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8호 2023.2.3 금요일 (음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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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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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사람을 비웃지 말라.
자기의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 라 퐁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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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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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은 근심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호흡하면 매일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의식적인 호흡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강하게
마음을 챙길 수 있는 힘을 내게 해줄 뿐 아니라
진정 평화로운 상태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마음의 휴식인 한 시간의 깊은 명상은
육체의 휴식인 수면 10시간의 가치가 있다.
한 시간 명상이 10 시간의 잠과 같다
- 바지라메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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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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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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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막혀 - 한용운
당신의 얼굴은 달도 아니건만
산 넘고 물 넘어 나의 마음을 바칩니다.
나의 손길은 왜 그리 짧아서
눈 앞에 보이는 당신의 가슴을 못 만지나요.
당신이 오기로 못 올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기로 못 갈 것이 없지마는
산에는 사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어요.
뉘라서 사다리를 떼고 배를 깨뜨렸습니까.
나는 보석으로 사다리를 놓고 진주로 배 모아요.
오시려도 길이 막혀 못 오시는 당신을 기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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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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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3.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기꺼이 그의 마부가 되겠다(안영)
안자의 이름은 영으로, 보통 안영이라 불리웠다. 그는 춘추시대 때 제나라에서 상국이라는 높은 벼슬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근면하고 검소하며 충실해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식사 때 반찬도 두 가지를 넘지 않았고, 부인도 비단옷을 걸치지 못하게 했다. 또한 친구를 오래 사귀어 많은 결점이 보여도 결코 경의를 잃지 않았다.
음탕한 도둑놈인가, 임금인가
당시 제나라 군주는 장공이었는데, 매우 호색한이었다. 한번은 장공이 대신인 최서의 집에 가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가 절세의 미인인 것을 보고 매우 마음이 동했다. 그 후 장공은 기어코 그녀와 정을 통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최서의 관을 벗겨 다른 사람에게 주면서 그를 모욕하기도 했다. 최서는 기필코 복수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최서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공은 이때야말로 그의 아내와 밀통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그래서 곧바로 장공은 최서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바로 부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최서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아내와 함께 방 안에서 문을 굳게 닫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장공은 애인이 자기 온 줄을 몰라 가만히 있는 것으로 알고 기둥을 잡고 휘파람 소리를 냈다. 이때 최서와 미리 짜고 대기하고 있던 최서의 친구인 가거가 대문을 닫아 걸고 왕의 호위병을 떼어 놓았다. 그리고 옆방에 숨어 있던 최서의 부하들이 손에 손에 무기를 들고 쏟아져 나왔다. 장공은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정원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이내 완전 포위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장공이 소리쳤다.
"나는 너희들의 임금이다. 냉큼 비키거라!"
그러나 부하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잡으려는 건 음탕한 도둑놈이다. 임금 같은 것은 우린 모른다."
그러면서 모두 달려들어 장공을 무참하게 죽여 버렸다. 조정 대신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문을 걸어 잠근 채 두문불출했다. 하지만 안영은 서둘러 최서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군주가 나라일로 죽었다면 신하 또한 충성을 다해 죽겠지만, 군주가 사사로운 욕심으로 죽었다면 사랑받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장례지낼 수 없지 않은가!"
안영이 이렇게 외치니 최서도 문을 열어줬다. 안영은 바로 달려 들어가 시체 위에 엎어져 통곡했다. 그리고는 일어나 세 번 발을 동동 굴러 애도하고 서둘러 나왔다. 그 때 최서의 부하들은,
"이번 기회에 저 안영이라는 자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명령만 내리십시오." 하고 최서에게 거듭 권했다.
하지만 최서는, "아니 된다. 안영은 지금 세상의 인심을 얻고 있는 사람이다. 그를 없애면 천하도 잃게 될 뿐이다."하면서 부하들을 말렸다.
그 후 최서는 장공의 동생을 군주의 자리에 앉히니, 그가 바로 경공이었다. 그리고는 최서와 경공은 신하들을 한 명씩 불러내 충성을 서약받았다. 신하들은 모두 벌벌 떨면서 꼼짝 못하고 서약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안영의 차례가 왔는데,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꼿꼿이 서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최서와 경공도 그의 높은 인품과 학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경공은 안영을 상국으로 등용해 나라를 다시 맡겼다.
예의가 없으면 친구도 없다
그런데 그 나라에 월석보라는 품행이 단정하고 재주가 뛰어난 인물이 있었다. 그가 한번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가 감옥으로 끌려 가던 도중에 마침 안영이 나들이 나왔다가 그를 발견했다. 안영이 월석보와 한참 얘기해 보고는 자기가 타고 온 말을 죄값으로 바치고 그를 풀려나게 했다. 그리고는 월석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곧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얼마 뒤 월석보는 안영을 찾아가 절교 선언했다. 이에 안영이 깜짝 놀라 의관을 갖추고 나와 물었다.
"나는 별 것 없는 사람입니다만, 귀하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한 적이 있었는데 왜 나와 절교하겠다는 것인지요?"
그러자 월석보가 대답했다.
"군자의 가장 따분한 일이 지기가 없는 것이고, 가장 기쁜 일이 지기를 얻는 것이라 합니다. 전에 내가 잡혔던 것은 그들이 오해했기 때문인데, 당신이 나를 바로 보셔서 구해 주셨으니 당신은 지기입니다. 하지만 나를 예의로써 대하지 않았으니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없소. 차라리 구해주지 않고 그냥 둔 것만 일이오."
안영은 그 말을 듣고 나자, 그를 모셔들여 정중하게 예의로 대접했다.
마부와 아내
하루는 안영이 외출을 하는데,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자기 남편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남편이 안영의 말을 모는데, 채찍을 휘두르면서 마치 자기가 재상인 양 의기양양해 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저녁 때 남편이 돌아오자, 그녀는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남편이 그 이유를 물으니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안영 어른은 키가 6척도 안되건만 재상으로 그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 계신데, 그 분을 보니 생각에 잠겨 겸손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8척이나 되는 몸을 가지고, 기껏 남의 마차나 끄는 처지에 잘난 체는 혼자 다 하고 있으니.... 그래서 헤어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자 마부가 사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이 옳소. 다시는 안 그럴 것이니 용서하구료."
그 후 마부의 태도는 몰라보게 겸손해졌다. 안영은 마부가 달라진 것을 느끼고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마부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 안영은 자기 잘못을 반성해 고칠 줄 아는 점을 높이 평가해 군주에게 그를 추천했다. 그리하여 마부는 대부 벼슬에 오르게 되었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안영은 장공이 신하에게 죽음을 당했을 때, 그 시체 앞에 엎드려 곡하고 애도했으나 곧바로 자리를 떠 버리고 모반자를 치지 않았다. 그가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은 비겁자였던가? 그렇지 않다. 그는 임금에게 충간할 적에는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이는 참으로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와서는 허물을 고칠 것을 생각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만약 안영이 오늘 살아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마부가 되어도 무방할 만큼 그를 흠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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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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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覆:엎을 복. 水:물 수. 不:아니 불. 返:돌이킬 반. 盆:동이 분.
[동의어] 복배지수(覆杯之水), 복수불수(覆水不收).
[유사어] 낙화불반지(落花不返枝), 파경부조(破鏡不照), 파경지탄(破鏡之歎). [출전]《拾遺記(습유기)》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뜻. 곧
① 한번 떠난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의 비유.
② 일단 저지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의 비유.
주(周)나라 시조인 무왕(武王:發)의 아버지 서백(西伯: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황하의 큰 지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초라한 노인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학식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백은 이 노인이야말로 아버지 태공(太公)이 ‘바라고 기다리던[待望]’ 주나라를 일으켜 줄 마로 그 인물이라 믿고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했다. 이리하여 이 노인, 태공망(太公望:태공이 대망하던 인물이한 뜻) 여상[呂尙:성은 강(姜) 씨, 속칭 강태공]은 서백의 스승이 되었다가 무왕의 태부(太傅:태자의 스승)?재상을 역임한 뒤 제(齊)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태공망 여상은 이처럼 입신 출세했지만 서백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가난한 서생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부터 굶기를 부자 밥 먹듯 하던 아내 마(馬)씨는 그만 친정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마씨가 여상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전엔 끼니를 잇지 못해 떠났지만 이젠 그런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돌아왔어요.”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곁에 있는 물그릇을 들어 마당에 엎지른 다음 마씨에게 말했다.
“저 물을 주워서 그릇에 담으시오.”
그러나 이미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마씨는 진흙만 약간 주워 담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여상은 조용히 말했다.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고[覆水不返盆]’ 한번 떠난 아내는 돌아올 수 없는 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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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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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수갑차던 날
때는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제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일입니다. 예비고사에서 학력고사로 제도가 바뀌는 시기라 방학이라도 방학이 아니었습니다. 보충수업에 모의고사에 정신을 못 차리며 방학을 보내고 있던 어느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저는 민수라는 친구집에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날씨는 덥죠, 휴가철이라고 여기저기서 휴가얘기죠,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습니까? 둘은 웃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쭈쭈바만 빨아대며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나하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민수 어머니께서 외출을 하신다고 나가시더군요. 우리들은 거실바닥을 몇 바퀴 뒹굴거리다 민수녀석이 문득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야! 너 수갑한번 차볼래?"
수갑이란 말에 좀 찜찜하긴 했지만 수사반장 같은 데서 수갑채우는 모습을 생각해보니 좀 멋있어 보이는 것도 같더군요. 민수아버님께서 당시 파출소 소장님이셨고, 집에 미제 수갑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심심했던 차에 그러마고 했습니다. 잠시후 민수녀석이 수갑하나를 덜렁거리며 들고 왔습니다. 좀 섬뜩하데요. 민수녀석은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가며 제 손목에 수갑을 철컥 채웠습니다. 종환형님, 유라씨! 수갑 차보신 적 있습니까? 그거 기분 별롭니다. 녀석과 나는 수갑을 차고 '한판의 탈주극'놀이 비슷한 걸 했습니다. 더워서 땀이 흐르니까 손목이 아프더군요.
"야! 이거 이제 풀어줘."
민수녀석은 알았다며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전 궁금해서 안방문을 열고 빼꼼이 들여다 보니 이녀석이 글쎄 장롱을 발칵 뒤집어 놓은 채 열쇠를 찾느라고 허둥대고 있었습니다. 전 순간 몹시 불길한 예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야! 없냐?"
조심스레 묻는 저의 물음에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영화에서 본건 죄다 흉내를 내며 수갑을 풀어보려 안간힘을 다 썼습니다. 성냥개비로 쑤셔도 보고 클립을 펼쳐서 찔러도 보고 핀으로 돌려보고 온갖 짓을 다해도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미제 수갑 그거 품질 좋데요.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민수아버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민수아버님은 빨리 뛰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민수네집이 교대앞이었고, 아버님 계신 파출소가 해운대였습니다. 거길 어떻게 뛰어갑니까? 그것도 두 손 묶고 말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가진 거라곤 회수권 몇 장 뿐이니 택시도 못타고 버스로 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여름에 해운대 가는 버스는 말도 못하게 비좁다는 거 짐작으로도 아실 겁니다. 특히 그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저는 민수를 최대한 증오어린 눈빛으로 째려보며 빨리 가자고 재촉했습니다. 민수녀석은 T셔츠를 입더니, 제겐 겨울 잠바를 던져주는 겁니다. 그 더운 여름에 그걸 망토처럼 걸치라는 겁니다. 생각해보니까 두 손 묶고 옷을 입을 방법이 없더군요. 전 미친놈처럼 그 더운 여름에 잠바를 걸치고 손엔 수건을 감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는 또 왜 그렇게 붐비는지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손잡이 하나 비어 있는 게 없더군요. 하긴 손잡이가 있어도 그걸 어떻게 잡습니까? 수갑 차고 그 위에 수건까지 감았는데.... 민수녀석은 저를 꼭 껴안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흘금흘금 훔쳐보며 별 이상한 녀석도 다 있다는 시선을 보내더군요. 정말 참기 힘들었습니다. 덥죠, 중심 못잡으니까 넘어질까 불안하죠, 손목은 아프죠, 옆에 서 있는 민수녀석 발을 밟아버렸습니다. 순간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그제야 속이 좀 풀리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버스가 철도건널목 앞에서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민수녀석은 절 놓쳐 버렸고, 저는 격렬한
"어-어-어."
소리만 반복하며 사정없이 앞으로 넘어졌고, 걸치고 있던 잠바는 옆에 서 있는 아가씨가 넘어지지 말라고 붙들어주는 바람에 훌렁 벗겨져 버리고, 손에 감았던 수건은 바닥에 떨어져, 수갑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습니다. 그 순간 여자들은 무슨 괴한이나 만난 듯 비명을 질렸습니다. 사람들이 절 피하면서 웅성거리고, 급기야는 버스기사님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차를 세우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민수녀석이 글쎄 제 뒤통수를 불이 번쩍할 만큼 딱! 후려치더니 소리를 빽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똑바로 서있어 임마! 뭘 잘했다구...."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이녀석은 제법 형사나 된 것처럼 사람들과 기사님께 소란을 피워서 죄송하다는 요지의 사과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말도 없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죽은 듯이 있었습니다. 아, 정말 지금 생각해도 생각하기 싫은 그때였습니다. 우리는 아버님께 가서 장난친 죄로 1시간 벌을 서고 나서야 수갑에서 풀릴 수 있었습니다. 정말 원없이 수갑 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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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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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박완서편"
여류 소설가. 경기도 출생. 서울대 문리대 중퇴. 1970년에 장편 소설 "나목"으로 문단에 나온 후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등으로 일약 각광을 받아, 가장 설득력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평판을 얻었다. 감각적인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분석력으로 지목되고 있다.
버스 바닥에 흩어진 동전
이것도 비 오는 날 얘기다. 버스를 타고 있었다. 타고 내린 많은 사람들의 젖은 신발과 우산에서 흘러내린 빗물로 버스 바닥은 질펀한 진창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내가 내릴 정거장을 하나 앞두고 갑자기 앉은 자리에서 안절부절 불안해졌다. 잔돈이 하나도 없고 오백 원짜리 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요즈음 오백 원권은 그가 처음 탄생할 때 지녔던 가치를 어느틈에 오천 원권한테 빼앗기고 형편없이 타락한 건 사실이다. 오백 원권을 가지고 큰 돈 대접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나는 아직도 버스에서 내릴 때 오백 원권을 낼 때만은 그게 큰 돈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차장 아가씨한테 미안해하는 버릇이 있다. 아마 옛날 옛적 오백 원권이 위풍당당하게 최고액권 행세를 하던 시절, 그것으로 버스 요금을 내면 차장이 짜증을 내며 구박까지 하던 때의 기억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백 원권으로 요금을 내려면 한 정거장쯤 미리 앉은 자리에서 차장한테 가는 걸 내 나름의 예절로 삼아 왔다. 그 날도 나는 미리 차장 아가씨한테 가서 미안한 얼굴을 하며 오백 원권을 내밀려고 했다. 그런데 차장 아가씨는 꼿꼿이 선 채 머리만 약간 창틀에 기대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우리집 셋째딸만한 나이의 연약한 아가씨였다. 짙은 피로가 앳된 얼굴과 심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어 측은했다. 그 잘난 오백 원권 때문에 이 아가씨의 달디단 잠을 깨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그녀의 피곤하고 불안한 낮잠에서 그녀의 중노동, 불량한 생활 환경, 불결한 잠자리, 조악한 식사, 업주로부터의 인간 이하의 모욕적인 대접, 그리고 그녀가 도망친 가난한 농촌 등 버스 차장이란 직업에 대해 갖고 있던 일반적이고 알량한 상식을 한꺼번에 확인한 것처럼 느꼈고, 그래서 얼싸안고 내 품에 편히 재우고 싶으리만큼 감상주의에 흠뻑 젖어들었다.
내가 내릴 정거장이 되고 버스가 멎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반짝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난 게 그녀가 아니라 나였던 것처럼 나는 놀리면서 어설프게 오백 원권을 내밀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동전이 짤랑대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백원짜리와 십원짜리 동전을 건네 주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이런 우리의 주고받음 사이를 뚫고 두어 명의 승객이 버스를 내렸다. 그 바람에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르게 동전이 질퍽질퍽한 버스 바닥에 흩어졌다. 나는 그것들을 주우려고 엎드리면서 차장 아가씨가 상냥하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같이 줍든지, 그냥 내리라고 하고는 새로운 거스름 돈을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발까지 구르며 나에게 호통을 쳤다.
"아이 속상해. 그것 하나 제대로 못 받고 속을 썩여, 빨리 빨리 주워 가지고 내려욧. 빨리 발차시켜야 한단 말예욧."
질퍽한 버스 바닥의 동전은 용용 죽겠지 하는 듯이 차고 희게 빛나며 좀처럼 주워지지를 않았다. 마치 침으로 붙인 우표 딱지 모양 버스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나를 약올렸다. 나는 거지처럼 헐벗은 버스 바닥을 엉금엉금 기며 손톱으로 이리저리 집어 겨우 백원짜리 동전만 주워 가지고 허리를 좀 펴려는데 차장 아가씨가 나를 잽싸게 문 밖으로 떠밀었다. 아니 내던졌다. 나는 곤두박질을 치면서 겨우 진창에 엎어지는 것만은 면했다. 그것만으로 내가 받은 수모가 부족했던지 버스는 흙탕물까지 나에게 끼얹어 주고 떠나갔다. 옷도 옷이지만 네 닢의 동전을 주워 올린 내 손과 손톱 사이는 말이 아니게 더러웠다. 나는 어느 가겟집 홈통에서 흘러내리는 빗물로 손을 씻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차장 아가씨한테 몹시 화를 내지는 않았다.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꼿꼿이 선 채 불안하고도 달게 자던 소녀에 대한 한 가닥 모성애 같은 게 그 때까지도 내 내부에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철거되는 대학 건물
또 비 오는 날이었다. 또 버스간 속이었다. 나는 돈암동 쪽에서 시내로 버스를 타고 나오고 있었다. 버스가 조용한 대학로로 접어들었다. 비 오는 날, 그 곳의 가로수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연두빛 어린 잎들이 신기한리만치 정갈하고 싱그러워, 덩달아서 살아 있다는 게 그저 고맙고 축복스럽게 여겨졌다. 젖어 있는 나무들 사이로 문리대 건물이 보였다. 철거 작업중임을 알 수 있었다. 벽은 그대로 서 있는데 지붕과 내부가 헐어져 뻥 뚫린 창으로 저편 하늘이 보였다. 아아, 드디어, 문리대가 철거당하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는 현실감보다는 달콤한 감상이 더 짙었다. 나는 문리대 자리에 아파트가 선다는 소식도, 이를 반대하는 쪽의 서울대 보존 운동에 대한 소식도 남이 아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었다. 그냥 담담한 방관자의 입장이었다. 학문과 사상의 전당이요, 젊은이들의 꿈과 야망의 고장인 유서 깊은 건물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게 못마땅했지만 아무리 떠들어도 종당에는 그렇게 되고 말걸 하고 체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대학로가 이루고 있는 풍경 외에 어떤 딴 풍경도 그곳에서 바꿔 놓고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 곳은 누구에게나 그리운 풍경의 고장이었다. 또 내 자식이거나 손자이거나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곳에서 입학식을 갖고 졸업식을 가졌으면 하고 벼르던 누구나의 희망이 고장이기도 했다. 아아, 마침내 헐리는구나, 나는 신음처럼 되뇌이었지만 축축이 내리는 비 때문일까, 좀처럼 현실감을 가지고 그 문제가 나에게 다가오진 않았다. 나무들은 다 제 자리에 청청하게 서 있고, 시계탑도 보였다. 버스가 정문을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낯설은 게 보였다. 아마 건설 회사의 현장 사무소 같았다. 일자형의 흰 건물에 함석 지붕이 짙고 독한 주황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아, 하고 나는 다시 한 번 신음했다. 나는 평생 그렇게 독하고 추악한 주황색을 본 일이 없다. 더군다나 그 주황색은 비에 젖어 번들대고 있었다. 그 주황색이 내 뇌를 갈고 지나가는 듯한 충격을 나는 내 뇌수에 느끼고 진저리를 쳤다. 나는 그런 충격은 청각의 자극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독한 쇳소리의 마찰음을 들었을 때 뇌 속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주황색 지붕 너머로 미래의 아파트 단지의 투시도가 선명하게 보였다.
비로소 문리대가 헐리고 속악하고 호사스러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는 현실감이 나에게 왔다. 그 현실감은 고약하고 고통스럽게 왔다. 나는 지금도 그 빗속에 번들대던 주황색 지붕을 생각하면 혐오감으로 진저리가 쳐진다. 그 혐오감은 유서 깊고 자랑스럽던 대학 자리에 호화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사실에 대한 혐오감과도 일치하는 혐오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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