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망혼제(4/4)
나뭇가지에 바람 소리만 지나가도 동녘골댁은 가슴이 시리었다. 가지에 우는 바람의 회초리 같은 날카로운 소리는, 그대로 그네의 살을 후려치며 에이는 때문이었다. 어쩌다가, 꽃이 피고 새 우는 봄날의 난만한 시절에 서리를 맞고 시들어 버린 서러운 자식의 혼백이, 그렇게 가지 끝에 걸린 채 곡을 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제 명을 못 다 살고 죽은 넋은, 저 살던 동네를 못 떠나고 허공에서 맴돈다는데, 저 소리는 영락없는 강수 혼신이 우는 소리다.) 그네는 물 소리에도 놀라 소스라치고, 잎사귀 떨어져 구르는 소리에도 간이 말라붙어 숨을 죽이는 것이었다. 달이 밝은 겨울 밤에는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지었다. 귀가 떨어지게 매운 찬바람에 가슴을 오그린 채 툇마루에 앉아 언제까지 방안으로 들어갈 줄을 모르기도 했다. (너는 죽어 얼어붙은 땅 속에 누웠는데, 에미란 것은 다순 아랫목 구들에 몸을 녹이다니, 이것이 죄가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고, 내 자식아, 강수야.) 그러던 동녘골댁이 한번은 드디어 참지 못하고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무심코 장롱 안을 치우던 그네가 강수의 옥색 대님 한 짝을 발견한 것이다. 강수 살아 생전에도, 가난한 살림이라 사철 옷가지조차 변변히 입히지 못했던 것을, 그나마 마지막으로 널 속에 보공을 하면서, 입던 것을 차곡차곡 덮어 놓어 보냈었다. 그래서 집안에는 강수의 의복이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었는데, 어찌 대님 한 짝이 다른 옷 속에 끼어 있었던 것이다. 밤이 깊도록 울음을 그치지 못한 그네는, 꿈 속에서, 그 대님짝이 몸서리가 쳐지게 기다란 구렁이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대가리를 쳐들고 그네에게로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목을 휘감으며 서리를 틀었다. 끄으윽. 숨이 막힌 그네가, 아무리 두 손을 버둥거리며 풀어 내려 해도 구렁이는 움쭉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동녘골댁이 허우적거리면 허우적거릴수록 더욱 숨막히게 목을 죄는 것이었다. 결국, 컥 커억, 신음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잦아들어가는 그네를 깨운 것은 동녘골양반이었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난 다음에도 그네는 목에 남은 찬 기운의 섬뜩함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오슬오슬 추워하더니 드디어 몸져 눕고 말았다. 사람들은, 강수의 원혼이 어미에게 씌인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굿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동녘골댁도 죽고 말리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마치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네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먹지도 못하고 잘 마시지도 못했다. 결국 동녘골양반은, 쓰잘데없는 헛짓이라고 펄쩍 뛰던 일을 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 오늘 밤의 명혼이었다.
사람마다 이승에 몸을 받아 태어날 적에 하늘이 정해준 천명이 있을 것인즉, 그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비명에 죽은 사람의 영혼은 그 뼈에 한 맺혀 쉽사리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낯설고 물설은 저승으로도 가볍게 가지 못하니,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 영혼을 위로하고 쓰다듬어 달래어서 좋은 곳으로 보내고자 하는 것이 굿이었다. 귀신 중에서도 가장 원통한 귀신은 처녀와 총각인 채로 죽은 몽달귀신이었으니, 이는 객사하거나, 전쟁터에서 살을 맞아 죽은 귀신, 혹은 물에 빠지고 불에 타 죽은 그 어느 귀신보다도 처절하게 원한이 많아, 무서운 복수심으로 이승에 남은 사람들에게 붙어 괴롭힌다고들 하였다. 그것도 가족들을. 그래서 가족들은 이 가엾고도 무서운 원혼을 위하여, 영혼의 배필을 찾아 성대히 혼례를 치러 주고 부부 인연을 맺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디 해로하고 저희들이 가야 할 것으로 함께 떠나, 가족들에게 더 이상 해를 끼치지 않으며, 나아가 복을 주어 집안이 태평해지기를 바랐다. 참으로 혼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강수는 강수대로 기막힌 밤이 아닐 수 없었다. (살아서 뜻을 이룬 사람은 따로 있는데, 이제 그 육신은 죽어 흙이 되고, 넋은 남아 낯모를 처녀와 혼인을 하는구나. 기구한 일이다. 내가 그 넋이라면 반가울 리 하나 없는 일이로다. 차라리 뼈에 저린 외로움으로 거리 충천을 헤매어 울망정 어찌 마음에도 없는 이와 혼인을 하리. 강수 형 망혼으로 보면, 살아 남은 인간의 일들이 야속 한심하게 여겨지리라.) 강모는 작은사랑의 토방으로 내려와 마당에서 서성거린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탓이었다. 아까참에 기표가 바늘끝 같은 눈으로 쏘아보며 "네 안한테 말을 잘 이르거라." 했던, 그 말이라는 것이 아직도 가슴에 얹혀 내려가지 않는 탓도 있었고, 초저녁부터 수런거리던 동녘골댁의 일이 공연히 강모를 사로잡아 진정하기 어려운 탓도 있었다. (바라보기도 어려운 사람, 태산 집채 모양으로 우뚝허니 솟아 나를 가로막는 사람한테, 내가 무슨 말을 떼어? 그런 말 아니라도 내 지금까지 몇 마디 해 본일 없는데, 그것도 친정에 가서 전답문서 비럭질해 오라는 말을, 난 죽어도 못한다. 오늘 밤만 어떻게든지 새우고는, 내일 전주로 가 버리면 그만이지.) 그러나 저러나, 어쩌자고 저 당골네는 저다지도 구슬픈 목소리로 경을 읽는 것일까. 소리는 눈물을 흥건히 머금고 있었다. 그것을 듣는 강모도 저절로 마음이 잦아들어 중문간까지 걸어 나왔다. 하늘의 복판을 흐르던 은하수의 한쪽 자락이 아득하게 멀어 보인다. 고개를 젖혀 별의 무리를 올려다보고 있는 강모의 귀에 흙을 밟는 발소리가 들린다. 그저 흙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가벼운 소리다. 온 집안에 대여섯 마리나 기르고 있는 개들이 나서서 짖지 않는 것을 보니 낯익은 사람인가 보다. 그러나 누가 이런 밤 깊은 시간에 올라올 리가 있는가. 잘못 들은 것이겠지. 강모는 한숨을 내쉰다. 바람도 없는 여름 밤, 매캐한 생쑥 모깃불 냄새에 섞여 동녘골댁에서 번져 오는 만수향내는, 마치 여기가 어디 저승의 기슭인가도 싶어지게 한다.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다. (가기 전에 강실이나 한 번 보고 갔으면...) 그러나 강실이는 사립문 밖에도 잘 나서지 않는다. 먼 발치에서나마 그 모습을 한 번 보면, 다음 번에는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안 보고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강실이가, 늘 살던 곳에서 어디로도 가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일 것만 같았다. (오밤중에 눈을 떠도, 너는 이상하게 가슴 밑바닥에서 고개를 든다. 웬일인가. 나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너는 깨어 나를 보고 있는 것일까. 무슨 생손 아리듯이 손가락 끄트머리 손톱 밑에서도 네 이름이 앓고 있다.) 강모는 머리를 털어낸다. (부질없는 일, 네가 연기나 안개가 아니고서야 이렇게도 자욱하게 나를 에워싸고 있으면서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수가 있느냐.) 그런데, 들리는 듯 스치는 듯 하던 발자국 소리가 강모의 곁에서 멈추어 섰다. "오라버니." 순간 강모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 내려앉는 소리가 쿵, 자신의 귀에도 역력하게 들리었다. 내려앉은 가슴에서 물레방아 소리가 세차게 울려 온다. 금방이라도 콸콸 쏟아질 것 같은 피를, 핏줄이, 있는 힘을 다하여 가두고 있다. 그러더니 머리 속이 어지러워진다. 강모는 차마 돌아서지도 못한 채 그대로 서 있기만 하였다. 강실이도 그냥 말없이 몇 발짝 저쪽에 그림자처럼 서 있다. 그러더니 이윽고 그네는 다시 걸음을 떼어 놓았다.
"강실아."
강실이는 떼던 걸음을 멈춘다. 그네와 강모의 사이를 무거운 정적이 절벽처럼 가로막는다. 그 정적은 모깃불의 연기와 만수향의 잦아드는 듯한 냄새인 것도 같았다. 아니면 캄캄한 밤 하늘을 가르며 흐르는 은하수의 물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강실이는 멀고 멀어 보였다. 손을 뻗쳐도 닿을 리 없고, 소리쳐 부러도 들릴 리 없는 곳에 스러질 듯 그네는 서 있는 것이다. (아아, 내 너를 한 번 보기만 하였으면, 그러면 원이 없을 것만 같더니, 내가 부르는 소리가 너한테까지 들리었더냐. 네가 어찌 알고 거기서 있는가. 이리 와, 강실아, 이리... 와...) 그러나 강실이는 그 자리에 돌아서려다 만 모습으로 서 있을 뿐 아무말이 없다. 마치 몇 년 전 강모가 혼행으로 갔던 대실의 꿈 속에서 그러했듯이. 그때는 무거운 햇살이 조청같이 눅진하여 한 걸음도 옮길 수 없게 하더니, 이제는 어둠이 무거워 손조차도 들 수가 없다. 그때 꿈 속에 보인 강실이는 머리에 자운영 화관을 두르고 있었다. 그것은 얼마나 눈부신 것이었던가. 화관은 자욱한 햇무리로도 보였었다. 그런데 지금 강실이는 머리 위에 흐르는 은하수를 이고 있다.
"집이 비어서요."
한참 만에야 그네는 밀어내듯이 말했다. 또 말이 끊긴다. 끊긴 말의 사이가 부풀어 오른다. 그것은 부웅 팽창 하면서 저절로 두 사람을 밀어뜨려, 자칫, 낭떠러지 이쪽과 저쪽으로 떨어지게 할 것처럼 느껴졌다. 강모는 순간, 놓치면 안되는 외줄기 나뭇가지를 휘어 잡으며 아찔한 몸의 중심을 지태하려는 것처럼
"동녘골 아짐네 우리도 구경 갈까?" 하고 말았다.
"조끔만 보고 와." 강실이는 대답이 없다.
살으은 썩어어 물이 되에고오 뼈느은 썩어야 흙이 되에니이 한심허어고 가아련허다 근들 아니 원호온이인가아 당골네의 가락이 두 사람을 감는다. 괭굉 굉괭 굉굉 괘괭 괘앵
"텃밭으로 돌아 나가서, 담장 너머로 조끔만 들여다보고 와."
강실이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붙박인 듯 서 있다. 강모는 그네에게로 한 걸음 다가서며 재촉한다. 그의 혀끝이 말라 있어 그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입 안에서 맴돈다. 집안은 교교하다. 아래채의 청암부인 방에도 불이 꺼져 있고, 사랑채 이기채도 잠든 지 오래다. 안방 율촌댁도 아까부터 기척이 없다. 다만 건넌방의 효원은 아직까지 희미한 등잔불을 밝혀 놓고 있으나, 그 불빛은 중문 담벽에 가리워져 이쪽까지는 비추지 못하였다. 여치인가. 투명한 풀벌레 울음이 담밑 풀섶에서 째애애 째르르윽 들린다. 강모는 망설이는 강실이의 팔을 잡으며, 제가 먼저 후원 쪽으로 난 샛문으로 몸을 돌렸다. 강실이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그 주춤하는 기척에 오히려 강모는 잡은 팔에 힘을 주어 당긴다. 텃밭을 지나 명아주 여뀌가 우거진 곳까지는 한 울타리 안이나 마찬가지였다. 크게 소리만 지르면 사람이 듣고 대답을 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강모는 이곳이, 어디 멀고 먼 곳처럼 여겨졌다. 한 번도 와본 일이 없는 것도 같았다. 더욱이나 아직도 잡고 있는 강실이의 팔과, 무너진 흙담으로 넘겨다 보이는 동녘골댁의 마당이 그를 어지러이 흔들었다. 마당은 관솔불과 종이 등불로 휘황하게 밝은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마루 끝에 앉아 있기도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당골네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기도 했다. 마당 한가운데 펼쳐진 멍석 위에 초례청이 마련되어 있었다. 솔가지와 대나무 가지를 꽂아 놓은 흰 화병이 양쪽에 세워진 것이며 그 가지들을 청실 홍실로 드리운 모양, 그리고 붉은 보자기 푸른 보자기에 암탉 장닭을 싸놓은 일들이 산 사람의 초례청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사람들이 가득 모여 앉은 것도. 다만 교배상의 이쪽 저쪽에 서 있는 사람은 살아 있는 신랑과 신부가 아니라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허수아비라는 점만이 다를 뿐이었다. 강모는 그것을 보는 순간, 울컥, 서러운 심정이 솟구치며 어금니에 눈물이 돌았다. (저기 서 있는 저 형상이 바로 강수형 혼신이란 말이지... 아아, 한낱 허수아비에 불과한 육신에 혼신이 운감하면, 죽은 사람도 산사람같이 혼례도 치를 수가 있단 말이지...) 허수아비 신랑의 몸집은 어린아이만 했다. 그저 한 발 길이나 될까. 두 팔을 내리고 선 그는 사모관대를 하고 검은 물 들인 태사혜 창호지 신발까지 신었다. 그리고 창호지를 입힌 허연 얼굴에 붓으로 그리어 둥그렇게 뜬 두 눈이며, 꽃잎처럼 붉은 입술이 선연하고 섬뜩하다. 신부의 모습은 뒷등만 보인다. 그 뒷등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열아홉에 죽었다면 내 나이인데, 혼신은 나이를 먹지 않는가.) 동녘골댁은 징을 두드리는 당골네의 옆에 누런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앉아서 하염없이 울고만 있다.
"혼신이 오기는 왔당가?"
저것은 바로 담 밑에서 수군거리는 평순네 소리다.
"안 오면 어쩔 거이여? 아까 총노장수 불러대는 소리 못 들었능가?"
"그런디 총노장수가 무섭기는 무선갑제? 귀신도 꼼짝을 못허게."
옹구네는 평순네의 말에, 팔짱을 끼며 목소리를 낮춘다.
"떼쓰는 귀신, 굿허는 디 안 올라고 허는 귀신, 트집잡는 귀신, 헐 거 없이 말 안 듣는 귀신을 잡어딜이는 거이 총노장수 임무 아니여? 오늘 저녁으도 신랑 혼신이 안 올라고오 안 올라고 버티능 것을 보도시 끄집어 왔당만 그리여. 암만해도 이 혼인, 귀신이라도 공방 들릴랑갑서. 억지로 허는 굿인디 무신 효험이 있으까아?"
"아이고, 이노무 예펜네야. 입방정 떨지 말어. 부정 탈라고 왜 그렇게 방정맞게 쎄바닥을 놀린당가아."
"좌우지간에 이따가 동녘골댁 대 잡는 거 보먼 왔능가 안 왔능가 알거잉게, 어디 좀 두고 보드라고."
그것은 그럴지도 모른다. 신랑과 신부를 위한 신방에 새로 꾸민 아부자리까지 깔아 놓았지만, 참말로 허수아비들만 나란히 누워 있을 뿐, 혼신은 혼신대로 우두커니 바람벽만 바라보며 돌아앉아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총노장수가 강수의 혼신을 허공에서 잡아 왔다니 오기는 왔을 테지만, 그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강모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신랑 강수가 절하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신랑 강수의 허수아비는 동쪽에, 신부의 허수아비는 서쪽에 서 있다. 그들은 홀로 서지 못하고 부축을 받는다. 일렁이는 관솔 불빛이 창호지 바른 허연 얼굴과 검은 점 찍은 두 눈 섬뜩하게 선연한 붉은 입술 위에서 그늘로 흔들린다.
"진과안진세에."
여느 혼인이라면 그럴 리가 있을까만, 죽은 이의 일이어서, 당골네가 말꼬리를 끌며 왼다. 곁에 서 있던 수천댁이 세수대야와 무명 수건을 받쳐 들고 멍석 위로 올라선다. 그네가 신랑 쪽에 서자
"부과안우우부욱"
신부의 세수대야는 북쪽으로 하라는 당골네의 처참한 음령을 따라 오류골댁이 소리 없이 또 그렇게 세수대야와 무명 수건을 들고 신부 쪽에 선다.
"서부각세수식거언."
신랑과 신부의 허수아비들은 기우뚱 몸을 기울이며 세수하는 시늉을 하고, 무명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시늉도 한다. 그 하는 양이 지극하고 정성스럽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혼인과는 달라서 억울하고 원통한 설움에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절차만은 산 사람과 다름없이 갖추어, 신부 혼신 집에서는 현으로 저고리를 훈으로는 치마를 챙기고, 신랑의 바지.저고리.버선에 대님까지 옥색으로 일습을 장만하였으며, 신랑 신부 금침까지 장만해서 물목을 적어 보냈다. 그리고 시부모 예단이라고 동녘골댁 양주의 옷 한 벌씩도 곁들이었다. 그러나 이 옷을 빼고는 모두 다 태우기 좋게 홑겹으로 만들어, 그 헐렁한 무게가 받는 사람을 철렁하게 하였다. 이 기구한 혼인의 혼주인 사돈들은 처음 상면을 하는 순간 그만 와락 두 손을 부여잡고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통곡을 쏟고 말았다. 순서를 다 갖춘 전안례가 진행되는 동안, 백단이는 일일이 신랑 신부 허수아비를 붙잡은 수모 오류골댁과 대반 수천댁한테 낮은 소리로 몸짓을 가르쳐 주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순서로만 본다면야 누가 이것을 귀신들의 혼례라고 하겠는가. 범절을 다한 반가의 대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푸라기 혼신들의 허수아비 움직임.허수아비. 강모는 소리를 삼키며 뇌었다. 살아서 교배례 행하며 육신이 마주서도 한낱 허수아비에 불과한 사람도 있으려니와, 죽어서 혼백으로 흩날린 넋이나마 한 자락 애오라지 맺어지고 싶은 사람도 세상에는 있으리라.
"강실아. 너 강수형 생각나?"
강모는 어두운 텃밭 담장을 짚고 허수아비를 내려다보는 채로 소리를 죽여 강실이에게 묻는다. 그네는 고개를 끄덕인다. 퍼드득, 어둠 속에서 손가락만한 누에나방 한 마리가 강실이의 머리를 차며 날아오른다. 강실이 오르르 어깨를 떤다. 나방이는 허물어진 담을 넘어 종이 등불 쪽으로 날아간다. 등불은 흰 종이술을 가닥가닥으로 늘어뜨리고 있다. 마치 연꼬리를 달고 있는 것도 같은 등불에 나방이 부딪친다. 등이 소리 없이 흔들린다. 그 아래 신랑과 신부는 술을 마신다. 종이 바른 얼굴의 꽃잎 같은 입술을 기울여 한 모금 한 모금 술을 마시는 신랑은 강모였다. 그리고 신부는 꽃무지게 에일 듯 아련하게 두른 강실이였다. 강실이는 혼백보다 더 투명하고 선연하고 아득하였다. 강모는 어질어질 취한다. 풀숲에서 날개를 비비며 청랑하게 우는 여치의 울음 소리가 발을 젖게 한다. 저 숲속에서 우는 새는 두견이인가 쏙독새인가. 자기가 집을 짓지도 않고, 다른 새의 둥우리에다 알을 낳고는 품어 주지도 않는다는 두견이는, 한이 많아 그다지도 매정한 것일까. 제 속에 겨운 설움, 제 피에 맺힌 원한이 그렇게도 무거울진대 알은 무엇 하러 낳는단 말인가. 어미가 못다 푼 한을 대물려 받는 두견이 새끼는 또 무슨 업고를 지고 났을까. 아니면 저것은 쏙독새일는지도 몰라. 눈 밝은 대낮은 다 두고 어두운 밤에만 움직이는 새. 온 산을 목쉬게 하는 젖은 울음 소리. 저미어드는 저 소리. 아아, 시름 많은 새들의 서러운 울음. 강모는 응어리졌던 눈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누른다. 그러나, 눈물은 속으로 잦아들더니 손바닥에 배어난다. 쥐고 있는 주먹이 축축해진다. 그것은 식은땀도 같다. 아까 어두운 중문간에서 강실이와 마주쳤을 때부터 참아온 심정이 손바닥 안에 흥건하게고인다.
"강실아."
강모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당골네의 독경 소리가 아득하게 먼 곳에서 물맴이를 돈다. 그 물맴이 저쪽 은하수의 물살이 소용돌이를 치며 거꾸러진다. 괭굉 괴굉 괭굉괭굉 괘굉괘앵. 핏속에서 징소리가 울린다. 징소리에 가슴이 빠개지는 것만 같다. 아아. 강모는 강실이의 어깨를 쓸어안고 무너진다. 마치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이. 붉은 꽃이 핀 닭이장풀의 달개비 같은 꽃잎사귀, 밭두렁에 줄기를 뻗고 있는 참비름의 연두꽃, 습지에 눅눅하게 핀 자귀풀의 황색꽃, 난쟁이처럼 땅바닥에 엎드린 채 피어오른 질경이의 흰 꽃과, 길가에 버려지듯 피어 있는 바랭이의 실가닥 같은 꽃줄기의 꽃잎들이, 단단하게 뭉쳐진 어둠의 돌멩이에 정수리를 맞으며 소스라친다. 민들망초의 흰 꽃, 담자색 꽃이 새끼손톱만한 꽃모가지를 부러뜨리며 쓰러진다. 가문 여름의 들판에서 하찮은 비노리풀, 갈퀴덩굴까지도 아우성치며, 꽃대가 부러진다. 그리고 꽃잎이 찢어진다. 저기 앉어 좌정허신 조상들도, 운명이 그뿌운이라 가셔었으니, 뼈아프고 애달프게 가셨는디, 어느 부모를 원마앙허며, 어느으 형제지가안 원마앙허며, 어느 동기지가안 원망허리요오. 이왕지사아 가셨으니이, 설워헌들 무엇 허며, 통곡해도 소용없고 슬퍼헌들 소용없네. 이왕지사 가셨으니, 설워 말고 슬퍼 말고 참혹다 말으시고오, 원이 지면 원을 푸울고, 한이 지며언 한을 푸울고, 왕생극락하옵소사. 왕새앵극락을 가실 적으, 차담 진상을 걸게 받고오, 염불 받어 품에 품고, 노자 받어 손에다 들고, 왕새앵그윽락하옵소사. 왕생극락을 가실 적으, 화초밭을 귀경허고, 만사조화를 얻으시고 이승으 저승으 지은 죄가 홍로점설 재가 되야, 불티 날아 재가 날아나고, 시왕님전으 꽃이 피어, 호호탕탕으 도리 되야, 왕새앵극락을 하옵소서아. 나무아미타아아불. 당골네의 서러운 소리굽이가 중간에 창자가 잘리듯 끊어지며, 동녘골댁의 곡성이 터진다. 아마도 동녘골댁이 대를 잡고 있나 보다.
"니가 강수냐아?"
허물어진 토담을 넘어 눈물로 목멘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강실이의 귀에도 역력히 들린다.
"어머니이."
"아이고오, 니가 참말로 강수여어?"
"어머니이."
"어디 보자, 이놈아, 어떻게 왔어어? 어떻게 왔어... 이 무심한 놈아... 아이고오... 내 자식아... 이놈아..."
마당에서 곡성이 낭자하게 울려온다. 그 울음 소리가 물살처럼 토담을 무너뜨리며 강모와 강실이를 뒤덮는다. 두 사람은 그대로 아찔하게 떠밀려 어디론가 까마득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당골네가 무어라고 하는 소리에 섞인 오류골댁의 목소리가 들린다.
"강수야, 나 알어보겄냐...?"
어머니. 강실이는 가슴 밑바닥이 찢어지는 통증에 오류골댁을 부른다. 이 담 하나가 무슨 성벽같이 높고 높아서, 이제는 어머니와 다시는 만나지도 못할 것 같은 절망이 금을 그어 놓고 있었다.
"아짐, 오류골 아짐 아니신가요."
강수의 혼신이 대답한다. 그 혼신은 동녘골댁의 몸에 실리어 있다. 동녘골댁은 강수의 목소리며 몸짓 손짓을 그대로 박은 듯이 시늉하는 것이다. 동녘골댁은 대를 잡고 있다.
"그래, 오늘 밤이 니 혼인허는 날인 것을 알고 왔지야?"
"예."
"그래애. 니 맘에는 어떠냐... 흡족하고 흐뭇허냐아?"
강수는 대답이 없다. 마당에는 긴장이 감돈다. 강수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신방을 차릴 수가 없는 것이다. 설령 억지로 나란히 뉘어 놓아도 하릴없는 공방이 들고 마는 일이다.
"아짐, 정이라 하는 것도 사대육신 있었을 때 애달픈 것이지요. 이제는 이렇게, 살도 썩고 벼도 썩어 검은 물 검은 흙이 되었는데, 아직도 육신의 미망에서 못 벗어났다면 귀신이라도 어디 온전한 귀신이겠습니까. 바람 자락 혼백이야 무슨 싫고 좋은 것이 있겠어요... 그게 다 몸 가진 사람들의 헛된 꿈이지..."
"그러엄. 그렇고말고. 나가 잘 생각헌 것이다. 잘 생각했어, 강수야. 다 잊어 버려라, 다 잊어 버려. 응?"
아마도 신랑과 신부는 신방으로 드는 모양이었다. 마당의 만수향내가 뭉글뭉글 담을 넘어오고, 들판의 꽃잎들이 진액을 뿜으며 별을 삼킨다. 꽃술에 내려 꽂힌 별들의 심지가 불꽃을 일으키며 숨막히는 화승처럼 터진다. 이윽고 귓전에서 울던 풀섶의 여치 풀벌레의 울음 소리도 숨이 멎고 물살을 뒤채며 사납게 소용돌이치던 은하수도 아득하다. 천지간에 이만한 고요와 적막이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모든 것이 이렇게도 짧은 한순간에 조용해지다니. 발끝에서부터 써늘한 냉기가 스며들어 강모는 몸을 일으켰다. 하마터면 그는 힘없이 쓰러질 뻔했다. 마치 살을 모조리 파 먹힌 게의 껍질처럼 헐거운 몸뚱이가 무슨 허물만 남은 듯 어지러운 탓이엇다. 그 빈 속으로 쓰라림이 약물을 삼킨 것 같이 번진다. 그것은 이상한 설움이었다. 살을 베인 자리에 멍울멍울 검붉은 피가 엉기며 흘러 나오는 것을 어쩌지도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을 때와도 같은 속수무책의 설움. 누가 나를 다치게 하였을까. 강모는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강실이 족을 차마 바라보지 못한다. 엄청난 두려움이 어깨를 짓누른다. 그러나 두려움보다 더욱 그를 짓누른 것은 허망함이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좋았을 것을. 허망이란 이다지도 무거운 것이었던가. 내가 무엇을 얻겠다고 이런 일을 하고 말았을까. 얻는 것이 바로 잃는 것임을 내 몰랐구나. 얻으려 안타까이 마음 두고 있을 때는 내 것이었던 것이, 온통 나를 가득 채우고 있던 그것이, 소유하는 그 순간에, 돌처럼 차디 차게 식어 버린 덩어리로 내 속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내 미처 몰랐었구나.) 강모는 웅크리고 앉은 채 두 손을 무릎에 깍지 끼고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아, 진실의 하찮음이여...) 그의 가슴팍을 파고 들어온 날카로운 톱니가 뼈에 부딪친다. 나무 막대기같이 마른 뼈마디에 박히는 톱날이 뼈를 켠다. 사람의 몸이란 동굴에 불과한가. 텅 빈 동굴의 천장을 울리는 톱 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머리를 털어내도 좀처럼 그 소리는 멎지 않는다.하릴없고오 하릴없네에. 인간 백년을 다 살아도, 병든 날과 잠든 나알과, 걱정 근심을 다 제허며언, 단 삼십을 못 사아나니, 어제 오날 성튼 몽이 저녁나절 병이 들어, 부르나니 어머니요, 찾는 것은 냉수로오다.당골네의 목소리가 흥건한 눈물을 머금고 톱 소리를 적신다. 신랑과 신부의 원혼들은 신방에 들었는가. 청홍의 이부자리 속에 지푸라기 몸을 누이고 오색 등불 현란한 마당의 곡성을 덕담 상아, 못다 살고 간 육신의 희롱을 흉내내고 있을까. 대문간에 놓여 있던 반야용선은 저승으로 가는 험한 길목의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널 때 타고 가라고 마련한 것이겠지. 이제 이 밤을 고비로 강수는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간단 말인가. 강모는, 동녘골댁 툇마루 끝에 허깨비처럼 턱을 고이고 앉아 있던 강수의 형산이 누렇게 떠오른다. 넋이 나간 얼굴로 물끄러미 발끝을 내려다보던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그는 자신의 넋을 비워 내고, 그 빈 자리에 사무치는 진예를 대신 채워 넣고 죽어 갔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부러운 일이로다.) 강모는 순간 자신을 마구 으깨어 부수고 싶은 심한 모멸감에 얼굴이 후끈해진다. 깊은 어둠도 그 모멸감을 감추어 주지는 못한다. 어디에고 부딪쳐 쪼개져 버리고 싶다. 못나고 못난 사람. 나를 어찌하리. 강모는 아직도 죽은 듯이 누워 있는 강실이를 허물어진 담 밑에 그대로 버려 둔 채, 휘청이며 일어섰다. 강모의 한쪽 살이 식은 땀으로 젖어, 마치 해토가 흐무러지듯 버그러진다. 발을 딛고 선 땅이 허방 같다. 그리고 간신히 지탱되는 한쪽의 힘줄에 설움이 차 오른다. 아까 이 텃밭을 가로질러 걸음을 재촉할 때는, 발밑에 밟히는 풀섶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도 모르겠더니, 지금 돌아오는 발등에는 습기가 축축하다. 마치 질퍽한 진흙을 밟는 것 같다. 한 걸음이 무거워 다음 발짝을 떼기가 어렵다. (내일 아침 새벽녘에 통학차를 타고 가 버려야지. 아무와도 마주치기 싫다. 도대체 이 어두움이 지나고 동이 트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나는 모르겠다. 사람의 심정이란 것이 이대도록 하잘것없는 검불 같다면, 심정을 따르는 육신은 또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리오.) 후원의 샛문을 아까 열어 놓고 나간 대로 비쭈룸히 열려 있다. 그것은 꼭 옆눈질하며 눈치를 보는 형국이었다. 검은 가지에 우거진 감나무의 무성한 잎사귀와 은행나무 둥치, 대추나무의 휘청이는 가지들이, 우뚝우뚝 선 채로 후원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데, 나무 아래 엎드려 잠들어 있던 누렁이가 발소리로 주인을 알아보고 크엉하며 꼬리를 흔든다. 집안은 교교하다. 모두가 잠들어 있다. 여름밤이 짧다고는 하지만 삼경이 기울었는지라, 물 밑바닥처럼 캄캄하게 잠겨 있는 밤은 무겁다. 다만 이 어두운 가운데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곳은, 효원이 거처하고 있는 건넌방뿐이었다. 그 불빛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강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써늘한 손이, 내려앉은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저 사람이 아직도 잠들지 않고 있는가.) 저것, 저 커다란 그림자. 강모의 가슴팍으로 그림자가 무너진다. 대실에 혼행 갔을 때, 첫날밤의 바람벽에 태산처럼 우뚝했던 그네의 모습. 그것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늘한 냉기를 뿜으며 강모를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검은 휘장처럼. 내 저것을 찢어 버리리라. 강모는 방문을 왈칵 잡아당기며 안으로 쏟아지듯 들어섰다. 그리고 사나운 힘으로, 놀란 효원을 떠다밀며 난폭하게 넘어진다. 등잔 불빛이 까무라친다. 어둠이 두 사람을 한 입에 삼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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