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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3호 - 2024.10.25. 금요일(음력 : 9.23.)
angelo@nownforever.co.kr / 風文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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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참좋은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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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화낼 줄은 안다. 그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꼭 화를 내야 할 올바른 대상에게, 올바른 정도껏, 올바른 때에, 올바른 목적을 위해, 올바른 방법으로 화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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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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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명사의 띄어쓰기
문장에서 각 단어는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두 단어 이상으로 된 고유명사는 ‘한국 대학교’처럼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고유명사는 전체가 하나의 단어처럼 기능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다른 요소가 개입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한글맞춤법에서는 두 단어 이상으로 이루어진 고유명사는 ‘한국대학교’처럼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단,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단위 별로만 묶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학교 사범 대학’은 ‘대학교 단위’와 ‘대학 단위’로 나뉜다. 따라서 ‘한국대학교 사범대학’과 같이 붙여 쓰는 것은 허용되지만, ‘*한국대학교사범대학’처럼 서로 다른 단위를 묶어서 전체를 붙여 쓰는 것은 안 된다는 뜻이다.
‘홍 사장’, ‘길동아!’처럼 성과 이름은 제각각 독립적인 단어로 쓰일 수 있다. 따라서 성과 이름도 띄어쓰기의 기본 원칙을 따르면 ‘홍 길동’과 같이 띄어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에서는 성과 이름을 붙여 쓰는 것이 통례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보통 붙여 써 왔다. 더구나 우리나라 성씨는 대개 한 글자로 되어 있어 독립적인 단어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붙여 쓰더라도 성과 이름을 구분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그래서 한글맞춤법에서는 성과 이름을 반드시 붙여 쓰도록 하고 있다. 이름과 비슷한 호나 자도 ‘이율곡, 이태백’처럼 성과 붙여 쓴다.
그런데 ‘남궁, 황보’처럼 성씨가 두 글자일 때는 성과 이름이 혼동될 수가 있다. ‘황보영’으로 쓰면 ‘황씨 성에 이름이 보영’일 수도 있고, ‘황보씨 성에 이름이 영’일 수도 있다. 이렇게 성과 이름이 혼동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는 ‘황보 영’과 같이 띄어 쓰는 것이 허용된다.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고급지다
우리는 규범을 근거로 언어 사용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그런 지적을 받으며 사용되던 말이 자리를 잡고 나면 그 말을 근거로 규범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고급진 옷차림을 한 남자”나 “실내 장식이 세련되고 고급졌다.”는 요즘 많이 쓰이는 표현이지만 규범에는 맞지 않는다. 규범대로라면 ‘고급지다’는 ‘고급스럽다’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규범의 제약에도 ‘고급지다’는 더 널리 쓰이면서 도리어 규범을 바꿀 기세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고급지다’가 ‘고급스럽다’를 대체해도 자연스러울 만큼 접미사 ‘-지다’와 ‘-스럽다’의 의미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접미사가 ‘그런 성질이 있음’이란 의미를 공유하더라도 그 쓰임이 항상 같은 건 아니다.
○ 값지다 × 값스럽다
○ 멋지다 ○ 멋스럽다
× 사랑지다 ○ 사랑스럽다
? 고급지다 ○ 고급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위와 같은 용법에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급지다’가 널리 쓰이게 되니 규칙의 호위를 받지 못하는 규범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고급지다’의 확장을 막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고급지다’가 확장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지다’와 ‘-스럽다’의 쓰임에 ‘고급지다’를 유추할 수 있는 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멋지다’와 ‘멋스럽다’는 모두 가능한데, ‘멋스럽다’에서 ‘고급스럽다’를 연상하는 일이 잦아지면 어떻게 될까? 머릿속엔 “멋지다 : 멋스럽다 = X : 고급스럽다”의 틀이 생길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그 틀의 X가 ‘고급지다’로 채워질 것이다. 게다가 ‘고급지다’에서 ‘값지다’를 연상하는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연결 고리에서 ‘고급지다’가 자리 잡게 되면 ‘값스럽다’가 널리 쓰이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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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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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하늘 - 윤동주
제비는 두 나래를 가지었다.
시산한 가을날
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리운
서리 나리는 저녁
어린 영은 쪽나래의 향수를 타고
남쪽 하늘에 떠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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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꽃 핀 벌판 - 김수영
疲勞(피로)는 都會(도회)뿐만 아니라 시골에도 있다
푸른 연못을 넘쳐흐르는 장마통의
싸리꽃 핀 벌판에서
나는 왜 이다지도 疲勞에 집착하고 있는가
汽笛(기적)소리는 文明의 밑바닥을 가고
形而上學은 돈지갑처럼
나의 머리 위에서 떨어진다
<1959.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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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 이해인
나의 神은 잠잠하다
바람 속에만 말씀하신다
귀 막아도 들리는
가슴 속 파도 소리
목마르다
목마르다
바람 불면
바람 속에 나는
혼자일 수 없다
해질녘 바다에서
내가 만난 영혼들이
손을 내밀고
끝없이 보채는
당신의 기침 소리
그 소리 비켜
이제는 어디로도
떠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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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흰구름 단상 1~6)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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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엔가
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골목길과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던 꽃밭이
숨어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희망적인 일이겠니
세상 어디엔가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두근거려지는 일이겠니!`
나태주 시인의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라는 시집 속의 모든 말들은 모두 깨끗하고 아름답다. 비오는 날, 숲의 향기를 맡으며, 새소리를 들으며 이 시집을 읽으면 사슴 닮은 눈을 지닌 옛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늘 좋은 시를 쓰고 싶다. 어쩌다 시상이라도 떠오르면 그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지에 적어서 베개 밑에 깔고 자곤 한다. 자다가도 생각이 나면 적어 놓으려고, 그리고 새로 솟은 생각을 더 깊이 익혀 두고 싶어서..., 남들은 단 몇 분 만에 읽어 버리고마는 짧은 시라도 쓰는 이에게 그것은 하나의 커다른 기다림이고 인내의 열매이다.
8
`우리들보다 더 힘들게 살면서도
언제나 우리들보다 더 먼저 용서하는 새들`
`가벼운 것일지라도
새들은 가끔씩 깃털을 버리는가 보다
버릴 것은 버리면서
가볍게 하늘을 나는가 보다`
권영상님의 새들에 대한 시 몇 구절을 새소리 들으면서 읊어 보았다. 최근에 작가로부터 받은 동시집 <아흔아홉 개의 꿈>의 갈피마다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시어들. 그의 동시들은 내가 가장 많이 편지나 카드에 인용하는 시이기도 하다. 오늘은 고운 꽃다발을 선물로 받아 마침 먼 나라에서 수녀원을 방문한 손님에게 드렸더니 매우 기뻐하였지. 결국 선물은 돌고 도는 것,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만을 위해서 꽉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좀 아까운 생각이 들더라도 더 필요한 이에게 선뜻 내어 놓을 수 있는 선선함이야말로 인색한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9
하얀 마가렛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어찌 꽃들은 그리도 자기의 때를 잘도 알아 피고 지는 것일까. 늘 조심스럽고 성실하면서도 명랑한 모습의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조촐한 꽃. 수도자의 모습도 이와 같았으면 한다. 우리 성당 앞 십자로의 느티나무는 어느새 키도 많이 크고 잎사귀도 많이 달았다. 1991년 9월, 수녀회 60주년 기념식수로 심은 나무가 해를 거듭할수록 풍채를 자랑하고 있구나. 느티나무야. 너는 매일 성당의 종소리를 제일 가까이 듣고 있지? 수녀들의 인사 이동이 있을 적마다 떠나는 이들과 보내는 이들의 겉모습과 속마음을 누구보다 많이 지켜볼 수 있지? 우리집에 드나드는 다양한 손님들의 표정과 마음도 읽을 수 있지? 네가 곁에 있으므로 우리는 늘 정겨운 느낌이 들고 든든하단다.
10
옷장에 걸어 두었던 옷들을 다 꺼내어 다림질하고, 떨어진 곳은 꿰매고 하는 일이 즐거웠다.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서류를 만지는 일과는 다른 느낌이다. 늘 별것도 없는 빤한 살림인데도 한번 움직이려면 무엇이 그리 많은지. 좀더 깔끔하고 소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미루어 두곤 하는 나를 반성한다. 정신의 소유도. 물질의 소유도 모두 필요 외에 여분으로 갖는 것은 자유로운 삶을 방해한다. 예전에 비하면 수도자의 삶의 양식도 많이 편리해지고 부유해졌다고 볼 수 있다. 각 개인이 자기 스스로 절제하고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타락하기 쉬울 것이다. 원내에 새 건물을 짓는 어수선한 틈을 타 30년 만에 도둑이 두 번이나 들어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한번은 우리가 깊이 잠든 밤에, 한 번은 우리가 길게 기도하는 주일 아침에 주방의 유일한 철창까지 부수고 들어와 마음놓고 볼일을 본 듯하다. 경리실의 높다란 유리문을 깨고 약간의 현금을 훔친 뒤 의자 뒤에 커다란 발자국까지 남겨 놓고 갔다. 그후로 할 수 없이 곳곳에 쇠창살을 하게 되니 날마다 투명하게 탁 트인 유리창으로 꽃, 나무, 하늘, 바다를 내다보던 나의 기쁨이 절반은 줄어든 셈이다. 30년 전의 이곳 산, 바다, 언덕은 평화로웠고, 문단속을 좀 소홀히 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인심도 갈수록 각박해지고 이런 속에 살아야 하는 우리의 모습도 답답하고 우울하다. 하지만 몇 차례나 우리를 몹시 놀라게 한 밤손님의 그 마음도 편치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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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 우리 여기 놀이터에서 아주 조금만 놀다 가도 돼요?”라고 우리가 외출할 때마다 동네 어린이들은 우리 유치원을 가리키며 묻곤 한다. “그래. 조금만 놀다 가라.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지. 응?” 하고 대답하며 그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 없음을 아쉬워한다. 어린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마음껏 뛰놀아야 어른이 돼서도 구김살없는 사랑을 할 수 있고 인생의 어려움도 잘 헤쳐 갈 수 있을텐데... 아이들의 웃음을 보니 내 마음도 밝아졌다. <시나라고 가는 길>이라는 어린이 시 낭송집도 들으며 동심으로 돌아가 본 날이었다. 어린이들의 순결한 목소리를 들으면 괜히 눈물부터 난다.
12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성을 내는 것은 늘 이유가 있음을 정당화시키고 남이 자기에게 성을 내는 것은 사소한 부분이라도 못 견디며 억울해 하는 경향이 있다.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적일 때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온유해지기는커녕 그 반대가 되어가는 모습을 나 자신에게서도 본다. 오늘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 `신경질 난다`는 말을 혼자말로 여러 번 하며 나 스스로 놀랐다. 갈수록 인내심도 없고 너그러움보다는 옹졸함이,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이 더 크게 자리를 잡아 가니 큰일이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더라도 결코 막말을 해서는 안되는데... 용서, 관용, 인내, 이런 것들이 나이들수록 더욱 어려워진다면 나는 분명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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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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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란 산빛이 있어 - 정광수
가을이란
산빛이 있어
좋다.
허물어져 버린 내 가슴에
문득 스쳐 가는
바람.
가을빛은
가슴에서 나온다.
나뭇잎 사이에서
팔랑팔랑 익어 가는
바람.
늦은 꽃대궁 사이에서
일어나는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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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 - 이준관
별을 보았다.
깊은 밤
혼자
바라보는 별 하나.
저 별은
하늘 아이들이
사는 집의
쬐그만
초인종
문득
가만히
누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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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외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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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 아흐마또바 / 이종진 옮김
저녁 때의 비스듬한 길이
내 앞에 펄쳐져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어린 목소리로
“잊지 말아요.” 속삭이던 사람
오늘은 벌써 불어 예는 바람뿐
목동의 소리와
해맑은 샘가의
훤칠한 잣나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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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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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감성사전
말단사원
하는 일은 가장 많으면서도 받는 대우는 가장 적은 고용인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제일 먼저 참혹한 겨울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작은 따스함에도 쉽게 언 가슴이 녹고 작은 감동에도 쉽사리 눈시울이 젖는다. 아직 기계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공처가
마누라에게 공포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남편들을 일컬어 공처가라고 한다. 공처가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면 경처가가 되는데 마누라 옷자락만 스쳐도 경기를 일으키는 남편들을 말한다. 모두 마누라를 상전처럼 떠받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남편을 공처가나 경처가로 만드는 여자는 남편으로부터 사랑 받기를 포기한 여자다. 사랑 받기를 포기하고 존경받기를 갈망하는 여자다. 남편의 가슴 안에 안주하기보다는 머리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여자다. 비록 평지풍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애처가보다 행복해 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구파
학점구걸파의 준말.
개밥그릇
개의 먹이를 담을 수 있는 지상의 모든 그릇.
고드름
겨울의 수염. 동장군의 이빨. 북풍의 발톱.
편지
자신이 생각이나 마음을 문자로 바꾸어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통신수단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문자의 발생연대와 편지의 발생연대는 동일하다. 포괄적 개념으로 정리하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이 편지나 다름없다. 오늘날은 고독의 터널 속에 갇힌 사람들의 생존여부를 알리는 통지서로 널리 이용된다. 때로는 한 줄의 편지가 인생을 바꾸게 만들고 때로는 한 줄의 편지가 영혼을 구원케 만든다. 봄날의 햇빛 속에 흩날리는 꽃잎도 겨울의 바람 속에 흩날리는 눈보라도 소식의 천사 가브리엘이 배달하는 하나님의 편지다. 그 속에 온 우주가 아름답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다.
벽
일반적으로 어느 지역이나 지점을 수직의 면으로 가로막아 공간을 한정시키는 설치물을 벽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는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점을 벽이라고 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인간들은 마음 안에도 벽을 만든다. 벽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다. 어떤 군주들은 악법으로 써 나라의 벽을 만든다. 벽을 만들어 온 백성을 가둔다. 벽은 가두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안에 벽이 없는 인간은 마음밖에도 벽을 만들지 않는다. 바로 자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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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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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호놀룰루 영화관 (1)
여행 가방에 냉국수영 국수 다발을 열다섯 뭉치아 넣어 가지고 하와이로 날아왔다. 이런 일은 그 어떤 가이드 북에도 실려 있지 않을 테지만 -아마도 실려 있지 않겠지-하와이에서 먹는 냉국수는 정말 일품이다. 하와이에 장기간체재 하려는 분은 반드시 냉국수용 국수를 지참하십시오. 그리하여 지금 한 한달 예정으로 호놀룰루에서 한가하게 휴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삼스럽게 무슨 하와이냐고 한다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하루 종일 해변에서 뒹굴뒹굴 하면서 수영하고 싶으면 수영하고 , 밤에는 술을 마시든가 영화를 보든가 하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다면 하와이만큼 편안한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 냉국수까지 곁들여진다면 지상 천국이 따로 없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평판이 좋을 영화는 론 하워드가 감독한 <코쿤>으로 극장은 평일에도 상당히 붐빈다. <코쿤>이란 누에고치를 일겉는데, 어째서 그런 제목이 붙었는가를 설명하고 나면 영화가 재미없어지니까 설명은 삼가겠다. 플로리다의 고급양로원에서 여생을 천천히(그러나 무척 쓸쓸하다) 보내고 있는 노인들과 그 곳을 찾아온 우주인과의 교감을 그린 훈훈한 온정이 스며 있는 작품 - 대충 이런 내용인데, 뭐야 그렇다면 <E.T>하고 똑같잖아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옳은 말씀, 정말 똑같다. 내 주위에 있던 미국인 관객들은 모두 훌쩍훌쩍 울고 있었는데, 그런 점까지 <E.T>랑 진짜 비슷하다. 그러나 같은 론 하워드 감독의 작품인 <스플래쉬>와 <E.T>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영화라고 표현하는 게 보다 엄밀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E.T>가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코쿤>의 주인공은 쭈글쭈글한 노인네들이니, 그런만큼 이 영화의 시점이 <E.T>쪽보다 한층 더 굴절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노인 역을 맡은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도 볼 만한 것으로, 특히 던 아메슈가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장면 같은 경우 대단한 호평이었다. 론 하워드로 말하자면 <아메리칸 그래피티>에서 어딘가 모르게 연약해 보이는 남자 우등생 역을 맡았던 사람인데,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제법 무시 못할 것이다. <스플래쉬>는 일본에서는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지만, 이 <코쿤>은 꽤 분위기가 좋은 영화니까 일본에서도 히트를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등장 인물의 대부분이 노인과 우주인인 영화 따위, 일본의 영화 회사라면 기획 단계에서 벌써 제작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코쿤>을 명랑하고 긍정적인 우주인 영화라고 한다면, 토비후퍼의 신작 <라이프 포스>는 우울하고 부정적인 우주인 영화다. 원작자는 콜린 윌슨이라고 하는데, 책을 아직 읽지 못했으니 비교할 길이 없다. 간단히 말해서 <에어리언>과 <존비>와 <고스트 바스터즈>를 뭉뚱그려서 토비 후퍼 특유의 그로테스크 지향으로 양념을 한 것과 다름없는 작품이니까, 그런 부류의 영화를 싫어하는 분들은 안 보시는게 현명하리라. 나는 이런 류의 영화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었지만, 얼마간 장난 같은 느낌이 있어, 한 중간쯤까지 보다 보면 싫증이 난다. 후퍼의 주무기는 적은 예산으로 만든 싸구려 영화의 악취미적인 것이니까, 이 정도의 대작을 마지막까지 구경하는 것은 좀 힘겨울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도 집요하게 악취미적 경향을 살리고 있는 부분을 보면 과연 대단하다 싶다. 관객은 드문드문. 존 부어맨의 <에메랄드 포리스트>는 개봉 첫날이라는 이유도 있어 제법 관객들로 붐볐다. '실화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전 광고가 있었는데, 줄거리가 너무 매끈하게 처리되어 있어 어디까지가 '기초'인지 잘 모르겠다. 경험상 '실화에 기초를 두었다'는 헐리우드 영화만큼 그 사실 여부가 수상쩍은 게 없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원주민에게 아들을 납치당한 아버지가, 십 년에 걸쳐 아마존 정글을 헤매며 아들의 행방을 찾아 다닌다는 얘기인데, 부어맨 류의 원시적 폭력성이 여기저기에 드러나 있어 그 나름으로 박력은 있다. 그러나 얘기의 흐름이 너무 매끄러워 도중에는 '뭐야 뭐야'하는 식이 됐다가, 결국 마지막 부분에는 서둘러 얘기를 후딱후딱 끝마치는 꼴이 되어 버린다. 부어맨으로 말하자면 뭐니뭐니 해도 <포인트 블랭크> <탈출> <엑스컬리버> 이 세 작품이 최고의 영화이고 나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나머지는 약간 격이 떨어진다. 식인종들이 모두 보조를 맞추어 정글 속을 '우호, 우호, 우호'하고 행진을 하는 장면은 타잔 영화 같기도 한 게 아주 재밌다. 부어맨이라고 하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영화를 만드는 건지 잘 알 수 없어 찜찜하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레드 소냐>를 감독한 리차드 프래이셔 쪽이 한술 더 뜨는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코난 더 그레이트>와 <코난 더 디스트로이어>하고 계속된 작품인데, 한 작품이 나올 때마다 전압이 약해진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터라, 그래도 호의적인 안목으로 보고 있는 편인데, 그럼에도 <레드 소냐>는 좀 심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터미네이터>로 평판이 쑥 올라간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도 <레드 소냐>에서는 전혀 빛이 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관객석 쪽도 그다지 흥이 나지 않는 듯 박수도 없다. 로버트.E.하워드(미국의 작가)의 원작 중에는 훨씬 더 스릴이 있고 와일드한 작품이 얼마든지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평범하고 시시하기 짝이 없는 작품을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페니 라이더>와 <실버래드> 이 두 흥미진진한 서부극에 대해서는 내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COMING SOON!
호놀룰루 영화관(2)
지난 주에 이어 영화 이야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페일 라이더>는 오래간만의 대형 서부극이라는 이유로 업계의 주목을 모았는데, 개봉 첫 주에 벌써 흥행 순위 넘버 원으로 치솟았다. 이스트우드의 인기는 과연 놀랄 만한 것이다. 관객 쪽의 반응도 활기차고, 작품의 완성도도 꽤 높다. 스토리는 대충 <쉐인>하고 비슷한데, 그렇다고 해서 <쉐인>의 팬들이 <페일 라이더>를 탐탁해 할까 하면, 전혀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쉐인>과 <페일 라이더>는 줄거리가 비슷한 반면 내용상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기묘한 상관 관계에 있는 영화다. <쉐인>의 알란 랏드가 전후의 민주주의적(이건 물론 일본의 영화 관람법이지만) 모랄리즘의 분위기를 띠고 있었음에 반해, 이스트우드는 슈퍼 내츄럴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무기적인 마초 역을 맡고 있어, 까끌까끌한 감촉이 무척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비평도 <페일 라이더>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장르에서 한 작품을 낼 때마다 세련미를 더해 가고 있다'라든가, '과거 십 년 동안 최고로 완성도가 높은 웨스턴 무비'라는 의견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카메라는 블루스 새티스가 맡았는데, 영상은 <타이트 로프>때처럼 극단적으로 어둡지는 않다.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뉴욕에서는 웬지 흥행에 실패한다는 정설이 있는데, 이번에는 내용이 좋다는 평판이 나 뉴욕 동부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같은 마초 영화이면서 <람보2>쪽은 비평가들에게 곤죽이 되도록 혹평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억 달러나 수익을 올려, 올 여름 최고의 대 히트작이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다음에 인질 사건이 일어나면 미국이 취해야 할 길은 이미 결정돼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신문에는 바주카포를 맨 레이건을 그린 만화가 실렸는데, 표제에는 <레간보2>라고 씌어 있었다. 베이루트 사건에 대한 미국의 일반인들이 품고 있는 욕구 불만은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이상으로 심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로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지게 개봉되었다고 할 구 있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우익적 정치 메세지에 대해 생리적인 불쾌함을 표명하고 있다. 스텔론 자신도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이긴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과연 상당하다. '그렇다면 스텔론 씨는 베트남 전쟁 당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하고 어느 신문이 지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신문에 의하면 그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매일 체중 조절을 하면서(그의 어머니는 트레이닝 센터를 경영하고 있었다) 열아홉살ㄸ 부잣집 자식들만 모아 놓은 스위스의 어떤 미국 대학에 입학했는데, 거기에서는 여학생들에게 체조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런 후에 마이애미 대학 연극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베트남 전쟁을 종결되고 말았다. 이런 남자가 베트남 전쟁을 다시 한번 하라는 따위의 말을 내뱉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게 그 글을 쓴 컬럼니스트의 의견이다. 뭐 그건 그렇다치고, 작품 자체는 지극히 평범하여 딱히 평을 하고 자시고 할 만한 영화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부극이라면 <페일 라이더>가 개봉되고 일주일 후에 개봉된 로렌스 캐스던 제작, 감독, 각본의 <실버래드>가 정말 멋진 서부극으로, 내 자신의 취향으로 하자면 <페일 라이더>보다 이 쪽이 몇 배나 더 재미있다. 간단히 말해, 지금까지 히트한 서부극의 재미있는 부분을 전부 긁어모은 데다, <스타워즈>나 <레이더스>적인 속도감을 가미하여 보는 이들을 스크린 속으로 쭉쭉 빨아들이는 타입의 작품으로, 저거야 바로 저거 하는 사이에 두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과연 로렌스 캐스던이다라고 할까, 정말 대단하다. 스토리 자체는 이른바 '흔히 있는 얘기'인데, 연출도 카메라의 움직임도 홀딱 반할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신선하여, 지루한 부분이 한군데도 없다. 캐스팅도 절묘. 신문은 '만약 이 영화가 서부 영화를 부활시킬 수 없다면, 이후 어떤 영화도 서부극의 부활을 가능케 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절찬을 했는데, 나 역시 동감이다. 스필버그가 프로듀서를 맡고 스토리를 쓴 <구니스>는 완전히 기대에 어긋났다. 공전의 양식이 활력을 잃기 시작하던 무렵의 디즈니 영화와 실로 비슷하다. 스필버그도 이쯤에서 조금 자세를 바로잡지 않으면 팬들에게 싫증을 줄 것 같다. 신문에 의하면 올 여름 시즌의 영화는 흥행이 상당히 저조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작년 여름에도 나는 미국에 있으면서 한 달 반 정도 영화를 마구 봐댔는데, 그에 비하면 올해의 작품군에는 어쩐지 활기가 부족하다. 무조건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실버래드>정도이고, 그 영화도 영화관이 터져나갈듯 만원은 아니었다. 작년에는 <고스트 바스터즈> <크레믈린> <가라테 키드>등, 영화관이 시끌법석한 영화가 줄지어 있었다. 미국인들의 견해로는 '작년에는 올림픽도 있었고, 마이클 잭슨의 투어도 있었고, 대통령 선거도 있었고 해서, 그런 상승 효과가 작용했지만, 올 해는 축제가 다 끝난 뒤니까'라서 그렇단다. 영화뿐만 아니라, 올 미국의 여름은 상당히 저조하다. 그것만 저조한 게 아니다. 나의 서핀 솜씨도 몹시 저조하다. 중고 서핀 보드를 사서 매일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는데, 이 부근 소년들처럼 재주 좋게 파도를 타기가 꽤 힘들다. 파도에 혼쭐이 나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도 몸이 울렁울렁하는 지경이다. 쿠게누마해안(후지사와의 앞 바다, 사가미만에 있는 해안. 에노시마의 오른쪽이다. 왼쪽이 시치리가하마)과는 몹시 다르게 생겨 먹은 모양이다. 파도에 관한 한 권위자인 안자이 미즈마루 씨에 의하면 '한 달쯤 지긋하게 들여다 보고 있지 않으면 못 탄다'는데, 한 달이나 파도를 보고 있다가는 그것만으로 휴가가 끝나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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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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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8. 지혜로 보는 생과 사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려는 사람은 낮아지고,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고 성경은 말한다. 교만하면패망하고 거만하면 넘어지는 게 세상 이치이다. ‘군자는 죽은 뒤에 이름이 칭송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하므로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상황이라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절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논어는 가르치고 있다.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위와 같은 기본적인 여건을 갖춘 시람으로서 자신을 낮추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켜야 한다. 남아프라카의 만델라 대통령을 보자. 그는‘무장투쟁을 포기하겠다’는 한 마디만 맹세하면 감옥에서 내보내준다는 백인 정권의 감언이설을 뿌리치고 27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이러한 신념 때문에‘무장투쟁을 하겠다’는 폭력적 주장을 했는데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백인 정권을 평화적으로 무너뜨려 마침내 오늘의 남아프라카 공화국이 있게 했다.
운명은 재천
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쟁터에서도 총알에‘눈’이 있는지 꼭 죽을 사람만 찾아 가는 것으로 봐서 살고 죽는 것은 운명인 것 같다. 공자는 사랑하던 제자 안연이 젊은 나이로 스승보다 먼저 죽자, 하늘이 나를 망쳐버렸구나‘라고 한탄하면서 ‘살소 죽음은 명에 있다’고 말했다. 솔로몬 역시‘현존하는 모든 것은 그 운명이 오래 전에 결정 되어 있으며 사람의 운명이 어떻다는 것도 이미 다 알려진 일이다”고 하여 인간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므로 어찌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내일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천명을 깨달아 근심하지 않으며 이를 즐기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한 마음을 가진 사람 역시 그것이 바로 그의‘운명’이니 어찌하겠는가! 운명은 재천이다.
시간에 대하여
하늘과 땅은 만물의 숙소이고 시간은 영원히 쉬지 않고 지나가 는 나그네와 같은 것. 인간의 생애는 꿈과 같이 덧없이 짧은 것이니 이 세상에서 환락을 누린다 한들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중국 시성 이태백이 읊은 시이다. 이태백은 봄날 밤에 형제 친척들과 복숭아꽃, 오얏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연회를 하면서 짧고 근심많은 우리 인생을 위와 같은 한탄조의 시로 노래하였다.
세월을 화살과 같이 흘러간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딘 욥은,“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는 날과 달수를 미리 정하고 아무도 그 이상을 살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하며 시간이 마냥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경고하였다. 품팔이꾼의 생활처럼 걱정 근심이 태산같은 우리 인생이지만, ‘내 날이 화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니, 즐거운 것을 볼 수 없구나. 그 빠르기가 날쌔게 나가는 배와 같고, 먹이를 보고 덮치는 독수리와 같구나‘라는 성경 욥기의 구절과 같이,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때’가 언제인가?
그런데 우리는 그‘때’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솔로몬은“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무도 모른는데. 어느 누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일을 말해 줄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간밤에 봄비 내려 강변가지 물이 불어나니 커다란 배 한 척이 터럭과 같이 가벼워 지금껏 미노라 공연히 애만 썼네 오늘은 강물 위에 두둥실 잘 가고 있네 강변 모래 바닥에 있는 배를 밀어보라. 끄덕도 않던 배이건만, 봄비로 물이 넉넉해지면 밀지 않아도 저절로 간다. 인간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장자는“태어나는 것도 때에 따라 오는 것이요, 삶을 잃는 것도 운명에 순응하여 가는 과정인 것이다”고 하였다. “하늘의 뜻에 따르는 사람은 생존하고 그렇지 아니하는 사람은 망한다”는 맹자의 말과 같이 천하호걸이라도 때를 못 맞추면 발목 잡힌 버마재비같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하늘을 원망해도 소용없는 일! 그러기에 사람은 때를 잘 만나야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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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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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Prestuplenie i nakazanie:1866)-도스토예프스키 1/2
해설
"죄와 벌"은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로 작가가 45세에 발표한 작품이다. 살인이라는 사건을 매개로 지식인 청년의 심리를 섬세하게 해부하여 그 당시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던 합리주의 공리주의 허무주의에 날카로운 비판을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불후의 명작이며 그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소설가로 명성을 얻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는 1865년으로 언제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쪼들리는 생활을 했으며 이 때가 경제적으로 가장 고통을 받던 시기였다. 바로 전 해에 아내와 형이 죽었고 그 때까지 형과 함께 경영하던 잡지사가 형의 죽음으로 실패하자 사업을 하면서 지게 된 모든 빚을 그가 짊어지게 되었다. 또한 형의 유가족의 생활까지 도맡게 되었다. 막대한 빚을 갚지 못하자 빚쟁이들은 그를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위협했다. 그러한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고심 끝에 완성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발표된 당시 진보적 청년들에게 조국의 급진적인 개혁 운동을 조소하고 앞에 나선 젊은 사람들의 열정적인 활동을 모독하고 헐뜯은 작품이라고 하여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그것은 작품의 인물 라스콜리니코프와 같은 유형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을 풍자했으며 라즈미힌이란 인물의 입을 빌어 사회주의의 기계주의적인 합리주의를 정면으로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추상적 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인간성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허무주의 또는 초인간주의와 하느님의 진리와의 투쟁에 대한 해답으로 "죄와 벌"을 내놓은 것이다. 대학생인 라스콜리니코프는 학자금이 떨어지고 거의 기아 지경에 빠졌다. 그는 작은 하숙 집의 지저분한 구석 방에 처박혀 있었으나 감수성이 예민한 그의 두뇌는 공상적인 이론을 세웠다 허물었다 하다가 마침내 인간을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은 기존의 도덕 및 법률에 복종할 의무를 가졌으나 선택된 비범한 사람은 법률을 무시해도 되는 권리를 가졌고 창조를 위해서는 낡은 것을 파괴해도 좋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비범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없이 새로운 인류의 도덕은 수립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한 이론으로 자기 자신을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는 무가치한 전당포 노파의 돈을 훔쳐 가치 있는 자신이 쓰는 것이 인류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고리 대금업을 하는 노파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노파를 살해한 순간부터 그의 내부에서는 양심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선과 정의라는 양심이 의지와 대항하여 그의 내면 세계에서 싸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한 갈등은 그를 정신 착란 상태에 던지고 그의 마음을 고독하게 하였다. 그는 한편으로 불안과 공포에 찬 악몽 같은 나날을 보냈으나 끈질기게 의심하는 경찰에게는 대담하고 교만한 태도로 대하는 등 극단적인 분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된 순결한 영혼을 가진 매춘부 소냐의 영향으로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을 마음대로 처치할 수 있는 비범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자기의 범행을 고백하여 자신을 법의 손에 넘기었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의 영혼이 가장 깊은 곳까지 정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형지의 죄수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덕이 어떠한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살인범의 심리와 인간 영혼의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치밀한 심리 분석과 연극의 대사를 읽는 듯한 대화의 맛은 물론 싱싱하게 살아 있는 등장 인물의 완성된 성격 묘사 그러한 것을 에워싼 작가의 위대한 정서는 천재가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치밀한 심리 분석과 묘사의 긴장감은 이 작품의 생명이다. 이 작품이 심리학계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던 것도 당연하다.
작가 약전
톨스토이, 투르게네프와 더불어 러시아 3대 문호의 한 사람이며 깊은 사상성과 문학의 현대화의 의미에서 으뜸가는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 10월 30일 모스크바의 마린스키 빈민 병원의 관사에서 태어났다. 원래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성은 나라에 공을 세운 것에 의해 '도스토예프스키'영지와 더불어 성을 수여 받은 러시아의 귀족의 성이었다. 그런데 18세기의 말경부터 가세가 기울어져 도스토예프스키가 출생하였을 당시에는 형편없이 몰락되어 있었으므로 그는 귀족이라기보다 오히려 잡계급의 처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때문에 출생부터 빈민의 비참한 생활을 몸소 겪어 잘 알고 있었다. 1848년(27세)에 무미 건조한 군대 생활에 진력이 나 사표를 제출하고 극도의 빈곤과 싸우면서 처녀작 발표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듬해 봄에 동창 그레고로비치의 소개로 시인 네클라소프가 편찬하는 문집에 첫 작품을 게재하게 되었다. 이것이 비평계의 권위자인 벨린스키를 경탄시킨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 작품의 발표 당시 도스토예프스키는 누추한 하숙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이 소설을 편집자인 시인이 읽어 줄지는 몹시 염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깊이 잠들고 있는 새벽 네 시경, 네클라소프와 그리고로비치가 찾아와서 방문을 두들겼다. 두 사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목을 얼싸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당신은 진리를 계시하였소. 당신은 예술가로서 그 진리를 부여받은 것이오. 그 재능을 소중히 다루어 언제까지나 진리에 대해서 충실히 한다면 반드시 위대한 예술가가 될 것이오" 두 사람은 그 날 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되어 밤을 새워가며 다 읽었다. 그들은 서로 울고 있었다. 흥분을 참지 못한 이 유명한 시인 네클라소프는 작가를 만나서 그 감상을 전하기 위해서 밤인데도 불구하고 무명의 천재를 방문했던 것이다. 네클라소프는 '새로운 고골리가 나타났다'라고 하였고 도스토예프스키를 추천한 대 비평가 벨린스키는 처음에는 '요즘에는 우후죽순 같이 새로운 고골리들이 튀어나온다니까' 하고 말하며 믿으려 하지 않았으나 작품을 읽은 다음 격찬하며 "그 사람을 데리고 오시오!"라고 외쳤으며 도스토예프스키를 널리 소개하였다. 그의 처녀작은 압도적인 성공을 하게 되었다. 그의 친구들은 다투어 그를 자신들의 모임에끌어갔다. 무명의 청년은 일약 러시아 문단의 총아로서 첫 발을 내디디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급속한 성공은 얼마 못가 그에게 압도적인 찬사를 뿌린 사람의 배반으로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벨린스키 일파와 그는 전혀 융합할 수 없는 타입의 인간들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벨린스키는 그에게 실망을 표시하였다. 그 후 그에게는 뜻하지 않은 사건이 생겼다. 1848년 당시 파리에 일어난 1월 혁명 이래 공상적 사회주의가 유럽 전체에 풍미할 때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제 연구 단체가 여러 개 조직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페트라셰프스키 학회'였다. 이것은 페트라셰프스키라는 청년을 중심으로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푸리에의 저서를 연구하고 러시아의 사회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푸리에주의의 정치 사상 연구 단체였는데 도스토예프스키도 가입하고 있었다. 당시의 니콜라이 1세의 전제 정치는 이것을 사상적인 음모를 목적으로 하는 비밀 결사로 간주하고 벨린스키 주위에 가까이 있던 30여 명 의 젊은 자유 사상가들을 체포하였는데 그도 그의 형제와 함께 붙들려 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귀족의 칭호를 박탈당하고 8개월 간 감옥에 갇혀 있다. 공개 심문을 받은 후 수 명의 청년들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1849년 12월 공공 광장의 사형장에서 교수형을 당하는 공포와 싸우면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눈에 문득 멀리 바라보이는 교회당의 금빛 십자가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는 어쩐지 거룩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군중이 떠들썩하더니 황제의 특사에 의하여 사형을 사면한다는 사면장을 휴대한 전언자가 달려왔다.
사형은 취소되고 대신 4년 간의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형 받게 되었다. 사형 집행의 경험은 후에 "백치"의 주인공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그 후 3일 후 쇠사슬에 묶여 시베리아로 이송되어 로글리스크의 노역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4년이라는 긴 세월을 흉폭한 살인수의 넋과 사귀며 괴로운 노역에 종사하며 무서운 고독감과 절망 육체적 고통과 싸우면서 겨우 허용된 한 권의 성경을 벗삼아 지냈다. 그 후 페테르부르크의 어느 고관의 도움을 받아 군인이 되겠다는 조건으로 출옥하게 되었다. 1866년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지 7년만에 "죄와 벌"을 발표하였고 명성을 다시 되찾았으며 이듬해에는 안나 그리고예브나와 재혼하여 다시 외국으로 나가 살게 되었다.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어떤 교활한 출판업자와 계약하여 기한까지 신작 소설을 제공하지 못하면 그의 저작권 전부를 무상으로 양도하기로 되었는데 이 기간 안으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하여 고용한 속기사였다. 그는 4년의 세월을 독일 이탈리아 등의 객지에서 이 성실한 위안자의 따뜻한 사랑 속에 행복한 생활을 보내면서 불후의 명작 "백치" 및 "악령"과 "영원한 반려"를 발표하였다. 그는 1875년에 "미성년"을 그리고 1879-80년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발표하였다. "미성년"은 영혼과 육체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인해 파멸한 벨시로프를 주인공으로 하여 영원한 여성인 소피아를 대립시켜 인간성의 근원적인 문제 즉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과의 대립 상극을 원숙기에 도달한 그의 예술적 수법으로 추구한 작품이며 그의 대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예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이 천재의 최후를 장식하기에 알맞는 인류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에 해답을 준 걸작이었는데 제2부를 구상만으로 그치고 인류의 고뇌를 예술화한 그는 사망하였다. 1880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열린 푸슈킨의 동상 제막식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연설은 청중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이 축전은 오히려 그 자신의 천재 찬미를 위하여 열린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유명한 연설은 그가 행한 최후의 연설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따뜻한 인간애와 신에 대한 반항과 문제 제기였으며 인간성의 해부와 서술은 고금을 통하여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사상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어떤 의미에서 그는 슬라브주의에 속하는데 그의 작품은 주로 대도시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같은 시대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서구의 문명을 존중한 작가인데 반하여 그는 러시아 사람의 민족성을 깊이 사랑했으며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나 슬라브의 혼 그대로를 보여 준 작가였다. 그는 종교의 힘이 엄격하였던 중세기를 거쳐 근대 문명의 영향을 받아 한없이 복잡해진 러시아의 혼을 그대로 새겨 놓은 슬라브를 그려 냈다. 끝없이 깊은 넋으로 끝없이 깊은 민족 전체의 마음을 그려낸 작가였던 것이다. 또한 도스토예프스키는 문호 톨스토이와 아주 대비되는 작가이다. 톨스토이가 외적 현실이나 생활의 객관적인 묘사를 통하여 존재의 진실을 확증한데 반하여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생활과 현실의 추악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암흑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을 형상화했다. 크로포토킨, 로맹 롤랑 등이 톨스토이를 옹호하는 데 반하여 니체, 앙드레지드 등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단연 톨스토이를 능가하는 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의 신을 잃은 인류의 실존적 혼돈의 문제에 절실한 빛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대적인 작가라는 것만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줄거리
7월 초의 무섭게 더운 어느 날 해질 무렵 한 젊은 사나이가 C골목의 어느 셋방에서 나와 방향없이 K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운좋게 계단에서 하숙집 주인 여자와 마주치는 것을 모면했다. 그의 방은 높은 5층의 다락방인데 그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벽장 같았다. 주인 여자는 그의 아래층에 살고 있었으므로 거리에 나갈 때는 항상 계단 쪽으로 열려 있는 주인집의 부엌 곁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젊은 사나이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으레 병적인 불안을 느꼈으며 그런 기분에 휘말리는 것이 스스로 창피하게 생각되어 상을 찌푸리곤 하였다. 하숙비가 상당히 밀려 있었으므로 주인 여자와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것은 겁이 많고 배짱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인데 얼마 전부터 그는 우울증에 잠겨 불안스러운 기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완전히 자신 안에 틀어박혀 모든 사람에게서 떨어져 있었으므로 주인 여자뿐 아니라 어느 누구하고 만나는 것을 피해 왔던 것이다. 그는 가난해서 꼼짝 못할 지경에 처해 있었으나 그것도 요즘에는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다. 꼭 해야만 할 일감도 그는 내던져 버리고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하숙집주인 여자 따위가 자기에 대하여 어떠한 일을 생각해 낼지라도 겁낼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계단 위에서 붙잡혀 그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저분한 헛소리나 귀찮은 독촉이나 넋두리를 대하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차라리 고양이처럼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와 몰래 슬쩍 달아나는 편이 나왔던 것이다. 거리에 나와 보니 자신이 빚이 있는 한 여자를 만나는 일을 두려워하였다는 데 어이가 없었다. 그는 묘한 미소를 띄우면서 생각했다. '어떠한 일이든 실행하려고 생각하면서 이런 하찮은 일에 겁을 먹다니! 흥 그렇다... 무엇이든지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없는데도 그저 겁 많은 탓으로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이건 확실한 논리이다. 그런데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한 걸음 새로운 독자적인 말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좀 말이 많다. 말만 떠벌리고 있으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거다.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말이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군 이건 내가 한 달 동안 밤낮으로 저 방 속을 뒹굴면서...꿈같은 것을 생각하는 동안에 떠버리 노릇을 배워 버린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무얼하려고 걷고 있는 걸까? 정말 내가 그 짓을 할 수 있을까? 그게 진심에서 나온 생각일까? 천만에 천만에 진심에서라니! 그저 공상으로 혼자 좋아하고 있는 것뿐이다. 장난이다! 진짜 장난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지금 이라스콜리니코프는 무엇하러 어디를 가는 것일까? 그리고 아까 그가 중얼거리던 '그 짓'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달 전쯤에 그는 고리 대금업과 전당포를 하는 한 노파를 알게 되었다. 노파 아료나 이바노브나는 어떤 대학 교수의 미망인으로 백치인 누이 동생 리자베타를 부리면서 심술 사나운 욕심으로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그 짓을 공상하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다. 그 공상은 몸서리치도록 잔인한 것이었으나 퍽 유혹적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미 그 짓을 해도 괜찮다는 충분한 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결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우유부단함과 무기력을 오히려 조소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그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실행함에 있어서 전혀 증거를 남겨서는 안 된다. 그는 지금 그 계획의 장소인 노파의 집을 탐색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는 죽은 아버지가 남긴 시계를 가지고 나왔다.
"무엇하러 왔지?"
"저당잡힐 걸 가져 왔어요"
"하지만 지난 번 것이 벌써 기한을 넘겼어 어제로 꼭 한 달이야"
"그럼 한 달 동안 이자를 드리지요. 조금만 더 참아 주세요"
"하지만 기다리건 팔아치우건 내 마음대로야"
"아무튼 이 은시계로 좀 많이 쳐 주십시오"
"어디서 이런 지저분한 것만 들고 온담 요전에도 당신에게 반지에 두 장이나 내줬지 그것도 보석상에 가면 새 것을 한 장 반이면 살 수 있단 말이야"
"한 4루블쯤 빌려 주세요. 꼭 찾아가겠어요. 아버지의 유품이거든요. 곧 집에서 돈을 부칠 것이라니까요"
"1루블 반이야. 이자는 미리 제하고"
"1루블 반이라구요! 어림도 없어요"
"좋을 대로 하시지"
노파는 시계를 도로 내밀었다. 그는 약이 올라서 그대로 돌아서려 하였으나 다른 데라곤 갈 데도 없고 여기 온 것은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나서 마음을 돌렸다. 무뚝뚝하게 그는 말했다. "좋습니다"
노파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으며 커튼 쪽으로 가서 장롱을 열고 돈을 꺼냈다. 그는 온 신경을 귀로 집중해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노파가 돌아왔다. 지난 달의 이자와 요번의 이자를 미리 제하여 그가 받은 돈을 겨우 1루블 15카레치카에 불과했다. 그는 돈을 받은 후 돌아갈 생각을 않고 무슨 할 말이 남아 있는 듯 주저하였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 아료나 이바노브나, 곧 다른 물건을 가져 오려는데... 은으로 만든...훌륭한... 담배갑인데요..."
"그건 그 때 얘기하지"
"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 참 그런데 할머니는 언제든지 혼자 계시는 것 같군요. 누이 동생은 어디 나갔나요?"
"내 동생에게 볼 일이 있나?"
"아니오. 별로... 그저 한 번 물어 본 것 뿐입니다. 그걸 할머닌 그렇게 말씀하시긴... 자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료나 이바노브나!"
라스콜리니코프는 계단을 뛰어내려와서 이렇게 외쳤다.
"아아 참! 더러운 생각이다! 정말 나는... 그것은 터무니없이 바보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이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내 마음은 어쩌면 그렇게 더러운 생각으로 가득할까! 무엇보다도... 이 추잡하고 더러운 생각이 아아 싫다! 정말 싫다! 나는 온통 한 달 동안이나..."
그는 참을 수 없었다. 어느 선술집에 들어갔다. 맥주 한 잔을 쭉 들이키고 나니 마음이 좀 후련하였다. 이 술집은 지저분했고 손님들도 후즐근하게 보였다. 그들 속에서 50세쯤 보이는 늙고 초라한 관리인 듯한 사나이가 미친 듯이 그러나 빛나는 눈초리로 머리칼을 쥐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나이는 라스콜리니프를 보자 갑자기 가까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는 마르메라도프라는 사람으로 이전에는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던 관리였으나 술 때문에 몇 차례나 지위를 잃었음에 또 다시 술에 빠져 버리고 마는 사람이었다. 그는 좀 우습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한 태도로 자기 자신을 업신여기는 듯한 말투로 라스콜리니프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침대에 꼬꾸라져 있었습죠. 지독하게 곤드레가 되어서 말이지요...그 때 문득 딸의 목소리가 들렸지요... 소냐는 순진하고 얌전한 애에요. 목소리도 퍽이나 부드럽죠... 머리는 금발이고 얼굴은 좀 파리하지만 품위가 있지요... 그 애가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않겠소. '어머니 내가 꼭 그런 일을 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라고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다알리아 프란츠오브나라는 악독한 포주 노파가 내 처를 통해 벌써 서너 번이나 유혹해 왔기 때문이죠. 그러자 '그게 어떻단 말이냐' 하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코웃음 치며 대답하지 않겠소. '무엇이 그리 소중히 모셔 둘 물건이냐? 무슨 큰 보배도 아니겠고'라고요. 하지만 아내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네 비난하지 마십시오. 네 비난하지 말아 주세요. 선생님! 제정신으로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병은 나빠지고 아이들은 배가 고파서 울고불고하니 가슴을 쥐어 뜯고 싶은 기분이 되어 마구 쏘아붙인 말이지요. 화풀이로 그런 소리가 나온 것이지요... 원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성질이 그래서 아이들이 비록 배가 고파서 울어도 곧 때려 주는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 날 다섯 시가 넘자 소네치카(소냐의 애정)는 일어나서 목도리를 감고 모자가 달린 외투를 걸치고 집을 나가더니 여덟 시 넘어서 돌아왔어요. 돌아오자 그대로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곁으로 가서 그 앞에 있는 책상 위에 아무말 없이 1루블 짜리 은화를 서른 개 올려 놓지 않겠소? 그리고 말 한 마디 않고 집 안의 커다란 초록빛 목도리를 들고 그것은 식구들이 공동으로 쓰고 있는 목도리지요. 그것으로 머리를 푹 뒤집어 쓰고 벽쪽을 향해 몸을 돌려 침대에 쓰러져 버리지 않겠소. 가냘픈 어깨하고 조그마한 몸이 언제까지나 떨고 있을 뿐...그런데 나는 그 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술에 취해 누워 있었지요... 술에 취해 있어도 나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젊은 선생님 얼마 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마찬가지로 말 한 마디 없이 소냐의 침대 곁으로 다가가서 밤새 그 아이의 발 밑에 무릎을 꿇고 그 애의 발에 입을 맞추고 좀처럼 일어서려고 하지 않더군요. 그러다 두 사람은 그대로 같이 잠이 들어버렸지요. 껴안은 채 말이지요... 둘이서... 둘이서... 그래요... 그런데도 나는 곤드레가 되어 누워 있었다오"
그의 부인인 카테리나는 귀족의 자녀가 다니는 여학교를 나왔으며 지체 있는 집 출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폐병으로 병약해져 언제나 기침을 콜록이며 신경질적이며 남편을 증오하고 자신의 삶을 증오하는 여인이 되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마르메라도프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미칠 듯한 마음으로 한 푼이라도 가져오기를 기대하며 마르메라도프의 귀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르메라도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양말을 팔다 못해 딸이 매춘을 해서 번 돈으로 값싼 술을 마시면서 그날그날을 술 없이는 못 사는 것이었다. 소냐는 전처가 낳은 딸인데 순진하고 온순한 처녀였다. 그러나 이제는 황색 감찰을 가진 매춘부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마르메라도프는 괴로워하면서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이야기하여 주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묵묵히 그의 비참한 이야기를 듣고 이 가엾은 주정뱅이를 위로하며 친히 부축하여 그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마르메라도프가 사는 집은 페테르부르크 지저분한 뒷골목에 있었다. 커다란 건물의 내부는 어둠침침했고 4층 구석에 통로로 되어 있는 형편 없는 방이었다. 카테리나는 문턱에 무릎을 꿇은 남편의 모양을 보자 소리를 질렀다.
"아아! 돌아왔군! 짐승! 짐승! 돈은 어디 있어요! 호주머니를 뒤집어 봐요. 어머나 옷도 달라졌어! 그 옷은 어떻게 했어요? 돈은 어디 있어요? 어서 말해요! 돈은 어디다 두었을까? 아아 또 들이마셨나 봐! 상자 속에 은화가 열둘이나 남아 있었는데!"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분에 못 이겨 남편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아 방 안으로 끌어 넣었다. 마르메라도프는 온순하게 아내가 끄는 대로 제 무릎 걸음을 걸어 아내의 힘을 덜 들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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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 - A.J. 크로닌
제2부 기묘한 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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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봄날 아침, 프랜치스 치셤은 깨끗하고 아담한 식탁에 앉아 긴 장화를 신은 다리에 불기의 따스함을 느끼면서 나무 타는 냄새와 뜨거운 케이크의 향긋한 내음을 맡으며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연어 낚시에는 알맞은 날씨였으므로 프랜치스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어머니는 완두콩이 든 오트밀 냄비를 나무 국자로 솜씨있게 휘저으며 아버지와 프랜치스의 사이에 놓았다. 그는 뿔로 된 스푼으로 오트밀을 한 숟가락 떠서 자기 앞에 있는 버터 밀크 컵 속에 넣었다. 그리고 덩어리도 귀리알도 없는 솜씨 좋게 만들어진 금빛의 오트밀을 혀로 굴리듯이 먹고 있었다. 아버지는 낡은 청색 스웨터에 낚시용 장화를 신은 채 그 큰 체구를 앞으로 숙이고 묵묵히 오트밀을 들고 있었다. 어머니는 마지막 남은 오트케이크 한 개를 오트밀 접시 옆에 놓고 식탁에 앉으며 홍차가 담긴 컵을 보았다. 노란 버터가 그녀 몫의 오트 케이크 위에서 녹아내리고있었다. 작은 식당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기분으로 충만했고, 백토를 칠한 난로에서는 빨간 불꽃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아홉 살 난 프랜치스는 지금부터 아버지와 함께 어부의 합숙소로 갈 참이었다. 합숙소에서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알렉스 치셤의 어린 아들이었던 것이다. 털 스웨터에 허리까지 오는 가죽장화를 신은 어부들은 그를 보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혹은 묵묵히 친근한 미소를 띈 얼굴로 맞아 주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는 것이 그에게는 남모르는 자랑이었다. 크고 펑퍼짐한 고깃배가 시끄럽게 노젓는 소리를 내면서 방파제를 크게 한 바퀴 돌아 바다고 나가면 고물 쪽에 있는 아버지는 큰 밧줄을 솜씨있게 늦추고 당기곤 한다. 방파제 끝에 다다르면 어부들은 바람을 피하여 한 덩어리가 되고, 혹은 노랗게 된 돛을 어깨에 걸친 채 몸을 움츠리고, 어떤 사람은 까맣게 된 짧은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추위를 이겨내려고 한다. 그럴 때 프랜치스는 아버지와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자기 위치에 선다. 알렉스 치셤은 어부들의 지휘자이고, 티드 제3 어장의 주임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찬바람을 맞으며 강이 바다로 흐르는역류의 파도 속에서 멀리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는 찌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햇빛에 잔물결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흔히 눈앞이 캄캄해지는 수가 있다. 그러나 눈을 깜박여서는 안 된다. 한순간이라도 잘못 보면 한 다스 정도의 연어를 놓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연어가 요즈음 적게 잡히므로 먼 비링스게이트 어물 시장에까지 가져가면 어업회사는 파운드 당 반 크라운의 벌이가 넉넉히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키 큰 모습이나 어깻죽지에 약간 파묻힌 듯한 머리나, 차양이 뾰족한 모자 밑으로 보이는 씩씩한 얼굴 윤곽이나 깨끗하고 불그스름한 높은 관골 등에서 아직도 확고한 기개를 엿볼 수 있었다. 때로는 멀리 파제스 읍의 큰 시계 소리나, 다람 숲의 까마귀 울음소리가 뭍으로 밀린 해초의 향기와 의식 속에서미묘하게 어울려서 가만히 있어도 기쁘기만 한 아버지의 기분이 가슴에 스며들면 이미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는 것이다. 갑자기 아버지가 큰 소리를 쳤다. 아무리 보아도 프랜치스는 찌가 갈아 앉는 것을 먼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보통사람은 소용돌이가 일면 긴장하지만 숙련된 사람을 고기가 밀어올리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모양이다. 그 아래로 서서히 찌가 이끌리는 것이 아무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의 큰 외침소리를 들으면 어부들은 한꺼번에 우르르 그물을 끄는 권선기로 뛰어가서 말아올린다. 그 순간의 감격은 몇 번을 되풀이해도 결코 신 미를 잃지 않는다. 어획고에 따라 그에 상당한 보너스가 나오지만, 어부들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 아니다. 그 커다란 흥분은 좀더 횔씬 원시적인 근원에서 나오는 것이다. 바닷말이 뒤엉킨 그물이 물을 줄줄 흘리면서 서서히 올라온다. 그럼 최후 한순간에 고기를 가득 채운 큰 그물의 넘실거림 속에 금속의 빛과 같은 힘차고 미묘한 섬광이 번쩍하고 나타난다-그것이 연어인 것이다. 어느 토요일에는 한 그물에 40마리나 걸린 일도 있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큰 연어가 몸뚱이를 활처럼 굽히고는 서로 다투어 그물에서 빠져 나오려고 파닥거리기도 하고 미끈미끈한 방파제에서 미끄러져 강으로 도망치려고 하기도 한다. 프랜치스도 어부들과 함께 뛰어가서 도망치려고 하는 연어를 붙잡기도 했다. 어부들이 그를 안아 일으켰을 때 그는 고기비늘투성이가 되어 물어 흠뻑 젖곤 했지만 팔 안에는 괴물처럼 큰 연어를 꼭 안고 있었다. 그날 저녁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어두컴컴한 황혼 속을 씩씩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도중에 아버지는 파레이 상점에서 그가 좋아하는 봉봉과자를 사주었다.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들 부자의 정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요일이 되면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리고는 낚싯대를 메고-점잖은 분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안식일로 조용한 거리를 뒷길로 해서 빠져나와 숲이 우거진 위타다 계곡으로 가는 것이다. 톱밥이 가득한 깡통 속에는 엊저녁에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미끼로쓸 구데기가 들어 있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들풀의 향기를 맡으면서 빨간 반점이 있는 송어가 해안 하상에서 넘실거리는 것을 보기도 하고, 아버지가 모닥불에 구운 생선구이를 먹으면서 보낸다. 그런 날을 머리가 어떻게 될 정도로 즐거웠던 것이다.
다른 계절에는 흔히 귤이나 산딸기 등 고급 잼을 만드는 노란 들딸기를 따러 쏘다녔다. 가끔 어머니도 함께 갈 때에는 마치 축제날과 같았다. 아버지는 그런 것이 있는 장소를 잘 알고 있었다. 꾸불꾸불한 숲속 길이나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딸기덩굴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곤 했다. 눈이 와서 땅바닥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되면, 그들 부자는 다람 숲의 금렵 구역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기도 했다. 내쉬는 입김이 하얀 서리가 되고, 피부도 경비원의 호각소리가 들리지나 않을까 하고 긴장한다. 별장의 창 밑에까지 가서 덫을 열어 볼 때 프랜치스는 마치 귓속에서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것 같았다-이윽고 무거운 사냥 자루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토끼고기 파이를 먹을 것을 생각하면 눈은 빛나고 마음은 녹아 나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았고 살림을 잘 꾸려나갔기 때문에, 좀처럼 겉치레 인사를 하지 않는 스코틀랜드 사람들 사이에서도 '엘리자벳 치셤은 훌륭한 부인이다'라는 칭송을 받았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어머니는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렉스, 오늘밤은 읍내에 가야 하니까 좀 일찍 돌아오셔야 해요."
아버지는 잠자코 있었다. 틀림없이 강물을 불어났을 것이기 때문에 연어잡이가 신통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말에 문득 오늘밤 가지 않으면 안 될 연례 시민 음악회의 일이 생각난 모양이다.
"여보, 당신 정말 음악회에 가고 싶소?"하고 아버지는 조용하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약간 얼굴을 붉혔다. 프랜치스는 왜 어머니가 그런 묘한 얼굴을 했는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좀처럼 가져 보기 힘든 즐거움의 하나가 아니에요? 일년에 단 한 번뿐인......더군다나 당신은 읍의원이시잖아요. 단상에 가족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아버지가 더 크게 미소를 짓자 다정한 주름살이 눈언저리에 잡혔다. 프랜치스가 제일 좋아하는 미소였다.
"아무래도 가지 않으면 안 되겠군, 엘리자벳."
아버지는 홍차 잔이나 깨진 컵, 삐걱삐걱 소리나는 구두가 싫은 것과 마찬가지로 마을의 집회에 나가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러나 함께 가 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았다. '꼭 빨리 돌아와 주세요, 네, 알렉스. 그렇게 하시겠지요?' 하고 무심코 말하려 했으나, 어머니는 이제 안심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 고마워요. 오늘 타인카슬에서 폴리와 노라가 오기로 돼 있어요. 그런데 네드는 오지 못할 사정인가봐요."
어머니는 거기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에탈에 계산서를 가지고 가는 것은 다른 사람을 시켜도 되지 않아요?"
아버지는 기지개를 켜며 아내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꿰뚫어 보기라고 하듯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프랜치스는 너무나 기뻤기 때문에 처음엔 그 말들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돌아가신 고모는 여기에서 6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남쪽의 흥청거리는 타인카슬에서 유니온이란 술집을 경영하는 네드 바논에게 출가했었다. 그네드의 누이동생인 폴리와 어머니가 없는 폴리의 조카인 열 살 난 노라는 어느 의미에서는 가까운 친척을 아니었다. 그래도 이 두 사람의 방문은 언제나 프랜치스의 집에서는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갑자기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야, 에틸에는 역시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돼."
아버지의 말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프랜치스는 어머니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당신이 아니더라도 되잖아요......덤 마리스도 있고 그 밖에 누구라도 기꺼이 가 줄 텐데요."
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스코틀랜드인 특유의 배타적인 자존심이 손상된 때문인지 그대로 조용히 쳐다볼 뿐이었다. 어머니는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이제는 부끄러움도 체면도 따지고 있을 수가 없었던지 몸을 굽혀 아버지의 소매를 잡았다.
"절 안심하게 해줘요, 알렉스. 요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그곳에 또 위험한 일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하잖아요."
아버지는 커다란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는 안심시키려는 듯 침착하게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몰래 간다면 당신도 싫을 거요, 그렇지?"
아버지는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웃으면서 벌떡 일어났다.
"빨리 갔다가 일찍 돌아오겠소......당신과 폴리가 좋아하는 음악회에 늦지 않도록 말이오."
결국 아버지의 말대로 되어 버렸지만 역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머니는 아버지가 고무장화를 신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프랜치스도 낙심천만이었고, 어쩐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버지는 일어나서는 프랜치스를 돌아보며 여느때와는 달리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는 듯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아, 프랜치스! 오늘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어머니가 바쁘시니까 도와 드려야지......폴리 아주머니와 노라가 온다니까 준비할 것이 많을 거야, 알았지?"
프랜치스는 실망하여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았으나 싫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가 프랜치스의 어깨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아버지는 문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추고 애정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는 그대로 말없이 나가 버렸다.
정오가 되자 비는 그쳤다. 프랜치스는 어쩐지 쓸쓸하였고 다른 날과는 달리 몹시 지루하게 느껴졌다. 근심스러운 듯한 어머니의 굳은 얼굴을 될 수 있으면 보지 않으려 했지만,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 치셤 일가는 이 평화스러운 읍내에서는 잘 알려진 집안이었다. 그래서 모든 일에 방해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매달 어획고의 청산을 하러 가지 않으면 안되는 어업회사의 본사가 있는 에탈에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백년 전 에탈 읍에는 프로테스탄트 장로교파의 피로 물들여졌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그 반대로 카톨릭 신자가 가차없이 탄압을 받는 운명에 놓여 있었다. 새로 부임한 읍장을 중심으로 최근들어 맹렬한 종교적 박해가 시작된 것이다. 비밀 집회가 결성되는가 하면 광장에서 군중대회가 열려 민중들의 심리는 완전히 들떠 있었다. 군중의 폭력은 일단 억제되긴 했지만 읍내에 살고 있는 신자는 에탈 읍에는 얼씬도 못하도록 엄중한 경고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프랜치스의 아버지는 그러한 협박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었으나, 그렇기 때문에 특히 증오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지난달만 해도 습격을 당하기는 했으나 그 때는 건장한 이 어장 감독은 보기 좋게 그들을 때려 눕혀 버린 것이다. 그러한 위험이 더욱 격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보내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버지는 에탈 읍으로 간 것이다. 프랜치스는 자기의 어린 생각에도 격분을 참을 수가 없어서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지 않는 것일까?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종파가 아니었다. 그래도 서로 존경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는 매우 선량한 사람이다. 아마 이 세상에서 제일 선량할 것이다......그런데 왜 그러한 아버지를 사람들은 해치려고 하는 것일까? 뜨거운 피가 돌고 있는 심장을 한가운데를 예리한 불의의 칼에 찔리기라도 한 듯이, 그는 이 '종교'라는 말 앞에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똑같은 하느님 섬기는 방법이 좀 다르다고 해서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 그것은 어린 그에게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네 시에 손님을 마중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같은 또래인 노라가 명랑하게 말을 걸어 왔으나 프랜치스는 내키지 않은 얼굴로 대꾸를 해주었다. 도랑을 뛰어넘으면서도 그는 뭔가 불길한 것이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차분한 폴리 아주머니는 어머니와 나란히 뒤에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명랑하게 떠들어대는 노라는 갈색끈이 달린 새옷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예뻤다. 그리고 노라는 자기를 보고 굉장히 반가워했지만 그것이 프랜치스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지는 못했다.
프랜치스는 침울한 얼굴을 한 채로 캬넬케이트 앞의 아담한 낮은 회색 석조건물인 자기 집에 다다랐다. 집 앞에는 여름이 되면 아버지가 시온과 베고니아를 가꾸는 손질이 잘 된 작은 정원이 있고, 번쩍번쩍하는 놋쇠로 된 현관문 고리와 먼지 하나 없는 계단은 지나치게 깔끔한 어머니의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새하얀 커튼을 친 창문 뒤에는 진홍빛 제라늄꽃이 한창 만발해 있었다. 노라는 몹시 기쁜 듯 얼굴이 빨갛게 되어 숨을 헐떡이며 파란 눈을 반짝거리면서 완전히 들뜬 채 장난꾸러기의 본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차 마실 시간까지 안셀모 밀리와 함께 밖에 나가서 놀고 있으라고 했다. 프랜치스와 노라는 뒤뜰로 나갔다. 노라는 몸을 구부리고 프랜치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프랜치스, 우리 재미있는 놀이할까?"
프랜치스는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노라가 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었기 때문에 오늘도 끝내는 노라 말을 따랐다.
"하겠지, 꼭?" 하고 그녀는 독촉했다. "언제나 안셀모는 성당놀이밖에 모른다니까. 자아, 프랜치스, 우리 안셀모를 골탕 먹일까?"
다물고 있던 입술이 겨우 열리며 프랜치스는 방긋 웃었다. 마당 구석에 있는 헛간에서 삽과 물뿌리개를 가지고 나왔다. 노라가 시키는 대로 보리수나무 밑에 2피트 정도의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물을 붓고는 그 위에 신문지로 덮고 마른 흙을 뿌렸다. 두 사람이 삽을 갔다 두고 돌아왔을 때 안셀모 밀리가 아름다운 흰 세라복을 입고 나왔다. 노라는 프랜치스에게 대단히 재미있다는 듯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어서 와, 안셀모!" 하고 노라는 그를 반갑게 맞았다.
"야, 참 예쁜 옷이다. 기다렸어. 무슨 놀이를 하고 놀까?"
안셀모 밀리는 명랑하게 인심 쓰는 체하는 얼굴을 하고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열한 살인데도 키가 크고 잘 생기고 하얀 얼굴에 볼이 빨간 아이였다. 갈색 머리칼은 곱슬곱슬했고 눈이 초롱초롱했다. 유복하고 신앙심이 깊은 집안에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경건한 어머니의 희망도 있었고 또한 자기도 그럴 생각이 있어, 장래 신부가 될 작정으로 북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카톨릭 계통의 호리웰 신학교에 가기로 정해 놓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강 건너에 수입이 좋은 어분공장을 가지고 있었다. 또 그는 프랜치스와 마찬가지로 성 콜롬바 성당의 합창단 일원이었다. 그가 가끔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커다란 눈에 감동적인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라도 할 때면 그 옆을 지나가던 수녀들은 안셀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이런 이유로 모든 사람들은 그를 '꼬마 성자'라고 불렀다.
"그렇군, 행렬놀이를 하자" 하고 안셀모는 말했다.
"오늘은 성 율리아노의축일이니까 성당놀이를 하자."
노라는 정말 그렇다는 듯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그럼, 저 보리수나무 밑에서 하자. 그런데 옷은 이걸 입어도 될까?"
"으응" 하고 안셀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이보다는 진짜 기도를 하는 거야. 내가 신부가 되어 수단을 입고, 보석이 박힌 성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면 돼. 넌 하얀 옷을 입은 칼트교단의 수녀야. 그리고 프랜치스, 너는 내 복사가 되는 거야."
프랜치스는 문득 가책 같은 것을 느꼈다. 그는 아직 안셀모를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 안셀모가 네가 제일 좋은 친구라고 말할 때 프랜치스는 그의 깊은 생각에 오히려 자신이 이상하게 괴롭고 부끄럽게 되는 것밖에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느님은 그로서는 대단히 두려운 존재였다. 무엇 때문인지 그것은 몰랐다. 그러한 자신의 감정을 마음 속 깊이 감추고 있었다. 안셀모가 교리 학습에서 "저는 구세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찬송합니다" 하고 열정적인 말을 했을 때, 프랜치스는 포켓 속에서 유리구슬을 만지작거리면서 온몸이 빨개지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때 그는 화난 얼굴을 하고 집에 돌아와선 느닷없이 유리창을 한 장 깨뜨려 버린 적이 있었다. 이튿날 아침, 정기적으로 위문 가는 안셀모가 통닭구이를 학교에 가지고 와서 팍스톤 할머니에게 갖다 줄 것이라고 자랑하는 것을 보고 프랜치스는 수업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그 닭 꾸러미를 놓아둔 응접실에 가서 통닭을 빼내고 그 대신 썩은 송어 대가리를 넣어 두었다. 그리고 통닭은 친구들과 나누어 먹어 버렸다. 팍스톤 할머니는 어부의 아내로 위선자였고 그리고 간경변증 때문에 바싹 말라빠져 버렸으나 토요일 밤이 되면 캬넬케이트에서 흡사 정신병자처럼 소란을 피우곤 했다. 안셀모의 눈물과 팍스톤 할머니의 저주는 그에게 깊고 어두운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셀모를 구덩이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망설이면서 천천히 말했다.
"누가 먼저 할래?"
"물론 내가 서야지" 하고 안셀모가 거드름을 피웠다. 그리고는 선두에섰다.
"노래하는 거야, 노라야. 탄토움 엘고(성체 강복식 때의 찬송가)를 시작!"
한 줄로 서서 노라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세 사람은 앞으로 나갔다. 보리수나무 밑에 가까이 가자 안셀모가 신문지를 덮어놓은 구덩이에 발을 헛디뎌 흙탕물 속에 풍덩 빠져 버렸다. 한동안 모두들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리는 안셀모의 울음소리가 노라를 웃겨 버리고 말았다. 안셀모가 엉엉 울면서 "죄악이야, 이건 죄악이야!"하고 계속 부르짖고 있는 동안 노라는 배꼽이 빠지게 웃어댔다.
"정신 차려, 안셀모. 정신 차려! 왜 프랜치스를 때려 주지 못하지?" 하고 노라가 떠들었다.
"싫단 말이야. 그렇게 할 순 없어. 난 이쪽 뺨도 내놓을 거야, 난......" 하고 안셀모는 집으로 뛰가 버렸다. 노라는 어쩔 줄을 몰라 프랜치스에게 매달렸다. 얼마나 웃었는지 노라는 숨도 못 쉬고 눈물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그러나 프랜치스는 웃지 않았다. 그는 우울한 얼굴을 하고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에탈 읍에서 적들이 우글거리는 곳을 걸어가고 있을 터인데, 어쩌다가 이런 바보짓을 한 것일까? 집에 돌아와서도 그는 역시 말이 없었다. 아담한 방에는 스코틀랜드 식으로 손님을 접대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소박한 살림 중에서도 가장 좋은 접시와 그릇, 그리고 도금을 한 나이프와 포크가 식탁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프랜치스의 어머니는 폴리 아주머니와 함께 벌써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순진하면서도 지나칠만큼 진지한 얼굴은 불을 쬐어 약간 상기된 채 가끔 탁상시계를 바라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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