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1호 2023.2.6 월요일 (음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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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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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다.
확을 할 희망이 없다면 농부는 씨를 뿌리지 않는다.
이익을 얻을 희망이 없다면, 상인이 장사를 시작하지 않는다.
좋은 희망을 품는 것은 바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다.
- 마틴 루터 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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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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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식이라도
소금으로 간을 맞추지 않으면
그 맛을 잃고 만다.
모든 행동도 음식과 같이 간을 맞춰야 한다.
음식을 먹기 전에 간을 먼저 보듯이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
생각은 인생의 소금이다.
- E G. 얼리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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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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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목소리
지난 4일, 서울 시청 주변은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전시장 같았다. 여러 모니터에 시시각각 다른 영상이 나오듯이, 집회와 맞불집회가 동시다발로 열렸다. 목소리는 뒤엉키고 시선은 흩어졌다. 그 사이를 헤집고 파고드는 말이 있었다. 10·29 이태원참사 100일 추모대회 참가자들을 향한 경찰의 선무방송. 유일하게 들은 국가기관의 말이니 그 일부를 기록해 둔다.
“… 여러분은 해산 명령에도 불구하고 해산하고 있지 않습니다. … 여러분, 여러분은 신고한 집회의 장소와 방법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 계속하여 불법 집회 시위를 진행하고 있고, 이러한 질서 문란한 상태에 대해서 주최 측에서 질서 유지와 질서 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6조 4항에 따른 준수 사항을 위반한 행위입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의 불편이 야기되고 공공의 안녕 질서에 대한 위험이 초래되고 있으나, 여러분께서 더 이상 질서 유지를 자율적으로 할 수 없다고 판단됩니다.
이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20조 1항 제5호 및 동법 시행령 17조에 따라 남대문 경찰서장의 위임을 받은 경비과장이 4차 해산명령을 발합니다. 모든 참가자는 즉시 해산하시기 바랍니다.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응하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24조 5호에 의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고 경찰력을 투입하여 직접 해산 조치할 수 있습니다. 즉시 해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망연히 앉아 있었다. ‘전혀 복수하지 않는 것보다는 약간이라도 복수하는 것이 훨씬 인간적이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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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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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되어 주셔요 - 한용운
님이여,
나의 마음을 가져가려거든 마음을 가진 나에게서 가져가셔요.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님에게서 하나가 되게 하셔요.
그렇지 아니하거든 나에게 고통만 주지 마시고 님의 마음을
다 주셔요.
그리고 마음을 가진 님에게서 나에게 주셔요.
그래서 님으로 하여금 나에게서 하나가 되게 하셔요.
그렇지 아니하거든 나의 마음을 돌려 주셔요.
그리고 나에게 고통을 주셔요.
그러면 나는 나의 마름을 가지고 님이 주시는 고통을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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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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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5. 천하가 붙잡아도 나의 길을 가련다(노중련, 추양)
2) 여자는 질투받기 쉽고 선비는 모함받기 마련이다(추양)
추양은 제나라 사람으로 위나라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승이라는 사람이 추양을 시기하여 위나라 효왕에게 모함했다. 그러자 효왕은 노하여 추양을 잡아넣고 죽이려 했다. 추양은 자기 한몸 죽는 것은 그렇다치고 남의 중상을 받아 죽은 후 까지도 명을 쓰게 될 것이 두려워 옥중에서 왕에게 편지를 올렸다.
진실이 의심받는다
"'충성된 자는 보답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고, 진실한 자는 의심을 받는 일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껏 저는 이 말이 진리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것은 헛된 말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옛날 형가는 연나라 태자 단의 신의를 흠모하여 단을 위해 진나라에 들어가 시황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태자 단은 형가가 진나라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옛날 변화는 초나라 왕에게 보물 구슬을 바쳤지만 그것이 돌이라 하여 오히려 발을 잘리었고, 이사는 충성을 다했으나 호해 때문에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기자가 미치광이를 가장하고 접여가 세상을 피한 것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변화, 이사의 마음을 살피시고 초왕이나 호해와 같이 참언을 받아들이지 마셔서, 제가 기자, 접여와 같은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또한 비간이 가슴을 찢기우고 자서가 말가죽 자루에 그 시체가 싸여져 장강에 버려진 일도 그때에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들의 진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어 조금이라도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여자는 질투받기 쉽고 선비는 모함받기 마련이다
속담에 '백발이 되도록 사귀어도 처음 만나는 것처럼 차디찬 교제가 있는가 하면, 거리의 수레 그늘에서 한 마디 나누었건만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교제도 있다'고 했습니다. 무릇 교제의 깊이는 세월의 길고 짧음에 관계치 아니하고 상대방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번어기는 진나라를 피해 연나라로 가서 연나라 태자 단을 위해 자기 목을 형가에게 주어 진나라로 가지고 가라고 할 정도로 정성을 다했습니다. 제나라를 버리고 위나라로 갔던 왕사는 자기를 잡으려고 달려온 제나라 군사의 면전에서 성에 올라가 스스로 목을 찔러 위나라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했습니다. 왕사와 번어기는 원래 고국인 제나라와 진나라를 싫어했고 연나라나 위나라를 좋아했던 것은 아닙니다. 고국을 떠나서 남의 나라 임금을 위해 죽은 것은, 그 두 임금의 처사가 각각 두 사람의 뜻에 맞아서 그의 외로움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했기 때문입니다. 또 소진은 가는 곳마다 신임을 받지 못했었지만 오직 연나라에서만은 미생과 같이 신의를 지켰고, 백규는 중산국의 장수로서 여섯 성을 잃고 도망한 다음 위나라를 위해 중산국을 무찔렀습니다. 이런 일들은 오직 군주와 신하 사이에 서로 이해가 깊었기 때문입니다. 소진이 연나라 재상이 되었을 때, 소진을 왕에게 모함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왕은 칼을 만지며 그 모함하는 자를 혼냈고, 소진에게는 준마를 잡아서 크게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또 백규가 중산국을 친 공으로 위나라에서 벼슬 자리에 나아갔을 때 위나라 문후에게 모함을 하는 중산국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후는 이 모함을 받아들이지 않고, 백규에게 야광벽을 내렸습니다. 이런 일들은 두 임금, 두 신하가 각각 흉금을 터놓고 서로가 믿고 있었기 때문이니, 어떻게 뜬 말에 마음이 흔들릴 리 있겠습니까. 여자는 미인이건 추한 여자건 궁중에 들어가면 질투를 당하게 마련이고, 선비도 어질건 어리석건 조정에 들어가면 시기를 받게 마련입니다. 옛날 사마회는 송나라에서 다리를 잘렸는데 마침내는 중산국의 재상이 되었으며, 범수는 위나라에서 늑골을 꺾이고 이가 뽑혔지만 마침내는 응후가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누명이 벗겨지고 자기의 뜻을 펼 날이 돌아올 것을 확신하고 홀로 몸을 세워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질투심이 많은 자들의 미움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은나라의 충신 신도적은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졌고, 서연은 돌을 지고 바다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세상에서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임금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백리해 거리에서 걸식을 하고 있었건만 진나라의 목공은 그에게 정사를 맡겼고, 영척은 수레 밑에서 소를 기르고 있었지만 제나라 환공은 그에게 국정을 맡겼습니다. 이 두 사람은 처음부터 조정에서 벼슬을 하면서 주위의 칭송을 받아 목공이나 환공에게 발탁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마음이 통하고 행동이 일치되면 아교나 옻칠보다도 더 굳게 맺어져, 형제간이라 할지라도 그 사이를 갈라 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뭇 사람들의 말에 현혹이 될 리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한 쪽 말만 들으면 간계가 생기게 되고 한 사람에게만 정사를 맡기게 되면 반란을 불러 오게 되는 것입니다.
뭇 사람의 말은 쇠라도 녹이고, 쌓이는 욕은 뼈라도 녹일 수 있습니다. 진나라는 서융인 유여를 써서 중국의 패자가 되었고 제나라가 월나라 사람 몽을 써서 위왕, 선왕을 강하게 한 것은, 이 두 나라가 속습에 얽매이지 않고 세정에 이끌리지 않았으며 아첨과 편파적인 말에 흔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의견을 공정하게 듣고 모두의 마음에 따라 그 이름을 당세에 떨치려면, 오랑캐나 월나라 사람이라도 마음만 맞으면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유여나 몽이 그 좋은 예입니다. 뜻이 맞니 않는다면 골육이더라도 멀리하고 쓰지 않습니다. 임금된 사람이 참으로 도리에 맞는 방법을 쓰면서 편벽된 방법을 물리친다면, 오패나 삼왕에 맞먹는 큰 공을 세우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주 무왕은 가슴을 찢긴 가슴을 찢긴 충신 비간의 아들을 등용하고 배를 찢긴 임산부의 무덤을 가꾸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공적은 천하를 뒤덮었는데, 임금이 선을 구하되 억압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나라의 환공은 원수였던 관중을 등용하여 천하를 바로잡았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인자했고 충심으로 그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반말로써 일시적으로 이용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진나라는 상앙의 법을 써서 동쪽의 한, 위나라를 약하게 만들고 천하의 강국을 만들었는데도 끝내는 상앙을 거열형에 처했습니다. 월나라는 대부 종의 계략을 써서 오나라 왕 부차를 포로로 잡아서 중국의 패자가 되었건만 마침내 종을 주살했습니다. 그러므로 손숙오는 세 번 재상의 자리를 얻었어도 기뻐하지 아니했고, 세 번 그 자리를 물러나도 후회하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임금이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보답할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신하와 곤궁영달을 함께 하며 선비에게 관작봉록을 아낌없이 준다면, 폭군 걸왕의 개라 하더라도 성왕 요에게 짖을 수가 있고, 더척의 자객일 지라도 허유를 척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성왕의 명령이라면 누가 응하지 않겠습니까. 형가가 자신의 죄에 연좌되어 칠족을 죽게 한 일이라든가, 요리가 자신의 희생으로 자기 처자를 불타 죽게 한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겠습니다.
참된 인재를 구하려면
'명월주라든가 야광벽도 어두운 길을 걷는 사람에게 던지면 칼을 잡고 노려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데 눈 앞에 날아왔기 때문이다. 마구 꼬인 나무뿌리가 너무 굽어 있어 아무 소용 없을 것 같지만, 군주 그릇이 되는 것은 좌우에 있는 사람이 우선 그 뿌리를 조각하고 장식을 하여 군주에게 바쳤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 인연도 없는데 눈 앞에 날아오면 야광벽일지라도 원한을 살 뿐, 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누군가가 먼저 소개를 해 주면 마른 나무나 썩은 등걸을 바치더라도 공로가 있다 하여 잊혀지지 않는 법입니다. 오늘날 포의 곤궁한 선비로서 그 신분이 빈천한 사람은 비록 요, 순의 도를 안고, 비간의 뜻을 가지고 당시의 임금에게 충성을 다 하려고 해도, 마음과 생각을 다하여 임금의 통치를 보필하려고 해도 임금은 칼을 잡고 노려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일은 포의의 선비를 마른 나무나 썩은 등걸만도 못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군이 세상을 거느리고 풍속을 바로잡을 때는 뜻대로 세상을 교화시키고, 비천하고 혼탁한 말에 이끌리거나 근거없는 참언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나라의 시황은 몽가의 말에 현혹되어 형가의 말만 믿다가 몰래 감춰 둔 비수에 찔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주나라의 문왕은 경수, 위수가에서 사냥을 하다가 강태공을 수레에 태우고 돌아와서 그의 도움으로 천하의 왕이 되었습니다. 진시황은 좌우에 있는 사람을 믿다가 죽을 변을 당할 뻔했고, 문왕은 새가 우연히 나무에 날아들 듯이 우연하게도 만난 사람을 써서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문왕이 자신을 견제하는 말에 초연하고 특이한 포부를 세우며, 공명정대한 관점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임금이 된 사람들은 아첨하는 소리에 빠지고 신첩에게 견제되며, 마치 하늘에라도 뛰어오를 수 있는 것 같은 인재들을 소나 말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초가 세상을 원망한 나머지 부귀의 팽개친 이유입니다. '정장을 하고 조정에 입궐하는 사람은 사사로운 이욕으로 도의를 저버리는 일이 없고, 명예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사욕 때문에 행실을 해치지 않는다'란 말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현의 이름이 승모란 이유 한 가지 때문에 효자인 증자는 그 땅을 밟지 아니했고, 읍의 이름을 조가라 한다 해서 음악을 싫어하던 묵자는 수레를 되돌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임금들은 천하의 식견과 기량이 다 같이 위대한 선비들을 권력 앞에 무릎을 끓게 하여, 세력에 눌려 짐짓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고, 행실을 더럽혀 가면서까지 아첨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섬기게 하며,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친하고 가깝게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래가지고는 뜻있는 선비는 험악한 바윗굴 속에 엎드려서 죽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충과 신을 다하여 조정으로 향하려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 편지가 위나라의 효왕에게 바쳐지자, 효왕은 사람을 보내어 추양을 옥에서 데려다가 마침내 상객으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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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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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讐)
不:아니 불. 俱:함께 구. 戴:머리에 일 대. 天:하늘 천. 讐:원수 수.
[준말] 대천지수(戴天之讐), 불공대천(不共戴天).
[동의어]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
[출전]《禮記》〈曲禮篇〉,《孟子》〈盡心篇〉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란 뜻으로,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
①《예기(禮記)》〈곡례편(曲禮篇)〉에는 ‘불구대천지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 [父之讐弗與共戴天(부지수불여공대천)]
형제의 원수를 보고 무기를 가지러 가면 늦으며[兄弟之讐不反兵(형제지수불반병)]
친구의 원수와는 나라를 같이해서는 안된다. [交遊之讐不同國(교유지수부동국)]
즉,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으므로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를 만났을 때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갔다가 놓쳐서는 안 되므로 항상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다가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친구의 원수와는 한 나라에서 같이 살 수 없으므로 나라 밖으로 쫓아내던가 아니면 역시 죽여야 한다.
오늘날 이 말은 아버지의 원수에 한하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없을 정도로 미운 놈’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 이 말은《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맹자의 말과 비교가 되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이제야 남의 아비를 죽이는 것이 중한 줄을 알겠노라. 남의 아비를 죽이면 남이 또한 그 아비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이면 남이 또한 그 형을 죽일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제 아비나 형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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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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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새댁, 니 봤나? - 문상자(여.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2동)
저는 지금으로부터 약 16, 7년 전에 있었던 얘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저희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조그마한 가게 하나, 방 하나, 부엌 하나가 딸린 집을 세 얻어 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어렵게 얻어서 들어가고 보니 한 건물 안에 저희처럼 생긴 가게가 여섯이나 되었어요. 닭집, 횟집, 칼국수집, 건재상, 그릇 가게, 건어물 가게, 그런 것 중에서도 네 집은 부인들이 전부 연령이 저와 같은 또래였어요. 한 지붕 여섯 가족에 아이들끼리 싸움도 잦았지만그런 아이들 때문에 생긴 일들은 그래도 서로 이해하며 잘 견뎠어요. 오히려 심각한 문제는 연탄창고 문제, 화장실 문제, 마당청소 문제, 쓰레기 문제, 전기세 문제 등등이었지요. 먼저 연탄창고 문제부터 말씀드릴게요. 50장씩 넣으면 6집이 다 넣을 수 있는 연탄창고에 어느 한 집이 100장이라고 넣으면 한집은 자리가 없게 되죠. 그것까지는 좋았어요. 어떨 땐 연탄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면 전부 나와서 숫자 세어 가면 집집마다 연탄 숫자를 헤아려 각자 고유의 표시를 하는 거예요. 일자니 열 십자니 하며.... 한번은 연탄창고 제일 안쪽 좋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이사를 나가면서 서로 그 자리를 잡으려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죠.
그리고 공동 화장실 문제. 청소는 늘 하는 사람만 해요. 아예 6개월, 1년 동안 이사 나갈 때까지 화장실 청소 한번 안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 땐 6개월이나 1년이 계약기간이었어요.) 그 다음 전기세 문제. 지금은 건물 안에 여러 가구가 거주하면 집집마다 계량기를 부착하지만 그 땐 한 건물 안에 하나씩. 그러다 보니 대충 누구 집은 전구가 몇 개니 얼마, 늦게까지 장사하니 얼마, 다달이 말썽이었어요. 그 말썽은 요금을 안 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적게 내려고 하다보니 생긴 거라지만, 전기세 걷는 이층에 사는 주인은 아예 자기 집은 전기세를 내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세 들어 사는 죄로 모두들 말 못했어요. 그럭저럭 싸우며 이해하며 이사 온 뒤 한겨울을 지내고, 초여름 어느 저녁 무렵 바로 문제의 그 날을 말씀드릴게요.
문제 중의 문제, 그것은 수돗물이었어요. 물이 잘 안 나왔거든요. 부엌은 전부 재래식이었습니다. 수도꼭지는 한 개, 마당에 놓인 하나의 꼭지에 여섯 가구가 번갈아가며 순서대로 물을 받아 썼어요. 지금이야 수돗물이 안 나오면 며칠 전에 TV나 라디오 방송 혹은 신문에서 미리 알려주지만 정말 그 땐 예고 없이 물이 이틀 사흘씩 안 나오는 게 허다했어요. 그러니 집집마다 물을 받는 갈색 고무물통은 필수품이었죠. 사건의 그 날도 아침에 우리 차례가 되어서 받는데 물통에 절반쯤 받았을까, 물이 졸...졸...졸 조금씩 나오더군요. 그래서 한통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물이 뚝 끊기더라구요. 그래서 대충 기저귀랑 빨래들을 물을 최대한 아껴서 한 후, 곧 나오겠지 한 것이 하루도 아니고 이틀째 물이 나오질 않는 거예요. 우리는 기저귀 때문에도 걱정이었지만 식당, 통닭집들은 물 없으면 난리 나잖아요. 모두 물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아랫집에서 조금씩 얻어다 쓰며 이제나 저제나 수도꼭지만 바라보게 됐지요.
드디어 사흘째 되는 날. 그 날도 밤까지 물 걱정하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자니 어찌 그리 잠은 쏟아지는 지요. 앉아서 꾸벅꾸벅 하는데 앗! ‘쏴아- 주르르륵.’ 물소리가 콸콸 나는 겁니다. 그 소리에 저는 “물이다.” 하고 아기를 방바닥에 눕히고 “아줌마, 물 나와요. 수돗물.” 하면서 벽 하나 두고 살고 있는 옆집 아줌마를 부르니 그 아줌마도 “물이 나와?” 하면서 뒷마당으로 나왔고, 다른 집 아줌마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나왔어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런데 우르르 뛰어나왔던 여섯 아줌마들은 눈이 튀어날올 기막힌 상황에 직면한 겁니다. 이른 오후부터 통닭집에서 맥주 한잔 하고 닭 한마리 드시고 거나하게 취하신 손님 한분이 화장실을 물으니 뒤쪽 마당에 있다고 가게 아줌마가 가르쳐 줬는데, 이 양반 화장실은 못 찾고 꺼진 연탄에 얹혀 있던 구멍난 양은 양동이에 실례를 한 거예요. 양동이에 물 버리면 소리가 좀 큽니까? 그 소리가 '쏴아- 주르르륵!'하고 날 수밖에요.
그런데 아줌마들이 "물이다." 하고 여섯 명씩이나 막 뛰어나오니까, 실례를 하던 그 아저씨가 더 놀라셨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당황에서 돌아서다가 구석에 파놓은 조그마한 시궁창 맨홀에 한쪽 발을 빠뜨리고 말았어요. 소변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흐르고(?) 한쪽 발은 시궁창에 빠지고.... 아저씨는 도망도 못 가고 그렇다고 옷도 못 추스르고 정말 황당해 하더라구요. 우리 역시, 그 아저씨를 붙잡아 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안서고 눈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렇다고 잡아드릴 수도 없었어요. 왜냐구요? 글쎄요.... 그날 저녁 가게 문을 닫을 무렵 연세 약간 드신 횟집 아줌마 왈,
"새댁, 니 봤나?"
"뭘요...?"
"하하, 호호."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우리들은 눈만 마주치면 웃었고 혼자서 밥하다가도 비실비실, 빨래하다가도 비실비실 웃었습니다. 지금은 모두들 뿔뿔이 헤어져 잘살고 있지만 가끔은 그때가 그립네요. 곤롯불에 시커멓게 그을린 냄비...등등 모두가 추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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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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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혜린편"(1934~1965)
수필가. 평남 순천 출생. 독일 뮌헨대 독문과 수료.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성균관대 교수 역임. 31세로 자살함.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 속에 불꽃처럼 살다가 간 지식인이었다.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을 갖고 생을 긍정했고 생의 완벽성을 구했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삶에 대한 그의 강렬한 사랑과 일종의 필수적인 비애의 기록으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사치의 바벨탑
- 여성의 가장 큰 본질적 약점은 사치의 광적 추구와 같은 생에 대한 비본연성인 것 같다.
'여자는 전체로 보아서 아직도 하인의 신분에 있다. 그 결과 여성은 자기로서 살려고 하지 않고 남성으로부터 이렇다고 정해진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를 선택하도록 된다. 남자의 손에 쥐어진 경제적 특권, 남자의 사회적 가치, 결혼의 명예, 남자에 의존하는 것에서 얻는 효과, 이러한 모든 것이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의 마음에 들도록 애쓰고 있다.' 여성에 관해서 말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남성에 대한 여성의 관계에 있어서 언급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여성과 남성 간의 사회적 차이와 대립이 완전히 제거된 곳은 없으며 앞으로도 사회 구조의 전적인 변화가 없는 한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몹시 느린 속도로 향상되어 가는 과정에 있고 아직도 우리는 평균적으로 보아서 여자가 사회에 한 발을 디디고 서기가 마치 미국에서 한 흑인이 그렇게 하려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힘드는 처지에 있다. 그러한 남성과 여성 간의 커다란 차이를 미리 고려하면서만 우리는 여성의 제문제 또는 약점을 파고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여성의 가장 본질적 약점으로 나는 생 전반에 대한 비본연적 태도를 들고 싶다. 자기 자신을 순간순간마다 의식하고 사회와 세계에 대해서 자기를 투기하고 초월하면서 사는 것이 본연적인 생활 태도라면 태반의 여성의 생활은 그와 반대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보다 큰, 보다 진실한 문제-유는-에 빠져 있고 그 곳에서 아무런 타격도 전율도 반응 없이 흘러가듯이 사는 생활 태도, 말하자면 비진정하고 불성실한 생활 태도가 대부분 여자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무서운 조건하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유일의 일은 우리의 삶을 규명하는 것일 것이며 적어도 그러한 근본적인 생활 감정에 지배된 생활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일의 진실하고 엄숙한 문제는 회피하고 자그마한 일들, 물진, 사치스런 생활, 남자에게 의존 또는 기계와 같은 나날의 틀 속에 안면하는 의식, 이러한 것들 속에 자기를 소외해 버리는 생활은 허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생과 사에 자기를 똑바로 응시하고 산다는 것은 무서운 용기와 신경력을 요한다. 특히 이 사회의 구조와 한국적 풍토 속에서는 너무나 신경이 긴장되는 작업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전생의 의의가 무로 화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회피하는 것은 일회적으로 주어진 우리 삶에의 죄인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좀더 응시할 수 있을 것, 자기를 견딜 수 있을 것이 결과적으로는 다 비극인 우리의 생의 소상을 긴박한, 팽팽하게 차 있는 참된 순간으로 지속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가 존재에서 외면하고 사실의 세계로만 눈을 향하는 데에 여성에 대한 사회의 비난의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자기 과제를 느끼지 못하는 삶에는 필연적으로 공허가 따르고 따라서 오락의 필요가 생긴다. 최신 유행의 여성들에게 갖는 매력은 거기에 있다. 왜냐하면, 물건을 사는 것-특히 몸에 붙일-은 어느 나라 여성을 막론하고 남자들에게 있어서 바와 필적할 만한 상쾌한 오락인 까닭이다. 가장 유행이고 가장 비싼 물건을 입거나 신을 여자의 얼굴에는 반드시 어떤 빛나는 생기가 떠 있다. 그 순간은 그 여자는 살고 있는 까닭에 자기가 이룰 수 없는 사회 내의 일이나 지위나 가치의 인정을 완전히 보상해 주어서 하고 있다. 사치스러운 복장에 대한 여성의 판타직은 억눌려진 야심 사회 내에서 해당하고 싶은 본질적 욕망과, 자기는 다른 여자와 다르다고 어떤 여자든지 반드시 믿고 있는 오신, 또 누구나 다소 가지고 있는 나르시즘(자기 연애) 등의 혼합물인 것이다. 정말로 수많은 여인은 이 광신의 추구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고 있다. 월급의 전액을 차지하는 값의 지갑을 태연히 들고 다니고 연봉에 해당되는 값의 외투도 서슴지 않고 해 입는다. 현실에서는 발견하거나 인정되지 않는 자아의 가치를 이러한 방법으로나마 가상적으로라도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 외투도 신도 곧 닳아 버리는 물건이고 유행도 바뀐다. 즉 가상적 자아의 '바벨탑'은 너무나 빨리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면 또 새로운 투쟁이 시작된다.
이렇게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여성의 물질에 대한 애착은 웃거나 비난하기에는 너무나 어둡고 심각한 근원이 여성의 내재 속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본질적 존재로 여성을 만든 것은 여성의 지능 계수도 생리도 아니고, 다만 사회의 상황인 것으로 사회와 가정은 여성을 가능한 한 비본질적으로 교육하기에 전력을 다해 왔다. 여성의 자주성을 찾으려는 가장 조그만 움직임이나 생각까지도 조소되고 비난받아 왔고 다만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해서 공동하게 생활을 건설해 가고 둘이 다 자아의 생장을 지속시켜 가는 공동체라고 보아야 할 결혼을 사회는 여자의 궁극적인 숙명, 여자의 자아 발전의 무덤으로서 또 어떤 절대적인 영광스러운 예속으로서 가르쳐 주어 왔다. 말하자면 비진정하면 할수록 여자다운 여자일 수 있다. 그러한 전통에 닦인 여자도 자연히 그러한 사고 방식을 갖게 되었고 그것에서 이익을 끝내어 줄 것까지도 알게 되었다. 즉 자기의 삶 전부를 실존을 스스로 순간마다 결단하고 세계로 향해서 투기하는 생활 대신에 한 남성에게 자신을 꽉 맡겨 버리고 자기는 더 이상 사고할 필요 없이 사소하고 무상하게 흘러가는 일상성과 사실성의 세계에 파묻히는 편이 얼마나 편하고 또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진다는 것을의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여자도 그것에 완전히 만족하거나 행복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생활에는 일순 일순의 팽팽한 충일감과 초월의 느낌이 없을 것이다. 어느 주부든지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자기를 부조리하게 느낄 것이다. 쌀 씻고 빨래하고 옷 꿰매고, 나날의 무서우리만큼 단조한 반복 속에서 그 여자의 인식은 엷게나마 눈을 뜰 것이다. 이것이 나의 생활인가 하고, 그럴 때 우리는 그 의식의 각성을 소중히 포착해야 한다. 그리고 파고 들어가야 한다. 분명 그것은 나의 생활이 아닌 것이다. 누구냐의 생활에 불과한 것이지 자기를 사물이나 타자의 속에 소외 해 버린 일반적인 아무나의 삶이지 그것은 이 일회적인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의식할 때 우리는 생이 진정한 것이 아니었고 불성실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보다 한 발자국 나와 가까워진다. 자아에 대해서 비로소 눈을 뜬 느낌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도 자아에 자기의 감정과 이성과 신경에게 충실한 것, 그것 이외에 우리가 자아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다. 그것만이 사치, 허위, 소극성, 아첨, 비굴, 수다 등등의 여성에 붙여진 비난의 제 레테르를 벗는 길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이다.
이 모든 레테르는 남성들의 사회에서 남성에 의해서 붙여진 레테르이다. 그러나 사회 상황의 변화에 의해서 남녀가 정말로 동등한 입장이 되고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향해서 자신을 초월하는 행위 속에 자기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여성은 개인적으로라도 무서운 고독과 절망과 싸우면서 자아를 좇는 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으며 현재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숨은 곳에 많으리라고 확신한다. 지엽적인 여성의 결점은 모두 이러한 비실존적 생활 태도에서 나온 것이므로 우리는 여성의 결점을 열거하는 것보다도 우선 우리의 존재의 문제를 좀더 밝혀야 한다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비의존적으로 투기가 가능해진다면, 아니 한 마디로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남성의 그것과 동등해진다면 여성의 근본 결함인 비진정, 불성실한 생활 태도는 자연 소멸하고 여성도 보다 높은, 보다 참된 과제를 자기의 생활 과제로 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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