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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6호 2022.9.17 (음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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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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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의 이상적인 남성으로 남아 있으려면 독신으로 죽는 길밖에 없다. ― 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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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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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말
아이를 돌보는 어른에게 가장 행복한 시기는 아이가 말을 배울 때다. 아이의 말은 대부분 짧거나 비슷한 소리를 거듭한다. 맘마, 까까, 찌찌, 응가, 쉬야, 냠냠, 지지, 떼찌, 맴매. 동물 이름도 소리를 연결하여 꼬꼬닭, 야옹이, 멍멍개, 꿀꿀돼지라 한다. ‘어서 자!’ 말고, ‘코 자!’라 해야 잔다.
아이를 묘사하는 말도 따로 있다. 아이는 아장아장 걷고, 응애응애 운다. 운동 감각을 키워주려고 도리도리, 죔죔, 섬마섬마를 한다. 어른은 대(大)자로 누워 자지만 아이들은 잠투정을 하다가도 나비잠을 잔다. 먹은 것 없이 처음 싸는 배내똥은 늙어 죽을 때 한 번 더 싼다. 걸음마를 배우고 아장아장 걷게 될 무렵부터 아이의 말도 팝콘처럼 폭발한다.
낱말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른들이 세상을 다 안다는 듯이 냉소와 무심함으로 살 때, 그들은 이 복잡미묘한 세계를 처음 겪는 낯섦과 혼란에 맞선다. 아이는 인과관계를 생각하는 마음의 습관을 타고난다. 이유나 근원을 자꾸 묻는다. 그러다가 엉뚱해진다. 추리는 대부분 틀리지만,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사물과 현상을 직접 관찰한다는 점이다(말 그대로 직-관(直觀)!). 게다가 이 세계를 분리하지 않고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하려는 본능적 성향을 보인다.
이 세계에 대한 관심과 열정, 그리고 끝없는 질문과 의심하는 태도를 지성이라고 한다면, 어린이야말로 지성인이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행복하다. 세계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언어를 재료 삼아 삶을 건축해 나가는 한 인간의 집념을 목격하는 일이다.
외로운 사자성어
‘당신의 어휘력’을 평가하는 약방의 감초. “‘당랑거철’이 뭔 뜻이지? 마부작침’은?” 하면서 상대방 기죽이기용 무기로 자주 쓰인다. 한국어능력시험에서도 한두 문제는 거르지 않고 나오니 달달 외우지 않을 수 없다.
딸에게 ‘마이동풍’을 아냐고 물으니, 들어는 봤지만 정확한 뜻을 모른다고 한다. 어릴 적 마을학교에서 소학이나 명심보감을 배웠는데도 모르냐고 하니, 배우는 것과 기억하는 것은 다를뿐더러 아는 것과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며 사뭇 진지한 ‘변명’을 했다.
모두 한 뭉텅이의 ‘옛날 말’이나 ‘꼰대말’처럼 보이겠지만, 사자성어도 각자의 운명이 있다. ‘표리부동, 명실상부, 시시비비’처럼 한자를 알면 쉽게 알 수 있는 단어는 생명력을 갖지만, ‘교각살우’처럼 겉의미와 속의미를 연결해야 하는 말은 덜 쓰인다. 한술 더 떠서 고사성어는 ‘초나라 항우가’라거나 ‘장자의 제물론을 보면’ 같은 식으로 관련한 옛이야기도 알아야 한다.
사자성어가 유창성이나 어휘력을 판별하는 척도인지 의문이다. 알아두면 좋다는 식으로 퉁칠 일은 아니다. 자신의 문장에 동원되지 않는 말은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구식이니 버리자거나 쉬운 말로 바꿔 쓰자고만 할 수도 없다. 문체적 기교든, 아는 체하려는 욕망이든 그것을 써야 하는 순간이 있다. 게다가 축약어 만들기에 면면히 이어지는 방식의 하나다. ‘내로남불, 찍먹부먹, 내돈내산, 낄끼빠빠, 할많하않’. 실질이 요동치지만 형식은 남는다. 뒷방 늙은이 신세이지만 시민권을 깡그리 잃지도 않았다. 시험에 자주 나오지만, 외롭고 어정쩡하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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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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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아케팅 - 김수영
비니루, 파리통,
그리고 또 무엇이던가?
아무튼 구질구레한 生活必需品
오 注射器
2㏄짜리 國産슈빙지
그리고 또 무엇이던가?
오이, 고춧가루, 후춧가루는 너무나 창피하니까
고만두고라도
그중에 좀 점잖은 品目으로 또 있었는데
아이구 무어던가?
오 도배紙 천장紙, 茶色 白色 靑色의 모란꽃이
茶色의 主色 위에 탐스럽게 피어있는 천장지
아니 그건 천장지가 아냐 (壁紙지!)
천장지는 푸른 바탕에
아니 흰 바탕에
엇갈린 벽돌처럼 삘딩 창문처럼
바로 그런 무늬겠다
아냐 틀렸다
벽지가 아니라
아냐 틀렸다
그건 천장지가 아니라
벽지이겠다
더 사오라는 건 벽지이겠다
그러니까 모란이다 모란이다 모란 모란……
그리고 또 하나 있는 것같다
주요한 本論이 네개는 있었다
비니루, 파리통, 도배지……?
주요한 本論이 四項目은 있는 것같다
四項目 四項目 四項目……(면도날!)
<1962.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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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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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천금(一刻千金)
刻은 시간의 단위이다. 요즘의 15분에 해당되지만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千金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니 '一刻千金'(일각은 천금의 가치가 있다)은 '시간을 아껴쓰라'는 말이다. 宋나라때 大文豪 蘇東坡의 <춘소(春宵;봄밤)>라는 詩에 나온다. '春宵一刻値千金'(봄밤의 일각은 처금에 해당한다). 東西洋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의 귀중함을 강조했다.
朱子는 젊은이들에게 시간을 아껴 공부할 것을 이렇게 강조했다.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소년은 곧 노인이 되지만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일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
田園詩人 陶淵明도 비슷한 詩를 남겼다. '盛年不重來……歲月不待人'(한창 시절은 다시 오지 않으니……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歲月如流'(세월은 흐르는 물 같다)도 시간을 중히 여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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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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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2.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
기회를 만들어라 - 마이클 헤세
나는 비디오 데이트 서비스인 '큰 기대'를 통해 아내를 만났다. 제일 먼저, 나는 자기 소개서를 써야 했다. 나는 소개서를 써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더 괜찮게, 더 재미있게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요청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 대부분의 신청자가 '큰 기대'에서 추천한 사진사를 찾는 것과 달리 나는 배우의 명함 사진을 찍는 할리우드 사진사에게 갔다. 그는 필름 세통을 허비한 끝에 얻은 원판 위에 수정 작업까지 더했고, 나는 훨씬 젊어 보이는 좋은 사진을 손에 넣었다. 그 다음에 나는 내 친구에게 비디오 촬영을 부탁했다. 내가 생판 모르는 타인보다 친구에게 훨씬 편안하게 말하고 친밀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추측했기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여성들과 데이트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자신을 잘 포장하여 그들에게 '예스'라는 대답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고 데이트를 청하는 과정이 어색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숫자 게임이고, 일주일에 두 세명의 여성과 데이트를 나가는 것은 좋은 경험이라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경험이 쌓여 갈수록 나는 그 과정에 더 익숙해졌다. 결국 50명 정도의 여성과 데이트를 한 끝에 마리안느를 만났고, 그녀는 내 아내가 되었다.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라 - 릭 겔리나스
나는 공포를 극복하지 않는다. 아주 자주, 나는 거절당하는 공포로 녹초가 된다. 그러면 나는 가만히 앉아서 빌어먹을 전화기를 시한 폭탄처럼 노려본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런 상태는 보통 하루를 넘지 않지만, 아주 드물게 여러 날까지 이어진다. 5년 전에 한 번은 일주일까지 지속되었다. 당시 나는 무기력증에 빠져서 게으름을 피웠다. 우울한 기분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텔레비전만 봤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내 정신 상태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혹시 무기력증이 호흡을 비롯한 신체 다른 기능까지 방해한다는 의심이 들었고, 어쩌면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죽음의 공포에 너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직장으로 돌아갔다. 나는 직장에서 요청하는 일을 다시 시작하든가, 아니면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는 요청하는 공포보다 훨씬 컸다.
아까 말했듯이, 그렇게 심했던 적은 딱 한 번뿐이었다. 대부분은 하루에 열 시간에서 열두 시간씩 일주일 내내 즐겁게 일한다. 하지만 거절당하는 공포의 변형인 그런 무기력증을 경미하고, 짧게 종종 경험한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 자녀에게 투자하십시오(기부금을 내십시오)'라는 나의 초대에 이끌리고 나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임을 안다. 하지만 거절을 너무 많이 계속해서 듣는 일은 사람을 녹초로 만든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 녹초가 되어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지기 일보 직전에 전화기 뒷벽에 작은 메모를 붙였다. 거기에는 거절당하는 공포가 너무 오래 지속될 때마다 나 자신을 무기력과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말이 적혀 있다.
리코에게
다음에 네가 우울해질 때마다 일을 다시 시작한 순간의 기분이 최고였다는 사실을 명심해. 너를 사랑한다. - 리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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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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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4. 북방 원정에 나서다
고죽국의 답리가
마침내 관중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군사들은 일제히 흙이 가득 든 가마니를 등에다 짊어지고 수레를 따라 출발했다. 그 때 군사들에 앞서서 빈 수레 2백 승이 갔다. 빈 수레가 가다가 적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기만 하면 즉각 군사들은 흙이 든 가마니로 함정을 메웠다. 이렇게 하여 제군은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빠지면 메우고, 길을 트며 산곡 입구에 도달했다. 이번에는 길을 가로막아 놓은 수목과 바위들을 치웠다. 마침내 길이 뚫리자 제군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산곡 안으로 쳐들어 갔다. 한편 밀로는 산곡 입구에다 나무와 돌을 쌓아놓고 일단 안심을 했다. 이제부터는 산곡 안 본거지에서 제군의 식량이 떨어져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그날도 밀로는 천하 태평으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제군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는 지마령 쪽 서로(西路)에서 올라온 빈수무와 호아반의 군대였다. 밀로는 기겁하여 말에 올라타고 산곡 쪽으로 달아나려 하는데 그쪽에서는 제나라 본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마침내 함성이 지척간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속매는 밀로를 보호하며 동남쪽을 향해 달아나 버렸다. 드디어 제군은 영지국(令支國)을 점령했다. 마필과 병기, 우양장막(牛羊帳幕) 등속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지난날에 납치되어 갔던 연나라 여자와 남자들만 해도 부지기수였다. 영지국의 백성들은 제군을 보자 크게 놀랐다. 대오가 정연하고 기세가 마치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렇게 강한 군대는 난생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가지 음식을 가지고 나와서 제나라 군사를 열렬히 환영했다. 제환공은 일단 영지 백성들을 위로하고 삼군(三軍)에 영을 내렸다.
"항복한 산융인을 살해하는 자는 극형에 처한다. 그리고 재물을 빼앗지 말라."
이 명령을 들은 영지국 사람들은 크게 기뻐했다. 제환공은 항복한 융인을 불렀다.
"네 주인은 어느 나라로 갔느냐?"
융인이 아뢰었다.
"우리 나라는 고죽국과 이웃해서 서로 친한 사이라 얼마전 고죽국에 원병을 청했는데 아직까지 그들이 오지 않았으므로 고죽국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고죽국은 얼마나 강하며, 고죽국까지의 거리와 길은 어떤가 말해 보라."
"예, 고죽국은 동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상나라 때부터 성곽이 있던 곳으로 거리는 약 1백여 리 정도이며, 도중에 비이계(鼻耳溪)란 시내가 있는데 거기를 건너면 바로 고죽국입니다. 하오나 산길이 매우 험해서 가시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이 말을 들은 제환공은 삼군에 영을 내렸다.
"고죽국이 산융과 동맹하였고 난폭하기도 하니 이 곳까지 와서 그들을 그냥 둘 수 없다. 그러니 전군은 대오를 정비하여 고죽국을 칠지니라!"
때마침 포숙아로부터 아장 고흑(高黑)이 건량(乾糧) 50수레를 싣고 왔다. 제환공은 고흑을 보내지 않고 군무를 보게 하고, 항복한 산융군 중 씩씩한 자 천 명을 골라 호아반 막하에 편입시켜 이번 싸움에 손실된 군사를 보충했다. 3일간 휴식을 취한 제군은 제환공을 옹위해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한편 제군에게 참패하고 도망친 밀로 일행은 고죽국의 주장(主長) 답리가(答里呵) 앞에 나가 통곡을 했다.
"제후가 힘을 앞세워 우리 영지국을 점령하고 빼앗았소이다. 바라건대 우리 원수를 갚아 주오."
답리가가 밀로를 위로했다.
"내 일찍이 군사를 일으켜 그대를 돕고자 계획했었으나 갑자기 몸에 병이 생겨 수일 늦어지는 탓에 그만 시기를 잃고 말았소. 그런데 그대가 이렇듯이 대패하여 도망올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소이다. 그리고 제군이 아무리 용맹 무쌍하다 한들 비이계가 있는데 쉽게 건너오지 못할 것이오. 내 군사를 시켜 계변에 있는 모든 뗏목들을 모아 산골에 들여놓게 하겠소. 어찌 제군이 꼼짝이나 하겠소? 그러니 일단 이 곳에서 쉬면서 그들을 무찌를 준비를 해두고 있으면 기회가 올 것이오. 제군이 물러날 때를 기다려 우리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시살해 간다면 그대는 즉시 나라를 회복할 것이온즉 조급히 굴지 마시오."
그 때 곁에 있던 고죽국의 병권을 쥐고 있는 대장 황화원수(黃花元帥)가 아뢰었다.
"혹 제나라 군대가 뗏목을 만들어서 비이계를 건너올지 모릅니다. 마땅히 군사를 보내어 비이계 입구를 지키게 하고 주야로 순번을 감시토록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답리가는 비웃듯이 황화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제군이 뗏목을 만든다면 내 어찌 그런 일을 미리 눈치채지 못할 리 있으리오."
관중의 상산가와 하산가
한편 제환공은 군사를 거느리고 앞으로 진군할수록 산골은 험해지고 괴석 더미와 잡초, 대나무가 무성하여 길을 제대로 분별할 수조차 없었다. 이에 관중이 군사들에게 유황과 불에 잘 타는 염초를 수목 사이에 뿌리게 하고는 일제히 불을 질렀다. 맹렬한 불길이 일어났다. 불길은 온 산을 핥듯이 퍼져나가 요란스레 타올라 닷새 동안을 온통 화광으로 덮었다. 그러고 나자 온 산에 초목은 뿌리도 없이 타버렸고 여우와 토끼의 자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관중은 산을 깎아 길을 내게 했다. 병사들이 불평했다.
"이렇듯 산은 높고 험해 사람 가기도 어려운데 병차까지 가게 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 아닙니까?"
관중이 이들에게 설명하여 대답했다.
"오랑캐의 말은 달리기를 잘하니 오직 병차가 있어야만 그들을 누를 수 있도다."
그러고는 힘들어하는 병사들에게 상산 하산(上山下山)이란 노래를 가르쳤다. 오를 때는 상산가, 언덕을 내려갈 때는 하산가였다.
산은 우뚝우뚝 솟고 길은 꼬불꼬불하고
초목없는 산길에는 돌난간뿐이로구나
구름은 흐릿흐릿한데 날씨는 쌀쌀하고
수레를 이끌어 험난한 산을 오르는도다
바람이 밀어 주고 등산의 신까지 도와 주도다
저 산으로 오르는 게 별로 어렵지 않구나
이렇듯 상산가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니 그들은 노래에 맞춰 가며 병차를 끌고, 뒤에서는 밀어올리며 호홉을 맞춰 험난한 산길을 올라갔다.
산에 오르기는 어려우나 내려가는 건 쉽구나
수레바퀴가 잘 구르고 말굽은 떨어질 듯이
떼굴떼굴 소리에 사람은 숨을 헐떡이도다
몇 번 넘어지니 경각간에 평지에 이르도다
오랑캐를 무찌르니 봉화불은 꺼버릴거나
고죽을 제압하고 공로 세워 억만세 누리도다
이렇게 하산가를 부르며 산길을 내려갔다. 제환공과 관중은 그 때 비이산 위에 올라가서 병차가 산길을 올라왔다가 내려가고 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진군해 가는 형세를 내리굽어보았다.
'역시 관중이로고.......'
제환공이 찬탄했다.
"과인은 오늘날에야 노래로써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았소이다."
관중이 지난날을 말했다.
"지난날 신이 함거(檻車) 속에 잡혔을 때 노나라의 추격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 때 노래를 지어 군부(軍夫)들로 하여금 부르게 한 일이 있습니다. 군부들은 즐거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 피로를 잊고 평상시의 배나 빠른 속도로 수레를 몰았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능률이 나게 되오?"
"사람은 육체를 과도히 부리면 그 정신이 피곤해지며, 심신이 즐거우면 그 육체의 피로를 잊게 됩니다.:"
제환공이 이 말을 듣고 거듭 감탄했다.
"중부(仲父)는 참으로 인간의 마음에 통달하셨도다."
이에 모든 군사는 수레를 몰아 산을 넘고 다시 대열을 정돈한 후 일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무난히 여러 산을 지났건만 또 앞에 산이 나타났다. 앞서 가던 대소의 수레들이 갑자기 멈춰서 버렸다. 좌우가 옹색해서 도저히 빠져나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군사들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양편이 다 깎아세운 석벽이며, 그 사이에 조그마한 길은 있으나 겨우 혼자서 말이나 타고 지나갈 만합니다. 수레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듣자 제환공은 자못 두려워하며 관중에게 말했다.
"이 곳에 만일 적의 복병이 있다면 내 반드시 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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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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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효석편"
이효석(1907__1942)
소설가. 호는 가산. 강원도 평창 출생. 경성 제대 법문학부 졸업. 숭실 전문 학교 교수 역임.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주옥 같은 단편 소설을 썼던 이효석은 수필에도 여러 작품을 남겼다. 간결체 문장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영화
수업 제한에서 오는 양화 결핍으로 말미암아 요사이 거의 어느 상설관에서나 한 번 상영했던 영화의 재상영을 번번이 본다. 여간한 예술품이 아니고는 두 번 이상 감상하고 싶은 흥이 솟지 않는 것이나 영화의 감상은 짧은 시간을 요하는 것이라 한 번 기억에 남았던 일편에는 식욕이 동하지 않는 바도 아니어서 두 번째 보러 간다. 그러나, 세상에 좋은 영화라는 것은 그다지 흔한 것이 아니다. 대개는 처음에 느꼈던 감흥이 반감되고 품고 있던 아름다운 환상까지 도리어 부서져 버리고 마는 것이 통례다. 한절 한절의 컷의 구성에는 간혹 치밀한 수법과 자연스러운 연기가 보여 그 이상의 표현 방법은 없으리라고 감탄되는 대목도 있으나 전체로 흠이 보여 오고 결함이 드러나게 되어 겨우 이 정도의 영화였던가 하고 환멸을 느끼게 된다.
감독과 연기자들이 인생을 여실히 그려 내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눈물겨운 노력을 하나 나타나는 화면이--불과 몇 센티 평방의 셀룰로이드 딱지가 종시 말 안 듣는 것이다. 연기의 부족으로 허덕거리는 장면을 대할 때는 꾸며 놓은 세트 장치 앞에서 상을 찡그린 감독이 메가폰으로 고함을 치며 삼군이 아니라 삼문 배우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가엾게도 귀에 들려 오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배우뿐만 아니다. 참으로 감독자 자신의 두뇌와 천분에 더 많이 달렸으니 그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고 연기자에게 가르쳐 주는 표정과 동작이 과연 진실을 포착한 것이어서 만인을 똑같이 감동시켜 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슈탄벅이나 크레엘이나 듀비베가 아무리 능청맞다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각각 한 개의 형이 있는 것이요, 결국 자기류의 발휘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술이란 개성의 조작이니 그것으로 족할지 모르나 문제는 그 자기류로서 어느 정도 리얼리티를 잡았고 보다 더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참으로 여간한 천재를 가지지 않고는 벌써 현대인의 눈을 속일 수는 없게 되었다.
한다하는 천재도 까딱하다가는 일개 무명의 관객에게 뜀을 받고 계발을 입게 될는지 모른다. 거리의 구석구석에 할거하고 있는 군웅은 말할 것도 없고 누가 그래도 가장 많은 사람을 속여 왔을 것인가. 폐데일까 루놜일까 채플린일까. '제7천국'을 보려니 성탄제 때의 아동 연극의 정도 밖에는 못 되어서 는적거리는 남배우의 낯짝에다 정신이 번쩍 들게 물을 끼얹고 싶은 충동이 났다. '장군 새벽에 죽다'도 두 번째는 지루하고, '유령 서로 가다'는 장난과 꾀가 너무나 드러나 보였다. '미모사관', '춘희', '다드워스', '대지' 등이 아무리 힘을 들였다고 해도 이 역 두 번 본다면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며 비교적 솔직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마라, 샵드레드', '야성의 부르짖음'이었다.
제작들이 교묘한 꾀를 피웠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작품의 품격에서 받는 감동 속에 숨어 버려서 순진한 눈으로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두 편의 영화보다는 원작인 소설편이 한층 우수함은 웬일일까. 훌륭한 영화라고 하여도 그것이 소설의 풍미와 암시를 항상 덜어 버리는 것은 일단 시각화된 화면은 아무리 우수한 한 폭이라고 하여도 벌써 결정적 운명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까닭에 소설이 주는 풍부한 환상을 옹색하게 한 까닭으로 규정해 버리고 이지러뜨리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영화란 아주 잘 된 영화가 영화이지 섣불리 되었을 때는 가장 졸렬한 소설보다도 더욱 졸렬한 운명에 놓이게 된다.
소설은 그래도 참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난은 이 점에도 있다. 차라리 '미완성 교향악'이나 '악성 베토벤'을 허물없이 본 것은 음악의 덕이었고 '모던 타임스'에서 끝까지 진진한 흥미를 느낀 것을 풍자보다도 웃음의 덕이었다.(이 작품의 풍자란 너무도 진부하고 상식적이다. 채플린의 독창적인 교태와 거기서 솟아나오는 웃음이야말로 마땅한 듯하다.) 섣불리 본격적으로 겨루다가 실패라는 편보다는 차라리 웃음과 음악으로 대독시키는 곳에 영화의 다른 길이 암시된다. 근대의 걸작은 '아부일족'이었고 앞으로 기대되는 것은 봐이에 주연의 '마이아링크'다. 하기는 봐이에의 연기도 벌써 코에 냄새가 미칠 지경으로 되고 말았다.
대체 배우의 생명이 그다지 긴 것이 못 되어서 아무리 명우라고 해도 작품을 4,5편 거듭하면 연기의 형이 결정되어 버린다. 아리볼이나 풀무니, 가르보나 다류가 아무리 차례차례로 연기를 보인다고 하여도 신축자재한 애교가 아니고 사람인 이상 어느 정도에 이르러 고정해 버림은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데아나다빈이 첫 작품에서 벌써 싫증이 남은 웬일일까. 가령 애수가 얼굴에 잔뜩 서리어, 보기만 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특이한 종류의 배우는 나타나지 않는가. 국외자의 욕심이란 한량이 없는 것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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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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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먼 듯 가까운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은 어제보다 죽음이 한치 더 가까워도
평화로이 별을 보며 웃어 주는 마음
살아라 오늘을 더 높이
나 불던 피리 찾아야겠네
오래 전에 쓴 나의 시 `11월의 기도` 한 구절을 가끔 기도삼아 외워 볼 때가 있다. 수녀원에서는 매일 낮기도 후 죽음에 대한 시편을 낭송하며 성당에서 퇴장하고,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봉헌하는 끝기도에서는 `주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라고 마무리 한다. 늘상 습관적으로 반복하다 보니 본래의 지향을 잊을 때도 많지만, 어느 날은 더욱 정성들여 외우며 문득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곤 한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안식을 빌어 주며 언젠가 닥치게 될 우리 자신의 죽음도 묵상하게 만드는 이 기도문들을 나는 사랑한다.
며칠 전에 내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하여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난 꿈을 꾸었는데 문득 눈을 떠서 다시 맞는 아침이 참으로 눈부시게 느껴졌다. 거의 10년 전쯤의 어느 날 꿈엔 나를 데리러 온 죽음의 사자인 듯싶은 이에게 꼭 5년만 더 지상에 머물게 해달라고 간청한 적이 있었고, 혹시 그때부터 5년 후엔 정말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고 내심 불안했는데 이제 그 5년도 훨씬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기대한 것만큼 열심히 깨어 살지 못했음을 인정하며 요즘도 가끔 그 꿈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같은 식구끼리조차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울 만큼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는 살아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에 죽음에 대한 생각은 미리 하지 않게 되고, 아예 잊고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가까운 친지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우리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좀더 깊고 진지한 사색과 명상의 시간을 오래 갖기 어려울 만큼 늘 무언가에 쫓기며 사는 듯하다. 죽은 이들이 남긴 물건을 대하는 일은 왠지 으스스하고 두려운 느낌이 들어 어떤 이들은 싫다고 하지만, 나는 평소에도 의미 있는 유품들을 가까이 두는 편이라 조금도 싫은 느낌이 들지 않은다. 그래서 나의 침방 문 앞에는 어느 사형수가 쓰던 조그만 나무십자가를 걸어 두었고, 침대보는 거룩하게 살다 돌아가신 어느 선배 수녀님이 남기고 간 것을 쓰고 있다. 책상 위엔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촌 언니 수녀님이 준 은십자가와 묵주가 있고, 오랜 병고에 시달리던 어떤 소녀가 마지막 선물로 준 종이학도 있다. 또 휴대용 게시판엔 여러 종류의 메모와 함께 장례 미사에 다녀올 때마다 받아 온 성직자, 수도자들의 기념 상본들이 열 장도 넘게 꽂혀 있다. 간단한 약력과 짧은 기도문이 적힌 손바닥만한 크기의 종이 위에 인쇄된 고인들의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절로 기도가 되고 숙연해지는 마음이다.
깊은 영성 시인이셨던 최 신부님, 너무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의 슬픔을 자아냈던 박 신부님, 바닷가에서 다른 이의 목숨을 구하려다 숨지신 배 신부님, 친지의 결혼식에 다녀오다 교통사고로 숨지신 최 수사님, 대만에서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윤 신부님...그중엔 내가 조시를 써드렸던 분들도 계시다. 파푸아뉴기니에서 선교하다 심장마비로 숨지신 마르티나 수녀님의 마지막 성탄카드는 커튼위에 달아 두었다.
아직도 나의 기억 속에 생생한 그들의 정다운 웃음, 농담 그리고 생전의 여러 모습들을 떠올리며 앉아 있노라면 세상엔 그리 숨차게 바쁠 일도 아등바등 싸우거나 욕심을 부릴 일도 없는 것 같다. 사소한 일들로 번민하고 화를 내며 누구를 미워하거나 용서 못하는 일들이 너무도 어리석게 여겨진다. 고인들이 세상을 떠날 때의 나이, 상황, 장소는 그들의 삶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함을 새롭게 느끼게 하면서 언젠가 맞을 나 자신의 죽음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자신의 죽음을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인간. 때론 자기도 모르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행동을 하게 되는 인간은 강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얼마나 무력하고 유한한 존재인가. 가끔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죽음에 대한 묵상을 함으로써 좀더 겸허하고 온유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다른 책들도 많이 읽는 편이지만, 특히 죽은 이들이 남긴 수기, 일기 등의 글모음과 병상에서 임종자들을 돌보아준 의사나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절절한 체험담, 그리고 죽음에 대한 연구나 단상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즐겨 읽는 편이다. 이유 없이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해질 때면 솔숲으로 둘러싸인 우리 수녀님들의 묘지에 올라가 잠시 앉았다 오기도 한다. 쓸데없는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언제라도 때가 되면 죽음의 강을 건너는 법을 땅 속의 수녀님들은 내게 조용히 일러주시는 것만 같다. 주어진 모든 순간을 마지막인 듯이 소중하게 받아 안으며 감사하라고. 오늘이란 강 위에 사랑의 징검다리를 부지런히 놓아야 한다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같은 음성으로 정답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나 역시 누구보다 죽음에 초연해야 할 수도자이지만, 이 세상에서 정을 나누며 살았던 사랑하는 이들과의 영원한 이별은 미리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슬프고 서운하다. 간혹 다른 이들로부터 수도자는 일찍 죽을수록 좋지 않느냐는 말을 들으면 문득 야속한 생각도 든다. 이승을 하직할 때도 잠시 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의 가벼운 기쁨과 설레임으로 친지들과 이별인사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 날 임종의 고통으로 말문이 막히고, 너무 갑자기 떠나게 되어 제대로 인사를 못하더라도 큰 아쉬움이 없을 만큼 평소에도 조금씩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살아야겠다. 얼마 전 동료 수녀가 함께 외우자고 건네준 기도문의 일부를 오늘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읽어 본다.
`...제가 세상을 떠날 때 지혜를 자유로이 사용할는지 지금 알지 못하오니 이제부터 저의 임종의 고통과 모든 괴로움을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주님, 저의 마지막 순간이 당신 죽음의 순간과 일치되기를 원하오며, 제 심장의 고동은 당신을 위한 순결한 사랑의 행위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오늘부터 당신이 원하시는 죽음의 종류와 그 모든 아픔과 모든 번뇌와 임종의 고통을 저는 즐거이 또한 순종하여 당신 손으로부터 받아들이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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