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47호 》 2022.9.5 (음 8.9) 》 발송인:
nownforever.co.kr
|
|
|
글나눔 → 오늘의 어록
|
|
|
神은 움직씨[動詞]이지 이름씨[名詞]가 아니다. ― R.B.F.
|
|
글나눔 → 말글
|
|
|
차별금지법과 말
수영 강사에게 가장 가르치기 고약한 학생은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새로 배우기보다 이미 몸에 밴 동작을 고치는 게 훨씬 어렵다. 말도 그렇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때 쓰기도 했고 여전히 쓸 수도 있지만, 이제는 여러 윤리적인 이유로 쓰지 않는 말들’을 공유하자는 취지다.
‘확찐자, ○린이, ○○다움, 미성숙, 상남자, 장님, 벙어리, 병맛, 여배우, 아줌마, 정신연령, 암 걸릴 뻔했다, 어린애같다, 여자같다, 사춘기냐, 이래서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해.’처럼 다양하다. ‘건강하세요’나 ‘투병’(鬪病), ‘성적 수치심’, ‘결정장애’는 생각지도 못했던 예이다. 신분증을 받고 음성해설 기기를 빌려주는 알바를 한 청년은 한 어린이한테 ‘신분증이 있어야 하는데, 부모님과 같이 왔냐’고 물었다가 보육원 교사와 함께 온 걸 알고, 그때부터 부모 대신 보호자나 어른이라는 단어를 쓰게 됐다고 한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연령, 장애, 성적 지향,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는 평등법이다. 법 제정을 주장하는 이들이 ‘말’의 문제를 함께 다루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차별은 법 이전에 말과 닿아 있는 낱낱의 삶과 경험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차별은 날마다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으로 관철된다. 가장 흔한 흉기는 말이다. 그러니 내 말에 대한 관찰과 발견의 과정이 필요하다. 차별과 혐오가 그랬듯이 ‘모두를 위한 평등’도 말에서 출발한다.
시간에 쫓기다
비극은 시간을 분리하면서 시작됐다. 죽음의 공포는 시간이 무한히 뻗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간의 무한성과 인생의 유한성. 결국 우리는 죽는다!(아, 무서워.) 반면에 공간의 무한성 앞에서는 안 떤다. 달에 못 가도, 뛰어봤자 금방 땅에 떨어져도 절망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과거와 현재만 있고 미래는 없다. 있어도 현재 벌어지는 사건이 이어지는 2~6개월 정도의 가까운 미래다. 무한한 미래라는 관념이 없다. 생명보험이나 종교가 잘될 리 없다. ‘씨 뿌릴 때, 소 꼴 먹일 무렵’처럼 사건이나 자연현상과 함께 표현될 뿐이다.
문명사회는 시간을 별개의 사물인 것처럼 객관화시키고 여러 유형의 표현을 만들었다.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진 직선 위를 움직이는 사물이다(‘시간이 간다, 온다, 흐른다’). 우리는 이 시간을 ‘맞이하기도’ 하고 ‘보내기도’ 한다. 시간은 원처럼 거듭된다(‘봄이 돌아왔다’). 사물화하자 양이나 부피, 길이를 갖게 된다(‘시간이 많다, 적다’, ‘있다, 없다’, ‘시간을 늘리다, 줄이다’).
근대사회는 시간을 화폐로 대한다. 자본주의는 시간의 화폐화로 작동된다.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아끼고, 벌고, 절약해야’ 한다. 아무리 ‘쪼개어 써도’ 우리는 시간에 ‘쫓긴다’. 일정으로 꽉 찬 삶은 분쇄기에 빨려 들어가는 종이처럼 갈기갈기 찢겨져 있다.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은 없애야 할 적이다. 강도에 쫓기듯 시간에 쫓기는 삶에, 시간에 쫓기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노동에 어찌 구원이, 해탈이, 해방이 찾아올 수 있겠나.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
|
시나눔 → 우나라詩
|
|
|
누이야 장하고나 ! - 김수영
누이야
諷刺가 아니면 解脫이다
너는 이 말의 뜻을 아느냐
너의 방에 걸어놓은 오빠의 寫眞
나에게는 「동생의 寫眞」을 보고도
나는 몇번이고 그의 鎭魂歌를 피해왔다
그전에 돌아간 아버지의 鎭魂歌가 우스꽝스러웠던 것을 생각하고
그래서 나는 그 寫眞을 十년만에 곰곰이 正視하면서
이내 거북해서 너의 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十년이란 한 사람이 준 傷處를 다스리기에는 너무나 짧은 歲月이다
누이야
諷刺가 아니면 解脫이다
네가 그렇고
내가 그렇고
네가 아니면 내가 그렇다
우스운 것이 사람의 죽음이다
우스워하지 않고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죽음이다
八月의 하늘은 높다
높다는 것도 이렇게 웃음을 자아낸다
누이야
나는 분명히 그의 앞에 절을 했노라
그의 앞에 엎드렸노라
모르는 것 앞에는 엎드리는 것이
모르는 것 앞에는 무조건하고 숭배하는 것이
나의 習慣이니까
동생뿐이 아니라
그의 죽음뿐이 아니라
혹은 그의 失踪뿐이 아니라
그를 생각하는
그를 생각할 수 있는
너까지도 다 함께 숭배하고 마는 것이
숭배할 줄 아는 것이
나의 忍耐이니까
「누이야 장하고나!」
나는 쾌활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다
이 광대한 여름날의 착잡한 숲속에
홀로 서서
나는 突風처럼 너한테 말할 수 있다
모든 산봉우리를 걸쳐온 突風처럼
당돌하고 시원하게
都會에서 달아나온 나는 말할 수 있다
「누이야 장하고나!」
<1961. 8. 5>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화사첨족(畵蛇添足)
- 쓸데없는 군일을 하다가 도리어 실패함.
《出典》'戰國策' / '史記'
전국시대인 초(楚)나라 회황(懷王) 때의 이야기이다. 어떤 인색한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여러 하인들 앞에 술 한 잔을 내놓으면서 나누어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한 하인이 이런 제안을 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마신다면 간에 기별도 안 갈 테니,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리는 사람이 혼자 다 마시기로 하는 게 어떻겠나?"
"그렇게 하세."
하인들은 모두 찬성하고 제각기 땅바닥에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뱀을 다 그린 한 하인이 술잔을 집어들고 말했다.
"이 술은 내가 마시게 됐네. 어떤가, 멋진 뱀이지? 발도 있고."
그 때 막 뱀을 그린 다른 하인이 재빨리 그 술잔을 빼앗아 단숨에 마셔 버렸다.
"세상에 발 달린 뱀이 어디 있나?"
술잔을 빼앗긴 하인은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
|
글나눔 → 추천글
|
|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2.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
열렬하게 믿어라 - 레이몬드 R.
10일 야간 '목표달성 코스'의 첫날, 그녀는 우리에게 검정색 공책을 나눠주며 말했다.
"여러분의 목표를 한 가지만 쓰세요."
그리고 그녀가 다시 말했다.
"좋아요, 이제 한 가지를 더 쓰세요."
이런 식으로 10분 동안 계속되자, 우리는 약간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 그녀가 말했다.
"다시 한 가지를 더 쓰세요."
그렇게 장장 세 시간이나 계속 되었다! 그녀가 한 말은 고작 '목표를 쓰세요,' '한 가지를 더 쓰세요,' '더 이상 쓸 게 없다고 생각을 버리고 그냥 계속 쓰세요'가 전부였다. 무려 세 시간씩이나! 끝마칠 시간이 되자, 그녀가 말했다.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특별한 지시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목표를 한 가지 쓰시되, 이번에는 특별한 것으로 정하세요. 이제 여러분은 마법의 지팡이를 휘둘러서 원하는 것을 뭐든지 쓰실 수 있어요. 하지만 법에 저촉되는 목표는 안됩니다. 자연의 이치에 역행해서도 안돼요. 그리고 현실적인 조건에 부합되는 것도 안돼요. 그저 여러분이 마법의 지팡이를 갖고 있다고 상상하세요."
나는 이미 세시간이나 목표를 썼지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돈과 건강, 인간 관계와 여행 등이 전부였다! 나는 이미 세시간이나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지? 좋아, 나는 아름다운 나체의 여성들이 득실거리는 집에서 살고 싶어."
참, 부끄럽지만 나는 그렇게 썼다. 이후 십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당시 내가 썼던 소원은 그것이었다. 나는 이미 세시간이나 마음 밑바닥까지 샅샅이 훑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떠올렸기 때문에 막판에 그 소원이 뇌리를 스쳤다. 지도 강사인 산드라가 말했다.
"우리는 일주일 후 다음 시간에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즈음, 여러분이 가장 마지막으로 썼던 소원이 이루어져 있을 거예요."
강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헐떡거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나는 큰 충격을 받을 채 강의에 출석했다. 나는 그 주에 훗날 나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카를라를 만났었다. 우리는 데이트를 나갔고, 나는 그녀에게 홀딱 반한 나머지 그녀의 집에서 밤을 보내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녀는 승낙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녀의 두 딸이 알몸으로 그녀의 침실로 뛰어 들어왔다. 당연히 카를라도 나체로 옆에 내 옆에 누워 있었다. 나는 말했다.
"맙소사, 내가 아름다운 나체의 여자들로 가득한 집에 있네."
그 미녀 중 두 사람은 각각 두 살과 네 살이었다! 내가 소망을 철저하게 세분화하기를 잊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수업에 참석했다. 지도 강사가 말했다.
"여러분 중에서 전 시간에 마지막으로 썼던, 특별하고 법률에 저촉되지 않은 소망을 기억하시는 분은 손을 드세요. 그리고 그 소망이 지난 주에 이루어졌던 분, 손드세요!"
전 수강생의 1/4에 해당하는 15명이 손을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이런 예를 전에도 무수히 많이 봤어요. 여러분이 썼던 마지막 소원은 항상 실현되었어요. 그 이유는 내가 교사이고, 내가 완벽한 확신을 가지고 그 소망이 실현되리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원하시면 얼마든지 의심을 품도록 하세요. 나는 그저 그것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하는 바입니다."
당연히 지난 주에 그녀의 말을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강생의 1/4이 소원을 이뤘다니.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서 그들의 성취된 소원을 말하기 시작하자, 우리는 소름이 끼쳤다. 그들은 10%의 수입 증가를 원했다. 그들은 평범한 사회 복지원이나 교사인데도 60피트 요트를 원했다. 그런데 그 주일에, 얼굴도 모르던 친척이 죽으며 60피트 요트를 유산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우리는 산드라가 못 박았던 단서를 떠올리며 입을 떡 벌렸다.
"지구의 중력이나,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소원은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 그에 이어 그녀는 더욱 충격적인 말을 했다.
"그런 일이 일어났던 이유는 여러분이 내 말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나는 질문했다.
"산드라, 가령 당신이 다른 소원이 이루어지리라고 말했더라도, 우리 중 1/4이 그것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럼요! 나는 가끔 여러분의 31번째의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고 말한답니다."
우리는 일제히 공책을 펴고 각자 31번째의 소원을 읽었다. 그 외에 다른 행동은 불가능했다. 우리는 넋 나간 사람들마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개중에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날 산드라는 우리에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하고 말했다. 거기에는 아무 규칙이나 제한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법자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강력하게 재창조할 수 있다는 편이 옳다. 믿는 것은 뭐든 가능하다는 편이 옳다.
|
|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
|
|
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2. 밤은 길어 언제 아침이 될까
세자 신생과 미녀 여희
이야기는 북쪽의 진(晋)나라로 돌아가 진무공(晋武公) 시절이다. 원래 진나라는 한나라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나라가 두동강이 나서 익(翼)과 곡옥(曲沃)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익의 임금이 진소자후, 곡옥의 임금이 무공이었다.마침내 곡옥의 무공이 임금으로 있을 때 진소자후를 유인해서 죽이고 나라를 통일하자 강(降) 땅에다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진(晋)으로 바꿨다. 진무공은 곧 부고에 있는 구슬과 보배를 모조리 수레에 싣고 주나라에 가서 왕에게 바쳤다. 당시 천자는 주희왕이었다. 주희왕은 뇌물이 탐났다. 그래서 1군(一軍: 1만2천5백1인의 병사)만 둘 수 있다는 조건으로 진나라를 승인했다. 이어 진무공은 제나라 제환공에게 청혼했다. 늙은 나이였지만 영웅은 어디까지나 영웅, 제환공은 장녀를 진무공에게 출가시켰다. 그녀가 제강(齊姜)이다. 젊은 제강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정작 진무공은 나이가 많아 생각만 간절할 뿐 남자의 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를 안 세자 궤제는 은근히 서모인 제강에게 눈독을 들여 유혹했다. 둘이는 마침내 비밀리에 정을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마침내 제강이 궤제의 아이를 낳았다. 그들은 진무공 몰래 비밀리에 궁문 밖으로 내보내 백성 집에서 아이를 기르게 했다. 그 아이가 신생(申生)이다. 사실 세자 궤제는 일찍 장가를 가서 가희(賈姬), 호희(弧姬), 융희(戎姬) 등의 부인과 호희가 낳은 중이, 융희가 낳은 이오 등 아들과 딸이 있었다. 그러나 원래 호색한인지라 서모까지 건드렸던 것이다. 결국 진무공이 군위에 있은 지 39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어 세자 궤제가 군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진헌공(晋獻公)이다. 이 때는 이미 세자 때 혼인한 정실(正室) 가희도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에 진헌공은 아버지의 후취인 제강을 자기 부인(夫人)으로 세웠다. 그 때 호희 몸에서 난 중이가 21세였고, 이오도 나이가 많았으나 진헌공은 제강에게서 태어난 신생을 세자로 삼았다. 이리하여 대부 두원관이 세자의 스승인 태부가 되고, 대부 이극이 소부가 되어 세자 신생을 보좌했다. 그런데 제강은 원래가 건강 체질이 아니었다. 얼마 후 딸 하나를 더 낳고는 세상을 떠나니 진헌공은 가희의 친정 동생을 부인으로 삼아 제강이 낳은 딸을 내주고 기르도록 했다. (이 여아가 나중 泰穆公의 부인이 된다.) 그 후 군위에 오른 지 15년 만에 진헌공은 군사를 일으켜 여융을 쳤다. 물밀듯 쳐들어오는 진군(晋軍)에게 여융은 속수 무책, 딸 둘을 바치고 강화를 맺었다. 큰딸이 여희고 작은딸이 소희였다.
여희는 태어나면서부터 절세 미인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초문왕이 뺏은 식나라의 식부인(息夫人) 규씨와 비견할 만했고, 요염하기로는 제양공의 정부였던 노부인(魯夫人) 문강을 뺨칠 만했다. 그리고 꾀는 비상하여 관중의 애첩인 청과 겨룰 만했고, 수단과 거짓은 악독하기로 그야말로 천부적인 여인이었다. 여희는 말솜씨가 어찌나 비상했던지 방금 전에 한 말을 뒤집어 말해도 들은 사람이 그 잘못을 지적하기가 쉽지 않았다. 진헌공은 여희에게 흠뻑 빠졌다. 잠자리는 물론이고 마시고 먹는 일까지도 반드시 함께 했다. 나중에는 정사(政事)까지도 함께 할 지경이 되었다. 이듬해 여희는 아이를 낳았다. 그의 이름이 해제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소희가 또한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이 탁자다. 진헌공은 마침내 지난날의 제강 따위는 모조리 잊었다. 그는 여희를 부인으로 세우고자 했다.
하루는 태복 곽언을 불러 점을 쳐보게 했다. 곽언이 거북의 등껍데기를 태워 열문(裂紋)을 보고서 점을 쳐 보고 항차 그 징조에 관한 글을 진헌공에게 바쳤다.
오로지 생각대로 하려 들면 변란이 생기니
마음이 변하여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못하리
제아무리 좋은 향기도 나쁜 향기를 이기지 못해
10년이 지나도 흉한 냄새는 사라지지 않으리
10년 안에 변난다
진헌공이 글을 보더니 물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곽언이 하나하나 뜻을 새겨서 아뢰는데 이는 여희에 대해 심히 좋지 않게 나타난 것임을 대뜸 알 수 있는 말이었다. 진헌공은 오로지 여희를 사랑했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 오히려 이번에는 사소(史蘇)를 불러 다시 점을 치게 했다. 괘사(卦詞)가 나왔다.
閨觀利女貞
엿보는 것은 여인의 貞에 좋다
진헌공은 괘사를 보더니 희색이 만면하여 말했다.
"여자가 안에 거처하며 바깥을 내다보는데 방문을 활짝 여는 게 아니라 살며시 내다보는 것은 여자로서 가장 바른 태도이다. 이보다 길한 괘는 다시 없을 것이다."
곽언이 말했다.
"천지 개벽 이래로 먼저 모양(象)이 있은 뒤에 수(數)가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불에 태운 귀갑에 나타난 모양이 앞서는 것입니다. 수는 그 다음입니다. 주공께서는 마음에 드시지 않거나 불편하시더라도 수보다 모양을 따르십시오."
사소도 정색을 하고 아뢰었다.
"예법에 보면 적출(嫡出)로서 두 장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후(諸侯)는 정실부인(王室夫人)을 두 번 두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괘사에 나오는 엿본다는 뜻은 바깥을 살며시 내다본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다시 부인을 두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결코 바르고 옳은 일이 아닙니다."
진헌공이 화를 냈다.
"만일에 너희들 점친 것이 맞다면 모두가 귀신 잡것들의 수작일 것이다. 허튼 소리들 그만하고 물러가거라. 과인은 내 뜻대로 할 것이다."
마침내 진헌공이 택일하여 종묘에 고하고 여희를 정실 부인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의 친정 동생 소희를 차비(次妃)로 삼았다. 사소가 한탄했다.
"장차 우리 진나라가 망하겠구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이 말을 듣고 대부 이극이 놀라서 물었다.
"누가 이 나라를 망친단 말이오?"
사소가 대답했다.
"누구긴 누구겠소? 저 여희가 아니고 누구겠소?"
이극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사소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사소가 설명했다.
"옛날 하(夏)나라 걸왕은 유시(有施) 땅을 점령했을 때 유시 사람이 말희라는 미녀를 바치었소. 그후 걸은 말희를 총애하다가 나라를 망치게 되었소이다."
사소가 계속하여 말했다.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유소(有蘇)를 점령했을 때 유소의 딸 달기를 얻었소. 주왕은 달기만 끼고 돌다가 마침내 주지육림에 빠져 나라를 망치게 되었소. 주유왕(周幽王)은 직간하는 신하를 잡아 가두었다가 포사라는 미녀를 뇌물로 받고 풀어 주었소. 그리고 포사를 정비(正妃)로 삼고 흥청거리다가 끝내 오랑캐에게 죽음을 당하고 서주(西周)를 망치고 말았지 않소. 이제 우리 진나라가 여융을 정벌해서 여희를 얻었소이다. 주공이 지나치게 사랑하여 정실 부인으로 삼으려 하니 이는 옛 고사가 가리키는 것처럼 나라가 망할 조짐이라 아니할 수 없소."
말을 마치자 사소는 표연히 가버렸다. 때마침 곽언이 곁을 지나다가 이극의 말을 듣게 되었다. 곽언은 사소와 의견이 달랐다.
"우리 진나라는 장차 많은 어려움이 있겠으나 결코 망하지는 않을 것이오. 옛날 우리 선대에 이 곳에다 나라를 세울 때 천하를 바로잡아 다시 왕국을 세운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익과 곡옥이 합쳐진 후 2대째인데 어찌 나라가 망할 리 있겠소이까."
이극이 의아해 하면서 다시 물었다.
"그런 점괘라면 나라가 망하지는 않겠지만 변고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곽언이 대답했다.
"대저 선(善)과 악(惡)의 보답이란 십 년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십(十)이란 숫자가 가득찬 숫자이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변고가 일어난다면 장차 십 년 안에 일어나게 되겠지요."
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
|
글나눔 → 읽어둘문학
|
|
|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양하편" 이양하(1904~0963)
영문 학자, 수필가, 평남 강서 출생. 일본 도쿄 제대 영문과 졸업. 서울대 문리대학장 역임. 영국의 정통과 수필을 도입하여 김진섭과 함께 서구적 본격 수필의 기초를 다졌다. 시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깊은 사색의 세계를 영탄에 가까운 정서로 노래한 시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신록 예찬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마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 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오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오늘도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우리 연전 이래를 덮은 신록은 어제보다도 한층 더 깨끗하고 신선하고 생기 있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나의 문법 시간이 끝나자, 큰 무거운 짐이나 벗어놓은 듯이 옷을 훨훨 떨며, 본관 서쪽 숲 사이에 있는 나의 자리를 찾아 올라간다. 나의 자리래야 솔밭 사이에 있는 겨우 걸터앉을 만한 조그마한 소나무 그루터기에 지나지 못하지마는, 오고 가는 여러 동료가 나의 자리라고 명명하여 주고, 또 나 자신도 하루 동안에 가장 기쁜 시간을 이 자리에서 가질 수 있으므로, 시간의 여유 있는 때마다 나는 한 특권이나 차지하듯이, 이 자리를 찾아 올라와 앉아 있기를 좋아한다.
물론 나에게 멀리 군속을 떠나 고고한 가운데 처하기를 원하는 선골이 있다거나, 또는 나의 성미가 남달리 괴팍하여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역시 사람 사이에 처하기를 즐거워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갑남을녀의 하나요, 또 사람이란 모든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사람으로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 사이에 살고, 사람 사이에서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때--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은 이 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가 금시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흔들 듯한 이러한 때를 당하면, 나는 곁에 비록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않을 수 없으며, 그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사람이란-세속에 얽매여, 머리 위에 푸른 하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의 돈을 세고, 지위를 생각하고, 명예를 생각하는 데 여념이 없거나, 또는 오욕 칠정에 사로잡혀,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데 마음에 영일을 가지지 못하는 우리 사람이란, 어떻게 비소하고 어떻게 저속한 것인지. 결국은 이 대자연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조화를 깨뜨리는 한 오점 또는 한 잡음밖에 되어 보이지 아니하여, 될 수 있으면 이러한 때를 타서, 잠깐 동안이나마 사람을 떠나 사람의 일을 잊고, 풀과 나무와 하늘과 바람과 한가지로 숨쉬고 느끼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는 흉중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에도 신록이다. 주객 일체, 물심 일여라 할까, 현요하다 할까, 무념무상, 무장무애, 이러한 때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가진 듯이 행복스럽고, 또 이러한 때 나에게는 아무런 감각의 혼란도 없고, 심정의 고갈도 없고, 다만 무한한 풍부의 유열과 평화가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또, 이러한 때에 비로소 나는 모든 오욕과 모든 우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고, 나의 마음의 모든 상극과 갈등을 극복하고 고양하여, 조화 있고 질서 있는 세계에까지 높인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기에, 초록에 한하여 나에게는 청탁이 없다.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그러나 초록에도 짧으나마 일생이 있다. 봄바람을 타고 시 움과 어린 잎이 돋아 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이라 한다면, 삼복 염천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지마는,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 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 시대-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을 띠는 시절이라 하겠다. 이 시대는 신록에 있어서 불행히 짧다.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2, 3주일을 셀 수 있으나, 어떤 나무에 있어서는 불과 3, 4일이 되지 못하여, 그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비록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지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 또는 낙엽송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 즈음의 도토리, 버들, 또는 심산에 있는 이름 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신한 자색, 그의 보드라운 감촉, 그리고 그의 그윽하고 아담한 향훈, 참으로 놀랄 만한 자연의 극치의 하나가 아니며, 또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하고 감사를 드릴 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
|
|
글나눔 → 삶속의글
|
|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해질녘의 단상
3
비바람을 견뎌내고
튼튼히 선 한 그루 나무처럼
오늘이란 땅 위에 선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슬픔을 견뎌내야
조금씩 철이 드나보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경험하고
터무니없는 오해도 받고
자신의 모습에 실망도 하면서
어둠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가볍지 않은 웃음을 웃을 수 있고
다른 이를 이해하는 일도
좀더 깊이 있게 할 수 있나 보다
4
찬물로 세수하고
수도원 안정원의 사철나무와 함께
파랗게 깨어나는 겨울 아침
흰눈 속의 동백꽃을
자주 찾는 동박새처럼
호랑가시나무 열매를
즐겨 먹는다는 붉은 새처럼
나도 이제는
붉은 꽃, 붉은 열매에
피 흘리는 사랑에 사로잡힌
한 마리 가슴 붉은 새인지도 몰라
겨울에도 쉬지않고
움직이는 기쁨
시들지 않는 노래로
훨훨 날아다니는
겨울새인지도 몰라
|
|
첫쪽 → 풍경소리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