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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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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서 자기 주장을 펴는 데도, 앉아서 귀기울여 듣는 데도 꼭같이 용기가 필요한 법. ― C.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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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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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탈출법(1)
띄어쓰기 원칙은 간단하다. ‘단어면 띄우고 단어가 아니면 붙여 쓰라!’ 너그럽게도 보조용언이나 명사를 나열할 땐 띄우든 붙이든 다 허용된다. ‘먹어 두다, 먹어두다’ 모두 되고, ‘서울시장애인복지관, 서울시 장애인 복지관’ 둘 다 괜찮다(‘서울시장 애인 복지관’으로 읽힐 게 걱정이면 ‘서울시 장애인 복지관’으로 쓰겠지만).
간단해 보이지만 어렵다. 무엇보다 뭐가 단어인지 아닌지 경계가 선명하지 않다. 관형사, 의존명사는 띄어 쓰고, 접두사, 접미사, 조사, 어미는 붙여 쓴다. 하지만 관형사와 접두사의 경계가 흐릿하고, 의존명사와 조사, 접미사, 어미의 구분도 모호하다. 더구나 두 단어가 합하여 한 단어로 굳어진 합성어에 대한 판단이 들쑥날쑥하다. 안 믿기겠지만, ‘띄어쓰기’는 붙여 쓰고, ‘띄어 쓰다’는 띄어 쓴다! 왜냐고? 영웅호걸들의 설명은 이렇다. ‘띄어쓰기’는 한 단어이고, ‘띄어 쓰다’는 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 달리 말해, ‘띄어쓰기’는 사전에 올라 있고, ‘붙여 쓰다’는 사전에 없기 때문. 사전은 왜 그러냐고? ‘띄어쓰기’는 한 단어이고, ‘띄어 쓰다’는 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라니까!
이런 예는 해수욕장에서 조개껍질 줍는 것보다 찾기 쉽다. ‘흠잡다’는 붙여도, ‘자리 잡다’는 띄운다. ‘병들다, 힘쓰다’는 한 단어지만, ‘바람 들다, 물 쓰다’는 두 단어다. ‘욕먹다, 마음먹다’는 한 단어, ‘나이 먹다, 돈 먹다, 밥 먹다, 꿀 먹다’는 두 단어. ‘달라붙다’는 붙이되, ‘엉겨 붙다’는 띄어 쓸 것! 왜? 한 단어가 아니라니까!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할까?
쳇바퀴 탈출법(2)
거기 누구 없소? ‘뛰어오르다’는 한 단어이고 ‘튀어 오르다’는 한 단어가 아닌 이유를 말해줄 사람. ‘힘없다’는 붙이고 ‘힘 있다’는 띈다는 걸 설명해줄 사람. ‘지난주’는 붙이지만, ‘이번 주, 다음 주’는 띄어 쓰는 연유를 알려줄 사람.
‘한 단어로 굳었다’는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다. 문제는 판단이 다르고 유동적인데도 어느 하나로 정해야만 안심하는 사회적 강박증. 게다가 그런 판단을 누군가에게 모두 떠넘겨왔다는 것. 가시적으로는 사전과 전문가이고 비가시적으로는 국가.
영어와 비교해 볼까. ‘웰빙(웰비잉)’을 어떻게 쓸까? 셋 중 하나. well being, wellbeing, well-being. 책 800만권을 디지털화하여 단어의 사용 빈도와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구글 엔그램뷰어를 써 봤더니, 2019년 기준으로 well being이 1회 쓰일 때, wellbeing은 9회, well-being은 50회 쓰였다. 나라면 well being보다는 well-being을 쓸 테다. 현실세계에서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수집하여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걸 참고하여 자기 글에 반영한다.
설마 우리 사전도 사람들이 ‘힘없다’는 붙여 쓰고, ‘힘 있다’는 줄기차게 띄어 쓰므로 저렇게 쓰라고 해놓았을까? 사람들이 말을 어떻게 쓰는지 계속 관찰하고 수집하여 반영한 걸까? 도리어 전문가들의 흔들리고 논쟁적인 주장을 마치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나 철칙으로 받들고 있는 건 아닐까?
사전만 탓하려는 게 아니다. 뭔가 더 크고 깊게 잘못된 것 같다. 나는 해법을 민주주의에서 찾고 싶은데. (계속)
쳇바퀴 탈출법(3)
달포 전에 책을 하나 냈다. 띄어쓰기 원칙을 엄히 지켜 교정지를 빨갛게 고쳐서 갔다. ‘부드러운 직선’을 닮은 편집자는 난감해했다. 교정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오. 독자가 읽기 편하게 하는 게 원칙이오! 그 원칙이 뭐요? 웬만하면 붙여 쓰는 것이라오. ‘죽어 가는’보다는 ‘죽어가는’이 잘 읽힌다는 것. 앙심이 생기기보다는 그 말이 반가웠다. 독자 본위라!
이상적으로 말해 사전 편찬자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겸손히 수집하고 이를 사전에 주기적으로 반영한다. 그렇다면 저자, 기자, 편집자 등 모든 글쟁이들은 말의 관습을 만드는 주체다. 모든 책임을 사전에 떠넘기거나 전적으로 기댈 필요가 없다.
철자법은 완벽하지 않다. 사전은 늘 과거형이다. 말의 세계에는 고착과 생성이 공존한다. 그러니 함께 순환의 질서를 만들어가자. 변화에 둔감한 체제나 제도는 따로 바꾸더라도, 현장에서 어떻게 쓰는 게 잘 읽힐지 열심히 언어실험을 감행하자.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 코너에 “‘목 넘김’과 ‘목넘김’ 중 뭐가 맞나요?”라 묻고, ‘목 넘김’이 맞다는 답이 달리면 얌전히 그 명령을 따르는 걸로 소임을 다하는 게 아니다. 나의 독자라면 ‘목 넘김’이 잘 읽힐지, ‘목넘김’이 잘 읽힐지 판단하면 어떨까. 각자의 감각대로 시도한 언어실험이 쌓이고 쌓여야 내일의 관습이 된다.
띄어쓰기에도 엘리트주의가 아닌,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시민은 묻고 국가는 답하는 일방주의가 아니라, 한쪽은 시민, 한쪽은 사전이 비슷한 무게로 오르내리는 시소게임이 되어야 한다. 언어민주주의는 글쟁이들의 줏대와 깡다구로 자란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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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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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꽃 - 김수영
나는 잠자는 일
잠속의 일
쫓기어다니는 일
불같은 일
암흑의 일
깨꽃같이 작고 많은
맨 끝으로 神經이 가는 일
暗黑에 휘날리고
나의 키를 넘어서―
병아리같이 자는 일
눈을 뜨고 자는 억센 일
短命의 일
쫓기어다니는 일
불같은 불같은 일
깨꽃같이 작은 자질구레한 일
자꾸자꾸 자질구레해지는 일
불같이 쫓기는 일
쫓기기 전 일
깨꽃 깨꽃 깨꽃이 피기 전 일
成長의 일
<1963.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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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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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구도(鷄鳴拘盜)
鷄:닭 계. 鳴:울 명. 拘:개 구. 盜:도둑 도.
[출전]《史記》〈孟嘗君列傳〉
닭의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 곧
① 선비가 배워서는 안 될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
②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음의 비유.
전국 시대 중엽,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은 왕족으로서 재상을 지낸 정곽군(靖郭君)의 40여 자녀 중 서자로 태어났으나 정곽공은 자질이 뛰어난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 이윽고 설(薛) 땅의 영주가 된 맹상군은 선정을 베푸는 한편 널리 인재를 모음으로써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수천 명에 이르는 그의 식객 중에는 문무지사(文武之士)는 물론 ‘구도’(拘盜:밤에 개가죽을 둘러쓰고 인가에 숨어들어 도둑질하는 좀도둑을 말함)에 능한 자와 닭 울음소리[鷄鳴]을 잘 내는 자까지 있었다.
이 무렵(B.C.298), 맹상군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으로부터 재상 취임 요청을 받았다. 내키지 않았으나 나라를 위해 수락했다. 그는 곧 식객 중에서 엄선한 몇 사람만 데리고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도착하여 소양왕을 알현하고 값비싼 호백구를 예물로 진상했다. 소양왕이 맹상군을 재상으로 기용하려 하자 중신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전하, 제나라의 왕족을 재상으로 중용 하심은 진나라를 위한 일이 아닌 줄로 아옵니다.”
그래서 약속은 깨졌다. 소양왕은 맹상군을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원한을 품고 복수를 꾀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은밀히 죽여 버리기로 했다. 이를 눈치 챈 맹상군은 궁리 끝에 소양왕의 총희(寵姬)에게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그녀는 엉뚱한 요구를 했다.
“내게도 진상한 것과 똑같은 호백구를 주시면 힘써 보지요.”
당장 어디서 그 귀한 호백구를 구한단 말인가. 맹상군은 맥이 빠졌다. 이 사실을 안 ‘그도’가 그날 밤 궁중에 잠입해서 전날 진상한 그 호백구를 감쪽같이 훔쳐내어 총희에게 주었다. 소양왕은 총희의 간청에 못 이겨 맹상군의 귀국을 허락했다.
맹상군은 일행을 거느리고 서둘러 국경인 함곡관(函谷關)으로 향했다. 한편 소양왕은 맹상군을 놓아 준 것을 크게 후회하고 추격병을 급파했다. 한밤중에 함곡관에 닿은 맹상군 일행은 거기서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첫닭이 울 때까지 관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일행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계명’이 인가(人家)쪽으로 사라지자 첫닭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동네 닭들이 울기 시작했다. 잠이 덜 깬 병졸들이 눈을 비비며 관문을 열자 일행은 그 문을 나와 말[馬]에 채찍을 가하여 쏜살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추격병이 관문에 닿은 것은 그 직후였다고 한다.
[주] 호백구 :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가죽을 여러 장 모아 이어서 만든 갖옷. 귀족.고관 대작(高官大爵)만이 입을 수 있었던 데서 귀족의 상징 물이 되기도 했다고 함. 호구라고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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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창의적으로 요청하라 - 미네소타 적십자의 표어
휴가를 가기 전에 헌혈하세요. 모기는 커피와 도너츠를 주지 않는 답니다. 하지만 우리는 드려요. - '화자 근원서'에서
미국 리그의 야구 심판 빌 커티는 어느 날 오후 본루에서 심판을 봤는데, 방문 팀의 캐처가 빈번히 그의 판정에 불복했다. 커티는 2회 말까지 참다가 결국 시합 중지를 선언했다. 그는 말했다.
"이보게,, 자네가 오늘 나를 도와서 볼과 스트라이크를 가려 줘서 정말 고맙네. 하지만 이제 내가 그 차이를 충분히 알아들었으니까, 자네는 탈의실에 가서 사람들에게 샤워하는 방법이나 가르치기 바라네."
어느 목사의 방문에 붙어진 권고
당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이곳에 들어와서 문제를 털어놓으세요. 그리고 아무 문제가 없다면, 어서 들어와서 그 요령을 알려주세요.
유머 있게 요청하라
사람과 사람을 가장 가깝게 하는 것은 웃음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한 호텔의 화장실에 놓여진 안내문
일전에 우리 수건들이 말하기를, 가족 몇 명이 유괴되어 먼 곳으로 끌려갔다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새롭게 몇 명을 입양했고, 이제 다들 행복해 한답니다. 지금 당신이 그 새로운 가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으시겠지요? 아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리틀 브라운의 일화집'에서
영국 연방의 고위 인사를 위한 만찬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집사장이 윈스턴 처칠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그 내용인 즉, 저명한 귀빈 한 사람이 은제 소금통을 슬쩍 훔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처칠은 재빨리 그와 한 세트인 은제 후추통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후에 그는 도둑질을 한 손님에게 가서 중얼거렸다.
"여보게, 우리가 들켰다네, 아무래도 돌려주는 편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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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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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3. 鶴이 오랑캐를 막아 주나
제환공이 거절한 속셈
제환공이 병중에서 쾌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위나라에서 사자가 급히 달려왔다.
"오랑캐 적(狄)이 쳐들어왔습니다. 위성(衛城)이 위태롭습니다. 구원병을 보내 주십시오."
위나라 사자는 다급하게 청했다. 그런데 제환공은 선뜻 응하지 않았다.
"오랑캐 산융을 친 여독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도다. 좀더 버텨 보라고 하여라. 과인이 열국의 제후들과 연락하여 구원할 방도를 찾아보겠노라."
의외의 말을 듣고서 제나라 대부들은 깜짝 놀랐다. 그 때까지 다른 나라에서 구원을 청해 오면 두말없이 구원병을 일으켜 몸소 나섰던 제환공이 아니었던가. 대부들은 차례로 나아가 '위나라를 구원하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제환공은 거듭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중에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대고 내궁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부들은 몰려서 관중의 부중으로 갔다.
"위나라를 구원해야 합니다."
대부들이 주장했다. 관중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요. 오랑캐로부터 구해야지요."
대부들은 그제서야 관중을 앞장 세워 제환공에게 가서 곧 위나라 구원병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관중은 뒤로 빼는 것이었다.
"아직 때가 아닙니다. 잠시 기다려야 합니다."
- 위나라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다.
그런 정도의 뜻을 슬며시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대부들은 막무가내로 관중을 졸랐다.
"위나라를 구원하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급한 일입니다. 자칫 오랑캐가 중원에 진출하게 되면 이는 방백인 우리 제나라의 수치가 됩니다."
대부들의 주장은 모두가 이러했다. 대부들의 주장을 듣고 있던 관중이 그들을 돌아보면서 슬쩍 물었다.
"대부들께서는 마치 사람처럼 녹(祿)을 받는 학대부(鶴大夫), 그 다음의 녹을 받는 학선비, 학장군(鶴將軍)이란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
대부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대꾸를 못했다. 그때서야 관중이 위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 하늘에 정의가 있다면 이 놈의 나라는 크게 혼날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했다.
이것이 위나라 백성들이 궁중을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날에 세자 급자(急子)가 원통하게 죽은 걸 매우 동정하면서부터였다. 결국 급자와 공자 수가 죽고 군위에 오른 것은 성질이 고약한 위혜공 삭(朔)이었다. 백성들은 이 때부터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이 놈의 세상은 착하면 손해 보고 악독하면 득을 보는 형편없이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욕했다. 그후 공자 예와 직이 들고 일어나 위혜공을 몰아내고 급자의 동생 금모를 새로운 군위에 앉혔다. 백성들은 이를 두고 사필귀정이라고 좋아했다. 그런데 제양공이라는 희대의 난봉꾼이자 여동생을 정부삼아 매부를 죽인 자가 연합군을 모아가지고 위혜공을 복위시키자 백성들은 더욱 궁중을 저주했다. 위혜공은 복위한 이후 별 업적이 없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주왕실의 반란자를 돕는 등 오히려 잘못만 많이 범했다. 그리고 죽었다.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적립(赤立)이 군위에 오르니 그가 위의공이다. 위의공은 원래가 천성이 게으르고 이상하게도 날짐승을 특히 좋아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는 국사를 돌보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짓거리만 했다. 그러다 보니 희안한 일이 벌어졌다.
"위의공에게 잘 보이려면 빛깔이 깨끗하고, 모양이 맑고, 능히 울고 춤을 잘 추는 학(鶴)을 진상하면 된다."
사냥꾼들은 백방으로 쏘다니며 학을 잡아다 위의공에게 바쳤다. 그 때마다 위의공은 사냥꾼에게 큰 선물을 내렸고, 학을 기르기 위해 특별한 먹이를 구했다. 마침내 위나라 백성들은 학을 위해서 굶주릴 지경이 되었다. 대부 석기자와 영속은 누차 위의공에게 학 기르기를 그만두라고 간했다. 위의공은 듣지 않았다. 이번에는 공자 훼가 간했다. 위의공은 오히려 화를 냈다. 공자 훼는 그래서 제나라로 망명했다. 백성들은 공자 훼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자 훼가 위의공에게 쫓겨나다시피 외국으로 가버린 것이다. 백성들은 이후 위의공을 극도로 미워하게 되었다. 그 공자 훼가 지금 제나라에서는 어떠한가? 그는 제환공의 맏사위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공자 훼가 선강과 공자 석 사이에 태어났으니 제환공에게는 누님의 아들, 즉 조카이다. 그리고 공자 훼는 현명하고 덕이 있었다. 그런데 제나라에 와 있는 위나라 공자가 또 있었다. 그가 바로 개방으로서 위의공의 큰아들이다. 그 개방이 6년 전에 제환공을 따라와서 지금은 제나라의 대부 벼슬을 살고 있었다.
"위나라 문제는 가볍게 다룰 수가 없소이다. 좀더 기다려 봅시다."
관중이 말하자 그제서야 대부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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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소운편"
김소운(1907~1981)
수필가, 시인. 일본 문학가. 호는 소운. 경남 부산 출생. 일본에서 중학 중퇴. 초기에는 시로 출발하여 관념시 계통의 시작품을 발표했으나 일본인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을 통감하고서 한국의 민요, 동요, 시 등을 일본에 소개하는 작업을 벌여 크게 주목받았다. 문학의 사회자로 문화 수출의 상인으로 자처했던 그는 후기에는 인생에의 통찰이 담긴 격조 높은 수필을 많이 발표하여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어질고 너그러운 겨레의 피
앉은뱅이 청년에게서 신문을 산 부인네의 '가슴이 뿌듯했다'는 그 행복감-, 20원으로 살맛을 잃었다는 D여사의 비애-. 하늘과 땅만큼 거리가 먼데도, 하나 공통된 것은 둘 다 지극히 작은 불씨에서 기쁨이, 슬픔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남의 가슴에 기쁨을 심어 주는 것이 '선의의 불씨'라면, 절망과 비애에 연하는 또 하나의 '불씨'도 그 위력은 결코 그만 못지않다. 성냥개비 한 개로도 도시 하나를 불태울 수 있는, 그것이 '불씨'의 작용이다.
6.25직후 한강 가에 물밀듯 피난민들이 밀려들었을 때, 서로 먼저 건너려고 자전 뭉치를 손에 쥐고 뱃가에서 사람들이 붐벼대는 그 수라장에서, 웬 노인 사공 하나가 '선가 없는 사람은 이리로 오시오.'하고 배 한 척으로 진종일 사람을 실이 나르면서 일체 돈을 받지 않더란 이야기를, 바로 그 당시, 그 배로 한강을 건넌 이에게서 들었다. 어떤 사람이 돈 뭉치를 그 사공 앞에 내밀면서, "이걸로 먼저 우리 식구를 실어 주시오."하자, 노사공은 '돈?' 하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여전히 선가 없는 사람들만 골라서 태우더란 얘기다. 불씨 하나에 겨누기로는 너무나 황송하고 우러러보이는 이야기다. 그러나 애 겨레의 혈관 속에 흐르는 어질고 너그러운 피가 어찌 이 날의 이 노사공 하나의 것이라고 단정하랴.
'-구름장이 제아무리 두꺼워도 해를 잃어버렸다고는 행여 생각지 맙시다. 두꺼운 구름장을 헤치고 해는 또다시 나타납니다.'
오랜 친구인 D여사 내외분에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다. 설령 그 햇빛을 눈으로는 목 본다 하더라도 그 날을 믿어야 한다고. 그리고 또 하나, 반딧불 같은 작은 '불씨'겨레의 혈관 속에서 다시 깨어날 '선의의 불씨'를 우리는 믿고 살자고. 행복이란, 목마를 때 마시는 물 한 그릇. 아랍과 이스라엘이 겪은 이번 전쟁에서 생채기 하나 없는 수많은 병사들의 시체가 이스라엘 사막 지대에서 발견됐다는 얘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물이 없어서 말라 죽은 희생자들이라고 한다. 이것은 지나친 극단의 예라고 하더라도, 그러나 마음의 '굶주림''목마름'에도 아쉽고 긴한 것은 마실 수 있는 물 한 그릇-선의의 불씨 하나-그것이다.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보람 있게 살 수 있고, 그것이 없을 때 절망의 구름장이 우리들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행복의 '파랑새'는 바로 제 눈앞에 있었다는 메테를링크의 찌루찌루 미찌루 이야기-우리가 찾는 '행복의 불씨'도 그다지 먼 곳에 있는 것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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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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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슬픔은 두고두고 우리네 일이네
- 주희를 추모하며
`수녀님, 전 주희 언니와 의자매를 맺은 동생이에요. ... 그토록 자유와 건강을 원하고 죽음보다 잊혀짐을 두려워하더니 언니는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가 버렸습니다. 아직 믿기지 않는 일이라 넋을 놓고 있는데 문집이 나왔다며 찾아가랍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뻐할 언니가 없는 문집이 기쁨보다 슬픔이 되어 다가옵니다. 이 편지지는 언니의 유품입니다.`
서주희 였음으로 되어 있고 `경대병원 B동 519호 사람들`이란 부제가 붙은 <우리들의 이야기Ⅱ.>라는 문집은 받던 그날도 나는 주희가 말린 장미꽃잎과 색종이로 접은 종이학을 가득 담아 보내 준 둥근 유리병을 바라보며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좋아했으나 병실에 갇혀 갈 수 없었던 푸른 바다를 창 밖으로 내다보며 이젠 한줌의 재가 되어 스러진 그의 푸른 넋을 아련한 그리움과 슬픔 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주희야, 잘 가! 응?" 하면서... 지난 5월 대구 가스폭발 사고가 나기 바로 이틀 전, 나는 대구 교도소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에 일정이 촉박했지만 서둘러 병원에 들러 주희를 잠시 만나고 왔는데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되어 버렸다. 그날 따라 주희는 힘들게 입을 열어 "많이 보고 싶었더랬어요"하며 기뻐했고, 그의 옆에 있던 그의 동생 은희 도 농아라서 말은 못했으나 무척이나 반가워 하며 주스를 따라 주고 주희의 앨범을 보여 주는 등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로부터 2주일 만인 5월 21일, 나는 주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직접 갈 수 없는 형편이어서 대구에 사는 친지에게 나 대신 가줄 것을 부탁했더니 하얀 장미 꽃다발을 들고 갔노라고 했다.
`3월에 띄우는 글` 이란 제목으로 이미 주희에 대한 글을 <꽃삽>에도 쓴 일이 있지만 내가 처음 주희를 알게 된 것은 1993년 2월, <샘터>의 기자를 통해서였다. "독자의 청에 의해 수녀님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립니다. 얼마 전 저희 회사로 한 젊은이가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며칠 전에 지난해(1992년) <샘터> 인간승리상을 탈 서주희 양을 찾아갔는데 의사의 말로는 두 달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하더군요. 고통 중에서 시종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마치 천사 같았어요. 그 얼굴을 보니 두 달밖에 못 한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퍼뜩 법정 스님이나 이해인 수녀님 같은 분이 편지를 한 통 써서 보내 주신다면 몇달은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희들은 그 얘길 듣고 수녀님께 부탁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편지를 보내 주십사고요. 불의의 교통사고로 주희 양은 8년째 누워 있으며 이젠 눈과 왼손만이 겨우 살아 움직이는데 그런 상태에서도 꾸준히 글을 보며, 특히 수녀님의 글들을 주의 깊게 읽는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따스한 격려의 글을 보내 주신다면 어떤 도움보다 큰 빛을 얻으리라 생각됩니다.
주희 양이 꼭 내 글을 받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안했지만 하도 간곡한 부탁이기에 난 이내 글을 보내기 시작했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방문하여 필담도 나누었다. 우리 수녀원의 예비 수녀들과도 몇 번 글을 주고받았던 주희는 자기가 여러 날 모아 둔 사탕이나 초콜릿을 고마움의 표시로 보내 오곤 했다. 참으로 오랜 세월 앓아 누운 사람답지 않게 주희는 늘상 평온하고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도서실만큼이나 수많은 책들로 채워진 병실에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성호라는 남학생과 그의 친구들, 그들이 커가면서 사귀는 여자친구들까지 인연이 닿아 친동생 세 명 외에도 동생들이 많아 행복하다던 주희는 차츰 귀가 안 들림에도 그 동생들이 병실에서 열어 주는 작은 음악회를 즐겼으며, 함께 문집을 만드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주희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의 아쉬움을 이번에 나온 문집의 머리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사람들이 내게 하는 가장 흔한 말 중의 하나가 무엇을 가지고 싶으냐이다. 그러면 나는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때가 많다. 어차피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두 두고 가야 하는데 무엇이 그리 아쉬우냐고! 하지만 열심히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난 정말 미련한 사람인 것 같다. 왜냐하면 떠나는 사람에게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가야 하는 건데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난 어느 분의 말처럼 행복한 사람이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지난 2년 간 내가 주희로부터 받은 십여 통의 편지 중 몇 구절을 다시 읽어 본다.
`요즘도 매달 <샘터>를 사 읽습니다. <샘터>는 제게 은인인 셈이니까 항상 반가워요. 수녀님이 쓰신 `꽃삽`과 `한국에서 발견한다`를 제일 먼저 읽습니다. 작은 사랑 얘기가 너무나 좋고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이 궁금하기 때문이지요. 잔잔하게 퍼지는 사랑의 향기를 지닌 수녀님의 글들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고,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수녀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무척 부러워요. 이렇듯 못난 주희도 늘 기억해 주심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요.`
`...1년 사이에 수녀님 얼굴이 주름이 느신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어요. 제게 이것저것 챙겨 주시던 그 모습은 애틋한 정을 느끼게 해 기뻤습니다. ...제 주위엔 고맙고 좋은 사람이 많아서 큰 복이지만 문득문득 나는 혼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녀님, 저는 바람이 되고 싶어요.`
누워서 어렵게 쓴 편지, 보통 1주일이나 걸려서 쓴 주희의 긴 편지들을 다시 보니 그가 살아 있을 때 좀더 자주 글을 보내 주지 못했던 점이 아쉽고 미안하다. "우리 주희는 좋은 데 갔겠지예, 그 불쌍한 것이..." 하며 말을 잇지 못하던 주희 어머니와 모처럼 긴 통화를 했던 오늘, 창 밖엔 가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오면 마음이 포근하고 차분해진다던 주희, 그는 유난히 비를 좋아했었다. 평소에 그토록 좋아했다는 김창완의 노래말 속에서 한 줄기 비가 되어 떠난 주희의 애절한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하늘도 이별을 우는데... 슬픔은 오늘 이야기 아니고 두고두고 우리네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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