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27호
2022.8.12 (음 7.15)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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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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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아내란 완벽한 남편을 기대하지 않는 아내. ― 무명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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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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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된 기억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애가 닳고 약이 올라 그 단어 주변을 계속 서성거린다. 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입에 굴렸다가 뱉어내고, 비슷한 뜻의 표현을 되뇌면서 추격한다. 가리키는 대상이 구체적이고 협소할수록 더 빨리 사라진다. 그래서 이름(고유명사)을 가장 먼저 까먹는다. 그다음이 일반명사, 형용사이고 동사가 마지막으로 사라진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머리에 구멍이 숭숭 나고 있고 내 안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챈다. 어딘가 막히고 끊어지고 사라져 가고 있다. 늙는다는 건 말을 잃는 것. 우리 어머니도 말년에 말을 잃어버렸다. 말동무가 없던 게 큰 이유였지만 스스로를 표현할 힘도 잃어버렸다. 나도 단어를 잃어버림과 맞물려 점점 완고해지고 있다. 완고하다는 건 약해졌다는 뜻.
일반적으로 실어증의 원인을 ‘망각’에서 찾지만, 프로이트는 정반대로 해석한다. 실어증은 망각이 아니라 ‘심화된 기억’이라는 것이다. 특정 시기에 대한 기억만 강렬하게 남고 나머지는 사라진 결과이다. 언어능력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람은 같은 말을 눈치껏 달리 표현하거나 고친다.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기억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직조한다. 말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은 고체처럼 하나의 기억에 사로잡혀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한다. 백오 세의 우리 할머니가 ‘○○는 왜 안 와?’, ‘우리 집엔 언제 가?’라는 말을 한자리에서 수십 번 반복하는 것도 그의 기억에 사람과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인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기억에는 어떤 말이 인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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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다. 마스크 없이 버스 타기 꺼림칙하고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거리는 스산하고 사람들은 흩어졌고 형이 죽었다.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고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바쁘다. 일이 닥치고 나서야 ‘여기는 어디?’라고 묻는다. 조짐이 왜 없었겠냐마는 직전까지 모르다가 하루아침에 당했다고 착각한다. 물론 엄청나게 긴 시간을 뜻하는 ‘겁’(劫)이란 말도 안다. 천지가 한번 개벽할 때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의 사이. 가로세로 40리나 되는 큰 바위를 백년에 한번씩 얇은 옷으로 스쳐 마침내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짧은 시간을 표현하는 말이 많다. ‘찰나’(刹那)는 75분의 1초. 이게 얼마나 짧은지 실을 잡아당겨 끊어지는 순간이 64찰나나 된다. ‘순식간’은 눈 한번 깜박이고 숨 한번 쉬는 사이다. ‘별안간’은 스치듯 한번 보는 동안이고, ‘삽시간’은 가랑비가 땅에 떨어지는 사이다. 아찔할 정도로 빠르다. ‘갑자기, 졸지에, 돌연, 홀연, 각중에, 느닷없이’ 같은 말도 어떤 일이 짧은 시간에 뜻밖에 벌어졌다는 느낌을 담는다.
그에 비해 ‘하루아침’은 숨이 덜 차다. ‘찰나, 순식간, 별안간, 삽시간’이 시간의 한 지점을 수직적으로 지목한다면, ‘하루아침’은 그걸 조금이나마 수평적으로 펼쳐놓는다. ‘찰나’나 ‘영겁’에 비해 ‘하루아침’은 시간의 질감이 느껴진다. 찰나에 서 있는 인간에게 ‘하루아침’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알아차릴 수 있는 과분하게 여유로운, 그만큼 미련이 남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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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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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지만 - 김수영
룻소의 [民約論]을 다 정독하여도
집권당에 아부하지 말라는 말은 없는데
민주당이 제일인 세상에서는
민주당에 붙고
혁신당이 제일인 세상이 되면
혁신당에 붙으면 되지 않는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제이공화국 이후의 정치의 철칙이 아니라고 하는가
여보게나 나이 사십을 어디로 먹었나
8.15를 6.25를 4.19를
뒈지지 않고 살아왔으면 알겠지
대한민국에서는 공산당만이 아니면
사람따위는 기천명쯤 죽여보아도 까딱도 없거든
데칼트의 [방법서설]을 다 읽어보았지
아부에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일세
만사에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위대한 [개헌]의 헌법에 발을 맞추어가자면
여유가 있어야지
불안을 불안으로 딴죽을 걸어서 퀘지게 할 수 있지
불안이란 놈 지게작대기보다도
더 간단하거든
베이컨의 [신론리학]을 읽어보게나
원자탄이나 유도탄은 너무 많아서
효과가 없으니까
인제는 다시 비수를 쓰는 법을 배우란 말일세
그렇게 되면 미.소보다는
일본, 瑞西, 인도가 더 뻐젓하고
그보다도 한국, 월남, 대만은 No. 1 country in the world
그런 나라에서 집건당이라면
얼마나 의젓한가
비수를 써
인제는 지조랑 영원히 버리고 마음놓고
비수를 써
거짓말이 아냐
비수란 놈 창조보다도 더 산뜻하거든
晩時之歎은 있지만
<196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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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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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반측(輾轉反側)
-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잠을 못 이룸. 《出典》'詩經' 周南
고민으로 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 혹은 잠자지 못하고 뒤척임을 되풀이 하는 것을 형용하여 '輾轉反側'이라고 하거니와, 이 말은 본래는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워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형용해서 하는 말이다.
《詩經》'周南'의 관저(關雎)에 이렇게 실려 있다.
구룩구룩 물수리는 강가 섬에 있도다.
아리따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들쭉날쭉한 마름풀을 좌우로 헤치며 따는도다.
아리따운 아가씨를 자나깨나 구하는도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니 자나깨나 생각하는도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지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도다.
關關雎鳩 在河之州
窈窕淑女 君子好逑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이 제2절의 결구가 '輾轉反側'이다. 이 노래는 물쑥을 따면서 부르는 연가(戀歌)이다. 즉 노동가(勞動歌)임과 동시에 연애가(戀愛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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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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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4장
보수적 전통주의자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사람인가?
사람은 인성의 다듬어지지 않은 원재료만을 가지고 태어남으로 인은 <먼저 어려운일을 할 것>을 요구한다. 인간은 아직 깎이고 닦이지 않은 원재료, 즉 성숙한 인간으로 형성될 수 있으나 아직은 조야한 충동들이나 잠재력에 불과한 것이다. 짜임새 있는 인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은 예가 계발되는 한에서만 계발된다. 인은 예 안에서 자기 모습을 형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사회 정치적인 관계와 문제들에 대해서 알게 되는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는, 이들 문제에 대해 상당히 폭넓은 경험을 가질 때까지는, 요컨대 실제 정치에 참여해서 행정적인 일의 특정한 성격을 배울 때까지는, 그는 그의 군주에 대해서 심오하고 지적인 충성심을 가질 수 없다. 어린 아이의 단순 소박하고 미숙한 집착이나 의뢰심과 위대한 (경륜을 가진) 정치가의 깊고도 세련된 군주에 대한 충성심 사이의 간극이 갖는 의미를 우리는 인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전자의 미숙한 단계로부터 후자의 성숙한 단계까지의) 틈새를 건너오는 동작이란 예를 배워서 달통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아무리 처음에 그것이 강렬했다 하더라도, 여러 번의 위기나 좋은 운수 그리고 틀에 박힌 일상 생활을 통한 수년간의 결혼 생활 뒤에 나타날 수 있는 상태와 비교해 보면, 내용면에서 상대적으로 무정형적이며 빈약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타인에 대한 각각의 개인적인 자세는 새로운 행위의 규범, 새로운 의무, 새로운 양보와 취득을 요구하는 일련의 상황을 겪지 않고서는 계발되고 심화되고 풍부해질 수 없다. 고통(고전적 의미에서)과 행위는 인간(의 인격)을 형성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배울 때까지는 인은 실현될 수 없다. 인과 예는 동일한 존재의 다른 국면일 뿐이므로 그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 성숙해질 수 없다.
인은 <어려운 일을 한 뒤에> 온다. 물론 예를 배우는 데는 시간과 노력,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인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안하지 않는 사람은 예와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자신을 예에 귀의시킬 수 있는 사람은 인하다. 이렇게 인과 예는 상호적으로 작용한다. 인은 당장이라도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예 대한 대답은 좀더 복잡하며 또한 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예는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몸짓, 즉 시간과 공간을 통한 일련의 동작들을 강조한다. 이러한 몸동작은 여러 단락들, 즉 일련의-각각의 단계가 그 다음 단계에 필수적인-그런 단계들로 구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예를 수행하는 방법(즉 일련의 단계들)이 있지만, 인은 그렇지 않다. 행위자의 관점에서 자기 몸짓을 보자면,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관계로 따로따로 분석될 수 있는 복잡한 행위 패턴이 아니라 <단순한> 몸짓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행위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자기 행위를 본다는 것은, 외면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떨어져 나와서 그 대신 오로지 내심의 신비스런 영역을 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행위를 공개적으로 노출된 행위로만 규정하려는 범주들의 백락으로 규정지으려는 것이다. 이 경우 이것이 당장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군가에게 인사할 것을 결정하고 그렇게 한다. 이렇게 인사하는 것은 예이다. 어떤 특정 맥락에서 우리는 공개적으로 드러난 연속된 몸동작-즉 복잡한 일련의 손과 팔로 움직임, 규정된 인사말과 교환, 요컨대 시간과 공간의 차원에서 행위적 요소와 언어적 요소들로 분석될 수 있는 일련의 잘 조화된 행위들과 수행-을 보는 것이다. 그런나 누구에게 인사하기로 결정하는 일은, 또한 몇 단계의 정신적 행위로 반드시 나눠질 수 있는 <정신적>행위, 즉 또 다른 <내심의> 행위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내재적, 본질적인 길 또는 방법은 없다. 사람은 간단히 결정한다. 물론 결정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는 있다. 즉 우리의 숙고는 시간을 끌 수도 있다. 때에 따라 우리의 결정에 도움울 주기 위해 한두 가지 손쉬운 방법을 쓸 수도 있다. 이런 것은 어떤 것도 결정을 내리는 데 본질적이지 못하다. 즉 이런 (마음 속의) 결정은 결코, 남의 손을 잡고 흔드는 행위가 그 인사행위에서 본질적인 구성 요소가 되는 그런 식으로 결정을 내리는 데 구성적인 요소가 되지 못한다. 숙고가 이전과는 다른 (심리사의) 경로를 취했다고 해도 우리는 (인사라는)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논지의 요점이다. 그러나 바로 똑같은 (일련의 행위의) 단계를 밟지 않고서는 똑같은 인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일련의 행위의) 단계들이 실제의 인사 행위를 구성한다. 그러나 (인사하려는 마음의) 결정을 구성해 주는 (일련의 심적인) 단계들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시공적으로 어떤 단계도 없이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결정 행위의 기적적이고 마술적인 성격의 증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공자가 의도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아니면 <결정하는 일>(<인하기로 결정하는 일>)을 어떤 심비한 내심의, 개인적인 <정신적>영역에서-아마도 그곳에는, 우리 서구인들이 특히 데카르트 이래로 자주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기계>, <구조틀> 또는 <대행자>가 있으리라고 상정되는 영역에서-발생하는 어떤 과정이나 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는 <(마음의) 결정>과 <(실제의) 인사>라는 그런 행동들 사이의 이런 유형의 대조를 그 개념들이 수행하는 <논리적> 역할에서의 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는 이득을 보았다>라는 말이 그 사람이 실제 사고 파는 눈에 보이는 행동과 명백하게 구별되는 경제적 영역에서의 행위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존에게 인사하기로 결정하였다>는 말 또한 내적인 심리 영역의 신비적인 행위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이익을 본다>는 문장과 <결정을 한다>는 문장이 일련의 공간적이고 구체적인 행위, 그 자체의 국면들을 지적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정하거나 이익을 만드는 그런 행위를 구성해 주는 일련의 <단계적>행위를 우리가 (이들 어구만으로는) 묘사하거나 결코 보여줄 수는 없다는 사실은 그 어떤 형이상학적 신비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들 어휘는) <문법적>인 사실만을 말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즉시에든 아니면 위에서 말한 일종의 언어 분석에 호소함에 의해서든, 우리가 서구의 전퉁적인 정신적 편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인과 그와 관련된 개념들에 대한 공자의 의도를 보다 더 자유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현대의 철학적 분석을 그가 가르치거나 사용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처신에 대한 정신적 해석 또한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그가 배제했다거나 반대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그가 정식화한 것은-정신적인 개념이나 모형에 대해서는 무언의 언급 또는 암시조차도 없는-공자 그에게만 특유한, 그 자신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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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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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4. 남궁장만의 난동
송민공의 죽음
제나라가 이렇듯 부국 강병을 죄하고 있을 때, 천하는 크게 변모하고 있었다. 주나라에서는 장왕(莊王)이 병으로 죽고 태자 호제(胡齊)가 뒤를 이었다. 그가 주희왕(周僖王)이다. 이 때를 전후로 송나라, 채나라, 초나라 등지에서 크고 작은 일이 다투어 벌어졌다. 이야기는 송나라로 돌아간다. 노나라에 포로가 되었던 남궁장만이 풀려나서 궁으로 가 귀국 보고를 했다. 그 때 송민공이 그를 놀려 웃으며 말했다.
"내 지난날 그대의 용력(勇力)을 높이 보았는데 이제는 노나라 죄수이니 낮게 보아야겠노라."
이 말을 듣고 남궁장만은 크게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곁에서 대부 구목이 송민공에게 말했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 희롱이 있으면 안 됩니다. 희롱하면 공경하지 않게 되며, 공경하지 않으면 태만하며, 예의가 없어지게 됩니다. 심지어 패륜과 시역까지도 일어납니다. 그러니 주공은 더욱 삼가십시오."
그러나 송민공이 웃고 대답했다.
"과인과 남궁장만은 서로 무관한 사이이니 어찌 그가 감정을 두겠소."
이 때가 주장왕 15년이었다. 이 해에 왕이 죽었고 주희왕이 즉위했다. 그 소식이 송나라에도 전해졌다. 그 때 송민공은 여러 궁인들과 함께 몽택이란 곳에서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송민공은 남궁장만에게 척극(擲戟)놀이를 시켰다. 원래 남궁장만은 창(戟)을 공중으로 던져 올리는 재주가 있었다. 창이 몇 길이나 솟아오르다가 떨어지면 그는 그것을 번번이 손으로 받되 백 번에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 모든 궁인이 그 재주를 보고자 원했기 때문에 송민공은 남궁장만을 불러 함께 놀게 된 것이다. 이에 남궁장만은 분부를 받고 여러 사람 앞에서 한바탕 척극 재주를 부리는데 그 솜씨가 참으로 대단했다. 이를 보자 모든 궁인은 박수 갈채를 보내며 칭찬했다. 송민공은 슬며시 남궁장만을 시기하는 마음이 생겼다. 송민공이 박국(博局)을 가져오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남궁장만과 내기를 하되 이긴 자는 진 자에게 금(金)으로 만든 말(斗)에다 술을 가득 부어서 먹이기로 했다. 원래 박국은 송민공의 장기(長技)였다. 그러니 남궁장만이 송민공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남궁장만은 다섯 판을 겨뤄 다섯 번을 다 졌다. 동시에 벌주(罰酒) 다섯 말을 마셨다. 몹시 취한 남궁장만은 몸을 계속 비틀거리면서도 송민공에게 항복할 뜻이 없었다.
"이번은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즉시 한 판만 더 두십시다."
송민공이 또 놀렸다.
"그대 같은 죄수는 지는데 이력이 난 사람이다. 어찌 과인에게 이길 수 있겠는가?"
이러한 말을 듣자 남궁장만은 몹시 부끄럽고 당황해서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때 궁시(宮侍)가 달려와 아뢰었다.
"주왕실에서 사자가 왔습니다."
"무슨 일로 왔다 하던가?"
"장왕(莊王)이 붕어하시고 새 왕이 등극하셨다고 합니다."
송민공이 말했다.
"주(周) 왕실에 왕이 붕어하시고 새로 왕이 즉위하셨다면, 마땅히 사자를 보내어 전왕(前王)을 조상(弔喪)하는 동시에 새 왕에 대해서 경하(慶賀)할 일이다."
이 때 남궁장만이 아뢰었다.
"신은 아직도 왕도(王道) 낙양의 거리를 한 번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사명(使命)을 받들어 제가 낙양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송민공이 웃으면서 또 그를 놀렸다.
"우리 송나라에 아무리 인물이 없다 한들 어찌 죄수를 사자로 보낼 수 있겠느냐?"
이 말을 들은 모든 궁인은 크게 웃었다. 남궁장만의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이미 술까지 취해 있던 그는 지독한 망신을 당하자 임금과 신하의 분별을 잊고 말았다.
"이 무도한 임금아! 죄수, 죄수 하는데 죄수가 어떻게 사람을 혼내는지 아느냐?"
송민공이 이 말을 듣자 크게 노했다.
"이 죄수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어찌 이다지도 무례한가? 어서 이 놈을 끌어내어라."
그 순간이었다. 남궁장만이 송민공에게 달려들었다. 송민공은 몸을 피하려다가 나동그라졌다. 남궁장만은 즉시 쓰러진 송민공 배 위에 올라타더니 무쇠 같은 주먹을 휘둘러 얼굴이고 가슴이고 가리지 않고 송민공을 계속 내리쳤다. 송민공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모든 궁인은 질겁하여 뿔뿔이 도망쳐 달아났다. 남궁장만은 송민공을 죽인 후 크게 분기하여 궁 쪽으로 향해 가는데, 때마침 구목이 그를 보았다.
"주공은 지금 어디 계시오?"
"무도한 혼군(昏君)이 예법을 모르는지라 내가 이미 저승길로 보내 버렸소."
구목이 웃으며 말했다.
"장군이 심히 취하셨구려."
"난 취하지 않았소. 자 내 손을 보시오."
남궁장만은 피투성이가 된 손을 내보였다. 그제서야 구목은 남궁장만의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님을 알고 기겁하여 정색하면서 꾸짖었다.
"시역한 도적놈아! 하늘이 있다면 네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라."
구목은 손에 들고 있는 홀(笏)로 남궁장만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남궁장만은 까딱하지도 않고 오히려 두 팔을 쩍 벌리고서 구목에게 덤벼들었다. 남궁장만은 번개같이 왼손으로 구목의 홀을 쳐 떨어뜨리고 동시에 오른손으로 구목을 쳤다. 남궁장만의 주먹은 바로 구목의 정수리에 들어맞았다. 순간 구목의 두골이 부서져 피가 쏟아졌다. 단숨에 주먹으로 해골을 부수고 얼굴을 모조리 바수어 버렸으니 남궁장만의 괴력을 어찌 천하 제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구목은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남궁장만은 눈 한번 깜박거리지 않고 창을 집어들고 유유히 걸어가 수레에 올라타더니 궁 쪽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송민공은 즉위한 지 10년 만에 쓸데없는 한마디 농담으로 역신(逆臣)의 주먹을 맞고 생을 마쳤다. 이 때 화독(華督)은 주공에게 변이 생겼다는 기별을 받고 즉시 궁성으로 달려갔다. 화독이 궁으로 가서 동궁(東宮) 서쪽을 돌아가다가 남궁장만과 만났다. 남궁장만은 아무 말도 없이 곧 창을 들어 화독을 찔렀다. 화독은 피할 틈도 없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졌다. 남궁장만은 다시 한 번 쓰러진 화독의 몸을 찔렀다. 화독은 그대로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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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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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따로 또 같이 사랑법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음악이다. 재문이 아빠는 주로 우리 가곡과 클래식을 좋아하고, 재문이는 영화 음악과 팜과 록에 열중해 있다. 그리고 나는 잡식성이다. 가요인 '그녀는 예뻤다'에서 바흐의 '무반조 첼로조곡'까지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다. 지나치게 시끄럽지만 않으면 무엇이든 OK. 그리 넓지 않은 집에 사는 우리 세 식구는 각자의 TV와 음향기기와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오해는 금물, 부자는 아니니까.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알뜰살뜰 아끼고 모으기보다는 현재의 삶에 아낌없이 또는 철없이 투자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뿐이다. 집이나 살림 늘리는 재미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재미에 너무 일찍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껏 부자가 되지도 못했다. 컴퓨터도 제각기, TV도 각자의 취향대로, 하물며 비디오 영화까지도 혼자 나눠 보듯이 음악도 제각기 다른 종류의 음악을 듣는다. 함께 모여 듣기보다는 제각기 즐기는 편이다. 하다못해 밥 먹는 것까지. 그러니까 오순도순 모여앉아 먹기보다는 제각기 먹고 싶을 때 먹는다. 따로 또 같이. 그게 우리 세 식구를 이끌어 가는 기본 원칙이라고나 할까. 책과 음악과 꽃으로 가득한 집, 셋이 함께 살지만 언제라도 혼자임을 즐길 수 있는 집이 내 철없는 희망사항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괜찮은 CD 천 장쯤 모으기. 그래서 우리 가족이 주고받는 선물 중에는 CD가 제법 많다. 공부에 지친 재문이를 위로하고 싶을 때 좋아하는 CD를 사다 주기도 한다. 재문이도 어버이날 선물이나 엄마 아빠 생일 선물로 곧잘 CD를 사 온다. 독일 가곡 모음집은 아빠 생일 선물로, '노래의 보석함'은 엄마 생일 선물로 재문이가 사 온 것이다. 야니와 케니G 앨범도 시험 공부 중인 재문이가 안쓰러워 내가 사다 준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접속'은 재문이가 이종 사촌 진석이와 함께 나가서 사 온 것이다. 서너 장씩 한꺼번에 무작정 산 것들도 많지만 어떤 것들은 하나하나 사연이 깃들여 있어서 바라볼 때마다 기분이 새롭다.
지난 여름부터 재문이 아빠는 자동차용 음악 테이프를 편집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에서 듣기 괜찮은 음악들을 매달 선곡해서 녹음하고, 컴퓨터로 재킷까지 만들어서 듣기 시작했다. 그리 길지 않은 클래식 소품을 연주별로 적절하게 섞은 그야말로 아마추어 짬뽕 테이프다. 녹음한 테이프를 다시 복사해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하나씩 선물하는 것도 재미있어서 아예 달마다 제목을 붙여 만들게 되었다. 5월의 소매 끝을 스치는 라일락 향기, 6월 하늘을 떠도는 방랑의 구름, 10월의 홍차빛 뜨락에서, 추억의 영화 같은 11월의 커피 칸타타 등등 제목을 붙이는 재미도 꽤 괜찮다. 스캐너로 가족 사진을 편집해서 재킷을 만들었더니 근사한 선물이 되었다. 테이프를 만들어서 멜라니아에게도 부쳤다. 가브리엘라 수녀님께도 보내고, 안젤라 대모님이랑 모니카 씨에게도, 최옥합 선생님이랑 혜승 엄마, 종경 언니랑 영희 언니랑 남숙 언니랑 숙일 언니랑 짱아 선생님께도 드렸다. 참 기분 좋은 선물이라고 모두 좋아하셨다. 귀여운 정수 씨와 헤어질 때는 안드레아 보첼리의 '그대와 함께 떠나리'를 넣어 이별의 녹음 테이프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마침 짱아 선생님의 결혼 기념일이 있었다. 그래서 축혼의 노래 테이프를 만들기도 했다. 바그너의 '결혼행진곡'과 멘델스존의 '축혼행진곡'을 비롯해 홍난파의 '사랑'도 넣고, 베토벤의 '그대를 사랑해'도 넣었다. 송창식의 '우리는'이랑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이랑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랑 미국 민요인 '은발'도 넣었다. '은발'은 내가 여학교 때 좋아했던 노래다. '젊은 날의 추억들 한갓 헌된 꿈이랴' 그 노래말의 의미가 새삼 가슴을 쳤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며 아 달에는 어떤 음악이 어울릴까 고민도 하고 "어떤 순서로 편집하는 것이 좋을까? 제목을 뭘로 하지?" 한밤중까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재문 아빠와 나는 마주보고 웃고 만다. 참 철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고 서로를 위로한다.
칠십사 분짜리 공 테이프 사러 세운 상가를 헤매고 전문가도 아니면서 묵직한 음악사전을 펼쳐 놓고 뒤적이며 음악을 듣는 재문 아빠. 피아노 연주 다음이니까 합창곡 하나 넣자, 가을이니까 브람스는 꼭 넣자, 어쩌고저쩌고 종알거리면서 소설 제목 생각하듯이 열심히 편집 테이프 제목을 생각하는 나. 둘 다 철없지만 그런 대로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아, 우리집에는 귀여운 사람이 또 있다. 재문이도 슬슬 친구들한테 이것저것 녹음을 해다 준다. 하긴, 그 부모에 그 자식이 어디 가겠는가. 하지만 쉬잇! 이건 절대 비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불법 복사임에는 분명하니까. 모든 테이프와 CD 재킷에는 불법 복사를 금지한다는 말들이 터억하니 버티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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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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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봄꽃들의 축제
9
남을 향한 비난의 화살은 성급히 쏘아 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의 나를 향한 비난의 화살은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각오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되도록 보류할수록 좋고, 다른 이를 챙겨 주고 위해 주는 일은 미루지 않고 빨리 할수록 좋다. 진정 이 세상에서 누가 누구를 함부로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어떤 일을 좀더 깊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도 않고 너무 지나치게 속단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단체 안에서 가끔은 `천사` 라고 소문난 사람보다 고약한 성격으로 악명 높다는 사람에게서 오히려 더 솔직함과 진지함을 발견할 수 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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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에 하느님도 들으실까. 신음하듯 계속되는 내 옆방 노수녀의 고단한 잠꼬대를 - `사랑하는 이를 여의고 깊은 슬픔에 잠긴 벗을 위로하고 싶어 밤새 써지지 않는 시를 생각하다가 더욱 늘어가는 나의 한숨소리를` - 창 밖엔 오랜만에 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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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곳마다 교회도 많고, 사원도 많고, 그 안에서 바치는 기도의 종류도 많다. 서로 다른 성격의 종교들도 세상엔 너무 많다. 그래도 평화보다는 분열이 잦고, 역사 안에서 종교인들끼리의 싸움이 많은 경우 전쟁의 원인이 되어 왔으며, 이러한 전쟁은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진리조차 독선이 되어 전쟁을 일으키고 죽음을 불러오는 세상이라면 하느님도, 부처님도, 마호메트도 오고 싶지 않으시겠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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