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망혼제(2/5)
"생떼 같은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아낙은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죽은 듯이 혼절하여 있는데 사냥꾼이 돌아왔어. 그 사람은 또 얼마나 놀랐으리요. 그게 무슨 참담한 꼴이겠는가...? 혼비 백산 눈이 뒤집힌 사냥꾼은 나머지 아들을 찾으러 온 산야를 헤맸지.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어. 비오듯이 땀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와 어처구니 없는 횡액에 가슴을 치며 고꾸라져 통곡을 하는데, 집안 어디선가 아들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게야.
"창황히 뒤안의 헛간 쪽으로 가서 소리 나는 곳을 찾았다. 가느다란 신음은 분명히 헛간에서 나는 것이었다. 사냥꾼이 다급하게 문짝을 걷어차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태까지 찾아 헤매고 다니던 막내아들이 덫에 치여 피를 흘리고 있지 않은가."
"아이고, 아가."
그 덫은 사냥꾼이 있는 솜씨를 다해서 만든 튼튼한 것으로, 멧돼지를 잡을 때 쓰는 것이었다. 아비가 미친 것처럼 울부짖으며 가까스로 아들의 발목을 잡아 빼내 주었을 때는, 이미 아들이 숨을 거두고 난 다음이었다. 아비는 아들을 찾으러 어리석게도 바깥을 헤매고 돌아다녔던 것을 탄식하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리고 덩클 덩클, 피를 토했다. (아아, 한 자식만은 건질 수 있었던 것을, 내 집안에서 내가 만든 덫에 내 자식이 치여 숨지다니. 세상 천하에 이런 기구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하늘은 참으로 계신가. 귀신이 계신다면 이 속을 아시는가.) 세 아들을 단 하루에 잃어버린 사냥꾼 내외의 상심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먹지도 못하고 잠들지도 못하면서 피골이 상접하여 꼬챙이처럼 말라가게 되었다. 사냥꾼은 사냥도 나가지 않은 채 잃어 버린 자신에 대한 애착으로 번민하였다. 이웃 사람들조차도 그들 내외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 버린 두 사람은, 숨만 붙어 있을 뿐 송장이나 한가지였다. 자연히 그들은 목숨마저 위태롭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목숨에도 마음이 없었고, 세상에도 아무 뜻이 없었다. 그러한 사냥꾼의 하룻밤 꿈에 아들 삼형제가 나란히 나타났다. 살아 있을 때와 다름없이 환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그들은 낭랑하게 제 아비를 부르는 것이었다. 사냥꾼은 꿈인 줄도 모르고 미친 것처럼 두 손을 벌리며 어푸러질 듯 달려가 아들을 품에 안으려 하였다. 그러나 아들들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깜짝 놀라 허둥지둥 다시 쫓아간 아비를 피하며 이쪽으로 저쪽으로 팔짝 팔짝 옮겨 앉는 자식들을 애가 타게 잡으려던 사냥꾼은
"야속한 자식들아. 어찌 그리 이 아비 심정을 모르느냐. 꿈이라도 좋고 생시라도 좋으니 한번 안아 보기나 하자. 이 아비 가슴에다 못을 박고 죽은 것도 불효거늘 무슨 억하심정으로 내 가슴을 또 다시 이렇게도 매정하게 태우느냐."
사냥꾼은 피를 토하며 목이 매어 울부짖었다. 그제서야 아들 하나가 입을 열어 말했다. 싸늘하게 비웃는 말투였다.
"네가 아비라니.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아비인 사냥꾼은 아들이 내뱉는 말에 대경 실색 질려서 말을 잇지 못한 채, 발이 얼어붙어 그 자리에 멈추어 서고 말았다.
"내가 너희들의 아비가 아니라니 이 무슨 해괴한 말이냐. 아무리 유명을 달리하였다고 한들 이런 터무니 없는 망언을 하다니. 나는 너희들을 잃은 뒤에 노심초사 애통하고 한스러워 이제는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건만, 너희들은 어느새 아비도 몰라볼 만큼 무정해졌단 말이냐. 이놈들아..."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설움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 비정한 아들들을 향하여 다시 한번 두 팔을 벌렸다.
"너는 듣거라."
이번에는 다른 아들이 입을 열었다. 여전히 냉랭하고 차가운 말투였다.
"우리들이 너와 함께 순한 인연을 짓고 만난 사이라면, 이렇게 하루 아침 하루 저녁에 한꺼번에 죽어 없어지겠느냐. 우리들은 너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니라."
"원수라니, 너희가 나와 무슨 원수를 지었관대 이런 처참한 꼴을 당하게 한다는 것이냐?"
"자기가 지어 놓은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으니, 받은 응보에 대해서도 깨달음이 전혀 없구나. 보아라. 우리들은 네가 연전에 밭에서 팔매로 쏘아 맞힌 까마귀들이다. 멋모르고 노니는 우리를 돌멩이 한 개로 한날 한시에 죽였으니, 우리 원혼이 분을 참지 못하고 네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다. 남다르게 인물도 출중하고 남다르게 효행이 빼어났던 것도, 모두 다 훗날에 너를 절통하게 하려고 그리한 것이다."
말을 마친 삼형제는 그 자리에서 홀딱 몸을 뒤집어, 그만 까마귀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전생을 몰라서 생사의 인연을 놓고 설워하는 것이지, 알고 보면 모두 다 제 받을 몫을 받는 것이야."
청암부인은 까마귀 형제들의 이야기 끝에 한숨을 쉬었다. (나도 죄가 많은 사람이 분명하다. 아마 전생에서는 내가 그 사람을 두고 먼저 죽었는지도 모를 일. 아니면 내가 무슨 못할 짓을 그렇게도 모질게 했었던고.)
"어머니.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하늘의 이치에 따른 것이지, 어찌 한낱 허황된 이야기를 따른 것이겠습니까?"
"그 하늘의 이치라는 것은 또 무엇이랴. 사람의 지혜, 분별지로 알아내기 어려운 일인 것은 전쟁이나 다를 바 없느니라."
이기채는 청암부인의 심정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눈치채고 말머리를 돌렸다.
"허나, 강수 그놈이 죽게 된 것은 참으로 맹랑한 일이올시다."
"맹랑하다니..."
"젊은 나이에 사내놈이 그래 부모를 남겨 두고, 병신 아우를 앉혀 놓고, 병도 많고 많은데."
까지 말하던 이기채는 차마
"상사로 병을 얻어 그에 죽게 생겼다니, 이런 못난 놈이 세상 어디 있습니까? 그것도 상피로 말입니다."
하고 말하지는 못한다. 아무리 어린 나이의 조카뻘이지만 이미 온전치 못하여 목숨을 버리다시피 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하지만 청암부인이라고 해서 그간 오랫동안 떠돌던 소문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상사불견이면 어찌 병인들 나지 않으리."
방안에 무거운 한숨이 고였다. 결국 강수는 숨을 거두었다.
"심지가 그것밖에 안되는 놈의 소갈머리. 죽었대서 울 것도 없어. 거적에다 말아서 길바닥에 내버리면 그만이야. 아 시끄러워, 울지도 말어. 그런 놈은 자식도 아니야."
동녘골댁이 터지는 곡성을 참아 내지 못하고 체읍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녘골양반은 거칠게 쏘아붙였다. 그의 눈자위가 짓무른 듯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세상을 살다가 참 이런 꼴을 당허지 말어야는 것이여. 자식 키워서 이런 보갚이를 받어야 헌다면 어느 놈이 자식을 낳겄는가. 이런 놈의 허망헌 꼴이 있어 그래. 허허어..."
강수는 이름 값을 못하고 죽은 셈이었다. 편안 강자에 목숨 수자를 붙여 준 부모는 그의 목숨이 짧은 날에 스러지고 말 것을 미리 알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나마 평탄치 못한 젊음으로 제 목숨을 갉아 먹다가 쇠진하여 저절로 숨이 지고 말 것도 미리 헤아렸었는지.
"죽기를 잘한 놈이니 생각도 말어. 천륜도 모르는 놈. 제 놈이, 남 가진 인정만 있었대도, 그런 경우 없는 짓을 허지도 않았을 뿐더러, 눈시퍼렇게 뜨고 있는 부모 형제 다두고, 나 몰라라 허고 제 목숨만 걷어 가겄는가. 그런 인정머리 없는 놈, 제 생각으로만 꽉 차서 눈 먼 놈, 인제 그놈 말은 나 숨 떨어져 죽을 때까지 입 밖에 꺼내지도 말어. 누구든지 주둥이에 그놈 이름 올리기만 해 봐. 내 손에 죽을 테니."
동녘골양반은 숨이 받혀 말을 똑똑 끊어 가며 그렇게 뇌이고는 동녘골댁과 어리보기 곱추인 강우를 노려보았다. 그 서슬에 질린 모자는 흘리던 눈물조차도 지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문중의 사람들도 동녘골댁 식구들을 만났을 때, 문상의 말 대신에 다만 혀를 차며 어두운 얼굴로 심중을 전하였다. 그것은 동녘골양반의 심기나 괴로움을 헤아리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강수의 죽음이 문중에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던 탓이었다.
"상사병으로 죽는 일도 흔한 일이 아닌데, 그것도 상피라니. 참으로 망측한 일은 망측한 일이야.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가 있어? 허어, 참."
이기채는 그때 기표를 마주하고 앉아 무거운 음성으로 연신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그래도 강수 그놈이 죽기를 잘했지. 살었으면 더 큰일도 낼 뻔하지 않았습니까? 막말로 그것들이 흘레라도 붙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결국 본인은 물론 파문을 당하고 온 집안 권속들도 일문에서 쫓겨나, 거적을 메고 유리걸식을 하게 되었을 겝니다."
"거 무슨 말을 그렇게 독허게 허는가? 그리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지? 젊어 한때 빗나간 가쟁이에 잘못 찔린 것이니, 어쩌든지 제 마음을 잘 다스리고 정신차려서 회생하기를 빌었든 게지."
"회생을 할 위인이 그렇게 죽는답니까? 젊은 나이에, 앞길이 구만리같이 창창한 인생을 마다하고, 상사가 뼛골에 사무쳐 세상까지 버릴 성품이라면, 살아 남았대도 그다지 순탄치는 못했을 겁니다. 그나저나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올시다."
"아, 생각을 해 보아. 많고 많은 것이 처자요, 나이 차면 어련히 혼담이 오고 갈 것인가. 아무리 기운 집안이라도 성씨가 있는데 아무려면 중인 혼사할까. 눈이 옆구리에 달려도 분수가 있지, 대소가 큰애기에 넋을 홀려 대장부 일신을 망친단 말이야?"
"그러기에 환장을 한 것이지요."
기표는 날카롭게 대꾸한다.
"다른 문중에서 행여라도 이런 소문, 알까 겁납니다. 그렇지 않아도 선대에 울리던 세도며 덕행에 학문조차, 이제는 한낱 족보에 남은 자랑거리처럼 돼 버려서 가뜩이나 아슬아슬, 자칫 한미한 집안으로 내려앉으려는 이 마당에, 이제는 상피마저 붙으면 도무지 집안 체면이 무에 되겠습니까. 개 도야지 한가지로, 눈에 뵈는 대로 덤비고 엉키는 꼴이. 그게 어디 제대로 사는 사람 집구석 꼴이냐고요. 중인 상것들도 본 데 있고 배운 데 있는 사람들이라면 생각도 못할 일이며, 저 알아서 오죽이나 삼갈 일인데도 말입니다."
"허 참. 맹랑한 일은 맹랑한 일이야. 입에다 담기도 민망한 사연이고 말고. 여하튼 이제 강수 그놈이 저렇게 청춘에 요절을 해 버렸으니, 남은 부모 형제들 처참하고 구차한 형상은 또 어찌 봐야 허는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분명히 있을 것인데 이거는 자고 새면 일이 생겨 도무지 종을 못 잡겠으니, 이게 무슨 징조는 징조야."
"전에도 더러 이런 일들이 있기는 있었지요. 소문을 안 내고 덮어두면서 쉬쉬 입을 막았으니 망정이지."
그러나 행세하는 집안의 문서에 그런 기록이 남아 있을 리 없고, 점잖은 부인들이 자녀를 대하여 그런 이야기를 옮길 리가 없으며, 인륜도덕을 하늘의 뜻으로 받들고 골수에 맺히게 새기는 반가의 동서들끼리 그런 소문을 숙덕거릴 리 없어서, 알게 모르게 지워져 버린 패륜의 사연들이 어찌 하나 둘이랴. 패륜. 강수는 그 무거운 굴레에 목이 눌려 숨이 진 셈이었다. 어쩌면 그는, 아무도 모르게, 그 자신조차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열화에 스스로 소진하여 버린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문중에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넘길 수도 없어서, 종가의 사랑에 모여앉아 서로들 쓴 입맛을 다시며 혀를 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진예가 출가를 했음이요. 만일 그 애가 아직도 여기 남아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진 마당에 어디 혼인인들 제대로 했겠소?"
"어허, 모르시는 말씀이요. 소문이란 화살보다 빠른 법, 이 소문이 예사 소문이요? 둔덕만 하나 넘으면 최씨들 사는 곳인데, 그게 사흘이 걸리겠소오, 나흘이 걸리겠소. 오늘 해 안으로 골백번이나 왔다갔다 했을 거요. 그 사람들 성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요? 하늘을 쪼갠다하면 쪼개야 하는 사람들이고, 물을 가른다 하면 갈라야 하는 사람들 아니요? 향내 나는 양반이라 도도한 그 집안에서, 새며느리 맞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터에 이런 괴이한 소문에 접하고 나면, 그 다음에 어찌 할는지는 불을 보듯 훤한 일일 겁니다."
"어찌 꼭 일 나기 기다리는 사람같이 그렇게 잘라 말허는고?"
"감춰 봐도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요? 망신스러운 것은 이미 가릴 수가 없게 됐습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게 낫지."
"어허어어. 이래서 다 예부터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 하고, 샘길에 여아를 내보내지 마라 경계하지 않았든가. 여자의 목소리에 음기가 자욱한지라. 본디 그 소리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안되는 법. 진예 탓도 적다고는 못허지."
"그런데, 도대체 그것들이 무슨 일을 어느 만큼이나 저질렀길래, 이런 사단이 나고 말었을까요?"
드디어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머뭇거리며 그렇게 물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안채에서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부인 몇몇이 문안 삼아 청암부인에게 들렀다가 그대로 앉아 해가 기울도록 일어설 줄 몰랐다. 도중에 한둘은 먼저 내려가기도 하였지만, 새로 올라온 사람도 있어, 같은 말이 몇 번씩 반복되기도 했다.
"아짐, 법도대로라면 강수가 살었대도, 덕석말이를 당했겠지요?"
그 말에 대하여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청암부인을 대신하여, 말한 사람의 재당숙모 흠실댁이 나섰다.
"덕석말이만 당허고 마는가? 몰매까지도 맞고, 안 죽을 만큼 닥달을 당헌 끝에 온 동네 끌려 돌고 다니면서 회술레를 당허고, 그 길로 내쫓기는 게지."
"안 죽으면 다행인데, 그러다가 죽은 목숨도 부지기수라대. 죽어도 별 수 없는 것이라. 그런 자식을 둔 부모까지도 마을에서 쫓겨나는 판국에 누가 옆에서 말리지도 못하고, 말릴 일도 아니지. 어른들이 허시는 일이고 법도를 따른 것이니."
"그렇게 죽으면 시신도 못 거두는 것이라면서요?"
젊은 축인 솔안이댁이 어른들 말씀 사이로 끼여들었다.
"시신이 다 무엇이야? 그대로 거적에 말어서 동구 밖에다 버리는 게지.""아이그, 저런."
탄식을 터뜨리는 사람은 나이 엇비슷해 보이는 연동댁이었다.
"남부끄럽고 민망해서 결국은 남은 식구들도 다른 데로 떠나는 경우가 보통이지 무어. 그러다가 끈을 놓치고 상놈 되는 거여."
"타성바지 천대허는 게 다 그런 까닭 아닌가..."
흠실댁 말에 청암부인은 침중하게 대했다.
"아니 그런데 강수가 그런 걸 몰라서 그랬을까요? 모를 리 없으면서 왜 그렇게 허무맹랑한 심사를 품고, 청춘에 인생을 버립니까?"
얼굴이 얇은 연동댁이 눈썹을 꺾어 찌푸리며 혼자말같이 중얼거렸다.
"알고 있었으니 제 딴에도 괴로워서 번민한 것일 테지. 상사만도 병인데다가 법도에도 어긋나는 사정을 혼자서 못 견디고, 애꿎은 목숨만 내버린 것 아니야. 어이그으. 철딱서니 없는 것."
청암부인의 손아래 동서 이울댁이 쯧, 쯧, 혀를 찼다.
"철딱서니 없다고만 동정할 일도 아니지요. 기왕에 죽은 것은 가련하지만, 이런 해괴한 정상을 예사롭게 여긴다면, 부녀, 모자, 오누이, 남매라고 어디 믿을 수 있겠습니까? 끔찍하여 입에 담기 송구하지만, 대저 일가 친척 대소가라는 것이, 지친 육친 한가지인데 애초에 그런 마음을 품는다는 것부터가 금수 아니고서는 못할 짓. 친형제 남매를 능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솔안이댁 음성에 쇤소리가 났다.
"여보게, 그렇게 독하고 모질게 말 안해도 다 그런 일은 해서는 안된다 하고, 못할 일로 생각지 않는가?"
야무지게 말끝을 오무리던 솔안이댁은 청암부인의 책망에 멈칫하였다. 그리고 모처럼 입을 연 청암부인에게로 방안의 사람들 눈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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