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8. 베틀가 (3/3
"이날 펭상, 그림자맹이로 사시는 양반이..."
그것은 인월댁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인월댁은 청상의 과수도 아니면서 자신이 소복을 입기 시작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잊을 수가 없는 것만이 아니라 그날을 생각하면 뼛골이 사무쳐 왔다. 그날로부터 입기 시작한 올 굵은 무명옷은, 살아있다 할 수 없는 그네의 반생을 그렇게 허연 빛으로 표백해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월댁은 원뜸의 청호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고샅을 훑고 지나간 다음에도, 한참 동안을 그렇게 찬 방바닥에 망연히 누워만 있었다. 미영씨 기름 등잔의 빛이 바래어지는 것으로 보아 동이 트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월댁은 기진한 듯 눈을 감는다. 청호 저수지의 물이 마르다 마르다 못하여 뻘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선하게 보인다. 내장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허옇고 검은 옷 입은 사람들이 다리를 걷어 붙이고 소쿠리며 삼태기, 물통에 물고기를 건지는 모습 또한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뙤약볕이 하얗게 내리쪼인다. 둥그렇게 드러난 조개방위가 뙤약볕을 받아 불덩어리처럼 달구어진다. 이글거리며 달구어진 조개바위가 타오르면서, 그 불길에 뜨겁게 끓어 넘치는 청호에 사람들이 와글거린다. 흡사 장바닥 같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쏟아져 나온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손에 손에 횃불을 들고 있다. 불빛이 넘실거린다. 횃불이 햇빛을 가리운다. 햇빛이 가리워지자 천지가 캄캄해지면서 관솔불, 횃불들이 어지럽게 쏟아진다. 가슴의 복판에 쏟아진 불덩이로 꺼멓게 뚫리는 인월댁의 가슴이 써늘하게 식는다. 달도 없는 깊은 밤이었지. 천지는 무거운 어둠에 쓸리며, 한쪽으로 기울어 무너지고 있었다. 그날따라 소쩍새는 온 산에서 음울하게 울었다. 그 울음의 울림이 밤바람을 타고, 번뜩이는 방죽의 수면으로 젖어 내리었다. 봄이 흐드러질 대로 흐드러져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밤이면 그렇게 목이 갈라져 쉰 소리로 소쩍새는 울었다. 그 몹쓸 소리. 컴컴하게 핏속으로 잦아드는 소쩍새의 울음 소리에 홀린 듯이 앉아서 해마다 몇 봄을 그렇게 그네는 쓰라리게 넘겼었는지. 내게 아무러면 소쩍새만한 한이 없으랴.
기미년, 그때 서른 살을 막 넘기었던 그네는 아무 미련도 없이 초가삼간을 나섰다. 그네가 시집이라고 와서 십여 년 동안을 의탁하였던 집이었다. 그 사립문을 지그려 닫고 허청허청 원뜸의 방죽을 향하여 걸어가던 인월댁은 어둠 속에서 초가를 돌아보았다. 집은 마치 벗어 놓고 온 신발처럼 봄밤의어둠을 슬어 안고 있었다. 하기야 그네가 매안의 이씨 문중으로 오게 된 것부터가, 기구하다면 기구하였고 억지라면 억지였다."사람의 한평생이란 뜻 같지만은 않은 것이네. 뜻밖의 일이란 항상 뜻밖에 일어나는 법 아닌가. 비록 지금은 이와 같이 서러운 신행을 왔네마는, 참고 살자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 것인가. 나도 빈 집으로 신행을 왔었네. 오 속의 가까운 일가도 없이, 의지하고 살 사람 하나도 없는 집에 흰 옷 입고 왔었지. 이 사람아, 그때 내가 몇 살이었는줄 아는가? 자네 나이와 꼭 같은 열아홉이었어. 나는 그때 ... 속으로 그랬었네... 얼굴도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 신랑을 두고, 죽지만 않았다면 좋겄다. 한평생 만날 일 없이 살어도 좋고, 평생토록 소식 한자 못 듣고 살어도 좋으니 어디서든지... 아무 곳에서라도... 나 모르는 어떤 곳에서라도... 살아만 있었으면 원이 없으련만... 하였더라네. 지금도 가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아. 목숨이 살어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모든 설움을 갚어 줄 수 있을 것만 같더란 말일세."
(차라리 죽고 없으면 심정이 이와 같으리오. 청암아짐은 마음속에 한은 있으되 원이 없으시니, 원한을 함께 품고 있는 저와 같으시겠습니까?)
"내가 남의 일이라서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닐세. 사람이 살어 있으면 마음에 품은 원이건 한이건 대상을 삼을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이 나를 세상에 있게 해 주는 끈이 되는 것이야."
(그 끈이 나를 동여매고, 목을 조이고, 한평생을 속박하는 것은 또 어쩌리까? 지난 봄, 삼일운동에는 남원 읍내 온 사람이 다 나와서 목이 메이게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하더이다만, 나는 무엇에 묶여 있길래, 무엇에서 벗어나고자 이리하는 것이리잇가.)
"대상 없는 허공을 향하여 사는 것보다 더 고달픈 일은 없느니... 장애가 디딤돌 되는 일도 있으매, 묶여서 오히려 떠내려 가지 마소. 비록 그 사람이 오늘은 여기에 없지만 기다리는 마음으로 집을 지키고 있게. 누추하나마 아랫몰에 초가 한 채를 지어 놓았네. 나의 심정으로는 솟을대문에 기와 겹집이라도 얼마든지 지어 주고 싶네만,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여 일부러 저만치 아랫몰에 조촐하게 초가를 지었으니, 과히 섭섭히 여기지는 말게나."
그것은 옳은 처사였을 것이다. 과연 그것을 신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아홉에 신행을 온 인월댁을 앞에 앉히고, 청암부인은 마치 인월댁의 심경을 거울로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인월댁은 그때 하늘보다 높은 어른 앞이라 고개를 수그린 채 드러내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자신의 말을 새기고 있었다.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여인이 시집의 문중으로 들어온 것만 하여도 소문거리이온데, 무슨 염치로 고대광실에 살겠습니까?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는 부끄러운 사람이니 초가 삼간도 제게는 바늘방석입니다. 오히려 목숨이 붙어 있다는 사람만으로도 호사스러운 일이지요. 친정에서 죽지 않고 시댁의 문중으로 들어와 죽는 것조차도 제게는 과분한 일입니다.)
"기서가 일찍이 조실부모 해서 집안에 자네 시어른이 안 계시네. 자격은 없으나마 내가 그래도 명색이 종가의 종부로서 시어른 대신 기서 부모님의 흉내를 낸 것일세. 그리 알게나. 지금은 자네가 죄도 없이 근신을 허게 되었네만, 달리 또 어찌하겠는가. 일단 이씨 문중으로 들어왔으니 우리 같이 세월을 기다려 보세."
청암부인은 인월댁을 안쓰럽게 여기며, 집 한 채를 내려 주었다. 그때 청암부인의 나이 서른일곱, 인월댁은 열아홉이었다. 아랫몰의 개울가에 세워진 인월댁의 초가 토담 옆에는 각시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애잔하게 서 있었다. 그 개울을 경계로 저쪽은 거멍굴이었고 이쪽은 문중의 마을이었다. 열매도 탐스럽게 맺지 못할 각시복숭아의 꽃잎은 무엇하러 그렇게 진분홍으로 고울 일이 있었던가. 기껏 설레게 꽃잎이 피어도, 결국은 도토리만한 열매를 맺고는 그만일 것이. 인월댁이 안서방네의 안내로 그 초가의 사립문을 들어서려 할 때, 복숭아 꽃잎은 하염없이 날리며 개울로 졌다. 물 위에 진분홍의 꽃잎이 물 소리에 섞여 떠내려 가던 그 밤에 온 산에서는 소쩍새가 그렇게도 음울하게 울었었다.
인월댁은, 신랑 기서가 잠깐 나갔다 올 것처럼 일어서서 장지문을 열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밟혔다. 사모관대도 벗지 않고 자색 단령 자락에서 휙 바람 소리를 내며 나가던 때의 그 써늘한 기운은 오래오래 인월댁의 가슴에 남았다. 그 기운은 가슴에 자리를 잡으면서, 살 속으로 파고들고, 뼛속으로 근을 내렸다. 기서는 그 길로, 매안에도 들르지 않고 경성으로 떠나 버렸다.
"기서한테 역마살이 있는 것이라... 역마살을 타고난 사람은 아무리 반가에 나도 끝내는 엿장수라도 하고 마는 법이거늘. 한 사람의 청춘이 가엾고, 끝내는 인생이 안쓰러운 일이로다."
청암부인은 그 소식을 듣고 홀로 탄식하였다. 그저 단순히 가엾고 안쓰러운 것이 아니라, 핏줄이 땡기는 것 같은 아픔에 가슴을 오그리며 한숨을 토하였다. 결국, 문중은 종가에 모여 인월댁의 일을 의논하게 되었다. 남의 일이라 가끔 궁금하게 생각하고 염려는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까지는 가지지 못했던 문중 사람들은, 청암부인이 주도한 문중 회의에서도 의견들이 분분하였다. 그렇게 분분한 의논 중에도 가끔씩 가라앉을 것 같은 침묵이 무겁게 좌중을 짓누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다만 청암부인만은 시종 자신의 뜻을 분명히 하였다.
"책임을 질 사람도 없이 무조건 이쪽으로 데리고만 오면 무슨 수가 나겠습니까? 차라리 친가에 있는 것이 신간이 편할 겁니다."
그때 생존해 있던 병의는, 데리고 오자는 청암부인의 말에 난색을 보였다. 병의는 기표의 부친으로 청암부인에게는 시아재였다. 형수인 청암부인은 간곡하게 말했다.
"이미 이씨의 문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번 출가하면 그뿐, 친가에는 더 머무를 수가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쪽에서 오라는 말이 없으면 그곳에서 한평생을 얹혀 살아야 하는데 그 정경이 오죽 딱합니까? 비록 신방에는 신발 한 번 벗었다 신은 인연밖에는 짓지 못하였으나 그 역시 내외는 내외인지라, 남편의 가문에 와서 생애를 보내야지요. 이곳에 와서 사는 것이야 어찌 살든 흉될 것이 없습니다만, 그쪽 친가에서 산다면 껀껀이 말이 될 것이며, 처신에 괴로움이 많을 터이고, 죽어도 이곳에 와서 죽어야 도리일 것입니다. 기서 부모님께서 구존해 계시다면 그 어른들께서 알아 하실 일이나, 지금은 두 분이 계시지 않는 형편입니다. 문중이 책임을 지고 보살펴 주어야지요. 새댁도 지금이야 나이 젊고 부모님이 계시다지만 미구에 타계하시면, 그 인생이 어디에 몸을 의탁하고 살겠습니까? 결국 자진을 하게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소홀히 하고 있는 동안에 한 인생이 시들어 죽어간다면, 이는 사람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 기서는 이미 돌아오기 어려운 사람이나, 법도대로 새댁을 신행 오게 하십시다. 비록 신랑은 없는 집이라 하나, 이씨의 가문으로 오는 것이 바른 이치일 겝니다. 결정만 내리면 목수를 불러 초가 한 채를 짓겠습니다. 새댁도 호사할 생각은 없을 것이니, 죄인은 아니로되 누옥에서 근신하며 살자면 때가 오지도 않겠습니까? 어쨌든 이 가문의 사람이라 종가에서 돌보겠습니다."
청암부인의 심정이 너무나도 간곡하여 사람들은 무해무득한 일에 공연히 반대할 까닭이 없었다. 아랫몰 개울가에 초가를 짓고 홀로 있는 듯 없는 듯 살 것인데, 정경은 딱하겠지만 굳이 막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된 신행이었다. 물론 잔치도 없었다. 다만 구경꾼들이 울타리같이 두르고 있는 중에 종가의 청암부인에게만 시부모님께 올리는 구고례를 대신하여 절을 하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랫몰 개울가 초가집에 들어서, 토방 아래 마당에도 나서지 않을 만큼 방안에서만 숨어 살다시피 하던 만 십이 년의 세월. 그것을 어찌 말도 다할 수 있으랴. 십삼 년째 되던 해, 봄 소쩍새가 그렇게도 울음을 토하던 밤. 그네는 방죽에 몸을 던졌다. 울다 울다가 제 목에서 피를 토한다는 새, 토한 피를 다시 삼키며 무슨 서러운 일, 무슨 한 많은 일로 제 속에 피멍이 들게 간직한 원통한 일로, 한세상을 밤이면 울다가 죽어 가는 새. 인월댁은 방죽의 수면 위로 번득이며 파고들어 울려 오던, 그 낮고 목 쉰 울음 소리가 조금도 무섭지 않았었다. 내가 죽으면 그 넋은 무엇이 되랴. 그때 여우가 빈 어둠을 향하여 길게 울었던 것도 같았다. 그네의 귀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차가운 물 소리뿐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제방으로 건져내졌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전신이 물에 젖어 혼곤하게 눈을 떴을 때, 인월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불똥이 떨어지고 있는 횃불의 무리였다. 횃불들은 허공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지럽게 웃으며 춤을 추는 것도 같았다. 하늘이 불붙으며 쏟아져 내렸다. 그 불덩어리 하나가 가슴에 떨어지면서, 그네는 다시 정신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나서 얼마 동안이나 그렇게 길고 긴 혼수에 빠져 있었던가. 그네가 깨어났을 때, 북향의 뒷방에는 청암부인이 보낸 베틀이 그네의 정신이 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인월댁을 위하여 각별히 새로 맞추어 만든 베틀이었다.
"한꺼번에 다 살려고 하지 말게나. 두고두고 살아도 꾸리로 남는 것이 설움인데, 원수 갚듯이, 그렇게 단숨에 갚아 버릴 생각일랑 허지 말어... 그런다고 갚아지는 것도 아니니."
청암부인은 지그시 눈을 내리감고 한참씩 쉬어가며 숨소리로 말했었다. 인월댁은 아직도 얼굴빛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 푸르게 질린 채 듣고만 있었다. 그 말소리와 숨소리 사이에 복숭아 꽃잎이 지는 소리가 들리었던가, 아니었던가. 그날로부터 이십여 년의 세월을 하루같이 인월댁은 베틀에 앉아 살아 왔다. 동무라면 오로지 속으로 나직이 흥얼거리는 베틀가 한 자락.천상에 놀던 각시가 세상으로 귀양을 왔더라오 배운단 게 질쌈이요 부르나니 베틀가라 명주 한 필 짜을라니 베틀 놀 데가 전혀 없어 좌우 한편 둘러보니 옥난간이 비었구나 베틀 놓세 베틀 놓세 옥난간에 베틀 놓세 낮에 짜면 일광단 밤에 짜면 월광단 옥난간에다 베틀 놓고 베틀 몸을 동여매어 베틀 다리는 네 다리요 앞다릴랑 두 다릴랑 동에 동창 배겨 놓고 뒷다릴랑 두 다릴랑 남에 남창 맞쳐 놓고 앉을개라 돋우 놓고 그 우에가 앉은 각시 허리 부테 두른 양은 절로 생긴 산지슭에 허리 안개 두른 것고 북 나드는 저 기상은 피징강도 건넌 기상 대동강도 건넌 기상 용두머리 우는 양은 조그마한 외기러기 벗을 잃고 슬피 우네 황새 같은 도투마리 청룡이 여의주를 다투난가 달을 따서 안을 삼고 해를 따서 거죽을 삼고 삼태성의 끈을 달아 무지개로 선을 둘러 금자를 갖다 대어 옥자로 재어 보니 서른 대자로오구나 청태산 구름 속에 만학이 넘노난 듯 옥색 물을 반만 놓아 서울 가신 서방님 청도포라 지어 보세 옷이라도 지어 보세 누가 올리도 없고 달리 갈 데도 없는 세월이, 베틀에 짜여지는 무명필처럼 흘러갔다. 다만 인월댁이 남의 눈을 피하여 청암부인에게 다녀온 몇 번을 제하고는, 그 긴 세월 동안 집을 비운 일이라고는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원뜸의 종가에서 안서방 내외가 번갈아 심부름을 내려오는 것이 손님의전부라고나 할까. 그네는 그림자처럼 홀로 살아왔다. 인월댁의 길쌈 솜씨는 드다지 두드러진 편은 아니었다. 동틀 무렵부터 해질녘까지, 꼬박 앉아서 하루 열 자를 짜기도 하였으나, 매달이어 억세게 일을 하지는 않았다. (내 할 일이 이것뿐인 것이라 ... 그저 ... 벗 삼아서...) 그네는 때때로 잉앗대에 이마를 대고 베틀에 엎드려 울었다. 멍울멍울 떨어지는 눈물은 무명의 올 사이로 스며들어 실을 젖게 하였다. 실은 살이었다. 그리고 용두머리 위에 기름등잔을 밝혀 얹어 놓고, 밤을 새워 베를 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을이 깊이 잠든 한밤중에 그네가 잘 못 이루며 길쌈하는 소리는 덜컥, 덜컥, 밤의 가슴에 얹히곤 하였다. 그럴 때 차갑게 귀를 적시며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는 얼마나 시리었던가. 차마 베틀에도 앉지 못한 채, 가슴을 오그려 우는 밤도 있었다. 명주실낱 같은 핏줄 하나하나가 땡기어 그대로 터져 나갈 것만 같은 설움에 목이 메어 홀로 우는 밤이면, 각시복숭아 꽃잎이 개울에 날려 떨어지는 소리까지라도 역력히 들리었다. 무섭게 적막한 밤이었다.
"부질없는 것들같이 보일지라도 무엇에다 마음을 묶어 두면 의지가 되느니. 바늘쌈지 부지깽이 하나라도 애중히 아껴 보면 어떻겠는가. 한 세상이라는 것이 허허벌판 위태로운 바람닫이인 것을, 바람벽도 없이 어디에 마음을 가리우고 살 것인고."
청암부인은 인월댁에게 그렇게 간곡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인월댁은 길쌈한 것으로 논이나 밭을 사지는 않았다. 그네 앞으로 단 한 마지기의 논이나 하루갈이의 밭조차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다른 치장을 할 리도 없었다. 다만 그네는 겨우 연명할 곡식과 몇 가지의 일용품을 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일은 장날이면 안서방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충직하게 맡아서 해 주었다. 인월댁은 늘 그렇게 생각하였다. (논 사고 밭을 사면 무얼 하겠는가. 그것도 애착의 끈이 된다. 내 무엇을 위하여 흙덩어리에다 마음을 묶어 두리오. 내 마음 하나도 나한테 묶여 있는 것이 짐스럽고 무거운 것을... 삼간 초가에 이 한 몸 의탁하고 있다가, 때 되면 툇마루에서 일어나 길 떠나가면 그뿐이라. 무엇에든지 나를 묶어 두면, 떠나는 발걸음이 또 얼마나 무거우리.)
그런 인월댁의 생각에 청암부인은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깊이 고개만 끄덕이었다. 인월댁은 인월댁대로 그러한 청암부인의 모습에서 풍우를 가려 주는 지붕을 느끼었다. 그런데 지금 청암부인은, 이미 며칠째 혼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부인의 연세는 올해 일흔. 고희에 이르렀다. 인생칠십고래희라, 해서 사람의 나이 일흔은 예로 부터 드문 일이니. 일흔 살이 되는 생일에는 환갑 때보다 더 융숭히 차려 큰 잔치를 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경우에도 물론이겠지만, 청암부인의 고희연이라면 가히 그 정성과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을 뻔했으나. 이기채의 간곡한 소청에도 부인이 끝내 허락 아니하여서, 내놓고는 준비하지 못하던 중, 팔월 열나흗날, 그러니까 추석 하루 전날이 생신이라. 율촌댁이 알게 모르게 마음쓰고 있는데, 그 눈치를 못 챌 리 없는 청암부인이 아들 내외를 불렀다. 그리고 준절히 나무랐다.
"시절이 이와 같아, 나라를 잃은 것도 분하지마는, 그 통한을 지금에 비하겠느냐. 나는 일개 아녀자라 큰일은 모른다. 다만 내 앞에 주어진 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나라 이름 앞세운 것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내 힘을 다 하려 했다. 만일에 결과가 불미스럽거나 미흡했다면 이는 내 능력이 모자라 할 수 없었을 뿐. 내 뜻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헌데 오늘, 이 가문의 성씨를 바꾸어 왜놈의 이름으로 갈아야 한다는데, 창씨개명을 내 손으로 해야 하는 마당에, 내가 무슨 염치로 낯을 들고 앉아서 고희 상을 받는단 말이냐. 조상님께 사죄하고 스사로 목숨을 끊어도 부족하리라. 내 일찍이 너희 아버님 조세하신 것이 늘 애통하여, 세상의 온갖 목숨이 다 아름다워 보이고, 곰배팔이 째보도 살아만 있다면 귀해 보였다만. 이제 와 이런 참혹지경을 당하니, 일찍 죽지 못한 것이 오직 한스러울 뿐이로다. 내가 오래 살아 이런 전고에 없는 욕을 당하는 것이야. 너희가 나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고희라고 물 한 그릇도 떠 놓지 말아라."
그리고... 쓰러졌다. (아무래도 큰집에 좀 올라가 봐야겠다. 오늘은 차도가 있으신가) 인월댁은 찬 방바닥에서 몸을 일으켜 앉는다. 그리고 아직도 빛을 밝히고 있는 등잔불을 불어 끈다. (저렇게 사람들이 청호로 몰려가서, 공들이던 고기들을 손으로 거머잡고, 저수지 바닥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다면 종가의 운수가 ...) 마음이 허방으로 떨어진다. 그네는 서둘러 매무시를 고친다. 이만큼 날이 밝았으면 청암부인을 찾아뵙는 것도 이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인월댁은 아까부터 아침이 되기를 기다리느라고 애가 탔었던가 보다. 여자가 식전 손님이 될 수는 없는 탓이리라. 그네가 막 방문을 열고 나오자, 햇살이 실린 감나무 가지 위에서 까치가 까악 까악 운다. 지금까지의 인월댁은 아무리 아침 까치가 울어도 마음이 설레지 않았었다. 설렐 일이 없는 것이다. 기다릴 소식도 없었다. 그리고 까치에게라도 걸어 보고 싶은 아무 소망도 없었다. 그저 무심히 까치 둥우리를 한 번 울려다보면 그뿐이었다. 그럴 때 까치는 검은 감나무 가지 꼭대기에서 까악 까악, 눈부시게 아침 햇살을 토해 내곤 하였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달랐다. 저수지로 몰려가던 거멍굴 사람들의 어수선한 발소리와 양철 대야 물통, 물지게 소리를 몰아내 주는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인월댁은 까치 소리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뻘밭이 되어 버린 저수지 밑바닥과 뒤재비를 치는 가물치, 뱀장어, 큰 붕어들의 검은 몸부림, 그것들을 삼태기로 건져 내는 사람들의 손, 덩그렇게 드러나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는 조개바위들이 한꺼번에 청암부인에게로 달려들어, 덮어 누르는 것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머리를 털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까치 소리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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