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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1호 2022.9.22 (음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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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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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우리의 귀. 즉 상대편 말에 우선 귀를 기울여 듣는 것. ― 딘 러스크(前 美국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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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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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뜬구름 잡는 얘기 그만해라.” 자주 듣는 말이다. ‘말은 본질이 없고 시시때때로 변하며 다른 말과의 우연한 조응과 부딪침만이 변화의 동력’이라고 했으니 그럴 수밖에.
의미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은 오해다. 낱말마다 번호를 매겨 뜻풀이를 해 놓은 사전의 영향이 크다. 사전은 우리 머릿속도 낱말과 의미가 순서대로 쌓여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의미는 말들 사이, 그리고 말과 세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의존적인 상호 발생 현상이다.
‘큰일’의 뜻이 뭔가? 어떤 뜻 하나가 떠올랐다면, 실은 이 낱말만의 뜻이 아니다. 다른 낱말과의 연루!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큰일을 하다, 큰일을 맡다’ 같은 표현에서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큰 사고나 안 좋은 일’이란 뜻이라면, ‘큰일이 나다, 큰일을 저지르다’에서 갖고 온 것이다. ‘결혼이나 장례 같은 행사’라면, ‘큰일을 치르다’에서 온 것일 테고.
그렇다면 ‘큰일’의 의미는 어디에서 왔는가. 뒤에 붙는 ‘하다, 나다’ 따위의 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다’는 ‘중요한 일’, ‘나다’는 ‘안 좋은 일’이랑 결합해야만 할 이유도 없다. 도둑질한 사람에게 ‘큰일을 했다’거나, 더운 날 시원한 소나기를 보고 ‘큰일이 났다’고 하지 못할 법은 없다. 그러니 ‘큰일을 하다, 큰일이 나다’에 쓰인 긍정·부정의 의미는 이 표현 속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어떤 일이 ‘큰일’인지에 대한 판단에는 사회적 습속이나 통념, 개인의 경험과 가치체계가 작동한다. ‘대통령’은 큰일인가? ‘청소 노동’은 작은 일인가? 말은 말을 초과한다.
역겨움에 대하여
‘겹다’의 옛말은 ‘계우다’ 또는 ‘계오다’이다. ‘이기지 못하다’라는 뜻인데, 목적어를 요구하는 동사였다. ‘바람이 하늘 계우니’는 ‘바람이 하늘을 이기지 못하니’, ‘마음을 계와’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정도로 해석된다.
반면에 ‘겹다’는 형용사인데, ‘덥다, 좋다’처럼 뜻이 선명하지 못하여 ‘복에 겹다, 흥에 겹다’처럼 다른 말을 취하고 나서야 뜻이 잡힌다. ‘겹다’가 들어간 말은 어떤 기준을 초과하거나 견디기 어려운 상태를 뜻하는데, 낯가림이 심해 그리 많지도 않다. ‘눈물겹다, 역겹다, 정겹다, 흥겹다, 힘겹다.’ 이들 말은 모두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긍정이나 부정의 주관적 감정을 드러낸다.
‘역하다’만으로도 구역질이 나고 메스꺼운 느낌인데, ‘역겹다’는 거기에 ‘겹다’까지 겹쳐 부정적인 느낌이 극대화된다. 역겨운 생선 비린내나 시궁창 냄새를 맡으면 토할 것처럼 헛구역질이 나온다. ‘역겨움’은 의지적이지 않다. 냄새를 맡자마자 자동적으로 나오는 몸의 반응이다.
이 말을 사람에게 쓰면 그 순간 상대는 상종 못 할 인간, 악마적 인간, 위선적 인간, 냄새나는 인간이 된다. 대화는커녕 길에서 마주치기도 싫다. 역겨움의 감정은 이성이 마비되고 판단이 중지된 상태이다. 나도 이런 감정에 자주 빠진다. 복잡한 세상을 선악의 구도로 보게 만드는데, 개미지옥에 빠진 듯 여기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망가뜨린다. 당신에게 역겨운 존재는 누구인가? 그게 개인이어도 문제지만, 특정 집단을 향할 때는 더욱 문제다. 그게 쌓이면 혐오가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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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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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長詩)(二) - 김수영
시금치밭에 거름을 뿌려서 파리가 들끓고
이틀째 흐린 가을날은 무더웁기만 해
가까운 데에서 나는 人聲도 옛날이야기처럼
멀리만 들리고
눈은 왜 이리 소경처럼 어두워만지나
먼 데로 던지는 汽笛소리는
하늘끝을 때리고 돌아오는 고무공
그리운 것은 내 귓전에 붙어있는 보이지 않는 젤라틴紙
―나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재산처럼
外界의 소리를 濾過하고 彩色해서
宿題처럼 나를 괴롭히고 보호한다
머리가 누렇게 까진 땅주인은 어디로 갔나
여름저녁을 어울리지 않는 지팽이를 들고
異邦人처럼 산책하던 땅주인은
―나도 필경 그처럼 보이지 않는 누구인가를
항시 괴롭히고 있는 보이지 않는 拷問人
時代의 宿命이여
宿命의 超現實이여
나의 生活의 定數는 어디에 있나
미하(混迷)하는 아내며
날이 갈수록 간격이 생기는 骨肉들이며
새가 아직 모여들 시간이 못된 늙은 포플러나무며
소리없이 나를 괴롭히는
그들은 神의 拷問人인가
―어른이 못되는 나를 탓하는
구슬픈 어른들
나에게 彷徨할 시간을 다오
不滿足의 物象을 다오
두부를 엉기게 하는 따뜻한 불도
졸고 있는 잡초도
이 無感覺의 悲哀가 없이는 죽은 것
술취한 듯한 동네아이들의 喊聲
미쳐돌아가는 歷史의 反覆
나무뿌리를 울리는 神의 발자죽소리
가난한 沈默
자꾸 어두워가는 白晝의 活劇
밤보다도 더 어두운 낮의 마음
時間을 잊은 마음의 勝利
幻想이 幻想을 이기는 時間
―大時間은 결국 쉬는 시간
<196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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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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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토지쟁(犬兎之爭)
犬:개 견, 兎:토끼 토, 之:갈 지(…의), 爭:다툴 쟁.
[동의어]
전부지공(田父之功). 방휼지쟁(蚌鷸之爭).
어부지리(漁父之利).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
[출전]《戰國策》〈齊策〉
개와 토끼의 다툼이란 뜻. 곧
① 양자의 다툼에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利)를 봄에 비유. 횡재(橫財)함의 비유.
② 쓸데없는 다툼의 비유.
전국 시대, 제(齊)나라 왕에게 중용(重用)된 순우곤은 원래 해학(諧謔)과 변론의 뛰어난 세객(說客)이었다. 제나라 왕이 위(魏)나라를 치려고 하자 순우곤은 이렇게 진언했다.
“한자로(韓子盧)라는 매우 발빠른 명견(名犬)이 동곽준(東郭逡)이라는 썩 재빠른 토끼를 뒤쫓았사옵니다. 그들은 수십 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돈 다음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다섯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오는 바람에 개도 토끼도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나이다. 이 때 그것을 발견한 ‘전부(田父 : 농부)는 힘들이지 않고 횡재[田父之功]’을 하였나이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는 오랫동안 대치하는 바람에 군사도 백성도 지치고 쇠약하여 사기가 말이 아니온데 서쪽의 진(秦)나라나 남쪽의 초(楚)나라가 이를 기화로 ‘전부지공’을 거두려 하지 않을지 그게 걱정이옵니다.“
이 말을 듣자 왕은 위나라를 칠 생각을 깨끗이 버리고 오로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썼다.
[주] ‘之’
① 갈 지. 가다, 향하다. 예) ‘之東之西(지동지서)’-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함. 곧 마음을 질정(質定 : 갈피를 잡고 헤아려서 작정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는 뜻.
② …의. 주격.소유격을 나타내는 접속사. 예) ‘人之常情(인지상정)’-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통 인정.
③ 이 지. 지시 대명사로 쓰임[是(시)와 같은 뜻]. 예) ‘論之(논지)’-이것을 따져서 말함.
세객 : 교묘하고 능란한 말솜씨로 각처를 유세(遊說)하고 다니는 사람. 제국(諸國)의 군주(君主)가 저마다 패자(覇者)를 지향하며 패도정치(覇道政治)를 펼쳤던 전국 시대(戰國時代)에는 책사(策士).모사(謀士) 또는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세객이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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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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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때로는 대담한 도박이 필요하다. - 퍼시 로스, <달을 따달라고 요청하기>의 저자
어느날, 벨 게더스는 공원에 갔다. 그의 수중에는 5달러 83센트가 전재산이었다. 그는 무심코 벤치에 앉았다가 옆에 잡지가 놓여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잡지를 들고 쭉 훑어봤다. 그런데, 그중 한 기사가 그의 시선을 모았다. 거기에는 저명한 은행가 오토 칸의 말이 실려 있었다.
"백만장자는 예술가를 도와야 마땅합니다."
벨 게더스는 환희에 차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웨스턴 유니온으로 달려가 5달러 83센트를 탁탁 털어 칸에게 전문을 보냈다. 그는 절박한 상황과 함께 연극 제작과 무대 디자인에 대한 욕망을 설명하고 후원금을 요청했다. 다음날, 칸은 벨 게더스에게 400달러를 부쳐 줬다. 이 돈과 칸의 신임표를 밑천으로 벨 게더스는 뉴욕으로 갔고, 그곳에서 오페라 무대를 제작하는 일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결국 브로드웨이의 일류 제작자가 되었다. 또한 자동 몸체와 의자, 냉장고와 기타 소비자 제품의 디자이너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날렸다. 벨 게더스는 대담한 도박을 했지만 적절한 사람에게 요청했다.
전문가에게 요청하라
최근에 우리는 유명한 광학 회사의 판매원과 대화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우리는 대화에 들어가기 앞서, 그 회사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올린 다섯 명을 알아냈다. 그리고 대화중에 판매 사원들에게 다섯 명의 최고 판매원을 쓰라고 했다. 또 다섯 명에게 가서 어떻게 최고가 되었는지 물어 본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여러분 중에서 그들에게 성공한 비결을 알려 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에게 지도와 조언을 해 달라고 요청한 사람, 손 드세요."
그 자리에 모인 150명의 판매 사원 중에서 손을 든 사람은 단 3명이었다. 우리는 물었다.
"왜 여러분은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그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너무 바빴어요."
"그들이 왜 나를 도와주고 싶겠습니까?"
"그들이 승낙할지 몰라서요."
"나는 이곳에서 일한 지 일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야말로 시간의 낭비가 아닌가? 판매술에 대하여 최고의 정보를 지닌 특출한 사람들이 그 비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지 않았다니! 그들은 일류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할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성공하는 방법은 성공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 그 자리에 오른 방법을 요청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성공과 그 창조 방법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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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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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1. 노나라의 내란
공자 경부와 어인 낙
한편 노장공은 형제 가운데서 동복 동생인 공자 계우(季友)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지혜로웠고 성품이 어질었다. 그런데 이복 동생에 숙아(叔牙)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덕이 없었다. 다만 매사에 눈치가 빨라서 그럭저럭 탈없이 자기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럼 노장공에게는 형이 없었던가? 아니 있었다. 서형(庶兄) 경부(慶父)가 있었다. 그 경부의 부중에서 마구간 일을 맡아 보는 어인(御人) 낙이라는 자가 있었다. 이 자는 풍류가 있어 이곳저곳을 다니며 젊은 여자를 유혹하는 등 행실이 난잡한 자였다. 그런데 노래를 잘했다. 그래서 공자 경부는 낙이라는 자를 곁에 두고 꽤 총애했다. 지난 겨울이었다. 대부 양씨(梁氏)네 집에서 음악 연주가 열렸다. 양씨에게는 딸 하나가 있었다. 그녀는 자색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런데 양씨 딸은 이미 사귀는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바로 노장공의 맏아들 공자 반이었다. 공자 반은 자기보다 연하인 서모(庶母) 애강 때문에 대놓고 양씨 딸과 혼담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을 뿐 사실상 공자 반과 양씨 딸은 내연의 관계였다. 이날 양씨 딸은 마당에서 연주하는 풍악을 구경하고자 내당의 담에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어인 낙이란 자가 이 음악을 들으러 갔다가 양씨 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평소부터 여성에게 추근거리기 잘하는 그인지라 담장 밑에 가서 의젓이 노래로 수작을 걸었다.
桃之夭夭兮
凌冬而益芳
中心如結兮
不能踰牆
願同翼羽兮
化爲鴛鴦
간들거리는 복숭아꽃은 겨울을 이기고 더욱 향기로워
마음은 붙들어 맨 듯 담을 뛰어넘을 수 없네
바라건대 날개를 함께 달고 한 쌍 원앙새가 되고지고
이 때 공자 반도 양씨네 집에 와서 음악 연주를 듣고 있었다. 공자 반은 어디선지 남자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기에 수상히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이런 줄도 모르고 어인 낙은 노래로 양씨 딸에게 수작을 걸다가 공자 반에게 들켰다. 공자 반이 대로하여 좌우에게 분부했다.
"저 놈을 당장 잡아오너라."
붙들려 온 어인 낙은 곤장 3백 대를 맞았다. 어인 낙은 피를 흘려서 땅바닥을 벌겋게 물들였다. 그 때 공자 경부가 보낸 심부름꾼이 와서 전하기를 그저 목숨만 살려달라고 했다. 공자 반은 그래서 어인 낙을 일단 풀어 주고 이 일을 아버지인 노장공에게 가서 고했다. 노장공이 걱정했다.
"그런 놈은 아예 죽여 버려야 후환이 없는 법인데 살려 준 건 실수다. 혹 그 놈이 원한을 품는다면 여러 가지로 너에게 좋을 게 없다."
공자 반은 아버지의 말을 별로 유의해 듣지 않았다.
"보잘것 없는 마구간지기 놈입니다. 그까짓 놈을 염려할 것 뭐 있겠습니까?"
그러나 노장공은 공자 경부에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일부러 서동생인 공자 숙아를 불러들여 슬쩍 물었다.
"내 죽은 후 이 나라를 누구에게 맡기면 좋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공자 숙아는 대뜸 공자 경부를 극구 칭찬하면서 중언부언하는 것이었다.노장공은 그저 참고로 들어 두는 척했다. 공자 숙아는 한참 떠든 후에 물러나갔다. 노장공은 다시 친동생 공자 계우를 불러들여 앞일을 물었다. 공자 계우가 말했다.
"형후께서는 지난날 맹임과 어떻게 약속하시었습니까? 그토록 천지신명께 맹세하고도 부인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지난날에는 그녀를 정실 부인으로 대접하지 않았는데 이제 또 그 아들까지 버리시려고 하십니까?"
노장공은 크게 무안했다. 그래서 계우의 물음에 대답은 않고 다른 것만 물었다.
"숙아는 과인에게 경부를 추천하던데, 네가 볼 때 경부의 품성이 어떠한가?"
공자 계우가 펄쩍 뛰었다.
"경부는 심성이 잔인하고 덕이 없습니다. 임금의 그릇이 결코 아닙니다. 숙아는 모두 그들 패거리입니다. 형후께서는 절대로 그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노장공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임금이 될 인물
노장공은 관중에게 이런 노나라 궁중의 전후 사정을 모조리 이야기했다. 그리고 장차 노나라 궁중이 시끄러워지면 모든 것이 자신의 부덕함 때문이라면서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거듭했다. 관중은 자신의 힘이 닿는 한 군후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그제서야 노장공은 환한 얼굴이 되어 소곡 땅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오.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노장공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병세는 나아지지 않고 조금씩 악화되었다. 노장공은 아무래도 자신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날 밤 노장공은 공자 계우를 불렀다. 그는 동생의 손을 잡고 한동안 말 한마디를 못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입을 열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 선군의 갑작스런 변고로 군위에 오른 지 벌써 서른 두 해가 되었다. 그 동안 나라 안팎으로 많은 일이 있었음은 동생도 아는 바라. 이제 몸도 병들어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듯하다. 동생은 뒤를 잘 감당하여라."
공자 계우는 사세가 매우 급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궁실에서 나오자 즉시 내시를 불렀다.
"공자 숙아에게 가서 주공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하여라. 즉, 숙아는 대부 검계의 부중으로 가서 기다리면 곧 과인이 특별한 분부를 내리리라."
내시는 곧 공자 숙아에게 가서 그 말을 전했다. 공자 숙아는 희색이 만면해서 곧 검씨 집으로 갔다. 그는 장차 좋은 소식이 있을 줄 알았다. 한편 공자 계우는 독주 한 병을 검계에게 보내고 공자 숙아를 죽이도록 지시했다. 이는 숙아를 죽임으로써 경부의 경거망동을 견제하는 일면도 있고, 한편으로는 공자 반을 거부할지 모르는 그를 미리 없앰으로써 공자 반의 군위를 굳건히 다지고자 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날 밤 노장공은 세상을 떠났다. 공자 계우는 공자 반을 받들어 상주(喪主)로 삼고, 다음 해에 개원(改元)할 것을 백성들에게 선포했다. 아직은 공자 반이 세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공자 반의 외가(外家)에서 상을 당했다. 평소에 외가인 당씨(堂氏)네 은혜를 잊지 않았던 공자 반이 외가로 문상을 가게 되었다. 이날 공자 경부는 어인 낙을 비밀리에 불렀다.
"네 지난날 곤장을 맞던 그 원한을 잊었느냐? 물 밖으로 나온 교룡(蛟龍)쯤 필부(匹夫)도 능히 제압할 수 있는 법. 너는 왜 당씨네 집에 가서 지난날의 원한을 갚지 않는 것인가? 내가 너의 주인이기에 특별히 말해 주는 것이니라. 알겠느냐?"
어인 낙이 대답했다.
"공자께서 소인을 도와 주신다면 어찌 복수를 시키는 그대로 하지 않겠나이까?"
이에 어인 낙은 날카로운 비수를 품고 밤중에 당씨네 집으로 갔다. 때는 이미 삼경이었다. 그는 몰래 담을 넘었다. 그리고 중문 옆으로 가서 숨었다. 어느덧 동쪽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중문이 열리면서 조그만 내시 하나가 물을 길러 나가자 이틈을 타서 그는 사랑채 침실로 뛰어들어갔다. 공자반은 이 때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에 걸터앉아서 신을 신고 있었던 참이었기에 어인 낙이 뛰어들어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당황해서 소리쳤다.
"네 어찌 이 곳에 들어오느냐!"
어인 낙이 눈을 부라리며 대답했다.
"나는 지난 해 곤장 맞은 원한을 갚으러 왔다."
공자 반은 급히 침상 머리에 있는 검을 잡아 낙을 내리쳤다. 칼은 어인 낙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다. 그러나 칼집을 벗기지 못하고 그대로 내리쳤으니 큰 상처도 내지 못하고 공자 반의 자세만 흐트러졌다. 이 때 그는 재빨리 공자 반을 껴안으면서 품속의 비수를 꺼내어 옆구리와 배를 깊숙이 찌르니 공자 반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져 죽고 말았다. 마침 내시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이 장면을 보고 놀라서 집안 식구들에게 알렸다. 당씨 일가는 곧 가병까지 이끌고 사랑채로 달려가 어인 낙을 치니 그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떡이 되고 말았다. 한편 공자 계우는 공자 반이 살해당했다는 보고를 받자 공자 경부의 소행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러나 자칫하다가 자신에게도 화가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날로 진(陳)나라를 향해 도망쳤다. 공자 경부는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는 이 사건의 모든 죄를 어인 낙에게 씌워 그 일가족을 모조리 도륙하여 백성들의 의혹을 벗은 후, 내궁으로 가서 선군의 부인 애강(哀姜)과 다음 임금에 대해 상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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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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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소운편"
김소운(1907~1981)
수필가, 시인. 일본 문학가. 호는 소운. 경남 부산 출생. 일본에서 중학 중퇴. 초기에는 시로 출발하여 관념시 계통의 시작품을 발표했으나 일본인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을 통감하고서 한국의 민요, 동요, 시 등을 일본에 소개하는 작업을 벌여 크게 주목받았다. 문학의 사회자로 문화 수출의 상인으로 자처했던 그는 후기에는 인생에의 통찰이 담긴 격조 높은 수필을 많이 발표하여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선의의 불씨
또 하나의 눈
어제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대문 시장에 들렀지요. 이것 저것 사다 보니 자질구레한 종이 뭉치가 대여섯 개나 됐나 봐요. 그걸 양쪽 손에 다 들고 오느라니까, 시장 안에서 신문을 차는 앉은뱅이 청년이 있잖아요. 스무남은 살이나 됐을까요. 팔에다 무슨 보급원인가 그런 완장을 둘렀어요. 그런데도 불구자 같은 궁기가 없고 퍽이나 명랑해요, 얼굴 표정이-. 밖에서 별로 신문 같은 것 산 일은 없었지만 그냥 지나가기가 무엇해서 10원을 꺼내서 신문을 샀지요. 두 장인지 석 장인지 주는 대로 받아서 그걸 또 짐 가진 손에다 구겨 쥐고 그리고 몇 걸음 가자, 뒤에서 '아주머니!' 하고 누가 불러요. 딴 사람을 불렀거니 하면서도 짐짓 돌아다 보았지요. 그랬더니 가게 앞에 웬 중년 남자가 서서 그 가게 주인인가 봐요, 아주 심상한 얼굴로 '그거 이리 내세요.'하고 손을 내밀잖아요. 돈을 다 치렀는데 어째서 달래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내라니까 무심결에 내주었지요, 그 가게에서 산 건 아니지만... 그걸 받더니 남자는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봉지에다 그 작은 종이 뭉치들을 하나하나 넣어 주지 않겠어요. 그런 호의를 모르고 하도 무뚝뚝하게 내놓으라기에 물건 산 걸 보자는 줄로만 알았지요...
"미안해서 어떡하나..."
제가 그러니까 남자는 딴 말은 없고,
"아주머니, 저 애한테서 신문 사셨지요?"
신문 사는 걸 아마 보고 있었던가 봐요. 그게 무슨 고맙다는 인사같이 들리더구먼요... 별 대단한 일도 아닌데 돌아오는 발걸음이 왜 그렇게 가벼운지...무슨 좋은 수나 난 것 같아 괜히 가슴이 부듯하더구먼요...
아는 이를 만나 거리에서 차 한 잔을 같이하는 자리에서 일행 중 부인네 한 분이 이런 얘기를 들려 주었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곁에서 듣는 나까지 무언지 마음이 흐뭇했다. 거추장스런 종이 뭉치들을 한데다 넣어 주었다는 그런 단순한 얘기는 아니다. 그만한 친절도 요즘 우리네 생활에서는 보기 힘드는 일이지마는 이 얘기에는 또 하나 울려 오는 다른 여운이 있다. 육체의 불행을 짊어지고도 제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를 쓰는 불구의 청년-그 청년에게서 신문을 샀다는 그야말로 겨자씨 한 알만한 작은 선의를 고마운 일로 알고 치사하는 또 하나 다른 '선의'의 눈-, 가게 주인의 그 무뚝뚝한 친절은 그 치사의 소박한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동상이 세워질 커다란 공로도 아니요, 무슨 상이나 표창을 받도록 의젓한 미담도 아니다. 그러나 생각하고 보면, 이 작은 '불씨'--평범하고도 소박한 '인간의 선의',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생활에서 제일 아쉬운 주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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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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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성서>읽는 기쁨
지난 1977년 부활절, 우리말로 된 <신.구약성서>합본을 수녀원에서 처음으로 선물받았을 때의 그 기쁨과 설레임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요? 지금도 가끔 그때의 감격을 되살리며 <성서>를 읽노라면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피정이나 묵상 기도를 할 때 고즈넉한 빈방에 촛불을 켜고 앉아 <성서>를 읽고 맛들이는 즐거움은 참으로 은혜로운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릇 그리스도인의 삶은 일상생활이든 대인관계이든 모두 성서적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적어도 그날그날의 복음과 독서 내용을 되새김하며 일상의 삶 안에서 그 가르침을 실천하려 애쓴다면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 역시 속되고 피상적인 것에서 좀더 거룩하고 깊이 있는 것으로 순화되어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매일의 소임 장소에서 그날의 복음 한 구절을 옆의 수녀님과 함께 읽고 일을 시작하는데, 그 말씀들은 어느새 고운 보석으로 가슴에 박혀 시간을 낭비하거나 이웃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하고, 진지하고 조심스런 태도를 갖도록 도와 줍니다.
어쩌다 신앙의 갈등이나 삶의 회의에 빠져 괴로울 때도 어떤 스승에게서보다 큰 힘과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 곧 <성서>임을 우리는 자주 체험하게 됩니다. 가정이나 본당, 수도원의 어떤 모임에서건 각자 <성서>를 읽고 느낀 점을 서로 나누다 보면 무척 다양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다른 이의 묵상법에 놀라게 되고, <성서>가 불후의 명작이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로 거룩한 책이라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성서> 구절마다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 것. 편지, 엽서, 카드의 인사말을 모두 <성서> 구절을 인용해서 쓰는 것, 잠시 여행을 떠날 때도 꼭 작은 <성서>를 갖고 다니며 남이 볼 때도 거리낌없이 읽는 것 등은 내가 즐겨 하고 이웃에게도 권하고 싶은 조그만 실천사랑들입니다.
며칠 전엔, 중학교 시절부터 내게 편지를 보내 오곤 하다가 결혼 후 입교를 하고,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재준 엄마가 보낸 편지의 몇 구절이 나를 기쁘게 했습니다.
`...저는 요즘 <성서> 읽는 기쁨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책, 비할 바 없이 좋은 책, 성스러운 책을 왜 진작 접하지 못했는지 후회스럽기조차 합니다. <성서> 읽는 기쁨을 수시로 느끼다 보니 자연히 책도 일반 서점보다는 가톨릭 서점에 가서 고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제 신앙도 더 견고해지는 느낍입니다.`
이렇듯 <성서>를 읽는 기쁨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맛들여야할 참 기쁨, 끝없이 확산시켜야 할 그리스도인의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이웃과 자신을 들여다보는 은총의 거울
<성서>와 함께 기뻐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사노라면
기쁨은 또 기쁨을 낳아
우리의 삶을 축제이게 합니다.
- 나의 시`<성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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