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35호 》 2022.8.20 (음 7.23)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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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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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돈을 꾸려거든 먼저 친구와 돈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필요한지 결정할 것.
― A.H.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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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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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과 여자
습관은 무섭다. 한자 ‘女’를 ‘계집 녀’라고 배워서 아직도 이 글자를 보면 ‘계집’이란 말이 튀어나온다. 초등학생용 한자책을 보니 이제는 ‘여자 녀’로 바뀌었다(‘어미 모’, ‘아비 부’도 ‘어머니 모’, ‘아버지 부’로 바뀌었고, ‘지아비 부’도 ‘남편 부’라 한다). ‘계집’을 ‘여자’로 바꾼다고 성차별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시대 변화를 반영하고 차별 극복 의지 정도는 보여준다. 배제가 아닌 평등의 뜻풀이가 필요한 이유이다.
말 나온 김에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에 ‘계집’이란 말이 들어간 단어를 찾아보았다. 사전 만들 당시 성차별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노비: 사내종과 계집종’, ‘더벅머리: 웃음과 몸을 팔던 계집’, ‘뜬색시: 바람난 계집’, ‘민며느리: 며느리로 삼으려고 관례를 하기 전에 데려다 기르는 계집아이’, ‘본서방: 샛서방이 있는 계집의 본디 남편’, ‘여우: 하는 짓이 깜찍하고 영악한 계집아이’, ‘요부: 요사스러운 계집’. 세상은 바뀌는 데 사전은 제자리걸음이다. 모두 ‘여자’로 바꾸면 훨씬 현대적(!)이다.
‘사내’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지만, 엄연히 둘은 위계가 다르다. ‘사내’는 “‘남자’나 ‘남편’을 이르는 말”이지만, ‘계집’은 “‘여자’나 ‘아내’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낮잡아 본다’는 것은 시선의 높낮이가 있다는 뜻일 텐데, 그 차이를 줄이는 게 말의 진보다(‘사내’도 ‘남자’로 바꾸는 게 낫다).
끝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지만 시간을 감각할 수는 없다. 감각할 수 없으면서도 알고 싶으니 눈에 보이는 걸 빌려다가 쓴다. 시간을 움직이는 사물로 비유하는 게 제일 흔한 방법이다. 하루가 ‘가고’, 내일이 ‘다가오고’, 봄날은 ‘지나가고’, 시간은 ‘흐르고’, 휴가를 ‘보낸다’는 식이다.
공간을 뜻하던 말을 시간에 끌어와 쓰기도 한다. 그중 하나가 ‘끝’이다. 애초에 ‘끝’은 ‘칼끝’, ‘손끝’처럼 물건의 맨 마지막 부분을 나타낸다. 영화를 끝까지 보거나 책을 끝까지 읽는다고 할 때도 영화나 책의 맨 나중 위치를 말한다. 조용필이 항상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은 ‘끝’을 어떤 일의 클라이맥스로 여기는 우리의 성향을 반영한다. ‘오랜 수련 끝에 달인의 경지에 오르다’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처럼 ‘끝’이 앞일과 뒷일을 잇는 ‘문지방’ 구실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최초(원조)만큼이나 ‘최종’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시간에 처음과 끝이 있을 리 없지만, 사건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입학식과 졸업식을 거창하게 치르듯이 과정보다는 처음과 끝을 중심으로 기억한다. 개인이 사건과 역사라는 말 위에 올라타면 마른 나뭇가지처럼 삶은 ‘시작’과 ‘끝’의 연속으로 또각또각 끊어진다. 생로병사의 외줄을 타는 인간은 특히 ‘끝’에 주목한다. 죽음의 방식을 삶의 성패로 여긴다. 종료의 의미로 ‘끝이 나다’라고 하는데, 싹이 나고 털이 나듯이 끝도 ‘난다(!)’. ‘끝’을 ‘없던 것의 생성’으로 보는 것이다. 보통은 생의 끝이 불현듯 다가오는데, 누구는 의지적으로 끝을 냈다. 삶, 정말 모를 일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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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나라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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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전현차랑(永田鉉次郞) - 김수영
모두 별안간에 가만히 있었다
씹었던 불고기를 문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아니 그것은 불고기가 아니라 돌이었을지도 모른다
神은 곧잘 이런 장난을 잘한다
(그리 흥겨운 밤의 일도 아니었는데)
사실은 일본에 가는 친구의 잔치에서
伊藤忠商事의 신문광고 이야기가 나오고
國境노 마찌 이야기가 나오다가
以北으로 갔다는 永田鉉次郞 이야기가 나왔다
아니 金永吉이 이야기가
나왔다가 들어간 때이다
내가 長門이라는 女歌手도 같이 갔느냐고
농으로 물어보려는데
누가 벌써 재빨리 말꼬리를 돌렸다……
神은 곧잘 이런 꾸지람을 잘한다
<1960.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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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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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북두(泰山北斗)
① 태산과 북두성.
② 세상 사람으로부터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出典》'唐書' 韓愈傳贊
唐나라 때 4대 시인(四大詩人)의 한 사람으로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굴지의 명문장가로 꼽혔던 한유(韓愈 : 字는 退之)는 768년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서 태어났다. 그는 9대 황제인 덕종(德宗 : 779-805) 때 25세의 나이로 진사(進士) 시험에 급제한 뒤 이부상서(吏部尙書)까지 되었으나 황제가 관여하는 불사(佛事)를 극간(極諫)하다가 조주자 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천성이 강직했던 한유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좌천, 파직(罷職) 당했다가 다시 등용되곤 했는데 만년에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역임한 뒤 57세를 일기로 상을 떠났다.
이처럼 순탄치 못했던 그의 벼슬살이와는 달리 한유는 '한유(韓柳)'로 불렸을 정도로 절친한 벗인 유종원(柳宗元 : 字는 子厚)과 함께 고문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하는 등 학문에 힘썼다. 그 결과 후학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에 대해《唐書》'韓愈傳'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당나라가 흥성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을 가지고 여러 학저들의 스승이 되었다. 한유가 죽은 뒤 그의 학문은 더욱 흥성했으며, 그래서 학자들은 한유를 '泰山北斗'를 우러러보듯 존경했다.
自愈沒 其言大行 學者仰之 如泰山北斗云.
【준 말】태두(泰斗), 산두(山斗)
【동의어】여태산북두(如泰山北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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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단 한마디 말이 가져온 성공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은 모두 원대한 목표를 지녔다. 그들은 너무 높아서 때때로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초점을 맞춘다. - 오리슨 스위트 마든
존 앳사라프 인디아나 리맥스 사장
내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지금의 동업자들에게 나를 동업자로 만들어 달라고 했던 말이 내 일생 일대 최고의 요청이다. 그들이 말했다.
"그게 정확하게 무슨 뜻이오?"
나는 말했다.
"나는 기꺼이 일하고, 창조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사업 확장을 원하고, 나는 그 책임을 맡을 수 있습니다."
그 요청은 동업 관계와 인디아나 리맥스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1988년에 약 천 5백만 달러 어치의 공사 수주 한 건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1994년에는 일억 5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16,500개의 주택을 팔았다. 95년의 목표액은 2억 달러이다. 그 한가지 요청은 나를 백만장자로 만들어 줬다.
한 통의 전화가 가져다 준 행복 - 킴벨리 웨일
1995년 5월 31일 나는 일리노이 주의 한 여성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1년 전 그녀는 내가 근무하는 잭 캔필드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서 로저 크로포드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로저 크로포드는 손가락이 단 세 개밖에 없는 몸으로, 뛰어난 동기 부여 강사이자 저자가 된 인물이었다. 나는 그녀의 편지에 감동받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여기 그 편지의 일부를 공개한다.
킴에게
...(생략) 나는 작년에 당신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로저 크로포드의 연락처를 물어봤던 사람입니다. 당신은 매우 친절하게 그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찾아 줬어요. 나는 그 이후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려 드리고자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나는 '경력 쌓기 세미나'에 참석한 후에 '자기 존중법'이라는 테이프를 주문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전에는 한 번도 자기 발전 테이프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내가 그것을 주문하고 듣기 시작했던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다음 날 나는 아동 복지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입양 신청서를 갖고 있는데, 혹시 손가락이 없는 아이를 고려해 보겠느냐는 전화였습니다. 21개월 된 이고르는 태어날 때부터 양손에 손가락 하나씩과 양쪽 발에 발가락 두 개씩 달려 있었답니다. 그때부터 나는 아주 열심히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주님의 인도하심과, 내가 워낙 우둔하므로 주님이 내 귀에 대고 크게 소리쳐 달라고 청했습니다.
...(생략) 나는 테이프를 듣던 중에 로저 크로포드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생략) 그는 비정상인 손으로 생활하는 삶에 조언해 줄 수 있는 적격자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 나는 주님이 내 귀에 대고 크게 소리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만물은 우주의 창조주께서는 그 당시 나에게 그 테이프를 듣게 하심으로써 블라그래드의 고아원에 있는 한 소년이 미국의 우리 가족의 구성원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생략)그 다음에 로저 크로포드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전화는 불통이었고, 나는 그 도시의 전화국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전화국은 친절하게도 번호부를 다 뒤진 끝에야 로저 크로포드의 번호를 찾아 줬습니다. 나는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한 여성이 전화를 받자, 그곳이 로저 크로포드 댁이냐고 물었어요. 그녀는 그곳이 그의 부모 댁이라고 답변하더군요. 그녀는 바로 로저 크로포드의 어머니였어요! 우리는 오랫동안 통화했고, 그녀는 나의 용기를 북돋아 줬습니다. 아무래도 주님이 그 대화를 베푸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여러 주일에 걸쳐 기다린 끝에 아이의 의료 진단서와 사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소년이 우리 가정에 딱 맞는 아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그 즈음, 아이오와 데스모와인에 사는 5살 짜리 소녀가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우승하는 사건이 벌어졌답니다. 그 일화가 지방 신문에 실린 이유는 호프 양이 양손에 손가락이 하나씩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우리 어머니는 데스모와인에 사셨고, 그 기사를 오려 나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나는 호프 양의 어머니에게도 연락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점에서 호프 양이 그리기 대회에서 일등의 영예를 차지한 일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보이지 않아요.)
5월 14일 우리는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올랐고, 5월 27일 이고르는 앤드류가 되었습니다. 이제 앤디가 우리 가족이 된 지 거의 일년이 되었습니다. 앤디는 행복하고, 우리 가족을 위한 완벽한 아기입니다. 나는 그 아이를 자식으로 맞은 지 2,3주일이 지나자 앤디가 장애아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가 할 수 없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앤디는 5살 짜리 누이와 잘 지내고, 제 누이는 그를 무척 사랑한답니다. 킴, 우리가 한 가족이 된 계기를 마련해 줬던 당신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낯모르는 타인에게 진정한 친절을 베풀어줬어요. 신이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홀리 케이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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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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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3. 군후가 오시어 영척을 반기니(1/2)
관중의 애첩, 청
관중은 제환공에 앞서 송나라로 떠나면서 수레에다 청이란 여인을 데리고 탔다.원래 제환공은 어디고 멀리 출행할 때는 궁중 희빈을 수레에 태우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관중도 출행할 때가 되면 곧잘 그녀를 자기 수레에 태워 데리고 나섰던 것이다. 이는 제환공의 호색을 눈가림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것이기도 했지만, 관중에게 청은 뛰어난 참모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원래 종리(鐘離) 땅 출신으로 고금의 역사와 인물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지혜가 출중했다. 관중은 그녀를 첩으로 맞이하여 몹시 아끼고 귀여워했다. 그날 일꾼을 거느리고 임치성 남문을 나선 관중이 약 30여 리쯤 진군하여 요산(瑤山) 아래에 있는 들판에 이르렀을 때였다. 마침 한 시골 사내가 짧은 바지에 홑옷을 입고 부서진 삿갓을 쓰고 산 밑 둔덕에서 소를 놓아 먹이며 소뿔을 두드리면서 무슨 노래인가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관중은 수레를 타고 지나가며 그 사람을 살펴 바라보니 보통 사람이 아닐 성싶었다. 이에 관중은 수레를 멈추고 사람을 시켜 술과 음식을 그에게 보내 예를 갖추어 대접하라고 일렀다. 그런데 그 시골 사내는 가져간 술과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말했다.
"내 중부를 만나 뵙고자 하노라."
음식을 갖다준 사자가 대답했다.
"우리 상군(相君)의 수레는 이미 지나가 버렸소이다."
시골 사람이 머리를 끄덕인 뒤 물었다.
"내 할말이 있으니 상군에게 전해 줄 수 있겠소?"
"무슨 말이오?"
그러자 이 시골 사람이 단 한마디를 전해달라고 말했다.
"넓고 넓도다. 백수여!"
이 말을 듣고 사자가 급히 관중의 수레를 뒤쫓아갔다. 그리고 사자는 관중에게 시골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을 그대로 옮겨 전했다. 관중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청에게 물었다. 그녀가 아뢰었다.
"첩이 듣자오니 옛날 시(古時)에 백수시(白水詩)란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에 보면,
넓고 넓도다 백수여
많고 많은 송사리 떼로구나
군후가 오시어 나를 부르니
내 장차 자리에 앉으리라
하였은즉, 그 시골 사람은 자신의 재능있음을 은연중 밝히며 벼슬 자리를 찾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관중은 청이 하는 이 말을 듣자 깨닫는 바가 있어 즉시 그 자리에 수레를 멈추게 하고 사람을 시켜 백수시를 전한 그 시골 사람을 불러오도록 했다. 시골 사람은 그 때 소를 몰고 집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사자가 와서 전하는 말을 듣자, 소를 놔두고 관중을 만나기 위해서 사자를 뒤따라왔다. 그는 사자를 따라와 관중의 수레 앞에 왔음에도 읍을 할 뿐 절하지 않았다. 관중이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서 먼저 물었다.
"뉘시오?"
"나는 위나라 출신으로 성은 영(寧)이며 이름은 척(戚)이라 하오. 관정승께서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글하는 선비를 예의로써 대한다 하기에 항상 사모하는 차라, 그래서 산 넘고 물 건너 제나라로 왔다가 요행히 이 곳에서 관정승의 모습을 뵙게 되었으니 소원을 이뤘구려. 나야 소 먹이는 시골 목자에 불과하오."
관중은 그 사람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았다. 영척의 대답은 청산유수처럼 막히는 데가 없었다. 관중이 크게 감탄했다.
"영걸이 진흙길에서 곤욕을 당하고 계시니 만일 이끌어 주는 자가 없으면 어찌 스스로 그 참다운 재질을 발휘할 수 있으리오. 우리 주공께서 지금 군사를 거느리고 뒤에 오시니 수일 안으로 이 곳을 지나실 것이오. 내 서신 한 통을 써서 그대에게 주리니 그대는 이 곳에서 기다렸다가 주공이 지나실 때 이 서신을 바치고 배알하시오. 우리 주공께서 반드시 그대를 중히 쓰시리라."
관중은 말을 마치자 곧 서신을 한 통 써서 봉한 뒤 영척에게 내주고 떠나갔다.
영척, 대부가 되다
관중을 먼저 떠나 보내 진 . 조 두 나라 군세와 합세하게 한 후, 제환공은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대군(大軍)을 통솔하여 며칠이 지나 임치성을 출발했다. 제환공도 앞서 간 관중과 마찬가지로 요산 아래를 지나게 되었다. 그 때 한쪽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滄浪之水白石爛
中有鯉魚長尺半
生不逢堯與舜禪
短褐單衣裳至
從昏飯牛至夜半
長夜漫漫何時旦
푸른 물에 횐 돌은 현란하게 빛나는데
그 속에 길이 척반(尺半)의 잉어가 노닐도다
아직 요순의 선위를 만나지 못하여
짧은 바지 홑옷이 종아리를 가리지 못했도다
저녁 무렵부터 소를 먹여 한밤중에 이르렀으나
밤은 길고 더디어 언제라야 아침이 될 것인가
제환공이 바라보니 짧은 바지에 홑옷을 입은 시골 사람이 부러진 삿갓을 쓰고 길가에 서서 쇠뿔을 두드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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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설의식편" 설의식(1900~1954)
평론가, 언론인. 호는 소오. 함남 출생. 일본 니혼 대학 사학과 졸업. 동아 일보 편집 국장, 부사장, 새한 민보 사장 역임. '일장기 말소 사건' 당시의 동아 일보 편집 국장이었던 설의식은 민족주의자였으며 그의 날카로운 비평문 속에는 민족주의적인 사관과 지사풍의 자세가 담겨 있다. 그의 필치에는 독자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며 청신하게 각성시켜 주는 매력이 있다. 사물을 관조하되 근원으로부터 꿰뚫는 눈이 있었으며 거기에 유머와 위트까지 곁들여 그를 뛰어난 에세이스트로 빛나게 하였다. 수필집으로 "해방 이전", "화동 시대" 등이 있으며 '유관순 추념문'이 유명하다.
수천석두
중학 시대의 도화, 습자는 으레 을이었다. 그만큼 나는 그림과 글씨에 재주가 없었다. 재주는 없었으나, 취미는 또 무던하여서 서, 화를 즐겼다. 기능의 부족을 감상으로써 보충하려는 심산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와 같은 심경으로 그림을 모았다. 원래 힘 부족이라 고급품은 생염도 못 하였고 그저 너저분한 고물상을 뒤졌을 뿐이다. 그나마도 만만한 것은 또 구복을 위해서 팔기도 하였다. 두제의 문구가 남아 있는 현판 중의 하나이니 추사의 글씨다. 이것만은 팔 수가 없어서 서재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글씨 때문만이 아니라, 그 내력에 있어서 심금에 울리는 귀중한 마디가 있는 까닭이다. 한문이나마 이 글을 쓰는 핑계도 여기에 있다. 수천석두--물이 돌머리를 뚫는다. 이 문구의 출현은 함경도가 본향이 아닐까 싶다. 내 조상과도 관련이 있는 듯싶어서 유다른 감흥을 느끼는 것이다. 이유는? 그 유래를 풀기 위하여 이야기는 옛날로 올라간다.
'문불과장의요, 무불과첨사'--서북인에 대한 이 같은 악정을 뒤집기 위해서 일어선 홍경래란은 누구나 다 아는 이조사상 뚜렷한 자취다. 옛날에는 역적으로 몰았거니와, 오늘에 있어서는 시대적 감각에 피가 통하는 혁명의 선구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닌 번거롭게 따질 필요도 없겠다.
이 혁명의 풍운아가 동지를 얻으려고 서북을 유력하여 관북에 이르렀다. 함북과 함남 경계선에는 마천령이란 산이 있었다. 그 산상에 지었다고 전하는 시에 '마천령상파운좌, 만학천봉차제조'
마천령 꼭대기에 구름을 헤치고 앉았으니 만학천봉이 차례로 조회한다.
시구에 나타난 그의 심혼에는 이미 제왕적 기백이 보였던 것이다. 그는 무용뿐이 아니라 시문에도 이같이 능숙하여 곳곳에 심회를 남겼던 것이다.
함남의 수부, 함흥에는 반룡산 기슭으로 흐르는 성천강이 있으니 '함흥차사'로 이름 있는 함남의 큰 강이다. 이 반룡산 꼭대기에 앉아서 지은 시-- '산욕도강강두립, 수난천석석두회'
산은 강을 뛰려고 강머리에 섰는데, 물은 돌을 뚫기 어려워 돌머리를 돌더라.
제1구는 붕정을 달리는 의취가 있으나 제2구 '난'가에 이르러 이미 지기가 부족하였다. 이는 실패가 암시된 일종의 언참이기도 하였다. '수난...' 대신에 '수장천석-물이 장차 돌을 뚫으려고...' 이렇게 되었다면-그 같은 시가 튀어나올 수 있도록 그의 저력이 절대하였다면 성공하였을 것이라고 후세의 평은 애달파하는 것이다.
이 사실의 확, 불확은 모르겠다. 그러나 함남 주읍에는 널리 퍼진 전설이니, 관북 지방에서 유배 생활을 겪은 추사는 이 글을 따서 이 글씨를 썼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굴러서 오늘에 내 서재를 단속하고, 그리고 나로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한 것이다.
'수천석두'-물이 돌을 뚫는다. 아마 이것은 '불능'에 속할 것이다. 맹자는 '협태산이초북해'를 불능의 일례로 들었다. 난중의 난사를 가리켜 '하늘의 별따기'라고 우리의 속언은 전하여 온다. '수천석두'도 그만 못지않게 지난사요 불능사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말'은 있을 수 있다. 그 같은 '의욕'과, 그 같은 '신념'과, 그 같은 '용기'는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함동서구, 각축오대주'-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없으나, 이와 같은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1차 혁명은 '동자군'의 피로써 계승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의욕이 있어도 되기가 어려운 것이 세상사거든, 하물며 당초부터 의욕도 없음이랴? 가능, 불가능의 수판만 따져 가지고야 어디서 용기가 생길 것이냐? 가능하면 하고 가능치 못하면 그만둔다--이와 같은 심법으로야 무엇이 얻어질 것이냐? 얻어진들 몇 푼짜리가 될 것이냐?
'수천석두!' '수난천석두회'가 아니라 '수장천석두회' 그렇다! 의욕과, 신념과, 용기를 가지자. 희망으로 맞아야 할 신춘에 이와 같은 희망을 가지자. '수천석두'의 희망을 가지자. 얼마나 어려운 일인고! 그러나 또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일 것인고! '수천석두!' 아침 저녁으로 이것을 바라보는 나는 저절로 젊어지는 것이다. 늙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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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속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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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흰구름 단상
6
미국 오하이오에서 마종기 시인이 보내 준 두권의 시집. <그 나라 하늘빛>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여러 번 읽었다. `바람의 말` `나비의 꿈` `비오는 날` `우화의 강`은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시들이다. 평범한 일상의 삶. 남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들에서 그토록 깊고, 절제되고, 따뜻한 시를 끌어낼 수 있는 시인의 눈과 마음을 한껏 부러워했다. 장미꽃 우표가 붙은 그의 편지도 시만큼이나 아름답고 따뜻하다. 어느 성당 기공식에서 기념 삽질을 하며 흙을 붓다가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왈칵 눈물이 나더라는 이야기도 했다. 아동문학가로 널리 알려진 그의 아버지 마해송 씨의 동화 `모래알고금` `앙그리께`를 밤새워 읽던 어린 시절의 추억도 새롭다.
7
`세상 어디엔가
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골목길과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던 꽃밭이
숨어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희망적인 일이겠니
세상 어디엔가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두근거려지는 일이겠니!`
나태주 시인의 <사랑이여 조그만 사랑이여> 라는 시집 속의 모든 말들은 모두 깨끗하고 아름답다. 비오는 날, 숲의 향기를 맡으며, 새소리를 들으며 이 시집을 읽으면 사슴 닮은 눈을 지닌 옛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늘 좋은 시를 쓰고 싶다. 어쩌다 시상이라도 떠오르면 그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지에 적어서 베개 밑에 깔고 자곤 한다. 자다가도 생각이 나면 적어 놓으려고, 그리고 새로 솟은 생각을 더 깊이 익혀 두고 싶어서..., 남들은 단 몇 분 만에 읽어 버리고마는 짧은 시라도 쓰는 이에게 그것은 하나의 커다른 기다림이고 인내의 열매이다.
8
`우리들보다 더 힘들게 살면서도
언제나 우리들보다 더 먼저 용서하는 새들`
`가벼운 것일지라도
새들은 가끔씩 깃털을 버리는가 보다
버릴 것은 버리면서
가볍게 하늘을 나는가 보다`
권영상님의 새들에 대한 시 몇 구절을 새소리 들으면서 읊어 보았다. 최근에 작가로부터 받은 동시집 <아흔아홉 개의 꿈>의 갈피마다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시어들. 그의 동시들은 내가 가장 많이 편지나 카드에 인용하는 시이기도 하다. 오늘은 고운 꽃다발을 선물로 받아 마침 먼 나라에서 수녀원을 방문한 손님에게 드렸더니 매우 기뻐하였지. 결국 선물은 돌고 도는 것,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만을 위해서 꽉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좀 아까운 생각이 들더라도 더 필요한 이에게 선뜻 내어 놓을 수 있는 선선함이야말로 인색한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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