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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7호 2022.10.17 (음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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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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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은 공것을 주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관찰하는 것. ―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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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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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의 질주
말귀가 어두워졌다. 귀를 파도 잘 안 들린다. 세상은 더 시시껄렁해졌으니 뭔 대수겠냐마는, 잘 못 알아들으니 눈치도 없고 괜스레 넘겨짚었다가 핀잔 듣기 일쑤다. 자막 없이 드라마도 보기 어렵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내 눈은 자막에 박혀 있다.(영화는 읽는 것!) 비빌 언덕이 있으니 청력은 더 떨어진다.
자막의 변신은 눈이 부시다. 화면 하단에 얌전히 자리 잡은 채 누군가의 발언을 받아 적는 걸로 만족하지 않는다. 책처럼 닝닝하지 않고 형형색색 화려하고 고혹적이다. 이제 방송은 영상과 소리와 자막의 삼중주. 날렵하고 쌈박하게 자막을 ‘입힌’ 프로그램은 인기도 좋다. 자막 없이 생목소리만 오가는 프로를 무슨 재미로 볼꼬.
자막은 포스트모던하기까지 하다. 화면 어디든 자유롭게 떠다니면서, 중심 발언자와 주변 발언자를 뒤섞어 여러 목소리가 함께 아우성치도록 한다. 출연진뿐만 아니라 화면 밖의 목소리(제작진이나 시청자)까지 끌어들인다. 지금 벌어지는 장면과 전혀 무관한 정보를 자막으로 끌어와 강제로 포개놓는다. 게다가 출연자의 행동만을 보고 머리맡에 ‘부끄, 움찔, 빠직, 끄응, 답답, 솔깃’ 따위의 말을 얹어놓아 그의 심리 상태마저 알려준다. 마음까지 읽어주다니 자막은 독심술사.
연출가는 영상만으로도 이 세계를 편집하고 해석한다. 자막은 그의 해석이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승인하는 서명이다. 우리는 연출가가 다그치는 감각의 외길을 따라가야 한다. 틈을 주지 않고 촘촘하게 짜인 그 길은 엉뚱한 상상이나 딴생각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상상력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할 듯.
당선자 대 당선인
헌법에 ‘대통령 당선자’라 분명히 나오는데도, 대통령직인수법에는 ‘대통령 당선인’이라면서 따로 뜻풀이까지 해놓았다. 인사청문회법도 그렇고, 공직선거법엔 아예 ‘당선인’이라는 장이 따로 있더군. 선관위에서 주는 당선증에도 다 ‘당선인’이라 적혀 있다. 이러니 논쟁적일 수밖에. 지금은 성향과 무관하게 ‘당선인’이 대세다. <한겨레>만이 근성 있게 ‘당선자’를 쓸 뿐.
나에겐 ‘당선자’가 비판적 거리감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실은 지난날부터 입에 눌어붙은 말이라 좋아하는 거겠지. 그런데 이명박씨가 집권하면서 ‘당선인’이라 써달라면서 논란이 됐다. 헌재에서 헌법대로 ‘당선자’로 쓰라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선자’는 표를 많이 얻은 사람을 지칭할 뿐, 호칭으로는 ‘당선인’이라는 것. ‘자’(者)가 ‘놈 자’라 ‘대통령에 당선된 놈’이란 뜻이니 이 얼마나 불경한가.
그러나 접미사 ‘-자’에는 비하의 뜻이 없다. ‘실패자’가 비하라면 ‘승리자’도 비하일까. ‘배신자, 탈락자, 기회주의자, 성격파탄자’가 비하라면, ‘과학자, 보호자, 노동자, 유권자, 구원자’는 어쩔 텐가. 전체 낱말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따라 어감의 차이가 생길 뿐. 권력‘자’와 기‘자’, 언론‘인’이 세상 휘젓기 놀이 도구로 써서 그렇지, 말에 무슨 잘못이 있으리오.
‘당선자’라 쓴다고 정론직필의 기사를, ‘당선인’이라 쓴다고 곡학아세의 기사를 쓴다고 보지 않는다. 그저 이 허망한 논란으로 가려지는 이웃들의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민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이기만 하다면야, ‘당선인 각하’도 아깝지 않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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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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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에서 Y로 - 김수영
電燈에서 消燈으로
소음(騷音)에서 라디오의 중단(中斷)으로
모조품 은단(模造品 銀丹)에서 仁丹으로
남의 집에서 내 방으로
勞動에서 休息으로
休息에서 수면(睡眠)으로
신축공장이 아교공장의 말뚝처럼 일어서는
시골에서
새까만 발에 샌달을 신은 여자의 시골에서
무식하게 사치스러운 공허의 서울의
간선도로를 지나
아직도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발목이 굵은 여자들이 많이 사는 나의 마을로
地球에서 地球로
나는 왔다
나는 왔다 억지로 왔다
<196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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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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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지우(杞人之優)
杞:나라 이름 기. 人:사람 인. 之:갈 지(…의). 優:근심 우.
[준말] 기우(杞優). [동의어] 기인우천(杞人優天).
[유사어] 오우천월(吳牛喘月). [출전]《列子》〈天瑞篇(천서편)〉
기(杞)나라 사람의 군걱정이란 뜻. 곧 쓸데없는 군걱정. 헛 걱정. 무익한 근심.
주왕조(周王朝) 시대, 기나라에 쓸데없는 군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만약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진다면 몸둘 곳이 없지 않은가?’ 그는 이런 걱정을 하느라 밤에 잠도 못 이루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자 ‘저러다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된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하늘은 (공)기가 쌓였을 뿐이야. 그래서 기가 없는 곳이 없지. 우리가 몸을 굴신(屈伸:굽힘과 폄)하고 호흡을 하는 것도 늘 하늘 안에서 하고 있다네. 그런데, 왜 하늘이 무너져 내린단 말인가?”
“하늘이 과연 기가 쌓인 것이라면 일월성신(日月星辰:해와 달과 별)이 떨어저 내릴 게 아닌가?”
“일월성신이란 것도 역시 쌓인 기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일 뿐이야. 설령 떨어져 내린다 해도 다칠 염려는 없다네.”
“그럼, 땅이 꺼지는 일은 없을까?”
“땅은 흙이 쌓였을 뿐이야. 그래서 사방에 흙이 없는 곳이 없지. 우리가 뛰고 구르는 것도 늘 땅 위에서 하고 있다네. 그런데 왜 땅이 꺼진단 말인가? 그러니 이젠 쓸데없는 군걱정은 하지 말게나.”
이 말을 듣고서야 그는 비로소 마음을 넣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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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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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4. 가족들과의 더 좋은 관계를 위하여
불가능에 도전하라
삶이란 투쟁속에서만 의미있는 것, 승리와 패배는 신의 몫이라네. - 스와힐
리 족 '전사의 노래'에서 - 래리 프라이스
내가 텍사스 오스틴의 국제 교섭 센터에서 빌 라이더가 이끄는 텔레마케팅의 자금조달 업무에 관한 강연회에 참석하고 있을 때, 그곳에서 자금조달원으로서의 직업적 능력의 한계를 느끼는 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남들에게 더 큰 인상을 주고 싶어했고, 또 더 많은 수입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일년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펀드라이징(자금조달) 업무의 한도 수량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녀의 희망을 어떻게 이뤄야 할는지 알 수 없었다. 빌은 말했다.
"글쎄요, 당신이 이러한 일들을 한꺼번에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런 사안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저는 당신이 그러한 세미나를 계획하는 것을 도울 수 있으며, 우리들은 바로 한달 후, 이곳 달라스에서 그 첫 번째 세미나를 열어드릴 수 있습니다."
점심시간중에, 스텝들은 그녀의 미완성된 세미나에 대해 전화로 등록 여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이 지역내의 모든 비영리 단체와 인사들의 목록을 복사해 왔다. 그녀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우리들은 그녀에게 말했다.
"자, 이제 시작합시다."
우리들은 스텝진이 제공한 리스트의 모든 사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점심을 먹는 도중에 스텝들은 특정한 질문들과 자세한 대사를 작성해서 제공했으며 이렇게 격려했다.
"집요하고도 끈질기게 요청하시길, 그리고 포기하지 마세요."
이를테면 누군가가 자신은 올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 '그럼 당신의 조직내에 대신 보내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은 없나요?'하고 되묻는 것이었다. 또 만일 그 사람들이 세미나로 천달러라면 너무나도 비싸다고 말한다면 우리들은 '당신의 효율성과 이익을 끌어올리고 싶다면 이 정도의 비용은 단지 미래를 위한 투자일 뿐입니다. 지금 지불하실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보답이 보장될 것입니다'라고 그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우리의 다른 전략 한가지는 압박과 약간의 위협이었다.
"이 강연은 오스틴에서 오직 한 번만 열릴 것이며 단지 50명에게만 가능할 것입니다. 만일 당장 서명하지 않으면 당신은 영영 기회를 놓칩니다."
이런 식이었다. 서너 시간만에 등록한 사람은 40명이 넘었고 그 중에 세 명은 내가 끌어들인 사람이었다. 우리가 있던 사무실 안의 에너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만했고 누군가 한명을 등록시킬 때마다 그는 자전거의 경적을 울리는 것과 같은 휘파람을 불어댔다. 나는 그날 요청의 힘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서 단지 여섯 시간만에 4만 달러 이상의 계약을 체결했다. 나는 어떠한 일이라도 단지 우리가 그것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요? - 데이비드 요고 2세
나는 수년 전에 굉장히 값진 문장을 배웠다.
"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요?"
만일 당신이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요청할 때에는 먼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때부터 그들에게 어떻게 해주십사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라고 직접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예가 있다. 만일 한 행정관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기로 했다면 사무실로 내가 들어갈 때, 그는 아마도 책상 건너편에, 그리고 나는 반대쪽에 있는 두 개의 의자 중 하나에 앉을 것이다. 처음엔 그런 식의 좌석 배치에 상관없겠지만 내가 그에게 보여주어야 할 자료가 있을 때 그것을 책상 너머로 건네주는 것은 매우 불리한 행동이다. 그리고 특정한 질문을 해야 할 경우, 그 정관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것도 실례가 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얼굴 대신에 책상을 보면서 이야기 한다.
"자, 이제부터 보여드릴 것이 좀 있군요. 저나 당신이나 모두 바쁜 하루를 보냈을 것이 틀림없으니까 시간 낭비하지는 않겠습니다. 가능하며 빨리 끝내기를 원하시겠죠?"
그리고 나는 내 옆의 의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제안을 하나 할 까요?"
그가 그러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다시 말한다.
"제 옆으로 오셔서 자료를 검토하신다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의자 두 개를 서로 마주보게끔 돌려놓는다. 그러면 아마도 두 사람을 일어서서 같은 쪽의 의자에 앉아 그에게 자료를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은 대대수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방식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상대방이 이런 것들을 무척 흥미롭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당신이 요구하는 대부분의 일들을 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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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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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1. 수지 동맹
주혜왕의 밀서(2/2)
어느 날 주혜왕이 태재 공에게 말했다.
"제후(齊侯)가 비록 초를 쳤다고 하지만 그래 제가 초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이번에 초가 바친 공물과 효순하는 태도를 보니 도리어 초나라가 제보다 나면 낫지 조금도 못한 바 없었다. 요즘 제가 모든 제후를 거느리고 태자를 떠받들고 있는 건 또 무슨 뜻인가. 그들은 도대체 짐을 어쩌자는 것인가. 태재는 수고스럽지만 짐의 밀서를 정백에게 전하라. 초와 정이 단결해서 왕실을 섬기면 짐도 그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주혜왕의 엉뚱한 말을 듣고 태재 공은 크게 당황하여 반대하는 뜻을 아뢰었다.
"초가 이번에 폐백을 바치고 왕실에 그만큼 효순하게 된 것은 다 제의 힘이었습니다. 왕은 어찌하사 오래도록 친해 온 제후와 등을 돌리고 하필이면 멀고 먼 남쪽 오랑캐와 가까이 하려 하십니까?"
주혜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정백이 제후(齊侯)와 갈라서야 모든 제후(諸侯)도 각기 흩어질 것이다. 모든 제후가 오래 모여 있는 동안에 제후가 그들과 함께 무슨 짓을 꾸밀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짐은 이미 뜻을 확실히 결정하였노라."
태재 공은 왕의 결심이 단호한 걸 알고 매우 난감하여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주혜왕이 결심했다는 데야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주혜왕은 일봉(一封) 밀서를 태재 공에게 내줬다. 그 밀서는 굳게 봉해 있었다. 태재 공은 그 밀서 속에 무슨 말이 씌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왕의 분부대로 심복 한 사람을 시켜 그 밀서를 수지 땅의 정문공에게 보냈다. 한편 맹회를 기다리던 정문공은 어느 날 밤에 은밀하게 전해 온 주혜왕의 밀서를 한 통 받았다.
- 태자 정이 부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사사로이 무리를 모으는지라, 도저히 장래에 왕위를 잇게 할 수 없도다. 짐의 뜻은 차자 대에게 있으니 정백은 제를 버리고 초와 함께 손를 잡아 짐을 도와 주기 바라노라.
정문공은 밀서를 읽어보고 매우 기뻐서 모든 대부들에게 자랑하여 말했다.
"우리 윗대 어른인 무공(武公), 장공(莊公)은 대대로 왕의 경사로서 모든 제후의 영수격이었소. 그런 것이 중간에 세도가 끊어졌으나, 과인의 선군 여공께선 지금의 천자를 왕위에 올리었소. 그런데 이제야 왕명이 과인에게만 내렸으니 이젠 권도를 잡게 되었소. 모든 대부는 장차 정나라의 융성을 기원하고 과인을 축복해 주오."
이에 대부 공숙이 간했다.
"우리 정나라를 위해 제나라는 군사를 초나라까지 동원시켰습니다. 이제 와서 제를 버리고 초를 섬긴다면 이는 배은망덕입니다. 더구나 태자 정을 돕는 것은 천하 대의인데 주공께선 홀로 다른 생각을 갖지 마소서"
이에 정문공이 단호히 말했다.
"왕을 버리고 어찌 태자를 도우란 말인가? 더구나 주왕의 뜻은 태자에게 있지 않은데 과인보고 왕명과 달리 누구를 공경하란 말인가?"
공숙이 거듭해서 간했다.
"주의 종묘 제사를 맡는 것은 오직 적자와 장자라야 됩니다. 지난날 유왕이 백복(伯服)을 사랑하고, 환왕(桓王)이 극을 사랑하고, 장왕(莊王)이 퇴를 사랑하다가 결국 어찌 됐는가는 주공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결국 인심만 잃고 생명까지 잃었을 뿐 아무 공적도 남기지 못했는데, 주공께선 대의를 버리고 옛날 사람들이 저지른 허물을 다시 되풀이하시렵니까? 그리하시면 반드시 크게 후회하실 날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 때 간특한 신후가 음흉스레 앞으로 나가 정문공의 눈치를 살피며 아뢰었다.
"천자의 명을 감히 누가 거역할 수 있습니까? 제나라를 따른다면 이는 왕명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장 이 곳을 떠나면 모든 제후도 의심이 생겨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태자 정을 위한 동맹은 맺어지지 않습니다. 태자 정(鄭)을 밖에서 돕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태숙도 안으로 무리를 가지고 있으니 두 왕자 중에 누가 이겨 왕위에 오르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이 시기에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 일단 본국으로 돌아가 앞으로의 정세를 관망하시는 게 좋을까 합니다."
정문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이었다. 신후의 말을 듣기로 마음을 정한 정문공은 갑자기 국내에 일이 생겼다고 핑계한 후, 제환공에게 하직 인사도 안하고 훌쩍 수지 땅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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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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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피천득편"
피천득(1910~2007)
수필가. 시인. 영문 학자. 서울 출생. 중국 호강 대학 영문과 졸업. 하버드 대학 수학. 피천득은 한국의 서정적 수필의 대표자이다. 생활 속에서 명상의 표적을 찾아 내어 섬세하면서도 다감한 문장으로 그려 낸 그의 수필은 '수필의 전형'으로 지목되고 있다.
구원의 여상
구원의 여상은 성모 마리아입니다. 단테의 베아트리체,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헤나의 '파비올라'입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기에는 좁은 길이라고 믿는 알리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한 '블타오르던 과거를, 쌓이고 쌓인 재가 덮어 버린 지금은 당신을 만나고 싶어해도 되겠지요. 언제라도 볼일이나 유람차 님므 부근에 오시거든 에그비브에도 들러 주세요.' 이런 편지를 쓴 줄리에트도 구원의 여상입니다.
지나가 날의 즐거운 회상과 아름다운 미래의 희망이 고이 모인 얼굴.
그날 그날 인생살이에
너무 찬란하거나 너무 선스럽지 않은 것
순간적인 슬픔, 단순한 계교
칭찬. 책망. 사랑. 키스. 눈물과 미소에 알맞는 것
워즈워스의 이런 여인도 구원의 여상입니다. 여기 나의 한 여상이 있습니다. 그의 눈은 하늘같이 맑습니다. 때로는 흐르기도 하고 안개가 어리기도 합니다. 그는 싱싱하면서도 애련합니다. 명랑하면서도 어딘가 애수를 깃들이고 있습니다 원숙하면서도 앳된 데를 지니고, 지성과 함께 한편 어수룩한 데가 있습니다. 걸음걸이는 가벼우나 빨리 걷는 편은 아닙니다. 성급하면서도 기다릴 줄을 알고 자존심이 강하면서 수줍어할 때가 있고, 양보를 아니 하다가도 밑질 줄을 압니다. 그는 아름다우나, 그 아름다움은 사람을 매혹하게 하지 아니하는 푸른 나무와도 같습니다. 옷은 늘 단정히 입고 외투를 어깨에 걸치는 버릇이 있습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나 가난을 무서워하지 아니합니다. 그는 파이어플레이스에 통장작을 못 피울 경우에는 질화로에 숯불을 피워 놉니다. 차를 끓일 줄 알며, 향취를 감별할 줄 알며, 찻잔을 윤이 나게 닦을 줄 알며 이빠진 접시를 버릴 줄 압니다. 그는 한 사람하고 인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바라다보는 일이 없습니다. 그는 지위, 재산, 명성 같은 조건에 현혹되어 사람의 가치 평가를 잘못하지 아니합니다. 그는 예외적인 인사를 하기도 하지만 마음에 없는 말은 아니 합니다. 아첨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남이 감당하지 못할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지 아니합니다. 그는 사치하는 일은 있어도 낭비는 절대로 아니 합니다. 돈의 가치를 명심하면서도 인색하지 아니합니다. 돈에 인색하지 않고 시간에 인색합니다. 그는 회합이나 남의 초대에 가는 일이 드뭅니다. 그에게는 한가한 시간이 많습니다. 미술을 업으로 하는 그는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오래오래 산책을 합니다. 그의 그림은 색채가 밝고 맑고 화폭에 넓은 여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사랑이 가장 귀한 것이나, 인생의 전부라고는 생각지 아니합니다. 그는 마음의 허공을 그대로 둘지언정 아무것으로나 채우지는 아니합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받아서는 아니 될 남의 호의를 정중하고 부드럽게 거절할 줄 압니다. 그는 과거의 인연을 소홀히 하지 아니합니다. 자기 생애의 일부분인 까닭입니다. 그는 예전 애인을 웃는 낯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몇몇 사람을 끔찍이 아낍니다. 그러나 아무도 섬기지는 아니합니다. 그는 남의 잘못을 이해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합니다. 그는 정직합니다. 정직은 인간에 있어서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는 자기의 힘이 닿지 않는 광막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울로 싶을 때 울 수 있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고갈하지 않는 윤기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유머가 있고, 재치있게 말을 받아넘기기도 하고 남의 약점을 찌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는 때는 매우 드뭅니다. 그는 한 시간 내내 말 한 마디 아니 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라도 그는 같이 있는 가람으로 하여금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다는 기쁨을 갖게 합니다. 성실한 가슨, 거기에다 한 남서의 머리를 눕히고 살 힘을 얻을 수 있고, 거기에서 평화롭게 죽을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가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신의 존재, 영혼의 존엄성, 진리의 미, 사랑과 기도, 이런 것들을 믿으려고 안타깝게 애쓰는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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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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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월동 준비를 하며 - 숙미에게
숙미야, 내가 보낸 꽃카드는 받아 보았겠지? 며칠 전 무척 오랜만의 통화에서 "언니, 춘천의 가을 하늘이 너무 고운데 꼭 한번 오세요. 예?"라는 그 상냥한 목소리의 초대를 받고 나는 11월이 가기 전에 엽서라도 한 장 보내고 싶었단다. 어린 시절 방학 때 내가 너의 집에 놀러 가면 너는 식물채집하는 나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도와 주곤 했었는데 어느새 여고생 딸까지 둔 몇 아이의 엄마가 되었음이 새삼 신기하다. 너에게 고모이기도 한 나의 어머니가 지난 주에 이곳 부산엘 다녀가셨는데 그분은 이번에도 당신의 고향인 강원도의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시더구나. 얼마 살진 못했지만 나의 출생지이기도 한 양구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해 주시던 어머니의 그 모습에선 아직도 깊고 맑은 강원도의 산골물 소리가 흐르는 것만 같았어.
오늘은 주일이라 모처럼 틈을 내어 배추밭, 파밭, 무밭을 한바퀴 둘러보았는데 배추, 파, 무잎들의 푸르고 싱싱한 웃음소리가 쏟아지는 것만 같았어. 한 달 전에 우리가 심어 놓은 마늘들도 한 뼘 가까이 싹을 틔우는 걸 보고 항상 열려 있는 밭의 생명성과 어머니다움을 새롭게 묵상했다. 정성껏 씨를 뿌리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키워서 열매로 내어 놓는 밭, 자주 잊혀지면서도 묵묵히 제 소임을 다하는 밭처럼 나도 충실하고 겸허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밭 둘레의 나무들을 돌아보았지. 소나무, 사철나무, 히말라야송, 회향목 등 오랜 지기처럼 정다운 수녀원의 상록수들은 한결같은 푸르름으로 내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곤 했단다. "아니, 이곳 상록수들은 어쩌면 이렇듯 반들반들하지요? 기름칠한 것처럼 윤이 나네요"라고 손님들이 감탄을 하면 나는 마치 내가 칭찬을 듣는 것처럼 반갑고 흐뭇한 마음이야. 밭과 나무들 주변에는 새들도 자주 모여들곤 하는데 특히 까치와 비둘기는 수녀원의 안뜰까지도 스스럼없이 찾아와 여유 있는 산책을 즐기곤 하지. 검은빛과 흰빛이 잘 조화된 까치와 흰빛, 회색빛 비둘기는 우리가 입은 옷 빛깔과도 흡사해서 더욱 한 식구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날아 오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기도는/ 새로움의 빛에 대한/ 새로운 고마움`이라는 구절을 떠올리게도 했던 새들을 보면 나도 새처럼 단순하고 고독한 자유인이 되고 싶다는 갈망을 더욱 새롭히게 된단다. 상록수 위에 떨어져 더욱 눈에 띄는 단풍잎들 중 몇 개를 집어 들고 방으로 오면서 성당 위의 종탑을 올려다보니 `종소리는 천국에 가장 가까운 음악`이라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하루 세 번 어김없이 삼종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우리 동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숙미야, 네가 직접 와본 일은 없지만 내가 사는 곳의 정경을 이제 조금은 그려 볼 수 있겠니?
머지않아 곧 12월이 올테고, 월동 준비로 몸도 마음도 바빠지는 요즘 우리는 벌써 성탄맞이 대청소를 시작했단다.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질하며 집 안을 깨끗이 하다 보면 마음까지도 깨끗해지는 느낌이야. 하긴 한 해의 정리 작업인 마음의 대청소도 잊지 말아야겠지. 다가오는 새해에도 너는 가정에서, 나는 수도원에서 각자의 마음과 삶을 더욱 열심히 갈고 닦는 `수녀`가 되어 기도 안에서 만나길 기도해 본다. 내가 만나 뵌 지 오래된 외삼촌, 외숙모에게도 문안드려 주길 바라면서 오늘은 이만 줄인다.
안녕.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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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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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일기글 쓰기 - 일기글 어떻게 쓸까 (4/4)
한 편을 더 들어 본다.
침묵 - 6월 18일 (주일)
차라리 침묵을 지키리라. 주님이 정죄하신 입술로 무엇을 말하랴. 무엇으로 민주를 외치랴. 무엇으로 나를 내세우랴. 참말로 이 입술이 죄다. 신현복의 모슨 것을 사랑할 수 있어도 이 입술만은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간디의 말씀을 곱씹기 시작했다.
소란을 소란으로 막으랴. 침묵으로 막으리라.
비폭력은 침묵에서 시작.
침묵의 유익함은 체험을 통해서만 안다.
간디는 비폭력 정신을 소중히 여겼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침묵을 사랑했다. 위대한 성인이 그 침묵을 사랑하듯 나도 이 침묵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 침묵의 아름다움을 인식시켜 나갔다. 실제로 침묵은 아름다웠다. 악을 용납하는 침묵으로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침묵이기 때문이다. 침묵은 곧 홀로 생각하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했다. 침묵은 비굴이 아니라 무던히 참아내는 인내였다. 침묵은 교만이 아니라겸손이었다. 침묵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나에게 이 침묵은 너무나 절절히 요구된다. 이 죄인은 이제 그만 교만과 미움을 버려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이 죄인에겐 홀로 생각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침묵은 비폭력보다 앞서 요구되는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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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첫머리에 시작한 짧은 글월들의 맺음을 -리라 고 해 놓은 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무슨 말을 잘못한 듯 입술이 죄라면서 간디의 말을 들어서 침묵을사랑한다고 했고, 그래서 침묵을 찬양하고 있는 말들이 매우 그럴듯하게 읽힌다. 주님이 정죄하신 입술 이 죄인은 이 죄인에게 따위 말들이 나오는 것은 기독교를 믿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겠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무슨 말을 잘못한 일이 있었던가 싶은데, 그렇다면 그런일의 경과를 먼저 적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거기서 우러난 생각을 남들이 참 그렇겠구나 하고 함께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이란 말을 함부로 할 것이 아니구나, 말을 안 하는 것이 이롭고 말이 없는 상태가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고 진심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일기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책으로 나왔다. 또 가령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쓰는 글이 아니고 자기만 보고 마는 글이라고 하더라도, 이와 같이 마음의 움직임만을 적기보다는 사실과 체험을 적어 두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하고 뒷날에 참고도 된다. 느낌과 생각이 삶에서 나온 것이니까 그 삶의 체험을 기록해 놓지 않고는 느낌과 생각이 살아날 수 없다. 또 삶의 체험을 적어 놓으면 느낌과 생각이 저절로 그 속에 나타나게도 되는 것이다. 이래서 이 침묵 이라는 글은 그만 책에서 읽은 간디의 말을 예찬하는 글처럼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침묵은 유익하다, 침묵은 아름답다는 말들은 아주 그럴듯하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이런 말들이 현실을 떠나 생각만으로 펼쳐지는 말이 될 때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침묵은 아름다웠다. 악을 용납하는 침묵으로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침묵이기 때문이다. 악이 우리 앞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마땅히 그 악을 바로 잡으려고 해야 할 것이고 악과 싸워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행동은 빛나고 아름다워진다. 그런데 그 악이 더럽다고 피하는 침묵이 아름답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악을 피해 침묵하는 것은 제 몸만 사리는 이기심에서 나온 몸가짐이요, 비겁한 것이다. 둘레의 형편에 따라서는 침묵을 반드시 비겁하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남부끄럽고 괴로워해야 할 일이 되었으면 되었지 아름다운 행위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까? 행동이 없고, 있어도 보잘 것이 없는 정도로 되어 있고 다만 책만 읽고 글만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으로 읽은 지식과 관념을 제것처럼 여겨서, 보잘 것 없는 제것과 마구 뒤섞어 놓기 때문이다. 이것은 글만 쓰는 문학인들이 흔히 빠지게 되는 말재주의 결과라고 할 것인데, 슬기로운 소년 현복이도 벌써 이런 길을 접어든 것이 아닌가 싶다. 끝으로 낱말 두어 가지를 지적한다. 의미하기도 이 말은 뜻하기도 라 쓰는 것이 좋겠다. 절절히 이 말은 간절히 나 절실히 로 써야 한다. 같은 한자말이면, 널리 써서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 이 밖에 간디의 말을 따와서 침묵의 유익함은 체험을 통해서만 안다 고 한 것은, 어느 책에 나온 것이겠지만 침묵이 유익함은 체험으로만 안다 고 하든지, 말없음이 이롭다는 것은 몸소 겪어야만 안다 고 써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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