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13. 어둠의 사슬(1/4)
캄캄한 밤, 검은 냇물이 흐른다. 누르는 어둠에 기가 질린 듯 물 소리도 나지 않는다. 다만, 잠잠히 몸을 누이고 있는 물의 수면 위에서 비늘처럼 불빛이 번뜩인다. 어둠의 인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희미한 달빛인지도 모른다. 잠든 도시의 한쪽에서, 소리를 죽이며 남 모르게 흘러가고 있는 냇물은, 이따금 물결을 뒤채며 번뜩이는 불빛을 날렵하게 삼켜 버린다. 흡사 순식간에 불빛을 잡아먹는 것처럼 보인다.그럴 때마다, 강모의 어두운 눈 속에서는 불빛이 떴다가 지곤 하였다. 방천에 오가는 행인도 끊긴 지 한참이나 되었으니, 짧은 여름 밤이라고는 하지만 시각은 꽤 깊어진 듯하였다. 방천에 줄지어 늘어선 버드나무의 늘어진 가지 끄트머리가 귀밑에 메마른 소리를 낸다. 아마 이 버들가지도 가뭄을 못 이겨 이파리를 말리고 만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삼십 몇 년 만이라든가 하는 이런 혹독한 가뭄만 아니었더라도, 지금쯤이면 콸콸콸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냇물에 목욕을 나온 사람들로 흥성거리며 넘칠 터인데. 낮에 보면, 냇물은 돌짝밭이 되어 버린 가슴을 앙상하게 드러낸 채, 목마른 돌자갈의 틈바구니를 간신히 적시며 흐를 뿐이었다. 그렇지만 밤이 되면, 어둠은 모든 갈증을 덮어 주고 천변을 어루만져 주었다. 어둠은 냇물 속으로 가라앉아 물결을 이루며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유끼, 너는 이 냇물이 흘러서 어디로 간다고 생각허느냐?"
강모는 곁에 앉은 여자를 돌아본다. 어둠 속에서도, 여자의 조그만 어깨와, 작은 얼굴, 그리고 둥글고 커다란 눈이 겁먹은 듯한 빛으로 흔들리는 것이 그대로 보인다. 그네는 대답이 없다.
"금강으로 간다."
강모가 나지막이 말한다.
"금강을 지나, 저 냇물은 바다로 간다더라. 서해 바다, 망망한 곳으로"
그것은, 오늘 처음 한 말이 아니었다. 지난 겨울, 칼바람이 살을 가르며 허공에서 비명을 지르던 날, 그는 오유끼를 데리고 이곳 다가정으로 왔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올 여름 이렇게 가뭄이 들려고 그러하였던지, 유독 겨우내 눈이 내리지 않은 채, 얼어붙은 지표와 빙판 같은 하늘이 시린 이빨을 허옇게 드러내며 떨었다. 그때, 오유끼의 얼굴은 납빛으로 죽어 있었다. 인력거에서 내려 오들오들 떨면서 어깨를 움츠리고 강모를 바라보는 오유끼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발가락까지도 오그리고 있는 오유끼의 어깨를, 강모는 팔을 벌리어 감싸 안았다. 순간, 애처롭다는 생각이 지나갔다. 정말로 그네는 한줌밖에 안되었다.
"추우냐?"
오유끼는 황망히 고개만 흔들었다.
"참새 같구나."
고개를 가슴에 박고 추워하는 오유끼의 귓바퀴에는, 보오얀 솜털이 민들레 씨앗처럼 일어서 있었다.
"가자."
강모는 그 귓바퀴에 대고 말하였다. 그의 입술 끝에, 얼음조각 같은 차가운 감촉이 부딪쳤다. 짧은 순간이었고, 추위 속에 오래 떨고 있었던 탓으로 당연한 일이었겠으나, 그것은 이상하게도 써늘한 여운을 남기었다. 그리고,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녹아들지 않고 남아 있는 작은 얼음 조각은, 일종의 낯설음이었다.
"귀가 얼었구나."
그때 바라본 냇물은 단도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허옇게 그러내며 얼어 있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방천에는 매운 바람이 바늘 끝으로 살을 에이며 지나갔다.
"오유끼. 저 냇물이 녹으면 흘러서 어디로 갈 것 같으냐?"
그렇게 묻고서, 그는 말했다.
"금강으로 간다."
강모의 말에 그네가 커다란 눈을 돌려 얼어붙은 냇물을 바라보았다.
"봄이 되면 저 냇물도, 네 귀도 녹을 거야."
오유끼는 웃었다. 그리고 작은 손으로 트렁크를 들었다. 트렁크는 그네의 몸집만이나 하였다. 그들은 마치 먼 곳에서 떠돌다가 돌아오는 나그네처럼 각각 양손에 트렁크를 들고, 다가산 기슭에 엎드린 동네 한옥의 골목으로 꺾어 들어섰다. 다가정은 부성의 문밖으로서, 서쪽 동네였다. 전주 부성 동쪽머리 만마관 골짜기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하는 전주천 물살은, 좁은 목을 지나, 강모가 내내 하숙하고 있던 청수정의 한벽당에 부딪치며, 각시바우에서 한바탕 물굽이를 이루다가, 남천교, 미전교, 서천교, 염전교를 차례차례 더터서 흘러내리며 사마교를 지난다. 그렇게 모래밭을 누비고 흘러오던 물결이, 긴 띠를 풀어 이곳 다가봉의 암벽 아래 오면 급기야 천만으로 몸을 부수며 물안개를 자욱하게 일으킨다. 용소에서 소용돌이를 치는 것이다. 그 소리는 암벽을 물어뜯으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검푸르게 서리를 트는 물살의 몸부림이, 무엇인가를 집어 삼키려 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실제로, 벌써 한 이십 년 전 일이지만 신유년 여름, 폭양 아래 훈련을 마친 일인 수비대 병사들이 다가봉의 절경 아래 이곳 용소에서 목욕을 하다가, 대낮에 사람들이 눈 뜨고 보는 앞에서 물에 빠져 죽은 익사자를 한꺼번에 두 사람씩이나 낸 일이 있었다. 훈련받은 장정 병사들이 그러할 때 일반사람들이야. 강모는 이곳을 좋아했다. 청수정의 한벽당에서부터 출발하여, 다리 건너 천변의 버드나무 그늘을 따라 초록바우 기슭을 끼고는 한참이나 내려오면 남쪽으로 건듯 완산칠봉 산 능선을 바라보면서 한가롭게 걸으면, 이곳에 당도하였다. 그는 틈이 날 때면 다가봉의 암벽 그늘에 앉아, 제 몸을 제 스스로 산산이 부수면서 시퍼렇게 멍들어 울부짖고 있는 용소의 물굽이 속을, 넋을 놓고 들여다보곤 하였다. 그럴 때면, 다가봉 기슭의 늙은 느티나무를 지붕 삼고 있는 천양정에서 쏘아올리는 화살이 과녁에 맞는 소리가 따악, 울려오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강모의 가슴에 와서 꽂히었다. 강모는 스스로 과녁이 되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화살을 맞았다. 그것은 이상한 쾌감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검푸른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가슴 복판에 응어리져 고여 있던 피멍이 터져 나가는 해방감이 그의 몸을 희열에 떨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용소의 물살에 가슴을 씻어냈다.
버들잎을 화살로 꿰뚫는다." 는 뜻으로 자못 상징적인 이름을 가진 이 정자는 조선조 숙종 때 세운 사정이었다. 이백오십 년이 넘는 세월을 머금고 잇는 이 천양정은 강호에 부성팔경의 하나인 그 절경과 더불어 이름이 높아서, 궁술대회를 열면 오색 깃발이 휘황히 나부끼고 삼현육각은 반공중에 쾌음을 울렸다는데. 사람들은, 여름밤이면 이 냇기슭 천변으로 몰려나왔다. 노인들은 버드나무 아래 평상을 끌어다 내놓고 부채질을 하면서 기우는 별자리를 바라보았고, 젊은 사람들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용소의 위쪽에서는 남자들이 자멱질을 하였다. 여자들의 자리는 용소 아래쪽이었다. 달이 없는 밤에는, 수면 위에 미끄러지는 별빛이 등불이 되어 주었고, 달이 뜬 밤에는 물 소리가 달빛을 감추어 주었다. 사람들은 상쾌한 비명을 지르며 물 소리에 섞여 휩쓸려 들어갔다. 그때 천변에까지 울려오던 낭랑한 웃음 소리. 한 무리의 사람들은, 물 속에서 나와 냇가의 자갈밭에 앉아 있기도 하였다. 그들은 도무지 아무런 경계심도 없었다. 어두운 천변으로 행인들은 지나가고, 버드나무 아래 앉은 노인네들이 밤이 깊도록 생쑥 모깃불의 매캐한 연기를 쏘이며, 이미 몇 번씩이나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어둠 속에서도 얼마든지 드러나는 흰 몸뚱이를 벗은 채 자멱질을 하고 있는 그들을 눈여겨보지는 않았다. 냇물 속의 사람들도 거리낌없이 밤 목욕을 유쾌하게 즐기고 있을 뿐, 방천 위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혹은 용소의 이쪽 저쪽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만큼 냇물의 골짜기는 깊었고, 어둠은 부드러운 검은 안개로 모든 것을 가리어 주었다. 거기서는 누구나 자유로웠다. 다가봉의 암벽에서 입하꽃나무 육도화의 향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냇가의 자갈밭에는 눈부신 달맞이꽃들이 지등처럼 피어났다. 그때마다 강모는 황홀한 슬픔을 느끼었다. 차마 그 속에 첨벙 뛰어들지 못하면서도, 그 물 소리와 웃음 소리 그리고 눈빛 같은 흰 꽃무리, 육도화의 숨막히는 향기가 핏속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어두운 자신의 핏속에, 달맞이꽃이 피어나는 소리가 들이었다. 꽃이 피는 자리에 핏줄이 터지면서, 응어리져 고여 있던 끈끈한 검은 피가 흘러나와 물 소리에 섞여, 사람들의 웃음 소리에 섞여, 아득하게 아득하게 서쪽으로, 금강으로 흘러가는 것을 그는 아찔한 현기증과 더불어 실감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제 이곳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 물론, 잠시 동안의 불안한 거처에 불과한 곳이겠지만. 오유끼. 그녀는, 모찌즈끼의 젊은 여자였다.
"망월이라. 아하, 애달픈 이름이로다."
일본인 관사가 많은 일본인 거리, 눈 내리는 고사정의 요리집 문등에 번지는 부우연 불빛을 바라보며, 함께 갔던 주사가 고개를 꺾고 한탄조로 하던 말이 떠오른다. 그것은 무슨 암시라도 되었던가. 강모는 그날의 술상 머리에서 오유끼를 만났던 것이다. 내가 너를 만난 것은 흉이냐, 길이냐. 인간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살성이 비치면 열두 가지 살 중에 어느 화살인가를 맞게 된다지. 그래서 조실부모하거나, 불구의 몸이 되거나, 가산을 잃고 식구가 흩어지며 고질 신병을 앓게 된다. 그러나 복록이 무궁한 사람에게는 길성이 비친다. 한평생의 부귀공명을 예언해 주는 그 별은 누구의 머리 위에 뜨는 것이다. 겁살,재살,천살,지살,언살,월살,망신살,장성살,반안살,역마살,육해살,화개살. 인간의 한 생애에 재앙과액운은 많기도 한다. 인생이 하늘로부터 명을 받아,피할 길 없는 열두 가지 제살을 제 몸에 받고 겪으면서 언덕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고, 때로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때로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양이란 어쩌면 가련하고 어쩌면 어리석기만 하다.
"사람이 아무 살도 안 띠고 평생을 순탄하게 살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법이란다, 누구라도 한두 가지 살은 맞게 되어 있지마는, 그러더라도 어쩌든지 제가 미리 알고, 조심허거, 뛰어갈 거 걸어가고,소리칠 거 어루만지고,그렇게 삼가면, 설령 코 앞에 삼재 팔난이 닥칠지라도 가벼이 자나간단다."
삼재는 세상을 괴멸하는 불과 물과 바람의 큰 재난으로,화재,수재,풍재를 말한다. 그뿐 아니라, 전쟁 난리 같은 도병재와 전염병이 창궐하는 질역재, 흉년을 당하여 굶주리는 기근재도 이에 속하여, 참으로 불길하기 짝이 없는 운성이 머리 위에 비치는 것이다. 이 같은 운수가 한번 침노해 들어오면, 그 살마의 만 삼 년 간을 흉화로 어지럽히니 뒤에라야 빠져 나가는데,전해 오는 말로"드는 삼재보다 나는 삼재가 더 무섭다."
고들 하는 것을 보면, 삼재 나가는 꼬리가 조용하지 않은 탓이리라. 마치 말발굽으로 거칠게 뒷발질을 하는 것처럼 후려치고 나간다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팔난이라면, 여덟 가지의 재난을 이름이니 곧 배고픔과 모진 추위,심한 더위,성난 불길,큰 물, 병란,목마름,그리고 칼로 인한 재앙을 말한다. 인간의 지혜가 얼마나 영철하여 그 같은 재난과 액운을 미리 헤아릴 것이며, 인간의 안목이 얼마나 형형하여 앉아서 천리를 내다볼것인가. 더욱이 앞뒤를 헤아리지 못하는 중생들이야 일러 무엇 하리. 캄캄한 밤중에 뒷머리를 덮치는 이런 흉참한 일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지 않으랴.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미리 조심하고 미리 피해 가면,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아 볼 수도 있는 일이기에,율촌댁은 강모에게 그의 금년 신수를 일러 주며 몇 번이고 같은 당부를 하고 또 했던 것이다. 그리고, 부적도 한 장 호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이런 것은 비 올 때 우산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몸에 지녀 급한면을 하자는 게다. 보호가 되지, 천만 다행히도 너한테 삼재는 들지 않았지만 정이월에는 팔패가 들고, 동지섣달에는 망신살이 끼었느니라. 허나,망신이라 하면 여러 가지 살 중에서도 부끄러움이 겹친 것이 아니냐... 어쩌든지 조심해야 헌다. 네 몸을 네 스스로 지키기만 한다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날 것이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재앙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나는 재앙이니,네가 정신만 채리면 무사히 지내갈 고비인즉, 강모야, 어미 말 명심해라. 꼭 명심해야 헌다. 그러고, 남자가 패가하고 망신하는 것은 여지 때문인 수가 많으니."
어미 말을 명심해라. 어미 말을 명심해라. 강모의 귓속에 율촌댁의 음성이 쟁쟁하게 울린다. 내,어느 날은 곰곰이 생각을 좀 해 보았는데, 암만해도 너희 내외 남수여화로 만난 것이 아닌가 싶었더니라. 너는 스물하라, 임술생이니 납음이 대해요,네 아내는 스물넷 기미생 천상화라. 물과 불이 만났어. 내 생각에 같은 물과 불이라도 산두화에 간하수라면, 산 머리에 불은 봉화불일 것이고 골짜기 물은 벽계수이리니,상극은 상극이라도 한 산에 들면 어찌 어찌 조화가 될란지 어쩔란지.하지만, 너희들은 바닷물에 하늘 위 불 아니냐. 바다와 하늘은 둘 다 너무 커서 집안에 큰 마당이나 우물을 이루기엔 적당치 않다. 거기다가 하늘 위의 불이라면 구름 속의 번개라. 번개는 날카롭고 살기가 있다. 또 번갯불 치면 천둥이 울게 마련. 천지가 깜짝 놀라 정신이 흩어지고, 사람들은 번개를 무서워하지, 그래서 너도 네 아내가 두려운가. 예로부터 남녀가 서로 만나 부부의 인연을 지을 적에는 하늘이 살피고 땅이 도와서 연분이 되는 것이지마는, 삼생의 원수가 이 생에 만나 졌던가, 서로 상극 상충하는 부부도 많고 많지 않으냐. 그래서 그런 못된 운수를 피하려고 궁합을 미리 보는 것인즉, 납음을 살펴 자기한테 알맞은 사람을 만나야만 한단다. 납음이란 무엇인고. 자기의 생년 육갑에서 나오는 오행을 가지고 남녀가 상생되는 것을 맞추어 보는 것이다. 오행별로 볼 때 상생이 있는가 하면 상극도 있느니, 서로 기운을 도와 일어나게 하는 상생이라 함은 금생수,수생목,목생화,화생토,토생금을 말하지. 금은 물을 생하고, 물은 나무를 자라게 하며,나무는 불을 일으킨다. 그리고 불은 타고 남은 재로 거름을 만들어 흙을 비옥하게 하며, 흙은 쇠를 품어 준다. 이 얼마나 좋은 사이이랴. 허나, 원수 같은 상극은, 금극목으로 쇠는 나무를 극하고, 도끼로 나무 찍고 톱으로 나무 자르는 것 생각해 봐라. 짐작이 가지. 또 목극토로 나무는 흙을 무너뜨리며, 토극수는 너도 생각해 본면 알리라만 서로 상극이 아니겠느냐. 물은 흙을 깎아 내리고 흙은 물을 메워 물의 길을 막는 것. 서로 만나 좋은 일이 없고말고. 또 흙은 수극화도 마찬가지 이치라. 물로는 불을 끄고, 불로는 물을 말린다. 그리고, 화극금이 서로 상극이다. 이 세상에서 쇠를 녹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불뿐인데 불과 쇠가 서로이 만나면 어찌 되겠느냐. 말로 하지 않더라도 손바닥을 보듯이 훤한 일이다. 여기에 네가 물이고 네 안이 불인즉. '남수여화'인데, 이는 화락봉서라. 꽃이 떨어지고 여름을 만난 격이다. 수화가 상극이매, 부부가 서로 불순하고 자손이 불효하며 일가 친척이 화목티 못하여 자연 백년을 서로 근심해야 한다더라. 재산이 태산과 같다 하더라도 어느새 새어나가 재물을 탕진하고, 부부 서로 이별수가 있으며,혹 자손을 두어도 기르기 어려운 운수라. 부부가 항상 귀산같이 여기며 싸우니, 서로 죽이여 명이 짧아지리라, 했다. 이보다 더 참담한 꼴이 어디 있을꼬. 아아, 끔직하여라. 토성 여인 또한 좋지 않아서, 남수여토면 만물봉상이라. 만물이 서리를 만난 격이지. 물과 흙은 상극으로, 항상 재난과 액운이 끊이지 않아 곤핍하고, 부부가 같은 집에 살아도 상서롭지 못해서 가내 화목을 바라기 어려운데다가, 자손은 불효하고, 살림은 흩어져 티끌이 되니 우마와 재산의 흔적을 찾기 어렵도다. 관재와 재난이 앞길을 가로막아, 만사에 구설이 분분하니 조용할 날이 없구나. 부부 이별하여 독수공방을 면치 못하든지 남평의 상고를 당할 격일진저. 그렇지만 금성의 여인을 만난다면 크게 길하니. 남수여금은 삼객봉제라. 나그네가 반가운 동생을 만나는 격이다. 금생수 하매 부부 서로 화합하며, 부귀할 것이고, 옥과 구슬로 지은 집에서 백년을 해로하는 쾌란다. 자손은 창성하고 생애는 점점 흡족해, 일가 친척의 웃음 소리 넘치는데, 전답과 금은보화를 어디에 다 두오리오. 목성의 여인도 좋지. 남수엽목은 교변위용, 상어가 변하여 용이 된 격이야. 수생목하니, 이런 남녀의 결합은 자손이 번창하는 것이 나뭇가지 우거짐 같고, 서로 자라서 무성함에 그늘이 도타워 남에게는 덕이 되며, 스스로 부귀 장수 복락이 그치지 않으리라 했다. 재산은 불어나 흥왕하며 노비와 전답이 그즉하여 영화가 무궁하고, 공명을 떨쳐 거룩한 이름은 세상을 비추니, 평생에 기쁜 일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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