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제1110호
2022.7.19 (음 6.21)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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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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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보다 더 고약한 사람은 제가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 ―A.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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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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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끝이 당신이다
제대로 된 청소는 구석에 숨은 먼지를 치웠느냐에 달려 있다. 문 뒤에 숨은 먼지를 쓸어 담지 않았다면 청소를 제대로 한 게 아니다. 열심히 설거지를 했어도 접시에 고춧가루가 하나 붙어 있으면 말짱 도루묵이듯이.
청소의 성패가 마지막 먼지에 달려 있다면, 말의 성패는 말끝에 달려 있다. 조사나 어미처럼 말끝에 붙어 다른 단어들을 도와주는 것들이 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 특히 어미를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 성격, 타인과의 관계, 지위가 드러난다.
당신이 어제오늘 보낸 문자나 채팅 앱을 다시 열어 살펴보라. 용건은 빼고 말끝을 어떻게 맺고 있는지 보라. 친한지 안 친한지, 기쁜지 슬픈지, 자신감 넘치는지 머뭇거리는지, 윗사람인지 아랫사람인지 다 드러난다.
친할수록 어미를 일그러뜨려 쓰거나 콧소리를 집어넣고 사투리를 얹어놓는다. ‘아웅, 졸령’ ‘언제 가남!’ ‘점심 모 먹을껴?’ ‘행님아, 시방 한잔하고 있습니더’ ‘워메, 벌써 시작혀부럿냐’. 친하지 않으면 ‘-습니다’를 붙인다.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봤자, 결석을 통보하는 이들은 ‘이러이러한 사유로 결석하게 되었습니다’ 식으로 메일을 보낸다. 용기가 흘러넘치던 학생한테서 받은 ‘죄송한데 사유는 비밀이고 오늘 수업 결석하겠습니다’가 최대치였다. ‘패랭이꽃도 예쁘게 피고 하늘도 맑아 오늘 결석하려구요!’라는 메일을 받는 게 평생소원이다. 세월이 지나면 말끝이 닳아 없어지기도 한다. ‘어디?’-‘회사’-‘언제 귀가?’-‘두시간 뒤’. 말끝이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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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말싸움법
매사를 힘의 세기로 결판내는 약육강식의 습관은 말싸움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반드시 ‘이겨먹어야’ 한다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독선이 깔려 있다. 상대방은 뭔가 꿍꿍이가 있고 이기적이다. 내가 이겨야 정의의 승리다.
이런 전투 상황을 벗어날 비법이 있다. 말싸움 중간중간에 ‘물론’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말싸움은 자기주장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는 게 목적인데, 이를 더욱 확실하게 성취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반론에 대한 고려’이다. 내 주장에도 허점이 있을 수 있고, 상대방의 주장에도 쓸 만한 구석이 없지 않다고 인정해주는 단계. 이 ‘반론에 대한 고려’는 ‘물론’이란 말로 구현된다. 자기 말만 하다가도 ‘물론’이 떠오르면 브레이크가 걸리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 총을 내려놓고 싸움 없는 중립지대로 모이자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 적진에 뛰어들어 보라는 말이다. 상대방의 안마당을 거닐면서 그에게도 모종의 ‘이유’가 있음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덕을 쌓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배려심인데, 내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성찰과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남는 문제는 누가 먼저 ‘물론’을 떠올리느냐이다. 아무 논리 없이 위계와 완력으로 사람을 찍어 누르는 무도한 사람을 앞에 두고 나만 손해 보라고? 그런 사람 앞에서조차 ‘물론’이란 말을 ‘기어코’ 떠올릴 수 있다면, 그리하여 모든 인간에겐 존재의 이유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음을 알게 될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차분해지고 깊어질 거다. 물론 그걸 이용해먹는 자들이 득실거리지만!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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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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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死靈) - 김수영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아래 잡초도
담장의 푸른 페인트빛도
저 고요함도 이 고요함도
그대의 정의도 우리들의 섬세도
행동이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음에 들지 않어라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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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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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지리(漁父之利)
- '두 사람이 이해 관계로 다투는 사이에 엉뚱한 딴 사람이 이득을 봄'을 일컬음.
《出典》戰國策 燕策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병한 연(燕)나라에 기근(饑饉)이 들자 이웃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昭王)은 종횡가(縱橫家)로서 그간 연나라를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해 온 소대(蘇 代)에게 혜문왕을 설득하도록 부탁했다. 조(趙)나라에 도착한 소대(蘇代)는 소진(蘇秦)의 동생답게 거침없이 혜문왕을 설득하여 혜문왕의 연나라 침공 계획을 철회시켰다고 한다.
"오늘 귀국에 들어오는 길에 역수(易水)를 지나다가 문득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蚌蛤(방합)]가 조가비를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도요새[鷸(휼)]가 날아와 뾰족한 부리로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는 화가 나서 조가비를 굳게 닫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도요새가 '이대로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너는 말라 죽고 말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아 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 것이다.'하고 맞받았습니다. 이렇게 쌍방(雙方)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운수사납게도 그곳을 지나가던 어부(漁夫)에게 그만 둘다 잡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전하께서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고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입니다. 연(燕)조(趙) 두 나라가 공연히 싸워 백성들을 피폐(疲弊)케 한다면, 귀국과 인접해 있는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다 마셔 버리고 말 것입니다."
"과연 옳은 말이오."하며 혜문왕은 침공을 중지했다.
趙且伐燕 蘇代爲燕謂惠王曰 今者臣來過易水 蚌方出曝 而鷸啄其肉 蚌合而?其喙 鷸曰 今日不雨 明日不雨 卽有死蚌 蚌亦爲鷸曰 今日不出 明日不出 卽有死鷸 兩者不肯相舍 漁者得而幷禽之 今趙且伐燕 燕趙久相支 以弊大衆 臣恐强秦之爲漁夫也 故願王之熟計之也 惠王曰 善乃止.
【동의어】어부지리(漁父之利), 방휼지쟁(蚌鷸之爭)
견토지쟁(犬兎之爭), 전부지공(田父之功),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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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양고전 /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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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2장
갈림길 없는 오로지 하나의 도
공자는 <논어>에서, 선택 혹은 책임에 관한 말을 세심하게 논의하지 않았다. 가끔 그 비슷한 용어가 사용되기도 ㅎ지만, 이 말들은 서양의 철학적, 종교적인 인간 해에서 중추적 의미를 갖고 있는, 그런 (서구적) 특색으로 발전되지도, 엄밀하게다듬어지지도 않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양에서는) 이런 선택이나 책임의 개념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으로 궁극적인 힘과 서로 함께 묶여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개개인들은 이런 자신들의 존재론적인 힘을 통하여 개개인 자신의 영적 운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택이나 책임의 개념은 (그 개개인들은 그들에게 천부적으로 부여된 궁극적인 존재론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들은 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며, 또한 그 저지른 죄에 대하여 회개도 할 수 있고, 아니면 그에 합당한 심판도 받을 수 있다는 (서양 고유의)관념들과 밀접히 연관되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공자는 선택과 책임이라는 말을 그런식으로는 다루지 않았다.
우리 서양인들은 위와 같은 맥락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깊이 안주하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 즉 공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한 번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뭐니뭐니해도 공자는 사회 속에서의 인간이란 무엇이며 그 안에서 인간이 차지해야 할 위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다. 그는 우리들이 (오늘날) 도덕적인 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문젯거리를 정의하고 설명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는 위대하며 창조적인 교육자였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선택>과 <책임>을 둘러싼 그런 (서양식) 관념들의 체계를 간과할 수 있었을까? 선택과 책임에 관한 말이 (중국의 사유 체제에서) 발전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선택하거나 책임지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님을 우리는 즉각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 시대와 마찬가지로 공자 시대에도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보다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또한 고대 중국에서도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진지한) 선택을 했으리라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혼의) 죄책감이나 회개 또는 죄에 따른 응당한 징벌 등의 말들이 우리 (서양사람)들이지금 그것들을 쓰는 그런 의미로 (고대 중국 사회에서도) 통용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확신이 나에게 없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서양적인) 이런 관념들이 지시하는 실재 대상들이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전혀 부재했다는 확신 또한 나에겐 없다. 물론 고대 중국에 있었던 징벌 관념은 (범죄 행위의 결과를 처벌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범죄 행위의 발생 자체를 미리 차단하려는) 예방적인징벌 관념이었다. 즉 저질러 놓은 죄를 씻어 내기 위한 응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악행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엄혹한 <교훈> 또는 글자 그대로(자유 자재로 활동할 수 없게끔) 절름발이 병신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이런 (동서양간의 관념적인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후자의 논점을 더 이상 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선택>과 <책임>의 경우, 이 말들이 지시하는 실제 대상들이 (중국의 사유 체계에도) 분명히 존재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우리 서양에서는 그런 실재 대상들을 표현하고 그들 내부의 모습과 움직임을 자세하게 추적하기 위한 정교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 공자'그리고 그 당대의 사람들'는 그와 같은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들 고대 중국인들은, 같은 시대의 그리스나 근동의 여러 민족들에게서는 핵심적인 의미를 지녔던 그런 도덕적 실재 대상들에 대해 별로 진지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겠다.
아마도 이러한 <관심 부재>를 뚜렷이 밝힐 수 있는 가장 계발적인 방법은 <논어> 속에 제시된 가장 중요한 형식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논어>의 관심은 <타오>이다. 타오란 도, 즉 길이나 도로이다. 비유적으로 확장된 일반적 의미로 그것은 고대 중국에서 삶의 올바른 도, 통치의 도, 인간 존재가 걸어야 할 이상의 도, 우주의 운행 방식, 만상의 존재 자체를 생성시키고 규범화하는 (즉 만물의 소이연지고와 소당연지칙으로서의 도 '이치, 길, 과정') 등을 의미한다. '<논어>에서 <도>는 그것의 가능한 또 다른 하나의 의미인 <말> 혹은 <말하다>의 의미로는 쓰이지 않고 있다' <논어>에 제시된 도의 형상적 의미는 걸어가는 길의 비유가 가장 많다. <논어>원전에 대표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문자는 걸어다니는 길, 도로, 걷다, 궤도, 따라가다, 통과하다, 부터, 까지, 들어가다, 떠나다, 도착하다, 나아가다, 곧다, 굽다, 평탄하다, 부드럽다, 멈추다, 위치를 정하다 등등의 의미를 가진 것들이다. 도의 관념은 당연히 공자의 핵심적 과념인 예와 상통하는 관념이다. 공자에서 예는, 사회적 교제, 즉 인간의 삶이라는 거대한 예식을 명백하고 세세하게 나타내 주는 패턴이다. 참된 길을 똑바로 걸어가는 모습과 예식을 멋들어지게 올리는 모습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는 것은 아주 쉽고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심지어 우리는 예를 특정한 도로 체계, 다시 말해 길이 그려진 지도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생각이 기울어지면, 이 길이라는 형상적 의미를 발전시켜서 선택, 결정, 책임 등의 관념을 이끌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우리 서양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자명하게 다듬어진-도의 이미지에서 파생되어 나온-갈림길의 이미지를 이끌어 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선택이라는 관념을 표현하기에 이렇듯 딱 들어맞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바로 이 갈림길의) 비유가 정작 <논어>에서는 결코 한번도 쓰인 적이 없다. 사실 갈림길의 모습은 자세하게 그려진 도로 그림에서는 어디에라도 매우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요소이다. 그러나 (공자의 경우처럼) 우주를 기본적으로 명명백백하고 단일하며 확정된 질서를 가진 것으로 보다는 관념에 깊이 빠져 있다면, 그런 사람은 갈림길의 이미지로부터는 도를 찾아 헤매는 구도자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도전(의 관념을) 생각해 내지 못할 수 있다. 참된 도를 바르게 걸어가 살펴볼 때, 이런 단일하고 확정된 질서에 대한 공자의 애착 또한 자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그 다른 선택이란 잘못된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도를 잃은 것이거나 (도를 찾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질서(즉 도) 이외의 <다른 선택>은 모두 무질서이며 혼란인 것이다. 우리가 도를 따라 계속 간다면 결국 어디에 이르는 것일까? 이 여행을 종결시키는어떤 목적지가 있는 것일까? 공자가 제시하는 (도의) 형상적 의미는-말하자면 그곳이 항구이거나 고향집 혹은 황금의 도시이거나 또 다른 그 무엇으로 묘사되든-어떤 미리 정해진 혹은 이상적인 목표점에 도달하려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정신적으로 고귀한 사람(군자)은 어떤 장소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상태, 즉 아무런 애를 쓰지 않고도 적절하게 도를 따라가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그 자체가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도를 따라가는 것을 터득함으로써 그런 평정한 상태에 이르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지도 위의 어떤 특정한 장소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목표점에 <도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다. 목표점에 도달한다는 것은 도의 본래적이고 궁극적인 의미를 올바로 잘 터득하여 지금 자신이 도를 따라가기로 마음을 정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 도를 얼마나 잘 따라와서 그것을 몸에 잘 익혔는가 하는 수준에 관계없이, 그리고 우리가 이미 얼마나 배웠는가하는 수준과도 관계없이 우리는 진실로 도를 따라갈 수 있다. 왜냐하면 도에 아직 완벽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 도를 배우는 일에 온 마음으로 헌신하는 것 그 자체가 도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이에게는 배우는 이의 도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상태에 안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짐은 무거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모든 것을 마무리지운 인자, 즉 예에 완벽한 사람, 진정으로 고귀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견습생일 뿐이기 때문이다. <논어>에 나타나 있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인간이란 진정한 인간으로 형성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이 세상-좀 더 구체적으로 한 사회-에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처음에 태어날 때는 다듬어지지 않은 덩어리. 물질적 재료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조야한 존재는 학문과 문화, 즉 예를 통해 꼴이 잡히고 잘 조절됨으로써 정품으로 다듬어져야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르고 다듬도, 쪼고, 윤을 내는> 일은 잘 될 수도 있고 못될 수도 있다. 자신이 고통을 참아 내고 적절히 제대로 노력하고 그리고 교사들에 의해 잘 훈련을 받아서 이런 수련 과정이 잘 진행된다면 그만큼 그 사람은 도를 향하여 똑바로 걸어나가게 될 것이다. 그와 반대로 이상적인 것에 따라 모양이 잡히지 못하면 바로 그 결점으로 인해 그 사람은 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의미의 선택이란 없으며 중요한 것은 도를 따라가거나 못 따라 가거나이다. 도가 아닌 다른 <통로>를 선택했다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진정한 길을 택했다는 뜻이 결코 아니며 단지 심지가 연약하여 그 진정한 길을 따라 가기에 실패한 것일 뿐이다. 만약 선택이라는 말의 의미가 여러 가지 똑같이 실재적인 선택사항들 중에서 하나를 행위자 자신이 자기 힘으로 고르라는 뜻이라면, 공자가 제시하는 가르침의 형상적 의미는 그러한 선택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공자의 가르침은 도를 따라가기 위해 우리 자신이 자기 힘을 쏟느냐, 아니면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하여, 즉 힘이 없어서 삐뿔어지고 결국 아무 곳에도 이르지 못하여 물질적 이득, 유리한 이점, 개인의 안락과 같은 환상을 헛되이 쫓고자 넘어지고 자빠지고 이리저리 헤맨다는 식으로 문제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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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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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4장
5. 제양공의 침략 전쟁
杞城 멸망
제양공은 각국에다 사신을 보내 전하게 했다. 그 내용은 매우 강경했다.
"기나라는 우리 조상 대대로 원수입니다. 이번에 과인은 기나라를 쳐서 선군의 유지를 받들고자 합니다. 만일 이 뜻을 방해하는 나라가 있다면 결단코 하늘 아래 함께 더불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있게 된다면 제나라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제나라 군사들도 이번에는 각오가 달랐다. 지난번 원한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기나라의 병·지·오 세 고을을 점령하고 기성을 향해 호호 탕탕 진군했다. 제양공은 기후(杞侯)에게 사람을 보냈다. 제양공의 사자는 기후에게 추상 같은 제후의 뜻을 전했다.
"속히 항복하고 스스로 결박하여 제군 앞에 벌을 청하라. 듣지 아니하면 이번에 기나라의 씨(種)도 손(孫)도 아예 흔적조차 없애 버릴 것이다!"
기후는 그 부인 백희(伯姬)와 함께 크게 탄식했다.
"이제 무릎을 꿇고 애걸할 수는 없는 일. 부인께서 글을 보내어 노나라에 원조를 청해 보오."
원래 기후의 부인 백희는 노나라에서 출가해 온 사람이었다. 기나라 사자는 백희의 글을 가지고 노나라로 갔다. 노장공은 기후의 부인 백희가 보낸 서찰을 받았다. 내용은 구절구절 눈물과 비탄으로 얼룩져 동정심을 자극했다. 노장공은 즉시 정나라로 사자를 보내어 노(魯), 정(鄭), 기(杞) 세 나라의 관계를 밝히고, 함께 기나라를 위한 구원병을 보내자고 청했다. 그러나 당시에 정나라는 군사를 보낼 처지가 아니었다. 노나라는 혼자 힘으로 제나라를 대적할 수가 없었다. 노장공은 군사를 거느리고 활(滑) 지방에까지 갔다가 3일 만에 제나라의 위세에 눌려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편 기후는 노나라 군사가 도우러 오다가 도중에서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고 만사를 단념했다. 그날 밤 기후는 동생 영계에게 모든 걸 부탁하고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기후(杞侯)는 어디서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튿날 영계는 스스로 결박하고 제군 앞에 나아가 항복했다.
"조상에게 제사나 지낼 수 있게 해 주시오." 이후 기나라는 영영 망하고 말았다.
제·노 화합
제양공이 기나라를 무찔러 아예 멸망시켜 버린 때가 주장왕 7년의 일이었다. 바로 그 해에 초나라 무왕 웅통이 죽고 그 아들 웅자가 즉위했다. 그가 바로 초문왕(楚文王)이다. 한편 제양공은 기나라를 멸망시키고 의기 양양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도중에 문강이 영접을 나왔다.
"오라버니의 승전을 경하해 마지 않사옵니다."
문강이 찾아와 인사하자 제양공은 더욱이 기분이 좋았다.그래서 아예 수레의 방향을 돌렸다. 이들 남매는 나란히 수레를 타고 축구 땅으로 갔다. 그러고는 마치 양국 군후가 서로 대할 때 베푸는 그런 예로서 크게 잔치를 베풀고 즐겼다. 제양공이 맹양을 불러 분부했다.
"과인은 이곳에서 어진 누이와 우애를 나누겠노라. 그대는 일단 군사를 거느리고 귀국 개선하여라. 차후 간단한 일은 알아서 처리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이 곳으로 전하여 분부를 받들어라. 알았느냐?"
맹양이 대답했다.
"한 치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맹양이 대군을 이끌고 귀국하자 제양공은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낮에는 문강과 함께 마시고, 밤이 되면 옆에 끼고 자면서 아예 터놓고 부부처럼 살았다. 이렇듯 즐기고 있는데 전갈이 왔다.
-왕희의 병환이 심상치 않습니다.-
제양공은 참으로 음탕 무도한 자였다. 그는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전갈을 받으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허허...... 나무토막도 병이 나는고?"
그 옆에 반라(半裸) 차림으로 누워 있던 문강이 그 말을 듣고 의아해서 물었다.
"나무토막이라니 그 무슨 말씀이신가요?"
제양공은 신하가 바라보는 것도 개의치 않고 문강을 품에 껴안았다.
"이렇듯 안아 보면 나무토막 같다는 거지."
그러면서 낄낄대고 웃었다. 문강도 호호거리며 따라 웃었다. 두 사람의 웃는 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왕희는 원래가 조용한 여자인데다가 지혜가 뛰어났다. 비록 내궁에 있을지언정 제양공이 여동생 문강과 정을 통하는 등 매우 난잡하다는 걸 알았다.
"천륜과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로다. 참으로 금수와 다를바 있으리오. 내 어찌 박복하여 이런 인간 같지 못한 자에게 시집을 왔단 말인고."
왕희는 늘 장탄식을 했다. 그러다가 병이 나 마침내 시집온 지 일 년도 안 되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제양공은 문강과 함께 있다가 이 소식을 들었다. 문강이 신바람나서 제양공에게 말했다.
"이제 오라버니도 나처럼 임자가 없어졌으니 우린 천생 연분인가 보옵니다."
제양공이 문강을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처지가 그렇구려. 우리가 남매로 태어나 각자 남에게 시집 장가 갔으나 이렇듯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다니 이보다 더한 연분이 어디에 있겠느냐?"
문강이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우리 둘 사이엔 자식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 그건 애석한 일이야. 그러나 우리의 자식들을 혼인시키면 다소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문강이 크게 기뻐했다.
"좋으신 생각입니다.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문강은 곧 아들인 노장공에게 보내는 서신을 써서 사람을 시켜 보냈다.
얼마 후 노장공은 서신을 받고 어머니 문강이 있는 축구 땅으로 왔다. 문강은 노장공으로 하여금 외삼촌에 대하는 예로써 제양공을 뵙게 했다. 그래서 노장공은 조카가 되어 외삼촌을 모셨다. 이 때 제양공에게 새로 출생한 딸이 하나 있었다. 문강이 노장공에게 말했다.
"원래 내실이 튼튼해야 나라가 안정되는 법이다. 그러니 두말 말고 어미가 시키는 대로 외삼촌의 새로 출생한 여식과 혼인을 하거라. 어떠냐?"
노장공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어머니의 말이었지만 조심스럽게 사양했다.
"하지만 아직 젖먹이가 아닙니까? 더구나 저와는 인척간인데....... 소자의 배필은 아닌 듯합니다."
노장공의 말을 듣던 문강은 즉시 역정을 냈다.
"너는 임금이 되더니 어미의 친정 식구에게 비아냥거리느냐?"
제양공도 이번만은 좀 당황했다.
"서로 나이 차이도 많이 나니까 조카님도 그런 게 아니겠소. 누이는 너무 강요치 마오."
문강이 대꾸했다.
"한 십오 년만 기다리면 될 텐데 뭘 그러십니까? 그때 가서 혼인을 해도 되겠지만 혼사는 지금 정해 두자는 데 무엇이 그리 잘못 되었단 말입니까."
노장공은 더 이상 모친의 뜻을 거스릴 수 없고 해서 승낙하니 제양공도 응낙했다. 이렇듯 혼사를 정하고 보니 제양공과 노장공 두 사람은 외삼촌과 조카 사이일 뿐만 아니라 겸하여 장인과 사위가 되는 처지로 변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대접했다. 그러니 자연 친해졌다. 두 사람은 함께 수레를 타고 사냥을 다닐 만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제양공은 더욱 노장공을 아꼈고, 노장공은 어른으로 제양공을 받들었다. 노나라의 뜻있는 백성들이 이걸 비웃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개의치 않았다. 한편 제양공과 문강은 내놓고 더욱 가깝게 지내며 음탕한 생활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위나라 침공
그 후 제양공은 얼마 동안 더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갔다.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위후 삭이 제양공을 영접하며 청했다.
"기나라를 없애 버리고 개선하신 큰 공을 치하드립니다. 청컨대 언제면 이 몸을 위해 위나라로 가실 것입니까? 저는 한시도 편안치를 못합니다."
제양공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염려가 없느니라. 왕희가 죽었으니 주왕실의 눈치를 볼 것도 없도다. 과인이 곧 연합군을 조직하여 위나라로 진격해 갈 것이니라."
위후 삭은 칭사하고 물러났다. 며칠이 지난 후 제양공은 송 . 노 . 진 . 채 네 나라로 사자를 보냈다. 함께 위나라의 군위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었다. 그 때가 주장왕 8년 겨울이었다. 제양공은 먼저 병차 5백 승을 거느리고 위후 삭과 함께 위나라 국경으로 갔다. 뒤를 이어 송나라 송민공, 노나라 노장공, 진나라 진선공, 채나라 채애공 등이 각각 군사를 거느리고 제양공 쪽으로 모여들었다. 마침내 5로(五路) 연합군이 편성되었다. 한편 위후 금모는 5로 제후가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공자 예와 공자 직을 불러 상의하고 대부 영궤를 주왕실에 보내 구원을 청했다. 이에 주왕실에서는 대부 자돌에게 병차 2백 승을 내 주어 위나라를 구원토록 했다. 그러나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힘 약한 위나라와 주왕실의 군사는 어찌할 것인가. 마침내 위후 금모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었다. 제양공은 금모가 주장왕의 사위였으므로 죽이지 않고 그 식솔과 함께 수레에 태워 낙양으로 보내고 다른이들은 모두 참수했다. 그리고 위후 삭을 다시 임금 자리에 앉히고, 오랜만에 누이동생 선강도 만나 그 동안의 어려움을 위로했다. 또한 위나라 내고를 열게 한 후 금옥과 비단 등을 모조리 실어내어 다섯 등분을 해서 각국의 제후들과 군사들을 위로 하게 하니 모두 다 제양공을 칭송했다. 제양공은 이렇게 한 후 우쭐대며 귀국길에 올랐다. 그 동안 정나라 군위를 세웠고, 기나라를 무찔러 원수를 갚더니, 노나라와 우호 친선을 맺고 위나라마저 쳐부시고 임금을 새로 세워 놓았으니 제양공의 위엄은 주왕실의 위엄을 능가하여 천하를 울리는 듯했다. 그러나 어찌하리오. 아직도 그에게는 은밀히 누이동생과 통정하고 매부를 죽인 음탕 무도한 자이며, 정숙한 왕희를 일 년도 안 돼 병들어 죽도록 내버려 둔 인정 없는 자로 널리 소문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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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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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가득히 사랑을 - 노은
무녀남 외아들
앞집에 놀러 갔다 온 우리 재문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다.
"엄마, 아빠 생일은 언제야?"
"아빠 생일? 3월이지."
"다행이다."
"왜?"
"얼마 안 남았으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인 가 싶어 재문이의 눈을 들여다본다. 까만 눈 속에 장난기 대신 시새움이 가득하다.
"갑자기 아빠 생일은 왜?"
"내일이 익수네 아빠 생일이래."
"그래?"
"지금 익수네 집에서는 음식 장만하느라 야단이야. 동그랑땡도 하고 식혜도 하고 부침개도 하고 빈대떡이랑, 그리고 누나들이 케이크도 사 왔는데 아주 크고 멋있어. 딸기랑 파인애플이 위에 붙어 있어."
익수는 바로 앞집에 사는 아이인데 우리 재문이의 단짝 친구이다. 나이는 같지만 익수가 생일이 빨라서 한 학년이 높기 때문에 재문이가 꼬박꼬박 형이라고 부른다.
"엄마, 엄마."
재문이가 바짝 다가앉으며 속삭인다.
"우리도 아빠 생일에 동그랑땡 하자. 떡이랑 식혜도 하고 별 것 별 것 다하자. 응?"
"그런데 그걸 모두 누가 만드니? 익수는 누나들이 많아서 함께 만들겠지만 넌 누나도 없잖아."
"내가 할게. 그리고 이모들이랑 하면 되잖아."
"정말 네가 만들거니? 동그랑땡 만들 수 있어?"
"응, 고기에다 양파도 넣고 동그랗게 만들면 돼. 꼭 하자, 응?"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웃고 말았다. 익수는 누나가 넷이다. 대학생 누나가 둘, 고등학생 누나가 하나,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누나까지 모두 넷. 그러나 우리 재문이는 오로지 저 혼자이다. 누나는 물론이고 형이나 동생도 없다. 무녀독남 외아들이다. 외아들인 우리 재문이는 가끔씩 외로워 보인다. 때로는 온종일 외로워 보일 때도 있다. 재문이의 외로움을 덜어 주느라 함께 종이 딱지도 접어주고, 윷놀이도 하고, 구슬치기도 해 보지만 우리 꼬맹이의 외로움을 송두리째 덜어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버릇처럼 재문이는 앞집으로만 달아난다. 누나들이 피아노도 쳐 주고 노래도 가르쳐 준단다. 함께 술래잡기도 하고 여러 가지 게임도 하며 신나게 놀다 돌아온다. 가끔씩은 재문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가는 것이며, 외로운 길이라는 생각에 꼬맹이에게 귀여운 동생을 선물하지 못했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말도 맞고, 혼자이므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우리 꼬맹이의 말도 옳지만 가끔씩은 서운하다. 익수네 집처럼 늘 떠들썩하게 웃으며 때로는 토닥거리고 토라지기도 하며 살아 보고 싶은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사실 나도 육남매의 맏이로 자라났다. 항상 토닥거리고, 토라지기도 하며, 모든 것을 여섯으로 나누어 그 중의 하나만을 가져야 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두고두고 그리운 추억이 되어 떠오른다. 별사탕을 우리 육남매에게 똑같은 숫자로 나누어주시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오늘따라 더욱 깊다. 우리 재문이가 비록 혼자이지만 앞집 누나들의 사랑 속에서 함께 나누는 삶의 따사로움을 배우게 되기를, 그리하여 어른이 된 뒤에도 이웃에 대한 사랑을 베풀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을 지니게 되기를 비는 마음이다. 사랑은 나누는 것. 그리하여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소중한 것임을 앞집에서 건너오는 화목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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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촬영한 허리케인 이사벨. ]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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