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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0호 2022.10.8 (음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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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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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이란 자연이 병을 고쳐 주는 동안 환자가 기분 좋도록 해주는 기술. ― 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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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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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촌 아재
옛 시골에선 겨울에 산문이 열린다. 이웃들이 함께 산에 올라 땔감을 한다. 하지만 어찌 한날한시에 다 모일 수 있으랴. 노가다판에 가 있기도 하고 낫질하다 손가락이 상해 못 나오기도 하지. 으스름 저녁 이고지고 온 나무를 마당에 부리고 나면, 분배가 문제. 식구 수에 따라 나누자니 저 집은 한 사람밖에 안 나왔다고 투덜. 똑같이 나누자니 저 집 나무는 짱짱한데, 내 건 다 썩어 호로록 타버리겠다고 씨부렁.
거기에 오촌 아재 등장. ‘오촌’은 ‘적당한 거리감’의 상징. 막걸리잔 부딪치며 ‘행님 나무가 짱짱하니 고 정도로 참으쇼.’ ‘저 동상네 아부지가 션찮으니 몸이라도 지지게 좀 더 줍시다.’ 한다.
다툼은 쪼잔한 데서 시작된다. 우리 동네에서도 마을정원 일을 해야 했다. 방역조치 때문에 화요일과 금요일 반으로 나눠 일을 했다. 마치고 점심을 먹자니 화요일 반에선 밥 먹는 데 돈 쓰지 말라며 사양, 금요일 반은 일 마치고 차 타고 퇴비 사러 갔다 오다 늦은 점심을 먹은 게 탈이었다. 누군 사주고 누군 안 사주었네, 친한 사람들끼리 먹었네 하며 마을 여론이 두 갈래로 쩍 갈라졌다.
자율적 공동체가 역동성을 갖추려면 적어도 네 가지 유형의 인물이 필요하다(가타리, <미시정치>). 어린이(미래), 국가(외부 자원), 이웃 주민(동료), 그리고 대안적 인물(상상). 그는 자유의 공간을 창조하는 인물이자 당면한 사태 너머를 보는 사람이다. 험담이 퍼져나가지 않게 움직이며 활로를 찾아낸다. 그의 가장 큰 역할은 ‘말’을 건사하는 일이다. 어디든 오촌 아재 같은 사람이 있으면 흥하고, 없으면 졸한다.
풀어쓰기
영어처럼 한국어도 옆으로 풀어쓰면 어떨까. 낯설겠지만 아래 시를 읽어보자.
ㅈㅜㄱㄴㅡㄴ ㄴㅏㄹㄲㅏㅈㅣ ㅎㅏㄴㅡㄹㅇㅡㄹ ㅇㅜㄹㅓㄹㅓ
ㅎㅏㄴ ㅈㅓㅁ ㅂㅜㄲㅡㄹㅓㅁㅇㅣ ㅇㅓㅄㄱㅣㄹㅡㄹ (윤동주, ‘서시’).
나는 지금도 지인들한테 보내는 이메일에 ‘ㄱㅣㅁㅈㅣㄴㅎㅐ’라 쓰곤 한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음소문자인 한글의 또 다른 표기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풀어쓰면 좋은 점이 있다. 영어 필기체처럼 글씨를 더 빨리 쓸 수 있고, 컴퓨터 글자체(폰트) 개발에도 시간을 ‘엄청’ 줄일 수 있다. ‘걎, 걞, 겏’이나 ‘뷁’처럼, 한글로 만들 수 있는 음절수는 무려 1만1172자이다.(한자에 이어 세계 2위!) 이 중에서 흔히 쓰는 음절 2350자는 반드시 디자인을 해야 한다. ‘ㅇ아안않우울오올의궁굉’에 쓰인 ‘ㅇ’이 다 다르게 생겼으니 말이다. 풀어쓰기를 하면 ‘ㅇ’을 하나만 디자인하면 된다. 폰트 디자이너도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진다.
주시경을 시작으로 그의 제자 최현배(남), 김두봉(북)이 풀어쓰기를 주도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꿈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문자 개혁의 종착지는 풀어쓰기였다. 문익환 목사도 감옥에 있으면서 풀어쓰기 연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쓰지 않는다. 익숙한 모아쓰기에 정통성을 부여한다. 현실이 궁극의 합리성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결여나 불합리로 보지 않는다. 못 미치면 못 미치는 대로 그 속에서 이치를 찾고 습관을 들인다. 문화는 논리보다는 습관에 가깝다. 사람의 발자국이 쌓여 길이 만들어지면 꼬부랑길일지라도 그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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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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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 김수영
남에게 희생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四十명가량의 醉客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犯行의 現場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現場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196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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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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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상대(刮目相對)
刮:비빌 괄. 目:눈 목. 相:서로 상. 對:마주 볼?대할 대.
[출전]《三國志》〈吳志 呂蒙傳注〉
눈을 비비고 본다는 뜻. 곧 남의 학식이나 재주가 전에 비하여 딴 사람으로 볼 만큼 부쩍 는 것을 일컫는 말.
삼국시대(三國時代) 초엽, 오왕(吳王) 손권(孫權:182~252)의 신하 장수에 여몽(呂蒙)이 있었다. 그는 무식한 사람이었으나 전공을 쌓아 장군이 되었다. 어느 날 여몽은 손권으로부터 공부하라는 충고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전지(戰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手不釋卷(수불석권)]’ 학문에 정진했다. 그 후 중신(重臣) 가운데 가장 유식한 재상 노숙(魯肅)이 전지 시찰 길에 오랜 친구인 여몽을 만났다. 그런데 노숙은 대화를 나누다가 여몽이 너무나 박식해진 데 그만 놀라고 말았다.
“아니, 여보게. 언제 그렇게 공부했나? 자네는 이제 ‘오나라에 있을 때의 여몽이 아닐세[非吳下阿蒙]’그려.”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무릇 선비란 헤어진지 사흘이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땐 ‘눈을 비비고 대면할[刮目相對]’ 정도로 달라져야 하는 법이라네.”
[주] 여몽 : 재상 노숙이 병사(病死)하자 여몽은 그 뒤를 이어 오왕 손권을 보필, 국세(國勢)를 신장하는데 힘썼음. 여몽은 촉(蜀) 땅을 차지하면 형주[荊州:호남성(湖南省)]를 오나라에 돌려주겠다던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유비(劉備)의 촉군(蜀軍)을 치기 위해 손권에게 은밀히 위(魏)나라의 조조(曺操)와 화해, 제휴할 것을 진언, 성사시키고 기회를 노렸음. 그러던 중 형주를 관장하고 있던 촉나라의 명장 관우(關羽)가 중원(中原)으로 출병하자 여몽은 이 때를 놓이지 않고 출격하여 관우의 여러 성(城)을 하나하나 공략(攻略)한 끝에 마침내 관우까지 사로잡는 큰 공을 세움으로써 오나라의 백성들로부터 명장으로 추앙을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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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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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평정을 잃지 말고 요청하라
나는 강인하고 야심만만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나를 화낭년이라 한들 상관없다. - 마돈나
제이 아브라함
우리 아버지는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야 사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US 항공에 전화를 걸어 '친족 사별' 특별 적용을 받아 여덟 장의 항공권을 구했다. 우리는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권을 받기 위해 세 시간이나 줄을 서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우리 차례가 돌아왔을 때, 카운터 직원은 항공사 측에서 비행기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행편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는 좌석 확인 항공권을 갖고 있으면, 예약 항공사의 비행 스케줄에 차질이 생겨도 다른 항공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예약 당사자가 요구할 경우에만 항공사에게 그렇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다음 편은 TWA 항공사의 비행기였고, 출발 시간이 이제 세 시간도 남지 않았다. 게다가 출발 탑승구가 이곳과 정반대 쪽에 있었다. 혹시 모르는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말씀드리건대, 로스앤젤레스 공항은 매우 넓어서 극과 극의 터미널을 가려면 셔틀 버스를 타고 반 마일이나 이동해야 한다. 특히, 걸을 수도 없는 먼 거리의 터미널까지 여덟 명의 사람이 12개의 가방을 들고 가는 경우에는 아예 셔틀 버스를 한 대 임대해야 한다. 정규 셔틀 버스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곳까지 가는데 셔틀 버스를 임대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줄에 서서 기다리는 형편이었다. 나는 말했다.
"이렇게 비행 편이 취소되었으니, 당신네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우리는 냉정하고 침착했다. 직원이 말했다.
" 다른 비행기를 예약하는 것은 당신 책임입니다."
"왜요?"
"비행 편이 취소되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나는 비행 좌석을 예약하고 확인했는데, 당신네 항공사가 비행 스케줄을 이행할 수 없다는 내용의 '사유서'를 써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다른 회사의 항공권을 사줄 권리나 의무가 없다고 했으니까, 당신 상관에게 그 '사유서'에 서명을 받아 주시오."
나는 기다렸다.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어차피 다음 세 시간 동안 다른 이착륙 비행 편도 없잖소. 다른 사람들이 뭘 할 수 있겠소?"
우리는 냉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간단히 말해서, US 항공사는 우리에게 겨우 TWA 항공권을 구해줬다. 연말 연시에 항공권 구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만큼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RWA 카운터로 갔다. 그곳은 생지옥이었다. 항공사 직원들은 작은 727기종에 이미 비행이 취소된 승객들을 억지로 쑤셔 넣으라고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동반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요청했다.
"우리가 함께 앉아서 갈 수 있도록 해주시겠습니까?"
그들은 노력하겠노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탑승권을 받아 보니, 기가 막혔다. 우리 여덟 명 중에서 나란히 앉아 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마침내 비행기에 탑승했다. 우리의 첫 번째 좌석은 칸막이 옆이었다. 우리는 승무원에게 바깥쪽 통로에 앉은 승객에게 좌석을 바꿔 달라는 부탁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노발대발하며 우리에게 말했다.
"절대로 안돼요! 나는 6주일 전에 예약했단 말이오. 나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소. 나는 여행을 오래 했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하오"
나는 성질이 났다. 하지만 아내가 웃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뭐가 웃기지? 그녀는 내가 보지 못한 뭔가를 봤구나.' 그녀는 가방에서 자동차를 베이비 시트를 꺼내서 그 남자의 옆자리에 그것을 묶은 다음에 우리의 생후 여섯달된 아이를 앉혔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우유병을 건네며 말했다.
"아이가 조금 울면 이것을 주고, 더 크게 울면 저것을 주세요."
그녀는 남자에게 아이를 닦아줄 냅킨을 주고 자리를 떠났다. 그 순간, 나는 이것이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인생을 보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문제가 없음을 깨닫는다면, 다른 사람이 문제를 가진다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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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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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5. 팔로 대군의 기치를 드높이며
투렴과 투장
"국법을 모면하고 네 목숨을 건져내려면 반드시 공을 세워야 왕의 사면을 받을 것이다."
투장이 형 앞에 무릎을 꿇고 청했다.
"형님 살아날 길을 지시해 주십시오."
투렴이 말했다.
"정나라는 우리 군대가 물러간 줄로 알 것이다. 그러니 우리 군대가 다시 쳐들어오리라곤 생각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날랜 병사를 이끌고 급히 진격하여 기습적으로 정나라를 치면 너는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투장은 군사를 2대로 나누어 몸소 전대를 거느리고 앞서 가고, 투렴은 후대를 거느리고 그 뒤를 따라 정으로 갔다. 그들은 군사들의 입을 가리고, 말발굽에는 천을 씌워 소리를 내지 않고 은밀히 진격했다. 마침내 그들은 정나라 경계를 넘었다.
한편 정나라 장수 담백은 변경에서 군마를 검열하고 있었다. 담백은 타국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황망히 군사를 거느리고 나서서 적을 맞이해 싸웠다. 그러나 담백은 싸우는 동안에 초나라 투렴이 거느린 후대 가 자기의 뒤를 에워싸고 오는 걸 몰랐다. 담백은 앞뒤 공격을 당적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담백은 초나라 군사의 포로가 되었고 정나라 군사들은 그 절반이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투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정나라 깊숙이 쳐들어가려 했으나 투렴이 그를 말렸다.
"이번의 기습 작전을 쓴 것은 너를 살리기 위해서이다. 어찌 요행만 바랄 수 있겠느냐?"
형제는 즉시 초나라로 회군했다. 초성왕 앞에 나간 투장은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청했다.
"신이 전번에 회군한 것은 적을 유인하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싸움이 무서워 물러선 것은 아니옵니다."
"네 이미 적장을 잡아온 공로로 그 동안 지은 죄는 면하겠지만 아직 정나라가 우리에게 항복치 않았는데 어찌하여 군사를 거두어 돌아왔는가?"
"우리 군사의 수효가 많지 못해 성공하지 못할 것 같기에 철군했사옵니다."
투렴이 동생을 대신하여 아뢰니 초성왕이 얼굴색이 변해 소리를 높여 꾸짖었다.
"네가 군사 수효가 적은 것으로 변명을 하니 적을 겁내는 것이 분명하구나. 병차 2백 승을 더 줄 터이니 정나라의 항복을 받지 못하면 다시 과인의 앞에 나타날 생각은 말아라!"
투렴이 다시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왕께서는 우리 형제를 함께 가게 해주시옵소서. 만일 정나라의 항복을 받지 못하면 정백이라도 잡아 단하에 바치겠나이다."
그 대답에 만족한 초성왕은 투렴을 대장으로, 투장을 부장으로 삼으니 그들 형제는 병차 4백 승을 거느리고 다시 정나라로 쳐들어갔다. 한편 담백이 초나라 군사에게 사로잡혀갔다는 보고를 받은 정문공은 다시 사람을 제나라로 보내 구원을 청하니 이에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주공께선 수 년 동안에 연나라를 구출하고, 노나라 기초를 세워 주었으며, 형나라에 성을 쌓고 위나라를 봉(封)해 천하 백성에게 은덕을 내리고, 모든 나라 제후에게 대의를 폈습니다. 모든 제후의 군사를 쓸 때는 바로 지금이니, 주공께서 정나라를 구원하시려면 직접 정나라로 가실 일이 아니라 아예 초나라를 치시는 게 순서일 것입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먼저 모든 나라 제후를 크게 합쳐야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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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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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무영편"
이무영(1908~1960)
소설가. 충북 음성 출생. 일본에서 중학을 나와 작가 가토다케오의 문하에서 4년간 작가 수업을 함. 이무영은 초기에 무정부주의적인 경향을 보였으나 1939년부터 6.25사변 때까지 농촌에 파묻혀 주로 농촌 소설을 썼다. 그는 농촌을 먼 데서 바라다보며 쓴 작가가 아니었고 직접 농촌 생활에 젖었던 본격적인 농민 작가였다. 6.25사변 후에는 잠시 시정 문학에 손을 대기도 하였다.
낙엽과 문학
귀뚜라미, 달, 낙엽, 단풍..., 우리는 이런 낱말들만 보고서도 흔히 시정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 온 시 속에는 가을을 소재로 한 것이 제일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가을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문학 작품이 감상에 깊이 빠지고 있음도 사실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문학하는 태도를 한 번쯤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낙엽이니 단풍이니 하는 것이 다 문학의 좋은 소재가 되는 것임엔 틀림이 없지만, 이를 보고 다만 감상에 빠지는 데서 끝나고 만다면, 이것은 결국 우리 문학을 나약하게 만들 위험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을을 조락의 계절로만 파악하여 애수에 사로 잡힐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는 문학의 길을 개척해야겠다. 애수니 감상이니 하는 것도 물론 때로는 필요한 것이겠지만, 남들이 달나라를 여행하는 오늘, 우리만이 안이한 데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가을이 되어 나무가 그 잎을 떨어뜨리는 것을 그 나무의 신진 대사지 생병이 다 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 가을 봄을 위한 준비요, 새 생활을 위한 생명력의 보강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학도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다만 피상적으로만 보고서 영탄조에 머물리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좀더 젊어져야겠다. 우리의 문학도 좀더 젊어져야겠다. 지는 잎을 바라보며 애수에 잠기는 감상 문학에서 벗어나, 새봄을 준비하는 낙엽의 내적 생명력을 파악하여 그것으로 충일한 문학을 이룩해야겠다. 문학은 넋두리가 아니다. 푸념일 수도 없다. 그것은 생명감이 약동하는 젊음이어야 하고, 신비를 극복하는 과학이라야 한다. 우리는 이 이상 은일을 미덕으로 삼을 수도 없고, 후퇴를 달관시할 수도 없다. 나아가야 한다. 극복해야 한다. 태산보다 더한 장해물이 있다 할지라도 이와 대결하여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야 한다. 서재에 가만히 앉아 창 밖에 지는 잎을 바라보며 한숨이나 지을 것이 아니라, 대지 위에 버티어 서서 대자연의 추이를 관찰하고 과학하고, 그럼으로써 생명력으로 충일한 문학을 이룩해야겠다.
남들이 달나라에 기를 꽂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좀더 경이를 느껴야겠다. 우리가 달을 바라보며 애수에 젖어 있을 때, 그들은 달을 과학했고, 마침내 달을 정복하고 말았다. 우리는 이 사실 앞에 좀더 놀라야 하고, 이 사실로써 우리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를 삼아야겠다. 그들은 멀지 않아 대우주를 과학한 새로운 문학을 창조할 것이다. 무기력과 겸허의 미덕이 혼동되던 시대는 벌써 지났다. 애수나 감상으로써 심금을 울리던 시대도 이미 아니다. 정원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애수에 잠기던 창가에서 떠나야겠다.
단풍도 좋고 낙엽도 좋다. 우리는 감상을 극복하고 거기서 대자연의 섭리를 발견해야 하며, 그것을 문학화해야 하겠다. 지금 말하거니와, 낙엽은 생명의 종식이 아니라 생명력의 보강을 의미한다. 우리는 낙엽에 대한 일체의 기성 관념을 버리고 생명력으로 충일한 새로운 낙엽부를 창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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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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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꽃씨와 도둑
- 금아 피천득 선생님께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가끔 큰 욕심에 눈먼 이들을 보거나 특히 요즘처럼 엄청난 비자금 파문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 다시 읽어 보는 피천득 선생님의 `꽃씨와 도둑`이란 짧은 시는 포근한 감동으로 우리를 미소짓게 합니다. 또한 선생님의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방금 저는 선생님의 시집 <생명>을 동네 책방에서 사들고 오는 길입니다. 지난번에 직접 사인해서 보내 주신 책은 다른 수녀님들도 읽게 하려고 도서실에 내어 놓았기에 다시 읽고 싶어 제 몫으로 하나 구한 것이지요.
이번 가을엔 큰 상 -인촌상-을 받으셔서 선생님을 아끼고 존경하는 이들로부터 정성스런 축하도 많이 받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처음에 그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었을 때 저는 즉시 그 기사를 오려서 독일에 있는 선생님의 열렬한 애독자인 김효정 씨에게 보냈답니다.
거의 20년 전 봄, 제가 시인 홍윤숙 선생님과 함께 라일락 향기 가득한 망원동 댁으로 찾아뵈었을 때 청빈하고 겸허한 수사님같이 느껴졌던 선생님의 첫인상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사시지만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마루와, 서재라고 하기엔 너무도 자그만 선생님 방의 낡은 책상과 의자, 오래된 영문 시집들이 꽂혀 있는 작은 서가와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인들의 사진이 놓여진 선생님의 낯익은 방을 저는 자주 떠올려 보곤 합니다. 제자들이 선물했다는 녹음기로 음악도 즐겨 들으시고 시인들의 육성으로 된 시 낭송도 자주 들으시는 선생님은 가끔 저에게 시나 수필을 읽게 해 녹음하시기도 했습니다. 위스키 한 방울도 살짝 떨어뜨려 손수 타주시는 커피를 마시며 선생님의 옛 앨범이나 친필로 써놓으신 좋은 글모음 노트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건 내가 좋아서 뽑아 놓은 수녀님의 시 한 구절인데..."
뜻밖에도 저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의 몇 구절을 보여 주시며 환희 웃으시던 선생님의 그 말씀은 얼마나 기쁘고 놀랍던지 저는 부끄러움도 잊고 선생님의 귀한 노트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슬프고 어두운 이야긴 신문에서만 읽어도 넉넉하니 수녀님은 제발 맑고 아름다운 글을 더 많이 써주세요"하고 저를 만날 때마다 당부하시던 선생님. 어쩌다 선생님 댁을 방문하고 늦은 시간에 수녀원으로 돌아올 때면 택시를 태워 집 앞까지 바래다 주곤 하셨던 선생님. 잠시 해외에 다녀온다고 제가 비행장에서 전화를 드리면 "아이구 어쩌나, 내가 비행장에 나갔어야 하는데..."하시며 안타까움을 표현하시던 선생님의 정겨운 음성을 저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 선생님을 가까이 뵈면서 저는 친절과 겸손이 어떤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가끔 선생님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아름다운 연극, 영화, 음악을 감상하게 되면 선생님의 그 유명한 수필 `반사적 광영`에서처럼 저는 선생님 덕분에 더욱 기쁘고 행복해지는 시간들을 고마워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뵈올 때 동반하고 간 손님이 프로스트, 셸리, 예이츠 등등 시인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시던 모습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해마다 부활절과 성탄절이면 극히 간결한 축원의 말과 이름만 써서 보내 주시는 카드들인데도 선생님의 육필이 소중하게 여겨져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습니다. 평소에 말씀이 적으시듯이 수필과 시도 적게 쓰시고, 쓰시더라도 워낙 절제된 표현을 쓰시니 선생님의 글씨 한 조각이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은 묵은 달력에서 떼어낸 르느아르와 모네의 그림 중 한 장을 보여 주시며 선택하라고 하셔서 제가 두 장 다 갖고 싶다고 했더니 매우 아까워하시며 한 장을 주시던 그 모습도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늘 아름다운 그림카드나 엽서를 보며 행복해 하시는 소년 같은 모습은 여든이 훨씬 넘으신 지금도 여전하십니다. "산책을 즐기고 약간의 엽서를 모으며 살았다"는 선생님의 고백이 가슴 찡하게 울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그림 엽서나 카드를 보면 선생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오늘은 영문학사에 나오는 시인들의 생가와 글귀가 들어 있는 엽서 몇 장을 저의 조그만 선물로 선생님께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 고마운 사람들을 기억하며 우리 마음에 따스한 등불을 켜는 12월엔 선생님께서도 최소한 몇 장의 카드나 엽서를 쓰시겠지요? 몇 해 전 왕적과 예이츠의 시를 적어 주신 카드, 피사로의 `감자 줍는 이들`과 미국의 어느 현대화가의 `하얀 다리` 그리고 라파엘로의 성모상이 그려진 카드들은 선생님이 보내 주신 것들 중 제가 특별히 아끼는 것입니다.
전화 드릴 때마다 "네에..."하고 길게 빼는 음성으로 정성스럽게 대답하시는 선생님, 지난번 해외여행은 무사히 다녀 오셨는지요? 가장 사랑하시는 따님, 아드님, 손자, 손녀들과도 정겨운 시간을 가지셨을테지요. 유리 그림이 아름다운 성당에도 더러 가보셨는지요?
"난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와서 영세받을 자격이 없다"고 미루시다가 이제는 고인이 되신 예수회 김태관 신부님으로부터 교리와 영세를 받으셨을 때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자연과 인간을 사랑한 따뜻한 마음의 시인. 청빈한 삶의 모델인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선생님께 보내 드릴 카드를 준비하다가 예전에 제게 보내 주신 편지 한 통을 다시 읽어 봅니다.
`주신 편지 감사합니다. 글월 받는 것만도 영광이온데 분에 넘치는 말씀을 주셔서 송구합니다... 저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자기중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만을 찾고 마음에 맞는 사람만을 대하려 듭니다.미운 것, 불결한 것은 피하려고만 들고 많은 불행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살아갑니다. 자기중심에서 벗어나는 구원을 받아야겠습니다. 얼마 전 수녀님께서 편찮으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건강을 소중히 하시기 바랍니다. 모쪼록 문복이 가득하시기를...`
당신 스스로를 늘 이기적이라고 자책하시는 선생님의 겸허한 글은 이기적이면서도 깊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저를 반성하게 합니다. 끝으로 선생님게서 근래에 쓰신 듯한 `고백`이란 시 한 편을 조용히 낭송하며 이 글을 맺습니다. 머지않아 서울이나 부산에서 만나 뵐 수 있길 기대하며 그동안은 기도 안에서 뵙겠습니다.
정열
투쟁
클라이맥스
그런 말들이 멀어져 가고
풍경화
아베 마리아
스피노자
이런 말들이 가까이 오다
해탈 기다려지는
어느 날 오후
걸어가는 젊은 몸매를
바라다본다
진정 한 폭의 수채화 같고, 아베 마리아의 선율처럼 잔잔한 선생님의 날들에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함게하시길 빕니다.
(199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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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 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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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까 - 이오덕
1부 산문을 어떻게 쓸까
서사문 쓰기 2 - 가치 있는 글은 어디서 오는가 (1/2)
먹는 이야기를 쓴 글
다음은 여중 3학년 학생이 쓴 밤을 먹은 이야기다. 여러분을 무엇을 먹은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이 있는지, 이런 글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밤
어제 엄마께서 경동시장에 가셔서 밤을 사 오셨다. 갈색의 윤기가 나는 알밤이었다. 동생들은 밤을 사 왔다며 좋아했지만 나는 그 밤이 싫었다. 옛날에는 밤을 무척 좋아했지만 작년부터 밤을 싫어한다. 이유인즉, 작년에 할머니께서 주셨다며 엄마께서 밤을 한 봉지 가져 오셨다. 우린 그 밤을 난로 위에 얹어놓고 밤이 익기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있으니까 밤 껍질이 갈라지면서 하얀 색의 밤살이 드러났다. 우린 서로 먹겠다며 서투른 솜씨로 밤을 까고 조그마한 밤알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는 경쟁 속에서 껍질도 다 까지 않고 그냥 입을 통과,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입속에서 쫀든쪽든한 것이 톡 터지면서 단물이 흘렀다. 나는 그냥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계속 씹어대며 입속으로 밤을 연신 집어넣었다. 근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뱉어보니 까만색의 밤벌레가 몸이 어진 채로 내 입속에서 나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동생들은 신이 나는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웃으시며 물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그때 물을 무척이나 많이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종일 살다시피 했다.
나는 그후로 밤을 싫어한다.
그리고 밤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밤을 먹고 있을 때는 무지무지 먹고 싶다.
그러나 나는 죽을 때까지 밤을 먹지 않겠다.
밤을 맛있게 먹다가 벌레를 씹고 놀란 이야기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은 어떤 느낌이 들까? 아마도 다음과 같은 몇가지 느낌을 가질 것이다.
1) 벌레를 씹어 먹었다니 얼마나 놀랐겠나. 끔찍한 일이다.
2) 나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때 이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3) 이런 글이라면 나도 쓰겠다. 나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으니까.
사람에 따라 온갖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대체로 이 세 가지 느낌이 가장 많으리라 생각한다. 밤을 먹다가 잘못하여 그만 밤 속에 들어 있던 벌레까지 먹게 되는 일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밤을 먹는 것은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평범한 일이다. 말하자면 이 글을 누구에게나 있는 일, 보통으로 겪는 일을 쓴 것이다. 이렇게 일상으로 겪는 일을 일상으로 하는 말로 쓴 글,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뜻이 있는가? 우선 앞에서 든 것처럼 가장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그리고 이런 글이라면 나도 쓸 수 있다 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곧 자기표현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을 가지게 한다. 또한, 쓴 사람에게나 읽는 사람에게 자기의 삶을 바로 보게 하고, 삶 속에서 자기를 바로 세워서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게도 한다. 참된 글쓰기는 이렇게 해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이런 글을 누구보다도 중고등학생들에게 읽히고 싶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대체로 자기가 나날이 겪는 일, 느낀 일을 솔직하게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근사해 보이는 것, 문인들이 쓴 글에서 흔히 나오는 것, 무슨 척하는 것을 쓰고 싶어한다. 더구나 우리 나라에서는 초등 학생 때부터 자기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는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중고등학생이 되면 더욱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와같이 자기가 겪은 조그만 일을 자기말로 쓰는 글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리어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고, 이 자리에서 좀더 많이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사람은 누구든지 하루도 빠짐없이 무엇을 먹는다. 그렇게 먹어야 목숨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런데 먹는 것이 그처럼 중요하고 누구나 나날이 그것으로 살고 있는데, 어째서 먹는 이야기를 쓴 글이 드문가? 더구나 학생들의 글에서 그렇다. 먹는 것은 천하고 동물들이나 즐기는 것이고, 그래서 고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덮어두어야 할 부끄러운 일인가? 그렇지 않다. 먹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목숨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목숨을 이어가는 일이 어떻게 천하고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는가? 무엇을 먹는가, 어떻게 먹는가, 먹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하는 일들을 걱정하고 연구하고, 그래서 그것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사람이 하는 정치고 경제고 역사고 학문이고 종교고 예술이고 문학이고 문화인 것이다.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예술이고 문학이고 철학이고 종교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람의 목숨을 이어가는 먹는 것 을 대수롭잖게 여긴다면 그것은 필경 거짓밖에 안될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쓰는 글도 먹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 한다. 앞에서 든 글은 밤을 먹다가 생긴 일을 썼다. 밤이나 감같은 과일은 누구나 가끔 먹는다. 그런데 밥은 누구든지 날마다 먹는다. 밥을 먹는 이야기는 더 많이 글로 씌어져야 한다. 어떤 밥을 먹는가, 어떤 반찬을 먹는가. 어디서 누구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먹었는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먹었는가. 요즘은 온갖 오염식품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런 오염식품을 먹은 이야기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아무튼 중고등학생의 글은 시인이나 수필가나 소설가들이 쓰는 문학작품의 흉내를 글감과 제목에서부터 내려고 하다보니 솔직한 자기 이야기, 평범한 삶의 이야기가 잘 안 나온다. 그래서 대체로 뿌리가 없이 공중에 뜬 종이꽃처럼 되어 있기 예사다. 앞에서 보인 밤 이란 글은 이런 점에서 모두가 한번 읽어 볼 만한 글이라 생각한다.
자기가 겪은 일상의 일들을 자기가 하는 말로 정직하게 쓰는 것이 모든 글쓰기에서 가장 귀한 바탕이 되고 알맹이가 되는 것임은 초등 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이나 육칠십 나이가 된 늙은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뭔가 근사한 것, 보기 좋은 것을 찾고 말재주를 부리려고 하는 태도로 쓰게 되면 어른이고 아이고 아주 병든 글만 낳게 되어, 글을 쓰는 자신은 물론이고 그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보기글 밤 이 읽는 이들에게 줄 좋은 면만을 말했다. 이제부터는 좀 문제가 되는 점, 좀더 잘 썼으면 하는 면에서 말해 보겠다. 자기가 보고 듣고 한 것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 삶을 가구는 참된 공부가 되고 모든 글쓰기의 근본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 무엇이든지 겪은 것을 솔직하게 쓰기만 하면 되는가? 그렇지 않다. 체험을 쓴다는 것과 정직하게 쓴다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러면 무엇이 더 있어야 하나? 밤 이란 글을 다시 살펴보자. 이 글을 요약하면, 밤을 구워서 서로 많이 먹으려고 하다가 그만 밤벌레가 입안에 들어간 줄도 모르고 씹어 먹었다. 나중에야 벌레를 씹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서 물을 자꾸 마시고 화장실에 가고 했다. 그 뒤로는 밤이 싫어졌다. 나는 죽을 때까지 밤은 안 먹겠다.
- 이렇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자기 심정과 기분을 그대로 쏟아놓기만 했다. 이렇게, 이런 정도로 써서는 국민하교 3,4학년이 쓴 글과 다를 것이 없다. 제 동생, 동생의 동생이 쓴 글 정도밖에 될 것이 없고, 동생의 동생쯤 되는 나이가 갖는 생활과 생각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고해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야 하나? 어떤 생각이, 어떤 삶의 몸가짐이 더 있어야 하나? 앞의 글을 또다시 살펴보면, 밤은 먹기 싫다, 죽을 때까지 나는 밤을 안 먹겠다고 했는데, 그런 얕은 기분방출만 했지, 자기가 한 일에 대한 반성이나 자기가 가지게 된 그런 심정에 대한 검토는 조금도 없다. 그래서 이 글이 국민하교 중간학년 아이가 쓴 글 정도밖에 안 되고 만 것이다. 이 학생이 벌레를 씹어먹게 된 것은 동생들하고 서로 다투어 많이 먹으려고 보늬도 잘 까지 않고 먹어서 그렇다. 보늬를 잘 벗기지 않으면 벌레가 먹은 밤도 겉으로 나타나지 않으니 그렇게 된다. 벌레를 씹어 먹었다고 놀라고, 다시는 밤을 안 먹겠다고 했다면 마땅히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할 것인데, 동생과 서로 다투어 많이 먹으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말은 한 마디도 쓰지 않았다. 또 한 가지, 밤벌레를 한 번 씹었다고 해서 앞으로 평생 밤은 안 먹겠다고 한 태도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의 나이만큼 그 마음이 자라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하면 밤알 속에 들어가 밤만 먹는 벌레란 얼마나 깨끗한 것인가? 사람은 온갖 짐승과 별의별 벌레를 다 잡아먹는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사람의 몸을 차츰 병들어 죽게 하는 갖가지 무서운 독이 든 약들을 빵과 과자와 음료수들에 넣어 고운 색깔을 만들고 향기를 풍기게 하고 달콤한 맛을 들여서 먹게 하고 있는데, 이 글을 쓴 학생도 그런 가공 식품은 즐겨 사 먹을 것이다. 그런데 밤벌레 한 번 씹었다고 다시는 밤을 안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물론 나는 밤 이란 글을 쓴 학생이나 이 학생과 별로 다름없는 태도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달콤한 가공식품을 사 먹는 것보다 차라리 벌레 먹은 밤을 벌레가 들어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이 천 배 만 배 건강에 좋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렇게 말한다고 벌레 먹은 밤을 그대로 먹을 사람은 없을 것이고, 또 밤만 먹으면 됐지 벌레까지 먹을 것은 없다고 본다. 다만 벌레 먹은 밤을 그대로 먹었다고 해서 죽을때까지 밤을 먹지 않겠다는 그런 어리석고 좁은 마음의 울 안에서 마땅히 벗어나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다시 되새겨 말하면, 글은 자기가 겪은 일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정직하게 쓰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또 남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가치가 있는 글을 쓰려면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가치가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바로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이제 이 글에서 말을 어떻게 썼는가, 표현을 어떻게 하였는가를 보기로 하자.
- 옛날에는 밤을 무척 좋아했지만 작년부터 밤을 싫어한다. 이유인즉, 작년에 할머니께서 주셨다면 엄마께서 밤 한 봉지를 가져 오셨다.
옛날에는 했는데, 작년 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옛날이란 말은 맞지 않다. 지지난해까지는 하든지 재작년까지는 이라고 써야 옳다. 이유인즉 이란 말은 이유도 까닭 이란 우리말이 좋고,
-인즉 도 글말이니 입으로 하는 말
-는 이란 토를 쓰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까 까닭은 이 된다.
그런데 이 글월에서 까닭은... 해 놓고 그 까닭이 적혀 있지 않다. 그러니까 까닭은 이렇다. 고 해서 한 글월을 따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 할머니께서 주셨다면 어머니.. 이렇게 께서 가 거듭 나오는 것이 문제다.
-께서 를 다 없애고 할머니가 주셨다며 어머니가.. 해도 되고 할머니께서 만
-께서 를 붙여도 된다. 초등 학생들이 글을 쓸 때 엄마께서 아빠께서 이렇게자꾸 께서 를 붙이는데, 실제 말에서는 안 쓰는 께서 를 자꾸 붙이는 것은 교과서의 글과 시험 문제가 이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엄마가 오셨다. 고 하면다 되는 것이지 엄마께서 오셨다. 고 할 필요가 없고, 그런 말을 없는 것이다.
-께서 가 자꾸 들어가면 글이 어설퍼지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30분 정도 있으니까 밤 껍질이 갈라지면서 하얀 색의 밤살이 드러났다. 난로 위에 얹어 놓은 밤이 익는데 30분이나 걸리는가? 그리고 밤살이 하얀 색인가? 이런 것을 자세하게 쓰지 않더라도 틀리게 써서는 안되는 것이다.
-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는 경쟁 속에서 껍질도 다 까지 않고 그냥 입을 통과, 뱃속으로 들어 갔다.
더 먹겠다는 경쟁 속에서 는 더 먹겠다고 서로 다투어 라고 쓰는 것이 더 알맞은 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껍질도 다 까지 않고 했는데 이 껍질 은 두꺼운 겉껍질이 아니고 속껍질이니 보늬 라고 해야 한다. 그냥 입을 통과... 이렇게 쓴 것은, 밤을 씹지도 않고 그냥 꿀떡 넘긴 것 같다. 글은 천천히 알맞은 말을 골라서 공을 들여서 써야지 거칠게 아무렇게나 마구 써서는 안된다.
- 까만 색의 밤벌레가...
밤벌레가 까맣던가? 밤 알맹이와 비슷한 색이라고 나는 알고 있는데..
- 화장실에서 종일 살다시피 했다.
어느정도 사실인지 의심스럽다. 사실이면 사실같이 써야지.
- 그리고 밤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밤을 먹고 있을 때에는 무지무지 먹고 싶다.
밤만 보면 소름이 끼치는데, 한편 또 그것을 무지무지 먹고 싶다니, 어찌된 것인가? 소름이 끼친다는 감정과 무지무지 먹고 싶다는 욕구는 한꺼번에 일어날 수 없다. 아마도 먹고 싶다고 한 말이 진정일 듯 싶은데, 그렇다면 소름이 끼친다는 말은 부풀린 말이거나, 그 앞까지 써온 말을 되풀이해서 강조하다 보니 거짓이 된 말인지 모르겠다.
- 그러나, 나는 죽을 때까지 밤을 먹지 않겠다.
무지무지 먹고 싶다고 해 놓고는 이렇게 마지막을 맺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 말도 밤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는 말을 살리기 위해서 쓴 것같이 느껴진다. 무지무지 먹고 싶은 걸 뭐 때문에 죽을 때까지 먹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하는가? 그래야만 밤벌레를 먹고 혼이 났다고 써 놓은 글이 살아나는가? 글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속여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절대로 글이 살아날 수 없다. 정직하게 쓴 글이라고 했는데, 자세하게 살피니 이런 문제가 또 드러난다.
글쓰기에서는 일부러 거짓을 쓰려고 할 때만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니다. 글의 어떤 모양을 내어 보이려고 한다던가, 자기가 한 말을 자꾸 강조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말이 부풀어져서 정확하지 않은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런 것이 거짓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물을 정확하게 그려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더구나 자기 감정이나 생각을 빈틈없이 성실하게 나타낸다는 것은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고, 정직하게 쓴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높은 가치가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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