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9호 2023.4.24 월요일 (음 3.05)
|
|
글나눔 → 참좋은한줄
|
|
|
내가 오늘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내 인생의 하루를 그것과 바꾸고 있으니까.
― H.M.
|
|
쉼터 → 자유글판
|
|
|
|
|
글나눔 → 말글
|
|
|
너무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너무’라는 말을 ‘너무’ 자주 하게 되었다. “너무 맛있어요” “너무 예뻐요” “너무 더워요” “너무 무서워요” 심지어는 “너무 고마워요”까지. 좋을 때도, 싫을 때도, ‘너무’라는 말을 빼면 내 기분이나 상태를 딱 맞춰 표현할 길이 없어 보인다.
‘너무’는 원래 ‘정도에 지나치게’라는 뜻으로, 부정적인 표현에 쓰인다. 긍정적인 표현이라면 아주/ 정말/ 대단히/ 상당히 등으로 바꾸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래 뜻대로라면 “너무 더워요” “너무 무서워요”는 자연스럽지만 “너무 맛있어요” “너무 예뻐요” “너무 고마워요”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너무’라는 말을 막기엔 ‘너무’ 늦은 감이 든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너무’를 부정의 뜻을 넘어 긍정적인 뜻으로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약간의 과장을 포함한 강조의 뜻으로, 긍정적인 의미로 널리 쓰고 있는 것이다. ‘너무’를 대체할 적당한 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이제는 ‘너무’의 용법을 ‘너무’ 좁게 한정하기 보다는 확장시켜 인정할 때가 되었다. 국어학자들도 이를 인정하는 추세이다.
부정적인 뜻을 포함하는 대표적인 말로 ‘장본인’을 들 수 있다. 장본인은 ‘나쁜 일을 빚어낸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끔찍한 사건의 장본인’ ‘미담의 주인공’ 등으로 구분해 사용해야 할 것이다.
“혹여 실패하더라도 낙심하지 말아라”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다” “끝내 이루지 못했구나” “절대로 승리하지 못한다”와 같이 ‘혹여’ ‘결코’ ‘ 끝내’ ‘절대로’ 등도 부정문에 어울리는 말이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
|
시나눔 → 우리시
|
|
|
자유정조(自由貞操) - 한용운
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다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정조보다도 사랑입니다.
남들은 나더러 시대에 뒤진 낡은 여성이라고 삐죽거립니다.
구구(區區)한 정조를 지킨다고.
그러나 나는 시대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과 정조의 심각한 비판을 하여 보기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자유연애의 신성을 덮어놓고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자연을 따라서 초연생활(超然生活)을
할 생각도 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구경(究境), 만사가 다
저의 좋아하는 대로 말한 것이요, 행한 것입니다.
나는 님을 기다리면서 괴로움을 먹고 살이 찝니다.
어려움을 입고 키가 큽니다.
나의 정조는 『자유정조(自由貞操)』입니다
|
|
독서실 → 동서양고전/신화
|
|
|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2. 북방의 정복자(흉노전)
흉노의 영걸
흉노는 북방의 이민족이다.(흉노족은 오늘날 핀란드와 헝가리 민족의 선조로서 원래 유럽인종에 가까운 편이었다-역자 주) 목축과 수렵을 생업으로 삼으며, 가축을 따라 물과 풀이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하며 살고 있었다. 흉노의 사나이는 모두 활을 잘 쏘고, 전시에는 모두 갑옷과 투구를 걸치고 싸움터로 나갔다. 두만선우(선우는 흉노의 군주 칭호)에게는 묵특이라는 태자가 있었다. 그러나 선우는 그 후 애첩이 낳은 아들을 귀여워 해 묵특 대신 애첩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고 생각했다. 한편, 그 당시 이웃의 월지족은 매우 강성하여 흉노에게 인질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우는 우선 묵특을 인질로 삼아서 월지로 보냈다. 그리고 그가 갇힌 몸이 되었음을 확인하자 갑자기 월지로 토벌군을 보냈다. 누가 보아도 이는 묵특을 죽이려는 음모였다. 흉노의 침입을 받은 월지는 예상대로 인질인 묵특을 살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묵특은 뛰어난 말 한 마리를 훔쳐서 본국으로 도망쳐 왔다. 두만선우는 자기의 의도는 실패했으나, 아들 묵특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게 되어 제거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오히려 1만 기를 주어 장군에 임명했다. 그런데 장군이 된 묵특은 소리나는 화살을 만들게 하는 한편 부하에게는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는 훈련을 매우 강하게 시켰다. 그런던 어느 날,
"모두 듣거라. 내가 소리나는 화살을 쏘거든 너희들은 계속 내가 쏜 표적에 활을 쏘아라. 따르지 않는 자는 베겠다."
이렇게 명령하고는 전군을 이끌고 사냥을 나갔다. 묵특은 소리나는 화살로 새나 짐승을 쏘아 맞히고는 자기의 명에 따르지 않는 자는 그 자리에서 목을 베었다. 그러더니 묵특은 이번에는 자기의 애마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그러자 부하 가운데는 멈칫 하면서 화살을 날리기를 망설이는 자가 있었다. 그때도 묵특은 즉석에서 그들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은 훈련 끝에 자기의 애첩을 쏘았다. 이때도 부하 가운데는 당황하면서 활을 쏘지 못하는 자가 있었다. 묵특은 역시 사정없이 그들을 베었다. 이렇게 엄격한 훈련을 치른 후 묵특은 또 다시 사냥을 나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버지 두만의 애마를 쏘았다. 그러자 이제 부하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그를 따랐다. 묵특은 이로써 부하 전원이 자신의 명령대로 움직인다는 확신을 얻었다. 얼마 후 그는 아버지 두만을 따라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 사냥이 한참 진행중이었는데 갑자기 그가 아버지 두만을 향해 소리나는 화살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그의 곁에 머무르고 있던 그의 부하들도 묵특의 화살 소리를 따라 일제히 화살을 날려 보냈다. 두만은 이렇게 하여 훌륭한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묵특은 이어서 계모와 이복 형제 및 복종하지 않는 중신들을 모조리 죽였다. 이렇게 하여 묵특은 스스로 선우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적을 방심케 하라
묵특이 선우 자리에 올랐을 당시, 동방에서는 동호족이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묵특이 아버지 두만을 죽이고 선우 자리를 빼앗았다는 소식은 바로 동호왕의 귀에 들어 갔다. 그러자 동호왕은 사자를 보내어 죽은 두만이 애지중지하던 천리마(하루에 천 리를 뛴다는 명마)를 양도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묵특은 측근과 의논했다. 그러자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천리마는 우리 흉노의 보배이오니 거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묵특은,
"한 마리 말을 아끼기 위해 이웃 나라와의 우의를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하며 신하들의 의견을 누르고 동호의 요구에 응했다.
묵특이 자기네를 두려워한다고 판단한 동호는 얼마 후 다시 사자를 보내 왔다. 이번에는 미녀를 달라는 요구였다. 묵특이 측근에게 의논하자 이번에도 그들은 모두 성을 냈다.
"미녀를 요구하다니 이런 무례한 짓이 어디 있겠습니까? 동호의 무도함에는 이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부디 공격 명령을 내려 주소서."
그러자 그때도 묵특은,
"계집 하나를 아낌으로 해서 이웃과의 두터운 우의를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하며 격분하는 신하들을 누르고 사랑하는 애첩 한 명을 동호에게 보냈다.
그러자 동호는 더욱 더 교만해지더니, 이윽고 흉노의 국경을 마구 침범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흉노와 동호의 중간에는 천여 리에 걸쳐 삶이 사는 집 하나 없는 불모의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다. 동호는 이 황무지에 눈독을 잔뜩 들이고 묵특에게 다음과 같이 통고해 왔다.
"귀국과 우리 나라의 경계가 되어 있는 황무지는 귀국에 있어서는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이 황무지는 우리가 소유하기로 한다."
이에 묵특은 또다시 측근들과 의논했다. 그러자 몇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땅입니다. 주어 버려도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자 예전과는 달리 묵특이 격노했다.
"땅이란 나라의 근본이다. 한 줌의 흙도 동호에게 줄 수는 없다."
그리고는 주어도 좋다고 말한 자들을 모조리 베어 버렸다. 그러더니 당장 말에 오르면서,
"지금부터 동호를 토벌하기 위해 출진한다. 늦게 오는 자는 베어 버리겠다."하며 즉각 동쪽으로 군대를 진격시켜 동호를 습격했다.
그런데 동호는 이전의 예로 보아서 완전히 묵특을 업신여기고 있었으므로, 방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무장하고 피나는 훈련으로 준비한 묵특의 군대는 순식간에 동호를 격파하고 왕을 죽여 없앴다. 묵특은 동호를 격파하자 곧바로 서쪽으로 진격하여 월지를 패주시켰다. 또한 남쪽으로 오르도스의 누번왕, 백양왕의 영지를 병합하고, 일찍이 진나라 장군 몽염에게 빼앗겼던 영토까지 모두 수복했다.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수서양단(首鼠兩端)
首:머리 수. 鼠:쥐 서. 兩:두 량. 端:바를/끝/실마리 단.
[동의어] 수시양단(首施兩端). [유사어] 좌고우면(左顧右眄).
[출전]《史記》〈魏其武侯列傳〉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라는 뜻.곧
① 진퇴/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상태.
② 두 마음을 가지고 기회를 엿봄.
전한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의 일이다. 5대 문제(文帝)의 황후의 조카인 위기후(魏其侯) 두영과 6대 경제(景帝)의 황후의 동생인 무안후(武安侯) 전분은 같은 외척이었지만 당시 연장자인 두영은 서산 낙일(西山落日)하는 고참 대장군이었고, 전분은 욱일 승천(旭日昇天)하는 신진 재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영의 친구인 관부(灌夫) 장군이 고관 대작(高官大爵)들이 모인 주연에서 전분에게 대드는 실수를 범했다. 사건의 발단은 관부가 두영을 무시한 한 고관을 힐책(詰責)하는데 전분이 그를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부가 한사코 사죄를 거부하자 이 일은 결국 조의(朝議)에 오르게 되었다. 양쪽 주장을 다 들은 무제는 중신들에게 물었다.
“경들이 판단컨대 어느 쪽이 잘못이 있는 것 같소?”
처음에는 의견이 둘로 나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영의 추종자로 알려진 내사(內史:도읍을 다스리는 벼슬) 정당시(鄭當時)조차 우물쭈물 얼버무리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어사대부(御史大夫:감찰 기관의 으뜸 벼슬) 한안국(韓安國)도 명확한 대답을 피했다.
“폐하, 양쪽 다 일리가 있사와 흑백을 가리기가 심히 어렵나이다.”
중신들의 불분명한 태도에 실망한 무제가 자리를 뜨자 조의는 거기서 끝났다. 전분은 화가 나서 한안국을 책망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首鼠兩端]’처럼 망설였소? 이 사건은 시비 곡직(是非曲直)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인데…‥.”
|
|
글나눔 → 삶속의 글
|
|
|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사우나 고스톱
이종환씨, 지금부터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저도 코가 좀 크걸랑요. 하지만 형님께 비하겠습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오늘 소개 드리는 글은 자랑스러운 제 친구들에 관한 겁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논두렁 정기가 아닌 산좋고 물좋은 소백산 정기를 받고 단양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정기가 좋으니 인생이 얼마나 잘 풀렸냐구요? 아닙니다. 그냥 정기만 좋았습니다. 그런데 형님, 혹시 백수 생활 해보셨습니까? 없으시면 다음에 한 번, 오래는 마시고 일정기간 해보는 것도 꼭 낭비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그러니까 저와 제 친구들이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사회 초년생으로 출발하기 직전, 일부는 취업을 하고, 대부분은 '단백련(단양 백수 연합회)'의 일원으로 있을 때의 사건입니다. 등장인물은 전투지원 중대 출신의 저, 수색대 출신의 장씨, 경비대 출신의 엄씨,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특공대 출신의 지씨. 모두 4명입니다. 사건이 있던 전날 평상시와 다름없이 백수들이 뭐 할 일이 있겠습니까? 고돌이나 잡으면서 소주잔도 기울이면서 이렇게 취업이 안되는 것은 문교부 정책이 잘못돼서 그렇다는 둥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시간을 죽였습니다. 결국 그날 밤도 늦게 잤으니 다음날은 늦잠을 자고 11시에 다시 모였습니다. 그리곤 할 일도 없으니 사우나나 가자고 장씨가 제의를 했습니다. 백수들을 모두 아무 이의없이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여름이라 그런지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고 그저 우리들 세상이었습니다. 샤워를 하고 있는데 장씨가 또 제의를 하더군요.
"야, 우리 아무도 없는데 사우나에 들어가서 고스톱이나 치자."
사우나에 들어가서 고스톱을 치자니, 거기가 어딥니까. 거기가 어딘데, 거기서 그걸 치자는 겁니까. 그런데, 하나같이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동의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무식이 종점도 없는 고열'사우나 고스톱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형님, 사우나 안에서 고스톱 쳐본 적 있으십니까? 아주 절묘합니다. 없으시면 다음에 형님하고 맹씨하고 지금 밖에 있는 PD선생님하고 한번 도전을 해보십시오. 최유라씨는 미련이 많이 남겠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남녀 혼탕이 없잖습니까. 억울하지만 좀 참아주십시오. 게임의 조건은 체력으로 못 버티고 사우나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해장국과 저녁때 소주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15분 동안은 정말 재미있게 쳤습니다.
"야, 대한민국에 사우나 안에서 고스톱 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요렇게 객기를 부렸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있는 거라곤 시청앞 분수대밖에 없는 놈들이 사우나 안에서 땀 삐질삐질 흘리며 신문지 깔고 고스톱 치는 모습을요.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형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상황에서 돈을 따면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우선 지폐를 따면 앞가슴에 한 장 붙입니다. 또 따면 배에다 붙입니다. 많이 따면 어떻게 되냐구요? 어떻하긴 어떻합니까. 분수대에도 붙여야죠. 동전은 이마에다 붙이면 확실합니다. 절대 안 떨어집니다. 그러나 20분이 지나자 온몸에 열은 올라가죠, 화투는 땀에 젖어 잘 쳐지지도 않죠. 그래서 다시 합의를 봤습니다. 고스톱은 3명이 치니까 광을 팔거나 죽은 사람은 나가서 찬바람을 마시고 들어오기 말입니다. 그런데 재수없는 놈은 되는 게 없었습니다. 다들 교대로 나갔다 오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지씨만 사우나 제일 안쪽에 앉아서 계속 나가질 못한 겁니다. 왜냐구요? 지씨는 용감하게도 계속해서 1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3점, 5점, 나가리, 또 3점. 이런 식으로 점수가 나니 죽을 수도 광을 팔 수도 없었습니다. 지씨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갔습니다.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고, 땀은 비오듯하고 온몸에 붙어 있던 돈들도 다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악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잃은 놈들은 따겠다고 그냥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때, 구세주가 한 분 나타나셨습니다. 다름아닌 목욕탕 주인아저씨였습니다. 보통때 같으면 20분이나 30분 만에 나오는 놈들이 1시간이 돼도 안 나오니까 궁금해서 들어온 겁니다. 그랬는데, 탕 안에 아무도 없으니까 이상할 거 아닙니까? 사우나를 보니 사경을 헤매는 놈들이 몸에다 돈을 붙이고 고스톱을 치고 있으니 정말이지 백수 같은 놈들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끌려나온 우리들은 바로 탕바닥에 댓자로 뻗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날 저녁 우리들은 또 모였습니다. 인원 점검을 해보니 특공대 출신의 지씨가 안 나온 겁니다. 전화를 했더니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더라구요.
"짜식 특공대 출신이 그 정도 체력밖에 안돼!"
청취자 분들은 이렇게 얘기하시겠죠. 하지만 우리의 지씨는 그 정도밖엔 안됩니다. 우리 동네 특공대 출신이거든요. 마지막으로 형님, 명퇴 조퇴 황퇴가 횡횡하는 요즘 백수 여러분들께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참고 기다리면 분명히 좋은 날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
|
글나눔 → 추천글
|
|
|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 2장 동방신화
5. 바빌로니아
바빌로니아(Babylonia)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3000년 전에 번영했던 도시 바빌론과 그 외 여러 도시의 문명을 총칭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좁혀 말할때는 바빌론 도시에서 흥망성쇠한 나라들을 지칭한다. 통일제국의 첫 시작은 수메르, 아카디아, 마리(현 탈알하리리) 등의 도시국가를 정복한 아모리인이 건국한 함무라비왕조(기원전 1894~1595년경)로, 특히 왕 함무라비(재위 기원전 1792~1759)는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그 하나가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96년경)으로 당시로서는 놀랄 정도로 이성적이고 인도적인 관점에서 제정된 법전이다. 법전은 큰 섬록암 비석에 새겼는데, 비 상부에는 왕 함무라비가 오른손을 올리고 옥좌에 앉은 태양신 샤마시에게 법전의 편찬을 브리핑하는 장면을 부조하였다. 비문석 높이는 2.25m, 부조 부위의 높이는 0.71m로 파리의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그는 역사상 가장 찬란한 도시 중 하나인 바빌론과 거대한 '바벨탑'을 건립하였다. 신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바벨(Ba-Bel)은 하늘세계로 가는 산, 즉 계단식 피라미드 신전이 지구라트이다. 이는 하늘에 천신이 내려와 대지모신과 교합하는 성탑으로, 이 곳을 생식기가 놓인 중심점으로 가장 신성한 장소로 간주하였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유명한 '공중정원'은 이 지구라트 계단 7개에다 세계를 7개로 나눈 상징도시와 신전을 각 7개씩 낭떠러지에 건립한 것으로 마치 공중에 결려 있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후대에 느부갓네살은 이 지구라트를 복원하였는데 세계를 7개로 구분, 7개의 동심원 모양으로 신전을 세웠다. 아름다운 수도 바빌론은 정치적.종교적.상업적 중심지로서 크게 번영하였다. 그 후 바빌로니아 제국은 카시트 왕조(1530~1150년경), 아람인 왕조(기원전 1100~1000년경)의 지배로 바뀌고 기원전 10세기부터는 아시리아 제국이 들어섰다. 이후 기원전 625년 바빌론의 영주 나보폴라사르(재위 기원전 626~605)가 아시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 메데스에 가담하고, 기원전 612년아니라아의 수도 니네베는 함락당하였다. 영주의 아들 느부갓네살(재위 기원전 604~562)은 기원전 605년 카르케미시(히타이트 도시) 전쟁에서 이집트 군에게 승리를 거두고 바빌로니아 신제국(혹은 칼데아 제국)을 확립하였다. 신제국의 영역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및 실리시아(터키의 옛 지명)까지 포함하는 대제국이었다. 바빌로니아는 전설적 영광의 절정시대를 맞이하고 이 때 이름난 공중정원도 출현하였다. 이처럼 고대 오리엔트인은 호전적이고 전제군주의 지배하에 찬란한 문명을 이룩하였으나 이어 잔인한 파괴로 멸망하고, 유달리 흥망성쇠가 자주 되풀이되었다.
[함무라비 법전]
[대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
6. 바빌로니아 창세시편
아시리아는 멸망과 함께 전화의 화염으로 전소되었다. 그리고 이 화염에 구워져 땅에 파묻힌 점토판 문서 하나가 2500년간의 긴 잠 끝에 발견되어 귀중한 역사사료가 되었다. 제국이 붕괴되기 직전 통치자 아슈르바니팔(재위 기원전 668~631)은 수도 니네베에 거대한 도서관을 세우고 여기에 방대한 수의 설형문자 문서판을 보관하였다. 점토판은 바로 이 도서관에서 출토된 것으로, 소위 '네누마 엘리시'로 알려져 있는 기원전 7세기의 바빌로니아 창세시편의 서판이다. 이 창세시편에 대해서는, 언어와 스타일로 보아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발견된 기원전 1000년 이전의 서판 단편보다 훨씬 더 오래 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며 학자에 따라서는 적어도 기원전 2000년 전의 원본 복사라 추측하기도 한다. 바빌론에서는 새해 축제기간인 11일 중 넷째 날에 신관이 반드시 이 '에누마 엘리시'를 암송하였다. 새해에는 매번 다시 창세되므로 자연과 사회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따라서 왕도 재취임 의식을 밟았다. 일부 창세시의 내용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먼 옛날에는 하늘과 땅이라는 이름도 없고 신들조차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무에서 원생 남성 아프수(담수, 지하수, 샘과 개울물)와 여성 티아마트(해수, 대지 주위 혼돈의 정령)가 나타나 만물을 생성시켰다. 담수와 해수가 뒤섞여 한 몸이 되어 낳은 것이다. 질서나 한계, 법도도 없이 신과 괴물이 출현하였다. 신족의 아들 라마와 딸 라하마도 출생하고 이들은 크기 전에 안샤르와 키샤르를 낳았는데 남매는 다른 누구보다도 지혜가 뛰어나고 명석하였다. 안샤르와 키샤르의 첫 아들 에아(또는 누딤무드)는 대지와 물의 신이고, 다음 아들 아누(혹은 안)는 천공의 신이었다. 그런데 날이 가고 해를 거듭하면서 아누는 윗세대와 대립하였다. 수메르 신화에서는 천공의 신 안(비빌로니아의 아누)과 대지의 여신 키(바빌로니아의 에아)가 결합하여 엔릴(대기의 신)을 낳는다. 엔릴은 우주를 하늘과 땅으로 분리시키는 공기의 신으로 바람의 주신이자 비와 폭풍의 신이다. 바빌로니아 신화에는 이 신을 지혜와 마술의 원초신으로 보며, 수메르의 엔키 또는 에아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신성은 변모해 갔다. 에아가 여신 니누르사그를 아내로 삼아 얻은 아들 마르두크는 자라면서 성격은 난폭하나 용맹하고 지혜가 출중하였다. 한편 신들의 수가 불어나게 되고 그들이 모여 춤추며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니 이에 화가 난 아프수가 이들을 파멸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현명한 에아(수메르의 엔키)는 아프수(물)에 주문을 던져 조부신을 잠들게 한 후 아프수의 시종참모인 난쟁이 뭄무를 사로잡아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자 조모신 티아마트는 정복자인 손자들에게 복수할 계책을 세워 큰 괴물 큉구와 혼인하고 그를 수장으로 삼아 군병을 지휘, 운명의 주사위를 맡겼다. 이에 겁을 먹은 에아는 자신의 왕권을 찬탈하여 눈밖에 난 아들 마르두크를 내세워 대항케 였다. 처음에는 티아마트 군이 에아의 연합군을 이겼으나 두려움을 모르는 호담한 아들 마르두크가 티아마트 군의 계략을 알아차리고 앞으로 나서서 티아마트에게 단둘이서 승리를 결판짓자고 싸움을 걸었다. 그리고는 분노에 차서 앞뒤 가리지 않고 성미 급하게 덤비는 티아마트를 죽여 그 몸을 조개처럼 두 쪽으로 갈라 한 쪽으로는 창공을 만들어 별들을 차렸고 나머지 반으로는 땅을 만들었다. 모든 신들이 마르두크의 승리에 경탄하고 환영하였다. 마르두크는 적군을 지휘한 큉구를 살해하고 그 피로 인간이라 부르는 꼭두각시를 만들어 신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하여 땅의 경작을 맡게 하였다. 이제 신들의 세계는 혼돈 상태에서 벗어나 질서와 평화를 되찾고 인간은 그들의 종으로서 신들에게 복종할 운명이 씌워졌다. 신들이 협력하여 바빌론에 신전을 세우고 모든 신은 마르두크를 최고의 영웅신으로 삼아 바빌론의 주신으로서 엔릴과 에아와 함께 숭배하였다. 그리고 마르두크에게는 50개의 빛나는 별칭이 붙여졌는데 엔릴이 마지막으로 붙인 별칭은 '지상의 지배자'였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와 같은데 지금까지 발굴된 설형문자의 기록이 적은데다 파손 및 결손으로 해독이 난해하여 밝혀진 것은 아직 일부분에 불과하다.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서 크게 주목된다 할 것이다.
7. 길가메시
길가메시(Gilgamesh)는 기원전 3000년 초반 주민을 혹사하여 최초로 둘레가 9.5km나 되는 성벽을 쌓아 우루크(에레크) 도시를 건설한 소아시아의 왕으로, 아카디아와 수메르 또는 메소포타미아 지방 서서시에 등장하는 반신반인의 영웅이다. 기록상으로는 니네베의 아슈르바니팔 서고에서 출토된 설형문자 점토서판으로 알려졌으나 그 이전부터 구전된 셈족의 이야기로도 알려져 있었으며 타지역 즉, 이라크나 시리아, 터키, 이집트에서도 흡사한 신화가 발견되었다. 여러 고대 건물기둥의 명에 '신 길가메시'라고 기록된 이 존제는 126년간을 통치한 초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엔티두라는 야생인-전신에 털이 무성하고 머리칼은 여자처럼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린 야수와 더불어 사는 자-의 도전을 받았다. 엔키두는 상류사회 창녀와 10여 일간 인간적인 생활을 경험하여 길들여졌고 야성의 티를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다. 그가 성문에 들어서서 행패를 부리자 두 사나이는 서로를 꽉 쥔 채 황소처럼 붙어 싸우는데 성문의 문설주를 내려놓아 성벽이 흔들릴 정도였다. 싸움에 승부가 나지 않자 결국 두 사나이는 화해하고 길가메시는 예의도 알고 의협심도 있는 이 사나이에게 우정을 느끼고 서로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함께 삼림에 사는 공포의 거인 훔바바를 토벌하러 나섰다. 이 거인은 폭풍과 같이 노호하며 입에서는 화염을 뿜어 죽음의 숨을 내뿜는 무서운 괴물이었으나 둘이 힘을 합쳐 해치우는 데 성공하였다. 길가메시의 영웅적인 용감성에 탄복하여 연정을 품은 여신 인안나(사랑, 성욕과 성행위, 다산 및 전쟁의 여신으로 셈족의 아스타르테, 아카디아의 이슈타르, 기프로스의 아프로디테와 동일시)는 그를 자신의 애인으로 삼기 위해 만찬장에 초대,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모든 행운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영웅은 여신의 신의 없는 그간의 행실을 혹평하고 그녀의 구애를 거절하였다. 분통이 터진 인안나는 어버이인 최고신 아누(신들의 왕으로 천공의 최고신)와 왕비 안툼에게 이를 불평하니 길가메시와 대결할 '천공의 황소'를 보내주었다. 길가메시는 다시 엔키두와 협력하여 이 괴물 황소도 처치하였다. 결국 신들의 회의가 열리고 두 사나이 중 한 명에게 벌을 내리기로 하였다. 엔키두는 꿈에 신족의 총리 엔릴(바람과 폭풍의 신)에게서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 비통해하는 엔키두에게 창부는 "사막에서 자고 성벽 그늘에 서 있게 되며, 가시와 찔레에 발을 찔려 상처를 입고, 술에 만취되어 갈증이 볼 속으로 엄습할 것이다"는 저주의 말을 전하였다. 태양신 샤마시는 고뇌하는 그를 위무하나 깊은 잠에 빠져 지하계로 가는 꿈을 꾼 엔키두는 가시에 찔려 그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였다. 마침내 엔키두는 죽음을 맞이하고 길마메시는 통곡한다.
길가메시는 친구를 살리고 자신도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하는 방도를 찾아나섰다. 그리하여 머나먼 마슈 산으로 가서 신들의 잔을 채우는 시두리 여신을 만나게 되는데 그의 사연을 들은 시두리는 신들에게서 엿들은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었다. 즉 신들은 인간에게 죽음을 붙여 놓고 영생은 자기들 마음대로 하도록 손아귀에 쥐고 있다며 "잔혹한 신들이 인간은 모두 죽어야 하는 존재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찾고자 하는 영생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니 집에 가서 할 수 있을 때 인생의 좋은 것을 즐기시오"라고 충고하였다. 시두리는 끝으로 권하기를 "길가메시 님이여! 왕궁에 돌아가서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시고 밤낮없이 즐겁게 지내세요. 매일 잔치를 벌이고 밤낮 없이 춤추고 즐기세요. 깨끗한 옷으로 치장하고 머리 감고 목욕하며 당신 손을 잡는 귀여운 자식의 재롱을 보면서 품에 안긴 아내와 행복을 누리세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길가메시는 흔들림 없는 결심으로 수많은 난관을 뚫고 지옥의 바다를 건너 영생의 비밀을 안다는 노인 우트 나피슈팀(홍수 신화의 주인공. 인간 중 유일하게 불사를 얻은 인물로서 구약성경의 노아)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영생하는 신족에 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노인은 긴 사연을 들려주는데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길가메시는 그만 졸음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인간은 나약한가! 긴 잠에서 깨어난 그는 마침내 노인이 알려준 불로초가 있다는 곳으로 갔다. 불로초는 깊은 바다 밑에 있었으므로 무거운 돌을 발목에 묶고 바다 밑의 영초를 찾아 채취한 후 매어 놓은 끈을 잘라 돌을 버리고 물 밖으로 나왔다.
불로초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먹기로 결심한 길가메시는 이제 우루크를 향해 귀향길에 올랐다. 그런데 도중에 샘물에서 몸을 씻고 있는 사이 뱀이 나와 이 영초를 훔쳐 삼키고는 껍질을 벗고 다시 젊어져 사라져 버렸다. 불로초를 빼앗긴 길가메시는 아연질색, 주저앉아 통곡을 하다 이것이 운명이며 인간의 마음의 젊음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다시 고향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였다. 위의 신화로도 알 수 있듯이 옛 이집트인들은 저승에서 삶과 쾌락에 기대를 걸었던 데 비해 수메르.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즐거움을 현세에서 찾았던 것이다. 아랍의 신비주의적 종파 수피즘 철학자는 시두리를 샤크티 여신과 같은 신격으로 숭앙하고 이슬람교 속에 성과 여성 숭배의 한 형태로 탄트리즘을 도입하였다. 탄트라교는 힌두교의 3대 신격의 하나인 파괴와 창조의 상징이자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시바 여신과 여성의 생식력(기)이 인격화한 샤크티의 속성을 결합하여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하여 한 종교로 샤키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시두리의 찰나주의 철학은 구약 전도서 9장에 전해 오는데 여기에는 '신의 말씀'으로 여러 가지 보복 또는 처벌을 가져온다는 내세를 부정하고 유대교.그리스도교의 신이 정의를 행하는 일은 없다는 식의 차원이 다른 이교적 사조를 전하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중인 길가메시의 부조]
|
|
첫쪽 → 배경화면
|
|
|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