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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2호 2022.12.22 목요일 (음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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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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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본 일은 모래 위에 새겨 두고, 은혜 입은 일은 대리석 위에 새겨 두라.
― 벤저민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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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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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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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변주곡(變奏曲) - 김수영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三월을 바라보는 마른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지나가고 도야지우리의 밥찌끼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넝쿨 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
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四.一九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내어 외치지 않는다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暴風)의 간악한
信念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信念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의 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人類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美大陸에서 石油가 고갈되는 날에
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都市의 피로(疲勞)에서
배울 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 거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거다!
복사씨와 살구씨가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같은 잘못된 시간의
그릇된 명상(瞑想)이 아닐 거다
<1967.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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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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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휴의(萬事休矣)
萬:일만 만. 事:일 사. 休:그칠/쉴 휴. 矣:어조사 의(…이다).
[유사어] 능사필의(能事畢矣). [출전]《宋史》〈荊南高氏世家〉
모든 일이 끝장났다(가망 없다)는 뜻으로, 어떻게 달리 해볼 도리가 없다는 말.
당나라가 망하고 송(宋:北宋, 960~1127) 나라가 일어날 때까지 53년 동안에 중원에는 후량(後梁)/후당(後唐)/후진(後晉)/후한(後漢)/후주(後周)의 다섯 왕조가 일어났다가 쓰러지곤 했는데 이 시대를 오대[五代:후오대(後五代)의 준말]라 일컫는다.
또 다시 중원을 벗어난 각 지방에는 전촉(前蜀)/오(吳)/남한(南漢)/형남(荊南)/오월(吳越)/초(楚)/민/남당(南唐)/후촉(後蜀)/북한(北漢)등 열 나라가 있었는데 역사가는 이를 오대 십국(五代十國)이라 일컫고 있다.
이들 열 나라 중에는 형남과 같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도 있었는데 이 나라의 왕인 고종회(高從誨)는 아들 고보욱(高保勖)을 분별없이 귀여워했다. 그래서 고보욱은 남이 아무리 노한 눈으로 쏘아보아도 싱글벙글 웃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모든 일이 끝장났다[萬事休矣].’ 과연 고보욱의 대(代)에 이르러 형남은 멸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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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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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3. 신생, 메마른 나무처럼 꺾이고
이극의 우유 부단
우시가 돌아간 후 이극은 공연히 답답하고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우울했다. 그는 술상을 치우게 하고 우시가 부르던 노래를 곰곰이 되씹었다. 그러다가 바로 서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극은 다시 뜰에 나가서 불안스레 거닐었다. 이날, 이극은 저녁밥도 먹지 않았다. 등불을 밝히고 자리에 누웠으나 이리저리 돌아눕기만 힐 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리도 생각하고 저리도 생각했다. 우시는 주공과 여희에게서 안팎으로 몹시 총애를 받고 있는 자다. 신분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우시는 궁성을 자기 집 문턱 넘듯 드나드는 자다. 그가 굳이 자기 부중을 찾아와서 들려준 노래에 깊은 이유가 있을 것은 뻔하다. 그런데 우시는 막연히 암시했을 뿐 구체적인 말은 아니하고 가 버렸다. 이극은 날이 새면 당장 우시에게 달려가서 자세한 걸 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자정이 되었다. 이극은 새벽까지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초조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아랫사람을 불렀다.
"네 우시 집에 비밀히 가서 급한 일이 있으니 잠시 다녀가라고 전갈하고 데려오너라."
분부를 받은 사람은 우시 집에 가서 전갈했다. 우시는 그 전갈을 받고 소리없이 웃었다. 부르는 까닭을 짐작했던 것이다. 우시는 급히 의관을 갖추고 심부름 온 사람의 뒤를 따라 이극의 집으로 갔다. 이극의 집에 간 우시는 바로 이극의 침소로 안내되었다. 이극이 우시를 침상 앞에 앉히고 물었다.
"낮에 그대가 말한 완목과 마른 나무에 관한 설명은 대강 짐작하겠으나 혹 곡옥에 있는 세자 신생과 깊이 연관된 일이 아니냐? 네 반드시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니 숨기지 말고 자세히 내게 말하여라."
"예, 오래 전부터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다만 대부가 바로 신생의 스승뻘이신지라, 감히 바로 말씀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극이 말했다.
"만일 앞으로 내게 언짢은 일이 닥쳐올 것이라면 미리 알려 주게. 그래야 화를 면하지 않겠나. 그래야만 자네가 진정 나를 생각해 주는 걸세.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인들 못할 것이 있으리오."
우시가 이극이 누워 있는 베개 가까이까지 머리를 숙이고서 속삭였다.
"주공께선 오래전부터 여희를 정실부인으로 삼고 세자 신생을 죽인 뒤 해제를 그 자리에 세우려 확실한 계책을 짜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렇게 못하도록 말릴 수 있을까?"
우시가 고개를 흔들었다.
"여희가 주공의 맘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은 대부께서도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또 양오와 동관오도 주공의 신임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여희는 내궁에서 주장하고 양오와 동관오가 외궁에서 주장하는데 누가 그들의 계책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극이 주저하면서 말했다.
"주공 편이 되어 세자를 죽인다는 것은 나로서는 차마 못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세자를 도와 주공께 반항한다는 것도 나로서는 감당 못할 일이다. 그러니 어느 편에도 들지 말고 중립을 취하면 가히 화를 면할 수 있을지......."
우시가 그제서야 웃으며 대답했다.
"대부께서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취하면 별고 없을 것입니다."
우시가 물러간 뒤에도 이극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날 아침에 이극은 가깝게 지내는 대부 비정부의 집으로 갔다. 이극이 좌우 사람들을 내보내도록 청하고 비정부에게 말했다.
"큰일났소이다."
비정부가 반문했다.
"왜 무슨 소문이라도 들으셨소?"
이극이 털어놓았다.
"지난 밤에 우시가 우리 집에 와서 이런 말을 합디다. 주공께서 오래전부터 여희를 정실 부인으로 삼고 세자 신생을 죽인 후, 여희의 소생인 해제를 세자로 세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구려."
비정부가 물었다.
"그래 대부께선 뭐라고 대답하셨소?"
"나는 중립을 지키겠다고 하였소이다."
비정부가 탄식했다.
"하아, 이거 큰일났구려. 대부의 대답은 타오르는 불 속에 가랑잎을 넣은 격이오. 내가 대부를 위해서 계책을 한 가지 말씀해 드리지요. 대부는 앞으로 여희 일파의 음모가 마땅치 않다는 태도를 취하십시오. 그들이 대부의 마땅해 하지 않는 태도를 보면 속이 뜨끔해서 세자를 죽이려는 계책을 급히 서두르지는 못할 것이오. 그 기회를 잃지 말고 대부는 세자를 도우려는 동지를 많이 모아 당을 세우십시오. 그러면 세자 신생의 지위가 튼튼해질 것입니다. 그 때를 당하여 주공께 사리를 잘 말씀드리고 주공의 마음을 바로잡도록 해야 합니다. 아직도 일이 어떻게 될지 확실하게 결정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대부가 중립을 취하면 세자는 더욱 외로워질 것이고, 여희의 무리들은 기승을 부릴 것이 틀림이 없소이다. 그러고 나면 변란이 일어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소."
이 말을 듣고 그제서야 사태를 헤아리게 된 이극은 발을 굴리며 안타까워했다.
"애석하구나! 내 좀더 일찍이 대부를 찾아와 상의 못한 것이 후회돼오."
이극은 비정부의 집을 나와 수레를 타고 돌아갔다. 그는 수레를 타고 돌아가다가 실족한 듯이 일부러 수레에서 길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튿날 그는 발을 다쳐서 꼼짝 못한다 하고 드러누워 버렸다. 그 뒤로 이극은 부상 때문이라고 핑계대면서 궁중 조회조차 나가지 않았다. 여희는 우시가 지난날 이극의 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보고하는 걸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날 밤에 여희가 진헌공에게 말했다.
"세자가 곡옥에 가 있는 지도 오래 되었는데 어찌해서 불러들이지 않습니까. 첩이 외로이 떠나 있는 세자 신생을 보고자 한다고 전해 주십시오. 첩은 세자에게 서모로서 덕을 베풀고 싶습니다."
진헌공은 여희의 말대로 세자 신생을 소환했다. 신생은 부름을 받자 지체하지 않고 즉시 곡옥을 떠나 강성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버지인 진헌공께 재배하고 내궁으로 들어가서 여희에게도 깍듯이 인사했다. 이에 여희는 잔치까지 베풀고 신생을 극진히 대접했다. 세자 신생을 대하는 여희의 태도는 마치 친동기를 대하듯 반가운 상이었다. 이튿낱 신생은 다시 내궁에 들어가서 전날의 잔치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여희는 이날도 신생을 내궁에 머물게 하고 점심까지 대접해서 보냈다. 그런데 그날 밤 진헌공과 잠자리에 든 여희는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첩은 세자의 맘을 돌려세우고자 도성으로 불러오도록 했고 또 예의로써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세자는 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매우 난잡하게 대하고 무례하게 행동하지 뭐여요."
진헌공이 물었다.
"어떻게 무례하단 말인가?"
여희가 뽀로통해서 말했다.
"소첩이 오늘 세자에게 점심 대접을 했습니다. 세자는 술을 청해서 마시고 얼근히 취하더니 첩을 희롱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는 이제 형편없이 늙었소. 새어머니는 제게 딴생각이 없으신지요.' 소첩은 대로하여 세자의 수작을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세자가 말하기를 '지난날 우리 할아버지는 늙자 자기 아내 강씨를 우리 아버지에게 내줬습니다. 그 강씨가 바로 나의 할머니뻘인 동시에 친어머님이지요. 이제 나의 아버지도 늙었으니 반드시 물려줄 것이 있을 것인즉, 그것을 맡을 사람은 내가 아니면 또 누가 있겠소?' 하고 가까이 덤벼들며 첩의 손을 잡으려 했습니다. 첩은 이를 뿌리치고 겨우 욕을 면했습니다. 만일 상감께서 첩을 믿을 수 없으시다면 첩이 시험삼아 내일 낮에 세자와 함께 궁원에서 놀겠으니 그 때 상감은 대 위에 숨어서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세자의 수작을 보고 나면 상감께서 반드시 첩의 말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음, 그래! 그럼 내일 어디 보기로 하자."
진헌공은 신음하듯 대답했다. 날이 밝자, 여희는 신생을 불러들여 함께 궁원을 거닐었다. 이미 여희는 기름 대신 머리에다 꿀을 발라 곱게 단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그걸 알리오. 꿀냄새를 맡고 벌과 나비들이 여희의 머리에 분분히 모여들었다. 여희가 천연덕스레 신생에게 말했다.
"세자는 나를 위해 이 벌과 나비들을 멀리 쫓아버릴 수 있겠소?"
신생은 멋도 모르고 여희의 뒤를 따라가며 소매로 열심히 여희의 머리에 모여드는 벌과 나비를 쫓았다. 이 때 진헌공은 멀리 대 위에 숨어 서서 궁원의 신생과 여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생의 소행은 분명히 해괴망측했다. 이 날, 대로한 진헌공은 즉시 신생을 잡아들여 죽이려고 했다. 여희가 진헌공 앞에 무릎을 꿇고 고했다.
"첩이 세자를 불러오게 했는데 죽이신다면 이는 첩이 세자를 죽이는 것이 됩니다. 또한 궁중에서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잠시 고정하소서."
드디어 진헌공은 신생에게 곡옥으로 돌아가라는 추상 같은 분부를 내렸다. 그리고 진헌공은 떠나간 신생의 뒤를 이어 감시할 밀사를 곡옥으로 보내며 분부했다.
"네 곡옥에 가서 어떻게든 세자 신생의 죄목을 한 가지라도 찾아 즉시 보고하여라."
이런 일이 있은 지 수일 뒤, 진헌공은 지방으로 사냥을 갔다. 임금이 없는 동안에 궁중에서 여희와 우시는 한바탕 운우 지락(雲雨之樂)을 즐기고 나서 비밀히 상의하고 다시 심복 부하를 불러 지시했다.
"너는 곡옥에 가서 세자에게 다음과 같이 전갈하여라. 즉 '주공의 꿈에 세자의 친어머님인 제강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내가 배고파 견딜 수 없으니 제사라도 지내주오 하고 현몽하였은즉 세자는 속히 제사를 지내도록 하라는 분부를 받들고 왔소이다.' 하고 전하여라."
그 당시 신생의 생모 제강의 사당은 따로 곡옥 땅에 있었다. 사자의 전갈을 받고 곡옥의 신생은 제물을 갖추고 곧 제강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그는 전례에 따라 사람을 시켜 제사 지낸 고기를 아버지인 진헌공에게 보냈다. 이 때까지 지방으로 사냥 간 진헌공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신생이 보낸 육포는 궁중에서 엿새를 묵었다. 그제야 진헌공이 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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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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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추억의 가죽피리
저는 최근 추억속의 한 친구를 우연히 만나 오랜만에 정말 아주 오래만에 살고 있음이, 그래서 웃을 수 있음이 너무 행복했던 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얼마 전 저희 회사에 부자재를 공급하던 한 업체가 경영난으로 도산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거래선을 찾기 위해 아는 이의 소개로 근교의 공단에 있는 모 업체를 방문하였습니다. 상담은 생각보다 순조로웠고,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나누며 사무실 문을 막 나서려다 제법 넓은 사무실 저편에 아주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눈이 좀 나쁜지라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라고 생각하며 실눈을 뜨고 잠시 그를 쳐다보는데 마침 그도 자기에게 오는 시선을 느낀 듯이 저를 잠시 쳐다보더니 사무실이 떠나가라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으악- 대갈아!(대가리는 저의 학창시절 별명이었음)"
착 달라붙은 곱슬머리! 두툼한 입술! 포대를 하나 씌워 보면 앞뒤좌우 구분이 안되는 통자루 몸매! 아! 저는 주마등처럼 제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추억을 되새기며 외쳤죠.
"똥갈아~. 아니 가죽피리."
여기서 잠시 이 친구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 친구와 저는 대학동창이었습니다. 대학시절 저도 만만찮은 악동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만 '똥가리' 아니 '가죽피리!' 가히 이 친구의 명성은 저의 대학사에 깊이 남고도 또 남을 그러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똥가리'라는 별명은 워낙이 짜리몽땅한 이 친구의 몸매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친구의 진짜 진가는 '가죽피리'라는 별명에서 벌써 눈치채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시도때도 없이 발포하는 '방귀'의 대가라는 것입니다. 웬만한 남자들의 좀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방귀 정도로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이 친구도 처음엔 그저 남들보다 좀 자주 발산되는 생리현상을 그저 아무 생각없이 재미로 즐기다가 언제부터인가 완전히 취미생활로 바뀌면서 소리의 장단과 음의 높낮이, 심지어 냄새까지 조절하는 방귀에 관한 한 어떤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이 친구의 명성은 그 시절 바로 방귀 때문에 중요한 학점을 놓쳐 졸업을 하지 못하게 될 뻔한 사건으로 치달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건의 전말인즉, 평소 이 친구의 소행이 강의시간 중에 특히 수업이 좀 지루해질 무렵이면 여지없이 괴음을 발포하여 웃음바다르 만들기 일수였고, 그 소리 또한 다양해서 같은 과 친구들은 물론 교수님까지도 그의 새로운 방귀소리 개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과의 유일한 여교수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당시 상당한 미모에다 젊고 유능한 교수님이셨기에 늘 남학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이 '가죽피리' 역시 그 여교수님을 누구 못지 않게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이 친구는 늘 여교수님의 강의시간 중에 그 흠모의 표현을 주특기인 방귀소리로 대신하곤 하였는데 다른 강의시간에 발포하던 그 다양한 소리들과는 완연히 다른 아주 일관된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뽀오-오-오-옹-."
아주 가늘고 길게.... 사랑의 애틋한 마음을 전하려고 상당한 시간을 연습하여 만든 소리래나? 어쨋든 그 소리는 제가 듣기에도 상당한 애절함이 담겨 있는 것 같았고, 이 친구의 피리소리는 학교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던지라 별 수 없이 참아 넘기시던 그 여교수님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퇴장 명령을 내리게 된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화창한 날씨의 어느 날 그날 따라 유난히 화사한 의상을 입고 강의실에 들어오신 여교수님. 그날도 빠짐없이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이동근(이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가죽필'의 본명입니다)."
교수님께서 호명하자, 대답은 간데 없고 난데없이 들리는 피리소리가 있었습니다.
"뽀-오-오-옹-."
아! 이 녀석이 입으로 하는 대답을 '엉덩이'로 그 애절한 '가죽피리'소리로 대신하였던 것입니다. 순간 장내는 터지는 폭소와 함께 아수라장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 여교수님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드디어 이 친구에게 강의실 퇴장 명령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 의지가 워낙 완강하셨던지라 넉살 좋은 이 친구도 하는 수없이 머쓱한 얼굴로 주섬주섬 책을 챙기고는 뒷문으로 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장내가 정리되고 이제 막 수업이 시작되려 하자, 강의 실 앞문이 삐걱- 열리더니 큼지막한 엉덩이가 삐죽 보였습니다.
"뽀오-오-오-옹-."
그 소리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문이 닫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의실의 모든 친구들은 웃다 못해 거의 졸도 상태에 빠져 버렸고, 그후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습니다. 괘씸죄 + 교수모독죄 + 알파로 F학점. 전공필수과목이던지라, 그 뒷수습을 하기 위해 '가죽피리'의 노력은 거의 피눈물 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다시 현실로 돌려, 한 중견업체의 이사로 나타난 이 친구와 저는 제가 먼저 군대 입대하게 되면서 헤어진 후, 십수년을 만나지 못했고 사십을 목전에 둔 이 겨울,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된 것입니다. 퇴근하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의기투합한 우리는 인근 선술집을 찾았습니다. 외진 지역이라 택시는 좀처럼 보이질 않았고, 마침 바로 옆 정류장에 버스가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저거 타고 가자!"
마치 학창시절처럼 우루루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퇴근 시간보다 두어 시간 이른 시간이었지만 버스 안은 제법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몇 정류장을 지났을까? 가죽피리가 제게 말했습니다.
"자리 하나 마련해 줄까?"
이 녀석이 나이도 잊은 채 옛날의 장난끼가 발동한 것이었습니다. 버스 안을 휙 둘러보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소곳이 앉아 있는 한 아가씨 옆으로 갔습니다. 잠시 뒤, 인상을 찌푸린 아가씨는 손으로 코를 막으며 애써 참고 있는데 뒷자석의 아주머니가 한 소리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 좀 심한 거 아입니꺼?"
버스 안의 승객들이 낄낄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한 말로 물러설 가죽피리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일격인 듯,
"빠다다다-닥."
그런데 우째 이번엔 소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버스안의 승객들은 못 참겠다는 듯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햇고, 제법 야무지게 보이는 그 아가씨 역시 상대의 의도를 이미 간파한 듯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데 이게 웬일입니까? 우리의 가죽피리가 상당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다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즈막이 제게 말했습니다.
"대갈아, 내리자!"
그만한 일로 의기소침할 친구는 결코 아닌 탓에 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왜?"
그러자 이 친구는 다시 야릇한 인상을 쓰며 제 귀에다 대고 속삭였습니다.
"쌌다!"
아!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입니까? 우린 더 이상 얘기할 겨를도 없이 다급히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목욕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니도 인자 다 됐다.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는 기라."
우린 물 속에 몸을 담근 채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래! 참 많은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 같다."
젊다 못해 푸르기만 하던 청춘은 다 어디론가 떠나가 버리고 듬성듬성 솟아오르는 흰머리며, 자글자글 눈가의 주름,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이 시대의 중심을 짊어진 주역으로, 눌러오는 중압감만큼이나 처진 어깨를.... 세월을 거역할 수 없는 나약함에 공감이 온 듯 우리는 물 속에 몸을 맡긴 채 잠시 동안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다 슬쩍 눈을 떠보니 평온한 얼굴로 잠시 명상에 잠겨 있던 가죽피리 녀석의 얼굴에 피시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턱까지 물에 담근 채 눈을 감고 잇는 얼굴 바로 앞 수면위로 뽀글뽀글 물방울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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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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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전광용편"
전광용(1919~1988)
소설가. 국문학자. 함남 북청 출생. 서울대 문리대 및 대학원 졸업. 문학 박사. 서울 대학 교수 역임. 동화로 출발했다가 소설로 옮긴 전광용은 냉철한 사실적 필치로 한국적인 여러 상황을 추구하는 것이 된 작품 경향이다. 감각적 요소를 곁들인 간결 정확한 문장과 현장 확인을 내세우는 소재의 소화는 그의 작가적 성실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가을의 여정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그리고 여름은 여름, 겨울은 겨울대로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그대로 다 새로운 즐거움을 가슴 속에 안겨다 주는 청신제라고나 할까. 그뿐인가. 농촌은 농촌대로 전원의 유장한 목가적인 맛을,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그것만이 지니는 독특한 자연의 시정을 선물하는가 하면, 새롭고 낯선 도시의 가로는 그것대로 흙 속에 파묻혔던 사람들에게 산뜻한 미지의 감각에 경이에 찬 눈동자를 뒹굴리게 한다. 그러기에 천하 명산 금강산도 계절에 따라 봉래, 풍악, 개골, 금강 등 그 때마다의 승경의 아치를 상징하는 이명들을 가지고 있다. 새 움 트는 봄의 정경이 산책이나 소풍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리듬이라면, 여름의 무르익은 녹음과 작열하는 태양은 그대로 바다의 유혹을 자극하는 정열 발산의 표정임에 틀림없는 성싶다. 앙상한 가지에 설경어린 겨울 시계가 남성적인 장엄미를 과시하는 것이라면, 사색이 곁들인 여정의 풍일은 아무래도 가을만이 간직한 자연의 격이 아닐 수 없는 것 같다.
가을!
그 음향의 여운 속에는, 그 너머의 첩첩한 시각과 굽이굽이 상념의 계속을 함께 함축하여 주는 낭만이 깃들여 있는 것만 같게 여겨짐을 어찌하랴. 티없이 맑게 트인 드높은 하늘을 끝없이 훨훨 날고만 싶은 충동은 가을만이 지니는 독점물인 것만 같다. 먼지 속에 복닥거리는 도시의 소음을 잠시 외면하고, 놀진 저물녘 차창에 기대어 시골 초가집 지붕에 널어 말리는 빨간 고추와 싸리 울타리에 늘어진 노오란 호박에 눈을 주며 엑조틱한 정감에 잠기는 것은 비단 소녀의 값싼 감상쯤으로만 돌릴 것인가... 가을이라면 으레 곁붙는 푸른 하늘, 귀뚜라미, 기러기, 그리고 단풍과 낙엽, 이것들은 시인 묵객의 입에뿐만 아니라 어린이들 작문 구절에까지도 예사로 오르내려 이젠 좀 진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 씌어질 나름으로, 그 맛은 또 그 맛대로 전연 가셔진 것은 아닌 것만 같다. 가을 나그네! 그것은 현대 문명의 첨단의 하나인 제트기의 여로에서도 맛보지 말라는 법은 없으리라. 그러나, 아침을 서울에서 먹고 다음날 점심을 파리에서 먹어야 하는 기계 문명을 현기증 나는 메커니즘 속에서는, 계절의 신비로운 순환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 자못 의심이 가시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러고 보면 죽장 망혜 단표자의 옛 풍류는 아직도 산정의 진미 속에 천고여하게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 하면 '나그네'와 더불어 떠오르는 추억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부전 고원의 아침 해돋이, 자작나무 수풀을 건너 보이는 호반의 정회와 금강산 상팔담의 사파이어같이 맑고도 푸른 물에 비낀 석양 무렵의 다감한 회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휴전선 너머 먼 이방 마냥, 흘러가는 구름에 착잡한 회상만 얽힐 뿐이다. 운악산도 금강산과 같은 산맥 줄기여서 그에 비견할 수 있는 승경이라고들 하지만, 백보를 양보해도 금강의 절승에 견주면 해갈의 경지에도 닿지 못하는 끝없는 아쉬움이 감돌 뿐이다.
가을이 되면 어디론가 자꾸만 가고만 싶어지니, 이도 또한 병이런가... 그러나 막상 떠나려고 하니 갈 곳이 없다. 설악도, 지리도, 속리도, 한라도 다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또 가고 싶은 그 이상의 구미를 유발하지 못하는, 그저 그만 정도의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가을을, 이 상량한 계절을 도심에서 새기며 그대로야 보낼쏜가? 유혹이 거듭되는 여정, 단풍이 좀더 짙어지면 가야산 유곡의 해인사라도 찾아야만이 가을의 병은 치유될 것만 같다. 가을은 소녀처럼 가슴 부푸는 계절, 더욱이 온 누리에서 가장 맑고 아름답다는 이 땅의 가을 하늘! 인공이 미비하니 천부에라도 기대볼까? 그 가을은 여수를 지겹게 안겨다 주기에 더울 매력을 느끼는 것이나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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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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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3부 국어공부,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시험, 무엇이 문제인가
논술은 어떤 글인가?
논술이란 자기 의견을 쓰는 것, 또는 자기 의견을 써 놓은 글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논술이란 말의 뜻을 살피면 세 가지 요소가 들어가 있다고 보겠는데, 그것은 1.자기자신의 2.의견(생각,주장)을 3.자기 말로 쓴 글이란 것이다. 이것을 좀 더 풀어서 말하면 1.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남의 생각,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생각, 남이 적어 놓은 글을 읽고 그것을 흉내내거나 되풀이해서는 제대로 된 논술일 수 없다. 그러기에 2.제몸에서(삶에서) 우러난 의견, 또는 주장이라야 하는 거고, 이런 의견이나 주장을 쓰는 3.말도 남의 글에서 빌려온 말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삶에서 나온 말로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입학시험 준비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논술을 이 세가지 요소로 따져 볼 때 참된 논술문이라 할 수 없다. 1.지도하는 어른들이 말해 주고 가르쳐 준 것을 그대로 받아 정리해서 쓰는 글로 되어 있고, 2. 그래서 그 주장이나 의견이 자기 삶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이요 남의 것을 따라가고 흉내내거나 남의 것을 제것인 것처럼 꾸며 보이는 것이고, 3.글도 어른들이 쓴 것을 그대로 흉내낸 것뿐이다. 이런 논술 쓰기에는 누가 얼마나 어른들의 글을 잘 읽어서 그것을 요령있게 정리해서 썼나, 누가 얼마나 읽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잘 암기했는가, 근사한 말과 문장을 제것으로 옮겨 쓸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 평가의 잣대가 된다.
물론 남의 의견이나 주장을 읽고서 그것을 그대로 요약 정리할 뿐 아니라, 그 주장이나 의견에 대해 자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 지금 학생들이 쓰고 있는 거의 모든 논술문이 실제 삶에서 떠나 있는 상태에서 다만 책만 읽고서 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삶에서 떠나 다만 글만 읽고 쓰는 의견이 어떻게 제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논술에서 쓴 의견이란 것은 어른들이 주는 것을 받아들인 것일 뿐이다. 논술 글쓰기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글을 읽거나 책을 읽어서 그 내용을 정리하고 요약하는 글쓰기 공부는 국민학생 때부터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학습한 내용을 정리한 글 은 그런 대로 쓸 필요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지금 대학입시 준비로 하고 있는 논술 글쓰기가 학습한(책을 읽은)것을 정리한 글 정도로 쓰는 것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더 논의하지는 않아야 되겠지. 하지만 그런 글로 보기에는 학생들을 너무 괴롭히고, 너무 머리를 어지럽힌다. 문제는 글쓰기가 참된 사람이되도록 하는 교육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점수를 따기 위해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제 이 논술문이란 글이 여러 가지 글의 갈래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알아 보아야 할 차례가 되었다. 물론 이것은 논술이란 것이 그저 남의 책만 읽고 어른들이 말하는 것, 가르쳐 주는 것만을 정리하거나 거기에다가 적당하게 자기 생각이라고 하여 의견을 적는 정도의 글이 아니라, 진정에서 우러난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쓰는 글로 보고 매기는 자리인 것이다.
- 도표생략
이 표는 우리 문장 쓰기 에서 옮겨 썼는데 초등학생부터 시작하여 중고등학생을 거쳐 대학생과 일반 어른들과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문인에 이르기까지 쓰게 되는 글의 모든 갈래를 나타낸 것이다. 이 표에서 글의 갈래가 10가지로 나누어져 있고, 논설문은 그 10가지 가운데 1가지다. 그리고 이 논설문이란 것을 또 주장하는 글(논술하는 글)과 연구문, 연구보고문, 성명서, 진정서, 시사평론, 일반평론 - 이렇게 일곱 가지쯤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논술이라는 글은 이 일곱 가지 가운데 한가지다. 논술문은 국민학교 4학년부터 쓰게 할 수 있는 주장하는 글 을 대학생이 되면 이렇게 말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논술 이란 말도 없애고 주장하는 글 이라고 해서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똑같은 말을 썼으면 좋겠다.) 아무튼 글의 갈래 열 가지 가운데 한 가지인 논설문, 다시 이 논설문 안에 들어 있는 일곱 가지 가운데 한 가지인 논설문 안에 들어 있는 일곱 가지 글 가운데 한 가지, 이것이 논술 (주장하는 글)이란 글의 자리다. 그것도 국민학교 4학년부터 조금씩 쓰게 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그런데 글쓰기라면 논술밖에 없는 줄 알고, 논술만 쓰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 더구나 삶을 등지고서 남의 글 흉내만 내도록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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