것처럼 무덤에서 솟아나온다. 비로 인해 옥수수 싹이 나오고 그것이 완전해질 때까지 자란다. 부활의 나팔소리가 난 직후에 인간의 혼은 그들의 육체를 수리한다. 모든 육체는 심판을 위한 장소로 가기 전에 수선된다. 열로 인해 그리고 사람들의 혼잡으로 인해 풍부한 땀이 땀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 모든 곳이 잠길 정도로 깊은 땀바다를 이룬다. 그리고 나서 무덤에서 일어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알라가 구름 속에서 나타나는데 천사들이 호위한다. 이 심판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1) 알라 앞에 등단, (2) 회계 장부를 가져옴, (3) 심문(질의), (4) 회계(계산), (5) 저울에 단다. 위와 같은 순서에 따라 심판한다. 하디스에 따르면 부활의 날에 일어나는 최초의 사람은 무함마드라한다. 그리고 알라 옥좌의 오른쪽에 선다. 그리고 나서 모든 다른 예언자들이 그의 깃발 아래에 정열한다. 되살아난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인해 아담에게 보호처를 희망하나 아담은 거절한다. 그래서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예수에게로 가난 마침내 마함마드가 중재의 일을 맡는다. 결국 모든 피조물은 질의를 받고 회계를 받은 다음에 쿠란 제101장 6∼8절에서 말한 것처럼 그가 행한 선과 악을 저울에 단다. 지옥으로 가는 길 위에 다리가 놓여져 있는데,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나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사람 모두 이 다리 위를 통과해야 한다. 그 다리를 통과하면 한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은 알라의 보좌 밑에서 발원하는 카우사르강에서 온다고 한다.
이슬람에서 지옥은 벌과 고통이 있는 곳으로 예외 없이 믿는 자는 물론 안 믿는 자도 지옥에 들어가야 한다. 다만 믿는 자는 지옥의 열을 거의 느끼지 않을 것이며 재빨리 그 곳을 통과하게 된다. 그러나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는 그 곳에 영원히 남게 된다. 지옥은 일곱 개의 층으로 되어 있다.
1. 자한남:사악한 신자가 벌 받는 곳이다. 무슬림에게는 이 곳이 연옥이지만 그 곳에서 그들이 나온 후에는 무너질 것이다 2. 라자:유대교인이 가는 불타오르는 불길 3. 후따마:기독교인이 가는 강렬한 불길 4. 싸이르:사비교도가 가는 번쩍이는 불길 5. 싸까르:마기가 가는 곳 6. 자힘:우상 숭배자가 가는 곳 7. 하위야:가장 낮은 지옥으로 위선자들이 가는 곳으로 여기서 위선자란 외적으로 이슬람을 고백했으나 내적으로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를 말한다. 이슬람에서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아아라프라 불리는 일종의 칸막이 벽이 있다. 낙원에 들어가고 싶지만 낙원에 아직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이 칸막이 벽에서 쉰다. 이 곳에서 그들은 낙원과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 다리를 안전하게 건너 그 연못에서 원기를 회복한 의로운 자는 마침내 낙원에 들어가고, 천국동산에서 영적, 글고 육체적인 모든 종류의 기쁨을 즐긴다. 쿠란은 이 기쁨을 자세히 표현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천국의 기쁨이란 온전히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뿐만 아니라 영적 즐거움도 포함된다. “선행을 행하는 자들에게 보상이 주어지고 알라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더해지리라. 그들의 얼굴에는 어두움이나 추함이 없고 그들이 천국의 주인이며 그 곳에서 영생하리라. ” 무함마드는 ‘너희가 달을 보듯이 알라를 보리라. ’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이 죽은 후 의인의 영은 낙원으로, 악인의 영은 음부로 가서 부활을 기다리다가 부활 후에는 의인의 영은 영화된 육과 합하여 천국으로 옮겨지고 악인의 영들은 부활하여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낙원의 영들은 이미 내세의 즐거움을, 그리고 음부의 영들은 이미 고통을 겪고 있다. 아마 낙원은 천국의, 음부는 지옥의 일부일 것이다. 이슬람에 있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연옥이라는 장소는 성경에 없다. 낙원은 신약에서 의인들이 최후심판 때까지 기거하는 곳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는 ‘인간의 육신은 사망한 후에 흙으로 돌아가서 썩으나, 죽지도 아니하고 잠 자지도 아니하는 그들의 영혼은 즉시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그 때에 의인의 영혼은 거룩함 중에서 온전하여지고 지극히 높은 천국에 영접되어서 그 곳에서 빛과 영광 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게 되고, 저들의 육신도 온전히 구속될 날을 기다린다. 그러나 악인의 영혼은 음부에 던져지고 그 곳에서 고통을 당하게 되고 지극히 어두운 상태에서 지내게 되며 대심판의 날을 기다리게 된다. ’고 하였다. 이슬람에서는 무슬림이든 비무슬림이든 모두 지옥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과 무의식의 중간기가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다르다. 이슬람에서 구원의 개념은 아랍어 falah에서 찾는다. 구원이 움마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이다. 무함마드 알리가 쓴 「이슬람 종교」라는 책에는 목차에 아예 구원이란 항목이 없다.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을 가능하게 하신 방법은 자신의 죽음과 성령을 주심, 그리고 그의 교회를 세우심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이슬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없다. 예수의 죽음은 죄의 참된 성격을 계시해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랑을 계시해 주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죄인을 화해시키며 세상을 하나님 발 아래로 인도해 주신다. 이집트 무슬림들은 구원에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는 이 세상에서 일생 동안에 일어나는 구원이요, 또다른 하나는 다가올 내세에 일어나는 구원이다. 이 세상에서의 구원은 압박과 불의, 고난으로부터의 해방이고, 내세의 구원은 미래의 희망일 뿐 무슬림 어느 누구도 알라가 그를 천국 또는 지옥으로 정해 두었는지 확실히 잘 모른다. 무슬림이 구원을 얻는 방법으로 알라를 믿고 무함마드를 알라의 마지막 사자로 믿으며 이슬람의 다섯 기둥에 따라 선행을 베풀고 알라가 정한 명에 따라 진정한 공동체의 건설에 의해서 성취된다. 그러나 어느 무슬림도 그의 죄가 용서받을 지, 그리고 죄의 결과로부터 사함을 받을지 올바른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따라서, 쿠란을 읽고서도 무슬림은 죽음과 심판의 두려움으로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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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수필/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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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달걀 꾸러미에 반하다.
교직에 몸을 담고 있는 나는 첫 아이를 낳은 뒤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결혼 적령기에 있던 여동생이 직장 생활이 힘들어 잠시 쉴까 했는데 잘됐다며 자신이 하겠다고 제안해 왔다. 고마운 마음이 앞섰지만 선뜻 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생은 기꺼이 하겠다고 나섰다. 그 뒤 동생은 아이를 돌보면서 주말이면 시골에 가 부모님 일도 거들어 드리고 사이사이 짬을 내 맞선도 보면서 지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시골에 다니러 갔던 동생이 일요일에 선을 보고 올라왔다. 동생의 얼굴이 환한 걸 보니 일이 잘된 것 같았다. 웬 달걀이냐는 내 물음에 동생은 시골집에서 어머니가 기르는 토종닭이 낳은 거라며 언니 생각해서 가져왔다고 대답했다. 고마운 생각보다는 선보는 자리에서 달걀을 어떻게 했는지가 더 궁금해 졌다. 설마 거추장스럽게 거기까지 가져가진 않았겠지 하고 다기 물었는데 동생의 대답은 당당하기만 했다. "언니야, 달걀 꾸러미 들고 선보러 가면 왜 안되노?" 동생은 선보는 자리에 그 달걀 꾸러미를 들고 나갔던 것이다. 그 후 동생은 그날 저녁 선본 사람과 몇 차례 더 만나더니 결국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나중에 나는 제부에게 선보던 그 날 촌스러웠던 내 동생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살짝 물었다. 그랬더니 제부의 대답은 더욱 걸작이었다. "몇 번 선을 보았지만 언니에게 줄 달걀을 들고 선보고 나온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릅답고 사랑스럽게 보였는데요. 찻집에서 나올 때는 제가 그 달걀 꾸러미를 들고 나왔습니다." 제부는 애물단지 달걀 꾸러미를 액세서리 보석처럼 예쁘게 봐 준 것이다.
임미영 님/충남 홍성군 광천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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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철학사 100장면 - 김형석
35 - 신에게 이르는 정신의 여행: 4대 스콜라 철학자 13--14세기
중세의 교황상. 왼손의 복음서와 오른손의 지팡이는 사람을 인도하는 사목자와 교의를 통괄하는 자로서의 교황을 상징한다. 스콜라 철학은 교황의 권력확대와 함께 교단, 대학이 설립되면서, 기독교의 교의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
그때 세계에서는 1215년: 영국, 마그나 카르타 대헌장 1347년: 유럽에 페스트 창권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독교는 유일한 종교로 남게 되고, 교황의 세력은 제왕의 영역에까지 넘나들게 된다. 그 위에 먼저 말한 대로 교단이 생기고 대학이 설립되며, 알려지지 못하고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재유입되면서 사회적 분위기는 학문을 위한 준비를 서서히 갖추게 된다. 이때 소위4대 스콜라 철학자가 등단하게 된다. 아마 그 처음 사람은 프란체스코 교단에 속하는 헤일즈(Hales)의 알렉산더 (Alexander, 1245년 파리에서 죽음) 라고 보아야 하였다. 물론 이름으로 보아 영국인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완전히 교회철학으로 도입시켰다. 이미 얼마전부터 플라톤의 철학은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하였고, 아우구스티누스만이 대표적인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때였다. 알렉산더로부터 몇 가지 스콜라 철학의 성격이 자리잡히게 된다. 그 첫째는 소위 범론이라고 해서 많은 저서를 써야 대표적인 학자로 인정받는 습관이었다. 사람들이 말의 키보다 높은 저술을 남겼다든지, 말의 무게보다 더한 책을 남겼다고 말하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취급하지 않는 문제가 없이 신학과 철학의 모든 문제에 언급해야 한다는 조건이 뒤따랐다. 또 서술의 방법에도 공통성이 주어졌다. 1. 신학 및 철학적인 문제가 제시된다. 2. 그에 대한 가능한 긍정 또는 부정적인 대답이 전승 즉 성서 또는 유명한 교부들의 말 에서 제시된다. 아니면 이성 고대, 아라비아, 유대철학자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에서 인용된다. 3. 그리고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는 결론을 내린다. 결론이 어려운 때는 해답을 보류하거나, 모순되는 두 명제에 사용되는 개념이 동일할 때는 그 의미를 정리, 구별해둔다. 개념구별을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1. 성 교리는 가능한가 2. 성경에 이런 말이 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와 반대로 안셀무스는 이렇게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3. 그러나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고 마테복음테에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는 식의 서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콜라 학자들은 많이 알아야 하고 광범위하게 해답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알렉산더는 4권의 저서 속에 440개 이상의 문제를 취급해 주었고, 그 속에는 창조주,창조(창세기의), 구원주와 구원사업, 교회가 사용하는 구원수단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성경 이외에는 아리스토탤레스와 아우구스티누스로 되어 있다.
이런 저작의 셩격은 스콜라의 정형적인 것이 되어 토마스 아퀴니스까지 이어 지게 된다. 그러나 위대한 4대 스콜라 철학자중에서도 가장 개성이 강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신비주의자인 보나벤투라(Bonaventura,1221--1274)라고 보아 좋을 것이다. 프란체스코 교단의 총재이기도 했던 그는 대표적인 저서로 "신에게 이르는 정신의 여행" 을 남겼는데, 프란체스코 교단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인식에는 4단계가 있다고 보았다. 1) 낮은 차원의 빛에 속하는 5관. 2) 기계적인 여러 기술에 속하는 것, 외적인 빛에 따른다. 3) 철학, 내적인 빛에 속하는 것. 4) 신적인 조명, 위로부터의 빛에 따르는 것으로 구별해 계시와 신학의 위치로 보았다. 그는 신학의 정신은 신으로 가는 길을 찿는 것이며, 거기에는 세 단계의 신학이 있다고 보았다. 상징신학(Theologia Symbolica) - 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진 피조 자연에서 신을 보는것. 고유신학(Theologia Mystica) - 신의 모습인 우리들의 영혼 안에서 신을 보는 것. 신비신학(Theologia Mystica) - 신을 직접 체험, 인식하는 것. 이상의 세 단계의 신학설이다. 그를 신비주의 철학자로 보는 것은 "참다운 신의 인식은 신과 동화되는 단계" 라고까지 이끌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천사과 같은 학자라는 평을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세상 학문에 있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유일한 최고의 철학자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그 시대의 신비주의자이면서도 감관, 구상력, 오성과 이성, 지성, 예지, 최상의 정신 등을 얘기해 최고의 인식은 신비로운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은 프란체스코 교단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이에 대조되는 도미니크 교단에 속하는 학자들이 더 인정을 받는 것은 그들은 신앙생활보다도 학문연구에 더 뜻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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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도움 → 우리말어원 |
'낮다'의 어간 '낮'에 '-브다'가 붙어 생긴말 --> 나쁘다
'좋다'에 대립어로 쓰고 있는 '나쁘다'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어디 어림짐작이라도 해 보시지요? 아마 생각이 나지 않으실 겁니다. 왜냐 하면 옛날의 형태에 비해 너무 많이 변했거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나쁘다'는 '높다'의 대립어인 '낮다'의 어간 '낮'에 접미사인 '-브다'가 붙어서 생긴 말입니다. 그러니까 '낮 + 브다'가 '낫브다'로 쓰이다가 이것이 '낫'의 '시옷' 때문에 '비읍'이 된소리가 되어서 '나쁘다'가 된 것입니다.
원래의 뜻은 '부족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좋지 않다'는 뜻으로 변화한 것은 18세기 이후입니다. 17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부족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었지요. 그래서 '잠이 낫브다, 옷 과 밥이 낫브다' 등으로 쓰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접미사 '-브다'가 붙어서 된 단어가 여럿 있습니다. '예쁘다, '예쁘다, 바쁘다, 가쁘다, 어여쁘다, 누우쁘다, 기쁘다, 미쁘다'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홍 윤 표 (단국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이 태 영 [전북대 국문과 교수, 국어정보학회 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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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사회/문화/인물 |
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 - 역사 속으로 찾아가는 죽음 기행 : 맹란자
제1장 죽기가 힘들었던 사람들
무서운 전염병처럼 사라진 네로
인류역사상 최악의 폭군으로 기록되는 네로는 황제이기보다는 시인이고 싶어했다. 그는 팔리티네궁에서 자신이 지운 노래를 직접 시연해 보이며 곧잘 도취에 빠지곤 했는데, 죽음이 임박해 왔을때도 무엇인가 괜찮은 시구를 생각해 내어 오래오래 후세에까지 남기고 싶어했다. 그가 지은 <키프로스의 사람> <헤쿠바의 슬픔>은 그런대로 괸찮다는 평판이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소견머리 없고 때론 즉흥적이며 충동적이었다. 기분 나는대로 정책을 바꾸고, 그 자리에서 신하를 처결하였으며 로마를 불태우고 생모 아그릿빠나를 피살시켰다. 신망 높은 이복형 부리탠니커스를 독살시키고, 심지어는 자기의 처 옥타비아까지 동맥을 끊게 한 다음 더운 물김으로 질식시켜 죽였다. 폭정에 견디다 못한 로마군대가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이 파죽지세로 몰려왔다. 갈바를 황제로 추대했다는 급보가 왕궁으로 전해졌다. 네로는 자기가 죽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자기를 묻을 무덤을 파라고 명령한다. 그는 자기의 몸에 꼭 알맞게 파라고 흙 위에 드러눕기까지 하였다. 곡괭이질로 흙이 튈 때마다 그는 무서운 공포에 사로잡혔다.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비극 배우처럼 음조를 띄우면서 아!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이란 이런것인가! 하고 부르짓기도 했다. 불태워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때 로마에서 사자가 달려왔다. 원로원이 네로를 살친자로 판정하고 고식에 따라 처벌하기로 했음을 알린다. 고식이라니 나를 어떻게 한다는 것이냐? 네로는 새파래진 입술을 벌벌떨면서 물었다. 당신의 몸을 세가닥으로 된 창에 올려놓고 죽을 때까지 매질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고나면 그 시체를 티베르 강에다 집어넣는 것입니다. 이젠 나도 죽어야 하나 보다. 아. 아!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이란 이런 것인가?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또 한번 되풀이했다. 그때 밖에서 말굽 소리가 났다. 백인 대장이 네로의 목을 가지러 온 것이었다. 자 빨리빨리 하시죠. 옆에 있던 시종이 서둘렀다. 네로는 단도를 꺼내 떨리는 손으로 자기의 목을 찔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손으로 자기의 목을 찌를만한 용기가 없었다. 폐하. 사시는 동안은 그렇지 못했으나 돌아가실 때만이라고 제왕답게 죽으십시오.
영화 쿼바디스 에서는 네로를 도와 단도를 눌러준 사람이 액태였지만 사실은 에파프로디테라는 종이었다. 단도는 깊숙이 그 자루까지 목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튀어나온 네로의 두 눈은 커다랗고 원망과 공포로 가득찬 눈알맹이였다고 <쿼바디스>에 적혀 있다. 엄지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엎어, 쉽게 살인을 결정하던 그도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유약한 비겁자였다. 다음날 끝까지 남편에게 충실한 액태는 네로의 시체를 값진 보자기에 싸가지고 향유에 적신 장작으로 화장을 했다. 이리하여 네로는 폭풍처럼, 선풍처럼, 화재처럼, 전쟁처럼, 그리고 무서운 전염병처럼 사라져 없어졌다. 센키비쯔가 쓴 소설 <쿼바디스>의 결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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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구비 |
- 설화를 연재하려고 하는데 책들이 많아 참조하여 하나의 문서로 만들고 있습니다. 만들어지는 대로 이어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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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터 → 이글저글 |
수 많은 노인들이 생일을 바로 앞둔 달보다는 생일이 지난 뒤의 달에 더 많이 사망한것으로 알려졌다.
마을로 들어가는 언덕 길목에 한 사형 집행인이 서서 모든 행인들을 검문하고 있다. 오는 사람마다 어디로 가는지 물어서 진실을 말하는 자는 그대로 마을로 들여 보내고 거짓말하는 자는 교수형에 처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남자가 대답하기를 “나는 여기 와서 당신에게 사형당하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 대답은 사형 집행인에게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사형에 처해서는 안되고, 또 이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식욕을 돋구는 색은 오렌지색이다. 식당에서 오렌지색을 쓰면 주문이 더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저는 17세에 코네리아와 결혼했으나 41세에 다시 칼푸니아와 재혼하였다. 하지만 곧 이혼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가 지나가는 젊은 청년이 그녀를 음탕한 눈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이라 한다.
이디오피아인들의 조상은 솔로몬왕과 시바의 여왕이 불륜의 사랑을 불태운 끝에 낳은 아들 ‘메니릭’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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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사진 → 꽃/식물(접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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