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문화의 이해 - 공일주
1. 신의 인간에 대한 관계
이슬람법의 원천
이슬람법의 원천으로는 쿠란, 하디스, 이즈마아, 끼야스를 든다.
1. 쿠란
쿠란은 법전이 아니다. 전체 6219절에서 법을 다룬 것은 단지600개의 구절뿐이다. 이 구절들은 후기 메디나 수라에 들어 있다. 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는 죄는 단지 6가지였다. 이런 처벌법을 형법이라 하는데 6가지란 불법적인 성관계, 간음에 대한 거짓고소, 절도, 술취함, 노상강도 그리고 배교였다. 쿠란 24장 2절 ‘간통한 남자와 여자에게는 100대의 가죽 태형이라.’ 24장 4절 ‘순결한 여성을 중살하는 자가 4명의 증인을 내세우지 못하면 80대의 가죽 태형이라.’ 쿠란은 법의 문제를 자세히 다루지 있지 않다. 법 용어에 대한 정의나 법을 어겼을 때에 처벌에 대한 안급도 없다. 가령 고리대금(Riba, 리바)은 쿠란 2장 275절에 금지되었는데, 고리대금에 관한 정의나 그것을 행했을 때의 결과에 대한 언급도 없다. 쿠란의 계시는 포괄적인 법조문이 아니고 무함마드와 관련된 사건의 처리도 담고 있다. 가령 쿠란 24장 4절에 나오는 중상의 내용은 한 여인의 명예훼손과 관련되어 있다. 이 법은 무함마드의 부인 아이샤가 자기 장식품을 잃어버려 주둔지 주변을 배회하다 일행과 떨어져 혼자 남게 되었다. 그러자 어느 젊은 병사가 이 아리따운 아이샤를 메디나까지 데려다 주었고 , 이 일로 인해 무함마드 주변 사람들이 정결치 못하다고 쑥덕거렸다. 이에 화가 난 무함마드는 계시를 원했다. 그래서 내린 계시가 수라 24장 11절인데, 여기서 아이샤의 결백이 계시되었다. ‘실로 이런 중상을 퍼뜨린 무리가 너희 가운데 있었으나, 그것을 너희에 대한 죄악으로 생각하지 말고 너희를 위한 선으로 생각하라’. 이에 대해 무슬림 쿠란 해설가들은 아이샤의 중상모략은 오히려 순결한 여성을 보호하는 법이 계시되고, 아이샤의 순결이 증명 되었으며, 이것이 모든 신앙인에게 교훈이 되고 중상모략하는 자에게는 벌이 내려진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다른 이야기가 있다. 무함마드는 그의 입양아들 자이드의 아내 자이납과 결혼하고 싶어했다. 이것 역시 알라가 허락하셨다는 쿠란계시가 있는데, 그것이 수라 33장 37절이다. ‘자이드가 그녀와 결혼생활을 끝냈을 때 알라는 필요한 절차에 따라 그녀를 너의 아내로 하였으니, 이는 양자들이 아내와 이혼했을 때 믿는 사람들이 장래에 여자들과 결혼함에 있어 어려움이 없도록 함이니.’ 자이드의 이슬람 초창기에 이슬람에 귀의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함마드의 종으로 있다가 자유의 몸이 되었으며, 무함마드가 조카딸 자이납과 결혼시켜 주었다. 자이드는 630년 자이납과 결혼하였으나 행복하지 못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자이남은 하인출신의 자이드를 멸시하였다. 자이납은 무하마드의 가까운 친적이었고, 혼인 때에는 훌륭한 결혼선물도 받았다. 자이드와 자이납이 이혼하자 얼마되지 않아 무함마드가 자이납과 혼인하였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험담하자 33장40절을 알라가 계시하였다. ‘무함마드는 너희 가운데 어느 한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며 알라의 사자이자 최후의 예언자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슬람에서 입양은 금지되었다.
2. 하디스(전승, 무하마드 언행록)
순나는 어의적으로 ‘하나의 길, 규범 또는 생활의 양식, 행위의 범정’을 뜻해 무함마드의 삶 동안에 행해진 종교적인 관행을 뜻한다. 하디스는 이야기를 들어서 또는 입을 통하여 사람에게 전달된 말을 뜻하며, 어의적으로는 ‘뉴스, 이야기, 현재와 과거 사건의 기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부 책자는 하디스를 짓다( Jiddah: 새 것) 의 뜻으로 풀이하여 까딤(Qadim:옛 것) 과 대조되는 의미로 써서 까딤은 쿠란을, 하디스는 무함마드의 언행을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하디스와 순나는 같은 의미로 자주 쓰게 되었고, 하디스 종류도 다음과 같이 셋으로 구분지었다. (1) 까울(Qawl: 무함마드의 말) , (2) 피울(Fil: 무함마드의 관행), (3) 타크리르(Taqril: 무함마드가 타인의 행위나 관습에 대해 인정했던 묵인) 등이 그것이다. 하디스는 이쓰나드의 마튼으로 구성되는데 이쓰나드는 ‘역사적 입증’ 으로 그 뜻은 ‘정통적 계보 연쇄’를, 마튼은 원문을 의미한다. 이는 하디스를 전언한 하디스 전언자(Muhaddithin)에 대한 내용을 연쇄적으로 써 놓은 것이어서 이븐 구타이바는 ‘이슬람처럼 역사적 입증을 해 온 종교는 없다.’고 하였다. 다음에서 로 표시된 부문은 이쓰나드이고 의 부분은 마튼에 해당된다. (보기) - 아부 후라이라가 전하시길 : 무함마드가 말씀하시길 : 연소자는 연장자에게 인사드리고 보행자는 앉아 있는 이에게, 소수가 다수에게 먼저 인사한다. ^자비르께서 전하시길: 무함마드가 말씀하시길 : 왼손으로 먹지 말라 사단은 왼손으로 먹느니라. (참고) 무슬림은 악수, 먹는 일, 선물 주고받는 일, 남을 쓰다듬는 일은 오른손으로 하고, 화장실에서, 그리고 신발을 닦을 때와 코푸는 일은 왼손으로 한다. ^26^아부 후라이라가 전하시길: 무함마드가 말씀하시길: ^35^혀에 가벼운 두 문장이 있고 저울에 두 개의 무거운 문장에 있는 데 알라에게 사랑스런 두 개의 문장은(알라에게 감사한다)와 (지고하신 알라께 찬미한다)이다. 하다스는 크게 무티와티르(Mutawatir)와 아하드(ahad)로 나뉜다. 무타와티르는 여러 시대에 걸쳐 말은 사람들에 의해 전해진 하디스로서 거짓이나 잘못이 전혀 있을 수 없는 경우이며, 하디스 전달의 전통성에 의심이 없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연속적인’ 전언에 의해 무함마드 때부터 줄곧 이어져 내려와 아무도 비평없이 받아들인다. 이와 달리 아하드는 하나(ahad)의 복수로서 ‘고립되어 있다. ’는 뜻을 지닌다. 아하드는 전달자에 따라 마쉬후르(Mashhur), 아지즈(aziz), 가립(Gharib)으로 나뉘고, 전달계보에 따라 마그불(Maqbul), 마르두드(Mardud)로 나뉘며, 다시 마크불은 싸히흐(Sahih)와 하싼(Hasan)으로 나눈다. 마쉬후르는 세 사람 이상을 통해 전해진 하디스를, 아시즈는 두 사람을 통해 전해진 하디스를, 가립은 전언자들의 계보가 어떤 단계에 있어서는 단지 한 사람 밖에 없는 하디스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2명이상, 2명 미만 등의 조건은 무함마드의 교우들 이후의 제 3세대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전달계보에 관한 한 무타와티르는 모두 수락되나 아하드는 수락되는 것(마끄불)과 거절되는 것(마르두드)으로 나뉜다. 마끄불을 다시 싸히흐(온전하다)와 하싼(좋다)의 둘로 나뉜다. 싸이흐가 되려면 (1)아들(adl):전언자의 말과 결정이 모두에게 인정받고 그의 생각이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2)탐무 알 다브뜨(tamm al-Debt):하디스를 효과적으로 모든 전언자가 정확히 전달하여야 한다. (3) 무탐실 알 싸나드(muttasil al-Sanad):하디스 전달과정에서 틈이 없어야 한다. (4) 가이루 알 무알랄(ghayru al-Muallal):결점이 없어야 한다. 즉, 일반대중의 일반적 경향에서 벗어나 하디스 증거에 모순(Shadhdh)되어서는 안 된다. 하싼은 위의 (2)항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전언자의 결함)이며, 대다수 전언자가 그 결핍을 보완하면 싸이흐가 된다. 따라서, 하디스 중에 전언자들에게 약간의 결점이 있거나 전언과정에서 이상이 있다거나 하디스 주제가 쿠란과 모순되는 경우에 그 하디스는 수락되지 않는다. 이처럼 전달계보와 전언자의 이해와 전언 내용이 이슬함 교리와 위배되는 하디스를 ‘다이프(Daif)’라 불린다. 전언자의 전달과정에 따라 하디스를 분류하기도 하는데, (1)아무런 결점 없이 무함마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하디스(마르푸으,Marfu) (2)이쓰나드(전달체계)가 중단되지 않았을 때 (무탓씰,Muttasil) (3)두 전언자들 사이에 개인적 접촉 없이 말로만 연결되고 있을 때(마르쿠프,Marquf) (4) 무함마드의 이름이 중간에서 빠져 있을 때(무알라끄,muallaq) (5) 무함마드의 이름이 끝에서 빠져 있을때(무르쌀,Mursal) 이 밖에 뭇타파크 알라이히(Muttafaq alayhi)가 있는데, 이는 이맘 부카리와 이맘 무슬림이 수락한 것으로, 그들 각자의 하디스 모음집에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하디스이다.
무함마드의 말과 관습이 무함마드 생존시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달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또, 사람들은 무함마드에게 쿠란과 순나를 가르쳐 줄 교사들을 요청했다. 무함마드의 교우들은, 만일 쿠란에 직접적인 표현이 없을 경우 무함마드의 행위와 관습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순나는 무함마드 생존시 종교적 문제에 관한 지침서가 되었다. 무함마드의 사후,순나의 필요성을 느꼈으나 당시에는 무함마드의 행위와 말이 보존되지 않았다. 교우들이 무함마드 말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그들의 기억에 의존하였으며, 기록에 힘쓰지 않았으나 생존시부터 무함마드의 말과 행위는 무슬림들 행동의 지침서가 되었다. 아부 후라이라의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한 안사르(메디나에서 무함마드 일행을 도운 이들)가 자신의 기억력이 부족함을 불평했을 때 무함마드는 펜의 도움을 청하라고 대답했다 한다. 압둘라히 이분 아므르가 전하는 하디스에 의하면, “나는 무함마드에게서 들은 어떤 것이든 기록하였고 이를 기억하려고 힘썼다. ”이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에 관해 무함마드에게 물었더니 “기록하시오. 나는 오로지 진실만을 이아기할 따름이오. ”라고 하였다. 아부후라이라의 다른 하디스 구절에 보면 “교우들중 나 자신보다 더 나은 하디스를 보존한 사람은 없으나 압둘라히 이븐 아므르 만은 예외이다. 그는 내가 기록하지 못한 것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말이 일반적으로 기록되지 않고 암기에 의존하였던 것이 하디스 보존방법이었다. 그러다가 메카가 정복되는 즈음에 어느 무슬림의 요구에 따라 일부 하디스를 기록하도록 무함마드가 명하였다. 쿠란이 단순히 기록에 의해서만 보존되었다면 쿠란은 후세에 고스란히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무슬림들의 암기의 도움으로 쿠란원본의 순수성이 이중으로 보장되었던 것처럼 하디스도 암기에 의해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랍인은 다른 민족에게서 보기 힘든 훌륭한 암기력을 지녀 그들의 지식을 기억력에 의존하여 보존했다. 이슬람 이전의 아름다운 시가 생생하게 보존되었고, 수백 수천의 싯구가 암송되었던 것도 그들의 암기력에 의한 것이었다. 가령 야쓰마이의 말에 따르면그는 성년이 되기 전에 2만 개의 싯구를 암송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시는 아랍어 어휘와 문법의 밑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저명한 하디스 학자 부카리도 60만 개의 하디스를 암기하였다고 한다. 무함마드 시대의 여느 무슬림은 생업에 바빴으나 사원 안에 기거하면서 메디나 외곽부족들에게 종교교육을 맡고 있는 연구자 모임이 있었다. 이들 중에 아부 후라이라가 있었는데, 그는 무함마드와 동행하면서 무함마드의 말과 행동을 기억해 두고 처음부터 하디스 보존에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그는 훌륭한 암기력을 지녔고 모든 것을 암기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무함마드의 아내 아이샤도 무함마드의 하디스 보존에 기여했다. 그녀 역시 놀랄 만한 암기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명확한 이해력을 천부적으로 지녔다. 압둘라히 이븐 오마르와 압둘라히 이븐 압바스는 쿠란과 하디스의 보존과 전달에 힘썼고, 압둘라히 이븐 아므르는 무함마드의 말을 기록하곤 하였다. 또, 하디스(부카리)에는 무함마드와 동행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참석한 사람은 참석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하시오. ”라고 (부3장37절)하였다. 무함마드 사망과 더불어 하디스 수집은 제2단계에 들어선다. 하디스 연구를 촉진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교우들의 노력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이를 위해 가정을 포기하기도 했고, 생명을 바쳐 가면서도 알라의 위대한 축복이며 선물이었던 이 하디스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그들 삶의 가장 숭고한 목표이었기에 하디스 보급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무함마드를 직접 보았던 사람은 무함마드와 함께 있지 못했던 사람과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 하디스를 전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에 따라 이 의무를 실행하기 위해 동으로, 서로, 북으로 떠났던 것이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쿠란과 순나를 전했던 것이다. 그들이 살던 곳은 하디스를 보급하는 중심지가 되었고, 무함마드에 관한 지역과 종교에 대한 지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들었으며, 아부 후라이라는 800명의 제자를, 아이샤의 집에도 수백 명의 학생이 모여 하디스를 배웠다. 새로운 세대들의 종교에 대한 열망은 대단하여 순나에 대한 지식을 완성하고자 여러 곳을 여행했고, 한편의 하디스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장거리 여행도 불사하였다. 이로써 학문의 중심지에는 하디스 지식의 수립과 하디스를 보급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함마드를 보았거나 직접적으로 들었던 세대가 지남에 따라 하디스 수집은 제3단계에 들어섰다. 이제 더 이상 조사할 것도 없었으며, 하디스 전체가 여러 곳에서 선생들이 가르치는 자산이 되었다. 무함마드의 교우가 여러 곳에 퍼져 있었기 때문에 단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하디스에 관한 지식의 축적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제1단계는 개인에게 하디스를 배웠으나 제2단계는 개인에게서 대중의 자산으로 넘어가 개인보다는 여러 중심지에서 많은 학생이 하디스를 배우게 되었다. 이때 하디스 기록이 더욱 보편화되었는데, 그 까닭은 여러 중심지에서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자료를 가졌기에 전언자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울 때에는 이전자료의 도움을 얻었다. 이슬람력 1세기 말엽에 통치했던 우마위야 칼리파인 우마르 2세로 알려진 우마르 이븐 압들 아지즈는 하디스를 기록해야 한다는 결정적인 명령을 내렸던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메디나 지역 총독이었던 아부 바크르 이븐 하즘에게 “발견되는 무함마드에 관한 어떤 것이든 찾아서 기록하시오. 하디스 지식이 유실될까 두렵고 학자들이 사라질까 두렵기 때문이오. 그리고 백성들에게 이 하디스 지식을 전하시오. 지식이란 대중이 알고 있을 때 사라지지 않는 법이오. ”우마르 2세가 2년 반 집권 후 사망하였고, 다음 세대에서는 정부 후원하에 독립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제 4단계이다. 이슬람력 2세기 중반 이전에 하디스는 영구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고 기록된 하디스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여러 중심지에서 하디스를 공부했으나, 하디스 자체는 물론 하디스 전언자의 이름을 보존하기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하디스를 기록하고 수집하였던 내용을 저서로 집필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가령 이맘 압둘 말리크, 이븐 압둘 아지즈, 이븐 주라이즈와, 라비으 이븐 슈하이브 등이었다. 이맘 말리크의 하디스집인 ‘무왓따(Muwatta)'도 있었으나, 이들 저서도 하디스에 대한 철저한 기록에는 거리가 멀었다.
이슬람력 3세기 2가지 하디스 수집방법이 있었는데, 무스나드(Musnad)와 자미으(Jami)가 바로 그것이다. 무쓰나드는 초기에 시작되었는데 무스나드는 여러 사람의 전언자를 통하여 무함마드의 교우까지 그 하디스 계보를 추적한다는 뜻이다. 하디스 주제가 아니라 그 하디스가 정통성을 지니느냐의 여부가 되는 교우들의 이름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었다. 이맘 아흐마드 이븐 한발은 약 3만 가지의 기록을 지녀 이 수집된 것을 ‘함께 모아 둔 하나’라는 의미의 ‘자미으’, 즉 ‘함께 편집된 것 (무산나프,musannaf)이라 불렸으며, 하디스 지식을 완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자미으는 하디스 주제에 따라 하디스 지식을 정리했으나 어느 정도 비평도 뒤다랐다. 순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아흘 알 순나’라 하는데, 이들에 의해 공인된 6권의 책은 표제가 붙어 있어 무함마드 이븐 이스마일의 부카리 무슬림(261 A. H. ), 아부 다우드(275 A. H. ), 이븐 마자(283 A. H. ) 그리고 나싸이(303 A. H. )가 있다. 특히 아부 다우드와 이븐마자, 나싸이의 하디스는 쑤난(Sunan: 순나의 복수)으로 알려진다. 이로써 다양한 표제에 따라 분류된 이들의 저서는 하디스 학문연구에 근거가 되고 있다. 부카리는 주제별로 97권의 책에 이런 하디스를 7300개 수록했다.
하디스는 종교적 예식과 일상생활의 세부적인 사항을 실어 놓았다. 가령 하디스에서 ‘지하드’에 대해 말하기를 ‘지하드는 적을 격퇴시키기 위해, 혹은 반대하는 대상과 사우기 위해 힘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하드는 두 가지 중요한 의의가 있는데, 하나는 순전히 이슬람 포교활동을 위해, 둘째는 신앙의 방어를 위해 필요하면 물리적인 방법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또다른 하디스 예는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하디스인데 ‘이 세상의 모든 재산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은 정숙한 여인이다. 여성을 결혼상대로 택할 때 고려되는 것은 그녀의 돈, 출산, 미, 종교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독실한 여인을 아내로 맞으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손이 더럽혀지고 말 것이다. ’ 무슬람에게 하디스는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왜냐 하면 하디스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직접적인 안내를 주기 때문이다. 6권의 하디스집들은 ‘씨하흐 씻타(Sihah sittah : 권위 있는 정확한 6권, 믿을 만한 6권)’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첫째 번 위치를 차지하는 책이 ‘부카리’이며 둘째 번으로는 ‘무슬림’이다. 부카리가 첫째 번이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른 하디스집이 부카리의 기록방법을 따르는 점, 둘째, 그의 기록방법이 비평적이어서 전언자 모두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닐 때, 후자의 전언자가 전자의 전언자를 직접 만나지 않았을 때는 하디스로 수록하지 않았다는 점, 셋째, 그는 하디스 수집에 예리하고 총명하였다는 점, 넷째, 그의 하디스는 단지 쿠란을 설명하기 위한 이슬람의 가르침의 제2권으로 여겼다는 점을 든다. 하디스(Tradition)를 흔히 하디스(전통)으로 번역하는 책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말하는 하디스는 원래 ‘관습’이라는 듯에 근간을 두고서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점차 하디스의 의미가 무함마드의 말, 행동, 묵인했던 사항을 기록한 책으로 귀결되게 되었다. 따라서, 하디스는 ‘무함마드의 언행록’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하디스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분류되고 기록되었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았다. 쿠란은 무슬림들의 경전이지만 세세한 일상사의 문제는 잘 드러나 있지 않아서 무슬림들이 실제생활에 필요한 내용은 이 하디스를 많이 참조한다. 그리고 하디스가 어떻게 수집되어 왔는지를 살펴보았는데, 쿠란이 칼리파 오스만(644년에서 656년)때 한 곳에 모아진 반면에, 하디스는 히즈라 2세기 중반 이전, 즉 대략 770년 이전에 완성되었다고 본다. 처음에 구전으로 내려오던 무함마드의 하디스가 글로써 모아지자 하디스는 쿠란 다음으로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중세 때부터 이 하디스 내용 가운데 상당수에 대하여 그 신빙성 여부를 둘러싸고 의혹을 가졌으나, 무슬림들은 아직까지 부동의 권위를 하디스에 부여하고 있다. 쿠란과 하디스가 이슬함 율법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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