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43호 》 2022.9.1 (음 8.6)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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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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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결실 있는 삶을 살아가는 한 가지 비결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모든 사람의 모든 일을 용서해 주는 것. ―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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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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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과 야생, 학교
부모는 아이가 타인과 적절히 교류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걸 돕는다. 이러한 사회화는 대부분 말로 이루어지므로 사회화의 핵심은 언어 학습이다. 사회화와 언어 학습은 동전의 양면이다.
아이를 식물에 비유한다면 자녀 양육을 ‘온실 모형’과 ‘야생 모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온실 모형 속 부모는 아이를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는 식물로 대한다. 부모는 아이와 말을 많이 나눈다. ‘이게 뭐예요?’라 물으면 친절히 설명해주고 ‘네 생각은 어떠냐?’고 되묻는다. 질문과 설명 중심의 대화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자기 생각을 잘 드러낸다. 틈나는 대로 ‘잠자리에서 책 읽어주기’를 한다. 공룡이든 자동차든 ‘꼬마’ 전문가가 되는 걸 대견해한다. ‘티라노사우루스’, ‘안킬로사우루스’의 습성과 생김새, 생존 시기를 좔좔 외면 환호한다.
야생 모형 속 부모는 아이를 대지의 비바람과 햇볕을 받고 자연스럽게 자라는 식물로 대한다. 아이는 가만히 ‘냅두면’ 알아서 자란다. 아이의 삶에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는다. 친구들이나 다른 관계에서 스스로 살길을 찾아가길 바란다.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지 못한다. 집 안은 대체로 조용하다. 대화보다는 지시와 명령의 말이 많다.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데 서툴다.
물론 현실에선 두 모형이 뒤섞여 있다. 다만, 온실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인정과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는 건 분명하다. 집에서 이미 연습했기 때문이다. ‘야생’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학교는 말을 둘러싼 사회적 격차를 좁히고 있나, 더 벌리고 있나?
의미의 반사
솔직히 의미는 ‘별것’이 아니다. 팔랑귀다. 시시때때로 변한다. 의미는 사전에 실린 뜻풀이가 아니다. 머릿속에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말과 세계 사이도 헐겁다. 그 사이를 사람들끼리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실천이 채운다. 그래서 의미는 가변적이고 사회적이다.
검찰 개혁에 비판 게시글을 쓴 검사에게 “이렇게 커밍아웃해 주시면 개혁만이 답입니다”라고 한 장관의 말이 구설에 올랐다. 글쓰기 선생 눈에는 문장이 어색한 게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뭔 말이지?), 사람들에게는 ‘커밍아웃’이란 말이 문제였다. 이 말이 반복되어 쓰이자, 성소수자 단체와 진보정당에서 “커밍아웃이 갖는 본래의 뜻과 어긋날뿐더러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걸어온 역사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의미는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다. 소수자의 희생과 저항의 역사가 담긴 언어도 예외일 수 없다. 오용이나 퇴행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소수자들도 자신을 향한 혐오 발언을 낚아채서 그대로 돌려줌으로써 발언의 효과를 없앴다. 밥에 돌 씹히듯 들리겠지만,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를 빼앗아 ‘(그럼) 이건 나라냐?’라고 되받아친다. 자신에게 유리한 의미를 퍼뜨리기 위해 열심히 투쟁 중이다.
벽에 박아놓은 못처럼 의미를 고정시켜놓을 수 없다. 멋대로라는 뜻도, 그냥 놔두라는 뜻도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지식, 신념, 취향, 계급,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말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말은 이 모든 의미투쟁의 결과물이자 정치사회적 윤리의 문제와 닿아 있다. 의미는 팔랑귀지만 귀가 밝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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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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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 - 김수영
두 줄기로 뻗어올라가던 놈이
한 줄기가 더 생긴 것이 며칠 전이었나
등나무
밤사이에 이슬을 마신 놈이
지금 나의 魂을 마신다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얇상한 잎
그것이 이슬을 마셨다고 어찌 신용하랴
나의 魂, 목욕을 중지한 詩人의 魂을 마셨다고
炎天의 魂을 마셨다고 어찌 신용하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그의 주위를 몇번이고 돌고 돌고 돌고
또 도는 조름같은 날개의 날것들과
甲蟲과 쉬파리떼
그리고 진드기
「엄마 안 가? 엄마 안 가?」
「안 가 엄마! 안 가 엄마! 엄마가 어디를 가니?」
「안 가유?」
「안 가유! 하……」
「으흐흐……」
두 줄기로 뻗어올라가던 놈이
한 줄기가 더 생긴 것이 며칠 전이었나
난간 아래 등나무
넝쿨장미 위의 등나무
등꽃 위의 등나무
우물 옆의 등나무
우물 옆의 등꽃과 활련
그리고 철자법을 틀린 詩
철자법을 틀린 人生
이슬, 이슬의 合唱이다
등나무여 指揮하라 부끄러움 고만 타고
이제는 指揮하라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쑥잎보다 훨씬 얇은
너의 잎은 指揮하라
베적삼, 옥양목, 데드롱, 인조견, 항라,
모시치마 냄새난다 냄새난다
냄새여 指揮하라
연기여 指揮하라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우물이 말을 한다
어제의 말을 한다
「똥, 땡, 똥, 땡, 찡, 찡, 찡……」
「엄마 안 가?」
「엄마 안 가?」
「엄마 가?」
「엄마 가?」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야, 영희야, 메리의 밥을 아무거나 주지 마라,
밥통을 좀 부셔주지?!」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등나무?
「아이스 캔디! 아이스 캔디!」
「꼬오, 꼬, 꼬, 꼬, 꼬오, 꼬, 꼬, 꼬, 꼬」
두 줄기로 뻗어올라가던 놈이
한 줄기가 더 생긴 것이 며칠 전이었나
<1961.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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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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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螢雪之功)
- 갖은 고생을 하며 부지런히 학문을 닦은 공. 《出典》'晉書'
晉의 차윤(車胤)은 자(字)가 무자(武子)이다. 어려서 공손하고 부지런하며 널리 책을 읽었다. 집이 가난하여 항상 기름을 얻지는 못하였다. 여름철에 비단 주머니로써 수 십 마리의 반딧불을 담고 책을 비춰서 읽으며 밤으로써 낮을 잇더니, 후에 벼슬이 상서랑(尙書郞)에 이르렀다. 지금 사람이 서창(書窓)을 형창(螢窓)이라 함은 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晉車胤武子 幼 恭勤搏覽 家貧不常得油 夏月以練囊 盛數十螢火 照書讀之 以夜繼日 後官至 尙書郞 今人以書窓 爲螢窓由此也.
晉의 손강(孫康)은 어려서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 사귀고 놂이 잡스럽지 않았으나 집이 가난하여 기름이 없어서 일찍이 눈에 비춰 책을 읽더니, 후에 벼슬이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이르렀다. 지금 사람이 서안(書案)을 설안(雪案)이라 함은 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晉孫康 少 淸介 文遊不雜 嘗映雪讀書 後官至御史大夫 今人 以書案爲雪案 由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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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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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공포와 맞서 요청한 남자 - 마크 빅터 한센
어느 주말에 벤쿠버 출신 말콤은 약혼녀와 함께 브리티쉬 콜럼비아의 북쪽 숲을 하이킹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쩌다가 어미곰과 새끼 곰과 맞닥뜨렸다. 어미 곰은 새끼를 보호하려고 그의 약혼녀를 서로 잡았다. 말콤은 겨우 165센티였고 곰은 거대했지만, 그는 용기를 내서 약혼녀를 구하려고 나섰다. 어미 곰은 약혼녀를 놓는 대신 그를 움켜잡고 온몸의 주요한 뼈를 으스려 뜨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의 얼굴에서 두개골 뒤쪽에 이르기까지 깊은 상처를 냈다. 말콤이 살아났다는 사실조차 기적이었다. 그는 8년 동안 회복 수술을 받았고, 의사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 성형 수술을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는 추한 사내가 되었고, 더 이상 얼굴을 들고 세상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콤은 어느 날 휠체어를 타고 병원 10층 지붕 위로 올라가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막 뛰어내리려는 절박한 순간, 그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가라'는 내면의 본능적인 소리를 듣고 달려온 터였다. 절대 절명의 순간, 그의 아버지가 계단 꼭대기에 나타나서 소리쳤다.
"말콤, 기다려라."
아버지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말콤은 휠체어를 돌려세웠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말콤, 모든 인간은 내면에 깊은 흉터를 가지고 있단다. 우리 대부분은 미소와 화장과 좋은 의상으로 그것을 감추고 있지만, 네 흉터는 밖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그러나 흉터가 겉에 있든, 속에 있든 우리가 상처를 받았다는 점은 다 똑같아. 아들아,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깊은 흉터를 안고 살아간단다."
말콤은 도저히 그 건물에서 뛰어내릴 수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한 친구가 그에게 동기 부여 테이프를 선물했다. 그는 그 테이프에서 폴 제퍼스에 대한 부분을 들었다. 폴은 42살의 나이에 청각을 상실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판매 사원이 된 사람이었다. 말콤은 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련은 평범한 사람을 비범하게 만들어 줍니다."
말콤은 그 자신에게 말했다.
"바로 나잖아! 나는 비범해!"
말콤은 육체적인 추함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거절당하리라는 공포와 맞서 싸워야 했다. 그래서 그는 보험 판매원이 되기로 결정했다. 그 일은 직업 성격상 하루에도 수없이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잠재적인 약점을 하나의 자산으로 만들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진을 박은 명함을 나눠주며 이렇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제 외모는 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저를 알 기회를 가진다면, 저의 내면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발견하실 겁니다."
그리고 1년 후, 말콤은 벤쿠버에서 최고의 보험 판매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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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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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7. 주나라의 내란
관중의 심모 원려
초문왕이 죽고 그의 어린 아들 웅간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제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이제 초나라의 군위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고, 듣자하니 육권이라는 자가 자결하는 등 내부 기강이 흐트러진 듯하오. 이제 대군을 일으켜 초를 친다면 천하 패권을 앞당길 수 있지 않겠소. 중부의 뜻은 어떠하오?"
관중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초나라는 먼 남방에 있습니다. 그들은 땅도 넓고 군사도 강합니다. 충분한 군비를 갖추지 않고는 싸우기가 몹시 난처한 상대입니다. 그리고 새로 임금이 된 웅간은 동생 웅운에 비해 덕이 부족하다는 소문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그들 형제끼리 스스로 내분을 일으켜 초나라가 혼란스럽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공격해 가면 오히려 초나라 조야가 임금으로 있는 웅간을 중심으로 굳게 뭉치는 결과를 가져오기 십상입니다."
제환공이 다시 물었다.
"초나라에 복종한 정(鄭)을 쳐서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는 게 어떻겠소?"
관중이 또 대답했다.
"지금은 군사를 일으킬 때가 아닙니다. 이제까지 우리 제나라는 화살 한 대 쏘지 않고 맹주의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자칫 군사를 일으켰다가 실수하는 날에는 모든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더욱 나라 살림을 알뜰하게 하고 병사를 기르고 조련해야 합니다. 웬만한 일에는 간섭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맹주로서 권위도 있고 좋을 듯싶습니다."
제환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인은 중부의 뜻을 따르겠소."
제환공은 역아와 수작을 불러 음식을 장만하라 이르고 수레를 타고 야외로 놀러 나갔다.마침 곁에 있던 영척이 말했다.
"상군께서 살피기에 초나라에 변고가 있을 듯합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문부인이 낳은 두 아들 웅간과 웅운은 친형제의 우애가 없어 서로를 시샘하고 다툰다고 합니다. 멀지 않아 골육상쟁이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정나라를 쳐서 정여공의 배신을 단단히 벌하고, 다시는 초나라를 섬기지 못하도록 다짐을 받아 둘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관중은 영척의 표정이 하도 진지한지라 그간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대부께서 이리도 진심을 보이시니 내 어찌 이대로 감출 수가 있겠습니까?"
앞서 정나라가 초나라에 조공을 보냈다가 제환공의 질책을 받자 숙첨을 보내어 사죄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제환공은 변명하는 숙첨이 보기 싫어 군부에 가두도록 엄명했다. 그날 밤 관중이 은밀히 제환공을 찾아가 계책을 아뢰고 허락을 받은 후 심복을 시켜 숙첨을 도망칠 수 있게 안배를 해 줬다. 관중은 사람을 시켜 숙첨에게 전했다.
"타인의 힘에 의존해서는 영원히 굴욕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귀국은 초나라와 우리 제나라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몰라 고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근심이 높아지면 높아졌지 줄어들지는 절대로 않을 것입니다. 대부께서도 아시다시피 정나라는 오래 전부터 주왕실을 받들고 대대로 경사의 벼슬을 해왔습니다. 앞으로 주왕실과 더욱 가깝게 지내도록 힘쓰십시오. 내가 여러모로 지원하리다. 그리하시면 어찌 정나라와 같은 대국이 세상의 비웃음을 받겠습니까. 장차 주나라 왕실에도 대(代) 물림을 앞세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듯합니다. 그 때가 되면 정나라가 옛 경사 벼슬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대부께서는 오늘밤 북쪽문으로 도망쳐 귀국하십시오. 이후 중원의 평화를 위해 많은 공적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관중이 이렇게 해서 숙첨을 도망치게 했다. 그 일을 말하자 영척이 찬탄했다.
"상군의 원모(遠謀)가 이토록 비상할 줄 천하에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으리오. 참으로 다른 나라와 우리 제나라 사이에 우호를 다지게 하고 주공께서도 천하의 맹주로서 떳떳이 세상을 대하게 하니 그저 존경스럽습니다."
영척은 자기 부중으로 돌아가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더욱더 찬탄해 마지 않았다.
"상군께서는 실로 성인(聖人)이시도다. 실로 성인이라 아니할 수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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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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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양주동편" 양주동(1903~1977)
시인, 국어 국문 학자. 호는 무애. 경기도 개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문학 박사. 일찍이 향가의 해독에 큰 공격을 세운 바 있으며, '국보'라는 별명과 함께 변설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지적이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수필이 많으며 문장은 건축감이 있어 선명한 인상을 준다.
질화로
촌가의 질화로는 가정의 한 필수품, 한 장식품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 그들의 사랑의 용로이었다. 되는대로 만들어진, 흙으로 구운 질화로는, 그 생김생김부터가 그들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건마는, 지그시 누르는 넓적한 불돌 아래, 사뭇 온종일 혹은 밤새도록 저 혼자 불을 지니고 보호하는 미덥고 덕성스러운 것이었다. 갑자기 확확 달았다가 이내 식고 마는 요새의 문화 화로와는 무릇 그 본성이 다른 것이다. 이 질화로를 두른 정경은 안방과 사랑이 매우 달랐다. 안방의 질화로는 비록 방 한구석에 있으나, 그 위에 놓인 찌개 그릇은 혹은 '에미네'가 '남정'을 기다리는 사랑, 혹은 '오마니'가 '서당아이'를 고대하는 정성과 함께 언제나 따뜻했다. 토장에 무를 썰어서 버무린 찌개나마 거기에는 정이 있고, 말없는 이야기가 있고, 글로 표현하지 못할, 그윽하고 아름답고 정다운 세계가 있었다. 누가 식전의 방장을 말하는가. 누가 수륙의 향연을 이르는가. 진실로 행복된 점에 있어서야, 진실로 참된 정에 있어서야, 우리 옛 마을 집집마다 그 안방에 놓였던 질화로의 찌개만하랴.
마음에서 소년은 '서당아이'라 불리었다. 혹은 사략 초권을 끼고, 혹은 맹자를 들고 서당엘 다니기 때문이다. 아잇적, 서당에 다닐 때 붙은 서당아이란 이름은, 장가를 들고 아들을 본 뒤까지도 그냥 남아서, 30이 넘어도 그 부모는 서당아이라고 불렀다. 우리집 이웃의 늙은 부부는 늦게야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자기네가 목불식정인 것이 철천의 한이 되어서, 아들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글을 시켜 보겠다고,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을 서당에 보내고, 노상 '우리 서당애' '우리 서당애' 하며 아들 이야기를 했었다. 그의 집 단칸방에 있는 다 깨어진 질화로 위에, 점심 먹으러 돌아오는 애의 서당아이를 기다리는 따뜻한 토장 찌개가 놓였음은 물론이다. 그 아들이 천자문을 읽는데, '질그릇 도, 당국 당'이라 배운 것을 어찌 된 셈인지 '꼬끼요도, 당국 당'이라는 기상천외의 오독을 하였다. 이것을 들은 늙은 '오마니'가, 알지는 못하나마 하도 괴이하여 의의를 삽한즉, 영감이 분연히,
"여보 할멈,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 마소. 글에 별소리가 다 있는데, '꼬끼요 도'는 없을라고."하였다.
이렇게 단연히 서당아이를 변호한 것도 바로 질화로의 찌개 그릇을 둘러앉아서였다. 얼마나 인정미 넘치는 태고연한 풍경이냐. 사랑에 놓인 또 하나의 질화로는 이와는 좀 다른 풍경을 보이었다. 머슴, 소배들이 모인 곳이면, 신삼기, 둥우리 만들기에 질화로를 에워싸 한창 분주하지마는, 팔씨름이라도 벌어지는 때에는 쌍방이 엎디어 서로 버티는 서슬에 화로를 발로 차 온 방 안에 재를 쏟아 놓기가 일쑤요, 노인들이 모인 곳이면, 고담책보기, 시절 이야기, 동네 젊은 애들 버릇 없어져 간다는 이야기들이 이 질화로를 둘러서 일어나는 일이거니와, 노인들의, 입김이 적어서 꺼지기 쉬운 장죽은 연해 화로의 불돌 밑을 번갈아 찾아갔었다. 그리하여, 기나긴 겨울밤은 어느덧 밝을녘이 되는 것이다. 돌이켜 우리집은 어떠했던가? 나도 5, 6세 때에는 서당아이였고, 따라서 질화로 위에는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찌개 그릇이 있었고, 사랑에서는 밤마다 아버지의 담뱃대 터시는 소리와 고서 읽으시는 소리가 화로를 둘러 끊임없이 들렸었다. 그러나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그 소리는 사랑에서 그쳤고, 따라서 바깥 화로는 필요가 없어졌고, 하나 남은 안방의 화로 곁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대학을 구수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마저 내가 열두 살 되던 해에 그 질화로 옆을 길이 떠나가시었다. 그리하여 서당아이는 완전한 고아가 되어, 신식 글을 배우러 옛 마을을 떠나 동서로 표박하게 되었고, 화로는 또다시 찾을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질화로의 찌개 그릇과 또 하나 질화로에 깊이 묻히던 장죽, 노변의 추억은 20년 전이 바로 어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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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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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새가 있는 언덕길에서
1
새야, 네가 앉아 있는 푸른 풀밭에 나도 동그마니 앉아 있을 때, 네 조그만 발자국이 찍힌 하얀 모래밭을 맨발로 거닐 때 나도 문득 한 마리 새가 되는 느낌이란다. 오늘은 꽃향기 가득한 언덕길을 오르다가 네가 떨어뜨린 고운 깃털 한 개를 주우며 미움이 없는 네 눈길을 생각했다. 지금은 네가 어느 하늘을 날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주운 따스하고 보드라운 깃털 한 개로 넌 어느새 내 그리운 친구가 되었구나. 넌 이해할 수 있니? 늘 가까이 만나 오던 이들도 어느 순간 왠지 서먹해지고, 처음 대하는 이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것처럼 정답게 느껴질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말이야. 네가 무심히 흘리고 간 한개의 깃털이 나의 시집 갈피에서 푸드득 날개소리를 내듯이 내가 이 땅에 흘려 놓은 시의 조각들이 어디선가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니? 아니 하늘로 영원히 오르기 전에 사랑하는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이미 새가 될 수 있다면... 너를 조용히 생각하는 오늘밤은 나의 삶도 더욱 경이롭게 느껴져 잠이 오질 않는구나. 내 삶의 숲에는 아직도 숨어 있는 보물들이 너무 많아 나는 내내 콩새가슴으로 설레이는구나.
2
해질녘, 수녀원의 언덕길과 돌층계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내 마음에 새가 되어 날아드는 어린 시절의 동무들. "나하고 놀자" "소꼽놀이 하자"고 불러내던 눈매 고운 소녀도, 학교 갈 때면 내가 보고 싶어 목을 길게 빼고 우리 동네 쪽을 바라보며 걷는다고 얘기했던 마음 어진 소년도 수평으로 앉아 있다가 파도 모양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오네. 깊은 뜻도 잘 모르고 전에 자주 되풀이했던 그립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 이젠 너무 오래 안 듣고, 안하고 살았더니 문득 어린 시절의 동무들이 날아와 나를 부르네.
3
친구야, 네가 너무 바빠 하늘은 볼 수 없을 때 나는 잠시 네가슴에 내려앉아 하늘냄새를 파닥이는 작은 새가 되고 싶다. 사는 일의 무게로 네가 기쁨을 잃었을 때 나는 잠시 너의 창가에 앉아 노랫소리로 훼방을 놓은 고운 새가 되고 싶다. 모든 이를 다 불러모을 넓은 집은 내게 없어도 문득 너를 향한 그리움으로 다시 짓는 나의 집은 부서져도 행복할 것 같은 자유의 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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