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0호 2023.3.8 수요일 (음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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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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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정원을 가꾸고,
평생의 행복을 원한다면 나무를 심어라
If you want to be happy for a year, plant a garden ;
if you want to be happy for life,plant a tree.
* 더글라스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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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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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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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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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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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 한용운
당신이 계실 때에 알뜰한 사랑을 못하였습니다.
사랑보다 믿음이 많고, 즐거움보다 조심이 더하였습니다.
게다가 나의 성격이 냉담하고 더구나 가난에 쫓겨서,
병들어 누운 당신에게 도리어 소활(疏闊)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신 뒤에, 떠난 근심보다
뉘우치는 눈물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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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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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9. 여걸 천하(여후, 진평)
2) 도대체 여자의 욕심이란 그 끝이 어디일까?(여후)
여후는 유방이 아직 이름도 없던 때에 결혼했던 부인으로, 유방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바로 뒷날의 효혜제와 노원 공주였다. 천하 통일 후, 여후의 억센 성격은 드디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신을 처형하고 팽월을 죽이는 등 공신들을 숙청하는데 큰 기여를 했으며, 차츰 정치에까지 손을 뻗치게 되었다. 한편 유방은 한나라 황제가 된 뒤, 척희라는 미인을 얻어 매우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척희는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바로 여의였다. 그런데 여후가 낳은 아들, 그러니까 효혜는 워낙 천성이 착하고 나약했다. 그래서 유방은 효혜가 부모의 성격을 닮지 않은 점에 매우 서운해 했으며, 효혜 대신 척희의 아들인 여의를 태자로 세울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더구나 여의는 유방을 똑같이 닮아 유방도 그를 매우 아끼고 있었다. 그 당시 척희는 유방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을 때라, 유방이 궁궐을 떠나 여행을 하는 데에도 항상 곁에 있었다. 그러면서 척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 아들 여의를 태자로 삼아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여후는 완전히 버림받고 있는 조강지처였다. '색이 시들면 사랑도 식는다'는 말이 역시 정확했다. 여후는 유방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제대로 얼굴을 맞댈 기회조차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화살이 있어도 쏠 수가 없으니
여의를 태자로 삼아야겠다는 유방의 마음은 더욱 굳어져 가고 있었다. 초조해진 여후는 장량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에 정량은 궁궐에 들어가 유방에게 몇 번이나 태자를 바꾸지 말라고 간청했지만, 유방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장량은 생각을 바꿔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어느 날 궁중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효혜 태자도 와 있었는데, 그 뒤에는 네 명의 노인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 80을 넘은 노인들로서 수염이나 눈썹까지 하얗게 새어 있었다. 그들은 차려입은 옷매무새가 마치 신선과 같았다. 그러자 유방이 물었다.
"저 사람들은 누구냐?"
이에 네 노인이 유방 앞에 나아가 각자 이름을 밝혔다. 다름아닌 동원공, 녹리 선생, 가리계, 하황공의 상산사호였다. 이들은 실로 유방이 천하 통일 전부터 가르침을 받고자 그렇게 찾아다녔던 도인들이었던 것이다. 유방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니,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찾았었는데.... 그간 어디 계셨소? 일부러 나를 피하는 것 같던데...."
이에 노인들이 말했다.
"황공합니다만, 폐하께서 인물을 못 알아보시고 곧잘 바보 취급하시는데 어떻게 나타날 수 있었겠습니까? 다만 태자는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우애로 감싸며, 남에게도 겸허한 태도로 대해 주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태자를 따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랬던가...."
유방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면 앞으로도 태자를 잘 부탁하오."
네 노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유방의 장수를 기원하는 술잔을 들고 물러나갔다. 한참 후 유방은 척희를 불렀다.
"나는 정말 여의를 태자로 삼고자 했으나, 태자는 네 도인이 보필하고 있네. 태자에게도 날개가 돋아난 셈이지. 내 힘으로도 어쩔 수 없다네. 그대는 내가 죽은 후 여후를 도와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척희는 흐느껴 울었다.
그러자 유방은 노래를 읊기 시작했다.
새는 하늘 높이 천 리를 날으네
날개 어느새 굳세어 사해를 건너네
사해를 나는 날개를 어지 막으리오
화살이 있어도 쏠 수가 없으니
척희의 뺨에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 뒤 효혜 태자는 태자 자리를 굳게 지킬 수 있었다. 이 모두 장량의 도움 덕택이었다.
사람돼지
그 후 유방이 죽었다. 효혜 태자가 황제로 즉위하고, 여후는 태후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여후에겐 눈엣가시가 있었으니, 바로 척희였다. 유방의 사랑을 모조리 빼앗아가고, 아들 효혜의 태자 자리도 거의 빼앗길 뻔했을 정도로 항상 여후 옥죄어 왔던 척희! 실로 여후는 유방이 살아 있을 때부터 척희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방이 죽자마자, 여후는 척희를 곧장 잡아다가 궁중에서 죄지은 자만 가두는 영항이라는 토굴 감옥에 처넣어 버렸다. 그러면서 척희의 아들 여의도 즉각 입궐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몇 번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여의는 오지 않았다. 대신 주창이라는 신하거 편지를 올렸다.
"선제께서 '여의가 아직 어리니 네가 지켜주어라'는 분부를 내리셨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태후께서 척희 부인을 미워하셔서 여의 왕자님까지 함께 죽이시려고 한다니, 어떻게 보낼 수 있겠습니까?"
편지를 일고 난 여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라,
"무슨 말이냐, 두말 말고 그 놈을 끌어와라!" 하고 호통을 쳤다. 드디어 여의는 궁궐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이때 원래부터 우애가 깊었던 효혜제는 여후의 속셈을 알아채고 여의가 궁궐에 도착하기 전에 손수 궁궐밖에 나가 궁궐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잠시도 여의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여의를 죽일 기회만 노리던 여후도 할 수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효혜제가 사냥을 나가게 되었는데, 아직 어렸던 여의는 일찍 일어나지 못해 궁궐에 홀로 남게 되었다. 이때를 놓칠세라 여후는 사람을 보내 여의에게 독을 탄 술을 먹이도록 했다. 효혜제가 사냥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여의는 차디찬 시체로 변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후의 복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여후는 영항에 갇혀 있던 척희에게 처참하게 복수했던 것이다. 여후는 우선 척희의 수족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는 눈을 도려내고 귀를 찢어 태웠으며, 벙어리가 되게 하는 약을 먹였다. 그것도 모자라 변소 밑바닥에 버리고 '사람돼지'라 부르게 했다. 며칠 후 여후는 효혜제에게 그 '사람돼지'를 보여 주었다. 효혜제는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척희라는 말을 듣자 통곡하다가 그대로 앓아 누웠다.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어 여후에게 애원했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제부터 나를 아들로 여기지 마십시오. 나는 이런 식으로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겠습니다."
그 후 효혜제는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가뜩이나 쇠약한 몸으로 매일같이 술과 여자에 파묻혀 지내다가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때 그의 나이 겨우 23세였다.
단 한번의 사랑으로 태후가 된 여인
유방의 총애를 받던 여인들은 여후의 복수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유방의 사랑을 덜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남아 끝내 황제의 어머니가 된 여인이 있었다. 바로 박희라는 여인이었다. 박희는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놓고 겨룰 때, 아버지가 항우 진영에 있었다. 그 후 전쟁에서 패하자 그 가족들은 포로가 되어 아버지는 처형당하고, 박희는 노예로 되어 베 짜는 여인이 되었다. 그 뒤 우연히 베 짜는 방에 들른 유방은 박희의 미모에 반해 박희를 후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박희의 미모도 사실은 별 뛰어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유방의 머리에서 까맣게 잊혀지게 되었다. 그런데 박희는 관부인과 조자아라는 두 명의 후궁과 매우 친했다. 그래서 세 친구는 언제나, "우린 나중에 누가 먼저 귀인이 되더라도, 서로 잊지 말자. 꼭...."하고 약속했었다. 그 후 관부인과 조자아는 유방의 총애를 받는 몸이 되었다. 어느 날 유방과 같이 나들이하던 두 후궁은 잠시 쉬고 있을 때, 박희와의 약속을 말하며 서로 웃었다. 그러자 유방이 꾸중을 하며 왜 웃냐고 물었다. 두 후궁이 그 이유를 말하니 유방은 갑자기 박희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즉시 박희를 불러내 잠자리를 같이 했다. 그때 박희가 조용히 속삭였다.
"지난 밤 제 배에 푸른 용이 들어오는 꿈을 꾸었답니다."
"그래, 그건 길조구나. 그 꿈을 이뤄 주마."
이렇게 해서 박희는 단 한번의 정을 받고 아들을 잉태했다. 그러나 그 뒤 박희는 유방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유방이 죽고 나자 유방의 사랑을 받던 후궁들은 모조리 여후에게 앙갚음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박희는 유방과 거의 관계도 없던 '불쌍한 여인'으로 취급되어 살아 남았던 것이다. 더구나 여후가 죽은 후, 여씨의 전횡에 넌더리가 나 있던 중신들이 박희를 불러 들였고 그래서 그 아들을 황제로 세웠던 것이다. 참으로 불행이 행운으로 바뀐 경우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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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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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불비우불명 (三年不飛又不鳴)
三:석 삼. 年:해 년. 不:아니 불. 飛:날 비. 又:또 우. 鳴:울 명.
[원말] 삼년불비 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동의어] 삼년불비불명(三年不飛不鳴).
[유사어] 자복(雌伏). [출전]《呂氏春秋》〈審應覽〉,《史記》〈滑稽列傳〉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훗날 웅비(雄飛)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음을 이르는 말.
춘추시대 초엽, 오패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초(楚)나라 장왕(莊王:B.C. 613~591)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장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앞으로, 과인을 간하는 자는 사형(死刑)에 처할 것이오.”
그 후 장왕은 3년간에 걸쳐 국정은 돌보지 않은 채 주색(酒色)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를 보다 못한 충신 오거(五擧)는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諫言)할 결심을 했다. 그러나 차마 직간(直諫)할 수가 없어 수수께끼로써 우회적으로 간하기로 했다.
“전하, 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내볼까 하나이다.”
“어서 내보내시오.”
“언덕 위에 큰 새가 한 마리 있사온데, 이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사옵니다[三年不飛又不鳴].’ 대체 이 새는 무슨 새이겠나이까?”
장왕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오. 또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 이제 그대의 뜻을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시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으나 장왕의 난행(亂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부 소종(蘇從)이 죽음을 각오하고 이전에 나아가 직간했다. 그러자 장왕은 꾸짖듯이 말했다.
“경(卿)은 포고문도 못 보았소?”
“예, 보았나이다. 하오나 신은 전하께서오서 국정에 전념해 주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알았소. 물러가시오.”
장왕은 그날부터 주색을 멀리하고 국정에 전념했다. 3년 동안 장왕이 주색을 가까이했던 것은 충신과 간신을 선별하기 위한 사전 공작이었다. 장왕은 국정에 임하자마자 간신을 비롯한 부정 부패 관리 등 수백 명에 이르는 반윤리적 공직자를 주살(誅殺)하고 수백 명의 충신을 등용했다. 그리고 오거와 소종에게 정치를 맡겨 어지러웠던 나라가 바로잡히자 백성들은 장왕의 멋진 재기를 크게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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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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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책상을 지켜라 - 이현지(여.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진입에 실패하고 외곽에서만 7년째 돌고 있는 30대 주부입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건만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대단한 기업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는 남편의 엄청난 월급만으로는 서울 진입은 커녕 제 드레스비도 안나오는 것 같아 몇 푼이라도 보태볼 요량으로 조무래기들도 가르쳐보고, 조그만 사무실에서 잡일도 해봤는데, 점심값 내고, 파마하고, 스타킹 사신고, 가끔 보건복지부에 좀 내고, 교통부에 보태고 하고 나니 남는게 없더라구요. 이럴바엔 부족하지만 남편 월급만으로 알뜰살뜰 쪼개서 꾸려보는 게 현명하겠다는 생각읗 했습니다. 매달 25일이면 꼬박꼬박 월급봉투 가져다 주는 남편이 내심 든든했습니다. 사업하는 남편을 둔 친구들의 피를 말리는 궁핍을 지켜보면서 '내가 뽑긴 잘 뽑았지! 다달이 쥐꼬리만큼이라도 받아오는 게 어디야?' 고맙고 대견했죠.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신문이나 드라마에서만 듣던 명퇴나 조퇴의 바람이 남편의 회사에도 불기 시작했다는 비보를 접한 건 작년말, 몹시도 춥고 바람이 사납게 불던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7시면 '땡'하던 사람이 20분이 지나서야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내 기다리지 마라."
"언제까지."
"정년퇴직 때까지."
"그렇게 오래?"
"오늘 김차장 보따리 쌓다 아이가. 명퇴국 묵었다."
명퇴국!
순간! 바람을 등진 채 절벽 끝으로 내몰린 듯 명치끝이 시리고 다리가 떨려왔습니다. 아침에 골목 끝에 세워져 있던 버려진 군고구마통이랑 시장통 어귀에서 풀빵굽던 지치고 초라한 아낙네의 뒷모습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우짜노, 우짜노. 자기 회사는 괜찮다고 안했나?"
"기습당했다. 이게 폭탄이라 카믄 내도 쓸리갔다 아이가. 김차장은 바로 내 뒷자린데... 아이구 무시라. 나쁜 놈들이 그새 책상까지 다 치웠다 아이가. 니 각오 단디 하그라. 내는 절대 못 나간다. 여기서 묵고 자고 해서러도 내 자리 지켜야 안되겠나."
언제는 자기가 차세대 주자며, 본부장의 오른팔이며, 팀 내의 아이디어 뱅크에 떠오르는 전설이라더니... 해서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물밀듯 들어와 본부장이 긴장한다는 둥, 자기 없으면 회사는 셔터 내린다는 둥, 여차하면 사표 던지고 나온다는 둥,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잘난 책상 하나 지키자고 저렇게 목숨거나 싶어 무지 실망스럽더라구요. '주변머리 없는 인간, 그래도 회사에서는 인정받는구나 싶어 든든했는데... 믿었던 내가 나쁘지...
"그래 자기야, 집은 걱정마그라. 무슨 일이 있어도 틈을 보이면 안된데이."
잘난 남편이 직장에서 떨려 나왔을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저는 몹시 붕안했습니다.1 그리 똑똑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혹은 물려받을 재산도 없고, 벌어논 돈도 없고, 누구처럼 처가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건강하기나 해? 위장병에, 편도선염에, 축농증에, 꽃가루 알레르게에 치질까지... 밝혀낸 것만 해도 종합병원 수준인데. 성격이나 좋아? 7남매 막내라 독선적이고 이기적인데다 고집은 얼마나 쎄? '아부'절대 못하잖아? 아무리 생각 해도 그이의 퇴직은 곧 저의 불행이자 재난이었습니다. 건강하고 성격좋은 제가 바로 군고구마통 끌고 나가거나 모래등짐이라도 날라야 할 판이라구요? 7년이나 살았으니 물릴 수 도 없고. 지캉 살다보면 드레스 입고 파티에 참석할 날도 있을 거라며, 봄이면 필드에서, 여름이면 해변에서, 가을이면 별장에서, 겨울이면 스키장에서 벽난로에 장작불 '따닥따닥' 치워가며 인생 즐길 날 있을 거라더니 벽난로에 장작불은 커녕 장작불 때서 군고구마 굽게 되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어요. 10시가 넘어서야 기진맥진해서 돌아온 남편은 힘 없이 제 품에 쓰러지며 "자기야, 내는 자기만 믿는데이..." 이러는 겁니다. 머리에서 김나데요. 뭐시라, 내만 믿는다고? 자기만 믿으라고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자기만 믿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그럴 땐 언제고.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3년이나 부은 내 적금! 내 피 같은 700만원 해약해서 가져가더니 그게 우째 됐노? 떡은 커녕 고물도 없더라. 내 말대로 튼튼건설이나 양심상사에 넣었으면 이자돈은 벌었지. '한보'는 와 사노? 와 사? 자기만 믿고 떡 700만원어치 잘 묵었다. 뭐? 내만 믿는다꼬? 툭하면 '니가 뭐 아노?' '니가 뭘 안다고 나서노?' '니 그래 잘 아나? 그라믄 니가 남편 하거라.' 요러더니 바등에 불 떨어지니까 내만 믿는다꼬? 어림없다. 당장 나가서 돈 벌어 오거라 마!' 하고 등 떼밀어 내 쫓고 싶은 마은 굴뚝 같은 걸 수양한다 생각하고 침 한번 '꿀꺽' 삼킨 후 말했습니다.
"그래. 자기야 내만 믿어라."
그리고 등 두들겨 재웠습니다. 그날따라 다리도 못 뻗고 옆으로 잔뜩 오그린 채 새우잠을 자는 남편을 보며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도 구슬픈 가락으로 힘없이 골더군요. 드디어 아침이 어김없이 밝아오고 저희는 머리를 맞대고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첫째, 절대 책상은 고수한다. 둘째,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한다. 셋째, 되도록 윗사람 눈에 뜨이지 말되 사적인 자리에서는 손이 발이 되도록 아부한다. ... 등등. 일단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담담하고 당당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책상 뺏어가도 문제없어. 내 뒤에 소파 있어."
엊그재까지만 해도 꽁지 내리고 제 품에 쓰러지더니 하룻새 용기백배한 남편은 보무도 당당하게 새벽길을 달려나갔습니다. '불쌍한 인간, 빽도 줄도 없이 몸으로 막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구나.' 이런 남편이라 생각하니 가슴 시리게 측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다면 한다는 거 아닙니까. 힘으로 버티겠다는데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그날부터 남편은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았으며, 본부장, 전무, 이사, 팀장까지 다 퇴근하고 야근하는 직원들까지도 다 나가야 비로소 안심하고 책상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점심시간엔 도시락 시켜먹구요. 틈을 보이면 안되니까요. 위에서 보기에도 열심히 일하는 것 같잖아요. 어쩌다 외출할 일이 생기면 차마 발길이 안 떨어져서 저만치 가다 돌아보고 또 저만치 가다 돌아보고... 거래처 가서도 10분마다 전화를 한대요.
"나 금방 들어갈 거다."
"나 지금 출발한다."
"나 거의 다 왔다."
하루는 예기치 않은 접촉사고로 출근시간에 10분 늦게 도착하게 됐더래요. 현관에서 3층 사무실까지 뛰어 올라가는데 불과 2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머리끝이 서고 등에서 땀이 나더래요. 사무실 문을 벌컥 여는 순간 햇살 한점 들어오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서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는 남편의 책상이 눈에 들어오더래요. 그 감격이란! 잃었던 자식을 찾은 양 책상에 볼을 비비며 가슴으로 울었대요. 그 광경을 보고 실장님이 그러셨더래요.
"은행나무 침대가 따로 없구마!"
그러던 중 또 한명의 조퇴자가 발생했습니다. 사장으로부터 '친전' 이라고 뻘건 도장이 찍힌 편지가 조부장 앞으로 날아들었던 겁니다. 속칭 그네들끼리 통하는 '폭탄' 이었습니다. 생각없이 봉투를 연 조부장은 '찍' 외마디 비명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이틀 후였어요. 나른한 오후를 가르고 전화벨이 짜증스레 울렸습니다. 왠지 불길한 예감에 손이 떨렸습니다.
"여보세..."
전화를 받고 제가 미처 '요!' 도 끝나기 전에 "자, 자, 자, 자기야, 와, 와, 와 왔다..." 울음섞인 남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오긴 뭐가 왔다고?"
"치, 치, 친전... 내만 받은 거 아이다. 김과장, 오과장, 정차장도 받았다."
"그 사람들도 뜯어봤대?"
"정차장만! 쫙 찢어서 쓰레기통에 내삐리고 담배 한 대 빼서 밖에 나갔다. 마음 정리하고 있지 싶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어 막막하다면서도 후련한 감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자기야, 낙심 말거라. 이게 제 2의 기회가 될지 누가 아노? 오히려 잘됐다. 자기도 확 찢어서 내버리고 온나. 소주 한 잔 하자."
대답도 없이 수화기 저쪽에선 '니가 뜯어라, 내가 뜯는다.' 웅성웅성 소란한 소리가 나더니 남편은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충격받고 쓰러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1시간 후 제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남편의 목소리는 침착했습니다.
"자기 괜찮아?"
"괜찮지 그럼 뭐..."
"뜯어 봤어?"
"별거 아니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뭐. 별로..."
"뭔데?"
"아! 그냥 뭐... 보... 보름달싸롱에서... 내부수리 끝났다고..."
저! 그냥 뚜껑 열렸습니다. 남편은 소파를 점거당하는 줄 알고 불안해 했지만 그는 오히려 웃으며 떠났습니다. 모두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채.
"지는 벌써 맘 묵고 있었더라. 사업을 할랑께요. 마누라가 미장원 하믄서 좀 모아논 게 있었더라."
그날부터 저에게도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저랑 눈만 마주치면 한숨을 들익쉬고 내쉬고... 바늘 방석이 따로 없었어요. 분위기 좀 역전시켜보려고 "자기 말대로 괜히 여자가 몇 푼 벌어볼려고 나서면 집안 꼴이 어수선해지고, 이 불경기가 쪽박차기 딱이지뭐. 남편 기만 죽이고 그지?" 그러자 남편은 저를 빤히 보더니 말했습니다.
"남편 기 안죽더라. 이대리 봐. 기고만장하던데 뭐. 보따리 싸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마누라가 통장 두 개를 '척' 내놓으면서 '당신 하고 싶은 거 하이소.' 하더래잖아. 되는 집안이지. 영업부 임과장 알지? 마누라 보험회사 다니잖아. 1년 좀 넘었는데 보수가 임과장보다 훨씬 많대지 아마. 그자식은 요즘 배짱이잖아. 오늘 전무실에 고개 바짝 들고 들어가더라니까. 뭘 믿고 그러는지..."
“당신은 그게 그리 부럽나?”
“부럽기는 나 그런 놈 아니야, 마누라 덕보고 살 놈으로 보여? 나 절대 그런 놈 아냐!”
“그래 자기야, 돈 한 푼 안 벌어와도 살림 잘하고 건강하면 그게 버는 버는 거야. 아직 젊은데 뭐.“
그러나 남편은 제 말을 듣는지 마는지 신문만 신경질적으로 뒤적거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봐라! 여기 구민회관에서 실비로 도배기술 가르쳐 준단다. 아이구! 취업 알선까지. 부업으로 하면 짭짤하겠다. 이런! 남자면 내가 가겠구만 주부대상이라네, 의욕있고 건강한 주부들만 모신단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구민회관도 찾아갔지요. 영세민 우선이라 자격 미달이었어요. 남편의 노이로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동문선배라고 호형호제하며 따르던 박차장마저 회사를 떠나자 의지할 데 없는 남편은 개발부 김차장처럼 6년 전 창립기념일에 받은 우수사원 표창장을 복사해서 책상 밑에 끼워두겠다고 우겼습니다.
“사장 표창장 붙은 책상을 어느 놈이 치우겠어?”
그런데 옆자리의 오과장은 책상보다 명패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모양이었습니다. 각자의 책상위엔 부서명과 직함 그리고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올려져 있는데, 부서와 직함은 고정돼 있지만 이름은 카드처럼 끼웠다 뺐다 할 수 있게 돼 있대요. 사장과 사돈의 팔촌의 이웃사촌인 오과장도 내심 불안했던지 퇴근할 때면 명패를 캐비닛 위 저 높은 곳에 까치발로 올려놓고 가면서 말한답니다.
“명패만 있으면, 내는 소파에 앉아도 떳떳해!”
덩치 큰 책상보다 관리하기 쉬운 명패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죠. 그러나 히트는 엉뚱하고 순진하기로 유명한 김대리였습니다. 명패에다 아예 이름카드를 절대 못 빼게 종이를 꾸겨서 열심히 끼워 넣고 있었대요. 옆에서 실장님이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서.
“봐라, 김대리! 니는 평생 대리로 있을끼가? 과장 시키줄라 했더니 안되겠구마.”
“실장님, 지는 진급 안 해도 되는구만요. 만년 대리라도 월급만 매달 주면 되지라. 어제 20년 만기적금 넣었응게 적금 탈 때까지 버텨야지라.”
그럭저럭 한달이 지나 고맙게도 월급을 타게 되었습니다. 봉투를 내밀면서 남편은 말했습니다.
“내 피와 땀이다. 한 푼 쓸때마다 내 살 뜯어간다 생각하고 애끼쓰거라.”
지난달과 달리 봉투가 좀더 두툼해진 것 같아 세어보니, 야근수당이 꽤 붙어 있었습니다.
“자기야, 이러면 안되지, 화를 자초하는 거다.”
“왜?”
“안그래도 회사에거 경비절감한다고 책상들 빼가는데, 자기는 거기다 수당까지 받아가니 위에서 알아봐라. 감원대상 0순위다.”
준비상사태였습니다. 해서 그 다음날부터는 나의 야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마라. 일명 이순신 작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성공적이었습니다. 평소 나는 야근이 싫어요. 라고 외치고 다녀 이승복으로 통하던 남편이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데다 수당을 신청하지 않으니 주위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쯧쯧...! 사람 하나 버렸어.”
“돈도 싫고 인간도 싫대.”
“집에서 쫓겨났잖아.”
등등 별의별 루머가 돌았지만 남편은 끄떡 없었습니다. 대쪽같고 무뚝뚝하던 남편은 명퇴의 위기 앞에서 얼굴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부장님에게 결재판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아도 눈 한 번 꼴시는 일이 없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남편은 이런 마음으로 읏으며 물러나와 영광스럽게도 전무님과 식사라고 함께 할라치면 옆에 앉아서 젓가락까지 숟가락 옆에 놓아주고, 물수건은 오른쪽에, 생선토막은 밥그릇 앞에 당겨드리고, 고기는 타지 않게 잘 뒤적여 앞에다 쌓아드리고..등등 그러나 결정적인 아부의 극치는 여기 또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100% 미국산 면행주를 들었다 놨다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길래 연유를 물어보니, 전무님이 난을 애지중지하시는데, 잎이라도 닦아드리는게 도리 아니겠냐고... 집안의 유일한 녹색식물인 행운목 수반에 담배꽁초 끄는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아부도 이쯤되면 질환의 경지에 온 게 아닌가 해서 요즘은 잠이 오지 않습니다. 차라리 군고구마통 끄는 게 마음 편할 거 같기도 하고... 혹시 MBC앞에 목 좋은 자리라도 있으면 연락 주세요. 지루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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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과학/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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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운명 빅뱅과 그 이후 - 트린 후안 투안
제 5장 행성의 탄생
우주 속의 분자
거대한 별의 내부에서 이루어진 창조적인 연금술로 우주에는 무거운 핵이 생겼으며, 이 핵들은 초신성 폭발 때 별들 사이의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이 핵들이 원자와 분자로 바뀌려면, 그전에 핵끼리 충돌하여 결합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성간 구름은 너무 성기므로 원자의 증식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성간 먼지 알갱이들, 득 적색거성의 대기에서 떨어져 나와 응축된 후 강력한 복사선에 의해 우주 공간으로 밀려나온 먼지 알갱이들이라면 훨씬 유리하다. 이 고체 입자들은 지름이 수백 분의 1㎝에 불과하지만 원자에 비하면 대단히 크다. 즉, 산소, 규소, 마그네슘, 철의 원자 수십억 개가 전자기력에 의해 규칙적인 그물 구조로 결합하고, 그 위에 얇은 얼음이 덮여서 고체의 핵이 된 것이다. 실제로 성간 먼지 알갱이의 표면은 훌륭한 증식 장소로 밝혀졌다. 전자기력에 의해 일단 다시 묶인 무거운 원소의 핵들은 별들 속의 깊은 곳에서 단련되었다. 2개, 3개, 4개, … 12개의 원자를 가진 분자가 우주 공간에서 만들어졌다. 특히 수소 분자 (H₂)와 일산화탄소 분자(CO), 그리고 우리의 푸른 행성에서 생명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물 분자(H₂O)가 풍부했다. 다음으로 메탄과 암모니아가 생겨났고, 이것은 나중에 원시 지구 대기에서 유독성 부산물의 원인이 되었다. 전파천문학자들은 현재 성간 물질 속에서 100여 종의 분자를 찾아냈다. 그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수소, 탄소, 질소, 산소 등이다. 이 4가지 원소는 모든 생명체의 99%이상을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DNA 2중 나선 구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아직 요원했다.
태양계의 탄생
다음 단계는 10∼1000개가 아니라 수백만 개의 원자로 이루어진 원자 구조물을 만드는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 과정은 성간 물질보다도 훨씬 우수한 증식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주가 행성을 만들어냈다. 이제 우리의 고향 행성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살펴보자, 우주 시계는 이미 104억 년을 알리고 있었다. 그때까지 우주는 팽창을 거듭하여 물질이 점점 희박해지며 차갑게 식어갔다. 국부은하군과 은하단, 초은하단이 모여 우주의 양탄자를 짜냈다. 몇 세대의 별들이 태어나서 죽고, 무거운 원소들이 우주 공간으로 흩어져갔다.
수천억 개의 은하로 이루어진 우주
은하수의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3분의 2쯤 되는 곳에서 성간 가스의 그름이 뭉치기 시작했다. 내부 온도가 1000만K에 이르자, 수소의 핵융합이 시작되었다. 가스 구름에 불이 붙어 별이 된 것이다. 제 3세대의 별인 태양은 이렇게 점화되었다. 가스 구름의 수축기에 먼지 알갱이들이 가스 구름 밖으로 몰려서 태양 둘레를 돌기 시작했고, 마치 토성의 고리처럼 자리를 잡았다. 이 고리들 속에서 무거운 먼지 알갱이들은-다른 것보다 강한 인력 때문에-서로 부딪치며 뭉쳐서 좀더 큰 덩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질량과 인력이 증가하자 다른 것들과 부딪쳐 합쳐지는 속독 빨라졌다. 얼마 후 중력을 고리를 이루던 물질을 대부분 끌어당겨, 우리가 행성이라 부르는 공 모양의 천체 9개를 만들어냈다. 좀더 작은 덩어리들은 행성들의 주의를 도는 위성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태양계가 완성된 것이다.
우리의 행성:지구
나머지 성간 먼지들은 공 모양을 이루기에는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울퉁불퉁한 바위덩어리인 수천 개의 소행성이 되었다. 크기가 수밀리미터부터 수킬로미터에 이르는 이들 소행성은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의 띠라고 부르는 곳에 모여서 태양 둘레를 돌고 있다. 태양계의 초기 시절에는 수많은 커다란 소행성이 생긴 지 얼마 안되는 행성들과 충돌하였다. 달과 수성의 표면에 광범위하게 생긴 크레이터는 이와 같은 충돌에 대한 말없는 증언인 셈이다. 하지만 지구는 비, 강물, 빙하 등의 침식작용과 대륙의 운동 때문에 이러한 대충돌 시기의 흔적이 거의 지워져버렸다.
최근에 충돌한 운석들의 흔적
운석 충돌의 증거로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거대한 배린저 크레이터가 있다. 지름이 거의 1㎞나 되는 이 거대한 웅덩이는 약 3만년 전에 운석이 땅에 충돌하는 순간에 발생한 폭발 때문에 생겼다. 우주의 돌멩이들은 수시로 지구의 대기권 속으로 들어온다. 대기권으로 들어온 우주의 돌멩이는 대가와 마찰을 일으켜 붉게 타오르면서 긴 꼬리를 자국으로 남긴다. 하지만 개중에는 땅에 떨어질 때 완전히 타지 않고 암석질의 숯덩어리 상태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이들을 분석하여 알아낸 운석의 화학적 구조는 태양계의 형성 과정을 규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물과 대홍수 이야기
이제 행성이 만들어져 생명 탄생의 무대가 세워졌다. 생명을 움틔우는 일은 우주 공간의 매우 깊숙한 곳에서 별들이 방출한 물질을 이용해 이미 만들어져 있던 물이라고 하는 강력한 동맹군의 협조가 필요했다. 시간은 태양의 탄생 이후 10억년이 지나고 있었다. 당시 우리 행성의 표면은 화산이 토해 놓은 붉은 용암으로 덮여 있었고, 계속 식어갔다. 땅이 단단해지고 원시 대륙이 형태를 갖추는 동안 용암은 엄청난 양의 가스를 쏟아내고, 가스는 온통 땅 위를 덮어 오늘날보다 수백 배나 두꺼운 대기를 만들었다. 초기의 대기는 수소, 암모니아, 메탄, 수증기, 이산화탄소 등으로 되어 있어서 생명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지구는 더욱 차갑게 식어, 물이 대기에서 빠져나와 모이게 되었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려 마침내 지구 표면의 4분의 3이 바다로 덮였다.
불멸의 비밀
이제 물이 생명 탄생의 촉진제 역할을 수행했다. 물은 아주 효율적인 용해제이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이질적인 분자들이 쉽사리 그 속에 녹아들어 갈 수 있었다. 더구나 성간 물질보다 밀도가 수천억 배의 수천억 배는 커서 그야말로 최적의 배양지였다. 물은 원시 태양에서 오는 고에너지를 가진 해로운 자외선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끊임없이 번쩍이고 있는 강력한 번개로부터 그 속에 담겨 있는 분자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안전한 환경 아래에서 원시의 대기 속에 있던 간단한 분자들이 합성되는 축제가 벌어졌다. 그후 수억 년 동안에 등장한 점점 복잡해진 유기화합물 처음에는 약 30개의 원자들이 서로 다르게 배열된 20개의 아미노산이 만들어졌다. 다음으로 아미노산은 더욱 긴 사슬을 이루어 단백질을 만들었는데, 단백질은 교대로 연결돼 DNA 분자의 2중나선 구조를 형성하였다. 수백만 개의 원자가 이어진 DNA 2중나선은 자기복제라는 불멸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즉 모든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 시계가 115억 년을 알릴 무렵 DNA 사슬은 각각 약 1천조 개의 원자를 가진 분자로 진화했다. 이로써 원시 바다는 단세포의 박테리아와 조류(조류)로 가득 차게 되었다.
생명으로 가는 험한 길
그후 30억 년이라는 휴식기가 있었다. 우주 시계가 144억 년 지금으로부터 6억 년 전-을 가리키자, 그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유기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만들어졌다. 강장동물, 연체동물, 갑각류, 어류가 단지 수억 년 사이에 한꺼번에 진화한 것이다. 1억 5천만 년 후, 식물이 지구를 덮었다. 녹색식물은 태양 빛의 에너지를 붙잡아 광합성을 통해 물과 이산화탄소로 탄수산화물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산소를 공기 중에 내놓았다. 대기 중의 산소 원자 3개가 합쳐져 오존을 형성했다. 그 결과로 생긴 오존층은 태양의 해로운 자외선을 흡수하여 유기체들이 물이라는 보호막에서 벗어나 땅위에서 살 수 있게 해주었다. 3억 년 전에 최초의 파충류가, 그후 7500만 년이 지나 공룡과 조류가 등장했다. 약 1억 6500만 년간 지구를 지배한 공룡이 멸종하자. 포유류가 번성할 수 있는 탄탄대로가 열렸다. 영장류는 약 2000만 년 전에 나타났으며, 200만 년 전에 최초의 인류(Homo sapiens)가 출현했다. 초고에너지만이 존재하던 상태에서 1조 개의 1조 배의 1만 배의 입자로 이루어진 인간이, 수십 억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진 두뇌를 갖춘 인간이 만들어지기까지 150억 년이 걸린 것이다.
얼음의 세계와 용광로
생명이 지구에만 있는가? 우주에서 인간만이 유일한 지적 생명체인가? 만일 인간이 없었다면 우주의 비밀스러운 노래는 아무도 듣지 못하고 말았을까? 여러 가지 증거로 보아 분명히 태양계의 나머지 8개 행성에는 생명체가 없다. 우주탐사선 바이킹이 가장 그럴듯한 후보지인 화성을 조사했지만, 지적 생명체는커녕 유기체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행성들도 생명의 존재를 기대할 수 없다.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고, 또 숨을 쉴 수 없거나 공기가 너무 희박하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아주 주의깊게 다루어야 하는 연약한 존재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며 온화한 환경이 아니고서는 생명체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지구의 생명체가 우리의 유일한 판단 근거이므로, 외계 생명체에 대한 추측은 지구 생명체의 특성을 벗어날 수 없다.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은 물이 있고 표면 온도가 0∼100℃이어야 한다. 이런 환경을 가지기 위해서는 행성이 태양에서 적절한 거리에 떨어져 있어야 한다. 만일 지구가 목성보다 먼 곳에 있다면, 지구는 목석과 토성의 위성들처럼 차가운 얼음 세계로 변했을 것이다. 만일 지구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있다면, 지구의 대기는 끓어 넘칠 것이고 땅은 수성과 같이 바싹 말라 불모의 지옥이 될 것이다. 그보다 약간 바깥쪽-현재의 금성 위치-인 경우, 태양 복사에너지는 조금 줄어들고 지구의 대기도 유지되겠지만 온도가 너무 높아 물이 모일 수 없다. 용매 역할을 하는 바다가 없다면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원시 대기 속에 남아 대규모의 온실효과를 일으키고, 그 결과 지구는 용광로로 변할 것이다 사실 금성이 그렇다. 금성의 표면 온도는 물이 끓는점의 약 5배(약500℃)나 되는데, 이것은 납이 녹는점보다 높다. 태양계의 9개 행성 중 지구만, 오직 지구만이 태양에서 적절한 거리, 즉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잇는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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