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3 - 최명희
15. 가슴애피(3/7)
“흐응, 내가 그 속 모르는 중 아능갑서. 어디 귀 빠진 눈먼 년, 중인 집구석으서라도 데릴사우로 데레가기 바래는 거이제? 앉은뱅이 꼽사라도 좋응게. 그리 장개가서 벵신 뒷바래지험서 저도 벵신 노릇 따라 허고라도, 상놈 소리 안 듣고 싶은 거이제?”
“핫따, 거 시끄럽소.”
드디어 더 참지 못하고 홱 돌아누워 버리는 춘복이 서슬에 흠칫 밀려나며 그네는 모질게 해붙인다.
“그러먼? 그러머언. 원뜸에 강실이가 자개 차지 될 중 알었당가? 거그는 대체나 더 좋겄네? 양반 중에 양반잉게. 맵씨 좋고 태깔 좋아 향내가 난당가 냄새가 난당가, 남원골에 쩌르릉 허는 양반의 따님인디, 거그다가 몸뗑이도 헌 것 되야 부렀겄다. 온전헌 시집 못 갈 것은 불속을 디리다보디끼 훤허고. 나이는 먹고, 오란 디는 없고, 잘 되았네. 업어오지 그리여? 오매불망 정든 님은 기생첩을 옆에 찌고 전주로 도망가 부렀담서, 더 잘 되았네 그리여.“
순간 춘복이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쩍 빛났다. 마치 부싯돌을 맞부딪친 것 같은 시퍼런 빛이었다. 그 느낌이 옹구네에게까지 전해져 오는 섬뜩하고도 예리한 안광에, 오히려 말을 내쏘던 그네가 멈칫하고 몸을 움츠린다.
“왜 그런당가?”
벌떡 일어나 앉는 춘복이의 기세에 옹구네가 뒤로 밀리는 소리로 묻는다. 한 대 후려치는가 싶었던 것이다.
“아니라요.”
“내가 머 못헐 말 했당가?”
아무래도 쭈밋거리는 투로 춘복이의 기세를 살피던 그네는 주섬주섬 두루치를 챙긴다. 이럴 때는 길게 말하는 것보다 얼른 일어나 집으로 가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둠 속이지만 치마 솔기가 뒤집힌 채 입고 나갈 수 없는 노릇이라 더듬거리면 옷을 간추린 그네는
“나 갈라네, 그런디 한 마디는 허고 가야겄어. 여자가 마음에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안허등게비? 내가 암만 막 사는 년이라고는 허드라도, 쓸개끄정 썩은 년은 아닝게, 내 오장육부에다 바늘 꽂든 말드라고. 무신 일을 헐 때 허드라도, 나를 살살 달개감서 히여. 나 설웁게 말고오.” 하며 못을 박는다.
“조심해서 가기요.”
다른 때 같으면 그 말 정도는 꼭 하는데 오늘 밤은 그조차 없다. 여전히 춘복이는 눈에 불을 켠 채로 무엇엔가 넋을 흘린 듯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 모양을 힐끗 바라보고는
“나는 갈랑게.”
하더니 옹구네는 덧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쌔앵 몰아친다.
“아이고매 호랭이 물어가겠네. 오살 노무 바램이 기양 살을 비어 갈라고 그러네에.”
거기다가 또 무어라고 구시렁거리며 짚신짝을 꿰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농막 안은 괴괴해진다. 이따금 회초리로 후려치는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다. (...강실이...?)
아까 옹구네가 내쏘던 말이 그대로 춘복이 가슴 복판을 쒜뚫고 있는 것이다. 뚫린 복판에 꽂힌 이름은 곧 화살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소스라치게 놀라운 발견에 그는 아직도 흥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화살 맞은 자리에서 선혈이 쏟아지는 것 같은 뒤설렘을 가누지 못하는 춘복이는 벌떡 일어나 덧문을 열어젖히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동짓달의 매운 바람이 오히려 그의 더운 몸을 식혀 주기에는 알맞은 것이었다. 막힌 피가 터지면서 철철 흘러 넘치는 흥건함에 자신의 몸을 내 맡긴 채 숨도 쉬지 않고, 매안 마을의 종가 쪽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검푸른 밤하늘의 별들이 소름 끼치게 영롱한 빛으로 반짝였다. 그 별들을 쓸며 바람이 허공을 날카롭게 가를 때마다, 별빛은 더욱 차갑게 깜박인다.
매안 문중의 마을은 여기 거멍굴에서는 아득할 만큼 멀어 보인다. 아니, 멀다기보다는 보이지 않는다는 편이 옳았다. 불이 밝혀진 방문이 하나도 없어 그렇게 짐작되기도 하겠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닌, 물을 건너고 굽이를 돌아 엄중한 막을 치고 저만큼 있는곳. 문종. 그 코앞에 바싹 엎드려 있을 때도, 대문간 앞을 지날 때도, 그곳은 아득하기만 했었다. 어쩌다 무슨 심부름 때문에 그들의 앞에 마주 대하고 있을 때도, 그들은 들판 너머쯤에나 있는 사람들처럼 아득했다. 그러나 지금 춘복이는, 두 팔을 뻗어 움키면 그 문중의 지붕들이 거머쥐어질 것만 같았다. 그의 우옥스러운 이 짚신발로 걷어차면, 삭은 수숫대 올바자처럼 넘어갈 것만 같은 오류골댁 사립문 쪽을 그는 매섭게 쏘아본디. (내가 왜 그 생각을 진작에 못했이까. 내가 왜 그것을 몰랐이가.) 춘복이는 주먹을 부르쥔다. 그는 지금 늑대처럼 포효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다. 그가 고함을 지르면 산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거그가 그 사램이 있는 것을 내가 이때끄장은 넘으 일이라고 생각했는디, 그거이 아니여, 그리여. 그렇제, 그거이 아니여.) 그의 눈앞에 강실이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항상 먼 발치에서 무슨 죄 짓는 사람처럼힐끗 훔쳐 보았을 뿐인 그네였지만, 그리고 그나마도 좀처럼 바깥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라서 정말이지 어쩌다 한두 번 밖에 본 일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상상 꼭대기 구름 속에서만 노닐다가 꿈결인 양 언뜻 모습을 비치던, 어쩌면 이야기 속의 선녀 한가지로 있는 듯 없는 듯하던 그네. 공배아재나 아짐이 그 이름만 입에 올려도 송구스러운 듯 얼굴에 화기를 띠며 말하던 사람. 우러러 섬기며 빈말이라도 한 마디 비난도 하지 않던 평순네. 심지어 옹구네조차도 그 태깔만은 인정하고 시샘을 참지 못하던 사람이 바로 강실이 아닌가. 거멍굴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거리고 있는 대갓집의 골기와 지붕 아래 오붓하게 감추어진 채, 언감생심 이쪽에서 감히 건너다보지도 못하게 감싸여져 있던 사람. (그것도 인자 예날 이얘기다.
청암마님 돌아가세 바라. 아직끄장은 그래도 그 훈짐이 끊어지들 안했응게 버티고 있었지마는 오늘 니얄 숨 떨어지먼 그 집도 헛간 된다. 누가 지킬 거이냐? 배깥이서 드는 도적은 지켜도 안에서 나는 도적은 못 막는다고 그러등가? 내가 다 안다. 내가 다 알어. 율천샌님 병약허고 새서방은 전주로 달어나 부리고. 거그다가 강실이는 인자 이 마당에 어디로 시집을 갈 꺼이냐. 소문이랑 거이 얼매나 무선 거인디. 허깨비맹이로 뵈이도 안헝 거이 생사람 목심도 잡는 거인디 말이여. 거그다가 그거이 보통 일도 아니고 들통나면 즈그 집안 낯바닥에 똥칠허는 거인디.벙어리 냉가슴이나 앓겄지. 쥑이도 살리도 못헐 사램잉게. 강실이는 오도가도 못허고 앉은 자리서 말러 죽게 생겠을 거 아닝가?) 춘복이의 주먹이 안으로 오그라진다. 그는 마치 병아리를 채려는 솔개처럼 오류골댁 마당 나직이 떠서 빙글빙글 도는 자신을 본다. 발톱을 모은 그의 눈빛이 번뜩인다. 더욱이 그 병아리는 지금 맥없이 한쪽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기회를 훔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춘복이는 자기도 모르게 보르르 몸을 떤다. 무엇인가 사무치며 치밀어 올라 목이 뜨겁다. 그것은 희열이었다. (내가 이날을 이때끄장 지달렀능게비다. 그럴라고 이 거멍굴에 엎어 져서 살었능게비다. 부모가 있이까. 성지간이 있이까. 아무껏도 없는 바닥을 못 떠나고, 허허벌판 추운 시상을 모진 맘 먹고 친덕꾸레기로 살었다마는, 나라고 언지끄정 상놈으로만 살겄냐. 나는 죽어도 상놈 자식은 낳기 싫었능게 이 육시랄 노무 상놈 꺼죽 훨훨 벗어 내부리고, 사램이 사는 것맹이로 살고 자펐다. 무지헌 곰도 하눌님 아들을 만나서 인연을 지으먼 곰껍닥을 벗고 사램이 되는디, 나도 언지든지이 껍닥을 벳게 내고 사램이 되게 해 줄 여자를 만날라고, 그럴라고 지금끄장 살어왔다...)
춘복이는 어금니를 지그시 물며 다시 한번 오류골댁 쪽을 노려본다. (작은아씨. 내 자식 하나 낳아 주시오. 나는 작은아씨한테 양반 자식 하나 얻고, 작은아씨는 나한테 상놈 자식 하나 얻으시요.) 칼로 새기듯 또박또박 한 마디씩, 끓어 오르는 심정을 오류골댁 쪽의 하늘에 새기는 춘복이는 다시 한번 부를 떤다. (인자는 시상도 많이 변해 부렀응게요. 언지끄장 같은 시상이 아니여요. 천 년 묵은 낭구도, 죽고 나먼 그 썩은 자리가 개미굴이 되고 마는 거잉게. 사램이 살자면 팔짜가 뒤재비 칠 때도 있겄지라우. 사램이 비얌도 낳고, 곰이 사람으로 환생도 하고, 애초에 인연이랑 거이 맹랑헌 거 아닝교? 산골짝으서 나무 패든 나무꾼도 선녀랑 맺어지면 두룸박을 타고 하눌로 간다는디. 작은아씨는 비얌 한 마리를 낳고, 나는 곰껍닥을 찢어 내고 사람 한마리 낳고, 그렇게 피를 섞어야 나도 두룸박을 타고 승천을 헐랑갑소.) 새파란 불꽃이 일어나는 가습팍으로 기와 지붕이 무너져 내린다. 그때 춘복이의 귀에 찰진 옹구네 목소리가 엉긴다. 마침 사람들이 아무도 없고 평순네와 옹구네 둘이서 정짓간에 허드렛일을 하던 날이었다.
춘복이가 막 장작을 한 짐 부려 놓을 때 한 말이다.
“참마로 마님도 젊었을 적으는 넘 못헐 일 많이 허겠다등만.”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
“누가 그랬다등만 그리여. 숭년으, 이 집 대문 앞에서 누구라등만, 나는 듣고도 넘 일이라, 하이튼지간에 숭년으 장리 쌀 이자를 못 갚어 갖꼬 논밭을 기양 눈 버언히 뜨고 이자로 뺏김서, 이 집 앞으 와서 죽었다등가아, 거랭이가 되서야 타관으로 떠났다등가, 그럼서 저주를 했드리야. 오냐 인제 두고 바라. 느그집 곡간에 곡식이 썩어 나도 먹을 사램이 없어서 못 먹는 날이 올 거이다. 내 생전에 그 꼴을 못 보먼 죽어서 혼백이라도 남어 갖꼬, 느그집 씨구녁을 막어 부릴 거이다.”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옹구네는 평순네가 휭하니 뒤꼍으로 나가 버리자 그만 제풀에 머쓱해졌다.
“아이고매, 호랭이. 벨라도 얌전을 떨고 자빠졌네. 안 듣는 디서는 나랏님 숭도 본다는디 지께잇 거이 무신 충신 났다고... 허이고 차암, 즈그 씨어씨등갑다.내가 머 그른 말 했간디? 밥 한 숟구락이라도 얻어먹을랑게,속도 없는 것맹이로 주뎅이 다물고 살제마는 그런다고 내가 머 없는 소리 지어 낸 것은 아닝게. 그러고 이날끄장 차알찰 시퍼렇게 물이 넘치든 청호 주수지가 멋 헐라고 작년 올에사 말고 그렇게 거북이 등짝맹이로 짝짝 갈러졌겄어? 이거이 다 징조여 징조. 이 대갓집도 인자 운수가 다 된 거이제 머. 운수 소관이야 일월성신이나 아시제 누가 알거잉가. 가만히 앉어서도 산데미 같은 노적가리가 지 발로 걸어오는 운수도 있능 거이고, 쇠시랑 갈고리로 찍어 붙들어도 임자가 따로 있는 운수가 있능게...두고 봐라. 이집 운수는 바닥이 날텡게. 지금이라도 청호 주수지으 가 보라제. 집채 같은 조개바우가 헐떡헐떡 그 넓은 저수지 물을 다 둘러 생키고 말었는디? 조개가 머어이간디, 조개가! 그 주뎅이에서 물을 펑펑 쏟아 내도 시언치 않은디, 이것은 됩대 물 밑바닥끄장 죄다 핥어먹고 패싹 말려 놨이니, 재산이고 자식이고 불어 가기는 애저녁에 그란 거이제. 청암마님 돌아가심서 집안 안팎 운수도 다 한끕에 말어갈 거여. 허기사 머 청춘에 독수공방도 피멍이 맺히게 독이오를 일인디 자개 속으로 난 자식도 하나 없는 이놈의 시상에다가 누구존 일을 시키자고 복을 냉게 놓고 가겄냐. 나 같어도 기양은 안 갈 거이다. 좋은 드끼 넘 보는 디는 기세 좋게 살었어도 그 한 펭상이 어뜬 세월이었겄어? 그 양반이 인자 그 한풀이를 꼭 헐 거이다. 두고바아. 인자 두고 보라고. 내 말 헐 거잉만.
엉구네는 솔가지를 툭툭 분질러 아궁이에 쑤셔 넣는다. 아궁이의 불길은 옹구네 낯바닥을 빨갛게 비추며 탄다. 그러다가 후욱 불길이 밀려 나오기도 한다. 밀려 나온 불길이 솟구치며 춘복이의 가슴에 붙는다. 새빨간 불혓바닥이 그를 둘러 삼킨다. 그렇게도 옹골지게. 저주에 가까울 정도의 모진 예언을 옹구네는 퍼부어댔었다. 그러나, 그 예언을 증명해 주는 어이없는 일은 며칠 뒤에 정말로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놈아아, 너도 위로넌 부모를 뫼시고, 아래로넌 자석 손자를 키우는 놈이라먼 이렇게 헐 수가 있단 말이냐아. 내가 오널은 사생결딴을 낼라고 쫓아왔다. 니가 아무리 가문 좋고 재산이 많다고는 허지마는, 사람의 탈을 쓰고 이렇게는 못헐 거이다. 있는 사람의 문서에는 논 서마지기가 애기 콧구녁에 코딱지 같은 거일랑가 모리겄다. 그런디이, 우리 없는 사람은 그거이 아니여어, 그거이 아니라고오. 너느은 있는 재산에다가 귀 맞출라고 우리 논을 샀겄지마안, 우리는 목심을 팔어 넹긴 거이다아.아이고오. 아이고오, 이런 천하에 날도적놈아아. 칼만 안 들었제에, 이거이 강도나 한가지제 어디 사람의 지서리란 말이냐. 어서 내 논 문서 내놔라. 논문서 내놔아. 왜애, 아까워서 그리는 못허겄냐? 그러면 돈을 내놔얄 거 아니여, 돈으을. 눈도 하나 깜짝 안허고. 넘으 목심을 그렇게 둘러 생킬 수가 있을지 알었냐아? 니가아, 가문 있고 재산 있다고 하늘 무서운지를 모르능갑지마는, 내가 눈 뜨고는 안 당헌다. 그거이 어뜬 논이라고, 나락 모가지 시퍼렇게 섰을 때 산 것을, 이때까지도 돈을 안 준단 말이냐? 천지에 백설이 날리고, 냉돌방에서 자식 새끼가 얼어 죽었는디도, 이 에미가 눈 버언히 뜨고 그것을 쥑였다. 내 눈앞으서 그 에린 거이 배고프고 추워서 죽었다고오. 네 이놈, 너는 니 자식을 잘 멕일라고, 넘으 자식은 얼어 죽고 굶어 죽어도 좋단 말이냐. 이 천하에 날도적놈아. 그것도 우리 집 논 문서 말어갈 적으는, 금방 돈을 준다고 큰소리 땅땅 치고 가지가드니, 니 눈꾸녁으는 그거이 종우 쪼각으로 뵈이느냐? 그거이 종우 쪼각으로 뵈이여어? 공으로 뺏어가다시피 해 놓고는, 그나마도 철을 넹기고 자식을 얼려 쥐이드락 돈을 안 주먼 어쩔 거이냐, 어쩔 거이여?”
쇠스랑을 거꾸로 치켜 든 쇠여울네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머리를 산발하고 저고리 앞자락은 풀어 헤쳐졌는데, 속에는 맨살이다. 쇠여울네 눈은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금방이라도 핏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낯바닥이 누렇게 뜬데다가 검은 기미가 버섯처럼 피어 있어 차마 볼 수가 없는데 입술에는 허연 거품이 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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