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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1호 2022.10.9 (음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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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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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자녀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아이들을 낳아 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 ―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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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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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공동체
언어공동체란 뭔가? 쉽게 쓰지만 답하긴 어렵다. 사전엔 ‘같은 말을 쓰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 집단’이라고 눙치려 한다. 도대체 ‘같은 말(한국어)’이란 뭔가? 분명 강원도 말과 제주도 말이 다르고, 10대의 말과 80대의 말이 다르고, 아나운서의 말과 농부의 말이 다른데. 사람마다 쓰는 어휘도 다르고 말투도 다른데.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과 장소, 관계, 기분에 따라 쓰는 말이 다른데. 그런데도 우리는 ‘같은 말’을 쓰는 공동체인가?
그렇다면 이 말은 구체적인 언어사용보다는 추상적인 언어질서, 규범, 규칙 같은 걸 뜻하는 듯하다. 이 추상적인 언어질서는 당연히 ‘한국 정신’처럼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가장 잘 담는 그릇이다. 세대와 성별, 계급과 지역에 따라 작은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언어를 물려받았다. 하나의 언어는 거역하거나 피할 수 없다. 운명처럼 주어졌다.
이렇게 우리 모두 같은 말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가정’이거나 ‘상상’에 가깝다. 그러나 문제가 많긴 하지만, 언어공동체란 말이 아주 쓸모없지는 않다. 언어공동체를 ‘민족’이나 ‘국가’라는 거창한 차원으로 끌어올리면 올릴수록, 개인의 언어적 실천과 상호작용이 부수적이고 비본질적인 게 된다. 이를 뒤집어버리자. 이 말을 역동적이고 구성적이며 참여적인 의미로 재활용하자. 우리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공동체를 이룬다. 언어공동체는 주어지는 게 아니다. 의지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늘이 아닌 땅에, 우리 안에 있다.
피장파장
“자고 일어나면 이불을 개야지!” “아빠도 안 개더만.” “일찍 좀 자라!” “아빠도 새벽에 자더만.” 사춘기의 반항심은 ‘어른’의 모순을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아이가 성숙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은 완벽한 세계였던 부모가 실은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순덩어리임을 눈치챌 때다. 그 순간 무적의 논리 하나가 혀끝에 장착되는데, 바로 피장파장의 검이다! “당신도 마찬가지야.”
이 검을 제대로 휘두른 이는 예수다. 그는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 하지 않느냐는 율법주의자들의 다그침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되받아친다. 이 말에 움찔한 사람들은 돌을 내려놓고 흩어진다. 범법자들에게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게 하는 ‘기쁜 소식’(복음)이다. “당신들은 얼마나 깨끗한데?” “남들도 다 하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피장파장의 논법은 해당 사안의 진상, 성격, 심각성, 책임과 같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질문을 가로막는다. 법정에서는 전혀 안 통하는 변론법이지만, 정치 토론에서는 밥 먹듯이 등장한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쉽게 써먹을 수 있고 효과도 쏠쏠하기 때문이다. 행주와 걸레를 한 세숫대야에 넣어 삶아버리니 보는 사람 마음속에 좌절, 냉소, 낭패의 감정이 들 수밖에. 이번 선거도 이미 피장파장의 논리가 난무한다.
피장파장의 게거품을 걸러내기만 해도, 우리 머릿속은 이성과 합리로 가득할 것이다. 현란한 혀놀림 속에서도 정신을 단단히 차리면서 질문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주문을 외치자. “그건 그거, 이건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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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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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웃음 - 김수영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우리나라가 宗敎國이라는 것에 대한 自信을 갖는다
절망은 나의 목뼈는 못 자른다 겨우 손마디뼈를
새벽이면 하아프처럼 분질러놓고 간다
나의 아들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머리가 나쁜 것은 선생, 어머니, I.Q다
그저께 나는 빠스깔이 「머리가 나쁜 것은 나」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우리나라가 宗敎國이라는 것에 대한 自信을 갖는다
마당에 서리가 내린 것은 나에게 상상을 그치라는 신호다
그 대신 새벽의 꿈은 具體的이고 선명하다
꿈은 想像이 아니지만 꿈을 그리는 것은 想像이다
술이 想像은 아니지만 술에 취하는 것이 想像인 것처럼
오늘부터는 想像이 나를 想像한다
이제는 선생이 무섭지 않다
모두가 거꾸로다
선생과 나는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宗敎와 非宗敎, 詩와 非詩의 차이가 아이들과 아이의 차이이다
그러니까 宗敎도 宗敎 이전에 있다 우리나라가
宗敎國인 것처럼
새의 울음소리가 그 이전의 정적(靜寂)이 없이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모두가 거꾸로다
― 태연할 수밖에 없다 웃지 않을 수밖에 없다
조용히 우리들의 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다
<196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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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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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일미구(曠日彌久)
曠:빌/멀 광. 日:날 일. 彌:많을 미. 久:오랠 구.
[출전]《戰國策》〈趙策〉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낸다는 뜻.
전국 시대 말엽,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의 일이다. 연(燕)나라의 공격을 받은 혜문왕은 제(齊)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3개 성읍(城邑)을 할양한다는 조건으로 명장 전단(田單)의 파견을 요청했다. 전단은 일찍이 연나라의 침략군을 화우지계(火牛之計)로 격파한 명장인데 조나라의 요청에 따라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자 조나라의 명장 조사(趙奢)는 재상 평원군(平原君)에게 항의하고 나섰다.
“아니, 조나라엔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제게 맡겨 주신다면 당장 적을 격파해 보이겠습니다.”
평원군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나라와 연나라는 원수간이긴 합니다만 전단은 타국인 조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강대한 조나라는 제나라의 패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단은 조나라 군사를 장악한 채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낼 것입니다[曠日彌久].’ 두 나라가 병력을 소모하여 피폐해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평원군은 조사의 의견을 묵살한 채 미리 정한 방침대로 전단에게 조나라 군사를 맡겨 연나라 침공군과 대적케 했다. 결과는 조사가 예언한 대로 두 나라는 장기전에서 병력만 소모하고 말았다.
[주] 화우지계 : 쇠뿔에 칼을 잡아매고 꼬리에 기름 바른 갈대 다발을 매단 다음 그 소떼를 적진으로 내모는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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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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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일단 요청하고 기다려라 - 마르시아 마틴
나는 예전에 한 번 비행기를 놓쳤다. 당시 내 표는 환불되지 않는 할인표였고, 더 이상 같은 항공사의 비행 편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에 나는 350명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캐나다의 한 도시로 가야만 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 보였다. 나는 '환불 및 교환 불가' 항공권을 가지고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를 탑승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될 것이다' 라는 믿음의 기반에 나 자신을 밀어 넣었다. 나는 실패를 예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타인과 내 마음과 경험을 공유해야 했다. 나는 다른 이에게 그들이 할 일을 요구하고 지시하는 대신, 일의 처리와 방법을 일임해야 한다고 추측했다. 그러므로 내가 취해야 할 필요가 있는 태도는 다음과 같았다. 원하는 바가 꼭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의 기반을 다지고, 내 마음을 남과 진지한 방법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항공사의 카운터로 가서 내 사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내가 해야 했었던 일이 아니라 단순한 사실을 말했다. 나는 비행기를 놓쳤다. 이것은 내 비행기 표이다, 나는 비행기 표를 환불받아야 한다 등등.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질문했다.
"내가 귀사의 비행기를 타려면 어떻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나는 침묵을 지켰다. 다음에 이어질 일은 그녀가 나의 비행 탑승을 허락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수많은 추정의 가능성이 존재했고, 내가 그녀에게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마음껏 생각하고 해결 방법을 찾도록 했다. 나는 방해를 하거나, 그녀에게 일 처리 방법을 지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었을 뿐이다. 그녀가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손님께서 이 항공권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당연히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진심으로 손님을 돕고 싶습니다. 하지만 손님께서 이 항공권을 가지고 우리 비행기에 탑승하실 수 없습니다. 물론 그 비행기에 좌석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만, 손님께서는 6백 달러를 더 내셔야 합니다."
그리고 침묵이 흘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화를 내지도, 분개하지도 않은 채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아주 냉정하고, 차분하고, 사려깊었다. 사실, 나는 그녀가 제시한 방법이 적당한 해결책이라고 인정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더 광활한 가능성의 바다를 헤맨 끝에 그녀가 말했다.
"아, 이제 막 생각이 떠올랐어요. 혹시 이런, 저런 방법이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5분에서 10분이 흘렀을까. 그녀는 완전히 흥분하고 열광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추가 요금을 받지 않고 손님을 저 비행기에 태워서 목적지까지 정시에 도착하게 해 드릴 방법을 찾았어요. 우리는 손님의 이 항공권을 활용할 겁니다."
그녀는 나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만일 내가 펄펄 뛰면서 그녀에게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 지시하거나 불평했다면, 나는 캐나다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다 괜찮다는 태도로 가만히 서서 내가 원하는 일이 정말 일어날 수 있도록 했다.
권위를 버리고 요청하라 - '화자 근원서'에서
크리스티안 헤르터는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재직중에 재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날 바쁘게 뛰어다니며 선거활동을 한 끝에 그는 점심도 거른 채 교회의 바베큐에 도착했다. 때는 늦은 오후였고, 그는 배가 등에 달라붙을 정도였다. 헤르터는 자기 차례가 되자, 닭고기를 나눠주는 여성에게 식판을 내밀었다. 그녀는 닭고기를 딱 한 점만 그의 식판에 배급하고 다음 사람을 재촉했다.
"실례합니다만," 헤르너 주지사가 말했다. "닭고기를 한 점만 더 주시겠습니까?"
"미안하구려, 닭고기는 한 사람당 하나씩이에요."
헤르터 주지사는 겸손하고 점잖은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권위를 약간 내세우기로 결심했다.
"내가 누군지 아십니까? 나는 이 주의 주지사입니다."
"내가 누군지 아우? 나는 닭고기 책임자야. 빨리 움직여요, 선생."
거절에 대비하라 - 거절이 축복이 될 수도 있다 / 작자 미상
오래 전, 스코틀랜드의 클라크 일가는 꿈을 가졌다. 클라크 부부는 9명의 자식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하는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다. 여러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이주비가 마련되었다. 그들은 여권을 만들고 새로운 대서양 여객선을 예약했다. 온 가족은 새로운 모험에 대한 기대와 흥분으로 들떴다. 하지만 출발을 며칠 앞두고 막내아들이 개에게 물렸다. 의사는 막내아들의 다리를 꿰매고, 클라크의 집에 노란색 깃발을 달았다. 광견병의 가능성 때문에 온 가족이 14일 동안 외출을 금지 당했다. 가족의 꿈이 산산조각 났다. 그들은 계획했던 대로 미국으로 떠날 수 없었다. 클라크 씨는 실망과 분노에 차서 항구로 달려가 여객선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닷새 후, 비극적인 소식이 스코틀랜드와 전 세계에 퍼졌다. 타이타닉 호가 침몰했다는 소식이었다. 절대로 침몰할 것 같지 않았던 배가 수 백명과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클라크 가족은 그 때에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막내아들이 개에게 물렸기 때문에 뒤에 남았다. 그 소식을 들은 클라크 씨는 아들을 얼싸안고, 가족의 목숨을 구하고 비극이라 믿었던 것을 축복으로 바꿔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거절을 우아하게 받아들여라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 물결이 바뀌는 때와 장소가 반드시 있다. - 해리에트
모델과 배우들은 매일 여러 차례 면접을 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거절로 끝난다. 우리는 모델들에게 '이게 무슨 헛탕이람'하고 펄펄 뛰는 대신, 면접관에게 감사하다는 카드를 보내라고 부추겼다. 우리는 모델들에게 면접 기회와 시간을 내준 점에 대해 감사하도록 가르쳤다. 그러면, 각각의 면접은 모델과 배우들에게 업계의 새로운 잠재적인 친구를 만들어주고 다음에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의 남자 톱 모델 데이빗 슈니처는 일을 얻지 못한다 해도 감사 카드뿐 아니라 꽃까지 보냈다. 그 결과, 그는 고객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았고 항상 면접 예정자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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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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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5. 팔로 대군의 기치를 드높이며
제환공, 관중의 진언을 어기다
제환공이 물었다.
"모든 제후를 크게 합치면 초나라도 반드시 그만한 준비를 할 것이오. 그러고도 우리가 이길 수 있겠소?"
관중이 결연히 대답했다.
"지난날 채(蔡)나라가 주공께 죄를 진 일이 있어서 주공께서 그들을 치려고 하신 지도 이미 오래 됐습니다. 그런데 초나라와 채나라는 서로 국토가 접해 있습니다. 그러니 겉으론 채나라를 토벌한다고 명분을 내세우고 실은 초나라를 쳐야 합니다. 이것을 병법에선 아무도 생각 못한 곳을 친다는 것입니다."
그럼 지난날에 채나라가 제나라에게 죄를 졌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날에 채목공(蔡穆公)은 그 여동생 채희를 제환공에게 시집보냈다. 그 채희가 제환공의 세 번째 부인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제환공은 채희와 함께 배를 타고, 연꽃을 따며 즐기었다. 채희는 제환공에게 연못 물을 손으로 튀기었다. 제환공은 당황해 하면서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다. 채희는 제환공이 물을 두려워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배를 요동시켜 물이 제환공의 옷에까지 튀게 했다. 채희는 남방 출신이라 물에 익숙했던 것이다. 제환공은 주의를 주고 여러 번 말렸다. 그런데도 채희가 듣지 않자 마침내 대로했다.
"너는 참으로 버르장머리없는 계집이다. 능히 임금을 섬길 줄 모르는구나!"
제환공은 그날로 수작에게 분부하여 채희를 친정인 채나라로 돌려보냈다. 출가한 여동생이 쫓겨온 걸 보고서 채목공도 크게 노했다.
"여자를 친정으로 돌려보낸 것은 서로의 관계를 아예 끊자는 것이로구나."
그 후, 채목공은 그 여동생 채희를 초나라로 개가시켰다. 이리하여 채희는 다시 초성왕의 첩이 됐다. 이 소문을 듣고서 제환공은 채목공을 몹시 괘씸하게 여겼다. 관중이 채후가 주공에게 지은 죄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일을 들춰 말한 것이었다. 제환공이 물었다.
"요즘 강(江), 황(黃) 두 나라 주인이 초나라 횡포에 견딜 수 없다면서 과인에게 와서 충성을 보이는 터이니 과인은 그들과 동맹을 맺을까 하고 있소. 그러니까 초나라를 칠 때 그들이 우리에게 호응하면 일이 쉽게 풀리지 않을까 생각하오."
관중이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강, 황 두 나라는 우리 제나라에선 멀고 초나라에선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초나라에 복종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나라들입니다. 그들이 초나라를 배반하고 우리 제나라에 순종한다면 초나라는 반드시 강, 황 두 나라를 칠 것이오니, 그 때 구원을 청해 온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들을 구원하자니 거리가 너무 멀고, 내버려두자니 동맹까지 맺은 처지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니 의리만 잃게 됩니다. 결국 우리만 힘들거나 신의를 잃는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초나라를 치는 데는 여기 있는 중원의 제후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데 멀리 떨어진 소국(小國)에까지 힘을 빌릴 필요는 없습니다."
"머나먼 나라에서 과인의 의리를 사모하고 왔는데 거절을 한다면 장차 천하 인심을 잃을 것이오."
관중이 다시 충고했다.
"주공께선 제가 이 일을 방해하는 줄 아시지만, 강, 황 두 나라도 위급한 날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환공은 어찌된 일인지 관중의 충고를 듣지 않고 강, 황 두 나라 주장과 동맹을 맺고 명년 봄 정월에 함께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치기로 약속했다. 강, 황 두 나라의 주장이 아뢰었다.
"서(舒)나라가 초나라를 도와 갖은 못된 짓을 다하니 서나라를 쳐야 할 것입니다. 천하 사람들이 못된 것을 말할 땐 초서(楚舒)라고까지 합니다."
제환공이 대답했다.
"과인이 마땅히 서나라를 쳐서 초나라 우익부터 잘라 버리겠다!"
제환공은 마침내 서(徐)나라로 서신을 보내 서(舒)나라를 칠 것을 명했다. 제환공의 두 번째 부인 서희(徐姬)는 서자(徐子)의 딸로서 제환공과 혼인한 후로 친밀한 사이가 돼, 서(徐)나라는 늘 제나라의 호의에 의존해 왔다. 이러한 인척 관계가 있고 또 서(徐)나라와 서(舒)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제환공은 서(舒)나라를 칠 것을 그에게 명했던 것이다. 제환공의 서신을 받은 서자는 즉시 군사를 몰아 서(舒)나라를 단숨에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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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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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최재서편"
최재서(1903!1964)
영문 학자, 문학 평론가. 황해도 해주 출생. 경성 제대 영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런던 대학 수료. 문학 박사. 연세대 대학 원장 역임. 한국 비평 문학에 개척자 가운데 하나인 최재서는 비평의 아카데미화를 이룩해 내었다. 그는 일제 시대의 우리 문학의 성격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해 내었고 논리적인 면에서 주도해 나갔다. 일제 말기에 친일파로 지적되었다가 해방 후에는 영문학에 파묻혀 지냈다.
문학과 인생
인생 오십 고개에 올라서, 그 사이 한 일이 많은 것 같지만, 돌아다보면 실오라기만한 외길이 보일 둥 말 둥, 줄거리 잡아 이렇다 할 아무 일도 없다. 나는 인생의 허무와 무가치를 느낀다. 나는 좀더 충실하고, 좀더 가치 있는 생을 체험하고 싶다. 그럴 때에 나는 베토벤의 교향악을 듣고, 혹은 밀턴의 시를 읽고, 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는다. 이 글을 읽어 줄 독자는 대개 20 전의 청년임을 나는 알고 있다. 여러분은 아직 인생의 회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앞을 내다보며 기쁨과 슬픔을 다같이 희망의 품안에 포옹하면서 전진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앞으로 간혹 문학 작품을 읽어, 인생에 대해서 그 무엇을 반성하게 될 때에, 이 글이 약간의 도움이 될까 해서 붓을 든다.
옛날부터 '시는 자연의 모방'이라 일컬어 왔고, 또 '연극은 인생을 거울에 비추어 보이는 일'이라고 말해 왔다. 비교적 현대에 발달한 소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이 자주 되풀이된다. 그만큼, 모든 문학 작품이 자연과 인생을 모방하고 반영하여, 현실의 이모저모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은 문학의 일면이고 전면은 아니다. 어느 작품을 보아도, 거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대로 나타나 있지는 않다. 마치 사진기가 풍경이나 인물을 촬영하듯이, 문학이 현실을 그대로 모사하지는 않는다. 문학의 목적은 좀더 별다른 데 있다. 그것은 자연과 인생에서 소재를 선택하다가 그들의 모양을 다소 수정하고 혹은 다시 결합해서 한 예술품을 만들어 내는 일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문학 작품은, 현실적이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작품 세계는 현실 세계와 따로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인생을 떠나서 예술이 독립할 수는 없다. 예술가는 그의 소재들을 인생 체험 속에서 구해 올 뿐만 아니라, 만약 그가 진정한 천재라면 그 소재들을 결합하고 조직하는 독특한 방법과 원리까지도 자연에서 배워 온다. 그러니까, 예술 세계는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해서만 성관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병립의 관계다. 현실 세계가 있고, 그 곁에 혹은 그 위에 예술 세계가 있다. 예술은 현실을 모방하고 반영하면서도, 독자것인 원리 밑에서 자체의 세계를 창조하여 독특한 목적을 수행한다.
문학이 현실을 반영하는 한도에서는 기록이지만, 새 세계를 창조하는 한도에서는 예술이다. 어떤 문학 작품이나 기록면과 예술면을 가진다. 이 두면 중에서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기록과 예술의 두 면을 구비함으로써만 작품은 완전하다. 예술적인 면은 다음 기회에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기록적인 면만을 말하려 한다. 문학을 현실의 기록으로서 볼 때에, 작품의 가치는 그 작품을 쓴 사람 자신이 얼마나 성실하게 인생을 체험했으며, 또 그 체험을 얼마나 진실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했는가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이 성실하게 인생을 실천해 보지 못한 사람의 글이, 아무리 아름다운 문구를 늘어놓는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은 뻔한 이치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일평생 성실하게 진리를 실천해 나가는 사람은 퍽 드물다. 진실한 생활 체험을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더욱 희귀하다. 우리는 밀턴에게서 그런 희귀한 실례를 본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밀턴은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서 좋은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에 이해가 깊었기 때문에, 어린 밀턴은 줄곧 음악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냈다. 이것은 그가 장래에 시인이 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시와 음악을 결합하는 일이 그의 소년 시대의 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문학적 소질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정 교사의 지도로 특별히 교육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 열두 살 이후로 그는 자정 전에 자 본 일이 별로 없었다. 아직 조명이 불완전하던 그 시대에 어린 사람이 그렇게까지 밤늦도록 공부했다는 것은 건강에 좋았을 리가 없다. 그것은 그가 만년에 실명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근면의 덕택으로,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문학을 비롯하여 철학, 천문학, 물리학 등의 학문에 상당히 깊게 들어가 있었다. 밀턴의 대학 시대는 순결한 생활로 일관되어 있었다. 그는 그가 믿는 퓨리터니즘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그의 생활 감정이 여러 편의 시 속에 남아 있다. 대학에 들어갈 때에 밀턴은 목사가 될 예정이었지만, 대학 재학 중에 문학으로 전향했다. 그 당시 교회들의 타락을 분개했다는 것도 목사 지망을 단념한 이유의 하나였다. 대학을 나온 뒤에, 그의 앞에 유망한 길이 열려 있었지만, 그는 시골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서, 독서와 시 창작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의 장래를 염려하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문학에 대해서 얼마나 투철한 신념과 열렬한 정신을 품고 있었던가를 알 수 있다. 스물 아홉 살 되던 해에, 밀턴은 더욱 견문을 넓히고자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그는 그 곳에서 여러 문인, 학자 둘과 상종했고, 또 직접 이탈리아 말로 시를 발표하여 그들을 놀라게 했다. 그가, 갇히어 살던 과학자 갈릴레이와 만난 것도 이 때였다. 이 여행 중에 특별히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그가 영국을 대표할 만한 장편 서사시를 쓰고자 결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탓소의 서사시 (예루살렘의 해방)과 경쟁해 볼 생각이었다. 전기의 서사시는 16세기 말이 발표되어 근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시로서 온 유럽에 이름이 높았었다. 밀턴도 그런 영국적인 시를 써 보고 실었다. 그래서 주제를 영국 역사에 유명한 아더 왕의 전설에서 구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시칠리아 섬으로 떠나려 할 때, 본국에 내란이 일어났다는 소식 있어, 그는 곧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왕실과 의회 사이에 계속해 오던 알력이 마침내 정면 충돌을 일으켰다. 그 때의 심정을 밀턴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동포가 자유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데, 이렇게 쾌락을 위해서 외국에 여행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언제나 양심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밀턴의 면목이 여기에 여실히 나타나 있다. 본국에 돌아온 뒤에, 밀턴은 형세를 살피면서 여전히 문학에 정진하고 있었다. 그 때에 그의 머리를 점령했던 문제는 여전히 장편시의 창작이었다. 그 때의 그의 포부는 다음 말들에서 엿볼 수 있다.
'고심 노력하고 열심히 연구하는 일은 나의 팔자라 생각하는데, 그 위에 또 강한 천품이 결합된다면, 후세 사람들을 위해서, 만만히 죽어 없어지지 않을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리하여 그는 열심히 작품의 재료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때의 계획들을 적은 원고가 99편 보존되어 있는데, 그 중에 성경에 관한 것이 66편, 영국 역사에 관한 것이 33편이다. 마지막에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선택되면서 실락원이라는 제목이 결정된 것은 1642년이었다. 바로 이 때에, 교회를 장로제로 고쳐 종교와 정치를 철저히 민주화하려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어 국내가 물끊듯 했다. 밀턴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팸플릿을 써 가지고 서재에서 나왔다. 그 후 20년 동안, 그 내란에 직접 참가해서 투쟁했다. 여러 해 연구해 오던 그의 장편서는 어찌 되었던가? 물론 포기되었다. 그렇게 알뜰한 그의 시였지만, 민족의 자유를 위해서는 서슴지 않고 붓을 꺾는 밀턴이었다. 내란 중에 그는 크롬웰 호민관 밑에서 라틴 말 비서로 있으면서, 국왕 찰스 1세를 단두대로 보내라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하여 온 유럽을 진동시켰다. 그는 그의 온갖 지력과 정력을 바쳐 자유 진영을 위하여 싸웠다. 그러므로, 문학에서는 멀어졌었다.
그러나 영국의 왕실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만들려고 일으킨 내란은 밀턴과 그의 동지자들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1660년에, 파리에 망명했던 찰스 2세가 다시 영국 왕으로 영접되어, 영국은 왕정으로 복고했다. 혁명 투사들은 모두 붙잡혀서 처단되었고 밀턴도 투옥되었으나 목숨만은 보존되었다. 그의 문학적 재질을 아깝게 생각하는 국왕이 특별히 그를 사해 준 것이다. 이 때에 밀턴의 나이 50, 그는 이상과 더불어 지위와 권세를 잃고, 사면의 적들 속에서 고독과 빈궁에 빠졌다. 그의 가정 생활도 특별히 불행했다. 첫번 결혼에 실패했고, 둘째 번 부인은 사망했고, 그 자신은 완전히 사력을 잃어 맹인이 되었다. 실락원에서 밀턴은 암담한 그 자신을,
'고약한 시대 험한 구설을 만나,
암흑과 위험과 고독에 둘러싸여'
라고 읊고 있다. "실락원"은 이런 환경 속에서 시작되었다. 이 눈먼 늙은 시인이 한 구절 한 구절 구술하는 것을 그의 어린 딸이 받아 쓰면, 그 것을 낭독시키어 틀린 데를 고치고, 이리하여 12권 장편시를 읊어 나가는 장면은 참담하고도 엄숙하였다. 무엇이 맹목의 시인을 몰아서 시를 읊게 했던가? 그것은 그가 젊었을 제 약속했던, 만만히 죽어 없어지지 않을 만한 불후의 작품을 후세에 남기겠다는 불붙는 열정이었다. 밀턴은 이 작품 속에다 그의 지식과 학문과 사상과 신념뿐만 아니라, 그의 감정, 특히 왕정 복고 이후에 그가 겪은 가지가지의 쓰라린 감정-실망과 분만, 권세에 대한 반항과, 아첨에 대한 멸시, 하느님의 사명을 다 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희한--요컨대, 그의 인생 전체를 털어 넣었다. 뿐만 아니라, 밀턴은 이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 일생을 살고 싸우고 고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실락원은 그가 예언했던 대로 불후의 작품이 되었다. 밀턴은 양서를 정의하여 '생명을 넘어 생명으로 길이 전하고자, 대가의 생명 고혈을 향약으로 처리하여 보존한 것'이라 말했는데, 이 말은 그대로 그 자신의 책의 성질을 설명한다.
지식을 전하는 책은 지식이 발달함에 따라서 잊혀지지만, 진실한 사상과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문학은, 그 생명이 영구하다. 다만, 그런 사상과 감정은 밀턴의 경우에서처럼 성실하고도 열렬한 인생 체험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다. 러스킨은 그러한 진리를 다음과 같이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책을 쓰는 사람은 '이것을 진실하고도 유익하다.' 또는 '유익하고도 아름답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말해야 할 그 무엇을 가진다. 그가 알기로는, 과거에 아무도 그것을 말한 사람이 없었고 앞으로도 말할 사람이 없다. 그는 그것을 분명하고도 음악적으로, 적어도 분명하게 말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인생을 총결산하는 마당에서,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명백한 사실이라 함을 그는 자각한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이 세상에 생을 받아 태양의 혜택을 입음으로 인연해서, 천재일우로 알게 된 참다운 지식이며, 참다운 의견이었다 함을 자각한다. 그는 그것을 영원히 기록하고 싶다. 될 수만 있으면 바위에 새겨 두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서-'이것이 나의 최선이다. 그 나머지는 나도 남들처럼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미워했다. 나의 인생은 수증기처럼 사라지고, 이제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나의 눈으로 보았고, 나의 마음으로 알았다. 나에게서 그 무엇이 가치 있다면, 이 책이야말로 당신들이 기억해 줄만한 가치 있는 나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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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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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비오는 날의 편지
- 법정 스님께
스님,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립니다. 창 밖으로는 새소리가 들리고 온통 초록빛인 젖은 나무들 사이로 환히 웃고 있는 붉은 석류꽃의 아름다움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비오는 날은 가벼운 옷을 입고 소설을 읽고 싶으시다던 스님. 시는 꼿곳이 앉아 읽지 말고 누워서 먼산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소리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하시던 스님. 오늘 같은 날은 저도 일손을 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시를 읊으며 `게으름의 찬양`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가 `솔숲 흰구름방`이란 이름을 붙인 이 자그만 방엔 아직 마늘 냄새가 가득합니다. 어제 아침 저희 식구 모두 밭에 나가 마늘을 거둬들이고 저녁엔 물에 불린 마늘은 열심히 벗겨 내는 작업을 계속했더니 옷에 배인 냄새가 쉽게 가시지를 d않습니다.
가끔 삶이 지루하거나 무기력해지면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흙냄새를 맡아 보라고 스님은 자주 말씀하셨지요. 최근에 펴낸 스님의 명상 에세이집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를 보내 주셔서 기뻤고,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대해서도 축하드립니다. 스님께서는 요즘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요? 저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부제가 붙은 안도현 시인의 <연어>와 니시오카 스네가쓰의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 그리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비둘기>를 읽었답니다. 며칠 전엔 스님의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 오래 묵혀 둔 스님의 편지들을 다시 읽어 보니 하나같이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닮은 스님의 수필처럼 향기로운 빛과 여운을 남기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김광균 시인 댁을 방문했을 때 스님께서 붓글씨로 써 보내신 편지 한 통을 곱게 표구해서 서재에 걸어둔 것을 매우 반갑고 인상 깊게 바라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스님의 글씨를 꼭 지니고 싶어하는 가가운 친지들에게 스님의 허락 없이 저도 편지 몇 통을 나누어 주긴 했지만, 항상 나무, 꽃, 새, 바람 이야기가 가득하고 영혼의 양식이 되는 책, 음악, 차 그리고 맑고 잔잔한 일상의 이야기가 담겨진 스님의 편지들이 새삼 소중하게 여겨지는군요. 언젠가 제가 감당하기 힘든 일로 괴로워할 때 회색 줄무늬의 정갈한 한지에 정성것 써보내 주신 글은 불교의 스님이면서도 어찌나 가톨릭적인 용어로 씌어 있는지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년 전 저와 함께 가르멜수녀원에 가서 강의를 하셨을 때도 `눈감고 들으면 그대로 가톨릭 수사님의 말씀`이라고 그곳 수녀들이 표현했던 일도 떠오릅니다.
`...수녀님, 광안리 바닷가의 그 모래톱이 내 기억의 바다에 조촐히 자리잡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들로 속상해하던 수녀님의 그늘진 속뜰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더구나 수도자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보다 높은 뜻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힘든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주님은 항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기도드리시기 바랍니다.
신의 조영 안에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 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갑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수녀님, 예수님이 당한 수난에 비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알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누리실 줄 믿습니다. 이번 길에 수녀원에서 하루 쉬면서 아침미사에 참레할 수 있었던 일을 무엇보다 뜻 깊게 생각합니다. 그 동네의 질서와 고요가 내 속뜰에까지 울려 왔습니다.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에는 해질녘에 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꽃입니다. 갓 피어난 꽃 앞에 서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심기일전하여 날이면 날마다 새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곳 광안리 자매들의 청안을 빕니다...`
왠지 제 자신에 대한 실망이 깊어져서 우울해 있는 요즘의 제게 스님의 이 글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잔잔한 깨우침과 기쁨을 줍니다. 어느 해 여름, 노란 달맞이꽃이 바람 속에 솨아솨아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모습을 스님과 함께 지켜보던 불일암의 그 고요한 뜰을 그리워하며 무척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이젠 주소도 모르는 강원도 산골짜기로 들어가신 데다가 난해한 흘림체인 제 글씨를 늘처럼 못마땅해 하시고 나무라실까 지레 걱정도 되어서 아예 접어 두고 지냈지요. 1977년 여름에 `구름 수녀에게`라고 적어서 보내 주신 아름다운 구름사진 소책자 <구름의 표정>은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구름들이 특이한 모양을 보일 때면 그 이름을 알기 위해 이 책을 뒤적이곤 한답니다.
스님, 언젠가 또 광안리에 오시어 이곳 여러 자매들과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 대조`도 하시고, 스님께 펼치시는 `맑고 향기롭게`의 청정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이곳은 바다가 가까우니 스님께서 좋아하시는 물미역도 많이 드릴테니까요. 항상 산에서 산처럼 살고 싶어하시는 스님께 제가 오늘 읽은 이창건 시인의 `산`이란 동시 한 편을 읊어 드리며 이 글을 맺습니다.
산은
높이만큼
뿌리도 깊다
세상을 겉으로 보기보다는
안으로 본다
그래서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나무들이 잎을 더디 피우거나
풀벌레들이 눈을 늦게 떠도
조바심하지 않는다
안개가 어둠처럼 몸을 감싸도
눈보라가 파도처럼 몸을 때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산은
하늘이 내리시는 일로
세상이 어려움을 당하면
남보다 제일 먼저 걱정하고
세상이 즐거워하면
남보다 제일 늦게 즐거움을 맞는다.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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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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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서사문 쓰기 2 - 가치 있는 글은 어디서 오는가 (2/2)
친구 이야기를 쓴 글
다음은 취업을 앞둔 여고 졸업반 학생이 먼저 일자리를 잡아 나간 친구를 찾아갔던 이야기를 쓴 글이다. 이 글을 읽고 다음 네 가지 물음에 대답할 준비를 해 보자.
첫째, 일고 난 느낌이 어떤가?
둘째, 표현이 잘 되었다고 생각되는 대문이 있으면 말해 보자.
셋째, 이 글에서 흔히 우리가 쓰는 글과 다른 점이 있다고 보는가? 있다면 어떤 점인가?
넷째, 이 글에서 다듬어야 할 말이 있으면 말해 보라.
친구를 찾아서 - 홍성실
친구가 취업을 나갔다. 안성주유소 판매직으로, 갈 때는 물론 기대감으로 잔뜩 들뜬 마음이었겠지. 하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지금, 자주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하곤 한다. 힘들다는 거다. 사람들도 보고 싶고, 사실 이런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지만 겁이 난다. 난 과연 적응할 수 있을는지, 그리고 적응하는 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자신이 없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보다 잘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까지 있었는데. 오늘은 얼굴이라고 한번보고 오려고 찾아갔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더 반가운 거라 하기에 연락하지 않고. 일요일이라서 휴게소 안은 몹시 붐볐다. 국수나 커피를 사가지고 가다가 부딪혀 다 쏟게 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나도 그 사람들 사이로 헤집고 들어가 국수 판매하는 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글세, 너무 바빠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땀까지 흘려가며 국수에 국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부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길게 늘어선 줄 뒤로 가서 섰다. 한 사람, 두 사람 줄더니이제는 내 차례다. 친구는 받은 돈을 정리하느라 머리를 숙인 채 무얼 드릴까요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능청스레 여기 국수 맛있어요? 라고 되묻고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목소리를 알아듣고 쳐다볼까 봐서.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를 듣더니 성실아 하고 부르는 거다. 옆모습이라 알아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내 얼굴엔 도장이 찍혀 있단다. 주근깨 말이다. 역시 펄쩍펄쩍 뛰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지만 자꾸 몰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몇 마디밖에 나눌 수가 없었다. 더 기다려도 시간이 날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간다고 말하고는 뒤돌아서는데,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잘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데, 괜스레 마음만 흩트려 놓은 것 같아서. 걱정도 되고. 그러나 이젠 믿기로 했다. 잘 이겨 나갈 거라고.
(안성여고 생활글쓰기 반 우리끼리 얘긴데요 제3집 93.12)
앞에서 말한 네 가지 물음에 대답해 본다. 첫째, 이 글에는 친구를 생각하는 글쓴이의 따스한 마음이 배어 있다. 졸업도 하기 전에 일자리를 구해 나간 친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걸어오는 전화를 자주 받고(첫째 문단), 자기가 가야 할 일자리 걱정도 하면서(둘째 문단),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어느 날 그 친구를 찾아가 만나고 온 일(셋째 문단)을 썼는데, 그렇게 만나러 가서 본 친구의 모습과 행동, 그리고 자기가 한 일들이며 생각을 쓴 말들에 정이 넘쳐 있는 좋은 글이다. 남들은 어떤 느낌이 드는지 모르지만 내가 읽은 느낌은 그렇다. 두 번째 물음인 표현이 잘 된 대문은 본 것과 한 것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쓴 대문과 생각을 잘 잡아서 쓴 대문, 그리고 어떤 형편을 요령있게 잘 말해 놓은 대문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문단에서는 친구의 형편을 아주 짧은 글로 요령있게 썼다. 띄어 쓴 자리를 넣어서 모두 55자밖에 안 되는 이 문단에 글월이 6개나 들어 있으니, 평균해서 한 글월의 길이가 9자밖에 안되는 셈이다. 글이 얼마나 간결하게 씌어져 있는가, 그래서 얼마나 읽기 좋은 글이 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 다음 문단에서는 친구의 소식을 듣고 곧 닥쳐올 자기의 앞날을 걱정하여 불안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을 짧은 말로 잘 적어 놓았다. 셋째 문단이 이 글의 중심인데, 여기서는 휴게소가 붐비는 모양을 국수나 커피를 사 가지고 가다가... 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이렇게 설명하는 말로 쓰지 말고 바로 어떤 일을 본 그대로 잡아서 가령 한 아주머니는 국수를 사 들고 가다가 옆 사람에 부딪혀 국수물을 쏟았다 이렇게 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 다음에 친구를 본 것을 그런데 글세, 너무 바빠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땀까지 흘려가며 국수에 국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고 썼다. 친구가 땀을 흘리면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모습을 잘 잡아서 썼다. 이렇게 해서 친구를 보고는 글쓴이가 어떻게 했고, 어떻게 두 사람이 만나 어떤 말을 주고 받았는가 하는 것이 이 글의 중심이자 막바지로 그 다음에 잘 씌어 있다. 좀 길지만 다시 들어보자.
...부를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길게 늘어선 줄 뒤로 가서 섰다. 한 사람, 두 사람 줄더니 이제는 내 차례다. 친구는 받은 돈을 정리하느라 머리를 숙인 채 무얼 드릴까요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능청스레 여기 국수 맛있어요? 라고 되묻고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목소리를 알아듣고 쳐다볼까봐서.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를 듣더니 성실아 하고 부르는 거다. 옆모습이라 알아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내 얼굴엔 도장이 찍혀 있단다. 주근깨 말이다. 역시 펄쩍펄쩍 뛰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지만 자꾸 몰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몇 마디밖에 나눌 수가 없었다.
이것은 마치 연극의 한 판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꾸며낸 연극이 아니고 삶의 한 순간이다. 몸으로 겪은 것을 그대로 잘 생각해 내어서 쓰면 꾸며낸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을 준다. 생각하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저마다 가지각색으로 다른 연극을 연출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런 귀한 연출을 하면서도 그것이 귀한 것인 줄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자기가 보고 듣고 말한 것과 행동한 것을 소중하게 여겨서 그것을 자세하게 붙잡아 차근차근 쓸 줄 아는 사람만이 슬기로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쓴말을 보자.
그래서 간다고 말하고는 뒤돌아서는데,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잘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데, 괜스레 마음만 흩트려 놓은 것 같아서. 걱정도 되고. 그러나 이젠 믿기로 했다. 잘 이겨 나갈 거라고.
얼마나 알뜰한 자기 살핌인가? 따스한 친구 생각인가? 이 대문에서도 한 글월의 평균 길이가 열 자밖에 안 되도록 간결하게 썼다.
세 번째 물음은, 이 글이 우리가 흔히 읽는 글에 견주어 다른 점이다. 글월이 짧다는 것도 특색이지만 그보다도 더 남다른 것은 글월의 맺음말씨끝(어미)이 -다 로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글은 글월이 모두 32개인데, 그중 20개는 -다 로 끝맺어 놓았고, 나머지 12개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 있다.
* -로(으로) 2개
* -겠지 1개
* -고 4개
* -는데 2개
* 때문에 1개
* 봐서(-아서) 2개
이와같이 -다 말고 여섯 가지 씨끝(어미)을 맺는꼴로 쓰고 있다. 누구나 잘 아다시피 소설이든지 수필이든지 평론이든지 생활글이든지 우리가 쓰고 읽고 하는 글은 한 글월의 마지막에 나오는 풀이씨(용언)가 거의 모두 -다 한 가지로 되어 있다. 그래서 그만 글이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어쩌다가 달리 씌어졌다고 해도 기껏해야 한두 가지로 다른 꼴이 나타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글은 2백자 원고지 4장 반쯤 되는 길이에 -다 가 아닌 말끝이 여섯 가지나 나와 있으니 놀랍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글월이 끝맺는 결과로 이 글을 읽어보면 아주 독특한 맛이 난다. 그 맛이란 무엇인가? 글이 살아 있다는 느낌, 글이 글에 그치지 않고 살아 있는 말로 씌어졌다는 느낌이다. 살아 있는 말은 방안에 앉아서 생각만 해서는 나올 수 없고, 책을 읽어서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만 읽고 몸으로 겪은 일이 없으면 도리어 죽은 말(책으로 읽힌 글말)만 늘어놓게 된다. 살아 있는 말은 다만 현실 속에서 나날이 살아가는 삶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이 글도 절실한 삶을 본 대로 들은 대로 생각한 대로 말한 대로 행한 대로 자세하게 붙잡아 썼기에 자기 자신의 말이 되어 이런 글로 나타난 것이다. 무슨 문장 이론 공부를 해서 그 이론에 맞게 써서 이런 글이 된 것도 아니다. 요즘 글쓰기 공부의 귀한 방법처럼 모두가 여기고 있는 그 논리 공부를 해서 논리에 맞게 쓰려고 했다면 이런 살아 있는 글은 결코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여러 가지 씨끝(어미)에 나타나는 글월의 성격을 좀 알아 보기로 하자.
안성휴게소 판매직으로.
이 글월은 마지막에 나갔다 란 풀이말을 줄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풀이말을 줄인 까닭은, 바로 앞에 나갔다 로 끝난 글월의 맺음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두 글월로 나누지 않고 보통은 한 글월로 해서 친구가 안성 휴게소 판매직으로 취업을 나갔다. 이렇게 쓴다. 한 글월로 써도 이 경우에 긴 글이 아니다. 그러나 짧은 글도 이 학생은 이렇게 두 글월로 나누어서 앞에 쓴 글월은 -다 로 맺고, 뒤에 쓴 글월은 여러 가지 형태의 풀이씨나 토로 맺어서 글이 더 싱싱한 느낌이 나도록 했다.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슨 이론을 배워서 이렇게 쓴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실제로 입으로 하는 말이 이렇게 되어 있어서 입말을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초등 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쓴 글을 보면 때로 아주 살아 있는 입말을 쓰는데, 이것은 어른들이 쓰는 글말을 흉내낼 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글에는 이 밖에도 한 글월로 쓸 것을 이렇게 두 글월로 나누어 쓴 대문이 많다.
힘들다는 거다. 사람들도 보고 싶고.
이것은 사람들도 보고 싶고, 힘들다는 것이다 로 쓰지 않고 앞쪽의 반을 떼어서 따로 한 글월을 만들어 뒤에다 쓴 것이다. 난 과연 적응할 수 있을는지...
이렇게 시작되는 글월도, 아주 길기는 하지만 그 다음에 오는 글월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 그 안에 들어가 두 글월이 한 글월로 될 수도 있는 형태인데, 이렇게 나누어 놓았다. 오늘은 얼굴이라고 한번 보고 오려고 찾아갔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더 반가운 거라 하기에 연락하지 않고. 이것도 갑자기 찾아온 손님이 더 반가운 거라 하기에, 오늘은 얼굴이라고 한번 보고 오려고 연락도 하지 않고 찾아갔다 고 쓸 수 있다.
일요일이라 휴게소 안은 몹시도 붐볐다. 국수나 커피를 사 가지고...
벌어질 정도로 이것은 일요일이라 휴게소 안은, 국수나 커피를 사 가지고 가다가 부딪혀 다 쏟게 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붐볐다
고 쓸 수도 있는 것을 두 글월로 나누어 썼다.
나도 그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국수 판매하는 곳을 찾았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도 앞에 그 보기가 있듯이, 뒤에 따로 떼어 놓은 글월을 앞의 글월 앞쪽에 갖다 놓고 그대로 이어서 한 글월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능청스레 여기 국수 맛있어요? 라고 되묻고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목소리를 알아듣고 쳐다볼까봐서.
이것은 뒤의 글월을, 앞의 글월에 있는 되묻고는 과 얼굴을 사이에 끼워 넣으면 된다.
그러나 이제는 믿기로 했다. 잘 이겨 나갈 거라고 이것도 그러나 이제는 잘 이겨 나갈 거라고 믿기로 했다 고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글월을 둘로 나누어서 앞의 글월은 -다 로 맺고, 뒤의 글월은 다른 여러 가지 형태로 맺어서 말을 살려 놓은 것이다.
갈 때는 물론 기대감으로 잔뜩 들뜬 마음이었겠지. 하지만..
이것은 ..마음이었겠지만.. 이렇게 해서 이어갈 수도 있는데 이렇게 끊어서 딴 글월을 만들었다.
그동안 잘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데 괜스레 마음만 흩트려 놓은 것 같아서.
이 글월 끝에는 그렇다 는 말을 줄였다고도 볼 수 있다. 걱정도 되고
다섯자로 된 이 짧은 글월은 걱정도 되지만 하고 그 다음 글월에 이어질 수도 있는 말이다. 아무튼 이와 같이 글월을 짧게 끊어 써서 싱싱한 말이 되게 한 것이 이 글의 특색이요 좋은 점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다듬어야 할 말인데, 이렇게 살아 있는 입말로 쓴 글이 되어 있어서 글에서마나 쓰는 잘못된 말은 없다. 이 정도로 깨끗한 우리말로 쓴 글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글이 말까지 병들게 해서 입에서 나오는 말도 잘못된 것이 많아 이 글에서도 한 두가지가 보인다.
- 국수 판매하는 곳을 찾았다.
이렇게 나오는 판매하는 은 마땅히 파는 으로 써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쉬는 곳 에 휴게소 란 이름이 붙고, 파는 이 가 판매직 이 되어 버린 자리에서 국수 판매하는 곳 이란 말도 저절로 나올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래도 다듬어야 할 말이라고 본다.
- 무얼 드릴까요? 라고 물었다.
- 여기 국수 맛있어요? 라고 되묻고는..
이렇게 두 군데나 나오는 라고 는 하고 로 써야 본디 쓰던 우리말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이 글은 감상문인가 서사문(이야기 글)인가 하는 문제다. 이야기가 있는 감상문 같기도 하지만, 감상이 적힌 이야기글이라 하는 것이 더 알맞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글이든 감상문인지 서사문인지 어중간하게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따라서 글을 쓸 때는 어떤 이야기를 쓰더라도 느낌이나 생각을 쓰는 데에 더 무게를 두어서 감상문으로 하든지, 느낌이나 생각이 얼마쯤 들어가더라도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있는 서사문으로 쓰든지 해서, 처음부터 어떤 형태의 글을 쓴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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