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13호
2022.7.22 (음 6.24)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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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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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에서 무식한 사람한테 이기다니 어림없는 말씀. ― W.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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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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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글 통일?
디에이치씨(DHC) 텔레비전 출연자가 “‘조센징’은 한문을 문자화시키지 못해 일본에서 만든 교과서로 한글을 배포했다. 일본인이 한글을 통일시켜 지금의 한글이 되었다”고 하자, 다들 뜬금없다는 반응이다. 일제는 조선어 말살 정책을 썼다고 배웠으니 황당해하는 것도 이해된다. 저 말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언어 버전이다.
일제는 일본어와 조선어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쳤다. 총독부 주도로 철자법도 제정했고 교과서와 사전도 만들어 한글과 조선어 보급률을 높였다. 그러니 고맙다고? 전혀! 총 대신 칼을 든 강도일 뿐. 애당초부터 조선어를 폐지하고 일본어를 상용어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일본어 보급률이 1919년엔 겨우 2.0%, 1930년엔 6.8%였다. 어쩔 수 없이 조선말을 가르친 거다. 일본어 교육을 전면화하되 조선어를 이등국민어로 만들 속셈이었다. 새로 놓은 철길이 수탈의 통로였듯이, 그들이 허용했던 조선어도 순치의 도구였다.
그들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조선 전역을 총동원 체제로 바꾸자마자, 조선어로 하는 말글살이를 억압한다. 조선어를 선택과목으로 강등시키고 실제론 금지시켰다. 조선어 신문·잡지도 폐간시킨다. 전쟁터와 공장에 끌고 갈 조선인이 일본말을 알아들어야 쉽게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제에 의한 조선어 교육은 식민지 지배 전략의 일환으로 채택된 떡밥일 뿐이었다. 일본어를 통한 순치든 조선어를 통한 순치든, 아스팔트길이든 꽃길이든 일제가 조선 민중을 태우고 도착한 곳에는 언제나 ‘수탈’이라는 팻말이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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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중심에
나는 야구에서 좌익수가 누군지 헷갈린다. 관중석 기준으로 왼쪽인지 포수 기준으로 왼쪽인지 모르겠다. ‘여기, 저기, 지금, 나중’처럼 장소나 시간 표현은 말하는 이 중심으로 정해진다. 포수 쪽에서 외야를 보며 중계를 하니 포수 기준으로 왼쪽이 좌익수인 게 맞나 보다.
그런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중심에 놓는 경우가 있다. 병사와 마주 선 장교는 병사들을 자신의 왼쪽 방향으로 가게 하려면 ‘우향우’라고 해야 한다. 내 기준대로 ‘좌향좌’라고 하면 병사들은 오른쪽으로 가게 된다.
어느 정도 규칙으로 굳은 경우도 있다. 손윗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자신을 지칭할 때 어떻게 하는지 떠올려보라. 아빠가 아들한테 이렇게 말한다. “아빠는 라면을 먹을 테니, 너는 참아라.”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할아버지 어깨 좀 주물러 주렴.” 아줌마가 길 잃은 꼬마에게 “아줌마가 집에 데려다줄게.” 뭐가 이상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영어를 비롯한 유럽어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영어로는 모두 1인칭 대명사 ‘나’(I)를 쓴다. 상대와 어떤 관계인지 상관없이 말하는 이와 듣는 이라는 건조하고 추상적인 역할만 표시한다. 반면, 한국어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확인하되, 타인을 중심으로 자신을 호명한다.
어린 사람도 상대방을 ‘너/당신’(you)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춘기더라도 아빠한테 “당신만 먹고 나는 먹지 말라고?”라고 한다면, 그날은 좀 늦게 자게 될 것이다(“아빠만 먹고 나는 먹지 말라고?”라고 하면 반 그릇을 덜어줄 수밖에).
이 독특한 언어습관은 이웃 일본말에도 똑같이 있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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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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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末伏) - 김수영
시냇물소리 푸르고 희고 잔잔한 물소리
숲과 숲 사이의 하늘을 향해서
우는 매미
흙빛 매미여 달팽이는 닭이 먹고
구데기 바람에 우는 소리 나면
물소리는 먼 하늘을 찢고 달아난다
바람이 바람을 쫓고 생명을 쫓는다
강아지풀 사이에 가지(茄子)는 익고
인가 사이에서 기적처럼 자라나는 무성한 버드나무
연록색,
하늘의 빛보다도 분가 못할 놈......
버드나무 발아래의 나팔꽃도 그렇다
앙상한 연분홍,
오무러질 때는 무궁화는 그보다 조금쯤 더 길고
진한 빛,
죽음의 빛인지도 모르는 놈......
거역하라 거역하라.....
가을이 오기 전에는
내 팔은 좀체로 제대로 길이를 갖지 못하고
그래도 햇빛을 가리킨다
풀잎끝에서 일어나듯이
태양은 자기가 내린 것을 거둬들이는데
시들은 자죽을 남기지만 도처에서
도처에서
즉결하는 영혼이여
완전한 놈......
구름 끝에 혀(舌)를 대는 잎사귀처럼
몸을 떨며
귀기울이려 할 때
그 무수한 말 중의 제일 첫마디는
[나는 졌노라......]
자연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말복도 다 아니 갔으며
밤에는 물고기가 물밖으로
달빛을 때리러 나온다
영원한 한숨이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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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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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烏合之卒)
// ① 갑자기 모인 훈련 없는 군사.
② 규율도 통일성도 없는 군중. 《出典》'後漢書' 耿龕傳
전한(前漢) 말, 대사마(大司馬)인 왕망(王莽)은 평제(平帝)를 시해(弑害)하고 나이 어린 영을 세워 새 황제로 삼았으나 3년 후 영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신(新)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잦은 정변과 실정(失政)으로 말미암아 각지에 도둑떼가 들끓었다. 이처럼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유수(劉秀)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 일당을 주벌(誅伐)하고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擁立)했다. 이에 천하는 다시 한나라로 돌아갔다. 대사마가 된 유수가 이듬해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輿)를 자처하며 황제를 참칭하는 왕랑(王郞)을 토벌하러 나서자,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은 즉시 아들인 경감(耿龕)에게 군사를 주어 평소부터 흠모하던 유수의 토벌군에 들어 갔다. 그때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갑자기 행군을 거부하는 바람에 잠시 동요가 있었다.
"유자여는 한왕조(漢王朝)의 정통인 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오. 그런 사람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오?"
격노한 경감(耿龕)은 두 사람을 끌어낸 뒤 칼을 빼들고 말했다.
"왕랑은 도둑일 뿐이다. 그런 놈이 황자(皇子)를 사칭하며 난을 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장안(長安:陝西省 西安)의 정예군과 합세해서 들이치면 그까짓 '오합지졸(烏合之卒)'은 마른 나뭇가지보다 쉽게 꺾일 것이다. 지금 너희가 사리(事理)를 모르고 도둑과 한패가 됐다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하리라."
그날 밤, 그들은 왕랑에게로 도망치고 말았지만 경감(耿龕)은 뒤쫓지 않았다. 서둘러 유수의 토벌군에 합류한 경감(耿龕)은 많은 무공을 세우고 마침내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이 되었다.
우리가 돌격 기병대를 일으켜 써 오합지중(烏合之衆)을 치는 것은 썩은 고목을 꺾고 썩은 것을 깎음과 같을 뿐이다.
發突騎以徊烏合之衆 如?枯腐耳.
【동의어】오합지중(烏合之衆)
【유사어】와합지중(瓦含之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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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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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2장
공자에게서 도덕 교육이란 예의 규정들을 몸으로 익히고 문학이나 음악 그리고 일반적인 교양 과목들을 배우는 일이다.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미는 힘>은 마련할 수 있지만, <당기는 힘>은 목표가 본래 지니고 있는 고매성에 의해 마련되는 것이다. 스승-혹은 군자-이 다른 이들을 도에로 이끄는 것은 그가 정신적으로 고매한 사람에 의해서다. 힘을 가진 것은 바로 그 도이다. 그 힘은 (인위적인) 노력이 없는 것이요, 보이지 않고, 신묘한 것이다. 명백하게 <법가>의 영향으로 나중에 삽입된 문장으로 보여지는 오직 하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모두에서, 덕성, 인간다움, 예식, 그리고 그와 연관된 행위 지침인 <양보>의 사용과는 명백하게 대조를 이루는 제재 조치나 형벌의 사용이 바람직하지 못한 대안이라는 것이 <논어>의 특징이다.
<논어>는 문제를 간명하게 제시한다. 즉 우리는 예와 <양보>를 써서 통치할 수 있거나 그렇게 할 수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 할 수 없으면 스스로 기만하여 보았자 소용이 없으며 <벌>, 즉 제재 조치들과 포상(이라는 강제적 수단)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것들은 폭압적인 방식으로든 혹은 상급을 주어서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진실로 인간적인 '즉 도덕적인' 방식이 아니기에, 진실로 인간적인 삶을 확립시키지 못한다. (서양적 세게관에 따른) 도덕적인 죄책감 혹은 죄가 되는 근거로서의 도덕적책임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도덕적 응징으로서의 벌이라는 개념을 갖지 못한 공자는 제재 조치들의 사용에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어떠한 잠재적 가능성도 볼 수 없었다.
이런 (공자의 입장과) 반대되는 즉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공리주의> 편향적인 관점이 당시의 중국인들에게 낯선 것이었다고 상정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이들의 관점을 거부함으로써 공자는 그 자신의 관점을 매우 유별나게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자의 견해는 당시 매우 강력한 경쟁 세력으로 커 나갔던 법가의 견해와는 명백하게 대조된다. 법가는 전형적으로 채찍이나 사탕 이외의 것에 대한 호소는 감상적인 자기 기만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도덕적인 접근이란 속임수이며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쓰는 사람이 스스로 얽어 묶이게 되는 덫이라고 생각했다. 호랑이가 개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진 발톱과 이빨 때문이다. 호랑이가 자신의 발톱과 이빨을 포기하고 그것들을 개가 사용하게 된다면, 호랑이는 개에게 제압 당하고 말 것이다. 마찬가지로 통치자는 그의 신하들을 형과 덕 '즉 <칭찬과 포상>의 <이득>'으로 통제한다.
법가의 이러한 생각은 공자의 가르침과는 선명하게 대조된다.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규정들에 따라 백성들을 다스리고 형벌로 질서를 잡는다면 백성들은 수치심 없이 법망을 빠져 나갈 것이다. (반면에) 도덕적인 힘으로 그들을 다스리고 예로 질서를 잡는다면 백성들은 수치심을 가질 뿐 아니라 바르게 될 것이다. (이런 중국적인 관념에서) 하여간, 벌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하면, 그것은 실제적으로 (범죄 발생)억제라는 순전히 공리주의적인 역할이지, 결코 도덕적인 응징의 역할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다고 하겠다. 좀더 핵심적으로 말하자면, 도덕적 응징으로서의 벌이라는 관념은 <논어>나 법가의 사유 그 어느 쪽에서도 생겨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의 그 말(벌)에서 도덕적인 의미를 읽어 내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논어>에서는 죄책감과 회개를 어떤 개인의 못된 행위에 대한 도덕적 대응으로 보는 관념이 전혀 발전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제 좀더 자세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 (<논어>의 관점에 따른다면) 사람이란 실제적인 여러 이유들로 인해 자신의 과거 행위를 후회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가던 길을 바꾸고 이제부터라도 도를 따라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죄책감이라고 하는 <내심의> 얼룩(오점의 관념)이 부재한다. 우리의 이런 주장을 밑받침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생각을 <논어> 원문에서 (당장 곧바로) 읽어 내기보다는 차라리 <논어> 원문을 보다 잘 독해하기 위하여, 이런 우리의 주장에 대한 예외적 사례로 보이는 것들을 통례적으로 우리는 좀더 상세하게 살펴 보고자 한다.
<논어>의 어떤 구절들은 <수치심>을, 또 다른 구절들은 내심의 결함들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살펴볼 마지막 구절은 내심의 자기-견책을 요구하는 갓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은 도덕적 책임 그리고 죄책감과 연관된 관념들에 대해서 적어도 거의 명백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수치심에 대한 언급은 위에서 이미 인용된 적이 있다. 즉 형벌 '곧 위협'로 다스리면 수치심이 사라지고, 덕으로 다스리면 수치심이 있게 된다고 하였다. 덕은 미덕의 힘, 또는 인하고 예를 따르는 사람의 덕성이라고 번역될 수 있다. 그것은 도에 내재하는 힘 혹은 미덕이다. 그것은 물리적, 강제적 힘과는 대조된다. 그래서 다른 구절들과 마찬가지로, 인용된 이 구절은 수치심을 공자가 하나의 도덕적인 대응으로 생각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점에서 치라는 말이 과연 <수치심> 이라기보다는 <죄책감>에 해당하는 것인지 어떤지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치는 확실히 공자가 언급한 말들 중에는 가장 죄책감의 관념에 가까운 말이다. 따라서 그 말을 자세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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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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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5장
피 튀기는 옥좌
1. 민심을 잃은 제양공
費의 충성
"왜 과인의 신발 한짝이 없느냐? 속히 비(費)를 불러라."
제양공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비가 달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미처 주워 오지 못했습니다."
제양공은 그 말을 듣더니 화락 눈길에다 불을 담았다.
"네 놈도 그 짐승이 팽생으로 보이더냐?"
제양공이 난데없이 소리를 치더니 가죽 매를 들어 어디고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내리갈겼다. 도저히 정상이 아니었다. 비(費)의 등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제양공은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 북새통에 사문구 신발 한 짝을 챙기지 않았다 하여 비(費)는 모진 매를 맞고 초죽음이 되어서야 내팽겨쳐졌다. 그리고 궁 밖으로 쫓겨났다. 그가 겨우 기운을 차려 무거운 다리를 끌며 궁전을 나서려고 했을 때, 궁은 이미 연칭과 관지부가 이끄는 반란군에 의하여 빈틈없이 포위당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궁에서 나오는 비(費)에게 달려들어 결박한 후 연칭 앞으로 끌고 갔다. 연칭이 그에게 물었다.
"음탕 무도한 임금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비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침실에 있는데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연칭은 더 묻지 않고 칼을 뽑아 비의 목을 참하려 했다. 비가 애원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 등을 보시고 죽이십시오. 그때는 죽여도 좋습니다."
"죽을 놈이 등짝을 봐달라니......."
연칭은 부하 병사를 시켜 웃옷을 벗기게 했다. 등판은 피떡으로 뭉쳐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이게 무엇인가?"
"바로 그 음탕 무도한 임금이 가죽 채찍으로 때린 것입니다. 원한을 갚게 해 주십시오. 그 무도한 임금이 죽는 모습을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비는 눈물을 뿌리며 절절하게 매달려 호소했다. 연칭의 마음이 흔들렸다.
'저런 정도로 매질을 당했다면.......'
"좋다. 네가 안내하라."
마침내 연칭이 허락했다. 비는 연칭과 내응하기로 약속을 하고 다시 이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는 연칭과 날랜 무사들이 따랐다. 얼마쯤 안쪽으로 들어가자 비가 말했다.
"제가 먼저 들어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비는 혼자서 뒤채로 갔다. 그 곳은 석지분여가 있는 곳이었다.
"큰일났습니다. 지금 난데없이 대부 연칭이 무장하고 나타나 변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비는 귀뜸을 해 주고는 다리를 절면서도 급히 제양공의 침실로 달려갔다. 그는 제양공에게 상황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한 잡인(雜人) 신분이지만 벌써 3대째 제나라 궁중에서 잡일을 해 오는 비로서는 아무리 심한 대접을 받아도 주인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침실로 들어갔을 때 제양공은 아직도 머리를 흔들며 안면을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착란 증세가 아직도 걷히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양공은 뛰어들어오는 비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는 무시무시한 광폭함을 담고 있었다. 비는 비틀거렸다. 갑자기 등에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소나 돼지처럼 비명을 지르며 죽을 듯이 아파 몸부림치던 자신의 흔적이 침실 바닥에 엉겨 있었다. 그 핏자국은 벌써 검정색으로 흉하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비는 주인을 향해 고했다.
"지금 대부 연칭이 군사를 이끌고 변란을 일으켰습니다.주공께서는 속히 이 곳에서 피하십시오."
제양공이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바뀌더니 어쩔줄 몰라 쩔쩔매기 시작했다.
"일이 몹시 급합니다."
"어디로....... 어디로 가란 말이냐?"
제양공은 애타는 시선으로 비를 바라보았다.
"빨리 이쪽으로 오십시오."
비는 침실 바깥에 있는 은밀한 곳의 벽장 문을 열었다. 비는 그 문을 열고는 제양공을 재촉했다.
"어서 이 속에 숨으십시오."
제양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속으로 들어갔다. 비는 밖에서 벽장문을 닫았다. 자세히 보니 그 문은 마룻 바닥에서 약 한 뼘 가량 벌어져 있어 제양공의 발이 밖에서 보였다. 방구석에 발판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비는 얼른 그것을 가져다 벽장문과 마루가 벌어진 곳에다 기대 놓았다. 그러자 보이던 제양공의 다리가 가려졌다. 그 때 맹양이 침실로 뛰어들었다.
"주공은... 주공은 어디 계시느냐?"
맹양이 숨가쁘게 소리쳤다. 비가 대답했다.
"주공은 몰래 숨으셨습니다. 그러니 어서 한 사람을 구해 가짜 임금이 되어 침상에 눕게 하십시오. 그들이 창졸간에 구분하지 못하면 혹 재앙을 면할지 모릅니다."
맹양이 말했다.
"이 난리에 어디 가서 사람을 구하겠느냐. 내 주공의 은혜를 입었으니 대신 죽으마."
맹양이 침상에 가서 누웠다. 그리고 이불을 끌어 자기 얼굴을 덮었다. 비는 얼른 벽에 걸린 비단 도포를 벗겨 맹양 위에 덮어 주며 말했다.
"저는 가서 연칭을 엉뚱한 곳으로 안내하다가 죽겠습니다.나중에 저승에서 뵙지요."
맹양이 물었다.
"네 등이 아프지 않느냐?"
"임금을 위해서인데 어찌 그 정도가 대수입니까? 저에 대한 염려는 결코 마십시오."
맹양이 누운 채로 탄식했다.
"참으로 그대야말로 다시 없는 충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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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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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박카스 소동
박카스 이야기를 하고 싶다. 느닷없이 웬 박카스 타령이냐면 바로 어제, 우리 집에서 박카스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박카스, 술의 신이라도 나타났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시험이 가까워져서 신경이 날카로워진 재문이가 박카스 타령을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친구가 박카스를 마시면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했다며 졸라댔다. 그땐 장난 삼아 그냥 웃어 넘겼는데, 어제는 아주 본격적이었다. 시험이 모레 시작인데 졸리고 집중이 안된다며 막무가내로 졸라대는 것이었다. 심각하고 진지한 게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 시간을 벌려고 작정했다. 그러다 제풀에 꺾이려니 하고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박카스는 느닷없이 웬 박카스? 누가 선뜻 그걸 사러 간대? 아무리 공부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분명 약은 약인데, 어떤 약인지 모르고 오용 말고 약 좋다고 남용 말자. 그런 표어도 모르니?'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살살 어르고 달래면서 재문이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잊어버리거나 포기하겠거니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아니다. 쉽게 포기하고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약을 먹으면서 공부를 하겠다니... 차라리 공부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러다 티격태격 싸우게 되었다. 마루에서 재문이와 내가 이러니저러니 다투는 것을 방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비죽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사실 다툰다는 건 적당한 표현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니까.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무슨 일. 집안 일이지.
"둘이 왜 그래? 또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거야?"
싸우기는. 의견충돌일 뿐이지. 남편이 고개를 내밀자 재문이는 슬그머니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엄마는 만만하게 보면서 아빠한테는 함부로 대들지 못하니까. 무서운 아빠도 아닌데 참 이상하다. 아무래도 남자끼리는 껄끄러운가 보다. 대체 왜 그러느냐고 남편이 연거푸 물었다. 마치 재판관 같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모자간의 다툼이 심심찮게 여겨졌던가 보다.
"박카스 때문에."
"웬 박카스?"
"박카스 마시고 공부하겠다고 해서."
그러자 남편이 하하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닌데,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해야 옳을 일인데, 이 상황에서 하하 웃다니... 평소의 남편답지 않은 모습이어서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한참 웃다가 남편은 재문이한테 갔다.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편이 그랬다.
"아빠가 사다 줄게. 한번 마셔 봐. 하지만 계속 마시면 안된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입는 거였다.
"어디 가려구?"
"박카스 사러."
"정말 사다 주려구?"
"응."
고개를 끄덕이면서 남편이 덧붙였다.
"나도 어릴 때 그랬거든. 그게 뭐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줄 알고 마신 적이 있거든. 국민학교 다닐 때 말이야."
그랬다. 요즘은 초등학교라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우리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그야말로 입시지옥이었다. 중학교 입시에 시달리던 꼬맹이 남편은 박카스가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줄 알고 마셨다는 것이다.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서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았단다. 남편은 웃음 묻은 표정으로 박카스를 사러 나가고, 나는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서 혼자 웃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그랬다. 요즘에야 온갖 주스며 음료수가 지천이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콜라와 사이다를 종종 먹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중학교 입시에 시달릴 때-시달린 다는 표현도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껏 나는 한번도 공부에 시달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박카스 비슷한 종류의 드링크 제품을 나도 마신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뭐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녁마다 한 병씩 다사 주시곤 했다. 그 맛이 지금도 생생하다. 달콤하고 시원했었다는 생각이 난다. 주스처럼 마시던 그것이 어떤 이름이었는지는 잊었다. 하지만 빛깔이 오렌지색이었고 투명하고 갸름한 병 모양도 제법 예쁘장하니 세련된 것이었다는 기억은 남아 있다. 아빠가 사다 준 박카스를 마시고 재문이는 뿌듯한 표정으로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남편 과 나는 마주보며 또 한참 웃었다. 철없는 재문이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아빠가 선뜻 그걸 사다 준 이유, 엄마가 굳이 말렸던 이유, 그리고 엄마 아빠가 이렇게 마주보며 웃고 있는 이유까지도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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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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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사랑할 땐 별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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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읽다가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성구가 믿음에 와 닿았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서로 눈치챌 수도 없지만 우리 각자는 하루하루 내면의 선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기심을 버리고 좀더 넓어지려는, 좀더 깊어지려는 그리고 좀더 따뜻해지려는 선한 싸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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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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