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24호
2022.8.5 (음 7.8) / 발송인:
|
|
|
nowmaster@nate.com
|
※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
글나눔 → 오늘의 어록
|
|
|
어떤 사람들은 휴가여행을 떠날 때 온갖 물건들을 다 갖고 가면서도 예절을 빼놓고 간다.
― 「타임스 리퍼블릭」誌
|
|
글나눔 → 말글
|
|
|
고백하는 국가
설날 아침 지인이 문자를 보내왔다. 성전환 군인의 기자회견을 보고 용기를 내어 자신도 커밍아웃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자유와 행복을 놓치지 않겠으니 당신들도 응원해 달라고 한다. 양가에도 얘기했고 조만간 이혼도 하겠다고 고백했다.
고백은 숨겨둔 마음의 목소리를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힘이 다른 어떤 위력보다도 세고 간절할 때 감행한다. 말의 진실성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과거를 말하는 듯하지만 현재와 미래가 모두 연루되는지라 시간을 초월한다. 그래서 고백은 성스럽다.
문득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고,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자기 집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신내림을 받았다고,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해 엄마랑 살고 있다고 ‘씩씩하게’ 고백하던 학생들 모습이 겹쳤다. 다행히 나는 국가가 아닌지라, 그들의 말에 별다른 가치 판단이나 지침을 내릴 자격도 필요도 없었다. 그저 밥 한 그릇 술 한잔 같이하는 게 전부다.
그 고백이 국가를 향할 때가 있다. 비난과 낙인의 위험을 감내하고 최대의 용기를 내어 국가에 말을 거는 개인이 늘고 있다. 변희수 하사의 고백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역시나 비루했다. ‘불허, 나가!’라고 매몰차게 쏘아붙였지만, ‘전례’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국가는 과거에 매달렸다. 법과 규정이 아닌 진실의 힘으로 말하지 못했다. 국가는 이번 ‘첫’ 사례 앞에서 군인(사람)의 의미를 확장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고백하는 국가는 고백하는 개인들의 눈물 없이는 불가능한 꿈인가 보다.
……………………………………………………………………………………………………………
말하기의 순서
‘냉면’이 먹고 싶을 때 ‘냉면 먹자’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살이 쉽지 않아 그 말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뭐 먹을래?’라고 하면 메뉴 결정을 상대방에게 모두 맡기는 거라 마뜩하지 않다. 타협책으로 두 개 정도의 후보를 말하되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슬쩍 집어넣는다. 이럴 때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먼저 말하는 게 나을까 나중에 말하는 게 나을까?
말실수도 그렇지만, 말하기의 순서에서도 무의식이 드러난다. 심리학에서는 맨 먼저 들은 말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의견(초두 효과)과 제일 늦게 들은 말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의견(최신 효과)이 팽팽하게 갈린다. 면접이나 발표를 할 때도 맨 먼저 하는 게 유리한지 마지막에 하는 게 유리한지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겠지만, 나는 아직도 아이 같아서 내 욕심을 앞세우더라. 지인과 저녁 약속을 하면서 “족발 먹을래 매운탕 먹을래?” 했다. ‘다행히’ 눈치 빠른 그는 족발을 택해 주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순서에 따라 달라진다. ‘정의롭고 쾌활하지만 뒷말하기 좋아하고 고집스러운 사람’과 ‘고집스럽고 뒷말하기 좋아하지만 쾌활하고 정의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 같다.
우리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말의 순서까지도 골몰한다. 먼저 말하기, 나중 말하기, 중간에 끼워 말하기를 적절히 택한다. 듣는 사람도 능동적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읽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하는 직원이 “배가 고프지만, 참을 수 있어요”라고 말할 때, 당신은 밥을 살 건가 계속 일을 시킬 건가?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
|
시나눔 → 우리나라 詩
|
|
|
기도(祈禱) - 김수영
-4.19殉國學徒慰靈祭에 붙이는 노래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여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혁명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삵괭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러나 쟝글보다도 더 허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러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도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있는 사회
이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삵괭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이버에는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더라도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혁명이 성취하는 마지막날에는
그런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나의 죄있는 몸의 억천만개의 털구멍에
죄라는 죄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려니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잊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1960. 5. 18>
|
|
글나눔 → 고사성어
|
|
|
일이관지(一以貫之)
-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음.
《出典》'論語' 里仁篇
孔子께서 曾子에게 "삼(參)아,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었느니라.(參乎吾道一以貫之)"
曾子는 알아듣고 "네"하고 대답했다. 孔子께서 나가시자 문인(門人)들이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하자, 曾子는 "선생임의 말씀은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論語》'衛靈公篇'에도 孔子께서 子貢에게 "나는 한 가지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었느니라.(子一以貫之)"라고 말씀하신 것이 나온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다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子貢이 대답해 말했다.
"그러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나는 하나를 가지고 관철하고 있는 것이다."
子曰 賜也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 然 非與 曰 非也 予一以貫之.
|
|
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
|
|
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4장
보수적 전통주의자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사람인가?
공자가 다듬은 예에 대한 이상은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20세기에 살고있는 우리는 <문화의 갈등>(culture conflict)을 알고 있고, 단일 문화권 내에서도 야기될 수 있는 습관과 가치관의 충돌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일찍이 공자가 겪지 못했던 하나의 문제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공자의 기본 전체는 하나의 예가 있고, 그것은 보다 위대한 우주의 도(천도)와 근원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전제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이 예가 그가 살고 있던 나라의 (당시 다른 나라는 아직 야만적이었다) 예이며, 그의 전통의 선조들도 바로 이 예 속에서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예와 그것이 뿌리박고 있는 우주의 도는 내적인 연관을 갖지며 아주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햇다. 따라서 사회적, 도덕적으로 필요한 것은 (개개의 사람들이) 바로 이 예 안에서 그 자신과 그 자신의 행위를 형성해 내는 것 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독특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다수의 문화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문화적 다원성이란 점을 고려할 때 공자의 서로 관련된 이런 기본 가정들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가 요청된다.
공자가 다듬은 (예의) 이상에 (비판적인) 이런 이의들에 대한 첫번째 대응은 이런 이의들이란 시대 착오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만약 누가 공자의 이상을 (서로 다른 문화들이나 관습들간의 갈등을 초월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보편 타당한 인간 이상의 가능성으로서 제시했다면, 그런 비판적 논의들은 당연히 공자의 이상에 대해서도 해당됨을 우리는 용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의들이 만일 기원전 5세기 노나라 출신의 교육자인 공자를 비판하는 준거들로서 제기된 것이라면, 그런 논의들은 시대 착오의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우리는 논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자는 그가 살았던 당대의 그리스 문화나 이스라엘 문화 또는 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집트 문명 등 다른 거대한 문화가 있었음을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나라 사람들이 알았던 것은 인접한 아시아권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그들 선조들 중의 몇몇을 특별히 크게 이상화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물론 분명 노나라만큼 수준높은 문화를 가지지 못한 변방의 여러 종족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오늘날 그를 비판하는 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역사 환경, 즉 기원적 5세기 중국에 살았던 공자는 그가 알고 있는) 그 이상의 인류학적 그리고 역사학적인 정보를 접할 수 없었고, 또한 그런 정보가 잇으리라고 가상할 만한 어떤 합당한 이유를 전혀 가질 수 없었다. 그런 공자가 반문명 또는 순야만 민족들이 살고 있는 변방으로 둘러싸인 중앙, 즉 만물의 <중심>에 오직 하나의 위대한 문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해서, 그를 비판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겠는가? 또한 어떻게 (그 당대에) 자기의 문화와 같은 수준의 다른 위대한 문명들이 존재하리라는 가능성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식의 번호가 아무리 설득력이 있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공자에 대한 <면호>는 여전히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한다. 왜냐하면 이런 변호는 결국 공자의 가르침으로 더 이상 보편적, 철학적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의 (특정한) 역사 시대의 그것으로 의미를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제야 우리는, 비슷한 지적 한계를 가지고 활동햇던 공자 당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공자의 가르침을 생동적 선택으로 받아들였던가 하는 것을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공자의 가르침은 바로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위한 가르침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의 요점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어쩌면 (인류학적, 역사학적)지식을 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20세기의 현대인들에게는 (비록 이 책에서 나의 논의는 이러한 견해와는 정반대의 내용을 분명히 밝히고자 하지만) 하나의 (지나간 특정 시대의)역사적 본보기 이상의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인 접근 방식은 아직까지 풀지 못한 몇가지 문제를 남겨두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된 것은 (당시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라는 동일 문화권) 내부의 갈등, 즉 단일 문화권 안에서의 충돌의 문제이다. 공자와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흔히 비운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다 당시에 다수의 난립해 있는, 또한 수시로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여러 제후국들의 존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 당시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민족들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로 생활 관습들이 서로 다르며, 이런 관습들이란 협소한 중심부의 제후국들과 변방에 위치한 상대적으로 큰 면적의 나라들 사이에서 시대적 간격을 두고 아주 큰 차이를 보이고 잇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라도 옛 전통의 붕괴가 자주 일어나면서, 새로운 제도와 습속이 도입되고 있음을 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상한 이론 논쟁으로부터 마키아벨리식의 종치술, 단순 살인, 처참한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문화 내적 갈등에 휩싸인 지역이 일찍이 있었다고 한다면, 분명히 노나라와 그 이웃 제후국들이 바로 그에 해당될 것이다. 그때는 실로 일대 혼란-그러한 혼란이 강하게 의식되는-시대였다.
|
|
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
|
|
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동평 고을의 조궤
한편 노나라는 제나라를 치기 위해서 병차를 모으고 있었는데 제나라에서 먼저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노장공이 시백을 불러 물었다.
"제나라가 먼저 쳐들어온다 하니 이를 어찌 막으면 좋겠는가? 좋은 방도를 아뢰어라."
시백이 아뢰었다.
"신이 한 사람을 추천하겠습니다. 그 사람이면 능히 제군을 물리칠 것입니다"
"경이 추천하려는 이가 누구요?"
"그의 성은 조(曺)이며, 이름은 궤라고 합니다. 지금 동평(東平)이란 시골에서 농사짓고 있습니다만 큰 인물입니다. 부르시어 대임(大任)을 맡기십시오."
노장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백에게 어서 그를 불러오라고 분부했다. 이에 시백은 곧 동평 땅으로 가서 조궤를 찾아보고 벼슬살기를 청했다. 이 말을 듣고 조궤가 웃었다.
"고기 먹는 사람도 계책이 없어서 이렇듯 나물 먹는 사람에게까지 와서 벼슬을 권하는가?"
시백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물 먹는 사람이라야 능히 계책도 있고 또 고기도 먹을 수 있지 않겠소."
그들은 서로 웃으며 수레를 타고 동평 땅을 떠나 도성으로 향했다. 그들이 함께 궁으로 가서 노장공을 뵙자, 노장공이 조궤에게 물었다.
"지금 제나라 군대가 쳐들어오니 이를 어찌 당적할 것인지 그대는 마땅한 계책이 있소?"
조궤가 대답했다.
"군사란 그때그때 형편에 맞도록 전략을 써서 승리를 노릴 뿐입니다. 어찌 싸움터에 가서 보지도 않고 미리 방책을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신에게 탈 것을 주시면 싸움터로 가는 동안에 제군(齊軍)을 물리칠 계책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노장공은 조궤와 함께 병차를 타고 군사를 이끌고 바로 장작 땅을 향해 갔다.
한편 포숙아는 노장공이 친히 장수가 되어 병차를 거느리고 장작 땅으로 온다는 보고를 받자, 즉시 진을 단속하고 진격하라는 북소리 한 번에 노나라를 무찔러 위용을 과시하고 자 대기하고 있었다. 이윽고 노장공이 장작 땅에 이르러 곧 진을 치고 제나라 군대와 대치했다. 포숙아는 노장공과 그의 군대를 처음부터 깔보고 있었다. 그래서 곧 부하 장졸에게 명령했다.
"북을 울리고 즉시 진격하라. 먼저 적진을 돌파하는 자에게는 후한 상을 내릴 것이로다."
노장공은 진동하는 제나라 군대의 북소리를 듣자, 노나라 군사들에게도 북을 울려 맞대응하라고 지시하는데 곁에 있던 조궤가 이를 말렸다.
"제나라 군세가 바야흐로 매우 날카롭습니다. 이럴 때는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고는 즉시 명령했다.
"누구든지 명령을 받지 않고 싸우자고 선동하거나, 경거 망동하는 자가 있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참하겠다. 모두들 조심하여라!"
이 때 제군은 노진(魯陣)을 공격했다. 그러나 노진은 고요할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요새 같았다. 결국 제군은 노진을 무찌르지 못하고 물러갔다. 조금 지난 후 제군은 다시 북을 울리면서 노진을 향해 공격해 왔다. 그러나 노군은 역시 조금도 꼼짝하지 않았다. 포숙아가 말했다.
"이건 노나라 군사가 우리를 무서워해서 꼼짝않고 있는 것이다. 한 번만 더 북을 울리면 그들은 질겁해서 반드시 도망칠 것이다."
제군은 또 일제히 북을 울렸다. 그 세 번째 북소리를 듣고서야 조궤가 노장공에게, 아뢰었다. "이제야 제군이 패할 때가 왔습니다."
조궤가 단호하게 하령(下令)했다.
"북을 울려라."
노군은 북을 울렸다. 제군은 두 번이나 공격해도 싸움에 응하지 않는 걸 보고 노군을 업신여겼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방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소리를 단 한 번 울리고서 노군이 일시에 벌떼처럼 공세로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노도와 같이 쳐들어오는 노군은 닥치는 대로 치면서 빗발처럼 활을 쏘아대지 않는가. 노군의 형세는 그야말로 맹수들의 질주 같았다. 제군은 이리 거꾸러지고 저리 쓰러지며 패주하기 시작했다. 장공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시 추격하려는데 또다시 조궤가 말렸다.
"잠시만 계십시오. 신이 제나라 진지를 살펴본 뒤에 추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십시오."
조궤는 곧 제군이 진을 쳤던 곳으로 가서 그들이 머물렀던 모습을 세세히 살펴보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멀리 제군의 도망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는 마음놓고 추격할 만합니다."
이에 노장공은 급히 병차를 휘몰아 도망치는 제군의 뒤를 쫓았다. 제군은 정신없이 달아났다. 노장공은 30여 리나 뒤쫓다가 돌아왔다. 노획한 무기와 군수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포숙아의 절치부심
노장공은 제나라 군사에게 크게 이겼다. 건시 땅에서의 패배를 설욕한 것이다. 노장공은 기뻐하며 조궤에게 물었다.
"경은 세 번이나 북을 울린 제군을 한 번 북을 울려 단번에 물리쳤으니 이 어인 까닭이오?"
조궤가 대답했다.
"무릇 싸움은 기운을 주로 삼습니다. 기운이 씩씩하면 이기며, 기운이 쇠하면 집니다. 북을 울리는 것은 기운을 돋우기 위한 것이온데 한 번 울리면 기운이 일어나고, 두 번 울리면 기운이 쇠하고, 세 번 울리면 기운이 끝납니다. 신은 처음부터 북을 울리지 않고 우리 노군(魯軍)의 기운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군은 북을 세 번 울려 기운이 끝났기에 신은 북소리 한 번으로 우리 군대의 기운을 일으켰습니다. 즉 솟아오르는 기운으로 쇠진해지는 기운을 누른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일어나는 우리 노군이 끝나가는 제군에게 이기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노장공이 다시 물었다.
"제나라 군사가 패해 도망치기 시작했을 때 경은 어찌하여 즉시 추격하지 않고 그들의 진지를 유심히 살폈는가?"
조궤가 대답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예전부터 잔꾀가 많습니다. 혹 신은 복병이 있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달아나는 제군을 추격하지 않고 그들이 머물렀던 진지를 직접 가서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병차의 바퀴 자국이 종횡으로 산란하게 엉켜 있었습니다. 이는 제군이 얼마나 당황해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도망치는 그들의 후미를 바라보니 정기(旌旗)가 정연하지 못했습니다. 비로소 신은 그들이 계책을 세워 놓고 우리를 유인하기 위하여 도망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삼군에게 추격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노장공은 얼굴 가득히 웃으며 연신 찬탄했다.
"참으로 뛰어나구려. 그대야말로 병법의 참뜻을 아는 장수로다."
이에 노장공은 조궤에게 대부 벼슬을 내리고 조궤를 추천한 시백에게도 크게 상을 내렸다.
한편 제나라 군사는 크게 패하여 힘없이 돌아왔다. 제환공은 몹시 화가 났다.
"군사가 싸움터에 나아가 작은 노나라에도 공(功)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이러고서야 어찌 천하의 제후를 거느리고 호령할 수 있겠소."
포숙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었다.
"제와 노는 군사에 있어서 같이 천승(千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병세에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다. 지난날 건시 땅에서 싸웠을 때 우리가 이긴 것은 우리가 주인이었고 노나라가 객의 입장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장작 싸움에서는 우리가 객의 처지가 되었고 그들이 주인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패했습니다. 비슷한 힘으로 객이 주인을 당적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그러나 노나라에 패한 것은 정말로 참을 수 없는 수치입니다. 이제 신은 주공의 명으로써 송(宋)나라에 원조를 청하고 양국이 힘을 합치고 연합군을 편성하여 노를 쳐서 이 수치를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공께서는 이를 허락해 주소서."
제환공은 허락하고 송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함께 노나라를 치자고 청했다. 이 때가 주장왕 30년 되는 해 봄이었다.
|
|
글나눔 → 읽어둘문학
|
|
|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신채호편"
신채호(1880__1936) 사학자. 호는 단재. 충북 청주 출생.
순수한 민족주의적 역사관으로 당시의 식민주의적인 일체의 학설들을 배격하었으며 항일 운동의 이념적 지도자로 언론계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본 관헌에 체포되어 여순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실패자의 신성
나무에 잘 오르는 놈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물 헤엄을 잘 치는 놈은 물에 빠져 죽는다 하니, 무슨 소리뇨. 두 손을 비비고 방안에 앉았으면 아무런 실패가 없을지나, 다만 그러하면 인류 사회가 적막한 총묘와 같으리니, 나무에서 떨어져 죽을지언정, 물에 빠져 죽을지언정, 앉은뱅이의 죽음은 안 할지니라. 실패자를 웃고 성공자를 노래함도 또한 우부의 벽견이라. 성공자는 앉은뱅이같이 방 안에서 늙는 자는 아니나, 그러나 약은 사람이 되어 쉽고 만만한 일에 착수하므로 성공하거늘, 이를 위인이라 칭하여 화공이 그 얼굴을 그리며, 시인이 그 자취를 꿈꾸며, 역사가가 그 언행을 적으니, 어찌 가소한 일이 아니냐. 지어 불에 들면 불과 싸우며, 물에 들면 물과 싸우며, 쌍수로 범을 잡고 적신으로 탄알과 겨루는 인물들은 그 십의 구가 거의 실패자가 되고 마나니, 왜 그러냐 하면, 그 담의 웅과 역의 대와, 관찰의 명쾌와 의기의 성장이 남보다 백배 우승하므로, 남의 생의도 못하는 일을 하다가 실패자가 되니, 그러므로 실패자와 성공자를 비하면 실패자는 백보나 되는 큰 물을 건너뛰던 자이요, 성공자는 일보의 물을 건너뛰던 자이어늘, 이제 성공자를 노래하고 실패자는 웃으니, 인세의 전도가 또한 심하도다.
이와 같이 실패자를 비웃음은 동서양의 도도한 사필들이 거의 그러하지만 수백 년래의 조선이 더욱 심하였으며, 조선 수백 년래에 이따위 벽견을 가진 이가 적지 않으나, 김부식 같은 자가 또한 없었도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일부 노예성의 산출물이라. 그 인물관이 더욱 창피하여 영웅인 애국자--곧 동서 만고에도 그 비루가 많지 안할 부여 복신을 전기에 빼고, 백제사 말엽에 12구뿐 부록함이 벌써 그에 대한 모멸인데, 게다가 또 사실을 무하여 면목을 오손하였으며, 연개소문이 비록 야심가이나 정치 사상의 가치는 또한 천재 회유의 기물이어늘, 다만 그 2세 만에 멸망하였으므로 오직 신, 구 당서를 초록하여 개소문전이라 칭할 뿐이요, 본국의 전설과 기록으로 쓴 것은 한 자를 볼 수 없을 뿐더러 또 그를 흉불완하다 지척하였으며, 궁예와 견훤이 비록 중도에 패망하였으나 또한 신라의 혼군을 항하고 위기를 거하여 수십 년을 일방에 패하였거늘, 이제 초망의 소추라 매욕하였으며, 정치계의 인물뿐 아니라 학술에나 문예에도 곧 이러한 논법으로 인물을 취사하여 독립적 창조적 설원, 영랑, 원효 등은 일필로 도말하고, 오직 지나사상의 노예인 최치원을 코가 깨어 지도록, 이마가 터지도록, 손이 발이 되도록 절하며 기리며, 뛰며, 노래하면서 기리었다. 그리하여 김부식이 자기의 옹유한 정치상 세력으로 자기의 의견과 다른 사람은 죽이며, 자기의 지은 "삼국사기"와 다른 의론을 쓴 서적은 불에 넣었도다.
그리하여 후생의 조선 사람은 귀로 듣는 바와 눈으로 보는 바가 김부식의 것밖에 없으므로 모두 김부식의 제자가 되고 말았으며, 모두 김부식과 같은 논법에 같은 인물관을 가졌도다. 하늘과 다투며, 사람과 싸워 자기의 성격을 발휘하여, 진취, 분투, 강의, 불굴 등의 문자로써 인간에 교훈을 끼침이어늘, 우리 조선은 그만 김부식의 인물관이 후인에게 전염하여 고금의 실패자는 모두 배척하고 성공자를 숭배하게 되니, 성공자는 아까 말한 바 약은 사람이라. 이제 창졸히 '약'의 정의는 낼 수 없으나 세상에서 매양 '약은 사람'의 별명은 '쥐새끼라'하니, 약은 사람의 성질은 이에서 얼만큼 추상할 수 있도다.
(1) 엄청나는 큰 일을 생의치 안하며,
(2) 남의 눈치를 잘 보며,
(3) 죽을 고비를 잘 피하며,
(4) 제 입벌이를 자작만 하여 그 기민함이 쥐와 같은 고로 쥐새끼라 함이라.
아으, 수백 년래의 인물에, 어찌 범이나 곰이나 사자 같은 사람들이 없었으리오마는 대개 쥐새끼들이 사회의 위권을 장악하여 학술은 독창을 금하고, 정, 주 등 고인의 종 됨을 사랑하며 정치는 독립을 기하고 일보 일보 물러가 쇠망의 구렁에 빠짐이라. 실패는 이같이 싫어하였는데, 어찌 실패보다 참악한 쇠망에 빠짐은 무슨 연고이뇨, 이는 나의 전언에 벌써 그 이유의 설명이 명백하니라.
|
|
글나눔 → 삶 속의 글
|
|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봄꽃들의 축제
1
누워서도 하늘과 숲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의 작은 수방을 사랑한다. 새들의 노랫소리와 나무들의 기침소리가 거침없이 들어와 나를 흔들어 깨우는 새벽. 나의 가슴엔 풀물이 든다. 송진내음 가득한 솔숲으로 뻗어 가는 나의 일상. 너무 고요하고 평화스러워 늘상 송구한 마음으로 시작되는 나의 첫기도.
2
사방엔 온통 봄꽃들의 축제인데 내 마음엔 왜 이리 봄이 더딘가. 마음의 메마름은 슬픔이다. 작은 일에 기뻐하고 감동할 수 없는 무딤과 무관심은 수도생활에도 지장을 준다. 비온 뒤의 정원은 더욱 아름답다. 수선화, 모란, 자목련, 은방울꽃, 조팝나무꽃, 영산홍, 산딸나무꽃, 사과꽃들이 향기를 토해내는 안 정원에 오랜만에 가보았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다양한 모습의 꽃을 피우고 나서 조용히 떠나가는 그 모습 또한 얼마나 의연한가. `수녀원에 생각보다 꽃이 많네요!` 하고 손님들이 감탄을 할 때마다 나는 기쁘다.
오늘 아침 성당에서 만난 부활초 옆의 패랭이 꽃이 하도 반가워서 가슴이 뛰었다. 내가 열다섯 살의 생일을 맞던 6월에 나의 우상이었던 여고생 세레나 언니가 가파른 언덕길 위의 우리집까지 찾아와 한다발 안겨 주던 추억의 패랭이 꽃. 이제는 패랭이꽃처럼 어여쁜 그 언니의 막내딸 아린이가 먼 나라에서 내게 편지를 보내 오고 있으니 나도 그애에게 톱니 모양의 앙증스런 꽃잎을 닮은 고운 추억을 심어 주어야겠다.
|
|
사진 → 그림/사진
|
|
|
☞ 그림을 클릭하시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