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37호 》 2022.8.22 (음 7.24) 》 발송인:
nownforev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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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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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갈나무가 넘어질 때는 온 숲 속에 그 넘어지는 소리가 메아리치지만 수많은 도토리들은 미풍에 소리없이 떨어져 새로운 씨앗이 된다. ― 토머스 칼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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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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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도 없다
사람들은 과장하기를 좋아한다. ‘~도 없다’라는 말은 어떤 것의 부재를 과장하는 표현이다. 예컨대, 바라는 걸 안 하면 앞으로 받을 몫이 전혀 없다고 겁줄 때 쓰는 ‘국물도 없다’를 보자. 나는 어머니한테 ‘국보’라 불릴 만큼 국을 좋아했다. 줄기마저 흐물흐물해지게 끓인 미역국 국물을 유독 좋아했다.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서 깊고 그윽한 갯내를 함께 삼켰다. 그런데 ‘국물도 없다’고 하면서 국물을 가장 하잘것없는 음식 취급을 하니 이상했다. 여하튼 가장 하품인 국물도 없으니 굶으라!
‘~밖에 없다’는 말에도 과장이 섞여 있다. ‘너밖에 없다’고 하면 ‘너’ 말고는 아무도 없으며, ‘천 원밖에 없다’는 ‘천 원’ 외에 더 가진 돈이 없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안쪽에 뭐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도 없다’는 그것마저 없어서 더 극단적이다. ‘믿을 사람이 너 하나밖에 없다’고 하면 갑자기 둘이 한통속이 되지만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 ‘듣는 나는 뭐지?’ 묻게 된다. ‘하나밖에 없다’는 ‘유일함(1)’을, ‘하나도 없다’는 ‘전무(0)’를 뜻하니 숫자로는 한 끗 차이지만 말맛은 하늘과 땅 차이다.
고향 마을엔 사람 그림자도 없는데 과잉도시 서울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비좁고 아무것도 없는 민중들은 죽을 짬도 없이 바쁘다. 쥐뿔도 없는 사람들이 눈코 뜰 새도 없이 일해서 집 한 칸 사는 건 이제 꿈도 못 꾼다. 사람들은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을 위한 정부를 원한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설’을 쓰는 게 아니다. 과장된 진실이다.
그림책 읽어 주자
흔히 문자 없는 사회를 미개한 사회로 취급한다. 문자생활은 현대인에게 필수다. 문자를 통해 대부분의 지식을 알게 된다. 사건은 문자로 기록되어 시공간을 뛰어넘어 전달된다.
하지만 문자 사회에서도 문자에 기대지 않은 영역이 얼마든지 있다. 말소리, 몸짓, 노래, 구전, 그림 같은 것들이다. 개인도 태어나서 몇 년 동안 ‘문자 없는 시기’를 보낸다. 부모들은 아이가 빨리 글을 익혀 책을 줄줄 읽기 바라겠지만, 얻는 만큼 잃는 게 많다. 문자를 익히게 되면 세상에 대한 감각과 상상력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말소리에는 높낮이, 길고 짧음, 빠르기 등 문자가 담을 수 없는 요소들이 녹아 있다. 이런 요소들은 소통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문자는 말소리의 풍부한 차이를 숨기고 추상화하여 압축 건조시킨다. 문자는 말소리에 비해 진부하다.
아이에게 문자 없는 시기를 충분히 즐기게 해주는 특효약이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보는 게 아니라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책이다. 그림 위에 부모의 목소리가 얹힐 때 아이 머릿속에 이야기 하나가 펼쳐진다. 엉뚱한 생각과 질문이 많아진다. 읽어 주는 사람의 고유한 억양, 높낮이, 사투리, 멈칫거림, 헛기침, 훌쩍거림, 다시 읽기, 덧붙이기 등 갖가지 독특함과 실수와 변주가 행해진다.
동영상은 화면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딴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림책은 그림과 그림 사이에 간격이 있어서 이 간격을 이야기와 상상력으로 채운다. ‘딴 생각(상상)’을 해야 한다. 목소리에는 고정된 그림을 살아 꿈틀거리는 사건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림책 읽어 주기가 좋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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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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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김수영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刹那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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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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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破竹之勢)
- 대적(大敵)을 거침없이 물리치고 쳐들어 가는 당당한 기세.
《出典》'晉書' 杜預傳
위(魏)나라의 권신(權臣) 사마염(司馬炎)은 원제(元帝)를 폐한 뒤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무제(武帝:265-290)라 일컫고, 국호(國號)를 진(晉)이라고 했다. 이리하여 천하는 3국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오(吳)나라와 진(晉)나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다. 이윽고 무제는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두예(杜預)에게 출병을 명했다. 이듬해(280년) 2월, 무창(武昌)을 점령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격에 공략할 마지막 작전 회의를 열었다. 이 때 한 장수가 이렇게 건의했다.
"지금 당장 오나라의 도읍을 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곧 잦은 봄비로 강물은 범람할 것이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단 철군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찬성하는 장수들도 많았으나 두예는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지금 아군의 사기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破竹之勢]'요, 대나무란 처음 두 세 마디만 쪼개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 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버린단 말이오."
두예는 곧바로 휘하의 전군을 휘몰아 오나라의 도읍 건읍(建業 : 南京]으로 쇄도(殺到)하여 단숨에 공략했다. 이어 오왕(吳王) 손호(孫晧)가 항복함에 따라 마침내 진(晉)나라는 삼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통일했다.
옛날에 악의(惡毅)는 제서(齊西)의 한 번 싸음에서 승리하여, 강한 齊나라를 합쳤다.
지금 아군은 위세를 이미 떨치고 있다. 비유하면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 몇 마디를 쪼갠 다음에는 다 칼날을 맞아 쪼개어질 것이니, 다시 손을 댈 곳이 없다.
昔樂毅藉齊西一戰 以幷彊齊 今兵威己振 譬如破竹 數節之後 皆迎刃而解 無復著手 處也
【동의어】영인이해(迎刃而解), 세여파죽(勢如破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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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끈질긴 요청이 가져온 성공 - 패티 오브리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행복하다.-사도행전 20장 35절
내가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묻자, 제프가 대답했다.
"마우이 섬으로 갑시다. 아주 특별한 여행이 되도록 신경써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섬에서 가장 좋은 가장 아름다운 객실을 예약했다. 그리고 내가 제프에게 우리가 묵을 곳을 말하자, 그가 말했다.
"멋지구려. 그런데 24시간 룸서비스가 제공되겠지?"
나는 문의해 본 결과 24시간은 아니지만 새벽 2시까지 룸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해답을 얻었다. 우리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객실로 갔다. 제프와 나는 모두 입에서 화염을 내뿜을 정도로 목이 말랐기 때문에 미니 바를 여는 순간도 기다릴 수 없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미니바가 없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사소한 일로 이 특별한 여행을 망치지 말자고 결심했다. 그 정도쯤이야 잊어버리자. 나는 룸서비스를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직원 말이, 룸서비스 시간은 오전 6시부터 10시,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라는 것이다! 내 남편은 너무 불쾌했지만, 최소한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문제를 해결하겠노라고 말하고 지배인을 만나러 갔다. 나는 지배인에게 말했다.
"나는 하루에 350달러 객실에 묵으면서 룸서비스와 미니 바를 기대했어요. 그리고 당신네 선전 책자와 내가 문의했었던 측은 모두 그 두가지를 약속했단 말이에요."
그녀는 사과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답니다. 식당은 지금 이 시간에 문을 닫았고, 이 호텔에는 미니 바가 없어요."
나는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전후 사정을 얘기했다. 보통 사람들에게 룸서비스와 미니 바는 대단한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사전에 이미 장담을 받은 나로서는 당연히 그것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내 기대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내 남편은 나를 달랬다.
"여보, 우리는 신혼 여행중이야! 더 이상 신경쓰지 맙시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늦은 시간이에요. 지금은 잠자리에 들겠어요. 하지만 내일 아침에 찾아가서 총지배인에게 요청할 거예요. 지난 5년 동안 잭 캔필드와 일할 경험은 단 한가지 교훈을 내 머리 속에 새겨 놓았어요. 청하고, 청하고, 또 청하라! 지금 이 마당에 그들이 나를 어쩌겠어요? 나는 이미 미니 바도 없는 이 방에서 일주일이나 보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잖아요!"
다음날 아침, 내 남편은 나와 함께 총지배인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 총지배인은 호텔 소유주의 아들이었다. 나는 내 자신을 소개한 다음 문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나는 당신네 예약 담당자에게 룸서비스와 미니 바를 갖춘 객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했고, 그 사람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내가 여기에 와 보니, 그게 문제더라구요.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예요. 나에게 하루 24시간 음식과 음료수를 제공하는 방이에요."
총지배인은 그 호텔에서 냉장고를 갖춘 객실은 유일하게 바닷가의 빌라뿐인데, 그 요금이 자그마치 하루에 895달러라고 설명했다. 나는 대답했다.
"네, 그곳이 내가 원하는 곳이에요. 단, 지금 객실과 같은 요금으로 묵고 싶어요."
5분 후에 그는 사무실에서 나와 나에게 말했다.
"여기 빌라의 열쇠가 있습니다, 오브리 부인. 두 분께서 편안히 쉬시기를 바랍니다."
내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고 까무라칠 뻔했다. 나는 말했다.
"봐요, 잭이 옳았어요. 그저 청하고, 또 청해야 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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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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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4. 주왕의 위엄을 앞세우고 승전가를 부르다
영척의 변설 솜씨
그 곳에는 이미 진선공과 조장공이 와 있었다. 곧 주나라에서 대부 선멸이 이끄는 왕군(王軍)이 당도했다. 그들은 서로 회견하고 장차 송나라 칠 일을 상의했다. 그 때 영척이 앞으로 나서며 의견을 내놓았다.
"주공께서 천자의 명을 받들어 이제 모든 나라 제후를 규합했으니 위세로써 이길 생각은 마시고 덕으로써 이기도록 하십시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볼 때 굳이 군사를 진격시킬 것이 아니라 신이 재주는 없사오나 송나라에 가서 좋은 말로 타일러 일을 성취시키겠습니다."
제환공은 영척의 의견을 받아들여 크게 기뻐하며 명령을 내렸다.
"모든 군사들은 일단 진격을 멈추고 각기 영채를 세워 명령이 있을 때까지 병사들을 단속하여라."
영척은 조그만 수레를 타고 약간의 수행원만을 거느린 채 송나라 도성으로 갔다. 한편 송후는 영척이란 자가 와서 자신을 청했다는 전갈을 받고 대숙피에게 물었다.
"영척이란 자가 과인을 보자 하는데 그의 신분이 과연 어떤 인물인가?"
대숙피가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그는 소를 치던 시골 목자였다고 합니다. 이번에 제후가 새로 등용해서 벼슬을 주었다고 합니다. 달리 관중의 애첩이 천거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반드시 뛰어난 변설 솜씨가 있을 듯합니다. 그는 우리를 세 치 혀로 설복하려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말을 주공께서 듣고 계십시오. 만일에 그가 변설로 주공을 유혹하려 한다면 제가 허리띠를 흔들어 신호하겠습니다. 그 때 주공께서는 좌우 무사들에게 명하시어 그를 포박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시면 제후의 계책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송후는 대숙피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고 일단 영척을 불러 만나보기로 했다. 이윽고 영척이 들어오는데 큰 옷에 띠를 두르고 앙연히 들어와 송후에게 읍했다. 송후는 답례조차 없이 단정히 앉아 영척의 행동거지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영척이 갑자기 길이 탄식했다.
"위태롭도다 송나라여, 정말 위태롭도다."
송후가 깜짝 놀라 물었다.
"과인의 작위가 상공에 이르렀고, 백성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편안히 잠자는데 어찌 우리 송나라를 위태롭다고 하는가?"
"군후께서는 옛 주공(周公)과 비하여 어느 쪽이 더 어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공은 성인(聖人)이시라. 과인이 어찌 주공과 맞대 비할 수 있겠느냐."
"그 옛날 주공이 살아계셨을 때 주나라는 가장 강성했습 니다. 천하는 태평하고 사방의 오랑캐도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주공께서는 인재를 높이 알고 어진 선비를 잃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아직 천하는 매우 혼란스럽고 군웅들이 제각기 힘을 다투어 자랑하는데, 군후께서는 2대나 그 임금을 시살한 이 송나라를 계승하고 옛 주공의 법을 본받고자 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선비 앞에 몸을 낮추시어 오히려 선비들이 군후의 조당에 모이지 않을까 두려워하셔야 할 것이어늘 자기를 자랑하고 크게 높이어 어진 사람을 멀리할 뿐 아니라 이런 나그네마저 멸시하시니 비록 충언(忠言)이 있을지라도 어찌 군후에게 진정을 다해 말하리오! 이러고도 사직이 위태롭지 않은 나라를 저는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송후는 화들짝 놀라, 부지중에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과인이 군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군자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였소이다. 너무 책망마시오."
이 때 대숙피는 송후가 영척의 말에 빠져드는 걸 보고서 연신 허리띠를 흔들어 신호했다. 그러나 송후는 대숙피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선생이 장차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려오?"
영척이 대답했다.
"천자께서 권세를 잃으심에 따라 모든 열국 제후의 마음도 산란해져 임금과 신하 사이에 한계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즈음엔 임금을 죽이고 군위를 뺏는 일이 연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제후께서 이러한 무질서와 혼란을 보시다 못해 왕명을 받고 천자를 위해 열국의 모든 제후와 동맹하셨으니, 그 때 군후께서도 회에 참석하시어 비로소 송나라 군위를 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군후는 즉시 회에서 이탈하고 또 동맹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천자께서 군후의 처사에 진노하사 특히 왕신을 보내시고 제후에게 명하여 송나라를 치게 하신 것입니다. 군후는 지난날 이미 북행 땅에서 왕명을 배반했으며, 또 장차 왕군과 제 . 조 . 진 연합군에 항거하게 되었은즉 아직 싸우진 않았으나 이미 승부의 결말은 누가 보아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송후가 기가 죽어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의 의견은 어떠하시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군후는 폐백을 아끼지 마시고 제후와 회견하시고 동맹하십시오. 그러면 위로 주나라 신하로서의 예의를 잃지 않을 것이며, 아래로는 가히 제후와 기쁨을 나눌 수 있으니 단 한 명의 군사를 사용하지 않고도 송나라를 안정되게 할 수 있습니다."
송후의 굴복
송후는 미심쩍어 걱정했다.
"과인이 실수하여 회를 끝까지 안 보고 돌아왔기 때문에 이제 왕명을 받아 제후가 군사를 거느리고 왔으니 어찌 우리의 폐백을 받고 물러갈 리 있으리오."
"우리 제후는 관인 대도하사 사람의 허물을 생각하지 않으시며, 지나간 일을 끝까지 미워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그때 노나라가 맹회에 오지 않았건만 그 뒤 가(柯) 땅에서 제 . 노 양국이 동맹을 맺게 되자 제후는 지난날 빼앗았던 문양의 땅까지 노나라에 돌려줬습니다. 이에 비하면 군후는 북행의 맹회때 참석까지 하셨는데 어찌하여 제후가 폐백조차 안 받겠습니까."
"무엇으로 폐백을 삼으면 좋겠소?"
"한 다발의 포(脯)로 폐백하십시오. 반드시 귀물(貴物)을 보낼 필요까진 없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송후는 몹시 기뻐하고, 사자로 하여금 제군에게 가서 강화를 청하도록 했다. 대숙피도 영척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물러나갔다. 이에 송나라 사자는 제환공에게 가서 백옥 열 쌍과 황금 천 일을 내놓으며 말했다.
"지난 일을 잊어버리시고 동맹하십시오."
제환공이 대답했다.
"천자의 분부로 하는 일인데 어떻게 과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오. 이는 반드시 왕신이 천자께 가서 모든 것을 고한 후라야만 결정할 수 있소."
제환공은 송나라가 바친 금과 옥을 선멸에게 주어 주왕실의 천자께 전하도록 했다. 선멸이 제환공에게 속삭였다.
"진정 군후께서 송나라를 용서하신다면 그대로 천자께 가서 아뢰겠습니다."
제환공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다시 송나라 사자를 불러 이렇게 분부했다.
"그럼 송후가 직접 주천자에게 가서 수례(修禮)를 바치고 왕에게 이번 과오를 씻어 주십사 하고 청하시오. 연후에 맹회할 기일을 통지하겠소."
송나라 사자는 은혜에 감사하며 공손히 절을 하고 돌아갔다. 한편 왕군을 이끌고 온 대부 선멸은 제환공이 항시 왕실을 앞세우는데 흡족하여 역시 제환공에게 크게 감사한 후 낙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진 . 조 두 나라 군후도 제환공과 우호를 돈독히 하고 각각 본국으로 돌아갔다. 제나라 군사들은 이렇게 하여 마침내 승전가를 부르며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제환공도 몹시 기뻤다. 화살 한 대 안 쏘고 송나라의 항복을 받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리오. 또한 새로이 얻은 대부 영척이 뛰어난지라 더욱 귀국길이 즐거웠다. 그런데 정작 영척을 천거하여 큰공을 세운 정승 관중은 그다지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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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조선의 영웅 - 심훈
우리집과 등성이 하나를 격한 야학당에서 종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집 편으로 바람이 불어 오는 저녁에는 아이들이 떼를 지어 모여가는 소리와, 아홉 시 반이면 파해서 흩어져 가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틀에 한 번쯤은 보던 책이나 들었던 붓을 던지고 야학당으로 가서 둘러보고 오는데 금년에는 토담으로 쌓은 것이나마 새로 지은 야학당으로 가서 둘러보고 오는데 금년에는 토담으로 쌓은 것이나마 새로 지은 야학당에서 남녀 아동들이 80명이나 들어와서 세 반에 나누어 가르친다. 물론 5리 밖에 있는 보통 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하는 극빈자의 자녀들인데 선생들도 또한 보교를 졸업한 정도의 청년들로, 밤에 가마니때기라도 치지 않으면 잔돈 푼 구경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네들은 시간과 집안 살림을 희생하고 하루 저녁도 빠지지 않고 와서는 교편을 잡고 아이들과 저녁내 입씨름을 한다. 그 중에는 겨울철에 보리밥을 먹고 보리도 떨어지면 시래기 죽을 끓여 먹고 와서는 이밥이나 두둑이 먹고 온 듯이 목소리를 높여 글을 가르친다. 서너 시간 동안이나 칠판 밑에 꼿꼿이 서서 선머슴 아이들과 소견 좁은 계집애들과 아귀다툼을 하고 나면 상체의 피가 다리로 내려 몰리고 허기가 심해져서 나중에는 아이들의 얼굴이 돋보기 안경을 쓰고 보는 듯하다고 한다. 그러한 술회를 들을 때, 그네들을 직접으로 도와 줄 시간과 자유가 아울러 없는 나로서는 양심의 고통을 느낄 때가 많다.
표면에 나서서 행동하지 못하고 배후에서 동정자나 후원자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곁의 사람이 엿보지 못할 고민이 있다. 그네들의 속으로 벗고 뛰어들어서 동고동락을 하지 못하는 곳에 시대의 기형아인 창백한 인텔리로서의 탄식이 있다. 나는 농촌을 제재로 한 작품을 두어 편이나 썼다. 그러나 나 자신은 농민도 아니요 농촌 운동자도 아니다. 이른바, 작가는 자연과 인물을 보고 느낀 대로 스케치판에 옮기는 화가와 같이 아무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자유로운 처지에 몸을 두어 오직 관조의 세계에만 살아야 하는 종류의 인간인지는 모른다. 또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현실 세계에 입각해서 전적 존재의 의의를 방불케 하는 재주가 예술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 위에 기름처럼 떠돌아다니는 예술가의 무리는, 실사회에 있어서 한 군데도 쓸모가 없는 부유층에 속한다. 너무나 고답적이요 비생산적이어서 몹시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시각의 어느 한 모퉁이에서 호의로 바라본다면 세속의 누를 떨어 버리고 오색 구름을 타고서 고왕독맥하려는 기개가 부러울 것도 같으나 기실은 단 하루도 입에 거미줄을 치고는 살지 못하는 유약한 인간이다. '귀족들이 좀더 젠체하고 뽐내지 못하는 것은 저희들도 측간에 오르기 때문이다.'라고 뾰족한 소리를 한 개천의 말이 생각나거니와 예술가라고 결코 특수 부락의 백성도 아니요, 태평성대의 일민도 아닌 것이다.
적지않이 탈선이 되었지만 백 가지 천 가지 골이 아픈 이론보다도 한 가지나마 실행하는 사람을 숭앙하고 싶다. 살살 입살 발림만 하고 턱 밑의 먼지만 톡톡 털고 앉은 백 명의 이론가, 천 명의 예술가보다도 우리에게 단한 사람의 농촌 청년이 소중하다. 시래기 죽을 먹고 겨우내 '가갸 거겨'를 가르치는 것을 천직이나, 의무로 여기는 순진한 계몽 운동자는 히틀러, 뭇솔리니만 못지않은 조선의 영웅이다. 나는 영웅을 숭배하기는커녕 그 얼굴에 침을 뱉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농촌의 소영웅들 앞에서는 머리를 들지 못한다. 그네들을 쳐다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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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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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흰구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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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성을 내는 것은 늘 이유가 있음을 정당화시키고 남이 자기에게 성을 내는 것은 사소한 부분이라도 못 견디며 억울해 하는 경향이 있다.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적일 때가 많다. 나이가 들수록 온유해지기는커녕 그 반대가 되어가는 모습을 나 자신에게서도 본다. 오늘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 `신경질 난다`는 말을 혼자말로 여러 번 하며 나 스스로 놀랐다. 갈수록 인내심도 없고 너그러움보다는 옹졸함이,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이 더 크게 자리를 잡아 가니 큰일이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더라도 결코 막말을 해서는 안되는데... 용서, 관용, 인내, 이런 것들이 나이들수록 더욱 어려워진다면 나는 분명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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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경험한 작은 사랑이 세상에 나가 큰 사랑으로 넓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것이 결국은 '내 사랑의 완성이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는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던 양귀자님의 소설 <천년의 사랑>을 여행중에 읽었다. 소설가들의 상상력은 항상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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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안동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길이 매우 아름다웠다. 세상 다른 곳에도 빼어난 아름다움이 많이 있을테지만 - 아주 작아도 구석구석 우리 나라 고유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곳을 여행할 때마다 새롭게 느끼며 우리 나라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해외에 다녀온 이들이 가끔 "한국보다는 외국이 더 살기 편하다" "고국에 잔뜩 기대를 하고 왔는데 볼 것이 없다."고 가볍게 말할 때는 "그래요." 하면서도 매우 서운한 마음이 들곤 했다. 특별히 애국자가 아니더라도 내가 태어난 모국을 끔찍이 위하고 사랑하는 것이 도리다. 그래서 그의 단점과 허물을 남의 탓을 하며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 구성원인 우리 각자가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외국어보다 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 역시 애국이 아닐까? 젊은이들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국어 맞춤범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틀린 것을 보면 안타깝다. `우리 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로 시작하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읽어야 할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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