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42호 》 2022.8.30 (음 8.4)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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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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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에 대한 사랑보다 더 거짓 없는 사랑은 없다. ― 조지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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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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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말 찾기
단어가 잘 안 떠오른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요즘엔 더 잦아졌다. 뇌 기능이 조금씩 뒷걸음질친다. 수업 때 수십 종의 개 이름을 다다닥 읊어주고 그걸 그저 ‘개’라고만 하는 말의 폭력성을 보여줌으로써 학생들의 환심을 사려 했다. 그 순간 떠오른 말은 ‘발바리’밖에 없었다. ‘풍산개, 삽살개, 셰퍼드, 불도그, 푸들, 닥스훈트’, 하다못해 ‘진돗개’는 어디로 갔나.
그래도 말에 장애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면 좋은 점이 있다. 허공에 빈손 휘젓듯 머릿속을 뒤적거리다 보면 상실된 것 주변에 아직 상실되지 않은 나머지들이 날파리처럼 몰려드는 걸 보게 된다. 머릿속 낱말들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짐작할 수도 있다.
흔히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딴 말로 풀어 말한다. 일종의 번역인데 ‘칼’이란 낱말이 떠오르지 않아 ‘뾰족하게 생겨 뭘 자르는 거!’라는 식이다. 비스름한 말만 맴돌기도 한다. ‘강박’이란 말이 안 떠올라 ‘신경질, 편집증, 집착’이, ‘환멸’ 대신에 ‘혐오, 넌덜머리, 염증’이란 말만 서성거린다. 비슷한 소리의 단어가 어른거리기도 한다. ‘속물’이란 단어가 안 떠올라 첫 글자가 ‘ㅅ’인 ‘사람, 선물, 사탄, 사기’란 말이 움찔거리다가 이내 사라진다. 혼자 하는 말잇기놀이 같다.
부부의 대화 중 잃어버린 말을 찾으려 스무고개를 하는 경우가 심심찮다. 상실된 말 주변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모이지 않으면, ‘그때 걔, 있잖아 걔’, ‘아, 거 그거, 뭐시기냐 그거’ 이렇게 될 거다. 침묵으로 빠져들기 전, 마지막까지 내 혀에 살아남을 말이 뭘지 궁금하다. 부디 욕이 아니길.
‘영끌’과 ‘갈아넣다’
말에는 허풍이 가득하고 인간은 누구나 허풍쟁이이다. 보고 들은 걸 몇 곱절 뻥튀기하고 자기 일은 더 부풀린다. ‘아주 좋다, 엄청 많다’고 하면 평소보다 더한 정도를 표현한다. 하지만 ‘아주, 엄청, 매우, 무척, 너무’ 같은 말은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 더 감각적인 표현들이 있다.
이를테면 ‘뼈 빠지게 일하다, 등골이 휘도록 일하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 목이 터져라 외치다, 죽어라 하고 도와주다, 쎄(혀) 빠지게 고생한다’고 하면 느낌이 팍 온다. 화가 나면 피가 거꾸로 솟고,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살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벌어진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리고 문지방이 닳도록 사람이 드나든다. 사진을 보듯 생생하지만 과장이 심하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붓는다는 뜻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이나 ‘갈아 넣다’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장롱 밑에 굴러 들어간 동전까지 탈탈 털어 집을 사거나 투자를 할 수는 있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갈아 넣어서 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혼을 담은 시공’이라는 건설 광고판을 보며 들었던 두려움과 죽음의 정서와 겹친다.
과장된 말처럼 현실을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사람이 많다. 탈진할 때까지 힘을 써야 하고 등골이 휘어져도 참아야 하고 영혼마저 일에 갈아 넣어야 하는 사람들. 매순간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사회. 있는 힘을 다해야 할 건 부동산도 일도 아니다. 뼈도 힘도 영혼도 어디다 빼앗기거나 갈아 넣지 말고 고이 모시고 집에 들어가자. 세상이 허풍 떠는 말을 닮아간다. 허풍이 현실에서 벌어지면 십중팔구 비극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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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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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문(檄文) - 김수영
마지막의 몸부림도
마지막의 洋服도
마지막의 神經質도
마지막의 茶房도
기나긴 골목길의 巡禮도
「어깨」도
虛勢도
방대한
방대한
방대한
模造品도
막대한
막대한
막대한
막대한
模倣도
아아 그리고 저 道峰山보다도
더 큰 憎惡도
屈辱도
계집애 종아리에만
눈이 가던 稚氣도
그밖의 무수한 잡동사니 雜念까지도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깨끗이 버리고
農夫의 몸차림으로 갈아입고
석경을 보니
땅이 편편하고
하늘이 편편하고
물이 편편하고
앉아도 편편하고
서도 편편하고
누워도 편편하고
都會와 시골이 편편하고
시골과 都會가 편편하고
新聞이 편편하고
시원하고
뻐스가 편편하고
시원하고
뽐프의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나온다고
어머니가 감탄하니 과연 시원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정말 詩人이 됐으니 시원하고
인제 정말
진짜 詩人이 될 수 있으니 시원하고
시원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니
이건 진짜 시원하고
이 시원함은 진짜이고
自由다
<1961.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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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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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충동(汗牛充棟)
-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릴 정도이고 방 안에 쌓으면 들보에 닿을 정도란 뜻으로, 장서(藏書)가 매우 많음의 비유.
《出典》柳宗元 '陸文通先生墓表'
唐나라 중엽의 문장가 유종원(유종원)의 '육문통선생묘표(陸文通先生墓表)'라는 글이 있는데, 그 첫머리 부분에 이렇게 실려 있다.
孔子께서《春秋》를 짓고서 1500년이 지났다. 이름이 전해지는 사람이 다섯 있는데, 지금 그 셋을 쓴다. 죽간(竹簡)을 잡고 생각을 초조하게 하여 써 읽고 주석(註釋)을 지은 자가 백천(百千)이나 되는 학자가 있다. 그들은 성품이 뒤틀리고 굽은 사람들로, 말로써 서로 공격하고 숨은 일을 들추어 내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지은 책들은 집에 두면 '창고에 가득 차고', 옆으로 옮기려면 '소와 말이 땀을 흘릴' 정도였다. 孔子의 뜻에 맞는 책이 숨겨지고, 혹은 어긋나는 책이 세상에 드러나기도 했다. 후세의 학자들은 늙은을 다하고 기운을 다하여 왼쪽을 보고 오른쪽을 돌아보아도 그 근본을 얻지 못한다. 그 배우는 것에 전념하여, 서로 다른 바를 비방하고, 마른 대나무의 무리가 되며, 썩은 뼈를 지키어 부자 (父子)가 서로 상대를 상처내고, 임금과 신하가 배반하기에 이르는 자가 전 세상에는 많이 있었다. 심하도다. 성인(聖人) 孔子의 뜻을 알기가 어렵도다.
孔子作春秋 千五百年 以名爲傳者五家 今用其三焉 乘?牘 焦思慮以爲讀注疏說者
百千人矣 攻??怒 以辭氣相擊排冒沒者 其爲書 處則充棟宇 出則汗牛馬 或合而
隱 或乖而顯 後之學者 窮老盡氣 左視右顧 莫得其本 則專其所學 以?其所異 黨
枯竹 護朽骨 以至於父子傷夷 君臣?悖者 前世多有之 甚矣 聖人之難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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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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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정열적으로 요청한 부부 - 젝키 밀러
막바지에 이르러 우리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에서 개회되는 제1차 환경 정상회의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교통비와 숙식비, 그리고 우리가 회의 참석자들에게 배포하려는 자신감에 대한 소책자를 인쇄하는데 드는 비용이 총 8천 달러인데 반하여, 모금할 시간은 겨우 2주일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여권 및 비자 수속에 호텔 예약도 해야 했다.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인간의 생존에 필요 불가결한 환경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리란 사실을 마음 속 깊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환경 회의에 참석하여 환경 위기가 곧 우리가 현재 영혼과 가슴속에서 경험하는 위기와 직결되어 있음을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우리는 이 중요한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려는 정열에 불타올라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첫날 통화했던 어떤 이가 500달러를 기부했다. 그 다음 전화는 한 여성과 연결되었다. 그녀는 막 공항으로 떠나려던 참이므로 2분밖에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 2분 간의 짧은 통화 끝에 천 달러를 기부했다. 그녀는 우리를 알지도 못했지만, 우리가 품은 목적에 대한 정열에 큰 감동을 받아 우리를 돕고 싶어했다. 사실 그녀는 격한 감동으로 통화중에 울먹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에 놀라고, 우리를 돕게 되어서 매우 기쁘다고 했다. 여러분이 어떤 목적을 품고, 그 일이 중요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음을 알 때, 다른 이를 쉽게 설득할 수 있다. 2주일에 8천달러를 모금하다니! 그 대부분은 우리가 전에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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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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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6. 초문왕의 뺨에 화살이 꽂히니
육권의 자결
주혜왕 2년 때 일이다. 전 해에 초문왕은 파(巴)나라 임금과 함께 신(申)나라를 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초문왕은 파나라 군사를 업신여기고 혹사했다. 마침내 파나라 임금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 때 초나라를 지키던 수장 염오(閻敖)는 어찌나 급했던지 수채 구멍으로 빠져나가 달아났다. 초문왕은 파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도망온 염오를 즉시 잡아죽였다. 이에 염씨(閻氏) 일족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사죄하고 빌었으나 속으로는 초문왕을 몹시 저주했다. 얼마 후 파군이 초나라를 치자 초문왕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나루터에서 크게 싸웠다. 그러나 내부에서 원한을 품고 시기만 기다리던 염씨 일족 수백 명을 어찌 막을 수 있으리오. 염씨 일족은 초군으로 가장하고 초진 안에 들어가서 초문왕을 찾았다. 그 중 한 사람이 초문왕을 보자 파군과 싸우는 척하다가 활을 잔뜩 잡아당겨 갑자기 돌아서면서 초문왕을 쏘았다. 화살은 초문왕의 뺨에 꽂혔다. 염씨 일족은 이에 기세를 올려 닥치는 대로 초군을 쳐죽였다. 이 때 파군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 병력을 초문왕의 진영으로 투입했다. 마침내 초군은 대패하여 죽는 자가 열 명중 일곱 여덟이었다. 초문왕은 뺨에 화살을 맞은 채 달아났다. 파나라 임금은 크게 이기자 더 이상 초군을 추격하지 않고 군사를 거두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에 염씨 일족은 초나라를 떠나 파군을 따라가 파나라 사람이 됐다. 한편 초문왕은 패잔병을 거느리고 성으로 돌아갔다. 성 안에서 수문장 육권이 물었다.
"왕은 싸움에 이기셨습니까?"
초문왕이 대답했다.
"졌노라."
"선왕이 칭왕하신 이래 우리 초군은 싸워서 패한 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파나라로 말하면 조그만 나라가 아니옵니까. 그런데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서 졌으니 모든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간 황(黃) 나라가 우리에게 조례하지 않고 있습니다. 왕께서 황나라를 쳐서 이기고 돌아오시면 이 조소를 면할 수 있습니다."
성문은 열리지 않았다. 초문왕이 분연히 모든 군사에게 말했다.
"이번에 가서 또 이기지 못하면 과인은 결코 성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초문왕은 그 길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황나라를 쳤다. 초문왕이 친히 북을 쳐서 사기를 돋우니 군사들도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황나라 군사를 쳐부쉈다. 그날 밤이었다. 초문왕은 진중에서 꿈을 꾸었다. 식나라 군후가 산발한 머리를 흔들며 눈을 부릅뜨고 나타나서 원한 맺힌 음성으로 말했다.
"내 무슨 죄가 있다고 죽였느냐? 그리고 내 나라를 없애고 내 영토를 빼앗았느냐? 그리고 내 아내를 뺏아갔느냐? 내 이미 상제께 너의 죄를 낱낱이 고하였다."
식나라 임금은 손을 번쩍 들어 초문왕의 뺨을 갈겼다. 초문왕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화살에 맞은 뺨이 찢어지고 피고름이 흘렀다. 초문왕은 크게 놀라 즉시 군사를 거두었다. 그러고는 영채를 뽑고 본국으로 향해 떠났다. 초군이 추 땅에 이르렀을 때였다. 초문왕은 자다 말고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겨우 아픈 몸을 반쯤 일으키다가 뒤로 벌렁 넘어졌다. 군사들이 모여 들었을 때 초문왕은 이미 흉하게 눈을 부릅뜨고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이에 초나라 군사들은 애통해 하면서 귀국했다. 한편 육권은 초문왕의 시신을 영접하고 장례를 지냈다. 그래서 초문왕의 뒤를 이어 웅간이 왕위에 올랐다. 이 웅간이 식부인의 큰아들이었다. (이후 식부인은 문 부인으로 불리었다.) 초문왕 장례를 마친 후 육권이 말했다.
"나는 두 번씩이나 왕의 명령을 거슬렀다. 그럴 때마다 왕은 나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내 뜻을 받아들여 주셨다. 이제 왕이 안 계신데 내 어찌 더 이상 이 세상을 살기 바라리오. 왕의 뒤를 따라 지하로 돌아가리라."
육권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모은 후 말했다.
"내 죽거든 반드시 나를 성문 곁에다 묻어 다오. 자손 만대에 내가 성문을 굳게 지킨다는 걸 알게 하리라."
마침내 육권은 칼을 뽑아 스스로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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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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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은상편"
시조 시인, 사학자. 호는 노산. 경남 마산 출생. 연희 전문 졸업. 일본 와세다 대학 수학.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했으며 대부분의 작품들이 작곡이 되어 가곡으로 불릴 만큼 시조 형식을 현대적 운율로 소화해 내었다. 뛰어난 문장가로 많은 수필집을 낸 바 있으며 교단은 물론 많은 학술 단체, 사회 단체에도 관여하였다.
한 눈 없는 어머니
김 군에게
김 군이 다녀간 어젯밤에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소. 김 군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쓰고 싶으면서도 실상은 쓰고 싶지 않는 글이오. 왜냐 하면 너무도 어리석은 일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도 슬픈 사연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꼭 써야만 한다는 무슨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었소. 그래서 이 붓을 들었소. 어젯밤 우리가 만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소. 아, 거기서만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그대는 품속에서 그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소. 나는 그대의 어머니를 생전에 뵈온 일이 없었기로 반가이 받아들었소. 그런데, 그대의 가신 어머니는 한 눈을 상하신 분이었소. 그것을 본 순간, 내 머리에는 '불행'이란 말이 퍼뜩 지나쳤소. 그와 동시에 나는 그대가 더욱 정다워짐을 느끼었소. 그러나 뒤를 이어 주고받은 그대와 나와의 이야기, 김 군, 그대는 이 글을 통해서 어젯밤 우리가 나눈 대화를 한 번 되새겨 주오. 그대는 어느 화가의 이름을 말하면서 내가 그와 친하냐고 묻기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소.
"그럼, 한 가지 청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이 사진을 가지고 내 어머니의 모습을 하나 그려 달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보수는 상당하게 드리겠습니다."
"내 힘껏 청해 보지요."
그림으로나마 어머니를 모시려는 그대의 착한 뜻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소. 그래서, 나는 쾌히 약속을 했던 것이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온 그대의 말, 그대는 가장 부자연스런 웃음과 어색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였소.
"그런데 그림을 그릴 적에 두 눈을 다 완전하게 그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김 군, 순간 내 눈앞은 캄캄해지고 내 가슴은 떨리었소.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소. 두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소. 겨우 입을 열어 내가 한 말은 돌아가 달라는 한 마디뿐이었소. 나는 그대를 보내고, 괘씸하고 분한 생각에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소. 그대가 평소에 어머니의 눈 때문에 얼마나 한스러웠기에 그림에서라도 온전히 그려 보려 했을까? 이렇게 생각하려고도 해 보았소. 그러나 그대의 품속에 들어 있는, 그대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 한 눈 상하신 그 어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 원망의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소.
김 군,
그 즉석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대는 나의 열리지 않던 입에서 분명히 듣고 간 것이 있었을 것이오. 말없던 나의 입에서 듣고 간 것이 없소? 만일 없다면, 이제라도 한 마디 들어 주오. 그러나, 내 말을 듣기 전에, 그대는 먼저 그대의 품속에서 그대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 자세히 들여다보오. 상하신 한쪽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자세히 보오. 눈물 가진 눈으로 보오.
김 군,
한 눈을 상하신 까닭으로 평생을 학대 속에 사셨는지도 모를 그 어머니... 애닯소. 한 눈 없이 그대를 낳고 기르고, 그대를 위하여 애태우시다 이제는 저 차가운 땅 속에 드셨거늘, 자식인 그대마저 어찌 차마 그대 어머니의 상하신 한 눈을 업신여겨 저버린단 말이오? 그대에게 한 눈 가지신 어머니는 계셨어도 두 눈 가지신 어머니는 없었소. 온 세상이 다 불구라 비웃는대도 그대에겐 그 분보다 더 고우신 분이 또 누구이겠소? 한 눈이 아니라 두 눈이 다 없을지라도 내 어머닌 내 어머니요, 내가 다른 이의 아들이 될 수는 없는 법이오.
김 군,
그림으로 그려 어머니를 모시려 한 착한 김 군, 그런 김 군이 어떻게 두 눈 가진 여인을 그려 걸고 어머니로 섬기려 했단 말이오? 그대는 곧 한 눈 없는 어머니의 영원한 사람의 품속으로 돌아가오. 그리하여 평생 눈물 괴었던 그 상하신 눈에 다시는 더 눈물이 괴지 않도록 하오. 이만 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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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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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가을엔 바람도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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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고 선을 베푸는 일을 결코 게을리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주님의 자비하심을 나는 더욱 열심히 따르고 싶다. 나와 천성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그의 좋은 면을 보려고 애쓰는 편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건 불신을 품는 일, 특히 보잘것 없는 사람들, 가난하고 권력없는 사람들에게 불신을 품는 일, 남을 깍아내리는 평가 등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를 아프게 한다.` 교황 요한 23세의 이 말씀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으며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그의 끝없는 애정에 감동했다.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십사 하고 기도했던 오늘, 용서한다고 쉽게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서로 용서하지 않는 일이 우리 사이엔 얼마나 많은지! 가끔은 하느님도 이 부분을 슬퍼하시리라는 생각이 든다.
8
이별은 아직도 쓰라리고 남북은 함께 슬프구나. 여섯 살 때 납북되신 아버지가 낡은 사진 속에서 걸어나와 가끔 내게 말은 건네신다. "얘야, 잘 있니? 너무 오랜 세월 우리는 헤어져 살았구나. 내가 왜 떠나게 되었는지 나도 모른단다. 이 땅에서 다시 만날 희망이 없어졌지만 나의 사랑은 식지 않았단다. 내 탓이 아니라도 나를 많이 원망하며 그리워했을 모든 가족에게도 안부 전해주렴."
9
오늘은 주일. 끝내기 위해서 숨이 찾던 일의 의무도, 아름답지만 조금은 고단했던 사랑의 의무도 오늘은 모두 쉬기로 하자. 끊임없는 계획으로 쉴 틈이 없었던 생각도 쉬게 해주자. 급히 따라오는 시간에도 쫓기지 말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지녀야지.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그냥 조용히 웃어 보는 기쁨 또한 기도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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