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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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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의 치료제는 호기심이지만 호기심을 고치는 약은 아무 것도 없다. ―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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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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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글쓰기
아버지는 광부였다. 광산 붕괴 사고로 코를 다친 다음에는 목수가 되었다. 그 후로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매일 일기를 썼다. 몰래 일기장을 펼치면 ‘절골 김○○씨네 지붕 슬라브(슬래브) 공사 2만원’, ‘문곡 황씨네 담장 수리 1만원’, ‘황지시장 실비집에서 권○○과 대포 한잔. 내가 냄.’ 식이었다. 매일 쓰는 아버지의 글쓰기는 당최 늘지 않았다. 재작년과 어제의 일기가 매일반이었다. 하루를 포대기 하나에 다 쓸어 담아서 그렇다.
혹시 당신이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글쓰기는 사건을, 대상을, 생각을 잘게 쪼개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오늘 아침 맨 처음 한 일이 뭔가? 양치질? 그냥 ‘양치질을 했다’고 퉁치면 안 된다. 그걸 종이 한 장 가득 쓸 수 있어야 한다. 조금밖에 남지 않은 치약을 양 손가락으로 눌러 낡아 뭉개진 칫솔 위에 짜 윗니부터 아랫니로 앞니에서 어금니 쪽으로, 마지막으로 헛구역질을 하며 엷게 낀 혀의 백태를 닦고 수도꼭지에 얼굴을 왼쪽으로 돌려 물을 한 모금 머금은 다음에 올칵올칵 입을 헹구고는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며 혀를 날름 내밀어보았다, 고 해야 한다.
글쓰기는 시간을 달리 대하는 일이다. 쓰지(기억하지/말하지) 않으면 시간(인생)은 장맛비에 젖어 떡이 된 책처럼 된다. 쓴다는 건 한 덩어리가 된 시간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떼어내어 구겨지고 얼룩진 종이 위에 적힌 흔적들을 다시 읽는 일이다. 글을 쓰다 보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달라진다. 시간만이겠나. 모든 생명은 특이하며 순간순간이 유일무이하다는 것쯤은 알게 되지 않겠나.
무술과 글쓰기
여러 동작을 할 수 있으면 뭐 하나. 하나라도 정확하게 할 수 있어야지. 합기도 (Aikido) 에 ‘ 전환 ’ 이라는 동작이 있다. 쉽다. 정면을 향해 발을 앞뒤로 벌려 선다. 앞발을 축으로 삼아 시계 반대 방향으로 180 도 돌면 된다. 흐느적대지 말고 중심을 유지하면서 재빨리 돌라. 뒷발은 가급적 직선으로 움직이되 몸은 팽이처럼 탄력 있게. 시선은 저 멀리 지평선을 향하고. 이 쉬운 동작은 초보자뿐만 아니라 십수 년을 수련한 유단자들도 매일 반복한다. 반복하면서 생각한다. 무게 중심을 어느 정도 분배할지, 뒷발을 끌지 살짝 띄울지, 다리를 어느 정도 구부릴지, 이런 생각을 하며 돌지, 생각을 하지 않고 돌지!
생각을 카메라로 찍어주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 세숫대야 물을 마당에 끼얹듯, 생각했던 것이 종이 위에 글자들로, 단어들로, 문장들로 쫙 뿌려지는 기계 말이다. 그런데 이놈의 글쓰기는 왜 생각대로 안 되는가. 생각에서 문장이 튀어 오르는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머릿속에 문장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쓰레기봉투에 담긴 유리 조각처럼 뚫고 나올 뿐. 글쓰기와 생각은 차원이 다르다. 글쓰기는 언제나 일차원이었다. 생각이 많다고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다고 못 쓰는 것도 아니다. 글쓰기는 생각보다는 행동하기에 가깝다. 쓰고 나서야 뭘 쓰려 했는지 알게 된다. 쓰지 않은 생각은 아무 생각도 아니다. 쓰고 나서 생각하라는 말은 그래서 적절하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문보다는 무에 가깝다. 반복이 최우선이다. 동분서주할 필요도 없다. 소재 하나로 꾸준히 반복하면 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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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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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 김수영
피아노 앞에는 슬픈 사람들이 많이 있다
冬季放學동안 알바이트를 하는 누이
잡지사에 다니는
영화를 좋아하는 누이
식모살이를 하는 조카
그리고 나
피아노는 밥을 먹을 때도 새벽에도
한밤중에도 울린다
피아노의 주인은 나를 보고
詩를 쓰니 음악도 잘 알 게 아니냐고
한곡 쳐보라고 한다
나의 새끼는 피아노 앞에서는 奴隸
둘째새끼는 王子다
삭막한 집의 삭막한 방에 놓인 피아노
그 방은 바로 어제 내가 혁명을 기념한 방
오늘은 기름진 피아노가
덩덩 덩덩덩 울리면서
나의 枯渴한 悲慘을 달랜다
벙어리 벙어리 벙어리
속모도 벙어리 나도 벙어리
모든게 중단이다 소리도 思念도 죽어라
중단이다 명령이다
不定期的인 중단
不定期的인 위협
―이러면 하루종일
밤의 꿈속에서도
당당한 피아노가 울리게 마련이다
그녀가 새벽부터 不定期的으로
타온 순서대로
또 그 悲慘대로
값비싼 피아노가 값비싸게 울린다
돈이 울린다 돈이 울린다
<196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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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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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鷄肋)
鷄:닭 계. 肋:갈빗대 륵.
[출전]《後漢書》〈楊修傳〉. 《晉書》〈劉伶傳〉
먹자니 먹을 것이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갈비란 뜻. 곧 ① 쓸모는 별로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의 비유. ② 닭갈비처럼 몸이 몹시 허약함의 비유.
① 삼국 시대로 접어들기 1년 전(219)인 후한(後漢) 말의 일이다. 위왕(魏王) 조조(曹操)는 대군을 이끌고 한중(漢中)으로 원정을 떠났다. 익주[益州:사천성(四川省)]을 차지하고 한중으로 진출하여 한중왕을 일컫는 유비(劉備)를 치기 위해서였다. 유비의 군사는 제갈량(諸葛亮)의 계책에 따라 정면 대결을 피한 채 시종 보급로 차단에만 주력했다. 배가 고파 도망치는 군사가 속출하자 조조는 어느 날, 전군(全軍)에 이런 명령을 내렸다.
“계륵(鷄肋)!”
‘계륵?’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주부(主簿) 벼슬에 있는 양수(楊修)만은 서둘러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 장수가 그 이유를 묻자 양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닭갈비는 먹자니 먹을 게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한중 역시 그런 닭갈비 같은 땅으로 생각하고 철군(撤軍)을 결심하신 것이라오.”
과연 조조는 며칠 후 한중으로부터 전군을 철수시키고 말았다.
[주] 한중 : 섬서성(陝西省)의 서남쪽을 흐르는 한강(漢江:양자강의 큰 지류) 북안의 험한 땅으로서 진(秦)나라를 한 유방이 항우로부터 분봉(分封)받아 한왕(漢王)을 일컫던 곳.
② 진(晉:西晉, 265~316)나라 초기에 죽림 칠현 가운데 유령(劉伶)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유령이 술에 취하여 행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상대가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들자 유령은 점잖게 말했다.
“보다시피 ‘닭갈비[鷄肋]’처럼 빈약한 몸이라서 그대의 주먹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소.” 그러자 상대는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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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긴박감을 갖고 요청하라 - 팀 피어링
나는 '더 큰 결과를 더 빠르게 창조하는 법'이라는 과정을 수강했고, 그 지도 교사는 도리스였다. 그녀는 정말 불굴의 여성이었다. 나는 책을 쓰기 위하여 애플 컴퓨터를 한 대 갖고 싶었다. 당시는 첫 매킨토시가 막 개발되어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가는 곳마다 컴퓨터를 기다리는 사람들 명단이 즐비했다. 컴퓨터를 가장 빠르게 구할 수 있는 시간이 무려 45일 후였다. 내가 전화를 걸어 도리스에게 컴퓨터를 갖는 과정에 대해 보고하자, 그녀가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당신은 그보다 더 강해요. 당신은 그 컴퓨터를 가질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요."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힘찬 목소리로 아직도 귀가 윙윙 울릴 지경이었다. 나는 타인으로부터 그런 대접과 평가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이리 저리 전화를 걸었고 결국 애플 컴퓨터 본사와 연락이 닿았다. 한 여성이 전화를 받자, 내가 말했다.
"나는 컴퓨터를 가져야 합니다."
그 말은 일을 딴 판으로 바꿔 놓았다. 나의 확신과 다급함이 전화를 받은 여성을 움직였다. 그녀는 말했다.
"지방 대리점 전화번호를 모두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대리점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통화한 판매원에게 말했다.
"나는 컴퓨터를 가져야 합니다."
대부분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도 겨우 전시용 컴퓨터를 한 대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기다리는 중입니다."
다섯 번째 전화를 받은 판매원이 말했다.
"우리의 전시용 컴퓨터 중 당신에게 한 대를 팔겠소."
토요일 아침, 나는 컴퓨터를 가졌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우와,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구나."
나는 열의를 갖고 요청할 때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큰 목적을 지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정열을 지닌 요청이 몇 배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내가 요청을 받는 입장이었을 때도 똑같았다. 내가 부동산 사무소에서 일할 때, 한 임대 주택에 신청자가 많이 몰렸던 일이 있다. 그런데, 한 여성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집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나는 지금 그 집 앞에 있는데, 너무 아름다운 곳이에요. 나는 그 집을 가져야 해요."
나는 그 집을 그녀에게 주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바디 랭귀지를 사용하여 요청하라
요청할 때, 상대와 눈을 맞춰라. 당신이 눈을 피하면, 그들은 당신을 덜 신뢰할 것이다. 그리고 눈을 맞춤으로써 당신의 요청에 대한 그들의 무언의 반응을 읽을 수 있다. 당신이 눈을 피하면, 당신은 그 중요한 무언의 신호를 놓칠 것이다. - 도티 왈터스
당신의 목소리는 음악과도 같다. 거칠고 무례하게 '그걸 줘요!'라는 요청은 갈등을 부른다. 부드러운 선율을 생각하라. 친절하고 미소 띤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라.
"나에게 그것을 허락하다니, 당신은 너무 사려 깊고 관대하시군요.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감사 표시는 항상 가치를 높인다. - 마이클 제프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그들에게 얼마나 감탄하는지 알리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의 말은 기록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당신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해도 될까요?"라는 말보다 더한 칭찬은 없다. 칭찬은 사람들에게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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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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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2. 제환공의 환상
애강의 죽음
어느 날이었다. 관중의 부중에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관중을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공자 반이 시해되고, 민공도 암살됐으니
당시에 그 흉칙한 칼 휘두른 게 누구냐
노나라 난이 모두 구중 궁궐에서 생겼으니
하필이면 제나라 여자들만 데려왔느냐
관중이 노래를 듣고 보니 심상치가 않았다. 서둘러 낯선 이를 모셔들이니, 그 사람이 관중에게 물었다.
"내가 부른 노래를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아직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그대를 중부라 부르며, 어진 이로 모시는 것은 알고 있으시오?"
관중은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묵묵 부답으로 있는데 낯선 사람이 말했다.
"나는 원래 주나라에서 농사짓는 시골뜨기였습니다. 그러다가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관정승을 찾아온 것은 결코 벼슬을 원하거나 무슨 공명심 때문이 아닙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나라에 어진 이가 있으면 좋지 못한 풍속도 고쳐진다고 합디다. 하물며 군후의 위명은 천하를 진동하고, 어진 정승이라 나라마다 본받으려는 중부가 계신 제나라에서는 딸을 어찌 교육시키길래 나라마다 분란을 일으킵니까. 그걸 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관중은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말했다.
"노나라의 환공부터 시작해서 지난 민공까지 군후들이 제 명에 죽지 못하고 비명에 가거나, 아직 춘추 정정한데 죽은 것은 제나라 딸들인 문강과 애강의 잘못이 매우 큽니다. 지금 애강은 주나라에 와 있습니다. 주나라 사람들은 애강의 행실을 주나라 딸들이 배울까 봐서 전전긍긍합니다. 관정승께서는 좋을 대로 하십시오. 아무튼 이 말씀을 직접 전해 드리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관중은 기분이 몹시 울적했다. 그 때 손님에게 마실 차를 준비해서 나왔던 청이 눈치를 챘다.
"여자는 출가하면 남편을 따를 뿐, 시집가서 저지른 죄를 친정에서 처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애강을 노나라로 보내어 그쪽에서 처리하도록 하십시오."
관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말이 옳구려."
관중은 곧 궁으로 들어가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지금 애강이 주나라에 피신해 있다 합니다. 우리가 그냥 방관만 했다면 노나라 사람들은 반드시 우리 제나라를 원망할 것이며 자칫하면 두 나라 사이에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지장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비밀리에 애강을 노나라에 보내십시오."
제환공은 곧 주나라로 수작을 보냈다. 주나라에 당도한 수작은 애강을 찾아가서 아뢰었다.
"출가하시면 죽어도 시집에서 죽는다 하지 않습니까. 어서 노나라로 돌아가사이다."
애강은 노나라로 돌아가려고 수작을 따라나섰다. 애강이 제나라 땅 이(夷)란 고을을 지날 때였다. 해가 저물어서 그녀는 관사에 들었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수작이 애강에게 정중히 권했다.
"부인께서 공자 반과 노민공을 죽였다는 것은 이제 노나라, 제나라 사람은 물론이고 주나라에까지도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부인이 노나라에 돌아가시면 무슨 면목으로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태묘를 대하시렵니까. 그리고 공자 경부와의 관계도 세상이 다 압니다. 그러니 부인께서는 차라리 손수 목숨을 끊으시어 지금까지의 허물을 덮어 버리는 것이 나을 듯싶소이다."
애강은 이 말을 듣자, 문을 걸어 잠그고 구슬피 통곡했다. 애강의 울음소리가 밤새 사방으로 들렸다. 새벽녘이 되어 울음소리가 멈췄다. 수작은 얼마 동안을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방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애강은 방 한가운데 대들보에다 허리띠를 걸어 목을 매고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날이 밝자 수작은 즉시 이(夷)지방의 관장(官長)을 불러 애강을 염하고 입관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급히 말을 달려 노나라에 가서 애강의 죽음을 노희공에게 알렸다. 노희공은 비록 서모의 관계였지만 마치 모친을 대하듯 예를 갖춰 후히 장사지냈다.
제환공의 병
이제 제환공은 홀가분해졌다. 그래서 다시 예전처럼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시거나 또는 사냥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제환공은 큰 못가 언덕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제환공과 신하들은 일제히 수레와 말을 달리며 어지러이 달아나는 짐승들을 쐈다. 한참 재미나는 판이었다. 그런데 제환공은 문득 수레를 멈추고 저편 한 곳만 바라볼 뿐 넋을 잃은 듯 말이 없었다. 제환공의 얼굴엔 무서워하는 기색이 완연히 떠올랐다. 수작이 그러고 있는 제환공 곁으로 가서 물었다.
"주공은 눈을 부릅뜨고 뭘 그렇게 보십니까?"
제환공이 그제야 돌아보았다.
"과인은 지금 막 귀신을 보았도다. 그 모양이 심히 괴상해서 참으로 무서웠노라. 한참 만에 없어졌으니 상서롭지 못한 징조나 아닌지 모르겠도다."
수작이 대답했다.
"귀신은 음물(陰物)인데 어찌 태양이 중천에 있는 백주에 나타날 리 있겠습니까?"
"지난날에 우리 선군이 고분(姑芬) 땅에서 큰 돼지 같은 괴물을 보신 것도 또한 대낮이 아니었던가! 너는 잔말 말고 나를 위해 속히 가서 관중을 모셔 오너라."
수작이 불만인 듯이 대꾸했다.
"관정승이 성인이 아니어든 어찌 귀신의 일까지 세세히 알겠습니까?"
"중부께서는 지난 날에 능히 유아(兪兒)도 아셨거늘 어찌 성인이 아니란 말이냐."
"그 땐 주공께서 먼저 유아에 관한 모양을 자세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관중이 주공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럴싸하게 말을 꾸며댄 것입니다. 오늘은 주공께서 다만 귀신만 보았노라 말씀하시고 그 모양일랑 말하지 마십시오. 그러고도 관중의 대답이 주공께서 보신 바와 똑같다면, 그는 틀림없는 성인입니다."
"그럼 그러기로 하마."
제환공은 대답하고 즉시 어가를 몰아 궁으로 돌아갔다. 궁으로 돌아가서도 제환공은 역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날 밤 마침내 제환공은 병으로 드러누웠다. 꼭 병 증세가 학질 비슷했다. 이튿날 관중과 모든 대부들은 주공을 문병하려고 모여들었다. 제환공이 관중을 가까이 불렀다.
"과인이 어제 사냥하다가 귀신을 본 뒤로 불안하고 무서워서 말도 잘 못하겠소. 그러니 중부는 그 귀신 모양을 말해 보오."
관중은 능히 대답을 못했다. 수작이 곁에서 웃으며 말했다.
"신은 애초부터 중부가 대답 못할 줄 알았습니다."
제환공의 병은 날이 갈수록 더 심했다. 이에 관중은 주공의 병을 근심하여 마침내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성문에 걸었다.
- 누구든지 능히 주공이 보신 그 귀신의 형상을 말하는 자 있으면 내가 받는 녹 3분의 1을 주겠다.
어느 날 관중의 집 문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삿갓을 깊숙이 쓰고 조각조각 누빈 옷을 입고서 관중을 만나 보겠다고 청했다. 그를 본 관중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정중히 읍하고 방 안으로 영접해 들이니 그 사람이 관중에게 묻는 것이었다.
"군후께옵서 지금 병중이십니까?"
"그렇소."
"그럼 군후께서는 백주에 귀신을 보시고 병환이 난 것이 아닙니까?"
"그러하오."
"군후께선 큰 못 속에서 나타난 귀신을 보셨다고 하지 않으시던가요?"
"그렇소. 그대는 그 귀신의 모양을 자세히 말할 수 있겠소?"
"청하옵건대, 군후를 뵈옵고 말씀 드리게 해주십시오."
그 사람을 데리고 관중은 궁으로 들어가서, 먼저 관중이 침실로 들어가 제환공을 뵈니, 제환공은 요와 이불을 두껍게 쌓고 그 위에 앉아 있는데 양편에선 두 부인이 연신 등을 문지르고 있었고 또 다른 두 부인은 그의 발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수작은 탕약을 바치고 제환공이 다 마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관중이 아뢰었다.
"주공의 병환을 능히 말하겠다는 사람이 있기로 신이 데리고 왔습니다. 한번 불러 보시겠습니까?"
"어서 이리로 데려오도록 하시오."
관중이 나가 그 사람을 데려오니 제환공은 그의 차림새를 보고는 대단히 불쾌해 했다.
"그대가 귀신의 모양을 알아맞힌다는 사람인가?"
"주공께옵서 자기 자신을 병중으로 몰아넣고 계실 뿐, 귀신이 어찌 주공을 해치겠사옵니까?"
제환공의 말에 그 자는 태연히 말했다. 제환공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귀신이란 과연 있는 것인가?"
"있습니다. 물에는 망상이란 청면 홍신(靑面 紅身)의 귀신이 있고, 언덕에는 개처럼 생긴 뿔을 가진 귀신이 있으며, 산에는 말을 잘하는 인면 수신(人面 獸身)의 귀신이, 들에는 방황(彷徨)이란 귀신이, 못에는 위사(委蛇)란 귀신이 있사옵니다."
"그러면 위사란 귀신이 어떤 것인가 자세히 그 모양을 과인에게 말해 보라."
"위사란 그 크기가 수레바퀴통만 하고, 길이는 수레를 뒤집어 서로 맞춘 원문 길이만 하고, 옷은 자색이고, 관은 붉은 것을 쓰고 있습니다. 이 위사는 수레가 달리는 소릴 가장 싫어해, 수레가 달리는 소릴 들으면 머리를 쳐들고 일어서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그 모양이 괴상하고 대단히 무서워 바로 보지 못하며, 만일 이 괴물을 똑바로 본 사람은 반드시 천하의 패권을 잡는다고 하옵니다."
이 말을 듣자, 제환공은 크게 웃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벌떡 일어섰다.
"내가 본 것이 바로 그것이오!"
즉시 제환공은 정신이 상쾌해지고, 아픈 증상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가뿐해졌다. 제환공이 만면에 희색을 띠고 물었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신의 이름은 황자(皇子)이며, 제나라 서쪽 시골에 사는 농부입니다."
"그대는 앞으로 벼슬하여 과인을 도와 주오."
제환공은 마침내 황자에게 대부(大夫) 벼슬을 줬다. 그러나 황자가 굳이 사양했다.
"주공은 항상 주왕실(周王室)에 대한 충성을 잊지 마시고, 사방 오랑캐를 물리치고, 중원을 편안케 하고, 백성을 사랑하사 저 같은 신하로 하여금 태평 시대의 백성이 되게 하는 동시에 농사 짓는 것이나 방해당하지 않게 해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벼슬을 원하지 않습니다."
"고고(孤高)한 선비로다."
이에 제환공은 황자에게 곡식과 비단을 하사하곤,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그 시골집을 수리해 주게 하고, 동시에 관중에게도 많은 상을 내렸다. 수작이 불평했다.
"중부가 능히 말하지 못하고 황자(皇子)가 알아맞혔는데 어찌 중부에게도 많은 상을 내리시나이까?"
"과인이 듣건대,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혼암(昏暗)한 짓이며, 대중(大衆)에게 맡기는 걸 밝은 사람이라고 하더라. 만일 중부가 없었다면 과인은 황자의 말을 듣지 못했으리라."
마침내 수작은 제환공의 큰 도량에 감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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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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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소운편"
김소운(1907~1981)
수필가, 시인. 일본 문학가. 호는 소운. 경남 부산 출생. 일본에서 중학 중퇴. 초기에는 시로 출발하여 관념시 계통의 시작품을 발표했으나 일본인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을 통감하고서 한국의 민요, 동요, 시 등을 일본에 소개하는 작업을 벌여 크게 주목받았다. 문학의 사회자로 문화 수출의 상인으로 자처했던 그는 후기에는 인생에의 통찰이 담긴 격조 높은 수필을 많이 발표하여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20원 염세론
일본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책 가게들 - 수천만 원의 자본을 들인 대서점에서 명동 뒷골목 노점 책장수까지, 서울 거리만 새도 이런 책가게가 자그마치 4, 50집은 더 될 것 같다. 그런 노점 가게에서 일본 잡지 값을 물어 본다. 5, 6개원 지난 헌 부인 잡지다. '2백 원입니다.' 혹은 '2백 50원입니다.' 거침없이 부르는 그 '값'은 그 책에 찍혀 있는 정가 그대로이다. 일화와 우리돈의 환산율로 따지고 보면 30~40프로, 정가보다 더 비싼 계산이다. 일본서는 5, 6개월 지난 잡지는 쓰레기다. 10원 균일로 고책상 가게 앞에 무더기로 쌓여 있어도 사 갈 사람이 없다. 그 '쓰레기'가 이 나라에서 보배 취급이요, 한두 달 전에 나온 새것이면 정가의 3, 4배. 우리들의 주림과 가난함이 이러하다. 하필이면 이런 얘기가 아니라도 오늘날의 우리들의 빈곤을, 마음의 굶주림을 진단할 카르테는 얼마든지 있다. 10분만 거리를 거닐어도 - 버스나 합승을 한 번만 타도 -.
어느 날, 밤늦게 돌아오던 D여사는 종점 하나 앞에서 내려야 할 것을, 연일의 과로로 버스 안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와 버렸다. 같은 버스로 한 정류장 되돌아가면 될 것이나 2,3분만이라도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침 종점에서 떠나 나오려던 다른 버스에 바꿔 탔다. D여사가 이제 막 닿은 버스에서 내린 것을 새로 떠나는 버스 차장도 보고 있었다. D여사가 한 정류장을 되돌아와서 "미안해~"하고 내리려 하자, 차장이 "요금은요? 한다. 되돌아온 것을 아는 차장이 한 정류소 사이에 요금을 달랄 줄은 D여사도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금시 거기서 내렸던 걸 차장도 보았잖니?"
D여사가 그러자,
"봤지만, 이 차가 아니잖아요! 남의 차로 지나갔거나 말았거나 내가 알게 뭐예요!"
눈을 흘기면서 쏘아붙이는 차장 아가씨의 서슬에 D여사는 두말없이 20원을 내주고 버스를 내렸다. 며칠 후에 나를 만났을 때 D여사는 그 날 얘기를 하면서 이런 나라에 살아 있는 것이 진정 싫어졌다고 한숨 반, 웃음 반으로 하소연을 했다. 나와는 오랜 친구인 D여사 부처는, 나와 마찬가지로 외지 생활에서 여러 해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분들이다. 고국이 그리워서 굶어도 내 나라에서 굶겠다고 남편을 설득해서 돌아온 D여사이고 보니 '20원'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는 그분의 심정은 알고도 남음이 있다.
패전직후의 일본에서는 메틸알코올을 탄 값싼 술로 해서 실명을 하고, 때로는 한잔 술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다. 한잔 술에 섞인 메틸의 분량이 인명을 앗아가도록 대단한 독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조금씩 쌓이고 차차로 축적된 독성이 최후의 한 잔으로 그 한계를 넘어 버릴 때 '사고'가 일어난다. '20원 염세론'의 D여사의 경우가 이런 것이 아니었던가? 대수롭지 않은 작은 이화감, 작은 감정의 축적이 마침내는 조약돌 하나의 차질에도 이겨 내지 못하게 된다. D여사 같은 이는 이 사회의 부적격자이다. 쇠가죽처럼 질기고 툭툭한 정신이 아니고는 이 나라에서는 살아가지 못한다. 버스 차장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상냥하고 착한 차장 소녀들을 나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퉁명스럽고 미련한 '메틸알코올'식 차장이 절대 다수란 것도 사실이다. 어둡고 침침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의 '마음의 주림'을 설명하기로는 이런 이야기들은 백분의 1, 천분의 1의 샘플 축에도 못 간다. 5, 6만 대의 자동차가 달리는, 20여 층의 호텔이 세워진다는 서울의, 가난하고 초라함이 이러하다. '물'이 있다고 해서, '흙'이 있다고 해서 우리의 '주림'이 메워지지는 않는다. 연잎의 이슬로 목을 축이는 - 해초 위에 돌 부스러기를 덮어서 곡식을 가꾸는 그 아쉬운 생활자들이 어느 의미로는 우리보다 백 배는 더 부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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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내가 꿈꾸는 문구점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외출의 범위가 극히 제한되어 있는 수도자의 신분이지만 내가 가장 자연스럽게 갈 수 있는 곳.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문구점입니다. 문구점에 들를 때마다 나는 설레임을 감출 수 없고, 꿈꾸는 어린이가 되는 느낌입니다. 그 안에 들어서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가 많기에 여유 없는 날은 아예 들어가는 것을 포기합니다. 바닷가 산책을 나갔다 오는 길에 종종 동네 문구점에 들러 예쁜 편지지, 메모지, 노트, 볼펜, 포장지들을 고르다 보면 노래라도 부르고 싶을 만큼 밝고 즐거운 마음이 됩니다. "아저씨, 크레용 주세요" "생일카드 있어요?" 하며 들어서는 어린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즐겁고, 열심히 물건을 챙겨 주는 주인의 친절한 표정과 손길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한 번은 내가 옛 친구와 함께 문구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발견하고 하도 기뻐하니, 친구는 "그렇게 좋으니? 아직도 넌 소녀 모습 그대로구나" 하면서 열 묶음이나 사서 안겨 준 적도 있습니다. 그후에도 친구는 아름다운 편지지, 노트, 카드들을 사서 모아 두었다가 선물용으로 쓰라며 우편으로 보내 주곤 합니다. 전과 달리 요즘은 문구용품들도 매우 화려하고 고급스러워졌지만, 그래도 가장 부담 없고 실용적인 선물을 선택하려면 문구용품만큼 적절한 것이 없는 듯합니다.
우리 수녀원에서는 해마다 설날 아침에 여러 가지 문구용품을 세배값으로 줍니다. 커다란 소쿠리에 풀, 가위, 수첩, 색종이, 형광펜, 클립, 등등 온갖 다양한 품목들을 담아 장식해 두고 세배가 끝나면 각자 원하는 것 한 가지씩 갖는 것인데 환히 웃으며 문구용품들을 집어 가는 이들의 모습은 보기가 좋습니다. 나는 가끔 상상 속의 문구점 주인이 될 때가 있습니다. 가게 이름은 누구라도 들어와서 원하는 물품들뿐 아니라 기쁨과 희망과 사랑도 담아 가는 `누구라도 문구점` 이라 지으면 어떨까요? 실내에 항상 잔잔한 음악이 흐르게 하고 손님들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계절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시들을 걸어 두겠습니다. 공간이 그다지 넓지 않더라도 작은 책상과 걸상을 한 모퉁이에 마련하여 향기로운 들꽂을 꽂아 두고, 때때로 손님들이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정다운 이들에게 편지나 카드를 쓸 수 있도록 배려하는 친절을 베풀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에게 필요한 선물 상담도 해주고 삶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좋은 벗과 이웃이 되고 싶습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도, 그것을 팔거나 사용하는 사람들도 그 안에 사랑의 혼을 불어넣어야 빛이 나고 가치 있는 것임을 꼭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또한 덮어놓고 새것만 선호하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자기가 이미 사용하는 물품들과 끝까지 길들이고 정들이며 좋은 친구가 되는 아름다움을 키워야 한다고 일러주겠습니다. 늘 내 서랍 속에서 쓰임 받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웃고 있는 30년 된 색연필 한 다스와 묵직한 펀치,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 둔 사랑스럽고 오래된 수첩에 얽힌 추억에 대해서도 들려주겠습니다. 꼭 사야 할 물건이 없을 때라도 평소에 나눈 정 때문에 길을 가다가도 잠시 들렀다 갈 수 있는, 평범하지만 삶의 멋을 아는 성실한 단골손님들을 많이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누구라도 와서 함께 작은 기쁨을 나누는 작은 규모의 문구점을 이렇게 상상 속에 그려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나는 아직 쓰지 않은 새 노트들과 연필, 고운 카드와 편지지가 놓여 있는 우리방 선반에`누구라도 원하시면 가져가세요`라고 써 붙여 `누구라도 코너` 를 만들어 두니 옆의 자매들도 즐거워하고, 실제로도 기쁨을 파는 선물방의 주인이 된 듯 요즘은 더욱 풍요럽고 행복한 매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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