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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8호 2023.1.12 목요일 (음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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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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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명의 환자들을 무덤으로
보내야만 유명한 의사가 될 수 있다.
완성의 순간에 도달할 때까지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 그라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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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 자유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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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지만…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위험한 식품들
차갑게 식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편리하게 데워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전자레인지에 재가열하면 안 되는 음식도있다. 무엇일까?
◇달걀
달걀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내부 압력이 급격히 높아져 터질 수 있다. 보통 달걀을 끓는 물에 조리하할 때는 열이 달걀바깥쪽부터 안쪽으로 전달돼 서서히 익는다. 반면, 전자레인지는 달걀 내부와 외부에 동시에 열을 전달한다. 달걀이 점점가열되면 내부의 수분이 열을 흡수해 기체로 변해 압력이 커진다. 달걀 껍데기가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면 ‘펑’하고 터지게 된다. 따라서 달걀은 전자레인지 대신 냄비나 프라이팬으로 조리하는 게 좋다. 전자레인지에 조리할 때는, 껍질을 벗겨서 돌리면 된다.
◇냉동 닭고기
얼린 닭과 칠면조 등 가금류를 전자레인지로 해동하면 배탈 위험이 높아진다. 영국 에버테이던디대 연구에 따르면, 전자레인지에 해동한 칠면조 고기는 냉장고로 해동한 칠면조 고기보다 유해세균이 두 배 이상 많았다. 특히 대장균 등의 세균이 더 많이 증식해 배탈 위험이 커진다. 얼린 가금류는 냉동고에서 최대 6개월간 보관하고, 냉장고에 넣어 해동하는 게이상적이다.
◇컵라면
컵라면을 빨리 익히거나 꼬들한 면 식감을 위해 전자레인지에 조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컵라면 용기는 재질마다 성분이 달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가 불이 날 수 있다. 컵라면 뚜껑 등 포장지에 쓰이는 은박지는 전자레인지의 전자파를 반사시킨다. 이때 스파크가 튀면서 용기 등에 불이 붙을 위험이 있다. 컵라면 용기가 스티로폼인 경우에도 전자레인지에 사용하면 안 된다. 내열성이 약해 용기가 녹아 해당성분이 국물에 스며들 수 있다.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때는 컵라면 용기에 전자레인지용 표기를 확인하거나 내용물을 일반 그릇에 옮겨 담는 게 좋다.
◇배달음식
먹다 남은 배달음식을 용기째로 전자레인지에 가열하면 환경호르몬 노출 위험이 있다. 용기 표면의 분리배출 표시 아래를 보면 해당 플라스틱의 재질을 확인할 수 있다. 폴리스틸렌(PS),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 등으로 만들어진용기는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안된다. 포장 용기 겉면에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표시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확인 후,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돌릴 때는 700W 기준 2~3분 내외, 1000W 기준 2분 30초 내외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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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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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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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 - 한용운
이 세상에는 길이 많기도 합니다.
산에는 들길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뱃길이 있습니다.
공중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낚시질아는 사람은 모래위에 발자취를 내입니다.
들에서 나물 캐는 여자는 방초(芳草)를 밟습니다.
악(惡)한 사람은 죄의 길을 쫓아갑니다.
의(義)있는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하여 칼날을 밟습니다.
서산에 지는 해는 붉은 놀을 밟습니다.
봄 아침의 맑은 이슬은 꽃머리에서 미끄럼 탑니다.
그러나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것은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입니다.
아아, 나의 길은 누가 내었습니까?
아아, 이 세상에는 님이 아니고는 나의 길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을 님이 내었으면 죽음의 길은 왜 내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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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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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지진(背水之陣)
背:등 배. 水:물 수. 之:갈 지(…의). 陣:진칠 진.
[동의어] 배수진(背水陣). [참조] 천려일실(千慮一失).
[출전]《史記》〈准陰侯列傳〉.《十八史略》〈漢太祖高皇帝〉
물을 등지고 친 진지라는 뜻으로, 목숨을 걸고 어떤 일에 대처하는 경우의 비유.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제위에 오르기 2년 전(B.C.204)의 일이다. 명장 한신(韓信)은 유방의 명에 따라 위(魏)나라를 쳐부순 다음 조(趙)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자 조나라에서는 20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조나라로 들어오는 길목인 정형의 협도(狹道) 출구 쪽에 성채(城砦)를 구축하고 방어선을 폈다. 이에 앞서 군략가인 이좌거(李左車)가 재상 진여(陳餘)에게 ‘한나라 군사가 협도를 통과할 때 들이치자’고 건의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간첩을 통해 이 사실을 안 한신은 서둘러 협도를 통과하다가 출구를 10리쯤 앞둔 곳에서 일단 행군을 멈췄다. 이윽고 밤이 깊어지자 한신은 2000여 기병을 조나라의 성채 바로 뒷산에 매복시키기로 하고 이렇게 명했다.
“본대(本隊)는 내일 싸움에서 거짓 패주(敗走)한다. 그러면 적군은 패주하는 아군을 추적하려고 성채를 비울 것이다. 그때 제군은 성채를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세우도록 하라.”
그리고 한신은 1만여 군사를 협도 출구 쪽으로 보내어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한 다음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성채를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한나라 군사가 북을 울리며 진격하자 조나라 군사는 성채를 나와 응전했다. 2,3차 접전 끝에 한나라 군사는 퇴각하여 강가에 진을 친 부대에 합류했고, 승세(勝勢)를 탄 조나라 군사는 맹렬히 추격했다. 그 틈에 2000여 기병대는 성채를 점령하고 한나라 깃발을 세웠다. 강을 등진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싸웠다. 이에 견디지 못한 조나라 군사가 성채로 돌아와 보니 한나라 깃발이 나부끼고 있지 않은가. 전쟁은 한신의 대승리로 끝났다. 전승 축하연 때 부하 장수들이 배수진을 친 이유를 묻자 한신을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군사는 이번에 급히 편성한 오합지졸(烏合之卒)이 아닌가? 이런 군사는 사지(死地)에 두어야만 필사적으로 싸우는 법이야. 그래서 ‘강을 등지고 진을 친 것[背水之陣]’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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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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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인도 바가지와 임신(?) - 김기순(여.전북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
육십 고개를 앞두고 있는 아직도 젊은 언니랍니다. 나이먹은 사람이 주책없지만 우리 영감과 인도 성지순례여행에서 일어난 아주 별 희한하게 생긴 바가지 이야기를 써서 보냅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그날도 들에 나가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막 저녁밥 한술 뜨는데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울리더군요.
“여보세요. 거그 김아무게 보살님댁이지요?”
“맞는디오. 근디 거기 어디데요?”
“예, 여기는 보살님이 보살펴 주시는 절 주지스님입니다.”
“아이고매요, 그 동안 모심는다고 워낙 바쁘다본게 자주 절에 가지를 못했구먼요.”
용건인즉, 그 동안 두 분 내외분 불심에 감동도 했고, 이번 기회에 부처님의 고향이신 인도에서 부처님의 발자취도 한번 더듬어 보시고 불심을 키우고 오시라고 성지순례를 모시고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한국이 아니라 머나먼 외국이라 음식이 입에 맞지가 않을 것 같아 간단히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음식과 작년 여름에 먹고 남은 미숫가루가 생각이 나더군요. 어렵게 미숫가루도 챙겨 우리 일행은 인도로 출발했지요. 인도에 도착해 우선 버스로 숙소에 가기로 했는데 웬 버스가 다 낡아빠진 폐차 직전의 고물 버스였고, 길도 우리나라 60년대 시골길이었습니다. 드디어 도착해서 보니 숙소는 아주 깔끔하고 정돈이 잘된 주택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여관 같은 집인가 보더군요. 할아버지와 저는 우선 어찌나 배가 고픈지 뭐든지 간단히 요기 좀 할 겸 미숫가루를 타서 먹으려고 그릇을 찾으러 욕실에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생긴 바가지 하나가 보이더군요, 깨끗하기도 하구요. 저는 ‘이 나라 바가지는 별 희한하게 생겼구나.’생각하고 그 바가지에다 물을 붓고 미숫가루를 타서 우선 저부터 쭉 마시고는 우리 영감에게도 미숫가루를 타서 갖다드리니 바가지 바닥에 묻은 미숫가루마저 손가락으로 싹싹 씻어 손가락까지 쭉 빨아드시더군요. 미숫가루는 금방 먹어도 소변이 한 번보고 나면 금세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하느라 그 이상하게 생간 바가지에다 쌀을 담아 싹싹 씻어 밥을 맛있게 해먹었지요. 밥이다 미숫가루다 이것저것 먹었더니 배가 아파왔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가보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변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 급해 옆방 스님께 찾아가 물어보니 아 글쎄, 이곳에서는 변기 대신 그 이상한 바가지를 대용으로 쓴다는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비위가 약해져 그 자리에서 ‘욱-’하고 구토를 하고 말았지요. 영감은 그놈의 바가지 때문에 우리 마누라 죽이겠다며 안절부절 못하면서 어디서 구해왔는지 압핀으로 저의 손가락에 피를 내주어 조금은 살 것 같더라구요.
“야! 이놈의 할망구야, 내가 아무리 보아도 그 바가지가 애기들 변기통하고 비슷하고 조금 커서 그렇지 이상하다 했는데, 그 바가지에다 미숫가루 타서 먹으라고 주고, 쌀까지 씻어 밥을 해줘.”
영감은 화를 버럭 내고는 잠을 안 자고 저녁 내내 욕실에 들락거리면서 ‘욱욱욱’하면서 양치질을 수없이 하더군요. 그후 전 지금도 밥과 미숫가루를 먹지 못하고 녹두죽 미음을 먹고 있는데 영감은 무딘 사람이라 그런지 오늘 아침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 논에 일하러 나가더군요. 오후 늦은 시간, 집안일을 대충 해놓고 잠깐 쉬고 있는데, 서울에사는 큰딸한테서 전화가 왔더군요.
“엄마 올 여름에도 미숫가루 할 거지. 장서방이 워낙 좋아하니 올해에는 우리 것도 넉넉하게 해.”
“야, 이놈의 가시나야, 너 지금 나이가 몇 살인디 지금까지 에미더러 미숫가루 해달라고 하냐?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말하는 사이에도 속에서 구토가 나와 계속 ‘욱-욱’거리다가 전호를 끊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보니 어느새 논에서 돌아온 그이가 부안 읍내 시장에 들러 사골을 사왔다며 제게 이야기하더군요.
“이 할망구야, 3개월 간은 조심해야 한다니까 들일은 걱정말고 집에서 꼼짝 말고 몸조리 잘해야 해.”하면서 윗방에 들어가 백지족이를 내놓고 붓글씨로 한문으로 뭐엇인가 심각하게 쓰더라구요.
“저놈에 노랭이 영감탱이가 무슨 일이지. 사골을 다 사오고...”
또 3개월 간은 조심하라며 붓으로 길 영자에 이을 도자를 쓰다가 ‘아니지’하면서 고개를 꺄우뚱하는 거예요. 그때 ‘따르릉 따르릉’전화가 오더군요. 광주에 사는 막내딸 전화였는데 다짜고짜 “엄마, 나 오서방한테 창피해서 못살어. 엄마 지금 나이가 몇 살이유. 50이 넘은 나이에 남들 창피하지도 않수? 몇 개월이유? 3개월은 되었수? 아빠는 그렇지 않아도 둘이만 살다보니 적적하고 외로웠는데, 늦게나마 자식을 갖게 되어 기분이 좋다며 허허허 웃으시던데, 두 분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유?”
막내딸은 울고 불고 난리더군요. 전화를 받고 가만히 생각하니 그놈의 인도 바가지 사건으로 이렇게 사건이 비약되고 말았지요. 저는 어찌나 화가 나던지 ‘자그들 코끼리 알랑방구 뀌는 소리 허고 자빠졌네. 이놈의 영감탱이 대머리 뒤꼭지에 머리 몇 개 난 것 마저 아주 다 뽑아 버릴끼여. 저놈의 영감탱이가 소사골까지 사와 늦게나마 마나님 귀한 걸 아는가 보다 했더니, 뭐 3개월 간은 조심해야 한다고...’ 아! 그래서 어제 저녁 목관도 깨끗이 허고, 참으로 오랜만에 안아달라고 했더니 늙어갈수록 더 밝힌다고 그 창피를 주고 등을 돌리고 코까지 드르릉 드르릉 골고 잠을 자더군요. 영감이 그러대요.
“그러면 임자 임신헌 게 아니라 그때 인도의 그 이상한 바가지 때문에 그런거여...?”
영감은 계면쩍어하며 섭섭한 눈치더군요.
“임자 오늘 저녁 일찍 먹고 잡시다. 나 얼릉 재너머 수랑뜰 논 물꼬 보고 올랑께. 저녁 준비 일찍 해놓고 목관 깨끗이 하고 기다려. 혹시 알어, 부처님이 늦동이 하나 점지해 주실지?”
하면서 논으로 향하는 영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지요. 몇 살만 젊다면... 하나 낳고 싶은디... 주책이겠지요. 그나저나 그놈의 인도 바가지는 언제쯤이나 저의 속을 안 썩일란지, 지금 이 순간에도 속이 지랄났는데... 급해서 이만 쓰고 화장실에 좀 갔다 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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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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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안병욱편" (1920~2013)
철학자. 수필가. 평남 용강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 졸업. '사상계' 주간, 숭실대 교수 역임. 삶의 길잡이로 또는 사상의 안내자로 많은 젊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대 사상" "사색인의 향연" "철학 노트" "알파와 오메가" 등 많은 저서가 있다.
고독과 사색
-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사물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을 받는 것은 오직 고독 속에서다 - 괴테
제일의 탄생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 태어나고 한 번은 생활하기 위하여 태어난다.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출생하여 이 세상에 내던져진다. 나의 몸뚱이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생명의 탄생이요 신체의 탄생이다. 필자는 이것을 제 1의 탄생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제 2의 탄생이 있다. 자아가 탄생하고 나의 정신이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청년 시대에 이것을 경험한다. 사람은 제 2의 탄생과 더불어 참된 자기가 되고 진실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동물에는 제 1의 탄생밖에 없다. 동물은 정신 탄생과 자아의 탄생을 모른다. 오직 인간만이 제 2의 탄생을 갖는다. 인간은 신체적 존재인 동시에 신체를 넘어서는 정신적 존재다. 인간은 육을 가진 영이다. 우리는 육체의 차원에 속하면서 동시에 자아와 인격과 정신의 차원에서 살아간다. 여기에 인간의 영광과 존엄성이 있는 동시에 고민과 불안이 또한 따른다.
인간을 동물의 질서에서 엄연히 구별하는 것은 제 2의 탄생이다. "에밀"의 저자 루소는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어머니로부터 하나의 생명으로 탄생하고, 한 번은 인간으로서 사회에 태어난다.' 이것은 인간의 2중 탄생을 간결하게 표현한 명언이다. 탄생에는 언제나 심한 고통이 따른다. 어머니는 자기의 생명을 걸고 자식을 낳는다. 제 1의 탄생에서는 한없는 신체의 고통이 동반한다. 제 2의 탄생에서는 신체적 고통 대신에 정신적 고뇌가 따른다. 우리의 정신은 불안의 골짜기를 헤매야 하고, 회의의 안개에 휩쓸려야 하고, 허무의 어두운 밤을 방황하고, 절망의 절벽에 부딪쳐야 한다. 자신 만만한 생의 충실감을 느끼는가 하면 걷잡을 수 없는 인생의 좌절감을 경험하게 된다. 즉 빛과 어둠의 교차를 체험한다. 그것은 제 2의 탄생을 위한 인간 자아의 악전 고투요 정신적 몸부림의 현상이다. 인생의 의미와 자기의 운명의 부조리에 대해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며, 또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며 생의 목적과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젊은이들은 인생의 이러한 근본적인 위문 앞에 엄숙히 서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시원한 해결과 대답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스스로 탐구해야 한다. 그는 회의로 잠 못 이루는 밤을 경험해야 하고 자기의 생을 저주하고 싶은 우울한 심정을 느낀다. '나를 이 세상에 이끌어 온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만일 그러한 자가 있다고 하면 나는 그에게 항의하고 싶다.' 이 말은 덴마크의 고독한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인간의 존재의 우연성에 관해서 항의한 말이다. 이것은 비단 키에르케고르만의 항의가 아닐 것이다. 제 2의 탄생을 경험하는 젊은 혼들이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반드시 한 번은 던지게 되는 생의 항의다.
우리는 분명히 이 세사에 내던져진 존재다.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린다면 피투성의 존재다. 게보르펜하이트의 자각이다. 누가 무엇 때문에 나를 지금 여기에 한 인간으로 내던졌는가?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돌린다. 불교는 인연이요, 업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것을 운명에 돌리기도 하고 우연에 돌리기도 한다. 실존 철학자들은 이것을 인생의 부조리라고 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한 인간으로서 실존하는 데 대해서 아무도 합리적인 해석과 이유를 부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생은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파스칼은 그의 명저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인생의 짧은 기간이 내 앞과 뒤에 연결된 영원 속에 매몰되며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조그마한 공간이 나를 알지도 못하고, 또 나도 알지 못하는 무한의 공간의 영원한 침묵은 나를 전율케 한다.'
이것은 '내'가 지금 여기에 실존하는 데 대한 파스칼의 철학적 회의의 말이다. 분명히 인생은 하나의 수수께끼요, 부조리요, 아포리아다. 젊은 생명들이 이러한 문제에 회의와 사색의 눈초리를 돌릴 때 그는 정신의 제 2의 탄생을 겪고 있는 것이다. 청년은 인생의 제 2의 탄생을 맞이하는 시기다.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하고 보람 있는 것은 제 2의 탄생이다. 왜냐하면, 제 2의 탄생이야말로 새로운 자아, 참된 자기, '나'다운 내가 태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의 차원에서 생활의 차원으로 비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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