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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0호 2022.9.21 (음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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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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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한 인간이 되는 비결은 모든 것을 하나에서 열까지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
― 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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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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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의 언어학
공평하고 올바름. ‘불공정하다’는 말만 꺼내도 긴장하게 되는 도덕적 당위. ‘선발’에만 선택적으로 사용해서 문제. 격차, 기회, 교육, 행복과 같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주제에는 잘 안 쓴다.
경비를 전액 지원하는 해외연수생을 모집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뽑겠는가? 토익토플 점수? 학교 성적? 자기소개서? 가정 형편? 나의 은사님은 두 가지 기준으로 뽑았다. 첫째, 영어를 못할 것. 둘째, 외국 여행 경험이 없을 것. 영어를 잘하던 학생들 모두 낙방. 외국에 한 번도 못 가 본 학생이야말로 외국을 경험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기준. 불공정해 보이는가? 누구에겐 불공정, 누구에겐 공정.
말의 의미는 우연한 탈주를 꿈꾼다. 낱말 ‘먹다’를 아무리 째려본들 ‘마음먹다, 나이 먹다, 욕먹다’라는 표현이 가능한 이유를 못 찾는다. 식물 ‘꽃’만 고집하다가는 ‘눈꽃, 불꽃, 소금꽃, 열꽃, 웃음꽃, 이야기꽃’이 만들어내는 꽃다움의 확장을 어찌 만나리. 두 낱말의 우연한 조응과 부딪침만이 변화의 동력이다. 의미 탈주의 가능성은 개체가 갖고 있는 본질에서 나오지 않는다. 행여 본질이 있다면 그 본질을 부수고 타넘는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쓰는 ‘공정’이라는 말은 지극히 뻣뻣하고 날이 서 있다. 말 공부하는 입장에서 공정은 ‘움직이고 전진하는’ 공정이다. 공정의 불가능성 앞에 겸손해지고 끝없는 파격으로 공정의 가능성을 실험해야 한다. 뽑힌 사람만이 아니라, 떨어진 사람을 위한 공정, 떨어질 기회조차 없는 사람을 위한 공정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공정함이 연민과 함께 가는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청탁
달포 전에 후배가 찾아왔다. 별다른 교류가 없었는데 대뜸 보자고 한다. 약속을 하고 나니 궁금해져서 문자로 물어보았다. ‘근데, 왜 보자는 거죠?’, ‘청탁할 일이 있어서…’ 홍보 쪽 일을 하고 있으니 ‘드디어’ 나를 모델로 쓰려고 하나? 상상이 맹랑하다.
그가 꺼낸 이름은 ‘이석기’. “이 코너는 말이나 글에 대해서 쓰는 건데 그런 정치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을까?” 하며 발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한마디는 나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했다. “그도 말 때문에 갇혔잖아요. 오직 말 때문에.”
맞다. 돈이나 칼이 아닌, 오직 말 때문에 갇혀 있다. 8년째다. 어느 강연회에서 한 발언 녹취록을 유일한 증거로 삼아 국회의원인 그를 내란선동죄로 감옥에 잡아넣었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자주, 민주, 통일’이란 말은 안전하지 않다. 왜?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북한을 이롭게 하니까. 이런 입방아에 오르지 않으려고 입을 닫아버린다. 하지만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비상사태’를 포함해서 어떤 경우에도 사상, 양심, 종교, 표현의 자유는 제한할 수 없다.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입을 틀어막아서는 안 된다. 누구든 ‘국가’를 향해 어떠한 비판과 모욕적인 언사도 날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가입해 있는 국제 인권규약의 명령이다.
학살자 전두환도 김대중을 내란음모죄로 몰아 감옥에 가두었다가 2년6개월 만에 석방했다. 이석기의 출소일은 2023년 5월3일. 다 채운다면, 박근혜, 문재인, 그리고 다음 정부까지 3대에 걸친 수감이다. 가혹하다. 광복절엔 석방하라. 말을 풀어주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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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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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長詩)(一) - 김수영
겨자씨같이 조그맣게 살면 돼
복숭아가지나 아가위가지에 앉은
배부른 흰새모양으로
잠깐 앉았다가 떨어지면 돼
구겨진 휴지처럼 노래하면 돼
가정을 알려면 돈을 떼여보면 돼
숲을 알려면 땅벌에 물려보면 돼
잔소리날 때는 슬쩍 피하면 돼
―채귀(債鬼)가 올 때도―
뻐스를 피해서 길을 건너서는 어린놈처럼
선뜻 큰길을 건너서면 돼
長詩만 長詩만 안 쓰려면 돼
오징어발에 말라붙은 새처럼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입만 반드르르하게 닦아놓으면 돼
아버지 할머니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어물전 좌판 밑바닥에서 결어있던 것이면 돼
有線合乘自動車에도 양계장에도 납공장에도
米穀倉庫 지붕에도 달려있는
썩은 공기 나가는 지붕 위의 지붕만 있으면 돼
「돼」가 肯定에서 疑問으로 돌아갔다
疑問에서 肯定으로 또 돌아오면 돼
이것이 몇바퀴만 넌지시 돌면 돼
해바라기 머리같이 돌면 돼
깨꽃이나 샐비어나 마찬가지 아니냐
내일의 債鬼를
죽은 뒤의 債鬼를 걱정하는
長詩만 長詩만 안 쓰려면 돼
샐비어 씨는 빨갛지 않으니까
長詩만 長詩만 안 쓰려면 돼
永遠만 永遠만 고민하지 않으면 돼
오징어에 말라붙은 새처럼 五月이 와도
九月이 와도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트럭소리가 나면 돼
아카시아 잎을 이기는 소리가 방바닥 밑에서 울리면 돼
라디오소리도 거리의 風習대로 기를 쓰고 크게만 틀어놓으면 돼
겨자씨같이 조그맣게 살면서
長詩만 長詩만 안 쓰면 돼
오징어발에 말라붙은 새처럼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트럭소리가 나면 돼
아카시아 잎을 이기는 소리가 방바닥 밑까지 콩콩 울리면 돼
흙묻은 비옷이 二四時間 걸려있으면 돼
情熱도 豫測 고함도 豫測 長詩도 豫測
輕率도 豫測 봄도 豫測 여름도 豫測
氾濫도 豫測 氾濫은 華麗 恐怖는 華麗
恐怖와 老人은 同一 恐怖와 老人과 幼兒는 同一……
豫測만으로 그치면 돼
모자라는 永遠이 있으면 돼
債鬼가 집으로 돌아가면 돼
聖堂으로 가듯이
債鬼가 어젯밤에 나 없는 사이에 돌아갔으면 돼
長詩만 長詩만 안 쓰면 돼
<196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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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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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해골(乞骸骨)
乞:빌 걸, 骸:뼈 해, 骨:뼈 골
[준말]걸해(乞骸). [원말]원사해골(願賜骸骨).
[동의어]걸신(乞身). [참조]건곤일척(乾坤一擲).
[출전]《史記》〈項羽本記〉,《子春秋》
해골을 빈다는 뜻으로, 늙은 재상(宰相)이 나이가 많아 조정에 나오지 못하게 될 때 임금에게 그만두기를 주청(奏請)함을 이루는 말.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에게 쫓긴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고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유방은 지난해(B.C. 203) 항우가 반란을 일으킨 팽월(彭越)전영(田榮) 등을 치기 위해 출병한 사이에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공략했다가 항우의 반격을 받고 겨우 형양[滎陽:하남성(河南省) 내]로 도망쳤다. 그러나 수개월 후 군량(軍糧) 수송로까지 끊겨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자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항우는 응할 생각이었으나 아부(亞父: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란 뜻) 범증(范增)이 반대하는 바람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유방의 참모 진평(陳平)은 간첩을 풀어 초나라 진중(陣中)에 헛소문을 퍼뜨렸다. ‘범증이 항우 몰래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고. 이에 화가 난 항우는 은밀히 유방과 강화의 사신을 보냈다. 진평은 항우를 섬기다가 유방의 신하가 된 사람인 만큼 누구보다도 항우를 잘 안다. 그래서 성급하고도 단순한 항우의 성격을 겨냥한 이간책은 멋지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진평은 장량(張良) 등 여러 중신(重臣)과 함께 정중히 사신을 맞이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부(범증을 지칭)께서는 안녕하십니까?”
“나는 초패왕의 사신으로 온 사람이요.”
사신은 불쾌한 말투로 대답했다.
“뭐, 초왕의 사신이라고? 난 아부의 사신인 줄 알았는데 …….”
진평은 짐짓 놀란 체하면서 잘 차린 음식을 소찬(素饌)으로 바꾸게 한 뒤 말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대로 보고하자 항우는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그에게 주어진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범증은 크게 노했다.
“천하의 대세는 결정된 것과 같사오니, 전하 스스로 처리하시오소서. 신은 이제 ‘해골을 빌어[乞骸骨]’ 초야에 묻힐까 하나이다.”
항우는 어리석게도 진평의 책략에 걸려 유일한 모신(謀臣)을 잃고 말았다. 범증은 팽성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등창이 터져 75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주]
소찬(素饌) : ① 고기나 생선이 들어가지 아니한 반찬. ② 남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의 겸양의 말.
등창[背瘡] : 한의학에서, 등에 나는 큰 부스럼을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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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뭐든지 가능하다고 확신하라
전문 강연가인 친구가 한 사람 있다. 그는 다음날 연설하게 될 회의 장소인 호텔에 도착했지만, 예약했던 방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호텔측은 그곳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다른 호텔을 제의했다. 그는 말했다.
"싫소, 나는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더 이상 한발자국도 뗄 수 없소. 게다가 나는 사전에 객실 예약 확인까지 했으니, 여기에서 묵어야겠소. 남은 방이 없다니, 내가 로비의 소파에서 잠을 청하리다. 그리고 공정을 기하기 위해 한 마디 하겠는데, 나는 평소에 알몸으로 자고 오늘 밤 그 습관을 바꿀 생각이 없소이다."
그러면서 그는 넥타이를 풀기 시작했다. 질겁을 한 프론트 데스크 직원이 서둘러 말했다.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이 체크아웃을 했지만 아직 치워지지 않은 방이 하나 남아 있었다. 호텔 측은 청소원의 도움을 받아 그 방을 치웠고, 20분도 채 지나기 전에 우리 친구는 그 방에서 달콤한 수면을 취했다.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시작하라.
도울 능력이 있는 자에게 요청하라 - 존 테일러
나는 산 호세의 양조장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나는 포도주와 멋진 대화로 시간가는 것을 잊어버렸고, 결국 LA행 마지막 비행기를 15분 차이로 놓쳤다. 나는 가방과 치솔 등 아무 것도 없는 맨몸이었다. 나는 산 호세를 방문할 때마다 묵었던 호텔과 공항 주변의 다른 곳에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모두 만원이었다. 마침 컴퓨터 박람회가 개최되어 모든 호텔이 꽉 찬 것처럼 보였다. 내가 막 포기하고 공항 의자에서 잠을 자기로 결심한 순간, 한 택시 운전사가 다가와서 승차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됐습니다. 내가 필요한 것은 방이에요. 그런데, 시내의 모든 호텔이 만원이더군요."
그는 나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전화를 걸더니 나에게 마지막 방을 구해 줬다. 그 호텔은 사실상 내 택시비를 대신 지불했고 나에게 칫솔과 치약에 면도기까지 제공했다. 그곳은 리츠 호텔은 아니었지만 침대와 샤워기가 있었다. 이제 나는 곤란에 처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거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그 업계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요청하기 시작한다. - 카일 로버스톤
3년전, 나는 로즈볼 게임 입장권을 개막 이틀 전에 구했다.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이렇게 늦게 남아 있는 표가 없을 거야."
나는 생각했다.
"좋아, 일단 요청해 보면 알게 되겠지."
내 아내는 지방의 예매권 판매 회사 사장과 같은 치료 동아리에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그에게 전화를 걸어 남은 입장권이 있는지, 그가 구할 수 있는지, 그 값은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45야드 라인의 J열 좌석을 구했다. 그 위치는 시합 관전에 기가 막히게 좋았고, 내 아들과 나는 영원히 보석처럼 간직하게 될 추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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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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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9장 초나라로 쳐들어가다
1. 노나라의 내란
맹임과 애강
북방 원정을 성공리에 마친 제나라 대군이 귀국길에 제수 근처에 이르렀다.노장공이 강변까지 나와서 제환공을 영접하여 잔치를 베풀고 승전을 축하했다. 제환공은 원래 노장공과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에 특히 오랑캐 땅에서 가지고 온 전리품의 반을 나누어 주었다. 노장공은 거듭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노장공이 관중에게 슬쩍 물었다.
"우리 노나라 접경에 있는 소곡(小穀) 땅이 관정승의 녹읍 (祿邑)이라면서요?"
"그렇습니다."
"과인이 귀국할 때 들러 볼까 합니다."
"소곡 땅을요?"
관중이 노장공의 갑작스런 말을 듣고 의아해 하는데 곁에 있던 제환공이 거들어 말했다.
"중부께서는 이번 원정 길에 큰 공로를 세우느라 휴식 한 번 제대로 취하지 못하셨으니 이번에 노나라 군후와 함께 식읍에 가서 피로도 푸실 겸 쉬었다 오시지요."
노장공이 소곡 땅을 들먹인 데는 까닭이 있었다. 이는 자신의 후사를 관중에게 부탁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장공은 북방 원정으로 관중이 없는 사이에 많은 장정을 보내어 소곡 땅에다 큰 성채를 하나 쌓았다. 은근히 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잔치가 끝나고, 제환공은 임치로 돌아갔고 관중은 노장공과 함께 소곡 땅을 향해 갔다. 가는 도중 그들은 수레를 나란히 타고 담소했다. 노장공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관정승께서 정사를 다루시는 것을 볼 때마다 과인은 참으로 감복하는 바 매우 컸소이다. 이번에도 큰 공을 쌓으시고 귀국하시니 양국에 큰 기쁨이라 아니할 수 없소이다."
관중이 매우 당황하여 겸사했다.
"과하신 분부입니다. 군후께서 외신(外臣)을 어여삐 봐주시는 덕분입니다."
한차례 이야기가 오고 간 후, 노장공이 느닷없이 말했다.
"관정승께서는 과인이 없더라도 우리 노나라를 각별히 형제국으로 돌봐 주십시오."
관중이 서둘러 위로했다.
"군후께서 아직 춘추 정정하신데 어인 말씀이십니까. 외신은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나이다."
노장공이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오래된 때의 일이었다.
-노장공이 즉위한 지 3년이 되던 해였다. 그러니까 벌써 29년 전의 일이다. 노장공이 낭대(郞臺)에서 잔치를 열고 있었다. 이 때 노장공은 대 위에서 신하와 그 신하들의 가족들을 굽어보다가 한 아름다운 처녀를 발견했다. 그 처녀는 당씨(堂氏)의 딸 맹임(孟任)이었다. 노장공은 맹임에게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래서 한 내시를 시켜 맹임을 불러오게 했다. 그런데 맹임은 내시의 전갈에 순순히 따라오지 않았다. 노장공은 헛걸음을 치고 온 내시에게 다시 분부했다.
"한번 더 가서 진심으로 과인을 섬기면 마땅히 부인(夫人)으로 삼겠다는 말을 전하여라."
맹임은 이 전갈을 받고 내시에게 단단히 다짐을 해 두었다.
"이 몸을 부인으로 삼겠다는 그 약속을 천지 신명께 맹세하시라고 전해 주세요."
노장공은 천지 신명께 맹세하겠다고 했다. 맹임은 그제서야 노장공에게 왔다. 그리고 칼로 자기 팔뚝을 찔러 피를 흘리면서 두 사람의 약속을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그날 밤, 맹임은 노장공과 함께 낭대에서 동침했다. 이튿 날 노장공은 맹임을 수레에 태우고 궁으로 돌아갔다. 그런지 1년이 지나서 맹임은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의 이름을 반(般)이라고 했다. 이에 노장공은 맹임을 부인으로 삼겠다는 뜻을 모친인 문강에게 청했다. 문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강은 노장공을 어떻게 하든 간에 자기의 친정 제나라 여자와 결혼시킬 작정이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문강은 친정 오라버니인 제양공이 기나라를 치고 돌아올 때 마중 나갔다가 끝내 그를 설득하여 갓난아기 딸과 노장공을 약혼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제양공의 딸 애강(哀姜)은 그 때 나이 겨우 한 살이었다. 그래서 노장공은 20년을 기다려 지난번 문강의 유언에 따라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니 노궁(魯宮)의 정실 부인은 애강이 되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므로 맹임은 노장공의 정실 부인이 되지 못하고 허구한 세월을 보내야 했고, 마침내는 첩실이 되고 말았다. 20여 년이 넘도록 노나라 육궁(六宮)의 제반사를 다스려온 맹임은 울화병이 생겨 병석에 드러눕게 되었다. 그러다 얼마 후 일어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노장공은 맹임의 죽음을 몹시 괴로워하고 슬퍼했으나 하는 수 없이 첩에 대한 예로써 장사지냈다. 이 일이 있은 후 노장공은 애강이 더욱 미웠다. 그래서 애강은 비록 부인으로 있었지만 노장공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노장공은 아무래도 선군을 죽인 원수의 딸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애강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다만 잉첩으로 따라온 그녀의 친정 동생 숙강에게서 아들이 하나 태어났다. 그 아이의 이름은 계(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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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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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소운편"
김소운(1907~1981)
수필가, 시인. 일본 문학가. 호는 소운. 경남 부산 출생. 일본에서 중학 중퇴. 초기에는 시로 출발하여 관념시 계통의 시작품을 발표했으나 일본인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을 통감하고서 한국의 민요, 동요, 시 등을 일본에 소개하는 작업을 벌여 크게 주목받았다. 문학의 사회자로 문화 수출의 상인으로 자처했던 그는 후기에는 인생에의 통찰이 담긴 격조 높은 수필을 많이 발표하여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창원 장날
그 날이 아마 창원의 장날이었던지, 찻간에는 짐을 가진 이가 많았다. 경부간에 해방자호가 다니던 시절이니, 그 때만 해도 옛 말이다. 진해를 두어 역 앞두고, 기차가 상남 성주사간을 달리고 있다. 그 때는 이 찻간에도 유리창이 있고, 좌석이 있었다. 물론 전등도 켜져 있었다. 내 옆 자리에 총을 가진 순경 하나가 있는 것을 외투 겉으로만 보고 나는 처음 군인인 줄만 알았다.
--오늘 쌀값이 얼마나 갑니까?
북쪽 말씨로 그 순경이 어느 장꾼 노인더러 묻는다. 그 노인이 두어 말짜리 쌀 부대 하나를 가졌다. 얼마 얼마 하더라는 대답이다. 순경과 노인 사이에 몇 마디 문답이 오고 간다.
--쌀은 장사하려고 사 가시나요?
--그저 장사가 되면 장사를 하고 집에서 먹게 되면 먹고 그렇지요.
--어디까지 갑니까?
--경화에서 내립니다.
--나도 경화에서 내려야겠는데..., 경화동은 싸점이 있지요?
--있습니다.
--지금 가면 쌀을 살 수 있을까요?
--문을 닫았을 건데..., 깨우면 일어날지 모르지요.
그 대답으로 안심이 안 되는지 순경은 좀 걱정스런 표정이다.
--싸점이 한 집뿐인가요?
--또 있기는 있어도 좀 멀구요. 역에서 가까운 게 그 한 집뿐이지요.
--그 쌀, 몇 되만 팔아 주실 수 없나요?
--팔아도 좋지요. 좋지마는 밤중에 쌀을 사서 뭘 하려고 그럽니까?
어쩐지 그 장꾼 노인은 팔기를 별로 탐탁찮게 아는 눈치다. 순경도 거기까지로 입을 닫았다. 전등 불빛으로 보아서 25, 6세-남을 우기거나 위협은 못 할 순진한 얼굴이다. 그 순경의 몇 마디 말이 내게 몹시 궁금스러웠다.
--경화동서 근무를 하시나요?
혹시 새로 부임해 와서 경화동 지리를 잘 모른다는 경우를 상상해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아닙니다. 터널 이쪽 수원지를 지키고 있어요.
--수원지가 거기 있었던가요? 그런데 왜 경화까지 가요? 성주사가 더 가깝지 않아요?
--쌀을 좀 사 가려고 그럽니다. 동료들이 여태 저녁을 못 먹고 있을 텐데...
마산서 와야 할 쌀 배급이 며칠 늦어서 오늘 찾으러 갔더니, 2, 3일 더 기다리라고 해서 빈 손으로 오는 길이라는 이야기다.
--아침에 남은 쌀을 톡톡 털어서 죽을 쑤어 먹고 나왔는데, 동료들은 점심도 못 먹고 쌀 가지고 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기차가 성주사역을 지났다. 터널을 빠지면 얼마 안 가서 경화역이다. 내가 묻는 말이 좀 빨라진다.
--수원지를 지키는 이가 모두 몇인데요?
--일곱입니다.
--일곱 식구가 아침에 죽 한 그릇씩 먹고 온종일을 굶었구먼요. 반찬같은 것은 어떡합니까?
--반찬이라니요, 형편 없지요. 소금 한 가지라도 좋으니 쌀이나 꼬박꼬박 주었으면 좋겠어요.
--부근 마을에서 찬 같은 것을 좀 달랄 수는 없나요? 된장이나 김치나...?
--왜요, 여러 번 동냥들을 해다 먹었지요. 하지만 한 번 두 번이지, 염치가 없어서 이젠 더 달란 말은 못 해요.
여기에도 대한 민국의 기름 마른 부속품이 있다. '염치가 없어서-' 얼마나 고마운 말이냐. 누구를 탓하지도 원망치도 않고 묻는 말을 중학생처럼 솔직하게 대답해 주는 그 순경에게 나는 짧은 시간에 정이 들어 버렸다. 내 주머니에 가족들에게 갖다 줄 한 달 생활비가 있다. 그 돈에 손을 댈 자격이 내게 있는지 없는지는 나중에 판정할 일이다. 미담을 제조하는 쑥스러움을 헤아릴 겨를도 없다. 기차가 경화역 앞에서 속력을 늦춘다. 백 원짜리로 쌀 한 말 값을 헤어서(천 원 지폐가 생기기 전이다.) 장꾼 노인에게 쥐어 주고는,
--그 쌀 한 말 이분에게 드리시오.
하고 나는 떠다 맡기듯 당부를 했다. 내리려고 자리를 일어선 젊은 순경은 몹시 당황한 얼굴로,
--공용인데 이런 폐를 끼쳐서야 어디 되겠습니까? 하고 사양을 한다.
--공사이길래 적은 힘이라도 도웁자는 겁니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노릇이지요. 주제 넘는 짓입니다만...
--그럼 성함이라도...
--성함이 다 뭐입니까? 자, 그런 소리 말고 내리시오. 차가 닿았습니다.
순경은 내 선에다 '부산 철도 경찰대 000'라는 명함 한 장을 남겨 두고는 깍듯이 경례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반 년 남짓해서 6.25사변이 일어났다. 우리들의 생활이 그 때와는 비할 나위 없이 더 군색하고 절박해졌다. 그러나 한편에는 이 사변으로 해서 단단히 한 몫 보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인구 비례가 10분의 1 밀도도 못 되는 이 진해 같은 곳에서도 요리집이 몇몇 군데나 되고 엊저녁 누구 회계는 70만원이니 80만원이니 하는 기름진 화제가 앉아 있어도 들려 온다. 하물며 부산쯤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나는 그 터널을 지금도 매월 한두 번씩은 기차로 지나 다닌다. 수원지에는 오늘 밤 같은 소한 추위에도 날을 새우며 지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네들이 행여나 밥을 굶지 않았기를 바란다. 아울러 내 이 얼굴 뜨거운 '선행보고기'가 대한 민국에 되레 욕이 미치는 결과가 되지 않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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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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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자면서도 깨어 있네
항상 <성서>를 읽다 보면 특별히 마음에 와닿아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 있고, 이런 구절들은 우리의 삶에 희망과 기쁨을 더해 줍니다. 뻬어난 사랑노래로 알려진 `아가`서의 `나는 잠잤어도 마음은 깨었었다(아가 5:2)` 라는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나는 금방 누군가의 연인이 된 듯 즐겁고 행복한 느낌이 듭니다. 가끔은 이 말에서 시적 감흥을 받아 `아침의 눈부신 말을 준비하는 벅찬 기쁨으로 나는 자면서도 깨어 있네` 라든가 `잠자면서도 잠들지 않는 나의 그림움` 등의 표현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내가 잠을 자면서도 자주 시의 말을 찾아 깨어있듯이 사랑 또한 그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그 본질상 방심하고 게으르거나 무관심하고 나태할 수 없으며 늘 민감하게 열려 있는 마음의 문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자면서도 아기를 생각하고 아기가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칭얼대면 즉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 역시 자면서도 잠들지 않은 사랑의 설레임으로 들떠 있으며,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직 상대방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가 부르기만 하면 언제라도 반갑게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러한 깨어 있음이야말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갖추게 되는 사랑의 기본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내 애인, 내 가족, 내 친구만을 사랑하고 말기엔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세상엔 너무 많고, 바로 이것이 우리를 자면서도 깨어 있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며, 이것은 아름답다 못해 조금은 괴롭기도 한 우리의 가장 큰 의무인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나약한 우리의 작고 얕고 좁은 마음그릇을 좀더 크고 깊고 넒은 마음그릇으로 바꾸어 사랑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아무 조건 없이 무한대의 사랑으로 세상과 인류를 끌어안은 예수님의 그 큰 마음을 배우고 빌려야만 가능하겠지요. 끓어오르는 미움과 분노를 극복하고 용서와 화해로 거듭날 수 있는 사랑. 한국의 순교성인들처럼 모진 박해 속에서도 충절을 지킨 사랑,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처럼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이웃을 위해서까지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랑, 마더 데레사처럼 가난한 이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사랑, 이 모든 사랑은 단번에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자면서도 깨어 있을 만큼` 꾸준하고 성실한 사랑의 연습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값진 열매임을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런 사랑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고, 이런 사랑을 위해 몸바친 이들이 있었기에 아직 세상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으며 이 사랑에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사랑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신 그분을 기다리는 애틋한 설레임으로 나도 오늘은 잠들기 전부터 문을 열어 놓고 `깨어 있는 마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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