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48호 》 2022.9.7 (음 8.12)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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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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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것을 읽은 체할 때 그 책은 성공한 것.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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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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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다만, 다만
‘사이시옷’ 규정을 아시는지? 두 단어가 만나 새 단어가 생길 때 뒤에 오는 단어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바뀌거나 ‘ㄴ’ 소리가 덧날 때 ‘ㅅ’을 붙인다. 그래서 ‘바닷가’, ‘나뭇잎’이다.
이 규정에 맞게 쓸 조건을 보자. 먼저, 두 단어의 출신 성분을 알아야 한다. ‘고유어+고유어’, ‘고유어+한자어’, ‘한자어+고유어’일 때만 적용된다. ‘한자어+한자어’에는 쓰지 않는다. [화뼝], [대까]라 해도 ‘화병(火病), 대가(代價)’이다. 다만, 다음 단어는 한자어인데도 예외. ‘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 이유도 없다. 외우라. 게다가 해당 조항을 ‘두 음절로 된 한자어’라 한 게 더 문제다. ‘세 음절’이면 적용이 안 된다. 그래서 ‘전세방’은 ‘ㅅ’을 못 쓴다. ‘전셋집’은 ‘집’이 고유어라 사이시옷! 모아놓으면, ‘셋방, 전세방, 전셋집, 사글셋방, 월세방, 월셋집’(아, 헷갈려).
다른 규정과 섞어보자.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는 ‘수-’이다. ‘수나사, 수놈, 수소’라고 써야 한다. ‘숫나사, 숫놈, 숫소’는 틀린다. 다만, 다음 세 단어는 ‘숫-’으로 한다. ‘숫양, 숫염소, 숫쥐’. 법은 법, 그냥 외우라. 이 세 동물만 ‘숫-’을 쓰고, 다음 단어들은 발음 불문하고 ‘수-’를 쓴다. ‘수여우, 수지네, 수제비’(와우). 학생 중 열에 아홉은 잠이 든다. 법은 단순할수록 좋다. ‘위험한 일을 시키면 처벌한다. 다만, 50인 미만 3년 유예, 다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 다만 공무원은 제외.’ 더불어민주당은 사회를 안전하게 바꿀 기회를 ‘다만’으로 걷어찼다.
뒷담화
일종의 중독증이자 ‘인간적’ 성향. 끊기 쉽지 않다. 우리는 말을 통한 협력을 좋아하기 때문에 뒷담화를 즐긴다. 눈치 보지 않고 누군가를 통쾌하게 ‘씹을’ 수 있다면 기쁘지 아니한가. 십중팔구 선행보다 악행을 ‘씹게’ 되는데 유익한 면이 없지 않다.
자리에 없는 사람이 행한 각종 나쁜 짓을 다루기 때문에, 집단의 윤리적 기준을 재확인할 수 있다. 무릇 평범한 사람들은 이기심, 무례함, 비열함, 뻔뻔함, 폭력성, 부패를 반대한다. 뒷담화는 이런 기준을 어긴 사람에 대해 말로 내리는 징계이다. 뒷담화를 까는 동안, 우리는 누구보다도 ‘윤리적 존재’로 승화된다. ‘나 아직 걔처럼 안 썩었어!’ 남 씹으며 거룩해지기.
유명인에 대한 뒷담화야 ‘수다’ 차원에서 끝나지만, 눈에 보이는 사람에 대한 뒷담화는 다르다. 관계를 규정하고 구성하는 직접성이 있다. 게다가 말하는 이가 연루된 얘기라면 더욱 열을 올리게 된다.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평가를, 자신에 대해서는 변호를 해야 한다. 일인이역은 뭐든 바쁘다. 총알이 당사자를 맞추지 못하니 본인이 내상을 입기 십상.
‘당사자 부재’라는 상황은 뒷담화의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부풀었다가 이내 터지는 풍선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면 사라지는 걸로 보이지만, 자기 확신이 강화되고 분심만 쌓일 뿐. 사람을 소외시키는 배제의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부조리가 심한 곳에서는 약자 사이의 위안과 유대감을 확인하는 통로이자, 악행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성숙한 인간 되기는 이 피할 수 없는 ‘뒷담화’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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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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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의 방 - 김수영
똘배가 개울가에 자라는
숲속에선
누이의 방도 장마가 가시면 익어가는가
허나
人生의 장마의
추녀끝 물방울소리가
아직도 메아리를 가지고 오지 못하는
八月의 밤에
너의 방은 너무 정돈되어있더라
이런 밤에 나는 서울의 얼치기 洋館 속에서
골치를 앓는 여편네의 댓가지 빽 속에
조약돌이 들어있는
空間의 偶然에 놀란다
누이야
너의 방은 언제나
너무도 정돈되어있다
입을 다문 채
흰실이 매어달려있는 여주알의 곰보
창문 앞에
安置해놓은 당호박
平面을 사랑하는
코스모스
역시 平面을 사랑하는
킴 노박의 사진과
國內小說冊들……
이런것들이 정돈될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
누이야
이런것들이 정돈될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
<1961.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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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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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지몽(華胥之夢)
- 화서의 꿈이란 뜻으로, 좋은 꿈이나 낮잠을 이르는 말.
《出典》'列子' 黃帝篇
먼 옛날 중국 최초의 성천자(聖天子)로 알려진 황제(黃帝 : 公孫軒轅)는 어느날, 낮잠을 자다가 꿈 속에서 화서씨(華胥氏)의 나라에 놀러가 안락하고 평화로운 이상향(理想鄕)을 보았다. 그 곳에는 통치자도 신분의 상하도 연장(年長)의 권위도 없고, 백성들은 욕망도 애증(愛憎)도 이해(利害)의 관념도 없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도 초연했다. 또 물 속에 들어가도 빠져 죽지 않고 불 속에 들어가도 타 죽지 않으며, 공중에서 잠을 자도 침대에 누워 자는 것과 같고 걸어도 땅 위를 걷는 것과 같았다. 또한 사물의 미추(美醜)도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고 험준한 산골짜기도 보행을 어렵게 하지 않았다. 형체를 초월한 자연 그대로의 자유로 충만한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번뜩 깨닫는 바 있어 중신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꿈 이야기를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짐(朕)은 지난 석 달 동안 방안에 들어앉아 심신 수양에 전념하며 사물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려 했으나 끝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오. 그런데 짐은 이번 꿈 속에서 비로소 그 도(도(道)라는 것을 터득한 듯싶소."
그 후 황제(黃帝)가 '도(道)'의 정치를 베푼 결과 천하는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華胥氏之國 在?州之西 臺州之北 不知斯齊國幾千萬里 蓋非舟車足力之所及 神遊而已 其國無師長 自然而已 其民無嗜欲 自然而已 不知樂生 不知惡死 故無夭敵 不知親己 不知疏物 故 無愛憎 不知背逆 不知向順 故無利害 都無所愛惜 都無所畏忌 入水不溺 入火不熱 斫撻無傷痛 指?無?榻 乘空如履實 寢虛若處牀 雲霧不?其視 雷霆不亂其聽 美惡不滑其心 山谷不?
其步 神行而已.
【유사어】화서지국(華胥之國), 유화서지국(遊華胥之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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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2.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라 -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
바람과 파도는 항상 유능한 항해자 편이다.- 에드워드 기븐
1983년, 오스트레일리아 요트 국가 대표팀이 처음으로 아메리카 컵을 차지했다. 팀의 코치는 인터뷰 중에 승리의 비결을 공개했다. 그는 조나단 리빙스턴의 <갈매기의 꿈>을 읽고, 그 책에서 착안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대표팀이 미국 팀을 이기는 테이프를 만들었다. 그는 물살을 가르는 요트의 음향을 배경으로 넣고 경주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테이프에 녹음했다. 그 다음에 그는 이 테이프 복사본을 대표팀 전원에게 나눠주고 그것을 하루에 두 차례씩 3년 동안 들으라고 지시했다. 그 회수를 전부 합치면 무려 2190번이나 된다! 그리고 승리에 대한 믿음의 불꽃이 대표팀 전원의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자기 암시를 하라 -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4년 동안 미국의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 피터 비드마르와 그의 코치는 체조 경기장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꼭 15분씩 연습을 더했다. 그들은 올림픽 체조 경기가 예선을 거쳐 본선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상상하고, 마지막 날 실연을 펼친 끝에 금메달을 따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들은 10점 만점을 받고 단상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상상했다. 장장 4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시간이 갈수록 믿음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금메달을 땄다.
켄 로스
1982년 7월, 나는 발레리 브리스코 후크와 그녀의 코치 바비 케시와 함께 앉아 있었다. 바비가 나에게 말했다.
"그녀는 올림픽 금메달을 딸 능력을 지녔지만 자신감이 부족해요."
그래서 나는 발레리에게 말했다.
"지금은 1984년 7월이고 당신은 대경기장에서 수많은 관중의 기립박수와 환호를 받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제 막 200미터 달리기에서 일등으로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내가 말하는 중에 그녀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쉴 틈을 주지 않고 그녀를 응시하며 다시 말했다.
"만국기가 휘날리고, 국가가 연주되고,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관중석에 앉아 있습니다. 이제 당신 인생이 어떻게 바꾸었습니까?"
그러자 갑자기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1984년 7월 발레리가 두 번째 금메달을 따자, ABC 방송국은 그녀를 인터뷰하며 단상에 서 있을 때의 감회를 물었다. 그녀는 다른 날과 똑같았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매일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경기에서 승리한 기쁨을 항상 느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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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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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2. 밤은 길어 언제 아침이 될까
신생의 위기
그 뒤 진헌공은 여희를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소생인 해제를 세자로 세우려고 하루는 여희에게 그 뜻을 물어봤다. 이 말을 듣자 여희는 속으로 너무나 기뻐 졸도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희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의 세자인 신생(申生)이 어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신하들은 반드시 해제를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장성한 중이와 이오가 있어 그들마저 신생과 우애가 깊으니 이제 젖먹이 아기인 해제가 형제들의 지지를 받을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여희는 재빨리 속으로 사세를 살펴 궁리해 보고는 천연덕스레 진헌공에게 아뢰었다.
"지금 태자가 누구라는 걸 모든 제후가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신생이 어질고 허물없음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시어 첩의 모자를 이토록 생각하시어 세자를 폐하려고까지 하십니까. 천첩은 높으신 뜻과 바다보다 넓으신 은총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부디 세자를 그냥 두소서. 만일 세자를 폐하시라고 하시면 천첩은 죽음을 택하고 말겠습니다."
진헌공은 여우같이 약아빠진 여희의 말을 진심으로 듣고 세자 문제는 다시 꺼내지 않았다. 진헌공에게 총애를 받는 두 대부가 있었으니 하나는 양오(梁五)요, 또 하나는 동관오(東關五)라 했다. 그들은 밖의 일을 진헌공께 고해 바치고 총애를 받으며 권세를 부렸다. 그래서 이들 둘을 이오(二五)라 불렀다. 또 시(施)라는 배우가 있었으니, 그는 매우 아름답고 영리하고 꾀도 많으며 구변도 좋은 미소년이었다. 시를 매우 사랑한 진헌공은 잠자리까지 같이 했을 정도니, 그는 제맘대로 궁성을 출입했고 마침내는 여희와도 정을 통해 비밀리에 그들의 정은 깊어만 갔다. 어느 날, 그날도 여희와 시는 한바탕 정을 통하고 난 뒤 나른한 몸을 침상에 누이고 있다가 생각난 듯이 여희가 자기의 심중을 시에게 말했다.
"어찌하면 세 공자를 이간시키고 내 아들 해제를 세자로 세울 수 있을까?"
시가 대답했다.
"이 일을 원만히 하자면 세 공자를 구실을 붙여 먼 곳으로 떠나보내고, 이오(二五)와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니 부인은 그들과 손을 잡으시오. 그들이 계책을 세우고 주공께 진언하면 일이 성사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시에게 많은 금과 비단을 내리며 여희는 부탁했다.
"일만 뜻대로 된다면 내 무엇을 아끼리오. 그대는 나의 비밀 낭군이고 그들 이오는 나의 심복이 될 테니....... 그러니 양오와 동관오에게 이것을 나눠 주게."
시는 대답을 하고 나와 양오를 찾았다.
"군부인(君夫人)께서 대부와 친숙코자 약간의 물건을 보내셨습니다. 이건 우선 경의를 표하는 뜻이오."
시의 말에 양오가 크게 놀라 물었다.
"군부인께선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그 까닭을 밝히지 않으면 나는 결단코 받지 않으리라."
양오의 말에 시는 여희의 소망을 말했다. 그제야 양오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 일을 하려면 우선 동관오와 손을 잡아야 한다."
얼마 후, 양오와 시는 함께 동관오의 집으로 갔다. 그 날 세 사람은 깊숙한 방 속에 모여 흉금을 터놓고 함께 앞날의 일을 상의했다. 세 사람은 마침내 여희의 치마폭으로 들어갈 굳은 언약을 했다. 이튿날이었다. 양오가 조례를 마친 후, 진헌공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곡옥(曲沃) 땅은 우리 진나라에서 처음으로 수령(守令)을 보낸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군의 종묘가 그 곳에 있습니다. 또 포(蒲)와 굴(屈)은 오랑캐 땅과 매우 가깝습니다. 모두가 중요한 땅입니다."
양오가 진헌공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해서 말했다.
"이 세 고을은 반드시 다스릴 주인이 따로 있어야 합니다. 만일 종묘를 모신 중요한 고을에 주인이 없으면 백성들도 주공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오랑캐들도 슬며시 다른 마음을 먹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진헌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물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는가?"
양오가 준비했다는 듯이 대답했다.
"먼저 세자를 보내어 곡옥 땅의 주인이 되게 하십시오. 그후 포와 굴 땅에는 공자 중이와 이오를 보내 다스리게 하십시오. 세 공자께서 중요한 변경의 세 지역을 다스리고 주공께서도 성에 좌정하시어 나라를 통어하신다면 이야말로 진나라의 장래는 반석과 다를 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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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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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조윤제편"
조윤제(1904~1976)
국문학자. 호는 도남. 경북 예천 출생. 경성 제대 졸업 문학 박사. 서울대 문리대학장, 성균관대 부총장 역임. 그의 국문학사 연구는 민족 정신의 고취와 독립 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저서로 "국문학사" "조선 시가 연구" 등이 있다.
은근과 끈기 - 조윤제
한국 문학과 한국 사람 생활의 특질이란 어떤 것인가? 오랜 역사의 전통에서 살아 온 한국 사람의 생활에 특질이 없을 리 없고, 또 그를 표현한 한국 문학에 특질이 없을 수 없다. 한국의 예술을 흔히들 선의 예술이라 하는데, 기와집 추녀 끝을 보나, 버선의 콧등을 보나, 분명히 선으로 이루어진 극치다. 또, 미인을 그려서 한 말에 '반달 같은 미인'이란 말이 있으니, 이도 또한 선과 선의 묘미일 뿐 아니라, 장구 소리가 가늘게 또 길게 끄는 것도 일종의 선의 예술일시 분명하다. 그런데, 반달은 아직 충만하지 않은 데 여백이 있고, 장구 소리에는 여운이 있다. 어 여백과 여운은 그 본체의 미완성을 말함일지 모르나, 그러나 그대로 그것은 완성의 확실성을 약속하고, 또 잘리어 떨어지지 않는 영원성을 내포하고 있으니, 나는 이것을 문학에 있어, 또 미에 있어 '은근'과 '끈기'라 말하고 싶다. 춘향전은 고전 문학에 있어 걸작이라 평하고, 주인공 춘향은 절대 가인, 만고 절색이라 한다. 그러나 춘향전은 어디가 좋은가? 춘향과 이 도령의 로맨스쯤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그것만이 춘향전의 우수성이 될 리 없고, 또 춘향전이 가곡이라 했자, 그 외에도 얼마든지 좋은 가곡이 있어 하필 춘향전이 걸작 될 것 없는 것 같지마는,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좋고, 언제 어디서 몇 번을 보고 듣고 읽어도 좋다. 이것은 무엇인가? 곧, '은근'이다. 좋다는 점이 뚜렷이 그대로 노출되지 않고, 여백과 여운을 두고 있는 곳에 은근한 맛이 있어, 일상 보고 듣고 읽어도 끝이 오지 않는다. 더욱 춘향의 미에 이르러서는, 그 얼굴, 그 몸맵시 어디 하나 분명히 손에 잡힐 듯이 묘사된 바 없고, 그저 '그름 사이에 솟아 있는 밝은 달 같고, 물 속에 피어 있는 연꽃과 같다.' 하였지마는, 춘향전 전편을 통해서 보면, 춘향같이 예쁜 계집이 없고 아름다운 여자가 없다. 즉, 춘향은 둘도 없는 절대 가인이요, 만고 절색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곧 춘향의 미가 은근하게 무럭무럭 솟아 올라와, 독자로 하여금 마음껏 그 상상에 맡겨, 이상적인 절대의 미경에 춘향을 끌고 가게 하기 때문이다. 또, 고려 때 시가에,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살라 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마나는
선하면 아니 올셰라
셜온 님 보내옵노니
가시는든 도셔 오쇼셔
라는 이별가가 있다. 이 또 얼마나 은근한가? 그이운 임을 보내는 애끊는 정은 측정할 수 없고, 따라 그 애원, 호소, 연연의 정이 지극하지마는, 그것이 실로 은근하게 나타나 애이불비하는 소위 '점잔'을 유지하면서, 문자 밖에 한없는 이별의 슬픔이 잠기어 있다. 이렇게 은근하고 여운이 있는 정취는 저절로 끈기가 붙어 있는 것이니, 알의 가시리 이별가에서 볼지라도, 그 그칠 줄 모르게 면면히 길게 또 가늘게 애처롭게 끄는 그것은 일종의 '끈기'라 아니 할 수 없다. 더욱이 정포은의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에 이르러서는 한국 문학의 끈기가 온통 그대로 표출되어 있는 감이 있다. 이러한 표현과 묘사는 우리 문학 작품에 있어 결코 희소하지 않으니, 이를테면 유산가의 일절에,
층암 절벽상에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 드리운 듯, 이 골 물이 주룩주룩, 저 골 물이 솰솰, 열에 열 골 물이 한데 합수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코라지고 평퍼져 넌출지고 방울져, 저 건너 병풍석으로 으르렁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같이 흩어지니, 소부, 허유 문답하던 기산 영수가 아니냐.
라 한 것이라든지, 또 사설 시조에,
나무도 바윗돌도 없는 뫼에 매게 휘쫓긴 까토리 안과, 대천 바다 한 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에, 노도 잃고 닻도 잃고 용총도 끊고 돛대도 꺾고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치고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갈 길은 천리 만리 남고 사면이 거머어득 저문 천지 적막 가치놀 떠 있는데, 수적 만난 도사공의 안과, 엊그제 임 여읜 내 안이야 얻다가 가흘하리요.
라 한 것이라든지, 또 모든 소설의 주인공들이 파란 중첩하고 복잡 기괴한 일생에서 모든 간난을 극복하고, 결국 해피 엔드로 끌어가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은 다 그러한 것이다.
'은근'과 '끈기', 이것은 확실히 한국 문학에 나타나는 현저한 한 모습일 것이다. 혼돈 광막한 것이 중국 문학의 특성이고, 유머러스한 것이 영국 문학의 특성이고, 담백 경쾌한 것이 일본 문학의 특성이라고 한다면, 나는 감히 이 '은근'과 '끈기'를 한국 문학의 특성이라 주장하고 싶다. 우리 민족은 아시아 대륙의 동북 지방, 산 많고 들 적은 조그마한 반도에 자리잡아, 끊임없는 대륙 민족의 중압을 받아 가면서 살아 나와서, 물질적 생활은 유족하지를 못하였고, 정신적 생활은 명랑하지를 못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은근하고 끈기 있는 문학 예술 내지는 생활을 형성하여 왔다. 그것의 호불호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과거의 전통이었고, 또 운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 나왔고, 그렇게 살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은근'은 한국의 미요, '끈기'는 한국의 힘이다. 은근하고 끈기 있게 사는 데 한국의 생활이 건설되어 가고, 또 거기서 참다운 한국의 예술, 문학이 생생하게 자라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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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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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해질녘의 단상
5
귀에는 아프나
새길수록 진실인 말
가시 돋혀 있어도
향기를 숨긴
어느 아픈 말들이
문득 고운 열매로
나는 먹여 주는 양식이 됨을
고맙게 깨닫는 긴긴 겨울밤
좋은 말도 아껴 쓰는 지혜를
칭찬을 두려워하는 지혜를
신께 청하며 촛불을 켜는 겨울밤
아침의 눈부신 말은 준비하는
벅찬 기쁨으로 나는
자면서도 깨어 있네.
6
흰 눈 내리는 날
밤새 깨어 있던
겨울나무 한 그루
창을 열고 들어와
내게 전하네
맑게 살려면
가끔은 울어야 하지만
외롭다는 말은
함부로 내뱉지 말라고
사랑하는 일에도
자주 마음이 닫히고
꽁해지는 나에게
나보다 나이 많은 나무가
또 말하네
하늘을 보려면 마음을 넓혀야지
별을 보려면 희망도 높여야지
이름 없는 슬픔의 병으로
퉁퉁 부어 있는 나에게
어느새 연인이 된 나무는
자기도 춥고 아프면서
나를 위로하네
흰 눈 속에
내 죄를 묻고
모든 것을 용서해 주겠다고
나의 나무는 또 말하네
참을성이 너무 많아
나를 주눅들게 하는
겨울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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