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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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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여백
삶은 논술이 아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삶이란 보람 있는 것인가? 이제 이 따위 추상적 그리고 상투적 물음은 그만두자. 이러한 철학적 질문을 그만두자. 인생의 의미는 개념으로 기술할 수 있는 명제가 아니라 구체적 사실들을 보는 시각이며, 삶의 보람은 논술로 증명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몸으로 확증된 충족감이다. 인생의 의미는 발견될 수 있는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얻는 구체적 경험의 속성이며, 삶의 보람은 소유물이 아니라 삶이 빚어내는 특수한 체험이다. 정치적 권력, 물질적 부,그리고 사회적 명예가 아무리 귀중하더라도 그런 것들 자체가 인생의 의미일 수 없으며, 장수와 건강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삶의 보람일 수 없다. 인생의 의미, 삶의 보람은 소유가 아니라 충족될 수 있는 경험을 지칭한다.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누구나 어디서고 인생의 의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더라도 한없이 푸르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문득 의식하면서 나는 행복함을 느낀다. 시원한 가을 바람이 겨드랑이를 스쳐갈 때 나는 살아 있는 환희를 느낀다. 어느덧 주홍빛이 든 감들이 다닥다닥 달린 감나무에서 그러한 미적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데 삶의 보람을 느낀다. 녹음이 짙은 깊은 산 계곡을 산책하면서 나는 인생의 푸짐한 의미를 느낀다.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 한 권의 철학적 저서 혹은 문학 작품을 읽었을 때 어찌 인생의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랜 고심스러운 생각 끝에 신선한 이미지를 포착하고 참신한 낱말을 발견한 시인이 있다면 그러한 창작 활동말고 다른 어디에서 그의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많은 준비를 한 덕택으로 한 시간의 멋진 강의를 했다고 확신했을 때 이보다 더 흐뭇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교사나 교수를 생각해보기 어렵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꽃이나 카드를 받았을 때보다 더 절실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젊은 애인을 상상해볼 수 없다. 그렇게도 아끼는 자식이 공부를 잘하고, 어느덧 커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어떤 부모가 인생의 의미에 철학적 회의를 던질 수 있겠는가? 20리나 되는 시골길을 걸어 학교에 늦지 않고 제 시간에 맞춰 갔을 때 느꼈던 보람이 생각난다.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정신없이 잡던 그때의 경험, 장마 후 개천에서 물에 텀벙 뛰어들어 놀 때 느꼈던 기억들은 내 인생의 살아있는 의미이며 내 삶의 절실한 보람이 아니었다면 무엇이었겠는가?
우리는 삶을 보류하고 삶을 준비하는 데 열중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내일 그리고 먼데서 기다리고 있지 않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의 이 삶 외에 다른 데 또 하나의 삶이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의 의미, 우리의 삶의 보람은 바로 여기 바로 지금 살아가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삶을 준비하며 일생을 보낸다. (우리는 보람 있는 지금 여기서의 삶을 살지 않고 보람 있는 삶을 위한 준비로 바쁘게 삶의 보람을 잃고 살아간다.) 그렇다. 지금 여기 내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데서 나는 삶의 의미를 의식하고, 내가 열심히 하는 일에 나름대로의 삶의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가을 바람이 서늘해진 오늘 저녁 산책길에서 별로 가득 찬 밤하늘에 새삼 황홀해하면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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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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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팔만대장경의 알기 쉬운 해설
1. 팔만대장경이란 무엇인가?
팔만대장경은 고려국신조대장, 즉 고려대장경의 속칭이다. 고려대장경을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 경판 총수가 8만여 장이 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또 불교에서 아주 많은 수를 지칭할 때 쓰는 팔만사천이라는 숫자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팔만대장경은 1995년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함으로써 이제는 '트리피타카 코리아나(Trippitaka Koreana)'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대장경이란 불교 경전 일체를 총괄하는 말로 일체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부처님의 설법을 담은 경, 불제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담은 율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해놓은 논을 모두 포괄해서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불교는 세계에서 그 경전 수가 가장 많은 종교이므로 대장경을 결집하는 일은 정말 어렵고도 방대한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한자 문화권의 각 나라들은 경쟁적으로 대장경을 조성해왔다. 그것은 당시 국력의 평가가 불교문화의 성숙도에 의해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국에서는 10여 차례의 대장경 조판사업이 있었고, 고려에서는 세 차례 그리고 티벳, 만주, 몽고, 거란, 일본에서도 대장경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선을 보였다.
그렇다면 세계에는 여러 가지 대장경이 존재하고 있는데 왜 우리의 팔만대장경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완벽한 보존 그리고 단 한 자의 오자도 불허하는 정교함과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팔만 대장경 역시 세계적인 보물이 되기 앞서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 현종때 완성된 초조대장경과 대각국사 의천이 주도하여 고려 숙종 때 완성된 속장경이 몽고군의 침입으로 모두 잿더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이에 절망하지 않고 계속 몽고에 저항하면서 왕실과 백성이 모두 힘을 합쳐 부처님의 가호를 빌어 외적을 물리치고자 고종 23년(1236)에 다시 대장경 조판을 시작해서 16년 만에 재조대장경, 즉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팔만대장경을 완성시킨다. 우리 선조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던 탓인지 팔만대장경은 그후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같은 대규모 전란 속에서 여러 번의 소실 위기를 맞으면서도 바로 어제 만든 것처럼 완벽한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실로 경이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를 떠나 모든 한국인들에게 팔만대장경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그런 연유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팔만대장경을 이루는 각 경판은 크기가 가로 약 69.7cm, 세로 약 24.2cm, 두께 약 3.6cm이며, 무게는 약 3.5kg 쯤 나간다. 그리고 그 재질은 자작나무와 후박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경판 위에는 사방 약 1.5cm 크기의 한자가 앞 뒤 양면 합해서 644자쯤 새겨져 있다. 이 경판은 모두 합쳐 81,240판이며 수록된 경전은 1,514종에 총 6,569권에 이른다. 하루 한 권씩 읽는다고 해도 18년이 걸리는 그야말로 방대한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팔만대장경은 근대에 이르러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바로 우리의 팔만대장경을 저본으로 해서 만든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이 세계적인 정전으로 불교학계에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장경연구소가 전 국민의 성원 속에서 팔만대장경 전산화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적어도 2000년에 완성할 전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우리의 팔만대장경이 예전의 그 명성과 지위를 다시 찾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리고 해인사의 장경각의 겉모습만 보고 대장경을 직접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동국대 영인본 고려대장경(전48권)을 찾아보는 것도 보람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자로만 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일반인들은 동국대역경원에서 간행한 '한글대장경'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한글대장경'은 곧 완간될 예정이므로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대장경을 완전히 일독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려드린다.
2. 팔만대장경과 설화
총 1,514종의 방대한 경전을 담고 있는 팔만대장경은 대승삼장과 소승삼장으로 대별할 수 있다. 삼장이란 '경율론'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소승삼장에 속한 경전들은 주로 역사적인 실제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담고 있으며, 대승삼장은 초월적이고 영원한 존재로서의 부처님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부처님이 경을 설한 형식, 방법, 순서 또는 의미, 내용 등을 따라 분류하는 방법을 교판이라고 하는데, 이 교판은 특히 중국불교에서 발전한 것으로 여러 가지 분류법이 있다. 여기에서는 천태종의 개조인 지의대사의 오시교를 잠깐 소개해 보기로 한다.
1) 화엄시: 부처님이 성도한 직후 21일간 화엄경을 설한 시기.
2) 녹원시: 화엄이 이후 12년간 소승의 아함경을 설한 시기.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을 시작한 곳이 녹야원이므로 녹원시라고 부르는 것이며, 설한 경명을 따서 아함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3) 방등시: 녹원시 이후 8년간 유마경, 금광명경, 승만경, 능가경, 무량수경 등의 방등부 경전을 설하신 시기.
4) 반야시: 방등시 이후 22년에 걸쳐 제부의 반야경을 설하신 시기.
5) 법화열반시: 부처님이 최후 5년간 법화경과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열반경을 설하신 시기.
이처럼 천태오시교를 통해 팔만대장경을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누어볼 수도 있다. 그리고 좀더 복잡하게는 팔만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경전의 형태를 형식과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12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을 일러 12분교라고 한다.
1) 수트라(sutra):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경을 의미하며 반야심경처럼 사상적으로 의미가 완료된 경전을 일컫는다.
2) 게야(geya): 중송이라고 한역하며 산문 경전의 내용을 거듭 시어체로 표현한 것으로 법화경과 화엄경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대승경전이 여기에 속한다.
3)가타(gatha): 법구경처럼 완전히 시적 언어로만 이루어진 경전을 가리킨다.
4) 우다나(udana): 다른 이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종교적 체험을 이야기하는 내용을 담은 경전.
5) 아브타다르마(abhta-dharma): 범부는 경험하지 못하는 깨달은 자만의 독특한 경지 등을 설명하고 있는 경전.
6) 이틴타카(itinttaka): 부처님과 여러 제자들의 전생 인연담.
7) 니다나(nidana): 특별한 인연 때문에 설하게 된 경전.
8) 아파다나(apadana): 비유로써 설명하는 경전.
9) 자타카(jataka):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10) 비아카라나(vyakarana): 부처님의 제자들이나 재가 신자들이 후세에 성불하리라는 내용을 담은 경전.
11) 바플리아(vaplya): 우주론 및 인생론을 철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경전.
12) 우파데사(upadesa): 논서를 가리킨다.
사실 팔만대장경 속에 있는 수많은 경전들은 주로 출가자 즉 비구와 비구니를 위한 것들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운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이 일반 대중을 멀리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는 아니다. 다만 불경의 결집이 승가차원, 즉 출가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처님이 일반 대중들을 위해서도 아주 쉬운 말로 가르침을 전했던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이 바로 불전 속에 남아 있는 설화들이다. 이러한 설화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을 빌어 불법의 핵심을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있다. 팔만대장경 속에는 이러한 설화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런데 위에서 한 분류에 의거해볼 때 설화가 비교적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은 소승삼장 그리고 천태오시교 에 따르자면 녹원시, 또 12분교에 따르자면 이틴타카, 니다나, 아파다나, 자타카, 비아카라나 등이라고 할 수 있다.
3. 본서에 인용된 주요 경전에 관한 이야기
ㄱ. 현우경
현우경은 고려대장경 이외의 대장경에는 현우인연경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현우경은 송나라 때 스님 여덟 명이 우전국에 가서 여러 법사들의 강의를 듣고 각자가 들은 바를 번역하여 집성한 것이다 .따라서 현우경 같은 경전은 산스크리트 어 원본이 동일한 제목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현우경은 찬집백연경 그리고 잡보장경과 함께 불교 설화 및 비유문학의 3대 대작으로 불리고 있다. 찬집백연경은 이름 그대로 '백 가지 인연담을 담은 경전'인데, 현우경에 있는 설화 10가지가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보이고 있다. 잡보장경에는 모두 합해 121가지의 설화가 들어 있는데, 이 경전의 특징은 설화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중에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란타왕과 나선비구 그리고 카니시카왕과 마명보살 등의 실존 인물이 출현한다. 다음으로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으로 본생경이 있는데, 이것은 팔리 어 삼장에 속해 있는 경전으로 무려 550편의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본생경은 온전하게 그대로 한역된 것이 아니라 생경, 현우경, 잡보장경 등에 부분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육도집경 역시 여러 가지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전으로 유명하다.
ㄴ. 법구비유경
법구비유경은 법구경과 거의 동일한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법구경은 운문으로 되어 있는 게송들만 모아놓은 경전이지만, 법구비유경은 그 게송들이 설해지게 된 전후사정을 싣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또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불경이 바로 법구경이다. 그이유는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간결한 시어로 기초적인 불교 교의를 쉽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법구경은 팔만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한역 법구경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주로 팔리 어 법국여, 즉 '담마파다'에서 번역된 것이다. 참고로 팔리 어본은 26장 423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역 법구경은 39품 750게송이 들어 있다.
ㄷ. 아함경
아함경이라고 하면 흔히 한 권의 경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아함경은 아함부에 속하는 장아함경, 중아함경, 증일아함경, 잡아함경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 사아함은 북방불교에 전해진 것으로 모두 183권 2,088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현재 동남아시아의 불교국에 전승된 오아함은 장부, 중부, 상응부, 증지부, 소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속에 포함된 경전의 총수는 무려 5,274경이나 된다. 북방불교에 전해진 사아함과 남방불교에 전해진 오아함은 그 내용과 구성이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함경은 불교 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원시불교 연구에 더없이 중요한 원전이 되고 있다. 또 신격화된 부처님이 나타나는 후기의 대승경전들에 비해 가장 인간적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 이 아함경은 주로 불교의 근본개념인 중도, 팔정도, 사성제 그리고 삼법인 등을 소박하고 간결한 문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ㄹ. 사십이장경
사십이장경은 최초의 한역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사십이장경의 이름은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간략하게 풀이하고 있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경전은 여러 경전에서 요지를 추려 뽑은 것이기 때문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경의 서두에 따르면 후한의 명제가 어느 날 밤 온몸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신인이 궁전으로 날아들어오는 꿈을 꾼 후 신하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신하는 저 멀리 천축이라는 나라에 부처님이라는 성인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신인이 부처님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에 명제는 대월지국에 사신을 보내 불경을 얻어 오게 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십이장경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매우 짧고도 재미있는 비유를 담고 있는 백유경은 백구비유경 또는 백구비유집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름대로 하자면 백 가지 비유가 들어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98가지의 비유가 들어 있다. 그리고 팔만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잡비유경은 이 경전의 이역본이라고 한다.
ㅁ. 법원주림
법원주림은 총 일백 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당나라 때 도세법사가 10여 년에 걸쳐 여러 경전에 실려있는 모든 사항을 종류별로 나눠 집대성한 책이다. 또 이 책은 세부 항목마다 그 전거와 출처를 낱낱이 밝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경율이상 역시 6세기 경에 중국에서 찬술된 책으로 불교 학습에 중요한 사항들을 50권으로 정리해놓은 일종의 불교 백과사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경율이상에서 언급하고 있는 경전 중에는 상당수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어 한역 경전의 유통사를 연구하는데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ㅂ. 대당서역기
이 책은 당나라 현장스님이 인도 내에 있는 70여 개국을 돌아보고 당시인도부교의 현황과 불교유적 및 그에 따른 전설들을 충실하게 기록한 것이다. 상당히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당시 인도불교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장스님의 여행 기간은 총 17년이었고, 방문한 지역은 서쪽으로는 현재의 이란 그리고 남쪽으로는 스리랑카를 망라하는 광활한 지역이었다. 이 대당서역기는 법현전 그리고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동양의 3대 여행기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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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결론
혁명이란 순리에 따라 침착하게 진행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해야 할 일은 많고 남아있는 시간은 짧은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큰 업적을 만들어내려 하니 무리가 따르고 과격한 행동이 일어난다. 역사는 항상 교훈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혁명을 주동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제대로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혁명도 일어나는 모양이다.
혁명은 부드러운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쭈그렁 밤송이 건강에 대해 관심이 높아가는 시대이다. 건강에 스트레스는 악이고 즐거움은 선이라고 한다. 과연 꼭 그런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드는 까닭은 건강하게 활동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는 일이 많은 반면, 잔병치레를 자주하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노자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킨 장자의 이야기를 보자.
우산에 아름답고 곧게 자란 나무가 많았다. 그 나무가 곧고 아름다우므로 사람들이 재목으로 쓰려고 마구 도끼질을 해댔다. 나무가 없어지자 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소나 양을 방목하여 마구 뜯어먹게 하였다. 우산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버리고 벌거숭이의 추한 산이 되었다. 쭈그렁 밤송이 삼년 가듯 완전치 못한 것, 보기 싫은 것은 그대로 놔두기 때문에 오래 간다. 곧게 자란 나무는 그럴 염려 없이 제 수명을 다한다. 도덕경의 ‘곡즉전’이란 말은 이런 경우를 가리킨다. 건강관리에 이 이야기를 도입해 보자. 건강하다고 몸을 마구 써보라. 우산과 같이 쉽게 망가진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한 산도 자꾸 관리를 하다 보면 아름다워지듯이 우리 몸도 마찬가지이다.
잔병치레 많이 하는 사람은 건강에 조심하기 때문에 오래 사는 데 비하여 건강한 사람은 건강을 과신하여 몸을 함부로 하기 때문에 갑자기 죽는 일이 많다. 항상 적절한 긴장과 자극, 건전한 위기의식이 있어야만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생기고 살아남을 수 있다. 논에 미꾸라지를 키울 때 한쪽 논에는 미꾸라지만 넣고, 다른 쪽에는 미꾸라지와 함께 메기를 키우면 메기를 넣어 키운 미꾸라지가 훨씬 더 통통하게 살이 쪄 있다고 한다. 미꾸라지들이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항상 활발히 움직였기 때문에 더 많이 먹어야 했고 그 결과 더 튼튼해졌던 것이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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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읽어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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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교실
제8 교시 글에도 업어치기가 있다. - 반이법, 도치법, 인용법, 문답법, 점층법, 열거법
1. 반대되는 말을 겉으로 내세우는 표현법- 반어법
어느날 무학대사는 왕좌에 앉은 이성계를 찾아 뵙고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이성계는 무학 대사를 시험해 보기 위해, "자세히 보면 대사는 영락없는 돼지야" 하고 말했다. 그것은 무학대사에 대한 심한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무학 대사는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빛 하나 변함 없이 이렇게 말했다.
"상감께서는 부처님 같사옵니다"
그 말을 듣자, 이성계는 어허허허 하고 너털거렸다. 자기가 그를 돼지 같다고 비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부처님 이라는 최고의 존재에 비유해 준 것이 통쾌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승려라는 것들도 권력 앞에서는 어찌할 수 없이 아부, 아첨을 하는 무리로구나. 하고 무학 대사를 경멸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며칠 뒤, 한 신하가 대사를 추궁 하였다.
"대사께서는 어찌하여 그러한 모욕을 당하고도 화 한번 내지 않고, 도리어 왕에게 아첨만 하셨소이까?"
무학 대사는 신하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돼지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는 법이니까요"
옛날 이름 높은 스님들이 주고 받았다는 말(선문답)들에는 이렇듯 우리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씻어주는 맛이 있다. 그렇다면 위의 이야기에 쓰인 비유법은 무엇일까? 이성계가 "대사는 영락없는 돼지야"라고 말한 것은 언뜻 보기에 하나의 은유법에 지나지 않는다. 또 무학대사가 "상감께서는 부처님 같사옵니다."라고 한 것도 직유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훗날 무학 대사가 신하에게 한 말에는 어마어마한 뜻이 숨어 있었다. '돼지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는 법이니까요' 이말로 인해 그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말의 뜻은 정 반대로 달라지고 만 것이다. 즉 무학대사를 돼지라고 말한 이성계는 돼지처럼 천하고 안목없는 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이성계를 부처님이라고 한 무학 대사는 부처님 처럼 지혜로운 눈을 가진 자비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나타내려는 뜻과 반대되는 말을 앞으로 내세우는 표현법을 반어법 이라고 한다. 이것은 겉으로 드러낸 내용과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내용을 반대로 말함으로써 표현 효과를 높이는 방법이다. 가령 어른이 타이르는 말을 듣지 않은 채 장난치고 까불거리던 아이가 땅바닥에 넘어졌다고 하자 그때, 어른들은 대게"아이고 잘 한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으로 잘 했다는 뜻'도 아니고, '아이고 네가 다치니 내 마음이 시원하다는 뜻'도 아니다. "그것 보아라, 어른 말씀을 듣지 않더니 그렇게 다치지 않느냐? 앞으로는 어른의 타이름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 알겠느냐?" 하는 뜻인 것이다. 이러한 반어법에는 상대방을 비꼬아서, 말하려는 의미를 한층 더 강조하는 익살과 해학과 유머가 담겨 있다. 이것은 또한 지리하고 건조한 글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이야기의 끝 부분에서 반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2. 문장의 순서를 바꿔 놓는 표현법 - 도치법
.보고 싶어요,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
.보십시오, 얼마나 장엄한지를.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왔구나, 봄이
.울렸네, 새벽종이.
.아아 잊으랴, 어찌우리 이 날을.
이 문장들은 모두 문장의 배열 순서를 앞뒤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 바뀐 순서를 제자리에 놓으면 다음과 같다.
.붉은 산이, 그리고 흰 옷이 보고 싶어요!
.얼마나 장엄한지를 보십시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봄이 왔구나.
.새벽종이 울렸네.
.아아, 우리 이날을 어찌 잊으랴.
그런데 사람들은 왜 차근차근 순서대로 말하지 않고 그 순서를 바꾸는 것일까? 그것은 누구나 자기가 강조하고 싶은 말을 먼저 뱉아 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앞에 내세운 말이 그만큼 상대방에게 먼저 가 닿으므로 돋보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말하자면, 위의 보기에서는 '보고싶어요','보십시오','안녕하십니까','왔구나','울렸네','아아 잊으랴'를 강조하려 한 것이다. 이렇듯, 문장의 배열 순서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강한 인상을 주는 표현법을 도치법 이라고 한다. 이것은 흔히 특정한 내용을 강조하려 할 때나, 문장에 변화를 주려고 할 때에 쓴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김상헌의 시조
.그 색시 서럽다 그 얼굴 그 동자가
가을 하늘 가는 도는 바람 씻긴 구름 조각
핼쓱하고 서느라워 어디로 떠갔으랴
그 색시 서럽다. 옛날의 옛날의
-김영랑의 <그 색시 서럽다> 중에서
3.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표현법 - 인용법
요즘 우리는 국어 시간을 참 쓸쓸하게 보내고 있다. 국어 선생님이 편찮으셔서 며칠째 출근을 못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국어 시간에는 뜻밖에도 예쁘게 생긴 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기다란 머리칼을 등 너머로 너풀거리며 우리 앞으로 사뿐사뿐 다가오시는 선생님, 그분이 오늘부터 우리 반 국어 수업을 맡으셨다는 게 아닌가 선생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반 아이들은 '와아!'하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이들은 먼젓번 국어 선생님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새 선생님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한 껏 들떠 술렁거렸다. 그 바람에 국어 시간 5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후딱 흘러가 버렸다. 아이들은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전에 없이 책상을 두드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화장실에 갔다온 소식통 빠른 한 아이가 대뜸, "야야야, 들어봐! 지난해 그 선생님 한테서 배운 3학년 형들이 그러는데, 그 선생님 되게 무섭다더라. 숙제를 엄청나게 많이 내는데, 만일 안 해 오면은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때린대 하고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우리 반 아이들은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여기에서 국어 선생님이 무서운 분이니 쉽게 생각하지 말을 전하는 소식통 빠른 아이는, 행여 친구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을까 싶어 3학년 형들의 말을 인용했다. 이처럼 글을 쓰는 사람도 동서고금에 널리 알려져 있는 성인이나 유명한 시인, 또 소설가나 철학자 정치가 들이 한 말을 끌어다가 자기의 말을 합리화 시킬 때가 있다. 다시말해, 다른 사람의 말이나 격언, 속담, 일화 등을 인용하여 자기 주장을 뒷받침 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법을 우리는 인용법 이라 한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필 때 흔히 쓰인다. 적절한 인용은 자기 주장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또 글의 흐름에 변화를 주어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타고르가 '한국은 동방의 등불' 이라고 말했듯이......
.석가모니가 마음을 비우라고 한 것처럼, 우리도 겸허한 마음으로 그 일에 착수 해야 한다.
. 예수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듯이, 헛욕심을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게 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누군가 그랬듯이......
.어느 성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들이 자기를 마찬가지로 사랑해 준다고 말했듯이......
.'인생은 한권의 책이요,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매일 그 한페이지를 창작한다.' <파랑새>의 저자 메테를칭크의 이말은 인생을 책에 비유한 명언이다.
4.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표현법 -문답법
.우리는 왜 자연을 보호해야 합니까? 그것은 자연 곹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파도는 한 순간에 몰아쳐 와 모래톱을 휩쓴 뒤 바닷물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만약 파도가 없다면 얼마나 밋밋하고 따문하고 지리할까? 파도는 바다를 움악적이고 경쾌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에게까지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그 때문에 우리는 마음이 답답할 때면 바다를 찾아가곤 한다. 문답법은 바닷가 모래밭의 파도와도 같은 것이다. 글을 쓰다가 답답하고 지루하다 싶으면, 글쓰는 사람이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문답법을 써 보라. 이것은 답답하고 지리한 글에 변화를 줄 뿐만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 문답법은 읽는 이들을 글 속으로 끌어들이는 강한 힘이 있어서 연설문에 많이 쓰인다.
(1) 여러분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정녕 누구를 위해서 하는 공부인가. 부모를 위해서인가, 형제들을 위해서인가.
(2)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이며, 또한 나의 발전을 위해서 이싿. 그리고 나의 발전은 나라와 민족과 인류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다.
(1)에서는 질문을 던져서 읽는이의 생각을 유도한 다음, (2)에서는 대답을 했다. 그 대답은 곧 글쓴이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은 우리 사회에 대하여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 우리를 변혁 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치 사회적 변혁의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 사회적 변혁에 티끌만큼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고, 그 재현은 이 세계의 창조걱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 이태주의 <연극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중에서
.선이란 무엇인가? 위엄을 바라는 마음을 높이는 모든 것이다. 사람이 가진 힘 자체이다. 악이란 무엇인가? 악함으로써 일어나는 일체의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위엄이 커짐을 느끼고 저항을 이겨 내었다고 느끼는 일이다.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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