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그물과 구름 (2/3)
"어머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지나친 것 하나도 없다. 네가 무얼 잘했다고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게야? 지금"
"어른 말씀에 대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한 일로 친정 부모한테 욕이 돌아가니 민망하여 그렇습니다."
"민망? 민망할 일을 왜 해?"
"어머님. 놉이 누군가요? 놉은 남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집 농사를 지어 주는 우리 손이요, 우리 발 아닌가요? 놉을 남이라고 생각하면 놉도 우리를 남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일에 제 몸을 부릴 때 누가 성심을 다 허겠어요. 눈치보고 꾀부리고 한눈 파는 게 당연하지요. 우리가 놉한테 주는 밥그릇을 애끼면, 놉도 우리한테 주는 힘을 애끼는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 아닌가요? 아무리 종리라도 신분이 낮아 천한 대접을 받을 뿐, 사지에 오장육부는 똑같이 타고났고, 그 속에 마음이 있는 것은 양반이나 무에 다르겠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야 몸이 움직여지는 법인데, 배를 곯리고 마음을 상하게 한 뒤에 무슨 정성을 바랄 수 있을까요? 많이 먹고 즐거워서 힘이 나면 결국은 내 집 일을 그만큼 흥겹게 할 터이니, 한 그릇의 밥을 더 주고 한 섬지기 쌀을 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낄 것이 따로 있지 밥심으로 일하는 일꾼들한테다 몇 숟가락 밥을 아낀다고, 그것이 쌓여 노적가리가 되어 주게씁니까......"
눈을 내리뜨고 침착하게, 낯색 하나도 변하지 않고 말하는 효원의 모습에, 율촌댁은 가슴이 벌벌 떨려 턱이 다 흔들렸다. 앉은 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만 자리를 차고 일어나 버리고 싶은 것을 율촌댁은 기어이 참는다.
'내 이날까지 어머님께 눌리어 산 것도 어는 순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거늘 이제는 며느리 시집까지 살아야 한다니, 무슨 놈의 한세상이 돌아가며 시어머니뿐이냐. 아니 저런, 저 눈꼬리 저 입귀퉁이 좀 보아라. 저것을 ......저것을 어쩔꼬. 말로 해서 다스리기는 이미 틀렸다. 제가 감히 누구 앞이라고 또박또박 끊어 가며 말대답을 한단 말인가. 무어? 놉이 누군가요오? 놉이 놉이지 누구란 말이냐. 타고날 때부터 그런데 무엇이라고? 오장육부는 다 똑같으니 무엇이 어쩐다고? 어히구우.' 율촌댁은 드디어 한숨을 터뜨렸다.
"너 아주 말 잘허는구나. 그렇게도 소견이 훤허고 뜻이 분명하다면 삼정승 육판서도 돌아가며 허겄다. 터진 입이라고 아무 앞에서나 앞뒤가릴 것도 없이 말을 잘해. 그래서, 네가 지금 이 시에미를 가르칠 작정이냐? 훈장 노릇을 해 보기로 마음에 아주 작정을 세웠어?"
그네가 무릎 위에 얹고 있는 주먹이 저도 모르게 안으로 오그라지면서 푸르르 떨린다. 효원은 그런 율촌댁의 서슬에도, 앉은 자세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다. 그네는 할 말으 했다는 듯 조금도 당황하지는 기색이 없다.
"옛말 그른 데 하나도 없구나. 하나도 없어. 개같이 버는 놈 따로 있고 정승같이 쓰는 놈 따로 있다더니, 바로 이 집안에서 그 꼴이 날 줄이야 누가 알았든고. 이날 이때것 싸래기 한 토막이라도 쪼개서 애껴 먹은 사람 따로 있지 않은가. 도대체 이것이 무슨 징조란 말인가."
율촌댁은 좀처럼 심사를 가리지 못한다. 효원은 요지부동하고 앉아 있으니 그네의 끓어오르는 심정은 더더욱 다스리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효원은 그런 율촌댁에게 무슨 변명조차도 하지 않는다.
"말을 해 보아, 말을. 찍소같이 그렇게 버티고 앉아 있지만 말고. 네가 아직도 잘했다고 생각허는 것이냐?"
그제서야 효원이 고개를 든다. 물론 감히 똑바로 시어머니를 바라보는 것도 아니요, 목소리 또한 불손하지 않았다.
"어머님.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는 큰일이든 작은일이든 자기 속에 심중을 가지고 할 것입니다. 심중을 가지고 한 일이라면, 남이 무어라고 한다 해서 쉽사리 부화뇌동, 주견도 없이 남의 의견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으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음만 못합니다. 이번 제가 한 일이 설령 어머님 보시기에 잘못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평소에 제 생각이 그랬던 것이라 아직은 잘못이라고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속으로는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만 용서를 빈다는 것은 오히려 어른께 욕되는 처사가 아니게습니까. 그것은, 속으로는 비웃으면서 겉으로만 아부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으니,어른을 능멸하는 일입니다. 그저 앉은 자리난 모면하자는 얕은 잔꾀로 어머님께 마음에도 없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효원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율촌댁의 주먹은 방바닥으로 내려앉았고, 그 주먹으로 효원을 후려치고 싶은 것을 억누르는 율촌댁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강모가 불쌍하다. 강모가 불쌍해. 그렇게도 여리고 순한 사람이 어쩌자고 너같이 대찬 사람을 만났을꼬. 여자란 그저 위아래로 순탄해야 집안이 화목한 법이거늘, 꼬챙이 같은 그 성정으로 어떻게 남편의 마음을 잡는단 말이냐. 어히구우, 가련한 인생이로다."
율촌댁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허공을 향하여 혼자말처럼 탄식한다. 이번에는 효원의 얼굴이 벌겋게 된다.
"너 그래 가지고 평생 공방 면허기 어려울 것이다."
드디어 율촌댁은 그 한 마디를 뱉는다. 마치 벼르고 별러 오기나 한 것처럼. 그러더니 바람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미닫이를 거칠게 열어붙이고 대청으로 나가 버린다. 효원은 앉은 자리에서 움쩍도 하지 않고 바람벽을 쏘아본다. 그네의 뒷등에서 쩌엉, 소리라도 날 것 같다. 그날 밤 율촌댁으로부터 자초지종을 소상히 전해들은 이기채는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더니 집구석 되어가는 꼴 허고는. 참 잘헌다 잘해....... 시애비도 아껴 먹는 곡식을 그렇게 함지로 퍼다가 놉이나 멕이고. 공덕비를 세워 주겄그만."
하고는 죄없는 놋재떨이만을 두드리며, 불편한 속을 어떻게도 다스리지 못하였다.
"무엇 하나 변변한 것이 있어야지. 한 톨 양식이라도 보태기는 커녕, 도리어 물 퍼내듯이 퍼내기는."
"그저 대만 세어 가지고, 어디 보드랍에 스미는 구석이라고는 눈씻고 봐도 없으니 강모가 그렇게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바깥에서 떠돌 수밖에요......."
"허허어, 이거 집안 어찌 되려고 이 지경인가. 온 식구 권속들이 손발같이 한 속으로 정신을 채려도 눈만 뜨면 도척이가 천지에 시글거리는 이 마당에, 이건 식구마다 각동 삼동으로 흩어져서 제멋대로 논다니.......어머니 쾌차하시기는 바랄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었는데. 여기다가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기나 하면 대체 이 집안은 무었이 될꼬."
이기채의 일그러진 얼굴은 마치 덮쳐 오는 불안과 씨름을 하는 사람처럼 어둡고 침울하였다.
"무엇이든 어머님 혼자서 다 해오셨으니까 이렇게 어머님 한 분 실섭하시자, 아무 일도, 아무도, 어떻게 손을 못대 보는 게지요."
"이게 어디 어머니 탓으로 그런가? 그 어른은 또 왜 들먹이는 거요?"
"그전에도 그런 말 입답디다. 큰 나무 그늘에서는 풀 뿌리도 다리를 못 뻗는다고."
율촌댁은 이기채와는 다른 심정으로 말꼬리를 꼬았다. 그네는 아무래도 아까 효원에게 당한 일을 가라앉히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것은 당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수모였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어머님이 나를 허수롭게 알으시니 이제 겨우 귀때기에 솜털도 안 벗어진 것까지 제 시에미를 짚신짝같이 아는 거 아니겠소......?"
"이건 또 무슨 봉창 뚫는 소린고? 아니 지금 새삼스럽게 시집살이 하소연을 허자는 게요, 무어요."
이기채가 역정을 내자, 모처럼 만에 남편 앞에서 속에 응어리졌던 말을 털어놓으려던 율촌댁은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저 오나 가나 나는......) 그네는 웬일인지 전에 없이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기채는 이기채대로 여편네의 소가지란 어쩔 수가 없구나 싶어 쓴 입맛을 다신다. 이기채는 온 밤을 앉아서 새우다시피 하였다. 날이 밝으면 부르지 않아도 기표가 올라오겠지만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사람은 보내서 부르고 싶었다. 그만큼 초조하고 불안했다. 무슨 소리라도 내지 않으면 이 어둠의 무게에 짓눌리어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본디 그는 성품이 느긋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놋재떨이를 새되게 두드르면 두드릴수록, 깊은 밤은 깜짝깜짝 놀라면서 뒷걸음질을 쳐 더욱 깊어지기만 할 뿐, 좀처럼 날은 밝아 주지 않았다. 결국 닭이 첫홰를 치고 나서 숨 몇 모금 마실 여유도 참지 못하고 그는 붙들이를 내려 보냈다. 기표는 바로 올라왔다."안색이 아주 안 좋으십니다."
"안색이나마나."
기표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는 묻지 않으면서도 이기채의 의중을 환히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 이기채는 그래서 마음이 놓인다. 일일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이쪽 생각을 전할 수 있으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리도.
"형님. 강모한테 직접 말씀허시기가 난처하면 제가 변죽을 울리지요. 마침 강모도 이따 전주서 온다고 했다니까 말하기 좋겠습니다."
기표의 말에 이기채는 말끝을 잘라 대답했다.
"그래?"
"이젠 저희들도 내외지간에 흉허물 없을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은 어차피 집안일이니까 질부도 한 속이 되어야 할 것이고요. 시집간 딸은, 친정의 명당도 훔쳐 온다는데."
"알아서 해 봐."
이기채는 쫓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놈이 이런 일을 경우지게 해낼 수 있을까? 웬만한 자각만 있다 하더라도 이만한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련만. 제가 무슨 집안일에 뜻이 있으랴. 강단도 없고 무슨 계획도 각오도 없는 자식놈. 아들이 둘만 되었으면 내 심사가 이러지는 않을 것인데......정신이 공중에 떠서 도무지 실속이라고는 없는 저 허수아비 같은 놈을, 그래도 자식이라고 믿고......도대체 이 집안이 어찌 되려고......난데없이 앵금을 치켜들고 풍각쟁이가 된다고를 하지 않는다, 동경으로 가겠다고를 않는가......제놈이 어떤 종손이라고, 제 몸 알기를 길가의 돌멩이처럼 천하게 굴리다니......강모가 실하다면 내 심정이 이 지경이 되랴.) 이기채는 그만 속이 메슥거리면서 휘잉하니 어지럼증이 돌았다. 그것은 이기채에게 이제는 고질이 되어 버린 병이었다. 워낙 위가 실하지 못하여 삼시를 족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창씨의 일이 있은 뒤 그의 심신은 몰랒보게 쇠삭하여,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의식을 놓아 버리다시피 한 청암부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머리도 허옇게 세어 버리고 수염도 누르께한 빛으로 바래어, 일어나 앉아 있는 모습조차도 종잇장처럼 얇아 보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의 신경은 파랗게 긴장되어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한 가지 일에 골몰하는 것이었다. (위태하다.) 이 생각은 한시도 이기채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위태하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일어서서 방안을 서성거리거나 연신 마른 기침을 했다. 아랫사람들도 사랑 근처에서는 발걸음을 조심하여 더욱 숨죽였다. 이기채가 그러하니 자연 집안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소가에서도 마음이 어지러워, 모여앉기만 하면 낮은 소리로 술렁거렸다. 바둑판같이 네모 반듯하던 판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창씨의 일이 있은 후, 지난 대서를 고비로 끝내 청암부인이 자리에서 못 일어나고 만 뒤, 급작이 더하여진 증세였다. (위태하다.......) 그날 아침 안서방이 사랑에 와서 더듬더듬 청암부인의 실섭을 천할 때 이기채는 뒷머리를 번개처럼 후려치는 이 생각에 아찔하였다. 그리고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 낭떠러지를 향하여 치닫고 있는 어떤 운명을 절감하였다. 그것은 청암부인의 임종에 대한 예감이었다. 그와 더불어 이 집안과 자신에 대한 소름 같은 예감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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