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41호 》 2022.8.29 (음 8.3)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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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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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을 맡은 자는 스스로를 공공재산으로 생각해야 한다. ―토머스 제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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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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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와 국립국어원
한글날 기념, 따분한 얘기 하나 하자. ‘국어’라는 말은 공용어인 한국어를 뜻하지만, 쓰임새를 보면 밀가루 반죽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국어 실력’이라 할 때 ‘국어’는 ‘어휘력, 표준어, 띄어쓰기, 맞춤법, 어법’을 연상시킨다. ‘국어사전’에서 ‘국어’는 주로 단어들이다. ‘국어국문학과’에서 ‘국어’는 ‘문학’과 대칭되는 개념으로 국어학 전공을 뜻한다. 국어학자와 국문학자는 소장수와 꽃장수만큼이나 다르다. ‘국문과’라 줄여 말하는 데에는 문학의 주도권이 배어 있다. 반면에 ‘국어 교사’가 가르치는 ‘국어’는 한국어를 매개로 한 말글살이를 모두 아우른다. 수능에서도 ‘국어 영역’은 ‘화법, 작문, 문법, 독서, 문학’을 다 포함한다.
따분한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국어 발전과 국민의 언어생활 향상을 위한 기관인 국립‘국어’원의 기능을 문제 삼기 위해서이다. 국립국어원은 문학과 대칭되는 좁은 ‘국어’, 국어학자들의 ‘국어’에 머물러 있다. 국어기본법에 실린 ‘국어능력’은 ‘국어를 통하여 생각이나 느낌 등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듣기·말하기·읽기·쓰기 능력’이다. 그야말로 ‘문해력’(리터러시)이다. 말귀를 알아듣는 역량이자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글의 내용에 자신의 경험과 배경지식을 연결시켜 추론하고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문해력을 사회적 과제이자 교육정책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중간지대나 숙려기간 없이 진영과 세대로 갈려 대립하는 소통 환경에서는 문해력 격차 해소와 공공성 확보가 더욱 절실하다. 국립국어원은 문해력 증진 기관이다.
왜
“처음 대답하는 사람이 중요해요. 강○○!” “예.” “아니, ‘예’ 말고 ‘응’이라고 해봐요. 겁내지 말고.” “…… 응.” “잘했어요. 거봐요. 할 수 있잖아요.”
나는 출석을 부를 때 학생들에게 반말로 대답하라고 ‘강요’한다. 괴팍하고 미풍양속을 해치는 일이지만, 잔재미가 있다. 그러다가 스무 명쯤 지나면 강도를 한 단계 높인다. “평소에 엄마 아빠가 부르면 뭐라 했는지 생각해서 대답해 봐요. 자, 용기를 내요. 박○○!” 머뭇거리며 답한다. “왜!!”(내키는 대로 해보라고 하면 가끔 간이 많이 부은 학생이 ‘오냐’라고 해서 응급실에 보내기도 한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수업에서 반말로 대답하는 걸 갈고닦아 딴 강의에서 엉겁결에 ‘왜’라고 하여 낭패를 당했다는 미담을 듣는 것입니다. 낄낄낄.”
말은 명령이다. ‘예’와 ‘응’과 ‘왜’를 언제 써야 하는지 가르친다. 어기면 돌을 씹은 듯이 불편해한다. 그래서 ‘반말 놀이’는 규율을 깼다는 짜릿한 해방감도 느끼게 하지만,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명령의 체계(말의 질서) 속에 내가 던져져 있음을 무겁게 확인하게도 한다. 다만 말이 만든 경계선을 놀이처럼 한 번씩 밟고 넘어감으로써 그 질서를 상대화한다. 말은 피할 수 없으니 더욱 의심해야 하는 질서다.
부풀려 말하면 선생에게 ‘왜’라고 답해본 학생들은 시대에도 항의할 수 있다. 그러니 긴장들 하시라. 말에 속지 않고 ‘왜? 왜 그래야 되는데?’라며 달려드는 젊은이들이 해마다 속출할 것이다. 권력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상상력에 뿌리박은 채, 야금야금.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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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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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편네의 방에 와서 - 김수영
여편네의 방에 와서 起居를 같이해도
나는 이렇듯 少年처럼 되었다
興奮해도 少年
計算해도 少年
愛撫해도 少年
어린놈 너야
네가 성을 내지 않게 해주마
네가 무어라 보채더라도
나는 너와 함께 성을 내지 않는 少年
바다의 물결 昨年의 나무의 體臭
그래 우리 이 盛夏에
온갖 나무의 追憶과
물의 體臭라도
다해서
어린놈 너야
죽음이 오더라도
이제 성을 내지 않는 법을 배워주마
여편네의 방에 와서 起居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나는 점점 어린애
太陽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죽음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언덕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愛情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思惟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間斷 아래의 단 하나의 어린애
點의 어린애
베개의 어린애
苦悶의 어린애
여편네의 방에 와서 起居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
너를 더 사랑하고
오히려 너를 더 사랑하고
너는 내 눈을 알고
어린놈도 내 눈을 안다
<1961.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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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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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지보(邯鄲之步)
-/ 자기가 지켜야 할 본분을 모르고 마구 남의 흉내를 내면 두 가지를 다 잃는다는 말.
《出典》'莊子' 秋水篇
莊子의 선배인 위모(魏牟)와 명가(名家)인 공손룡(公孫龍)과의 문답 형식으로 된야이기 가 있다.
위모가 공손룡에게 말했다.
"또한 그대는 걷는 법을 배우러 수릉(壽陵)의 젊은이가 한단(邯鄲)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는가? 아직 그 나라의 걸음걸이에 능하지 못하였는데 제 나라의 걸음걸이마저 잃어, 곧 엎드려 기어서 제 나라로 돌아갔을 뿐일세. 당장 그대가 가지 않는다면 장차 그대의 방법을 잃고 그대의 본분을 잃어버릴 것일세."
공손룡은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하고, 혀가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아, 곧 달려서 도망쳐 갔다.
且子獨不聞 夫壽陵餘子之學行于邯鄲與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匍而歸耳 今子不法 將忘子之故 失子之業 公孫龍口?而不合 舌擧而不下 乃逸而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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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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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1%의 가능성을 굳게 믿은 부부 - 릭 겔리나스
통닭구이가 입안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 중국속담
나는 아내 린다와 함께 마이애미 플로리다에서 '작은 도토리'라는 자신감 향상 프로그램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어느날 우리는 샌디에고에서 개최되는 교육 회의의 안내문을 받았다. 그것을 다 읽은 후에 우리는 그곳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무슨 수로 그럴 수 있을지 막막했다. 사업 초창기였기 때문에 우리는 집에서 일했고 저금을 거의 다 써 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여비를 비롯한 다른 경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어떻게든 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 나는 샌디에고 회의 주최측에 전화를 걸어서 우리가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두 장의 무료 참석권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내가 린다에게 회의 참석권이 생겼다고 하자, 그녀가 말했다.
"잘됐어요! 하지만 우리는 마이애미에 살고, 회의는 샌디에고에서 열리잖아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까요?"
우리에게는 비행기 표가 필요했다. 나는 노스웨스트 항공사에 전화를 걸어 스티브 퀸토 사장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마이애미에서 샌디에고까지 비행기표 두 장을 요청했다. 그는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단지 그뿐이었다. 즉각적인 승낙이었다. 하지만 그의 다음 말에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저에게 요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나요?"
"나는 사람들이 요청하지 않는 이상 이 세상을 위한 최선의 일은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그 최선의 일이란 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데, 지금 당신은 나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참으로 멋진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런 기회를 주신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습니다."
나는 얼이 빠진 채 그에게 인사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비행기표가 생겼어."
그녀가 말했다.
"잘됐어요. 그런데 어디서 묵지요?"
다음에 나는 마이애미 시내의 홀리데이 인 호텔에 전화를 걸어서 본사의 위치를 물었다. 그리고 홀리데이 인 호텔의 본사가 테네시 멤피스에 있다는 말에 나는 테네시로 전화했다. 그쪽에서는 캘리포니아 지역 홀리데이 인 호텔 전부를 총괄하는 샌프란시스코 담당자를 일러줬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귀사의 호텔에서 사흘 동안 공짜로 묵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샌디에고 시내에 새로 오픈한 호텔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괜찮겠는데요."
그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미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호텔은 회의가 개최되는 대학 캠퍼스에서 35마일이나 떨어졌기 때문에 두 분께서 교통수단을 마련하셔야 할 겁니다."
"말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교통편을 마련하겠소.'
나는 그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통화를 마친 다음에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는 회의 입장권과 비행기표와 잘 곳이 있어. 이제 필요한 것은 호텔과 회의장을 하루에 두 번씩 오가는 방법을 찾아내는 거야."
그리고 나는 내셔널 렌트카 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고 우리를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말했다.
"신형 올드 88모델은 어떻겠습니까?"
나는 좋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하루만에 모든 일을 다 처리했다. 우리는 회의 기간 중에 그럭저럭 식사를 때웠지만 결국 가진 돈도 거의 바닥이 났다. 그래서 나는 회의가 끝나기 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일반 회원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음 말을 덧붙였다.
"지금 우리에게 자발적으로 점심을 대접하겠다는 분들의 신청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약 50여명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두 말할 나위없이 멋진 식사 대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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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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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6. 초문왕의 뺨에 화살이 꽂히니
제환공, 맹주 칭호를 받다
한편 제환공은 정나라 군위를 정해 준 후, 위(衛) . 조(曹) 두 나라가 지난 겨울에 또한 동맹에 가입하겠다고 자진해서 청해왔기 때문에 다시 열국 군후를 모은 후 새로 규약을 정하고자 했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주공은 새로 패업을 세웠으니 이제부터는 모든 일을 간단히 하십시오."
제환공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간단히 하라니, 어떻게 하는 것이오?"
관중이 대답했다.
"진(陳), 채(蔡), 주는 북행(北杏) 땅에서 맹회한 이래로 우리 제나라를 배신한 일이 없으며, 조(曹)나라는 비록 맹회(盟會) 때에 불참했으나 송나라를 쳤을 때 함께 거사했습니다. 그러니 이 네 나라는 두 번씩 오라 하지 마시고, 다만 송, 위 두 나라가 한 번도 회에 협력한 일이 없으니 이번엔 그들만을 부르기로 하고 모든 나라가 한마음으로 단결되면 그 때에 다시 모두 모여서 규약을 정하도록 하십시오."
그 때 시신이 들어와 아뢰었다.
"주왕(周王)께서 송(宋)이 조정에 들어와 예로써 조례했다는 것을 우리 나라에 알리도록 사신 선멸을 보냈는데, 선멸은 이미 위나라에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관중이 아뢰었다.
"이쯤 되면 송나라 문제는 제대로 결말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천자의 사신이 위나라까지 왔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주공은 친히 위나라에 가셔서 모든 제후를 불러 회견하십시오."
그래서 제환공은 사자를 송 . 위 . 정나라로 보내어 위나라 견(甄) 땅에 모이도록 했다. 마침내 이들 나라의 군후들과 천자의 사신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그들 세 나라 제후들은 제환공이 삽혈(揷血)의 맹세를 강요하지 않는 데 대해서 크게 감격했다. 그 후 제환공은 열국 제후가 진심으로 자신에게 복종하는 걸 알고서 송(宋), 노(魯), 진(陳), 위(衛), 정(鄭), 허(許) 모든 나라 군후를 유(幽) 땅으로 불러 모아 크게 회를 열어 삽혈하고 동맹하니 비로소 맹주(盟主)의 칭호를 받게 되었다. 이 때가 주희왕 3년 겨울이었다. 유 땅의 맹회에서 정식 맹주 칭호를 받고 돌아온 제환공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남방의 초나라만은 아직 어쩔 수 없다는 데서 다소 짐짐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방에서 세작이 돌아와 초나라에서 있었던 일을 아뢰었다.
애꿎은 채애공 탓
남방의 초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초문왕 웅자가 천하 절색 식부인(息夫人)의 미색에 반해서 그녀를 강제로 데려다 아내로 삼고 식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앞서 말한 바 있다. 초문왕은 식부인을 데리고 오자 만사를 제쳐놓고 그녀와만 시간을 보냈다. 이리하여 함께 산 지 3년 동안에 초문왕과 식부인 사이에서 웅간과 웅운 두 아들이 태어났다. 그런데 기이한 일은 식부인이 3년 동안 함께 살면서도 초문왕과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초문왕은 처음 일 년간, 멸망한 식나라를 생각해서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그 다음 일 년도 임신하여 배부른 그녀를 채근할 수 없는 일이라 흘려 보냈다. 마침내 초문왕이 화가 치밀었다. 삼 년간을 참았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부인께서 이렇듯 삼 년 동안을 마치 벙어리처럼 입을 꼭 다물고 말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오?"
식부인은 대답없이 울기만 했다.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음에도 과인을 남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오?"
식부인은 고개를 흔들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초문왕은 험한 말을 마구 했다. 그제서야 식부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여자의 몸으로서 두 남자를 섬겼으니 비록 절개를 위해 죽지는 못하였을지언정 또 무슨 면목으로 사람을 대해서 입을 열고 말할 수 있으리이까."
식부인은 말을 마치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초문왕은 이 모습을 보자 속이 상했다. 그렇다고 따로 위로할 말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애당초 이 모든 일이 채애공 그 놈 때문이오. 짐이 부인을 위해서 원수를 갚아 주리라. 그러니 부인은 과도히 슬퍼하지 마라."
우습구나, 초문왕이여.
천하 절색을 탐낸 건 누구이며, 식부인을 데리고 살아 아이까지 낳은 건 누군데 어찌 채애공을 탓하는가. 사실이 그러했지만, 초문왕은 엉뚱하게도 채애공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고는 자기 부인을 위로한답시고 군사를 일으켜 채나라로 쳐들어갔다. 채애공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벼락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곧 초군 앞에 나아가 웃옷을 벗고 꿇어 엎드려 사죄하고 부고를 몽땅 털어 모조리 바쳤다. 그때서야 초문왕은 군사를 거두고 물러났다. 이 소문을 들은 정여공은 겁이 덜컥 났다. 그래서 곧 사자를 초나라로 보내어 자신이 군위에 복귀한 것을 보고했다. 초문왕이 사자를 꾸짖었다.
"너희 나라 임금 자리에 돌이 복위한 지 벌써 얼마가 지났는데 이제와서 고하느냐? 짐이 이번에는 너희 나라에 가서 버릇을 고쳐 놓겠노라."
드디어 초문왕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로 쳐들어 갔다. 그래서 정여공은 재빨리 국경까지 나와서 마치 영접하듯 초문왕을 맞아들이고 신하의 예로써 백배 사죄했다. 초문왕은 정여공의 태도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래서 정 여공을 용서해 주고 회군했다. 이 때가 주희왕 4년이었다. 그 후로 정여공은 초나라가 무서워서 감히 제나라를 섬기지 못했다. 한편 제환공은 사자를 정나라로 보내어 정여공을 크게 꾸짖으니, 정여공은 상경 벼슬에 있는 숙첨을 제나라로 보내 제환공에게 고하도록 했다.
"지금 우리 정나라는 초군의 위세에 눌려 성만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 귀국에게 그간 공물을 바치지 못했습니다. 만일 군후께서 초나라를 눌러 주시면 우리 주공인들 어찌 군후를 섬기지 않겠습니까."
제환공은 숙첨의 변명이 미웠다. 제환공은 숙첨을 군부에 잡아 가두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군부의 경계가 허술한 바람에 숙첨은 도망쳐 정나라로 돌아갔다. 이후부터 정나라는 초나라만 섬겼다. 그 후 주희왕은 왕위에 있은 지 5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왕자 낭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주혜왕(周惠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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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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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진섭편" : 김진섭(1930~?)
수필가, 독문 학자. 호는 청천. 전남 목포 출생. 일본 호세이 대학 졸업. 서울대 교수. 6.25사변 때 납북됨. 저서로 "인생예찬" "생활인의 철학" 등이 있다. 한국 수필 문학의 개척자. 생활의 예지와 감흥을 가지 넘치는 생활 철학의 발견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우송
이제로부터서는 차차로 겨울에는 보기 드물던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다. 꽃을 재촉하는 봄비로부터 우울한 가을비에 이르기까지 혹은 비비하게, 혹은 방타하게, 혹은 포르티시모로, 혹은 피아니시모로, 불의에 내리는 비가 극도로 절약된 자연 속에 사는 도회인의 가슴에까지도 문득 강렬한 자연감을 일으키면서 건조한 대지를 남김없이 적실 시기는 이제 시작된 것이다. 참으로 비는 눈과 한가지로 도회인에게 남은 오직 하나의 변함없는 태고 시대를 의미하며, 오직 하나의 지묘한 원시적 자연에 속한다. 겨울에 변연히 내리는 편편백설이 멀고 먼 동경의 성국을 우리가 사는 곳에까지 고요히 고요히 싣고 와 우리에게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시취를 일으킬 수 있음에 못지않게 또한 비는 우리에게 경쾌하고 청신한 정감을 다양 다모하게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본지가 수필 일 편을 청함에 맡겨 우송을 택한 것은 지난 겨울에 백설을 바라다가 드디어 얻지 못하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게 되니 그 대상을 비의 자연에 구한다느니보다는 철이 되면 철따라 요사이 어쩐지 비 자체가 한없이 그립기 때문이다.
대체 비라는 것은 물론 누구의 의견을 두드려 보아도 그렇겠지만 왔다가는 개고 개었다가는 오는, 말하자면 갈망의 결과로서 내려 세갈의 의하면 써 그치는 바 물이라야 하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이리 하여야만 모든 것이 그 자신의 질서 속에 더욱 명랑한 정신을 획득할 수가 있다. 노아의 대홍수는 광휘 있는 40일 동안의 장림의 결과였다고 한다. 그 결과가 반드시 홍수에는 이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밤낮으로 비만 오고 햇볕이 조금씩 나타나려다가 또다시 내리는 비에 숨기어지고 마는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면 모든 사람의 마음은 침울하게 되고 성급하게 되어 나중에는 세상을 저주하고, 하늘을 저주하고, 특히 무엇보다도 비라는 놈을 욕하고 주먹질한다. 한발도 견디기 어렵지만 장림은 더욱 견디기 어려운 듯 보인다. 사실에 있어 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까닭이다. 오직 그들의 소중한 금전옥답에 천연의 관개를 필요로 하는 농부들만이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이 '궂은' 일기에 대하여 저주할 때라도 도저히 동감의 의를 표치 않을 따름이다. 참으로 농부들은 너무도 직접적으로 이 하늘이 주는 기적, 이 하늘이 내리우는 축복을 체험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들은 우후의 놀라운 성장을 백곡천채에 있어서 관찰하고 하늘의 섭리에 감사하여 마지않는 것이다. 그들에 있어서는 오늘과 같은 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모든 자연 현상은 오히려 하나의 경이에 멈춘다. 그러나 반대로 도회인으로 말하면 피해를 입으면 입었지 그 은택을 느낄 기회를 전연 갖지 아니하므로, 우연히 우중봉사를 직무로 택한 자동차 운전수와 우산 제조업자의 일군을 제외하고 보면 이들은 모든 종류의 비에 불의의 모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리하여 도회인은 흔히 지루한 비가 인간의 정신에 작용하는 바 영향을 통론하여 그 때문에 유래한, 퇴치할 수 없는 침울 속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다.
좀 생각하여 보라. 사실 비가 오면 예삿일이 아닌 것이다. 첫째로 불쾌한 것은 젖은 발이다. 화사를 사랑하는 도회지의 신사 숙녀로서 분노의 정을 일으킬 뿐이 아니라 감기까지 모시고 오는 것이 실로 비 때문에 젖은 양말이며, 비 때문에 물이 된 구두인데야 어찌 이 괴악한 그의 소행을 용사할 수 있으랴! 비를 예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붓을 든 나도 비에 젖은 신발의 불쾌감을 생각하면 비에 대한 일말의 증오심이 일어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하여 문제는 물론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더욱 나아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것을 타기를 사랑하나 다른 사람이 타고 달리는 것을 싫어하는 도회지의 자동차가 특히 비 오는 날에 우리의 아껴야 할 의복에 사정없이 펄을 한 주먹 뿌리고 도망간 아직도 괘씸한 기억을 찾아 낼 수 있으며, 또는 모처럼 벼르던 일요일의 원대한 이상이 예기치 않았던 비 때문에 애인을 위하여 특별한 마음으로 장만하여 둔, 혹은 한 송이의 비단꽃이, 혹은 한 권의 책이 불길한 징조를 예시하는 듯이 탐욕스러운 소낙비에 의하여 속속들이 젖고야 말았던 애달픈 기억 등, 기타의 많은 불쾌한 기억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찾아 낼 수가 있다.
이러한 가지가지의 회상을 더듬으면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도 우리가 적어도 도회에 사는 이상 비를 예찬할 기분이 안 될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성급한 마음을 잠깐 억제하고 조금쯤 이에 대하여 반성할 여유를 갖는다면 이 따위 구구한 추억은 가히 문제될 거리가 아니다. 비의 폐해를 구태여 이런 추억 속에 찾는다면 우리는 그 반면에는 또한 항상 비의 이익이 병행하고 있는 사실을 예증치 않을 수 없다. 가령 비가 오니까 떠나가려는 애인이 좀더 우리 곁에 앉아 있을 수도 있는 것이며 비가 오니까 틀림없이 찾아올 터인 채귀의 언제나 같은 힐난의 액을 면할 수도 있는 것이며, 또 여기서 우리는 생략하여도 좋은 많은 용무, 많은 회합이 불의의 강우로 인하여 결연히 단념될 수 있는 데서 유래하는 방, 저 명랑한 쾌감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체 떨어진 구두를 신고 흙물에 들어간다고 해서 비가 싫다는 것은 무어라 하여도 좀 창피한 감상이다. 두 다리를 조종하여 길을 다니는 이상엔 청우를 불문하고 무엇보다도 신발 단속이 급선무일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참으로 악화가 소위 인간 삼환의 일자로서 지적되는 것도 이유 없지 않다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폐리를 끌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비에 대하여 안전한 신발을 신고 있을 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사람마다 장차 오는 휴일에 잔뜩 처담은 단꿈이 비 때문에 깨어진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며, 또 노상에서 우연히 대우를 만나 암만 속력을 내어 달음질을 했어도, 물에 빠진 새앙쥐 신세를 짓고야 말았다는 수도 있을 수 없는 터에야, 소수인이 드물게 겪은 바 불운한 예를 가지고 구태여 비를 원망할 수도 가만히 생각하여 보면 없는 일이 아니냐? 이리하여 우리는 도회의 비를 한없이 찬미하려는 자이지만, 우리가 비를 찬미하려기 때문에는 우리는 먼저 비에 약한 무리를 물리치고 비에 강한 무리 속으로 몸을 집어 넣지 않으면 아니 된다. 비에 강한 무리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닥창이 두꺼운 구두를 신은 사람을 의미하며, 밀회를 갖지 않는 건전한 사람을 의미하며, 여름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휴가를 이용하여 피서갈 때에도 오히려 항상 변함없이 초열의 도회지를 사수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것은 의미한다.
풍우한설에 대하여 우리가 이를 피할 수 있는, 집이라는 안전지대를 갖는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 안전 지대인 우리들의 집 창문에 우리가 서로 기대어 거리의 모든 생활이 비비히 내리는 세우에 가벼이 덮이어 거대한 몸을 침면시키고 있는 정경을 볼 때 누가 과연 그 마음이 기쁘지 않다 할 수 있으랴! 이 집은 물론 우리 자신에 속한 집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집이며, 이 집은 또 혹은 좁아서 걱정이며 혹은 더러워서 곧 이사가려는 경우에 처하고 있는 때라도 우리는 이 때만은 부슬부슬 내리는 이슬비의 불역의 귀결을 감상함으로 인하여 이 집은 벌써 좁지 아니하며, 이 집은 벌써 더럽지 않을 뿐 아니라, 주소간 속 깊이 잠재하여 떠나지 않던 전택의 욕망도 전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는 한 개의 시가로서 우리 앞에 군림하여 이 한없이 큰 매력은 불안하기 그지없는 세가를 그리운 자저로 화하게 하고 피할 수 없는 번민을 존재의 희열로 변하게 한다. 비의 위대한 정화력은 그 영역 속에 모든 사람에게서 그들의 괴로운 현실을 빼앗고 그것에 대치하되 보다 심원한 초현실로써 하는 것이다. 거리거리의 모든 구조물을 세척할 뿐이 아니라 그것은 실로 인간의 영혼까지를 세탁하는 것이다. 비가 노래하는 혹은 들리고 혹은 들리지 않는 단순한 절주는 가장 고상한 음악에 속할 자이다. 그것은 하나의 음악일뿐이 아니라 또한 그것은 변화무쌍한 일폭의 활화이기도 하다.
우리가 꺽다점에나 카페에 앉아서, 때마침 장대같이 내리는 빗줄기가 분간없이 유리창을 때리며, 바람은 거리와 거리를 휩쓸어 신사의 모자를 날리고 부인네들의 우산을 뒤집는 소란한 정경을 객관적으로 완미 할 수 있을 때 누가 과연 이에 쾌재를 부르짖지 않을 자이랴! 내 아직 경험이 적으므로 인생의 생활이 얼마나 한 행복을 우리에게 약속할는지는 감히 추단키 어려우나 적어도 현재의 내 생각 같아서는 이만한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시추에이션도 이 인간 생활 속에서는 그다지 많이 찾을 수는 없는 것같이 보인다. 이 때에 우리가 마시고 있는 한 잔의 차, 한 잔의 맥주는 이중으로 삼중으로 맛이 늘어가는 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다. 더욱이나 우리가 재채기를 하고 욕설을 하며 젖을 옷을 툭툭 털고 들어오는 무고한 피해민을 안락 의자에 팔을 괴고 보게 되면 그것은 참으로 얻기 어려운 일복의 청량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때 피로를 잊을 뿐 아니라 잠시 동안 근심을 잊고, 걱정을 잊고, 실로 흔히는 자기 자신까지를 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뜻하지 아니한 천래의 일장 연극에 입장료도 지불함이 없이 여기서 완전히 도취할 수 있으니, 이와 같은 우신의 신묘한 희롱에 어찌 우리는 법열을 느끼지 아니할 수 있으랴!
비란 원래 사람의 예단을 반발하고, 측후소의 존재 의미까지 의심케 하도록 졸지에 내리고 또 그치는데, 떠도떠도 다 하지 않는 교치한 맛이 있는 것이지만, 여름의 더운 날 같은 때에 난데없는 일진광풍이 돌연히 소낙비를 데리고 오면, 참으로 이 곳에서 우러나는 재미야말로 진지하다 할 수 있다. 천하의 행인은 뚝뚝 던지는 비의 기습에 크게 놀래어 잠시는 이 불온한 형세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문제는 극히 간단하므로, 곧 동분서주, 서로 머리를 부딪쳐 가면서 피할 장소를 구하여 배회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중에 혹은 물둠벙에 빠지는 신사를, 혹은 땅바닥에 미끄러지는 노인을, 혹은 치맛자락을 높이 껍어들고 달음질하는 숙녀를--이 하늘의 불의의 발작, 이 하늘의 기교한 즉흥시에 박수와 갈채를 아끼지 아니하고, 작약흔무하는 아해의 무리무리 속에 발견하기란 너무도 용이한 노력에 속한다. 이리하여 지극히도 황당한 수순이 경과한 뒤에 모든 불운한 행인이 그들의 불운한 몸을 집집의 벽과 벽에 꼭 붙임을 겨우 얻어서 천하는 오로지 한 곡조의 요란한 우성 속에 갇혀 고요히 움직이지 않을 때, 우리가 만일 자동차에 편히 앉아 곳곳에 불안과 불평을 숨기고 있는 평화한 거리거리를 지나게 되면--이거 또한 한없이 기껍지 아니한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간혹 집 문을 들어서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만 해도 감동하여 희열의 저을 금할 수 없지는 아니한가?
아까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대의 젊은 남녀가 어딘지 산보 가는 것을 보고 확실히 흥분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그렇잖아도 우울한 마음이 더욱 우울해짐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제 비가 돌연히 쾌청한 공기를 교란하고 있음을 보게 되니 벌써 우리는 그들에게 선망의 염을 일으킬 필요는 전연 없다. 그의 좋은 양복과 그의 고운 애인은 가련하게도 이 비에 쪽딱 젖고 말았을 것이 아니냐?
비는 참으로 비가 와야 해될 것이 없는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하나의 큰 위안을 제공하는 바 비근한 일례에 불과하지만-또는 세우가 비비하게 내려 도회의 포도를 걸레질하는 정도로 먼지를 닦아 낸 때 같은 햇빛보다도 포근하고, 부드럽고, 또 시원한 비를 차라리 맞고 다님이 특히 정서 깊음을 과연 누가 느끼지 아니하랴? 이런 때엔 빈 자동차가 승객을 찾음이겠지, 열을 지어 힘없이 거리 위를 완보함을 봄도 확실히 통쾌하다. 도회에 비가 내리는 기쁨은대강 이러한 것들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럼으로써 비에 대한 찬미는 한 개의 자명한 사실로서 당연히 승인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임이 또한 틀림없다. 그러니 여기서 사람은 도덕과 윤리의 이름에 있어서 나의 '우송'에 단연 반의를 표명할지도 모른다. 즉 이를 도덕가류의 의견에 의하면 우리가 비를 기뻐하는 것은 비 자체에 대한 순수 무잡한 희열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비에 의하여 피해를 입는 것을 즐기는 악의 속에 그 근본 동기를 둔다는 것이다. 엄격할 뿐인 윤리적 견지에서 보면 과연 그렇게 단순히 말하여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히 이 경우에 한해서는 도덕은 결국 무생명한 한 개의 이론에 불과한 감이 없지 않다. 무어라 하여도 인생의 엄연한 사실은 다른 사람이 길에서 삐적하고 미끄러지는 것을 보면, 또는 잘못하여 손에든 찻잔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면, 우리와의 이해 관계를 떠나서 어쩐지 그것은 까닭 없이 우습고도 즐거운 것을 항상 예증하여 주는 까닭이다.
우리가 마음이 나쁜 까닭으로써 웃는 것이 결코 아닌, 말하자면 인간 통유의 이러한 자연스러운 기쁨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인성 선악의 선천적 문제에까지 파고들어가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을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암만 도덕이 여기서 그렇지 않기를 명령하여도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이 비에 젖는 것을 보게 되면 어쩐지 자연히 유쾌하여지는 마음을 도저히 물리칠 수 없음을 어찌하랴! 비에 젖지 않을 수도 있는 경우에 비에 젖는 것이 실수인 것을 한번 긍정하여 보면, 이 실수를 실수로써 책하되 웃음으로써 임함은 차라리 더욱 아름다운 도덕이라 말할 수 있다. 비맞은 사람을 보고 일일이 슬퍼하는 것이 참된 윤리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은 원래 처음부터 도덕이 감히 용훼할 수 없는 초도덕적 문제로서 인간의 예술감에 그 좋은 판단을 맡김이 더욱 온당치나 않을까 한다.
도덕이 어찌 되었든 여하간에 우리는 비를 찬미치 않을 수 없는 자이지만, 물론 또 우리는 다른 사람이 비의 피해를 입은 것을 보고 그것이 즐거운 오직 한 개의 이유로서만 비를 찬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는 비 자체로서도 항상 아름다운 것인 까닭이다. 춘우를 몸에 무릅쓰며 거리를 거니는 쾌감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말하였거니와, 사실 홍진만장인 건조한 대지가 신선한 비를 가질 때 지상의 어떠한 것이 과연 기쁨을 느끼지 않을 자이랴! 정직하게 말하면 비를 미워한다는 도회인도 비가 내리면 이 신선하기 짝이 없는 자연에 흔히 숙였던 우울한 얼굴을 드는 것이다. 윤습한 광휘 속에 그들의 안색이 쾌활해질 뿐이 아니라, 도회의 먼지 낀 가로수와 흔히 책상 위에 놓인 우리의 목마른 화원도 이 진귀한 하느님의 물을 떨며 마시며, 공원에서만 볼 수 있는 말라붙은 초원도 건조무미한 점에서 문득 눈을 뜨는 것이다.
참으로 모든 사람이 비를 자모의 천애한 손같이 여기는 것은 너무나 떳떳한 일이다. 다른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기 특히 염염한 하일에 경험하는 취우의 은택을 망각하여 버릴 수는 없다. 천하가 일시에 얼음 먹는 듯한 양미-이는 참으로 우리들 가난한 자에 허락될 유일한 피서적 기회이다. 이러한 기쁨이 만일에 평범한 것이라면, 우리는 비의 위대한 낭만주의를 얼마든지 사상에 구하여 흥취 깊은 예를 들어 말할 수가 있으나, 그것은 이 곳에서는 약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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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가을엔 바람도 하늘빛
4
바람 부는 소리가 하루 종일 내 마음을 흔들던 날. 코스모스와 국화가 없으면 가을은 얼마나 쓸쓸할까. 이 가을에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길들여야지.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좋은 책을 읽는 즐거움도 행복한 것이지만 홀로 듣는 음악. 홀로 읽는 책을 좋아하는 것 못지않게 함께 일하는 이들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어야겠다. 때로는 나늘 힘들게 하고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한 사람들의 눈빛과 표정에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실수나 잘못을.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세심하게 읽어낼 수 있는 지혜를 지녀야겠다. 나이 들수록 온유와 겸손이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창 밖의 나무들을 바라본다.
5
`나무에선 돌이나 쇠붙이에서 느낄 수 없는 생명과 정서를 느낀다. 나무향기를 맡고 싶다. 나무향기를 내는 벗을 갖고 싶다. 나무향기로 남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정목일님의 <나무향기>라는 수필을 읽은 날. 나는 뜻밖에도 언니가 보내 준 향나무 원목 한 토막을 선물로 받았다. `이건 향나무 조각인데 책상에 두고 상본이나 십자고상 같은 것을 올려 놓으면 어떨까? 시상이 떠오를지도 모르지` 하는 메모와 함께. 그러고 보니 내 방 안에는 향나무 묵주, 향나무 필통, 향나무 연필들로 이미 향기가 가득하다.
6
어린아이가 아프다고 칭얼대는 모습은 밉지 않은데 어른이 되어 자기의 아픔을 이리저리 어떤 모양으로든지 보채는 모습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아픔은 숨기고 오히려 남을 걱정하는 이들의 순한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고 감동이 되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너무 자기 걱정만 앞세우고 자기 아픔에만 빠져 남을 돌보는 넓고 큰 마음을 잊고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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