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57호 2022.9.18 (음 8.23)
|
|
글나눔 → 오늘의 어록
|
|
|
한 여자의 이상적인 남성으로 남아 있으려면 독신으로 죽는 길밖에 없다. ― P.P.
|
|
글나눔 → 말글
|
|
|
불교, 불꽃의 비유
우리는 사회 전체를 본 적이 없다.(사회가 있기나 한가?) 그럼에도 사회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다. 사람에 따라 사회는 유기적인 생명체이기도, 적재적소에서 돌아가는 기계이기도, 계급투쟁의 전쟁터이기도, 말(담론)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어떤 이미지를 갖느냐에 따라 세상사에 대한 해석과 해법이 달라진다.
불교철학에서는 이 세계를 ‘불꽃’에 비유한다. 초를 켜면 몇 시간 동안 불꽃이 계속 타오른다. 한 시간 뒤의 불꽃은 처음 불꽃이 아니다. 두 시간 뒤의 불꽃은 처음 불꽃이 아니다. 불꽃은 순간마다 다 다르다. 하지만 앞의 불꽃이 없다면 뒤의 불꽃도 없었을 것이므로 아무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본래의 것도 없지만, 단절된 것도 아니다.
불교는 본성 없는 연속성을 말한다. ‘본성 없음’과 ‘연속성’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은 독립적이지도 본래적이지도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계 속에 존재한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모든 것은 변한다. 불변하는 본질이란 있을 수 없다.
말이야말로 한순간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단어든 문장이든 글이든 변치 않는 의미를 갖는 말은 없다. 시공간과 사람 따위의 인과적 조건(맥락)이 다르므로, 어제 한 말과 지금 하는 말이 다르다. 당신의 말과 내 말은 다르다. 순간순간 타오르는 말의 불꽃이 있을 뿐이다. 허무주의나 상대주의가 아니다. 억압하고 후벼 파는 말이 아닌 자유롭고 해방적인 말이 되려면 말을 둘러싼 인과적인 연관을 포착하려는 실천의지가 필요하다. 말은 돌덩이가 아니다. 일렁거리는 불꽃이다.
백신과 책읽기
나는 천성이 맑고 선하며 예의가 바르다(=맹탕이고 비겁하며 남들 눈치를 본다). 여간해서는 어른들 말씀에 토를 달지 않는다. 맞는 말에도 허허, 틀린 말에도 예예.
마을 일로 마을회관에 갔더니 동네 원로 몇 분이 와 계셨다. 모임 시작 전에 한 분이 백신 얘기를 꺼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백신 중에서 제일 ‘싸구려’인데, 그걸 왜 우리보고 맞으라고 하냐는 것이다. 20만원짜리도 있는데 이건 꼴랑 4천원. 조용하던 마을회관이 노인 차별 규탄의 장으로 바뀌었다. ‘늙은이들은 싼 거나 맞으라는 거냐?’ 카톡에서 얻은 정보다. 백신 가격과 백신 효과는 관계가 없다거나 이윤을 남기지 않고 공급하려는 정책 때문이라거나 유럽 각국의 총리도 다 이 백신을 맞았다는 얘기는… 안 꺼냈다.
한국의 디지털 정보 문해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바닥권이라는 피사(PISA)의 발표가 있었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내용은 학생이 읽어야 하는 글의 길이였다. 핀란드, 덴마크, 캐나다 등 상위 국가는 100쪽이 넘는 글이 전체 글의 70~75%를 차지한다. 한국은 10%에도 못 미쳤다. 76개국 중 67위이다. 긴 글을 읽는 행위와 문해력은 상관관계가 높다. 또한 디지털보다 종이책으로 읽고, (시험이나 강제가 아닌) ‘즐거움’을 위해 읽어야 문해력이 길러진단다.
방법은 많지 않다. 문해력을 기르려는 공동 노력뿐이다. 나도 마을 어른들과 책읽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맹탕처럼 보이는 처방이지만, 가짜 정보와 사특한 논리를 가려내어 남녀노소, 빈자와 부자가 어울려 사는 마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
|
시나눔 → 우나라詩
|
|
|
절망(絶望) - 김수영
나날이 새로워지는 괴기(怪奇)한 청년
때로는 일본에서
때로는 以北에서
때로는 삼랑진(三浪津)에서
말하자면 세계의 도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천수천족수(千手千足獸)
美人, 詩人, 事務家, 농사꾼, 商人, 야소(耶蘇)이기도 한
나날이 새로워지는 괴기한 인물
흰 쌀밥을 먹고 갔는데 보리알을 먹고 간 것 같고
그렇게 피투성이가 되어 찾던 만년필은
妻의 빽속에 숨은 듯이 걸려있고
말하자면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언제나 나의 가장 가까운
내 곁에 있고
우물도 사닥다리도 愛兒도 거만한 문표도
내가 犯人이 되기 전에
(벌써 오래 전에!)
犯人의 것이 되어있었고
그동안에도
그뒤에도 나의 詩는 영원한 未完成이고
<1962. 7. 23>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십년한창(十年寒窓)
'十年寒窓'은 '10년동안 사람이 오지 않아 쓸쓸한 창문(寒窓)'이나, '오랫동안 두문불출(杜門不出)한 채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공부한 세월'을 비유한다. 金나라때 유기(劉祁)의 <귀잠지(歸潛志)>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古人謂 十年窓下無人問 一擧成名天下知'(옛 사람이 이르길 10년동안 창문 아래 묻는 이가 없더니 한번에 이름이 나니 천하 사람이 다 알게 되었다). '이름이 나다'(成名)는 科擧에 及第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해야만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기에 젊은이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책과 씨름했다. 그런 고생스런 과정을 거쳐 일단 급제만 하면 '天下知名'(세상에 이름이 알려짐)이었으니, 요즘 山寺에서 공부헤 考試에 합격, 揚名하는 것과 비슷하다. '十年寒窓'은 '十年窓下'라고도 한다.
|
|
글나눔 → 추천글
|
|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말할 수 없으면 편지를 써라 - 레오 톨스토이가
미래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피 안드레에브나, 나는 이런 식으로 더이상 버틸 수 없소. 지난 삼 주일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다짐해 왔소.
"오늘 그녀에게 말을 해야 해."
그런데도 내 가슴은 당신을 향한 기쁨만큼이나 공포와 후회와 슬픔으로 뒤엉켰다오. 매일밤 나는 하루를 되돌아보고 당신에게 아무 말도 못한 나 자신을 저주하고, 말 이외에 다른 방법을 궁리해 왔소. 나는 이 편지를 지니고 있다가. 내 용기가 또 다시 나를 실망시킬 때 이것을 당신에게 전하겠소.
3. 전문가에게 요청하라 - 스텐 데일
안전지대는 푹신푹신한 관이다. 그 관속에 누워 있을 때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긍정적인 기대를 갖고 요청하라
- 마르시아 마틴, 세미나의 수석 조교이자 책임자
샌프란시스코 특급 호텔에 들렀을 때, 나는 현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 수표를 현금으로 바꿀 생각을 했지만, 거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내가 이 호텔에 투숙한 손님이 아니기 때문에 호텔 측에서 내 수표를 바꿔주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둘째는 내가 운전 면허증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당시, 내 운전 면허증이 먼 곳에서 우송되어 오는 중이었으므로 나는 일반적으로 수표를 현금화하는데 필요한 신분 증명서를 지니지 못한 셈이었다. 나는 데스크로 가서 이런 말을 하는 평소의 내 모습을 상상했다.
"저기,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이 호텔의 투숙객도 아니고 운전 면허증도 없습니다만 당신이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주시면 고맙겠는데요."
그리고 그 다음에 이런 대답을 듣게 되리라.
"안됩니다. 당연히 당신의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드릴 수 없습니다. 당신은 운전 면허증도 없고, 이곳의 손님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나는 다른 결과를 얻으려면 다른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수표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무슨 밀을 하고, 어떻게 걷고,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에 대해 머리 속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상상한 다음, 내 자신을 그 확실한 입지에 끼워 놓고 그대로 행했다. 나는 조금도 거리낌없이 당당하게 프론트 데스크로 걸어가서, 데스크 직원에게 말을 거는 동시에 지갑에서 수표책을 꺼냈다. 나는 내 수표가 현금화되리라는 것을 하는 상황에서 굳이 직원의 대답을 기다렸다가 수표책을 꺼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데스크 직원을 똑바로 응시하며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주실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주는 최대 금액이 얼마나 됩니까?"
나는 수표책을 그의 앞 카운터에 내려놓고, 즉시 펜을 꺼내 수표 하단의 수신자 난에 호텔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데스크 직원은 나의 확신에 말려들었고, 나에게 이 호텔의 투숙객이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내 태도로 투숙객이 확실하다고 믿었다. 그는 대답했다.
"백 달러입니다."
나는 그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소! 완벽하게 잘될 거요."
그 태도는 내가 현금을 받으리라 확신하고 취할 수 있는 말과 어조였다. 나는 백 달러 수표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가 말했다.
"운전 면허증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좋소, 아무 문제없소."
그리고 나는 지갑에서 운전 면허증이 아닌 다른 신분증을 꺼냈다. 나는 그것을 건네며 말했다.
"여기 있소, 다 잘될 거요."
나는 신분증을 건네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차하게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나는 그 신분증으로 통하리라는 입지에서 나올 만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내 신분증을 확인하고 말했다.
"운전 면허증이 필요한대요."
"좋소, 아주 좋소. 아무 문제없소"
나는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그냥 무조건 받아들였다. 그리고 좀전에 확신에 찬 말을 다시 확인했다.
"그것을 사용해봐요, 운전 면허증과 똑같은 거요. 그러니 운전 면허증과 똑같은 효력을 발휘할 거요. 다 잘될 거요."
나는 신분증을 그에게 다시 내밀었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그가 신분증을 운전 면허증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양 한참 들여다봤던 것이다. 그러더니, 그는 다시 한 번 미약하게 시도했다.
"저기, 진짜 운전 면허증이 필요합니다만..."
나는 그냥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것을 사용해봐요. 잘될 거요."
그는 덩달아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그는 그 신분증과 내 수표를 번갈아 봤다. 나는 그가 정말 그것을 운전 면허증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봤고, 결국 그가 그 두 가지를 동일시했음을 알아차렸다. 그가 고개를 들고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백 달러를 건넸다.
|
|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
|
|
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4. 북방 원정에 나서다
유아의 가르침
이 때, 저편 산 위에서 이상야릇한 괴물 하나가 뛰어나왔다. 제환공이 눈을 흡뜨고 그 괴물을 바라보았다. 그 괴물은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고, 짐승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았다. 키가 1척 남짓하고 붉은색 옷을 입고 검은 관을 썼는데, 뭔가 붉은 것을 두 발에 붙이고 있었다. 그 괴물은 제환공을 향하여 팔을 끼고 세 번 읍한 후 마치 영접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갑자기 오른손으로 옷을 걷어올리고 석벽 사이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제환공이 크게 놀라 관중에게 물었다.
"경도 보았소?"
관중이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제환공은 방금 본 그 괴물 모양을 자세히 말했다.
"그것은 아마도 유아(兪兒)인 듯합니다."
"유아라니, 그게 무엇이오?"
제환공의 묻는 말에 관중이 설명했다.
"신이 일찍이 듣건대 북방엔 등산의 신이 있다고 하옵니다. 그 신을 유아라 하는데, 유아는 천하의 패왕이 될 어른에게만 나타나 보인다 합니다. 주공께서 방금 보신 것이 그 유아인 듯한데 그가 읍하고 영접하는 듯한 자세를 보인 것은 주공께 적을 무찌르라는 뜻이며, 옷을 걷어올린 것은 앞에 물이 있다는 것이며, 오른손으로 옷을 걷어올린 것은 오른편의 물이 깊다는 뜻이니 주공께 왼편으로 가시라는 뜻인가 하옵니다."
유아란 것을 알아낸 관중의 식견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관중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물이 앞을 가로막았으니 다행히 석벽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선 군사는 산 위에 진을 치고, 사람을 보내어 물의 형세를 자세히 살핀 뒤 군마를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관중은 군사에게 명해 물의 형세를 알아오라 분부하니 한참 뒤에 돌아와 보고했다.
"산에서 5리쯤 내려가니 비이계가 있습니다. 물은 넓고 깊어서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다 합니다. 원래 그 곳은 뗏목으로 건너는데, 이번에 융주가 뗏목을 모두 거둬 버렸고, 오른쪽의 물이 깊어 몇 길 되지만 왼편을 따라 3리쯤 가면 수면이 넓고 얕아 무릎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합니다."
제환공이 보고를 받고 손바닥을 비비며 감탄했다.
"유아가 보여 준 징조가 이렇듯 영험하다니 놀랍구나."
연장공도 감탄해 마지않았다.
"비이계는 얕은 곳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건널 수 있다니 이는 하늘의 도우심이라. 군후께서는 반드시 이번 일이 성공하실 것이외다."
제환공이 물었다.
"여기서 고죽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오?"
연장공이 대답했다.
"비이계를 건너 동쪽을 향하여 똑바로 가면 처음이 단자산(團子山), 다음이 마편산(馬鞭山), 그 다음이 쌍자산(雙子山)입니다. 이 세 산 사이가 약 30리씩이며, 그 곳에 바로 상(商)나라 때, 고죽삼군(孤竹三君)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 세 산을 지나 다시 25리를 가야만 무체성(無 城)에 이릅니다. 그 곳이 바로 고죽국의 도읍입니다."
이 때 호아반이 본부병을 거느리고 먼저 물을 건너겠다고 자청했다. 관중이 분부했다.
"군사가 한 곳으로 가다가 적을 만나면 진퇴양난인지라, 모름지기 두 길로 나눠서 가도록 하여라."
모든 군사는 대나무를 베어 칡덩굴로 얽어매니 삽시간에 수백 개의 뗏목이 생겨났다. 그 뗏목에 말과 병차를 실을 생각이었다. 그들은 뗏목을 이끌고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모든 군사와 말을 두 대로 나눴다. 왕자 성부와 고흑이 일군을 거느리고 오른편 뗏목을 타고서 건너는 것을 정병(正兵)으로 삼고, 공자 개방과 수작은 제환공을 모시고 그 뒤를 접응했다. 또 빈수무와 호아반이 일군을 거느리고 왼편 뗏목을 타고서 건너는 것을 기병(奇兵)으로 삼고, 관중과 연지름이 연장공을 따라 그 뒤를 접응했다. 비록 진로는 좌우 그대로 나뉘었으나 그들은 단자산 아래에서 모이기로 했다.
황화원수의 대패
한편 무체성의 답리가(答里呵)는 제나라 군사에 대한 그 후 소식을 몰라 다만 하졸을 비이계로 보내어 적정을 알아오게 했다. 하졸이 가 본즉, 계변엔 대나무 뗏목이 가득 늘어서 있고 병마가 분분히 물을 건너고 있었다. 하졸은 황망히 성으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보고했다. 답리가는 크게 놀라 즉시 황화원수에게 군사 5천을 거느리고 가서 적을 막도록 명령했다. 밀로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 몸이 이 곳에 있으면서 아무 공을 세우지 못했으니 원컨대 속매를 거느리고 가서 선봉이 되겠습니다."
"여러 번 패한 사람과 함께 가서 막강한 제군을 어찌 상대 할 수 있으리오."
황화원수는 이렇게 비웃으며 선뜻 말에 올라 출발했다. 답리가가 미안해서 밀로에게 말했다.
"서북쪽에 있는 단자산은 동쪽에서 이 곳으로 오는 중요한 길입니다. 번거롭겠지만 병사를 거느리고 가셔서 그 곳을 지켜 주오. 내 곧 뒤따라가리다."
밀로는 비록 응낙은 했으나 황화원수에게 당한 모욕 때문에 매우 불쾌했다. 한편 황화원수는 비이계에 당도하기도 전에 고흑의 전위 부대와 만나 곧 양편 군사는 싸웠다. 고흑의 부대는 황화의 군대가 많아 뒤로 밀렸다. 그 때 왕자 성부가 달려와 합세하니 양쪽 군대는 엇비슷해져 접전을 벌였다. 황화원수와 왕자 성부가 어울려 50여 합을 겨뤘으나 기량의 차이가 없어 좀체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 때 후면으로부터 제환공의 본대가 들이치고 좌우에서 개방과 수작이 협공하니 황화원수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는 군사를 버리고 홀로 도망쳤다. 홀로 도망을 친 황화원수는 단자산 가까이까지 와서 산 위를 바라보니 군마가 가득 모인 가운데 제 . 연 . 무종 세 나라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빈수무가 먼저 물을 건너 단자산을 점령했던 것이다. 황화 원수는 감히 산을 지나가지 못하고, 말을 버린 후 나무꾼으로 변장을 하고 사잇길로 빠져 달아났다. 크게 승리한 제환공은 단자산에 이르러 군마를 한 곳에 쉬게 하고, 다시 진군할 일을 논의했다. 한편 밀로는 군사를 이끌고 마편산에 당도하니, 전초병이 급하게 보고했다.
"제군이 벌써 단자산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니 이 곳에 진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밀로는 마편산에 진을 쳤다. 얼마 후, 황화원수는 겨우 목숨을 보전해 마편산 아래에 이르렀다. 황화원수는 자기 군사들이 도망쳐서 진을 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병영 안으로 들어가니, 밀로가 자리에 높이 앉아서 분개한 얼굴로 그의 꼴을 보고 비웃음의 말을 던졌다.
"싸울 때면 언제나 이기는 장군께서 어이하여 이번에는 혼자 이런 꼴로 왔소?"
황화원수는 얼굴을 붉히며 술과 음식을 청하니 밀로는 볶은 보리 한 되를 내주고, 타고 갈 말을 청하니 발바닥에 징도 박지 않은 말을 내주었다. 황화원수는 밀로를 크게 원망하며 그 길로 무체성으로 들어가 주장 답리가에게 청원했다.
"원컨대 군사를 한 번만 더 주십시오. 반드시 이 원한을 씻고야 말겠습니다."
답리가가 탄식을 했다.
"내가 원수(元帥)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 꼴이 됐구려."
황화원수가 다시 답리가에게 말했다.
"제후가 군사를 일으킨 주요 원인은 영지(令支)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하오니 밀로의 목을 베어 제후에게 바치고 강화를 청하면 좋으리라 생각하옵니다."
"밀로가 얼마나 급했으면 내게 의지하러 왔겠소? 나를 믿고 찾아온 사람을 어찌 목을 칠 수 있으리오?"
황화원수의 말에 난색을 표하는 답리가였다. 곁에 있던 재상 올률고가 답리가에게 아뢰었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패함으로써 도리어 공을 세울 수 있는 방안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계책이오? 속히 말하시오."
올률고의 말에 답리가는 반갑게 물었다. 올률고는 자기의 계책을 차근차근 답리가에게 아뢰었다.
"우리 나라 북쪽에 이름은 한해(旱海)라고도 하며, 미곡(迷谷)이라고도 하는 땅이 있는데 그 곳은 모래와 자갈뿐 물과 풀은 찾아봐도 없는 메마른 곳이 있습니다."
"그렇소, 나도 말로는 들어보았소."
답리가가 맞장구를 쳤다. 올률고가 계속해서 말했다.
"옛부터 사람들이 시체를 그 곳에 버려서, 대낮에도 늘 귀신이 나타나며 찬바람이 일어납니다. 그 바람을 쐬기만 하면 사람이건 말이건 다 상합니다. 즉 모발(毛髮)만 그 바람에 쐬어도 죽습니다. 또 바람과 모래가 뒤섞여 일어나면 지척을 분별할 수 없어 마치 길 없는 골짜기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더구나 그 산골 길은 몹시 복잡해서 한번 들어만 가면 나오질 못합니다. 겸하여 독사와 맹수가 들끓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편에서 한사람이 적에게 가서 거짓 항복을 하고 적을 저 무서운 곳으로 유인하면 싸우지 않고도 적을 다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군마를 정돈하고 앉아서 적이 거꾸러지는 걸 기다리면 됩니다. 이 어찌 묘한 계책이 아닙니까?"
답리가가 물었다.
"제군이 그 곳으로 갈 리 있겠는가?"
올률고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주공께선 궁중 권속과 함께 잠시 양산(楊山)으로 행차하십시오. 그리고 성중 백성들로 하여금 다 산곡으로 피난하게 하고, 성을 완전히 비워 두십시오. 거짓 항복한 사람이 제후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 주공이 사적(砂績)으로 도망갔으니 군사만 빌려 주면 뒤쫓아가서 무찌르겠다고 하면, 적군이 곧이 듣고 반드시 추격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의 계책에 빠집니다."
이 말을 듣자 황화원수는 크게 기뻐하며 자기가 가겠노라고 자청했다. 마침내 황화원수는 병졸 천 명을 거느리고 계책대로 떠났다. 황화원수는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 밀로를 참하여 그 목을 들고 가지 않으면, 제후가 어찌 내 말을 믿으리오. 만일 이 일이 성공하면 주공도 나를 꾸짖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황화원수는 마편산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한편 밀로는 마편산에서 제군과 서로 대치(對峙)하고 있었다. 이 때 마침, 밀로는 황화원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오는 줄로 잘못 알고 흔연히 나가서 영접했다.
"장군은 먼 길을 오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소?"
밀로는 허리를 굽혔다. 황화원수는 때는 이 때다 하고 생각했다. 순간 황화원수는 칼을 뽑아 밀로를 쳤다. 굽혔던 허리를 펴기도 전에 밀로의 머리는 칼에 맞아 땅바닥에 구르고 몸통은 그대로 쓰러졌다. 이를 본 밀로의 신하 속매는 대로하여, 즉시 말에 올라 칼을 높이 들고 황화원수에게 덤벼들었다. 양편 군사는 각기 그 주인을 도와 싸움이 벌어졌다. 같은 편끼리 서로 치고 죽였다. 결국 속매는 당할 수가 없어 도망쳤다. 도망치다 보니 그 자신 돌아갈 데가 없었다. 그래서 속매는 호아반의 진영으로 가서 투항했다. 그러나 호아반은 속매를 용서하지 않고 그 죄를 크게 꾸짖은 후 군사들로 하여금 끌어내 참하게 했다.
|
|
글나눔 → 읽어둘문학
|
|
|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효석편"
이효석(1907__1942)
소설가. 호는 가산. 강원도 평창 출생. 경성 제대 법문학부 졸업. 숭실 전문 학교 교수 역임.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주옥 같은 단편 소설을 썼던 이효석은 수필에도 여러 작품을 남겼다. 간결체 문장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우유
'모던 타임스'에서 채플린이 고따드와 가정 생활을 공상하는 대목이 있다. 물론 집이 교외에 있는 탓도 있겠지만 바로 문 밖에 열린 포도를 따먹고 우유는 문간에 매어 둔 소에게 직접 짜서 그 자리에서 마신다. 이 목가적 취미는 아마도 현대인의 누구나가 환상하는 것일 듯하다. 목가적 취미의 사치한 치장은 그만두고 그저라도 우유를 풍족히 먹고 싶다는 원부터가 우선 급하다. 나날의 곡량은 물론이거니와 시민마다가 우유를 풍족히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된 사회일까. 만반 문제의 출처인 요점을 이렇게 간단히 말해 버린다면 어리석은 잠꼬대가 될는지 모르나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든 우유를 중요한 양식으로 삼고 그것을 때마다 흡족하게 마시는 습관과 처지에 있는 서방인이 확실히 우리보다는 행복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유를 마시는 풍습은 물론 근래의 것, 적어도 피유리가 흑선으로 동방에 시항해 온 이후에 속한다. 그 이전에는 그것을 대신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면 그만큼 불행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어떤 극동인이 인도에 여행하였을 때에 간디는 인도의 서민층의 생활을 생각하고 두부 만드는 법을 물었다고 한다. 영웅으로서 오히려 이러한 세밀한 배려가 있음은 하찮은 식물 한 가지의 보통화가 족히 백성 전부에게 큰 복지를 가져오는 까닭이다. 백성 전체가 우유를 흡족하게 마시는 나라야말로 두말할 것 없이 이상 사회일 것이다.
학교 농장에서 아침 저녁으로 배달해 오던 우유를 흔하게 마실 때에는 아무 걱정 없던 것이 농장의 우유가 끊어진 이후로는 크게 공황을 느끼게 되었다. 질과 값으로 거리의 우유가 도저히 농장의 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면 그 어느 날이나 번기는 법 없이 마치 성탄옹의 선물과도 같이 어림없이 듬직한 5흡들이 콜병이 유회색 문등 아래편 시멘트 바닥 위에 놓여 있었다. 로이드 영화에 나오는 커다란 그 병이다. 여름에는 담쟁이의 이슬을 맞고 겨울에는 언 채로 오뚝 놓여 있는 그 풍모부터가 우선 상 줄 만하다. 물론 새벽에 갓 짠 생우유다. 냄비에 붓고 표면에 얇은 유막이 앉을 때까지 끓여서 식후에 숭늉을 대신으로 벌떡벌떡 켜는 것이다. 겨우 한 잔의 우유로 혀를 댈까 봐 고양이같이 홀짝홀짝 핥는 것과는 운치와 격이 다르다. 특히 겨울에 얼어서 살얼음이 잡힌 것을 끓여서 흡사 풋옥수수 삶은 냄새 나는 눅진한 액체를 입안에 그득 머금었을 때 우유의 진미는 그 한 모금에 있다.
해외를 돌아온 학자가 스위스에서 먹었다는 우유 자랑을 하나 농장에서 오는 우유가 결코 그에 밑지지 않을 듯하다. 한 홉에 실비로 3전, 한 콜에 15전, 하루에 두 콜이라도 30전, 한 달에 서 말의 우유를 위 속에 부어도 9원이면 족하다. 그것이 요사이 와서는 사정이 너무도 달라졌다. 농장이 없어진 까닭에 당장에 우유 기근을 만난 셈이다. 한 홉 7전의 거리의 우유를 하루에 한 되를 마시려면 한 달에 20원을 넘는다. 미곡과 신탄대를 합한 액수보다도 많다. 농장에 있는 배달부가 K목장으로 고용을 간 날로 구면이라고 즉시 주문을 맡으러 왔다. 하는 수 없이 하루 아침에 세 홉씩을 부탁해서 식구들과 나누게 되었으나 당초에 부족한 양일 뿐 아니라, 아무래도 협잡물이 든 것 같아서 농도가 옅고 맛이 덜하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면 전과는 달리 아치형의 좁은 홍예문 아래편 시멘트 바닥 위에 가느다란 한 홉 병이 세 개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것이 콜병의 위용과는 엄청나게 빈약하게 보인다. 겨울보다 체중이 반 관이나 준 것을 우유 부족의 탓으로 돌린대도 과장을 아닐 듯싶다. 어떻든 농장의 우유는 생각할수록에 행복스런 선물이었고 지금 우유는 그래도 나으나 더 못한 악질의 우유를 찾는다면 함경선 식당차에서 파는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 우유치고 이보다 더 못한 것을 구하려면 지옥으로 가야 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우유를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지금에 있어서는 가장 원하는 세상이며 바라건대 거리의 복판마다 냉장의 우유 탱크를 세우고 오고 가는 시민에게 자유로 마시게 하거나 혹은 수도와 마찬가지로 지하에 우유를 묻고 각 가정에서 나사만 틀면 적량의 신선한 우유가 언제든지 졸졸 쏟아지게 하는 설비가 국가 경영으로서 하루바삐 생겨질 날을 공상이 아니라 충심으로 원하는 바이다.
|
|
글나눔 → 삶속의글
|
|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마음의 작은 표현들
며칠 전에 오랜만에 바닷가에 나갔다가 모래 속에 깊이 묻혀 있는 아주 작은 조가비들을 주워 왔고, 오늘은 솔숲길을 산책하다 깨끗한 모양의 솔방울과 도토리들을 주워 왔습니다. 나는 이것을 한동안 소식이 뜸했지만 마음으로 가까운 어린 시절의 벗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려고 상자에 담아 두었습니다. 요즘처럼 좋은 물건들이 넘쳐나고, 돈만 주면 못 사는 것이 없을 만큼 풍요로워진 시대일수록 상점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선물보다는 주는 이의 정성과 따스한 마음이 담긴 요란하지 않은 선물이 오히려 더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아주 작은 메모쪽지 하나라도 때로는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경험하게 됩니다.
여권과 비행기표마저 잃어버리고 상심해 있던 몇 년 전의 여행길에서 누군가 나뭇잎에 `굿 나잇`이라고 써서 내가 머무는 방에 놓아 주고, 박하사탕 한 개와 함께 놓고 간 격려의 말은 힘든 중에도 작은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나는 특히 해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친지들에게 고국을 느끼게 하는 그림옆서나 나뭇잎, 현재의 사회적 상황이 가장 잘 요약된 신문의 만화, 미담, 아름다운 시들을 오려 보내곤 하는데 긴 글을 못 쓴 채 보내더라도 다들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나의 서랍엔 지금도 친지들이 보내 준 각종 편지, 카드 엽서, 메모지들이 가득합니다. 축일이나 기념일, 어떤 강의 끝에 우리 자매들이 정성을 다해 한마디씩 짤막하게 이어서 쓴 글은 아름다운 모자이크나 조각보처럼 여겨져서 선뜻 버릴 수가 없습니다. 무선전화기와 호출기 사용자가 늘어나고, 편지도 컴퓨터로 찍어 모사전송으로 보내는 이들도 많아지는 요즘엔 친필편지 받아 보기도 그리 쉽지 않은 듯합니다. 나도 가끔은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라도 꼭 친필로 쓸 여백만은 남겨 두곤 합니다. 기계로 찍힌 글씨와 비록 악필일지라도 손으로 직접 쓴 글씨를 받아 볼 때의 느낌은 크게 다르기 때문이지요.
`친구야, 편지 한 번 안하는 무심함에다 세상에 없는 천하태평이라구? 하지만 내 편에선 늘 너를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소식이 없어도, 안 봐도 넌 늘 내 가장 가까운 마음의 친구이다. 너무 유명(?)한게 흠이긴 하지만 친구야. 너를 늘 생각하고 사랑한다.`
며칠 전 열다섯 살 때의 글씨 그대로인 중학교 친구 혜숙의 쪽지를 오랜만에 받은 나는 그가 불쑥 전화로 얘기한 것보다 더 찡한 감동을 받고 행복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벗과 친지들에게 건강한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사랑과 기쁨의 표현을 부지런히 하고 사는 소박한 부자가 되자며 강조하곤 합니다. 생전엔 거의 발표되지 않고 있다가 사후에 출판된 에밀리 디킨슨의 1700여 편이나 되는 제목 없는 많은 시들은 그가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은 그의 가족 친지들에게 적어 보낸 카드나 편지글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새봄을 맞아 우리는 가족, 친지, 이웃에게 적어 보낼 좋은 생각과 좋은 글귀들을 많이 모아 둘 수 있는, 그래서 열기만하면 언제라도 작은 보물섬이 되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문집 한 권을 준비하면 어떨까요? 시. 의미있는 그림이나 만화, 격언, 감동적인 체험담 등을 열심히 모아서 꾸미다 보면 그 자체가 기쁨이 되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하고 싶어도 선뜻 쓸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엔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해줄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