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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5호 - 2024.11.02. 토요일(음력 : 10.02.)
angelo@nownforever.co.kr / 風文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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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참좋은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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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란 만족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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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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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間食)의 순화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간식’ 항목을 찾아보면, “끼니와 끼니 사이에 음식을 먹음. 또는 그 음식”이라고 뜻풀이되어 있고, ‘곁두리’ ‘군음식’ ‘새참’으로 순화하라는 말이 덧붙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순화어로 제시된 낱말들이 ‘간식’을 대체할 수 있는 낱말이냐는 것이다. 대체가 쉽지 않을 것이란 건 ‘곁두리’ ‘군음식’ ‘새참’ 등에 대한 사전의 뜻풀이만 봐도 알 수 있다.
곁두리: 농사꾼이나 일꾼들이 끼니 외에 참참이 먹는 음식.
군음식: 끼니 이외에 더 먹는 음식.
새참: 일을 하다가 잠깐 쉬면서 먹는 음식.
‘곁두리’와 ‘새참’은 ‘끼니 외에 먹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간식’과 유사하지만, ‘농사꾼이나 일꾼’ 또는 ‘일을 하는 중간’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그래서 “아이들 간식”이란 말은 자연스러워도 “아이들 새참”이란 말은 도무지 어색한 것이다.
‘군음식’도 ‘끼니 외에 먹는 음식’인 것은 ‘간식’과 같지만, ‘군-’(쓸데없는, 덧붙은)이라는 접두사에서 비롯하는 말맛은 ‘간식’과 거리감이 있다. 아무래도 ‘군것질’과 직접 연결되는 ‘군음식’은 ‘간식’보다는 ‘주전부리’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영양 만점 간식”이란 말은 쓸 수 있어도 “영양 만점 군음식”이란 말을 쓰기는 어렵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이런 사용 경향을 반영하여 ‘군음식’을 “떡이나 과자, 과일 따위의 끼니 외에 먹는 음식”으로 풀이하였다.
‘간식’은 이미 그것만의 사용 영역이 분명한 낱말로 자리 잡았고, ‘새참’ ‘곁두리’ ‘군음식’ 등도 그렇다. 개념상 유사하니 한자어보다는 고유어를 쓰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권고에 난감해 할 수밖에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받침과 대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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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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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2 - 윤동주
불꺼진 화독을
안고 도는 겨울밤은 깊었다.
재만 남은 가슴이
문풍지 소리에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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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리에게 - 김수영
그는 재판관처럼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救濟(구제)의 길이 없는 事物의 주위에 떨어지는 太陽처럼 판단을 내린다 ― 월트 휘트먼
나는 어느날 뒷골목의 발코니 위에 나타난
생활에 얼이 빠진 여인의 모습을 茶房(다방)의 창너머로 瞥見(별견)하였기 때문에
시골로 떠났다
태양이 하나이듯이
생활은 어디에 가보나 하나이다
미트터 리!
절벽에 올라가 돌을 차듯이
생활을 아는 자는
태양아래에서
생활을 차던진다
미스터 리!
문명에 대항하는 비결은
당신 자신이 문명이 되는 것이다
미스터 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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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아침 - 이해인
비갠 아침
하나의 태양이
온 세상을 골고루 비춘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듯한
기쁨.
꽃의 죽음으로 태어난
한 알의 사과를
아무런 고마운 마음도 없이 먹어버린 데 대한
조그만 슬픔
사랑하는 이가 앓고 있어도
대신 아퍼줄 수 없고
그저 눈물로 바라보아야만 하는
뼈아픈 막막함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는 삶을 배운다
그리고 조금씩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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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18~21) - 이해인
18
그동안 노환으로 고생하시던 수녀님 한 분이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히 선종하셨다. 안구 기증을 하시고 나니 시신이 되어서도 하얀 붕대로 두 눈을 가리시고, 흰옷 차림으로 백장미 향기 속에 고요히 누워 계셨다. 약간은 푸른빛을 띤 얼굴. 십자고상과 묵주를 든 차가운 침묵의 손 수녀님은 이제 오래 계속될, 누워 있는 침묵 자체였다. 깊고도 긴 침묵. 이 침묵 앞에서 우린 대체 누구이며 무엇인가?
조종을 치고 모든 장례 예절을 질서정연하게 진행하던 우리였지만 입관, 하관 예절을 할 때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17통 1반인 우리 수녀원의 세대주이기도 했던 순애 수녀님의 그 이름을 지우려니 참으로 서운합니다” 라고 한 총원장의 슬픈 고별사를 들을 때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고,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다.
19
나는 오늘 `하관`이란 시 한 편을 썼다.
삶의 의무를 다 끝낸
겸허한 마침표 하나가 네모난 상자에 누워
천천히 땅 밑으로 내려가네
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
못다 한 사랑 대신하라 이르며
영원히 눈감은 우리 가운데의 한 사람
흙을 뿌리며 꽃을 던지며
울음을 삼키는 남은 이들 곁에
바람은 침묵하고 새들은 조용하네
더 깊이, 더 낮게 홀로 내려가야 하는
고독한 작별인사
흙빛의 차디찬 침묵 사이로
언뜻 스쳐가는 우리 모두의 죽음
한평생 기도하며 살았기에
눈물도 성수처럼 맑을 수 있던
노수녀의 마지막 미소가
우리 가슴속에 하얀 구름으로 떠오르네
20
가까운 이들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그 느낌을 시로 쓰고 나면 며칠은 시름시름 몸이 아프고 마음은 태풍에 쓰러진 나무와 같다. 간밤엔 때아닌 추위가 느껴져 꽁꽁 싸두었던 이불을 다시 꺼내 덮고 잤다. 슬픔을 일으켜 세우는 건 언제나 슬픔인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실컷 슬픔을 풀어내고 나면 나는 어느새 용감해져서 일상의 길을 걸어 들어가 조금씩 웃을 수 있다. 죽은 이들은 말이 없으니 그들을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약간의 위로를 받고 싶은, 살아 남은 자들의 조그만 욕심인지도 모른다. `수녀님도 하느님 만나실 그날까지 예쁜 일 많이 하시다가 깊은 잠 자는듯 그렇게 떠나십시오` 라고 어느 지인은 내게 글을 보냈지만 죽음에 대해서만은 정말 아무 계획도 미리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을 임종하는 이들 곁에서 절감한다.
21
예년보다 더디 오는 가을을 반기며 오늘 내 마음을 스쳐갔던 흰구름 단상.
가을바람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달려오는가.
함께 있을 땐 잊고 있다가도 멀리 떠나고 나면
다시 그리워지는 바람.
처음 듣는 황홀한 음악처럼 나뭇잎을 스쳐 가다
내 작은 방 유리창을 두드리는 서늘한 눈매의 바람.
여름 내내 끓어오르던 내 마음을 식히며
이제 바람은
흰옷 입고 문을 여는 내게
박하내음 가득한 언어를 풀어내려 하네.
나의 약점까지도 이해하는 오래된 친구처럼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더 넓어지라고 하네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더 맑게 더 크게 웃으라고 하네
- 나의 시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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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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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나온 반달 - 조화련
숨바꼭질하다가
해님한테 붙들렸네
얼굴 반 쪽 가리고
들켜 버렸네.
콩만큼 작아진 가슴
파랗게 작아진 얼굴.
아기별은 꼭꼭
잘도 숨는데
텅 빈 운동장에
혼자 남아서
하얗게
하얗게
벌 서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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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달 - 최일환
섬돌 위에 고무신
엄마 고무신
새벽달이 사알짝
신어 보려다가
엄마한테 들켰지.
새벽달은 발자국만
고무신에 남겨 놓고
산기슭으로 모올래
숨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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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외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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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밤 숲 옆에 발을 멈추고 - 프로스트 / 김동성(金東晟) 옮김
이것이 누구의 숲인지 내가 아는 듯하다.
하기야 그 사람의 집은 저 쪽 마을에 있지만,
그는 내가 그의 숲이 눈 속에 파묻혀 가는 것을 구경하느라고
이렇게 서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리라.
나의 조그만 말은 농가 하나 보이지 않는 곳에
일년 중에도 가장 어두운 밤에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이렇게 멈추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혹시 무슨 착각이나 일으키지 않았느냐고 묻기라도 하는 듯이
말은 목에 달린 종을 흔들어 본다.
그 종소리 외에는 솔솔 부는 바람과
목화송이 같은 눈 내리는 소리뿐.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나는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아직도 몇 십 리를
더 가야만 한다.
나는 잠자기 전에 아직도 몇 십리 더 가야만 한다.
<프로스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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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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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감성사전
섬
모든 이름들은 하나의 섬이다. 모든 영혼들도 하나의 섬이다. 모든 혹성들은 하나의 섬이다. 모든 성단들도 하나의 섬이다. 섬에서 섬으로 그리움의 바다가 흐른다. 가슴 안에 간절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자들만이 섬과 섬 사이를 오갈 수 있다.
날개
산을 넘고 싶은 소망이 날개를 가지게 만든다. 바다를 건너고 싶은 소망이 날개를 가지게 만든다.인간은 육신의 날개는 없지만 영혼의 날개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인간들은 한평생 자신에게 그런 날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산다. 욕망에 눈이 가리워져 소망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물비늘
해질 무렵 바다 위로 쏟아지는 태양의 황금빛 파편들이다. 달밤에 소리 죽여 흐느끼는 강물 위로 회유하는 은어떼다. 침묵의 호수 위로 떠다니는 바람의 희디흰 잔뼈들이다.
꽃
초목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 신에게 드러내 보이는 마음의 참모습이다. 눈부신 찬양이다. 향기로운 노래다. 피울음 끝에 벙그는 해탈의 등불이다.
돌연변이
생물학이 만들어낸 용어다. 어떤 생물이 어버이의 형질과는 전혀 다르게 변이 되어 유전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 개체의 형질이 완벽하게 변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모든 자연은 우주의 돌연변이이며 모든 생명은 신의 돌연변이다.
영웅심
광기, 객기, 치기를 배후세력으로 삼고 있는 마음의 부랑아. 자신을 실제보다 확대시켜 타인에게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충동의 불덩어리. 마음 밭에 겸손의 싹이 시들고 자만의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상태. 영웅심은 때로 분에 넘치는 욕망에 사로잡혀 이성을 상실케 하고 일생을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영웅심은 때로 굴뚝새가 독수리의 흉내를 내게 만들기도 하고 새우가 고래의 흉내를 내게 만들기도 한다. 영웅심은 때로 불도저 앞에서 삽질을 하게도 만들고 고릴라 앞에서 들창코를 내밀게도 만든다. 모두가 군자의 낙樂과는 거리가 멀다.
공명선거
후진국에서 선거 떄만 되면 슬로건으로 내거는 낙동강 오리알.
동문서답
동쪽으로 가면 문래동이냐고 물으니까 서쪽으로 가면 답십리라고 대답하는 식의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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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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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실수에 대하여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후 가장 절실하게 통감하는 일은 '인간은 반드시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글을 쓰기 이전에도 일상 생활 속에서 수많은 실수를 했던 터라 새삼스레 그렇다는 걸 통감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글쟁이가 되기 전에는 실수를 해도 대충 '아,미안. 실수였어'하면 그만이었다. 상대방도 '정말 도저히 구제 불능이군'하고 탄식하는 정도로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글을 쓰노라면, 실수란 반드시 확고한 형태로 남고, 그뿐 아니라 광범위하게 살포되기까지 한다.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해도 '아, 미안. 실수였어'하고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과를 하며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경우에는 스스로 자초했다고는 하나, 상당히 견디기 힘들다. 그대신-이라고 하기도 좀 뭣 하지만-나는 타인의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타인의 실언을 들춰가며 '어이, 자네 말이야. 지난번에 그런 말 했지, 그렇지. 말이지 말야'하고 시비를 거는 일은 전혀 없다. 덕분에 십사 년 간 그럭저럭 평온한 부부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문장상의 실수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번역이다. 무엇보다도 오리지널 텍스트가 있으니까, 나보다 어학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테스트와 번역문을 꼼꼼하게 대조하면 자잔한 실수 같은 게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근자에 카츠시카구에 사는 모리시타라는 분으로부터 엽서를 받았는데, '귀하의 번역문 중에 a couple of weeks가 '이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 주 간'이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하는 지적을 받았다. 이건 누가 뭐라 해도 순전한 나의 실수이다. 죄송할 뿐이다. 그리고 수치스러운 부분을 또 드러내는 것 같지만 'twenty one'을 '31'로 번역한 적도 있다. 'bald'와 'bold'를 혼동해서 번역한 적도 있다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하였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학생 시절에 시험을 치르면 답안지에 '사소한 실수가 많으니까 문제를 잘 들여다보도록'이라는 언질이 몇 번이고 씌어 있었는데, 그런 성형은 나이를 먹어도 어지간해서는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다만-이런 얘기를 쓴 것은 어쩐지 변명을 하는 것 같아 송구스럽지만-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정확하게 번역하고자 온 종일 끙끙거리는 일도 있다는 것을 좀 알아 주셨으면 한다. 그리하여 그런 중요한 부분을 간신히 통과하고 비교적 평범한 부분으로 들어서면 후 하고 긴장이 풀어져 하찮은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종종 있다. 물론 나중에 텍스트와 번역문을 몇 번이나 대조해 보는데도, '이런 곳에서는 실수를 할 리가 없어'라는 선입견이 머리 속에 자리하고 있으니까, 몇 번이나 검토를 하는 사이에도 실수는 발견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식은땀이 흐른다.
타인에게 지적받을 것까지도 없이, 스스로 자신이 저지른 오역을 나중에 아차 하고 깨닫는 경우도 있다. 밤에 이부자리에 들어가 불을 끄고 멍하니 잠을 청하고 있을 때 '아차, 잘못했어. 이건 실수다!'하고 벌떡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부주의로 생긴 실수라기 보다 한층 중대한 의미를 지닌 실수일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자 보다 훨씬 식은땀의 양이 많아진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대로 내가 저지른 수많은 부주의를 전부 끄어 모아 병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꽤 재미있는 연구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 글뿐 아니라, 일상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믿기 어려운 실수를 범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소변을 봐야지'하고 화장실로 가려고 했던 것이 목욕탕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그대로 방으로 돌아와, '아니, 좀 이상한데. 아직도 소변이 보고 싶은 걸. 몸 상태가 좀 이상한건가'하고 의심하는 정도의 일은 다반사다. 그런데 비하면 twenty one을 '31'로 번역한 건 꼭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도 할 수 없을 듯한 기분이 든다. 열차 시간표나 전화부를 만드는 회사의 편집자가 안되길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번역만이 아니고, 지금처럼 자신에 관한 문장을 쓸 때도 가끔씩 형편없는 실수를 한다. 그러나 나는 데이터를 참고로 하여 이론을 전개해 나가며 글을 쓰는 타입의 글쟁이도 아니고, 모델 소설이나 논픽션도 쓰지 않으며,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딱히 피해를 입히는 일도 없으므로, 대개의 실수나 사실 오인은 웃음으로 넘겨 버리고 만다.
며칠 전 아키시마시에 사는 오카무라란 분으로부터, 무라카미 씨의 소설 중에 '폭스바겐의 라디에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라는 투서가 모 잡지에 실렸는데 알고 계십니까 라는 편지를 받았다. 나는 자동차에 관해서는 잘 모르니까, 누구에게 물어 봤더니 역시 폭스바겐 비토르에는 라디에터가 없다고 한다. 영락없는 실수다. 그러나 그 일로 내가 허리를 굽히고 사과를 하는가 하면, 역시 웃어 넘기고 만다. 왜냐하면 그건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세계에서는 화성인이 하늘을 날아다녀도, 코끼리가 줄어들어 손바닥 위에 올라탄다 해도, 폭스바겐 비토르에 라디에터가 붙어있다 해도, 베토벤이 제11번 교향곡을 작곡했다 해도,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얘기하자면, '아, 그래. 이건 폭스바겐 비토르에 라디에터가 붙어있는 세계의 얘기란 말이지!'하는 상상력으로 소설을 읽어 준다면, 나로서는 무척 기쁘겠다. 암만 그래도 실수는 역시 참을 수 없다는 강직한 분께서는 근일 중 출간될 영어판 <PINBALL 1973>속에다는 그 부분을 올바르게 고쳐 놓았으니까, 그 쪽을 읽어 주십시오-하고 음흉하게 선전까지 하다니.
여름의 끝
드디어 여름도 끝나 간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소년 아저씨-라는 표현을 요즘 들어 비교적 자조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한다-라서 여름이 끝나 가는 것이 무척 애닯다. 여름 따위 내년에 또 올텐데 뭘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해변가에 있던 방갈로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고추 잠자리가 하늘을 빙빙 돌아다니고, 해안에 잠수복 차림의 서퍼들이 늘어나곤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신나는 일들은 모두 끝나 버렸구나 싶은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다. 이런 발상은 어린이의 그것과 거의 다름없다. 며칠 전 근처에 사는 모 광고 회사 사람 집에 놀러갔더니, 부인이 나와 '죄송하지만 여름 휴가가 다 끝나서 오늘부터 출근이에요'란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렇군, 여름이 끝나서 모두들 사회로 복귀하는군, 수영이니 일광욕이니 불꽃 놀이니 비치 보이스니 서핀이니 하고 아직도 건들건들 놀러다니는 것은 나 정도밖에 없어'하고 암담한 기분에 젖는다. 나 역시 9월 초순까지는 다 쓰지 않으면 안될 소설이 있는데, 아직 한 줄도 쓰지 않고 있다. 이래서 될까 하고 생각한다. 여름의 끝이란 몹시 애처롭다. 그래서 '일이 힘드시겠죠'라고 내가 말했더니, '네, 집을 나서면서 긴 바지를 입어야 하니 싫다면서 마구 고함을 질러대던 걸요'하고 그 부인은 말한다. 그런 사람의 기분을 나는 가슴이 저리도록 잘 안다. 여름이란 계절은 원칙적으로 짧은 바지에 런닝 셔츠를 입고, 맥주를 마시며 지내야 마땅한 그런 계절인 것이다. 나만해도 요 두 달 반 정도 사이에 긴 바지를 입었던 일은 딱 한번밖에 없다 여름 휴가가 끝나 긴 바지를 입어야만 하게 된 그의 심경을 생각하면, 남의 일이면서도 안됐다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여름이 후덥지근한 나라니까 출퇴근 시에 반바지를 입는 정도는 회사가 허락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도무지가 그렇게 멋대가리도 없는 에너지 절약복 같은 옷이 존재했을 정도니까, 샐러리맨이 반바지를 입고 회사에 간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이라니, 그런 것 회사가 허락할 턱이 없잖아'라면서 역시 회사에 다니는 지기가 어처구니없어 했다. '난 여름 내내 긴팔 셔츠를 입고 다녔다구. 햇볕에 그을리면 안되니까 말이야.'
이 친구는 올 봄부터 손해 배상 보험 회사에서 고객을 담당하고 있다. 하긴 고객 담당이라니 긴팔 셔츠를 안 입으면 안되겠군 하고 납득은 가지만, 타면 안된다는 둥 하는 소리는 잘 이해가 안 간다. 나는 한번도 회사에 다녀 본 적이 없는 인간이라, 회사의 구조가 어떻게 생겨 먹었고,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정말 모르겠다. '저 말이지, 손님이랑 만나 얘기를 하잖아'하고 그는 설명해 준다. '그럴 때 이 쪽이 검게 타 있으면 말이야, 이 자식 우리가 지불한 보험료를 가지고 진창 놀아댔구나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든. 우리네 장사는 손님한테 반감을 사게 되면 끝장이잖아. 그래서 타면 안된다는 거지. 나 같은 경우 제법 살이 쪘잖아. 그러면 말이지, 돈을 하도 많이 벌어 들여서, 애일 좋은 것만 먹으니까 살이 찌죠 하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있으니 골치라구. 난 아무거나 먹어도 살이 찌는데 말이야.' 이런 여러 가지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모두들 나름대로 힘들겠군 하고 동정이 간다. 이 사람은 작년까지만 해도 요트니 스쿠버니 하고 진탕 놀며 새까맣게 탔던 이인 만큼, 측은함도 한층 더하다. 사람이란 성장해감에 따라 여름을 맞는 즐거움을 조금씩 잃어가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 집이 코시엔 구장에서 제법 가까웠던 이유로, 여름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곧잘 고교 야구를 보러 갔다. 고교 야구의 외야석을 공짜였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비닐 주머니에 들어있는 아이스 케키를 날름날름 핥거나, 녹은 물을 스트로로 쪽쪽 빨거나, 머리에 올려놓고 머리를 식혀가며 온 종일 싫증도 내지 않고 애구 구경을 했던 것이다. TV로 보는 고교 야구는 뭐라고 주절주절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해설이 딸려 있거나, 아나운서 혼자 흥분해 가지고 떠벌려대거나 해서 흥이 깨지지만, 실제로 구장에 가서 관전하기에는 제법 괜찮은 구경거리다. 나는 TV에서 중계하는 고교 야구는 불쾌해서 거의 안 보지만, 코세엔에는 다시 한번 가 보고 싶다. 특히 외야석에 있으면 관중도 시큰둥하니 적당하게 어물쩡거리고 있어, '저 멀리서 고등 학생들이 우당탕탕 하고 있구나'하는 정도의 느낌밖에 없다.청춘의 땀이라든가 눈물같은 것은 그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가 없다. 적어도 내게 고교 야구란 그런 것이었다. 고교 야구의 결승전이 끝나고, 폐회식이 끝나고, 응원단이 깃발을 탁탁 접어서는 줄지어 돌아갈 무렵이 되면, 어린 마음에도 이젠 여름도 다 끝났구나 싶은 감회가 느껴졌던 것이다. 어찌된 셈인지 폐회식이 끝나 구장 밖으로 나오면, 언제나 고추잠자리떼가 머리 위를 뱅뱅 맴돌고 있었다. 그런 풍경이 나의 소년 시절에 있어서 여름의 끝이었다. 이 시기가 되면 코시엔의 해변도 아시야의 해변도 헤엄치기에는 차가워지고, 숙제도 본격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나는 일들은 모두 끝나고 만 것이다. 가끔씩 왜 이렇게 여름을 좋아하는 것일까 하고 스스로도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고교 야구 기사가 거의 실리지 않는 전국지가 하나 정도 있어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신문이 있다면 구독해도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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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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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8. 지혜로 보는 생과 사
죽음
우리는 태어날 때는 순서대로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순서를 지킬 수 없게 되어 있다. 성경에 따르면 사람의 삶과 죽음은 모두 하느님이 결정한다고 한다.‘하느님은 사람이 태어날 때 인생의 사는 날과 달수를 미리 정하고 아무도 그 이상을 더 살지 못하도록 수명의 한계를 정해 놓았다’고 하였다.
공자의 생사관
공자가 나이 70이 넘었을때 외아들 백어가 50세도 되지 않아 갑자기 죽었다. 슬픔이 가시기 전에 공자가 후계자로 지명까지 했던 안연이 32세의 나이로 요절을 했다. 공자는‘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구나......’하고 탄식을 했다. 얼마 안 있어 제자 자로마저 죽었다. 고령의 자신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닥쳐오는 슬픔을 삭이면서, 그는 삶과 죽음은 명에 있고 부귀를 누리는 것도 하늘에 달렸다고 하여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천명이지 어떻게 해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그의 제자인 자로가 죽음에 대하여 묻자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쩨 죽음을 알 수 있느냐”고 대답하여 죽음에 대하여 알 수 없다고 솔직히 대답하였다. 논어에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소리가 구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해진다고 죽음에 대한 간접적인 이해를 표시하였다. 공자는 전생이나 내세같은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솔로몬과 욥의 생사관
솔로몬은 죽음의 불공평함에 대하여 말하면서 의로운 사람도 젊어서 죽는 사람이 있고 악한 사람도 오래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너무 지나치게 의롭거나 지나치게 악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지나치게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때가 되기 전에 죽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에게 “때가 되기 전에 죽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어리석은 자는 눈 앞의 즐거움만 생각한다고 하였다. 인간이 겪는 모든 괴로움을 다 겪은 욥의 성경에서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꽃처럼 잠시 피었다가 시들어지고 빠르게 지나가는 그림자 같아서 이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고 하였다.
노정의 생사관
노자는 양면성을 극력 배격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아름다움은 참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함일 뿐이요. 착함이라고 알고 있는 착함은 착함이 아니라 악함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는 미추와 선악은 보는 관점에 따라 추함이 아름다움으로, 악함이 도리어 선함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노자의 생각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킨 장자의 사생관을 보자. “산다는 것이 곧 죽는다는 것이고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고 하였다. 살고 죽는 것을 하나로 보고 있다. ‘사람의 삶이란 오직 기운의 모임’이라고 생각한 그는 산다는 것이 곧 죽는다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이곧 사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생은 죽음의 동반자이다. 죽음은 생의 시작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생사 어느 편이 근본인지 누가 아랴”라고 지적하면서 “기가 모이면 삶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죽음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장자는“생사가 서로 동반하는 것을 안다면 무엇을 근심할 까닭이 있겠는가?”라고 우리에게 반문하였다. 그의 생사관을 필자 나름대로 비약시켜 보면 인간에게는 결정적이고 근원적인 부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인간의 출생과 사망
인간은 영문도 모른 채 이 세상에 던져졌고 출생조건에 따라 이 곳의 부잣집 미남, 저 곳의 가난한 집 추남 등등으로 정해진 운명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각자의 생애를 살고 도착하는 종착연은 어떤 예외도 허용될 수 없는 죽음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젊으나 늙으나 간에 모면할 수 없는 필연적인 죽음이라면 우리는 모두 사형수이다. 사형수는 극단적으로 자유와 대립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에 얽매인 부자유한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자유란 죽음밖에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의자유란 허무뿐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게 남는 것은 허무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의 인생론인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도다. 정말로 헛되도다. 아무 것도 소중한 것이 없구나.’하고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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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Voskesenie ;1899) - 톨스토이
해설
"부활"은 톨스토이가 70세에 쓴 그의 마지막 장편 소설로 인류 문학사에 영원한 기념비라고 할 만한 걸작이다. 특히 "부활"은 톨스톨이가 열중하였던 인도주의적인 사상을 형상화한 것으로, 발표되자 국내외에 비상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톨스토이는 "부활"을 통하여 제정 러시아의 사회 생활 특히 그 어두운 면을 기탄없이 폭로하여 불완전한 사회 제도에서 신음하고 있는 러시아 국민들의 이상을 향한 몸부림과 양심의 뉘우침 자유 해방에 대한 열렬한 부르짖음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작품은 폭풍이 다가오기 전의 어둡고 광포한 분위기를 묘사하여 러시아 혁명을 암시한 듯하다. 작품 속의 많은 인물은 실재 인물을 모델로 취했는데 검열에서 형편없이 손상 당했으며 당시 러시아에서는 이 작품에 대한 비판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부활"의 완본은 혁명 직후인 1918년 러시아의 '보드나르스키'의 원작 부흥판으로 간행되었다. "부활"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더불어 톨스토이의 3대 작품으로 꼽히고 있으며 내용의 함축성에서 두 작품을 능가한다고 평가된다. "부활"은 예술성으로 우수할 뿐더러 톨스토이의 생애에 걸친 사상이 이 작품 안에 구현 응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예술적 성서이다. "전쟁과 평화"가 그의 성숙기를 장식하였다면 "부활"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이다" 로맹롤랑이 "부활"을 두고 이렇게 찬사한 것은 유명하다. 크로포트킨도 그의 저서 "러시아 문학사" 가운데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만약 톨스토이가 "부활"이외에 아무것도 안 썼다. 해도 대작가로서 인정받을 만큼 이 작품의 예술성은 높다" 그의 소설은 예술 소설의 정도를 걷는 주제와 소재로 일관되어 있다. 톨스토이의 작품은 이야기의 흥미진진한 진행에 있지 않다. "부활"을 읽는 재미는 각 부분의 생활 심리 인물 사건 묘사에 있다. 그 중에도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생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죄수 면회소의 광경에 대한 묘사는 정부와 교회를 전율시켜 검열에서 모두 삭제되었다. 감옥 안에서 행해지는 종교 의식의 무의미를 그려 냈기 때문에 작가는 "부활" 출판 후 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했다. 톨스토이는 "부활"의 구상 과정에서 몇 차례나 감옥을 견학하기 원하였으나 허가되지 않아 감옥의 관리와 사귀어 감옥 내부의 사정을 들었다고 한다. 작품에서 진실하고 생생한 인물은 카츄사인데 네흐류도프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기 위해 그의 구혼을 물리치고 심손과 결혼하는 결단이 인상적이다. 그것은 비바람 몰아치는 밤에 열차의 창을 두드리는 젊은 날의 카츄사와 대비되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비극적인 인물형인 것이다. 네흐류도프는 작가의 분신으로 '올바른 인간이 유일하게 살 곳은 감옥', '내가 미쳤는가 사회가 미쳤는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작가 자신이 투사된 인물이다. 작가는 네흐류도프가 농민 생활을 시작하는 2부를 구상하고 있었으나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 작가가 '세계의 양심'으로 이목을 끌고 있던 시기의 작품이었던 만큼 "부활"은 읽는 이에게 공감을 일으켜 사상적인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약전
톨스토이는 1828년 8월28일 중부 러시아의 루라 시 근교 야스나야폴라나에서 태어났다. 톨스토이는 두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잃고 여덟 살에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세 명의 형과 누이동생이 있었다. 부친의 사망 이후 그들의 교육은 숙모인 오스텐 사켄 백작 부인이 맡았으나 숙모도 4년 후에 사망하였으므로 또 다른 숙모인 유시코프 부인에게로 옮겼다. 톨스토이의 용모는 몹시 추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비관하였다고 하며 그의 기이한 행동은 소년 시절부터 나타났다. 하늘을 날아보기 위해 2층에서 뛰어내린 일까지 있었다. 숙모의 집에서 프랑스 사람과 독일인 가정 교사에게 교육을 받고 15세에 형들과 함께 카잔 대학에 입학하여 동방어학과를 선택하였으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법률학과로 옮겼는데 관료주의적인 학과 규정을 이겨 내지 못하고 1847년에 중도 퇴학을 하고 말았다.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던 톨스토이는 사교적인 숙모의 영향을 받아 쾌락에 잠겨 방종한 생활을 보내다 우연히 루소의 "참회록"과 "에밀"을 읽고 감동을 받았고 루소의 저서라면 "음악 사전"까지 읽었으며 루소의 초상을 휘장처럼 목에 걸고 다녔다고 한다. 20세에 페테르부르크 대학의 학사 시험에 합격하여 법학사 칭호를 얻자 자기의 영지로 돌아가 지주로서 농노 해방의 이상을 품고 농사 개량에 착수하였는데 실패로 돌아갔다. 그가 청년 시절에 쓴 대학 논문 "토지 사유론"을 실천하기 위하여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여 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농촌 생활에 염증이 난 그는 페테르부르크로 나왔는데 그에게는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다. 도박과 주색에 빠져 타락한 러시아 귀족의 생활을 하여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한 일도 있었다. 이 때 아우를 염려한 형 니콜라이의 권유에 따라 카프카스 지방의 수비대에 사관 후보생으로 입대함으로써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카프카스의 자연과 그 지방의 생활 양식은 그에게 처음으로 예술적 재능을 깨닫게 하여 예술 창작을 시도하였다. 24세에 "유년 시대" 등 기타 수 편의 작품을 내었다. 1853년 10월(25세)에 크림 전쟁이 일어나자 포병 사관으로 종군하여 이 전쟁의 양상을 선명하게 묘사한 수 편의 단편을 세바스로풀 지에 내어 일반 독서계에 필명을 알리기 시작했다. 1862년 9월(34세) 소년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소피아와 결혼을 하여 가정 생활을 시작했다. 소피아의 나이는 18세였다. 결혼 이후 그는 창작에 비상한 감흥을 가지고 몰두하였다. 1869년(41세) "전쟁과 평화" 완성. 48세에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 1908년 8월 28일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차원의 80주년 생일 축하식을 거행했다. 1910년 10월 18일 집을 떠나 방랑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 날 새벽녘 친구인 의사 도산과 함께 수도원에 있는 누이동생을 만나기 위해 떠났던 것이다. 그의 일기와 마코비츠키의 말에 의하면 집을 나와서 처음으로 시원스런 자유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기차에서 감기에 걸려 아스타포바 역에서 하차했는데 그 해 11월 7일 역장의 집에서 숨졌다. 그의 뜻에 따라 장례 절차는 극히 소박하였으나 그를 흠모하는 수많은 농민 학생 공장 노동자들이 각 지역에서 작은 역에 몰려들어 '러시아의 대작가'의 유해를 어깨에 메고 그의 출생지 야스나야폴라나로 행진하였다. 관을 묻은 후 수십일 동안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영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였다고 한다. 그 후 묘지는 모든 나라 사람들의 순례의 땅이 되었다. 로맹 롤랑으로 하여금 '세계의 아버지'라 부르게 하였고 도스토예프스키로 하여금 '예술의 신'이라 경탄케 하였고 성자 간디로 하여금 '나의 생애를 이끌어 준 훌륭한 교사'라 숭배하게 하고 레닌마저 '만국 근로 대중의 친구'라고 말한 톨스토이는 독자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수십 개 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에 대한 연구서만 해도 무려 2만 3천 권을 넘으며 또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줄거리
4월 28일 오전 여덟 시 간수장은 어두컴컴하고 악취가 코를 찌르는 감방 앞에 섰다. 열쇠로 문을 열어 덜커덕 문을 잡아당기고는 소리 높이 외쳤다.
"야 미스로바 출정이다"
그러자 감방 안에서 키가 작고 날씬한 한 여자가 나타났다. 이 여자의 경력은 가련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고아였는데 어머니가 일하던 집주인의 온정으로 딸처럼 하녀처럼 길러졌다. 이 집에서 그 여자는 카츄사라고 불리었다. 애칭으로 카첸카라고 불려지지도 않았으며 카치카라고 낮추어 불려지지도 않았다. 16세 되던 해에 그는 주인의 조카인 청년 귀족의 사나이다운 모습에 애모의 정을 품었다. 그와는 어릴 때부터 함께 놀던 소꼽동무였는데 벌써 큼직하게 자라난 그들은 비록 신분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달콤하고 순진한 첫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젊은 귀족의 이름은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네흐류도프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부활절 전날 밤 젊은 네흐류도프 공작은 크림 전쟁에 출전하기 위해 소속의 연대에 부임하는 도중 카츄사가 살고 있는 백모의 집을 찾아왔다. 실은 이 집에 올 생각을 했을 때부터 카츄사를 손에 넣으려는 마음이 솟았으며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 온갖 방탕한 짓을 다해 본 그는 이미 상당한 오입쟁이가 되어 있었다. 순진하고 아름다운 처녀 카츄사는 다정하게 대해 주는 젊은 공작의 유혹에 끌려들어갔다. 부활절의 밤, 물 위에 얼음이 바삭바삭 깨지는 안개 낀 밤이었다. 네흐류도프는 남몰래 카츄사의 침실에 숨어 들어가 카츄사를 안고 자기 방으로 왔다. 카츄사는 목숨을 바쳐 마음 깊이 네흐류도프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나 그는 하룻밤의 들뜬 마음으로 신앙 깊고 깨끗한 처녀를 정욕의 희생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후 두 번 다시 네흐류도프는 카츄사를 찾아 주지 않았다. 카츄사는 버림받았던 것이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카츄사는 이미 임신한 몸이었으며 주인집에도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주인집을 나온 그녀는 윤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갔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리저리 주인을 옮겨 다녔다. 어디를 가나 사나이들은 호색한 눈으로 그녀의 몸을 노렸다. 마침내 여자 포주의 손에 걸려 도회지의 사창가에서 매춘부가 되어 뭇사내에게 몸을 팔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7년 동안의 윤락녀 생활에서 두 번 거주지를 옮겼고 병원에 들어가기도 해서 그녀의 심신은 거칠대로 거칠어졌으나 여전히 정직하고 고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카츄사는 결코 도둑질이나 살인을 할 그런 여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28세 되는 해에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여 살인 및 절도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면제라고 생각하고 그녀가 먹인 약으로 그녀의 손님인 스멜리코프라는 돈 많은 상인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체포되어 석 달 이상이나 숨막힐 듯한 감옥에 감금된 다음 겨우 재판을 받기 위하여 법정에 불려가게 된 것이었다. 재판장은 카츄사 마스로바를 향하여 판에 박은 심문을 시작하였다. 성명 신분 직업 종교 등을 묻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취조에 들어갔다.
"그대는 상인 스멜리코프의 가방 열쇠를 가지고 그 가방 안에 든 현금 2천 6백루블과 반지를 절취한 다음 여관에서 독주를 마시게 하여 그를 살해한 것이 틀림없는가?"
"아니오! 아니오!"
카츄사는 숨을 할딱거리며 대답하였다. 이상한 일었다.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앗! 저것은 카츄사다!' 법정 배심원 석에서 배심원의 한 사람이 카츄사를 보다가 갑자기 낯빛이 어두워지며 중얼거렸다. 그는 네흐류도프였다. 그는 카츄사를 눈앞에 대하자 이제까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10년 전의 자기의 추행이 머리에 떠올랐다. 먼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감에 따라 그의 마음에는 자기의 죄가 뚜렷하게 떠올랐다. 흰 앞치마를 걸친 어여쁜 소녀 카츄사, 가슴 울렁이던 첫키스로부터 2년 후에 그녀를 만났을 때의 일, 그녀의 처녀를 빼앗고 다음 날 백 루블의 지폐를 그녀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고 부임지로 떠나던 일,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네흐류도프 공작의 눈앞에 독살범이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서 있는 창녀 카츄사, 이 여자는 먼 옛날 자기의 일시적인 육욕의 만족을 위하여 짓밟고 버렸던 가련한 소녀가 아닌가... 신성하고 의젓한 배심원인 네흐류도프 공작의 마음은 몹시 어수선해졌다. 그 때의 가련한 소녀가 창부가 되다니 이 여자의 신세를 이렇게 만들어 놓는 자는? 내가 아니냐! 젊은 시절의 우연한 내 쾌락의 원인이 되어 마침내 이러한... 자기의 과오가 너무나 컸다는 것 그리고 그 커다란 죄에 대하여 자기가 너무나 태연스럽게 아니 오히려 잊어버린 채 오늘날까지 지내 왔다니 등뼈가 서늘해지는 것이었다. 네흐류도프는 강력히 카츄사의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법정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카츄사 자신도 울면서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하소연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재판의 결과는 답변서에 '독살할 의사가 없었다'는 일항이 빠져 있기 때문에 카츄사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되었다. 네흐류도프의 마음은 괴로웠다. 그 때의 일을 기억할수록 그의 마음은 가책 받았다. 이튿날 그는 감방으로 카츄사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만날 수 없었다. 낙심하고 돌아온 그는 2년 동안이나 열어 보지 못했던 일기장을 꺼내어 다음과 같이 적었다.
"...4월 28일 나는 배심원으로 법정에 참석하여 뜻하지 않은 일로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카츄사가 죄수가 있는 붉은 옷을 입고 피고석에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그녀를 석방하기 위하여 감옥으로 면회를 갔었으나 시간이 늦어 면회를 허락받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만나 나의 죄를 참회하고 용서받기 위해 그녀와 결혼할 작정이다. 오 신이여 도와 주소서..."
다음 날도 카츄사를 만나기 위해 감옥을 찾아갔다. 면회 장소로 간수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카츄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방긋 웃음을 띄우면서 말했다.
"당신이세요? 저를 만나고 싶다는 분이?"
"오오, 나요. 당신을 만나러 왔소. 내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왔소..."
네흐류도프는 숨가삐 말하였다. 이야기하는 동안 카츄사는 네흐류도프와의 일이 뚜렷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카츄사의 얼굴은 점점 흐려지는 것이다. 헤어지려 할 때 그녀는 네흐류도프의 손목을 잡고 말하였다.
"용서를 구할 만한 죄는 조금도 하지 않았어요. 혹시 있다고 해도 그건 벌써 지나간 일이에요"
네흐류도프는 배반당한 마음으로 면회소를 나왔다. 그가 그녀를 구원하려 한다는 것을 말하며 그녀는 기뻐하고 감동할 것이며 옛날의 카츄사로 돌아오리라고 기대했던 그의 교만함은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네흐류도프는 속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다. 그는 귀족의 딸과의 약혼도 파기하고 말았다. 카츄사를 구하기 위해 카츄사를 바른 사람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자기 자신도 올바른 사람이 되리라 결심하고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카츄사를 위하여 변호사로 청하고 진정서도 썼으며 모든 힘을 아낌없이 바쳐 그녀의 억울한 죄를 씻으려 하였다. 그는 변호사로부터 공소장을 받자 다시 카츄사를 면회하러 갔다. 그 공소장에 카츄사의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서명이 끝나자 네흐류도프는 그와 결혼하고 싶다는 결심을 토로했다. 카츄사는 안색이 달라졌다
"그건 또 뭣 때문에요?"
"그렇게 하는 게 신에 대한 내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신이라구요! 무슨 신 말씀이세요! 당신은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그게 진실이라면 10년 전의 그 때에 신을 알고 계셨을 거에요(카츄사는 극도로 흥분하였다) 나가 주세요! 저는 죄인이고 당신은 공작님이세요. 이 곳에서 당신이 하실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요"
네흐류도프는 이렇게 외치는 카츄사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점점 거칠게 퍼부어 대었다.
"멋대로 사람을 노리개감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도 모자라 이번엔 저를 제물로 내세워서 자기의 죄를 벗으려고... 아아 당신의 그 부글부글한 얼굴은 보기만 해도 치가 떨려요. 나가세요. 나가세요. 당신과 결혼할 바엔 목을 매어 죽어 버리겠어요... 왜 내가 그 때에 죽어 버리지 않았을까?"
카츄사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네흐류도프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틀 후 면회하러 갔을 때에는 카츄사의 눈에는 번뇌와 초조한 빛이 있었다. 네흐류도프는 이 날도 결혼에 대해 말을 꺼냈으나 그녀는 듣지 않았다.
"또 한 번 말하겠소. 꼭 나와 결혼해 주오. 당신이 납득할 때까지 나는 어디까지나 당신을 따라가겠소"
그는 불쌍한 이 여자를 구하기 위해 시베리아까지도 따라갈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로원에 공소하기 위하여 그는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드디어 카츄사의 공소 사건은 심의에 오르게 되었다. 변호사 파나린은 자신과 열의를 가지고 원판결의 부당함을 논증하였다. 그러나 검사는 공소의 이유의 부적합함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공소는 기각되고 말았다. 네흐류도프는 몹시 낙심하여 모스크바에 되돌아왔다. 짧은 기간 동안에 카츄사의 마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격심한 고뇌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처음에는 네흐류도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끝까지 그를 미워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그녀를 움직였다. 카츄사는 점점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 경건하고 순진한 여자가 되었다. 이제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네흐류도프가 자기에게 해 주는 것이 과분하고 황송스럽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동시에 카츄사는 아직도 네흐류도프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단호히 그의 청혼을 거절한 것도 그 결혼이 네흐류도프에게 불행한 것이라고 느껴진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옛날의 자신을 되찾은 카츄사를 느끼지 못하고 다만 수치심도 없는 여자로 자기를 대하는 네흐류도프의 태도가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카츄사가 호송대에 들어가기로 확정되자 어디까지나 카츄사의 사면을 얻으려는 마음을 관철하려고 마음먹은 네흐류도프는 그녀와 함께 출발할 준비를 하였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영지를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집과 가재 도구를 누님에게 양도하는 등 명예와 부귀를 내던져 버렸다. 모든 것을 내던진 네흐류도프는 이제 다만 카츄사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눈 쌓인 시베리아 벌판까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찌는 듯이 무더운 날씨였다. 호송되는 죄수들은 남자가 623명, 여자가 64명이었다. 죄수들이 모두 광장에 모였다. 드디어 출발 소리가 울렸다. 벼락같은 소리를 내며 옥문이 열렸다. 동시에 쇠사슬 소리가 높이 울리기 시작했다. 호송병의 총소리 전송하러 온 사람들의 작별하는 소리와 그에 대답하는 죄수들의 목소리! 대열은 움직여 나갔다. 네흐류도프는 여죄수들의 대열 중에 카츄사를 본 듯했으나 그 모습은 많은 군중 속에 섞여 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기시켜 두었던 마차에 올라 대열의 뒤를 쫓았다. 한눈도 팔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카츄사의 얼굴에는 각오의 빛이 나타나 있었다. 더위는 점점 심해졌다. 죄수 몇 사람은 일사병으로 죽어 넘어졌다. 네흐류도프는 도중에 사경에 이른 죄수 한 사람을 발견하자 곧 그를 위해 자기가 탄 마차를 제공했다. 그가 정거장에 닿았을 때에는 죄수들은 모두 열차에 오른 뒤였다. 그는 잠시 동안 카츄사와 말을 할 수 있었다. 기적 소리가 나자 쇠창살이 있는 죄수 열차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카츄사가 있는 죄수 분대는 거의 3천 마일을 기차로 달렸다. 카츄사는 보통 형사범과 함께 베름 시까지 기선을 탔으나 그 곳에서 네흐류도프의 노력으로 정치범들 속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카츄사는 정치범들 사이에 들어가서 지금까지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또한 정치범들에게서 대단히 유익한 감화를 받게 되었다. 특히 심손이라는 혁명주의자는 카퓨사의 좋은 스승이 되었다. 심손은 은근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감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카츄사는 그의 마음을 눈치챘었으며 그만큼 고귀한 사나이에게 사랑을 받은 것이 그녀의 기쁨이 되었다. 네흐류도프의 사랑과 청혼은 그가 자기의 과거의 죄를 씻으려는 도의적인 감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심손의 사랑은 달랐다. 그는 카츄사를 한사람의 여자로서 현재 있는 그대로의 그녀에게 사랑을 바치고 있었다. 카츄사와 심손은 입 밖에 내지 않았으나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9월이 되자 싸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때때로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죄수 일행이 베름 시를 떠날 때까지 네흐류도프는 두 번 카츄사를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마저 자세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네흐류도프는 시베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자기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명랑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자기의 과거를 그리고 자기가 지금까지 그 속에 안주하고 있던 사회의 모습을 뚜렷이 살필 수 있게 되었다. 모순에 찬 사회의 허위 방종에 물들기만 한 귀족들의 생활 그러한 생활과 사회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학대받는 많은 사람들의 존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그들을 향해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다. 카츄사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일어선 그는 한 걸음 나아가서 모순에 찬 더럽혀진 사회의 구제를 위하여 일하지 않을 수 없음을 느꼈다. 네흐류도프가 시베리아의 죄수 숙박소를 방문하였을 때 그는 그 곳의 날로 앞에서 나무를 가지고 쪼그려 앉아 있는 심손을 보았다. 그와 함께 자루가 빠진 비로 방을 쓸고 있는 카츄사를 보았다. 카츄사는 그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잠깐 조용히 말씀 드릴 일이 있는데..."
심손이 네흐류도프에게 말하였다. 카츄사는 깜짝 놀라 두 사나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네흐류도프의 얼굴을 보자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마루에 나가자 심손은 침착한 말씨와 진지한 태도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실은 다름이 아니라 저는 당신과 카츄사와의 관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말씀 드릴 의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카츄사와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을 그에게 고백하였다.
"...그러나 저 여자의 색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녀를 세상의 갖은 고초를 다 겪은 훌륭한 부인으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녀에게서 아무것도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를 구원하여 그녀의 앞길을 밝게 해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심손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네흐류도프는 감격하여 말했다.
"저는 다만 제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카츄사의 짐을 가볍게 해 주려고 힘쓰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자유를 속박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카츄사가 당신과 같이 훌륭한 배우자를 얻은 것이 저로서도 대단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츄사의 복역 중 그 곁에서 보호해 주고 석방된 후에는 그녀와 결혼해야겠다는 처음의 계획을 네흐류도프는 포기하고 마침내 깨끗한 영혼을 도로 찾은 그녀를 심손에게 맡기기로 하고 그는 이제 다른 많은 괴로운 사람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홀로 남게 되자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카츄사는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몇 달이 지났다. 여행지에서 네흐류도프는 변호사로부터 등기 우편을 받았다. 가슴이 설레였다. 그것은 바라고 바라던 카츄사의 감형 통지서였다. 감형 통지서 등본에는 도형을 유형으로 감형한다는 뜻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 소식을 가지고 음침한 감옥으로 카츄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카츄사는 감형의 통지를 들고 흥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하지만 제발 염려 말아 주세요. 전 심손이 가는 곳을 따라갈 결심으로 있으니까요"
두 사람은 작별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
"나는 영영 헤어지고 싶진 않소"
네흐류도프는 말하였다.
"죄송합니다"
카츄사는 그의 손을 쥐더니 곧 몸을 돌려 나갔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하지 않고 '죄송합니다'라고 카츄사는 말했다. 이 말 속에서 네흐류도프는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카츄사는 자기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자기의 호의를 굳이 거절하고 심손과 운명을 같이하여 영원히 파묻혀 버릴 각오를 했던 것임을 명백히 깨달았다. 감옥에서 돌아오자 네흐류도프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고 한참 방 안을 왔다갔다 하였다. 카츄사와의 관계는 드디어 끊어졌다. 그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이제 또 한 가지 일이 그에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이제까지 목격하여 온 죄수들이 받고 있는 너무나도 비인도적인 처지 그리고 냉담한 처사 및 감옥의 비리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더욱 올바른 길을 인류는 걷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시정하는 일이 남았다. 오락가락하며 생각하는 데 지쳐 그는 램프 옆의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책상 위의 성경을 들어 읽기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읽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마지막으로 그는 성경의 한 귀절을 되풀이하여 읽었다.
"하느님 나라와 그의 정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여 얻으리라"
그리고 그는 외쳤다.
"그렇다. 하나의 일은 우선 끝맺었다. 이제 또 다른 일이 시작된다"
그날 밤은 네흐류도프에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의 새로운 생활이 어떻게 끝맺을는지 그것은 다만 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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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외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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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 - A.J. 크로닌
제2부 기묘한 천직
2.(1/2)
그로부터 4년이 지난 9월의 어느 목요일 저녁때의 일이었다. 프랜치스치셤은 달로 조선소가 파하자 여느때와 다름없이 지친 다리를 이끌고 그레니의 빵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페인트를 칠한 공장의 허술한 판자 울타리가 있는 데까지 왔을 때, 그는 갑자기 중대한 결심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밀가루 공장과 가게 사이를 지나 뒷문으로 부엌에 몰래 들어가 설거지통에 빈 도시락을 놓았을 때 그의 천진스러운 까만 눈동자에는 어떤 결심의 빛이 타오르는 것이 역력히 보였다. 그의 모습은 커다란 무명 작업복에 감싸여 이상하게도 찌부러진 것같이 보였고, 거꾸로 쓴 어른의 모자 밑에 있는 얼굴은 기름투성이였다. 부엌에는 땅딸막한 키에 창백한 얼굴을 한 열 일곱 살 난 말캄 그레니가 식탁을 향하여-더러운 식탁보 위에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식기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팔꿈치를 괴고 로크의 <부동산 양도 절차>라는 책을 읽으면서 한쪽 손으로는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더러운 머리칼을 박박 긁으면서 비듬을 털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모친이 암스트롱 대학에서 돌아온 자기를 위하여 만들어 놓은 쇠간요리를 부지런히 입으로 나르고 있었다. 프랜치스는 찬장에서 자기의 저녁밥인 2센트 짜리 파이와 점심때에 구워 놓은 감자를 꺼냈다. 유리가 반밖에 끼워져 있지 않은 칸막이의 빈틈으로 가게에서 말캄의 어머니 미세스 그레니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을 내다볼 수 있었다. 그 쪽을 보면서 식탁위에 널려 있는 식기를 치우려고 하자 이 집의 아들인 말캄은 화난 듯한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공부하고 있는데 좀 조용히 할 수 없어? 야아, 그 손은 뭐야......언제나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는군."
프랜치스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최상의 방위책이었다. 프랜치스는 화상 자국과 못투성이가 된 손으로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들었다. 칸막이 문이 열리고 미세스 그레니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다 먹었니, 말캄. 아주 맛이 좋은 계란빵을 구워 놓았는데 먹어 보려무나. 싱싱한 달걀과 우유로 만들었으니까 소화도 잘 될 거야."
"난 하루 종일 배가 불러 아무것도 못 먹겠어."
말캄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여봐란 듯이 크게 호흡을 하여 비를 불쑥 내밀었다.
"이봐, 이 숨소리를 들어보라고요."
"공부를 지나치게 하니까 그래." 그녀는 큰 솥이 있는 부엌으로 뒤뚱뒤뚱 걸어갔다.
"그렇지만 이것을 먹으면 기운이 날 거야......조금만 먹어봐......엄마에게 효도하는 셈치고 말이야."
그는 어머니가 빈 접시를 치우고 대신 계란빵이 담긴 큰 접시를 가져다 놓은 것을 잠자코 보고 있었다. 찢어진 코르셋을 입고 스커트 자락을 너절하게 늘어뜨린 그녀는 아들이 걸신들린 것처럼 먹는 것을 만족한 듯이 바라보았다. 아들이 한 입 먹을 적마다 그녀는 아들을 향해 몸을 굽히고 길고 가는 코에 엷은 입술을 한 심술궂게 생긴 얼굴에 모성애를 드러내고 있었다.
"네가 빨리 돌아와 주어 잘 된 거야. 오늘밤 아버지는 집회가 있단다." 하고 중얼거렸다.
"아니, 그래요?" 하고 말캄은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들었다. "미션 홀에서말인가요?"
"아니야, 공원이라던데."
"우리 모두가 가는 건 아니죠?"
그녀는 이상야릇한 소리로 자랑처럼 말했다.
"그렇지만 말이야, 말캄. 그것은 아버지가 나와 너에게 주신 오직 하나의 선물 아니냐. 아버지가 설교를 하시는데 우리도 참석하는 것이 좋지 않겠니?"
그러나 말캄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어머니는 자랑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따위 집회에 나가는 것은 질색이야. 아버지가 성서를 두드리면서 설교하는 옆에서 아이들이 '다니엘 성자, 다니엘 성자' 하고 떠드는 것을 듣고 있으란 말이에요! 어릴 적에는 그다지 싫지는 않았어. 하지만 지금은 나도 말이지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 판인데."
마침 그때 문이 열리고 아버지 다니엘 그레니가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 왔기 때문에 말캄은 화난 얼굴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다니엘은 식탁으로 가까이 와서 치즈를 한 조각 잘라 들고 컵에 우유를 따라 선 채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벌써 작업복과 해어진 융단 슬리퍼를 벗고 번쩍번쩍하는 까만 바지에다가 몸에 맞지 않는 짧은 모닝 코트를 입고 있었다. 때묻은 와이셔츠에 까만 끈으로 된 넥타이를 매고 있었으므로 한층 비약하고 초라해 보였다. 구두도 수선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되어 있었다. 허리도 약간 굽었고 시력도 좋지 않았으나 눈은 뭔가 열심히 먼 곳을 보고 있는 일이 가끔 있었다. 다만 오늘밤은 안경 너머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지 지극히 온화했었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물끄러미 프랜치스를 지켜보았다.
"프랜치스, 너 몹시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구나. 저녁은 먹었느냐?"
프랜치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이 들어온 후부터 어딘지 모르게 방안이 밝아진 것 같았다. 프랜치스를 보는 그의 시선에서 그 옛날 어머니가 자기에게 던져 주던 그것과 똑같은 것을 느꼈다.
"얘야, 저쪽에 체리 케이크를 만들어 놓은 것이 있으니 먹고 싶으면 가서 먹으려무나. 솥 위의 선반에 있다."
미세스 그레니는 다니엘의 이 무분별한 너그러움에 화가 난 듯이 코를 벌름거렸다. 이렇게 자기 것을 누구에게나 인심썼기 때문에 두 번이나 파산을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언제 나가시겠어요? 지금 바로 나가시겠다면 가게문을 닫겠어요."
그는 노란 상아 장식이 달린 커다란 은시계를 꺼내서 들여다보았다.
"아, 벌써 이렇게 됐나. 지금 곧 가야 해. 가게문을 빨리 닫읍시다. 하여간 하느님의 일이 먼저이니까. 그러나......" 하고 잠시 말을 끊었다가 "오늘밤엔 손님도 없을 테니까 일찍 닫는 게 좋을 거야."
그녀가 파리똥투성이인 과자 진열장의 덧문을 닫고 있는 동안 다니엘은 멍하니 선 채로 오늘밤에 할 설교의 말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윽고 몸을 움직이면서 "자, 말캄, 가자!" 하고는 프랜치스를 돌아보며 "조심해야 한다. 너무 늦도록 놀지 말고 일찍 자거라" 하고 말했다. 말캄은 입속으로 뭔가 투덜거리면서 책을 덮고 모자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부르튼 얼굴을 하고 아버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미세스 그레니는 손에 맞지도 않는 까만 장갑을 억지로 끼었다. 그녀는 집회 때마다 느끼는 것처럼 나들이 가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프랜치스, 접시 닦는 것을 잊지 말아라" 하고 의미 있는 어두운 미소를 프랜치스에게 던졌다. "함께 가지 못해 유감이구나."
세 사람이 나가 버리자 그는 식탁 위에 엎으려 엉엉 울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아까의 새로운 결심이 다시 마음속에 타올랐다. 윌리탈록의 일을 생각하면 피곤한 몸에서 갑자기 활기가 되살아났다. 기름 묻은 접시를 설거지통에 쌓아 놓으며 문득 자기가 놓여 있는 처지를 생각하고 이마를 찌푸리면서 화가 난 것처럼 접시를 씻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기 전날의 일이었다. 다니엘이 폴리 아주머니를 향하여 핏대를 올리며 떠들던 것이 생각났다.
"엘리자벳의 아이는 내가 맡겠어요. 우리가 제일 가까운 핏줄이니까요. 그 애는 우리가 데려가겠습니다."
그후 끌려오다시피 한 프랜치스는 불행 속에 파묻혀 살게 된 것이다. 그의 운명을 완전히 망쳐 놓은 것은 미세스 그레니가 약간의 유산과 아버지의 생명보험과 가재도구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속셈에서 그를 맡겠다고 한 폴리 아주머니의 요청을 법률에 호소하겠다고까지 협박하여 그를 데려온 그 혐오스러운 사건 때문이었다. 이 결정적이고 악랄한 수법으로 인해 그로 하여금 폴리 바논 일가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켜 버린 것이다. 더구나 간접적인 책임은 프랜치스에게도 있다고 생각하고 대단히 화가 난 폴리 아주머니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주었다는 확신에서 프랜치스에 관한 일은 앞으로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정해 버린 것이다. 프랜치스가 이 빵집에 와 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이상한 것뿐이었다. 미세스 그레니가 손질을 해준 옷을 입고 책가방을 메고 프랜치스는 말캄과 함께 읍내의 달로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미세스 그레니는 처음에는 대견하게 생각하고 가게에서 두 사람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바라다보곤 했다. 아, 그러나 그러한 마음은 불꽃처럼 반짝 빛났다가 금방 꺼져 버리고 말았다. 다니엘 그레니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정도로 유순한 성격에 고결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파이 꾸러미와 자기가 만든 팜플렛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토요일 밤이 되면 마차 뒤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고 쓴 간판을 내걸고는 읍내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천국의 꿈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 같았으나 때때로 하계에 내려와서 빚쟁이의 성화에 식은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생각은 천국을 뛰어다니면서도 두 다리를 밀가루 속이 처박고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외손자의 일 따위는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생각이 나면 프랜치스의 손을 잡고 뒤뜰로 데리고 가서는 봉지에 넣은 빵부스러기를 참새들에게 뿌려 주곤 했었다. 인색하고 살림도 잘 꾸려가지 못하는 미세스 그레니는 남편의 잇달은 실패를-자기 가게의 마부나 점원에게 속아서 빵 굽는 솥을 하나 하나 팔아 버리고 드디어는 싸구려 빵집으로 전락하기까지-몹시 불안스럽게 생각해 온 터이므로 이내 프랜치스의 일도 귀찮은 짐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를 맡을 때에 함께 붙어 온 70파운드의 매력이 사라져 버리자 이 흥정은 결국 손해를 보았다고 바로 후회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쩌지도 못하는 가난에 시달리고 있던 그녀에게는 프랜치스의 양육비와 학교의 수업료 등은 견딜 수 없는 부담감이었고 고민 거리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식비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체념하고는, 그 외는 한 푼도 들일 수 없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프랜치스의 바지가 다 해어지자 다니엘이 젊었을 때 입던 헌 녹색 윗도리를 바지로 고쳐 입혔는데, 그 우스꽝스러운 무늬나 색깔이 읍내에서는 웃음거리가 되었고, 프랜치스를 한층 비참한 처지로 만들뿐이었다. 말캄의 수업료는 언제나 어김없이 지불되었으나 프랜치스의 수업료는 많은 아이들 앞에서 수업료 체납자로 불러 세워진 후, 굴욕에 떨면서 창백한 얼굴이 되어 그녀에게 애걸하러 가기 전에는 언제나 잊어버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런 때는 으레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심장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다는 얼굴을 하고서 마치 피라도 빨리는 표정으로 잔돈만을 골라 던져 주곤 했다. 프랜치스는 모든 것을 견디고 참았다. 그러나 의지할 곳 없는 외톨이라는 것이 어린 프랜치스로서는 가장 참기 어려운 슬픔이자 고통이었다. 슬픔에 미칠 것 같을 때에는 어딘가 송어라도 낚을 수 있는 개천이 없을까 하고 혼자서 따분한 시골길을 방황하기도 했다. 때로는 항구를 떠나는 기선을 바라보며 목적도 없는 동경에 모자챙을 잘근잘근 깨물며 절망감을 달래는 일도 있었다. 서로 용납이 되지 않는 종파 사이에서 태어나 혼자 남겨진 프랜치스로서는 어찌하면 좋을까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타고난 밝고 영리한 머리는 둔해지고 얼굴의 생김새까지도 음산해져 가고 있었다. 오직 그에게 즐거움이 있다면, 말캄과 미세스 그레니가 외출하고 집에 없는 날 부엌 난로 옆에 다니엘과 마주 앉아 외할아버지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담은 얼굴로 잠자코 성서를 읽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다니엘은 특히 종교에 관해서는 프랜치스의 자유에 맡기고 절대로 간섭하지 않으리라고 암암리에 굳게 마음먹고 있었으나-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설교하는 그가 어떻게 남의 종교의 자유를 속박할 수가 있을 것인가-이것 또한 미세스 그레니가 볼 때는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자기와 같이 영원히 복받은 '그리스 교도'에게는 자기의 딸이 저지른 바보같은 행위의 유물인 이 손자는 파문에 해당하는 저주의 씨앗이며, 이웃의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상태가 최고조에 달한 것은 그로부터 일년 반이 지난 후였다. 성적이 좋은 프랜치스는 전교 글짓기 대회에서 불행하게도 말캄을 꺾어 버린 것이다. 외할머니는 이제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몇 주일이고 계속해서 잔소리를 하게 되자 드디어 외할아버지도 굴복해 버렸다. 집안이 때마침 파산에 직면해 있었으므로 프랜치스의 교육은 그만 중단하도록 상의가 되었던 것이다. 미세스 그레니는 몇 개월 동안 보인 적이 없는 미소를 능글맞게 지으며 어린애라고는 하지만 너는 똑똑하니까 집안 일을 돌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지금부터 학교는 그만두고 사내답게 단념하고 일터로 나가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열두 살의 프랜치스는 이렇게 해서 주급 3실링 6펜스의 리벳공으로서 달로 조선소에 근무하게 된 것이다. 일곱 시 십오 분쯤 설거지를 끝낸 프랜치스는 조그만 거울 앞에 서서 대충 머리 손질을 하고 그대로 집을 나왔다. 밖은 아직 어둡지 않았으나 밤공기가 차가워서 기침이 나왔다. 옷깃을 세우면서 큰길로 들어섰다. 그는 마차를 세워 놓은 공터를 지나서 달로 양조장 앞 모퉁이에 있는 병원까지 왔다. 빨강과 녹색의 약병을 그려 놓은 밑으로 '닥터 서더렌 탈록 내과 및 외과'라고 쓴 네모난 간판을 보고 프랜치스는 약간 입을 해죽이 벌린 채 안으로 들어갔다. 약국은 어두컴컴했으며 노회, 아위, 감초등 강한 약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쪽 벽에는 짙은 녹색 병이 가득 찬 선반이 있고, 그 끝에는 진찰실로 통하는 나무계단이 있었다. 길다란 카운터 저쪽에 의사의 장남이 윌리가 선 채로 대리석 판 위에서 열심히 약봉지를 만들고 있었다. 건강하고 주근깨투성이의 얼굴을 한 열 여섯 살의 소년은 커다란 손과 갈색 머리가 유난히 눈에 띄는, 말수가 적고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띄우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는 지금도 프랜치스에게 인사를 하면서 정다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에서 깊은 우정을 느끼며 쑥스럽다는 듯이 눈길을 돌렸다.
"그만 늦어 버렸어, 윌리!"
프랜치스는 카운터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도 그래......그리고 나는 아버지 대신 약을 전해 주지 않으면 안 되거든."
윌리가 암스트롱 의과대학에 가게 되면서부터 탈록 박사는 농담 삼아 자기 아들을 자기 조수라고 부르곤 했다. 두 사람은 잠시 잠자코 있었으나 이윽고 윌리가 조용히 프랜치스 쪽으로 눈을 돌렸다.
"결심은 했니?"
프랜치스는 그때까지도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싶은 생각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듯 입을 꼭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프랜치스."
윌리의 순박하고 믿음직한 얼굴이 찬성의 뜻을 표하면서 활짝 빛났다.
"나 같으면 도저히 그렇게 참고 견디지 못했을 거야."
"나도 마찬가지야" 하고 프랜치스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만......외할아버지와 너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참아 온 거지."
그의 홀쭉한 어린 얼굴은 그늘이 져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귀뿌리까지 빨개졌다. 윌리의 얼굴도 동정으로 붉어졌다.
"기차시간은 알아두었어. 토요일에 알스테드를 여섯 시 삼십오 분에 떠나는 직행 열차가 있어.....쉿! 아버지가 오신다."
윌리가 갑자기 말을 중단하고 주의를 주듯 프랜치스를 보았을 때 진찰실 문이 열리고 탈록 박사가 마지막 환자를 전송하면서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까다롭고 성급한 사람이었으며, 희끗희끗한 트위드를 입고 있었다. 거무스름한 얼굴에 곱슬곱슬한 머리와 윤기 있는 수염 등은 모기에도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그는 스스로 자유 사상가라고 말하고, 로버트 잉가솔(미국의 법률가이며 자유 사상가)이나 다윈(<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영국의 박물학자이며 진화론의 창시자)교수의 제자임을 자칭했다. 읍내에서는 좋지 않은 평판을 받고 있었으나, 막상 마주 대하고 보면 전혀 흠잡을 데가 없는 아주 매력적인 데가 있었다. 그것이 환자에게는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것인가를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프랜치스의 볼이 홀쭉하게 야윈 것을 보고 박사는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이봐, 프랜치스, 이제 또 한 사람 죽게 됐구나. 아니 지금 당장에 그런다는 것은 아니고. 그러나 시간 문제야, 불쌍하게시리. 나이도 어린놈이......."
프랜치스의 얼굴에 순간 씁쓸한 미소가 지나갔다. 그는 프랜치스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똑바로 프랜치스를 쳐다보며 문득 자기의 어두운 소년 시절을 떠올렸다.
"기운을 내라. 백년만 지나며 누구나 결과는 똑같이 되는 거야."
프랜치스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박사는 껄껄거리며 웃고 나서 모자를 뒤로 젖혀 쓰곤 마차용 장갑을 끼면서 방을 나가 버렸다. 그리고 마차에 올라타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윌리, 잊지 말고 프랜치스를 저녁 식사 때에 데리고 오너라, 알았니? 그리고 아홉 시에는 따끈한 차를 부탁한다."
한 시간 후 약을 전해 주고 두 소년은 표현할 수 없는 우정을 서로 느끼면서 윌리네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공원을 바라보고 있는 다 낡은 집이었다. 내일 모레 결행하기로 한 대담한 모험을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프랜치스의 마음에는 희망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윌리 탈록과 함께 있기만 한다면 자신의 장래도 결코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우정은 싸움을 하고 나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것은 아직 프랜치스가 학교에 다니고 있을 무렵의 일이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카슬 가를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을 때 윌리의 시선이 가스공장 옆의 허술한 카톨릭 성당에 머물렀다. "얘들아!" 하고 윌리가 갑자기 기운찬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들 중에 6펜스 가지고 있는 사람 있니? 윌 성당에 들어가서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자." 그리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일행 가운데 프랜치스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를 보자 윌리는 왠지 부끄러워 얼굴을 밝혔다. 별로 의미도 없는 그 바보스러운 농담은 말캄 그레니가 '바로 이때다!' 하고 선동하여 교묘하게 싸움의 기회를 만들지만 않았더라도 아무 일 없이 잊어 버렸을 일이었다. 모두에게 선동되어 프랜치스와 윌리는 공원으로 가서 승부도 나지 않는 피투성이의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서로 조금도 굽히지 않고 용감히 싸운 그 싸움은 참으로 근사한 격투였다. 어두워졌기 때문에 승부 없이 끝내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당사자들은 싸울대로 싸웠으므로 이미 그것으로 충분했었다. 그러나 구경꾼들의 잔인성은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가 파하자 두 소년은 비겁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서로의 얼굴을 다시 치고 받았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을 두 소년은 투계처럼 맞붙어 비열한 친구들을 위하여 구경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유도 없으려니와 끝도 없는 이 비인간적인 싸움은 두 사람으로서는 슬픈 악몽이 되었다. 그런데 다음 토요일, 그들은 우연히 마주쳐서 대면을 하게 되었다. 어색한 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격렬한 충동에 사로잡혀서 서로의 목을 얼싸안았던 것이다. 윌리는 엉엉 울면서 말했다.
"나는 싸움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난 너를 좋아해! 좋아한단 말이야!"
프랜치스도 시퍼렇게 멍든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윌리, 나도 네가 달로에서 제일 좋아......."
두 사람은 공원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흙투성이의 잔디밭의 한가운데에 음악당이 덩그렇게 서 있고, 녹슨 창살이 보이는 공동 변소가 그 건너편에 보였다. 등받이가 떨어져 나가 의자가 놓여 있고, 그 근처에는 창백한 얼굴을 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부랑자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뭔가 떠들썩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프랜치스는 외할아버지가 설교하고 있는 곳을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깨닫고 움찔하고 놀랐다. 변소 반대쪽 한 구석에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가 있으라' 라고 노란 글씨로 쓴 빨간 깃발이 꽂혀 있었다. 그 깃발 아래에는 휴대용 올간이 놓여 있고 그 앞 의자에 미세스 그레니가 순교자와 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깃발과 올간 사이의 낮은 단상에 서서 30명 정도의 청중에게 에워싸여 있는 것은 '다니엘 성자'였다. 두 사람이 그곳에 갔을 때 마침 다니엘은 개회 기도를 마치고 막 설교를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모자를 벗어 든 채 머리를 뒤로 젖히고 설교를 시작하는 그의 음성은 온화하고 아름다웠다. 타오르는 신념과 단순한 마음씨를 그대로 나타내는 목소리였다. 그의 교리는 동포애의 정신이며, 이웃과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을 표방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서로 도우며 세계에 평화와 선의를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그의 그 이상으로 인류를 인도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교리라 하겠다. 그는 어떠한 교회와도 분쟁을 일으키는 일은 없었으나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힐난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참다운 겸양과 자비이고 또한 관용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러한 덕은 단순히 말로만 주장하는 것은 무가치하며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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