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 - A.J. 크로닌
제2부 기묘한 천직 - 3.(2/2)
프랜치스와 노라는 오후 두 시경에 집을 나섰다. 크라몬트의 교외에까지 철도 마차를 타고 거기서부터는 커다란 바구니를 둘이서 들고 고스포스쪽으로 조용한 시골길을 걸어갔다. 노라와 마지막으로 헤어진 지 4년이 되었다. 프랜치스는 점심을 먹는 동안 이상하게도 줄곧 혀가 굳어 버린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느 때와는 달리 네드만이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있었다. 단 둘이가 된 지금도 괴로우리만큼 부끄러울 뿐이었다. 기억 속의 노라는 아직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조금만 있으면 열 다섯 살이 되는 것이다. 짙은 감색 스커트에 블라우스 차림의 그녀는 완연히 어른이 되어 있었으며 전보다도 훨씬 어딘지 모르게 이해하기 어려운 데가 있었다. 손발이 자그마할 뿐만 아니라 얼굴도 작았다. 그 작고 민첩하고 도전적인 얼굴은 때에 따라서 대담하게 보이는가 싶으면, 갑자기 부끄러운 표정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키는 크지만 아직 어딘가 덜 성숙한 어색함이 있고 골격은 가냘프고 날씬했다.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그 푸른 눈빛에 투명한 흰 피부는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시원한 공기는 그 눈에 빛을 더해 주고 오뚝한 코언저리를 핑크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가끔 바구니를 맞잡은 노라의 손이 자기의 손에 닿을 때의 짜릿한 감정은 그가 아직껏 느껴 보지 못한 그런 것이었다. 그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똑바로 보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나 노라는 때때로 자기를 보고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황금색 단풍의 계절은 이미 지났으나 숲이나 높은 산은 아직도 빨갛게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프랜치스에게는 나무들이나 정원이나 높은 하늘색이 이다지도 신선하고 생기 있게 보인 적이 없었다. 자연은 그들에게 마치 노래라도 불러 주는 것 같았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웃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뛰어갔다. 바구니를 맞잡은 프랜치스도 덩달아 나란히 뛰었다. 이윽고 그녀가 멈춰서서 숨을 헐떡이며 아침에 햇빛을 받은 물방울처럼 영롱한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말했다.
"미안해, 프랜치스. 난 가끔 이렇게 참을 수 없도록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가 있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아마 학교에서 해방된 탓인지도 몰라."
"왜, 학교가 싫어?"
"으응, 너무 엄격해. 그렇지만 좋기도 해. 재미있기도 하고. 내 기분 이상하지?"
그리고 듣는 사람이 어안이 벙벙해질 것 같은 천진스러운 소리로 웃어댔다.
"그런데 말이지, 목욕탕에 들어갈 때도 잠옷을 입고 들어가야 해. 프랜치스, 다른 데 있을 때에도 줄곧 내 생각했어?"
"으응."
그는 목에 걸린 것 같은 소리로 말했다.
"난 기뻐......나도 역시 프랜치스를 생각했었어."
그녀는 얼른 그에게 시선을 던지며 뭐라고 말하려고 하다간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고스포스의 과수원에 닿았다. 네드의 친구인 과수원주인 쥬디 랭이 과수원의 한가운데서 낙엽을 태우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보자 반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리 와서 도와 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가지각색의 낙엽을 산더미처럼 긁어모아 불태웠다. 결국엔 연기에 그을린 냄새가 옷에까지 배어들었다. 그것은 노동이 아니라 근사한 스포츠였다. 처음엔 거북한 생각도 들었으나 그런 것은 이내 잊어 버리고 어느 사이에 누가 더 많이 긁어모으는가 두 사람은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자기 몫의 산을 만들고 있으면 노라가 장난으로 훔쳐 가 버린다. 두사람의 웃음소리가 맑고 차가운 공기를 뒤흔들어 놓았다. 쥬디 랭은 두 사람을 보며 호의에 찬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게 여자의 상투적인 수단이란다, 프랜치스. 네 더미에서 가져가고선 저렇게 좋아서 웃고 있는 걸 보라고."
그리고 랭은 과수원 끝에 있는 목조 창고로 가라고 손짓을 했다.
"자아, 일을 해주었으니 그 대가로 얼마든지 가져가거라."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었다. 그러자 랭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바논 아저씨에게 안부 말씀 전해 다오. 이번 주중에 한잔하러 갈테니까."
사과 창고에는 석양의 부드러운 빛이 비쳐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사닥다리를 타고 다락에 올라가니 거기에는 이 과수원을 유명하게 만든 립스톤 퍼핀종 사과가 서로 맞닿지 않게 가지런히 줄을 지어 짚을 깐 바닥에 가득히 놓여 있었다. 프랜치스가 낮은 지붕밑으로 기어들어가바구니를 채우고 있을 동안, 노라는 짚 위에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사과를 하나 골라서 옷에 쓱쓱 문질러 먹기 시작했다.
"야아, 정말 맛있네, 프랜치스도 먹어 봐, 응?"
프랜치스는 노라와 마주보고 앉아서 그녀가 내민 사과를 받았다. 참으로 맛이 좋았다 .그들은 먹으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작은 이빨이 사과를 베어물 때마다 사과 속살에서 사과즙이 튕겨 얼굴에 묻었다. 그도 이 좁고 어두운 다락에서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고,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따스함이 살아 있는 기쁨에 넘치고 있었다. 지금 이 과수원에서 그녀가 준 사과를 먹은 것 같은 그런 근사한 일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몇 번이나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 웃었다. 그러나 노라의 미소는 이해할 수 없는 어정쩡한 미소였다.
"씨도 먹어, 프랜치스?"
문득 노라가 놀렸으나 바로 덧붙여 말했다.
"안돼, 프랜치스! 마가렛 메리 선생이 씨를 먹으면 배가 아프다고 했어. 더구나 씨에서는 새로운 사과나무가 생긴대. 그런데 말야, 프랜치스......아저씨하고 아주머니를 좋아해?"
"그야 물론이지" 하고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넌?"
"나도 물론 그래......다만 아주머니는 내가 기침을 할 때마다 근심하시잖아......그리고 아저씨가 나를 무릎에 올려놓고 귀여워해 주시는 것-난 그것만은 참으로 싫어."
그녀는 그런 말을 하고선 약간 계면쩍어 했으나 마침내는 눈을 감아 버렸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마가렛 메리 선생이 나를 건방지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까?"
프랜치스는 난처하여 외면했다. 그럴 리가 있나, 하고 강력히 부정하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어색한 표정으로 "아, 아니" 하고 말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한 얼굴을 하고 미소지었다.
"아냐, 프랜치스. 우리는 친구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마가렛 메리 선생이 뭐라 해도 상관없어. 그건 그렇고 프랜치스, 장래 뭘 할 생각이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라 그는 노라를 바라보았다.
"난 아직 모르겠어. 왜 그러지?"
그녀는 갑자기 침착성을 잃고 자기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다만, 다만 말이지, 네가 좋아서 물어 본 거야. 난 훨씬 전부터 널 좋아한걸. 벌써 여러 해 동안 프랜치스의 일을 많이 생각했어. 그러니까 만일 어디로 가버리든가 하면 어쩌나 하고 생각한 거야."
"왜 내가 가 버리지?" 그는 웃었다.
"아직 몰랐어?" 그녀는 아직도 어린애다운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난 폴리 아주머니의 생각을 잘 알고 있어......오늘도 말하던걸. 너를 신부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까운 게 없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야 하잖아. 나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
프랜치스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는 몸을 일부러 말괄량이처럼 흔들면서 일어났다.
"자, 일어나자. 이런 데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 봐야 소용없어. 밖은 쨍쨍 해가 빛나고 오늘밤은 파티가 있잖아."
프랜치스가 따라 일어나려고 하자,
"가만있어. 잠깐만 눈을 감아. 좋은 것 선물할 테니까."
대답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느닷없이 덤벼들어 프랜치스의 볼에 살그머니 키스를 했다. 따스한 촉감과 그녀의 호흡과 볼에 작은 점이 있는 그 야윈 얼굴이 너무나도 느닷없이 다가왔기 때문에 프랜치스는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귓불까지 빨개져서 그녀는 갑자기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가 그대로 뛰어나갔다. 그도 역시 빨갛게 상기된 채 약간 젖은 볼에 상처라도 만지듯 손등을 가져다 대면서 천천히 뒤를 따라갔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그날 밤, 하로인 파티는 일곱 시에 시작되었다. 네드는 주인의 특권으로 주점을 여느 때보다 앞당겨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초대 손님 외의 손님들은 모두 나가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초대 손님들은 이층의 거실에 모였다. 거기에는 유리 상자에 든 납세공의 과실 모형, 파란 유리촛대 위의 파넬(19세기 말엽의 정치가이며, 아일랜드 자치당의 당수)의 초상화, 자이안트에서 촬영한 네드와 폴리의 사진, 킬라니(아일랜드 서남부에 있는 호수 유람지) 산물인 참나무로 만든 이륜마차 모형, 용설란 등이 장식되어 있었다. 니스칠한 떡갈나무 곤봉이 있고, 주저앉으면 먼지가 일 것 같은 육중한 팔걸이 의자가 놓여 있었다. 가운데에는 여자의 수정다리같은 다리가 달린 긴 마호가니 식탁이 있고, 그 위에는 벌써 20명분의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방안은 난롯불이 벌겋게 타올라 아프리카 탐험가도 꼼짝 못할 만큼 더웠다. 그리고 또 부엌에선 칠면조 구이의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얀 모자에 앞치마 차림의 매기마군은 몹시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혼잡한 방에는 젊은 크랜시 신부와 서디어스 길포일, 근처의 상점 주인이 몇 사람, 철도 마차 회사의 전무 오스틴 씨 부처와 그 세 자녀, 거기에는 물론 네드와 폴리, 그리고 노라와 프랜치스가 있었다. 수선스러운 가운데서 네드는 기쁜 얼굴을 하고 6펜스나 하는 여송연을 피우면서 길포일을 향하여 뭔가 자기 주장을 말하고 있었다. 서디어스 길포일은 얼굴색이 창백하고 가벼운 카타르에 걸린 것 같은 서른 살의 청년으로서 가스 회사의 사원인데-회사에 나가는 한편 바렐 가에 있는 네드의 임대 가옥의 집세를 징수한다던가, 성 도미니코 성당의 일도 돌보거나 하고 있었다. 짬짬이 하는 일을 시켜도 신뢰할 수 있는 착실한 사람이며, 싫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네드의 말을 빌리면 그것도 자진해서 그런 일을 맡고 나선다는 것이었다.-남을 반대하는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대신 자기의 주장 같은 것은 털끝만큼도 없으며, 그러면서도 자기가 부탁할 일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융통성이 없으나 신뢰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비위를 거슬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언제나 콧물을 훌쩍거리고 회사의 배지를 만지작거리거나 했다. 눈은 흐리멍텅했고, 발바닥이 마당발인 것이 흠이었으나 고지식하고 조심성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오늘밤엔 연설을 해주시겠지요?"
그런 그가 네드에게 묻고 있는 태도는 만일 네드가 연설을 하지 않으면 온 세계 사람이 서운해 할 것이라는 표정이었다.
"자아, 어떻게 한다지?"
네드는 주저하면서도 공손한 태도를 취하면서 심각하게 여송연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해주십시오, 네드 씨."
"천만에. 모두가 기대하는 것이 아니니까 사양하는 게 좋겠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오히려 바라고 있는걸요."
"하는 수 없다 그건가?"
"물론입니다. 제발 해주십시오."
"그럼, 의무다 이거야?"
"의무지요, 네드 씨. 근사하실 테니까요."
대단히 기분이 좋아진 네드는 여송연을 이빨로 자근자근 씹었다.
"사실은 말이지, 서디어스" 하고 그는 의미 있는 눈짓을 했다. "나는 발표하고 싶은 일이 있다네......중대 발표야.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중에 한마디하기로 하지."
폴리의 지시로 파티의 서곡으로 아이들이 하로인의 유회를 시작했다. 먼저 커다란 접시의 타고 있는 브랜디 가운데서 납작하고 파란 건포도 꺼내기, 그 다음은 의자의 뒤에서 큰 대야에 띄워 놓은 사과를 입에 문 포크로 맞추는 다크 애플 놀이였다. 일곱 시가 되자 '합창대'가 들이닥쳤다. 그것은 이웃 공장의 소년공과 점원들이 검정으로 얼굴을 칠하고 그로테스크한 복장을 한 채 예로부터 내려오는 하로인의 습관대로 거리를 누비며 들르는 집마다에서 6펜스씩 받아 가는 것이다. 소년들은 네드가 좋아하는 노래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귀여운 샴록'과 '캐더린 마봐닌', '매기 마피의 집' 등 아일랜드의 민요를 불렀다. 사례금을 받은 그들은 흡족하여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 바논 씨, 유니온 만세! 안녕히 계세요, 네드 씨!" 하고 외치면서 나갔다.
"좋은 아이들이야, 모두 착실한 놈들이야" 하며 두 손을 마주 비비면서 아일랜드의 추억을 되새기는 네드의 눈은 젖어 있었다.
"자, 폴리, 손님들이 배고프시겠어. 서둘러야겠군."
일동이 식탁에 앉고 크랜시 신부가 식사 전의 기도를 마치자, 매기마군이 타인카슬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 거위 요리를 들고 쩔쩔매면서 들어왔다. 프랜치스는 이런 거위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대단히 맛이 좋았고 입에 넣자마자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몸은 뜨거운 방안 공기에 오래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속의 야릇한 기쁨 때문인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얼굴을 들면 테이블 맞은편의 노라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부끄러운 듯 그들만이 아는 눈짓을 했다. 프랜치스는 줄곧 조용하게 앉아 있었으나 노라의 밝은 얼굴을 보면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이 행복한 날에 두 사람 사이에 맺어진 비밀의 정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것이었으며 또한 고통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자 네드는 박수 갈채를 받으면서 천천히 일어나 연설을 할 자세를 취했으나 얼굴이 몹시 상기된 채 조금 불안해 보였다.
"신부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밤은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저는 워낙 말재주가 없어서......"
"아닙니다. 훌륭하십니다" 하고 길포일이 소리쳤다.
"그렇더라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네드는 좀더 침착하려고 말을 잠깐 끊었다.
"저를 에워싼 친우 여러분이 행복하고 만족해하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는 무엇보다도 기쁘기 한이 없습니다. 좋은 벗과 좋은 맥주,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 합창대와 함께 들어와서 아직 문 옆에 서 있던 스캔티 마군이 불쑥 소리쳤다.
"바논 씨 만세!" 그는 거위 다리를 한 손에 쥐고 흔들면서 외쳤다.
"당신은 대단한 인물이오."
네드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훌륭한 인물에게는 언제나 추종자가 있기 마련이다.
"미세스 마군의 남편이 나에게 벽돌을 던졌을 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때 와아 하고 웃음소리가 터졌다.
"......저는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번에 우리는 몇 년 전에 부모를 잃은 제 아내의 친정 조카를 맡기로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드리는 것은 우리에게는 더할나위없는 기쁨이며 또한 자랑이기도 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 속에서 폴리의 소리가 들렸다.
"인사를 해야지, 프랜치스!"
"조카에 대하여는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과거는 과거로서 옳은 겁니다. 그러나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만 이 애를 보아주시라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우리 집에 왔을 때와 비교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또다시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그때 복도에서 스캔티의 소리가 들렸다.
"매기, 제발 거위 고기를 조금만 더 주구려!"
"저는 여기에서 자화자찬을 하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도 인간에게도 아니, 짐승에 대하여도 저는 공명정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제 말이 거짓으로 들린다면 저의 집에서 기르는 개를 보십시오."
길포일이 또 큰 소리로 외쳤다.
"그거야 타인카슬에서 제일가는 개지요!"
잠시 네드는 조용히 있었다. 아마도 이야기의 실마리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어디까지 얘길 했더라?"
"프랜치스의 얘기였어요, 네드"
"아, 그렇군." 그리고 네드는 목청을 높여 "프랜치스를 데려왔을 때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애는 대단히 쓸모가 있을 것 같은데 카운터를 보게 하여 제 몫의 일을 시키면 어떨까. 아니, 천만에 말씀-크랜시 신부님 앞에서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폴리와 저는 충분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애는 아직 어리고 지금까지 무참히 학대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프랜치스는 장래가 여간 촉망되는 게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내 아내의 죽은 오빠의 아들인 겁니다. 그래서 학교에 보내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네드는 거기에서 한숨을 돌렸다.
"신부님, 신사 숙녀 여러분! 프랜치스는 다음달부터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호리웰이지요! 저는 여기에서 자랑스럽게 이것을 알려 드리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의기양양하게 그렇게 말을 끝내고 네드는 요란한 박수 갈채를 받으면서 땀에 흠뻑 젖은 채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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