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 토정비결 - 전영순,하정화
<본초류>
22.호박 - 어디든 거침없이 뻗어가는 호박넝쿨
흔히들 못생긴 여자의 얼굴을 호박에 비교한다. 그리고 속된 표현으로 '호박씨 깐다'는 말이 있다. 그러고 보면 호박은 이상하게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긴 그 생김새가 박이나 수박에 비해 울퉁불퉁하여 조금 못생긴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호박씨에는 질이 아주 뛰어난 불포화지방과 머리를 좋게 한다는 레시틴, 그리고 필수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다. 따라서 '호박씨 깐다'는 말은 겉으로는 엉성하고 둔한 듯이 보이면서 뒤로 가서는 실속을 챙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실, 호박씨 뿐만 아니라 호박의 뿌리, 줄기, 덩굴손, 잎, 꼭지, 종자 등이 모두 약으로 쓰인다. 비록 울퉁불퉁하게 못생긴 호박이지만 그 영양분이나 약성이 뛰어나 예로부터 훌륭한 식품으로, 민간요법의 약재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던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호박을 상품 목적으로 대단위 재배를 하지만 예전에는 따로 밭을 내어 심지 않았다. 밭둑이나 논둑, 언덕배기, 담장 곁 어디든 놀고 있는 땅에다 심었다. 그러면 여기서 싹이 자란 호박넝쿨이 담장이든 초가지붕이든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죽죽 뻗어나간다. 이처럼 호박은 재배장소에 특별한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어디서든 널리 재배되었고 생활공간 속,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호박의 원산지는 남멕시코 및 중부 아메리카라는 설이 있었는데 이후에 북아메리카의 '콜로라도' 지역 원주민들의 유적에서 호박씨와 덩굴 등이 발견되어 이 지방이 원산지라는 설이 제기되었다. 한편 동인도, 혹은 유럽을 원산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서양계 호박 및 페포(pepo)계 호박은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이고, 동양계 호박은 동남아시아 열대지역으로 그 원산지를 추정하기도 하며, 근래는 동양계 호박도 그 원산지가 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략 1700년대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서양에서 육성된 품종이 유입되기 전에 이미 우리나라에는 호박과 비슷한 품종이 재배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테면 호박의 사촌쯤 되는 '박'같은 경우 고대 설화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특히 '흥부전'에서는 박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박을 재료로 한 '바가지'는 우리 역사와 생활풍습 속에서 숱한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이처럼 박이 오래 전부터 재배되어 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 유사종인 호박도 재래종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호박의 품종에는, 동양계로서는 서울 애호박이 있고, 서양계로서는 합바드, 델리셔스 등이 있다. 그리고 페포계로서는 주키니 호박이 있다. 또한 서양계로서 사료용으로 쓰이는 호박이 있는데 이것은 30∼40kg까지 자란다. 이러한 품종을 우리나라에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재배한다. 예를 들어 겨울에 파종하여 봄에 수확하는 촉성 및 반촉성 재배, 봄에 파종하여 초여름에 수확하는 조숙재배, 4월 하순에서 5월에 걸쳐 노지에 직파하여 6월에서 9월 사이에 수확하는 여름재배, 남부해안 및 제주지방에서 가능한 억제재배 등의 방법이 있다. 특히 억제재배에서는 덩굴이 뻗지 않는 주키니호박을 대부분 가꾼다. 이러한 재배방법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양의 호박이 생산되고 있는데, 매 년 4만여 톤(88년)이 넘게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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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
익은 호박에는 비타민 A가 많이 함유되어 있다. 대체로 수분 95%, 단백질 2.0%, 지방 0.6%, 탄수화물 3.9% 로 구성되어 있다. 무기질 및 비타민은 100g 당 칼슘 15mg, 철 0.7mg, 비타민 C 8mg이 들어있다.녹황색 야채는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 녹황색 야채에는 카로틴( 카로틴)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체내에 들어가면 비타민 A로 변한다. 또한 호박에는 칼륨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나트륨의 해를 방지한다. 칼륨 성분에는 혈압을 내리는 작용, 즉 고혈압을 방지하는 작용이 있다. 고혈압의 원인 중의 하나로 소금을 너무 많이 섭취하는 것을 들고 있는데 소금에 포함되어 있는 나트륨이라는 성분이 문제가 된다. 이 나트륨의 해를 방지하는 것이 바로 칼륨이다. 칼륨이 많으면 나트륨은 활동하기가 어렵게 된다. 또한 칼륨에는 나트륨의 배설을 촉진하는 작용도 있다. 이처럼 칼륨에는 고혈압을 예방, 개선하는 작용이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섭취하면 안된다. 그리고 호박에는 비타민 A. C. B군이 균형있게 함유되어 백내장, 야맹증 등 눈병을 예방한다. 뿐만 아니라 섬유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많은 양을 섭취해도 부작용이 거의 없다. 특히 섬유질은 변비 등으로 인한 대장암을 예방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쓰임새
어린 열매는 나물, 전 등의 음식으로 만들어 먹고, 늙은 열매는 과육을 떡, 범벅, 죽 등으로 만들어 먹는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호박잎을 쪄서 쌈으로 먹기도 하고 씨를 먹기도 한다. 호박은 저장이 용이하다. 애호박과 크고 늙은 호박 모두를 저장할 수 있다. 먼저 애호박은 될 수 있는 한 씨가 없고 가는 것을 골라 둥글납작하게 썰어서 채반에 펴서 말린 후 실에 꿰어 서늘한 곳에 매달아 두고 필요할 때 사용한다. 반면 늙은 호박은 씨를 파내고 껍질을 긁은 다음 길쭉하게 썰어서 말려놓고 쪄서 먹거나 호박떡에 이용한다. 예로부터 식용과 약용으로 널리 이용되어 온 호박은 특히 회복기의 환자나 위장이 약한 사람, 노인, 산모 등에게 좋은 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호박은 감기나 인후통에 효험이 있고, 불면증에도 호박을 삶아 먹으면 효과적이다. 또 회충, 조충의 구제약으로서 효과도 뛰어나며, 백일해, 단독, 일사병, 디프테리아 등에도 약으로 쓰인다. 호박을 상식하면 중풍 예방의 효과도 볼 수 있다. 독충에 물렸을 때에는 호박의 잎이나 꽃을 비벼서 환부에 붙이면 효과가 있다. 동상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생호박을 썰어, 그것으로 환부를 자주 문질러 주면 치료에 도움이 된다. {본초강목}에는 '호박은 속을 보하고 기를 늘린다'고 되어 있고, {경험방}에는 '천식에는 커다란 호박의 속을 파내고 그 속에 보리엿을 채운 다음 서늘한 곳에 한 달 가령 두었다가 쪄서 먹으면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박씨는 예로부터 중국에서 수박씨와 같이 고급요리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호박씨의 주성분은 지방산인데, 질이 좋은 불포화 지방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호박씨에는 머리를 좋게 해주는 레시틴과 간장의 작용을 돕는 메티오닌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칼륨, 칼슘, 인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 B군이 풍부한 고열량 식품이다. 전립선이 비대해져 오줌이 잘 나오지 않을 때에는 말린 호박씨를 볶아 먹으면 좋다. 상식하면 정력을 높인다. 이밖에도 호박씨는 촌충퇴치, 부종, 당뇨병 등에도 효과가 있다. 산후 수족의 부종에 호박씨를 볶아서 달여 마시면 좋고, 당뇨병과 조충 구제에도 효과가 있다. 또 호박씨는 콜레스테롤의 생성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이 되며, 혈압을 강하시켜 주는 작용도 한다. 호박은 각종 요리로 자주 식탁에 오르는데 몇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호박과 열무를 주재료로 하여 담근 김치를 호박김치라 한다. 이것은 황해도 향토음식의 하나로, 그대로 먹기보다는 된장을 조금 풀고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으면 좋다. 만드는 법은 늙거나 어리지 않은 중간 정도의 호박을 깨끗이 씻어 반달 모양으로 두껍게 썰고, 너무 연하거나 쇠지 않은 열무를 다듬어 깨끗이 씻는다. 이 호박과 열무를 켜켜이 절였다가 건져내어 단지에 담고, 남은 소금물로 밀가루풀을 쑤어 건더기가 위에 뜨지 않고 국물에 잠기도록 붓는다. 그렇게 약 5∼6일간 익혔다가 된장과 고추장을 조금 풀어서 끓이면 맛있는 호박김치찌개가 된다. 이때 고기를 넣으면 더욱 맛이 있다. 한편, 호박에 소를 넣어 익힌 찜을 호박선이라 한다. {시의전서}에는 호박선의 조리법이 나와 있다. 어리고 작은 호박을 택하여 쇠고기와 여러 가지 양념을 하고 표고버섯이나 석이버섯을 채썰어 섞는다. 호박 사이에 이 소를 넣고 데친 미나리로 동여맨다. 나머지 고기를 바닥에 깔고 호박을 놓은 위에 지단 채썬 것, 실고추, 실백을 고명으로 얹은 다음, 육수를 부어 끓인다. 주로 주안상의 안주로 쓰인다. 호박을 이용한 식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는 뭐니뭐니 해도 울릉도 호박엿이다. 원래는 후박나무의 수피를 첨가하여 만든 것인데 이 후박엿은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육지에 전래되면서 호박엿으로 와전된 것이다. 오늘날 시중에서 유통되는 울릉도 호박엿은 엿 중에서 맛과 품질이 좋은 엿을 칭하는 말로 바뀌고 말았다. 관광상품으로 울릉도에서 시판하는 호박엿은 울릉도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는 감자를 이용하여 만들고 있다. 물론, 호박에는 전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엿기름으로 삭혀서 엿을 만들 수 있다. 울릉도에서는 호박을 이용하여 엿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 성공한 바 있다. 이밖에도 호박을 이용한 요리와 식품으로는 호박지찌개, 호박풀대죽 등이 있다.
이것이 토종
오늘날 흔히 우리가 재래종으로 부르는 호박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품종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품종에 비해 재배 역사가 오래된 것을 고유의 재래 토종으로 육성할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각 품종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서양계 호박은 그 모양이 동양계와 비슷하여 구별이 곤란한데, 이 때는 줄기의 단면으로 구별한다. 서양계는 단면이 둥글고 동양계와 페포계는 5각형을 나타낸다. 특히 재래종 호박은 덩굴의 단면이 5각형이고 연모가 있으며 덩굴손으로 감으면서 자란다. 그러나 개량된 것은 덩굴성이 아닌 것도 있다. 또한 잎이 어긋나고 엽병이 길어 심장형 또는 신장형이고 가장자리가 5개로 얕게 갈라지며 열편에 톱니가 있다. 종자보존 차원에서는 이러한 품종의 특성을 고려하여 재래종을 새롭게 발굴, 육성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어디든 호박을 심고 가꿀 수 있지만 현재 많이 재배되는 곳으로는 경남 의령 지역을 꼽을 수 있다. 하수오와 함께 호박은 예로부터 이 지역의 특산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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