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8. 베틀가 (2/3
"옹구네는 재주도 참말로 좋네잉? 이 밤중에 맨손으로 어디 가서 그렇게 귀헌 가물치를 잡어 온당가아?"
그러자 옹구네가 돌아서려다 말고, 눈을 내리드며 목소리를 차악 낮추어 쏘아 붙인다.
"걱정도 팔짜여잉? 넘이사 어디 가서 무신 짓을 허고 가물치를 집어 오든 말든, 자개가 멋 헐라고 짚고 넘어 선디야? 왜? 어뜨케 잡어 왔으먼 어쩔라고 그리여?"
"어매? 이 예펜네가 왜 새복부텀 사람을 밀어붙이고 이런데? 무신 짓을 어디 가서 하고 왔간디, 매급시 언성을 높이고 그리여?"
평순네는 웬일인지 독이 올라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농판인 척하고 옹구네의 입심을 그저 받아 삼켜 주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까닭을 알 수는 없었지만 밤새도록 샘가에 쪼그리고 앉아 물동이에 이맛전을 기대고, 졸며 깨며, 흙탕물 한 바가지 받아 이고 돌아오는 다리가 장작개비처럼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오장과 가슴속까지 바싹 말라 부싯돌을 켜대면 화르르 불길이 일 것만 같다. 그 부싯돌을 번쩍, 하고 옹구네가 켜댄 셈이었다. 갑자기 세상살이가 귀찮게 여겨지는 것은 또 웬일일까. 물 긷던 동이를 옆구리에 꿰어 차고 통통한 몸뚱이를 흔들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옹구네는 지금, 함지박에 가물치 한 마리를, 그것도 틀림없이 볏단만한 것이 분명한 놈을 채워 들고 호기롭게 돌아오고 있다. 그런데 편순네는 흙탕물 한 동이가 고작이었다. 옹구네는 평순네에게 다그친다.
"무신 짓은 무신 지잇? 넘으 상관 말으시고 어서 들으가서 밀지울이나 싯쳐 갖꼬 한 숟구락 잡술 일이제. 아까막새는 바쁜 소리 혼자 다 허등마는, 왜 가는 사람을 붙들고 찐드기맹이로 놓들 안하여?"
"하이고오, 오밤중에 어디 가서 가물치를 잡어 올 거이여어? 누가 그 속을 몰르께미, 넘 밀지울 먹는 것을 약올리고 자빠졌당가?"
"무신 약을 누가 올려? 매급시 지가 몬야 눈꾸녁에다 쌍심지를 돋과 갖꼬 불을 씨고, 지내가는 사람을 불러 세웠잖응게비? 무단히 넘의 것을 넹게다보고 택도 없는 입맛을 다시능 거이 누군디?"
드디어 평순네가 침을 탁, 뱉어 버린다.
"던지러라. 누가 그께잇 노무 가물치, 먹고 자퍼서 환장헌 줄 아능게비. 그거 온전한 거이 아니라, 농막에 가서 치매 걷고 얻어 온 거인지 내가 머 몰르께미?"
"허엉."
옹구네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팽팽하게 약이 오르는 것이 보인다.
"무신 챙견이여? 헐 일도 잔상도 없등갑다. 내 몸땡이 갖꼬 내 밥 벌어서 새끼랑 먹고 살겄다는디, 누가 왜 나서서 간섭이셔?"
"하앗따야. 자식 생각 한 번 오지게 잘했다. 더러운 노무 거 부정 타서 나 같으먼 자식한티는 못 맥일 거이다."
"부정을 타도 내가 탈 거잉게, 걱정을 말드라고오."
"늙어감서 그거이 먼 짓이여? 동네 사람 남새시럽게."
"그런 소리 말어. 썩어 죽으면 흙 되는 노무 인생, 수절헌다고 누가 열녀문을 세워 준다등가? 그것 다 속절없는 짓이라고 나 같은 상년의 팔짜에 과부된 것만도 원퉁헌디, 거그다가 소복 단장하고 그림자맹이로 앉어서 지낼 수도 없는 것을, 무신 수로 뽄 냄서 산당가아? 수절 열녀, 그거 다 양반들이 매급시 뽄 내니라고 그러능 거이여, 머. 내가 무신 인월마님이간디? 누가 나를 멕에 살려준대? 인간의 한 펭상, 구녁여. 벨 것 있는지 알어? 곰배팔이 영갬이라도 있는 사람은 천방지축 등불도 없고 질도 없는 이런 년의 팔짜를 귀경험서, 헤기 좋은 말이라고 되나캐나 넘 말헐 재격이 없다고오."
옹구네는 탄식조로 오금을 박아 놓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핑하니 들어가 버린다. 보란 듯이 머리에다 함지박을 떠받쳐 이고. 평순네는 기가 차서 한참을 그대로 서 있다가, 옹구네 마당 쪽으로 길게 눈을 한 번 흘기고는, 그 눈길을 걷어들여 하늘을 본다. 검푸르게 개는 새벽 하늘에 밤새도록 메말라 물기가 빠진 별의 무리가 힘없이 깜박인다. 오늘도 비 오시기는 틀렸구나. 식구들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진 채 부엌에서 나는 물 쏟는 소리에도 깨어나는 기척이 없다. (청호으 괴기 건지먼 죄로 갈랑가? 아이고, 아서. 그거이 어뜬 물이라고... 신령님이 참말로 홰를 내시먼 어쩌게. 청암마님이 아시먼, 또 가만 두든 안허실 거이고오.) 나 좀 바라, 내가 시방 무신 생각을 허고 있다냐, 평순네는 망설이면서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가물치를 지워 버리지 못하였다. 그때 그네의 귀가 쫑긋 일어섰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죽이며 담장을 끼고 고샅을 지나가는 소리 때문이었다. (저 예펜내가?) 순간 평순네는 반사적으로 삼태기를 찾아들고 사립문을 나섰다.
벌써 하늘은 보랏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어두컴컴하여 사람의 얼굴이 얼른 분별되지는 않았다. (한 마리만 고아 먹어도 초벌, 재벌, 세 번, 네 번, 열 번은 고아 먹겄그마는, 저 노무 예펜네, 그걸로는 성이 안 차서 청호까지 지 발로 쫓아가 건져 올랑갑다. 오냐, 너만 먹겄냐? 너 혼자만 홍자 만나겄냐고.) 평순네는 순간적으로 마음에 까닭 모를 앙심을 품으며 발 끝에 힘을 모으고 고양이 걸음을 걷는다. 옹구네는 제 뒤를 따라오는 평순네를 본 체도 안한다. 평순네가 옹구네의 궁둥이를 바짝 뒤쫓고 있는데, 원뜸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네들 둘만이 아니었다. 걸음걸이만 보아도 얼른 알 수 있는 거멍굴의 사람들이 웅성웅성 소리를 낮추어 수군거리며, 옆구리에 물통이니 대야니 물동이 같은 것들을 하나씩 끼고 줄을 지어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남이 알까 몰래 눈치 보며 한 사람씩 나섰겠지만, 몇 사람이 모여지자 아주 마음 놓고 한 패가 된 것이다.
그들이 실핏줄까지 말라 버린 도랑을 지나 논배미와 밭머리를 기고 자갈밭이 드러난 아랫몰 냇물을 건널 때, 매안의 지붕들은 다소곳이 엎드린 채 어둠 속에서 눈을 어슴프레 뜨려 한다. 사람들이 인월댁의 초가 모퉁이를 돌아설 때, 고샅 쪽으로 난 북향 창문에 젖은 듯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옹구네는 그 불빛에 눈빛이 부딪치자 도톰한 입술을 샐쭉해 보였다. 일부러 평순네 보라는 시늉인 것 같았다. 그러나 평순네는 모른 체하고 걸음을 재게 하여 그네를 앞지르려 하였다.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허신다는디, 이런 난세에, 내비두어도 물이 없어 말러 죽어가는 물괴기 조께 건져 먹었다고 설마 호통이야 치겄어? 안 그리여?"
저것은 춘복이 소리다. 평순네는 울컥 억하심정이 치민다. (아무리 그런대도 청호는 우리 꺼이 아닌디, 거그서 살고 있는 물괴기를 건져다 먹는다먼 도적질이나 한가지여. 잘허는 짓은 아니라고. 주신다먼 몰르지만... 그래도 어쩔 거이여? 넘들은 다 허는 짓을 나만 발 개고 앉어 있다고 누가 상 주도 안헐 거이고. 아이고 모르겄다. 덕석말이를 당허먼 모다 같이 당허제 나만 당헐라디야? 그거는 그렇다치고. 아이고메, 저 년놈들은 낯빤대기 두껀 것 좀 바.) 평순네의 마음은 도무지 어수선하기만 하였다. (일은 저 예펜네가 저질렀는디 왜 속은 내 속이 이렇게 시끄럽다냐. 됩대로 내가 무신 들킬 일이라도 있는 것맹이로, 두근두근,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능가 모리겄네.) 그 시각은 인월댁이 막 베틀에서 내려와 앉은 시각이었다. 인월댁은 고샅을 지나가는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에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리고, 어떤 무서운 예감을 느낀다. 논바닥에서 흙먼지가 누렇게 일고, 수숫대 울바자에 올린 호박 덩굴들이 애호박 한 덩이도 제대로 달지 못한 채 잎사귀를 축축 늘어뜨리고 있는 날씨는 어째서인지 심상치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고.) 처음에는 가뭄이라고 해도, 그다지 큰 근심은 하지 않았었다. 그만큼 청호는 크고 넓고 깊었다. 그리고 물 밑바닥에 거대한 몸집을 누이고 있는 조개바위의 영험을 또한 믿었다. 그것은 청암부인이 나이 마흔을 바라보면서 서른아홉의 몸으로 일으킨 관수 공사가 아니었던가. 순종 임금대 융희 4년, 만 이태에 걸쳐 공사가 끝난 저수지는, 설마 그렇게까지야 될까마는 둘레가 오 리는 된다고 소문이 났다.
"멩주실 한 꾸리 풀어 갖꼬는 밑바닥으 못 닿겄네잉?"
어느 날인가. 저수지를 구경하러 모여든 사람들 틈에서, 평순네가 파란 물비늘을 일으키며 반짝이는 호면을 보고는 공연히 뿌듯하여 가슴을 뒤로 좌악 젖혔을 때.
"한 꾸리가 머이여? 서너 꾸리라도 들으가겄다. 인자느은 누구든 이물 속에 한 번 풍덩실 빠져 불먼 그것뿐이여. 옛날에맹이로 횃불 밝히고 장정들이 건져내고 그러든 못헐 거이네. 한 많은 시상 등지고 자픈 사람은 원도 없이 죽을 수 있겄네에."
옹구네가 맞받아 말하였다. 평순네는 옹구네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은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놀라운 일로, 인월댁은 젊은 날에 있었던 서러운 사건을 빗대어 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저수지 공사가 끝나던 날, 흥겨운 꽹매기와 천지를 울리는 장구 소리에 그대로 마을이 뒤집힐 것 같았었다. 엄청난 관수 공사가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와 즐거움에 잔치가 벌어진 것은 물론이지만, 그것보다도 산자락의 흙더미에 깔려 있던 집채 같은 조개바위의 출현으로 인하여, 마을은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저수지를 넓히느라고 깎아 내던 산자락 밑에는 뜻밖에도 영락없이 조갑지를 엎어 놓은 형국을 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가 묻혀 있었다. 조개 봉우리 높이가 일고여덟 자 남짓이나 되며, 동서로 열다섯 자 네치, 남북으로 열넉 자 두치가 넘어가는, 둥그스름한 바위의 동산 날맹이 같은 등을 캐내고는, 탄성을 울리며 바라보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며, 온몸에 뜨겁게 돋는 소름을 후루르, 부둥켜 안았다. 그것은 이상한 감격이었다. 그 순간에 사람들은 이 바위가 이씨 문중과 종가는 물론이거니와 온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 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저 조개라 하는 것은 물 속에서 물을 먹고 사는 생물이 아니랴. 물 속에 있어야 목숨을 부지하고 종족을 번식시킬 조개가 엉뚱하게도 산기슭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부터가 상서롭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다 그것도 무거운 흙더미에 깔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다니. 그 조개는 빈사 상태에서 죽어가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나마 눈앞에 바짝 방죽이 보이고 그곳에 사시사철 푸른 물이 찰랑거리고 있다면 그 목마르고 애타는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몇 백 년 동안. 자연 마음속에 앙심이 솟아 엉뚱한 이씨 문중 대종가의 부인들, 반남박씨, 청주한씨를 비명에 잡아가고, 남양 홍씨부인을 달아나게 하였다고 수군댔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청암부인의 초립동이 신랑 준의를 열여섯의 나이에 조세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조개가 그렇게 캄캄한 흙 속에 파묻혀 짓눌린 채 목이 말라 있으니 자손이 번성할 리가 없다고들 하였다. 산 속에 묻히는 것은 곧 죽음이고, 죽음은 무덤을 의미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조개는 용궁의 신령님이라고도 했다. 그 신령님을 이제 종손부 청암부인이 구해 드렸다. 죽어가던 조개를 살려 내고, 그것도 세세생생 물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넓으나 넓고 깊고 깊은 집까지 마련해 드렸으니, 이보다 더한 공덕이 어디 있으랴. 해원을 해 드린 것이다. 말랐던 조개에 물이 오르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 그리하여 마을 안팎은 물론이요, 몇 십 리 바깥에서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정성을 드리러 조개바위를 찾아왔다. 그 치성의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영험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치성을 드리고 난 떡과 밥, 음식들은 정갈하게 쪼개서 물 속으로 던져 넣었다. 신령님도 잡수시고 신령님의 신하들인 물고기들이 먹으라는 정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렇게나 공을 들이고 정성을 바치던 물 속의 조개바위가 검은 등허리를 내밀어 버린 것이 한 달여 전의 일이다. 그때 인월댁은 안서방이 조심스럽게 전하여 주는 말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농사의 풍흉보다 훨씬 더 깊은 불길함을 그 속에서 느꼈던 것이다. 하늘받이 매안리에서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으면 물이 마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저수지의 물이 마르니 그 속에 숨었던 조개바위 등허리가 솟아나고, 드디어는 누가 잡지도 않고 몇 십 년씩 신성하게 여겨 온 물고기들도, 물바닥에 새까맣게 몰려 드글드글 뒤재비를 치며 흰 배를 뒤집을 수도 있는 일이리라. 그러나 그런 것들이 인월댁에게는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지. 왜 그랬던고. 나는 마치 무슨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그때 관수 공사를 서둘렀네. 내가 목이 타서, 꼭 무엇에 씌인 사람마냥 저수지를 팠던 게야. 숨이 넘어갔어... 헌데, 이듬해... 막바지로 공사가 치달아 마무리가 되려는데, 꼭 기다렸다는 듯이, 나라가 망했다, 하지 않는가. 나는 믿을 수가 없었네. 하늘과 땅이 합벽을 하고 맷돌을 갈아, 천지가 캄캄한 일이었지. 그런데 묘한 것은 그 와중에서도 남모르게 벅찬 희망이 샘솟았다는 것이야. 맷돌질 해 보면, 왜, 우아랫짝이 맞물려 돌면서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지만, 껍질도 벗겨지지 않은 채 통째로 빠져 나오는 놈이 있지 않던가? 신기하지. 꼭 그 통밀이나 통팥, 녹두같이 또글또글 살아서 튀어나온 희망, 그것이 저수지였다. 그때 나는 믿었네. 우리 조선이 망했다 하지만, 결코 망할 수 없는 기운을 갊아서 여기 우리 매안이 저수지에다 숨겨 둔 것이라고. 남모르게 그득 채워 재워 놓고 우리를 살려 줄 것이라고. 예사로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모두가 다 뜻이 있지. 밖으로 난 숨통을 왜 놈이 막았다면, 한 가닥 소중한 정기는 땅밑으로 흘러서 예 와 고인 것이라, 나는 확신했었네. 아무한테도 발설한 일은 없었지만, 나는 누구인가 내게 맡긴 이 물을 잘 간수하리라 다짐했어."
청암부인은 인월댁한테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매, 저것이 혈이지. 혈."
그런데 지금 그 혈이 마르고 있는 것이다. 인월댁의 피가 마른다.
"청암마님 근력은 어떠시든가?"
인월댁은 안서방한테 그것부터 물었다.
"실섭을 허셌지요."
안서방은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실섭을... 언제부터..."
인월댁의 목소리가 툭, 꺼져 내렸다. 그 목소리를 따라 안서방의 수그린 고개도 아래쪽으로 무겁게 떨어졌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다. 인월댁의 얼굴빛이 바랜다. 그네는 진정을 하려는 것처럼 저고리 소매끝을 손가락으로 오그려 잡는다."실섭하신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한 사날 되능만요."
"대서에."
인월댁은 손가락 마디를 짚으며 날짜를 속으로 헤아려 보았다.
"예."
"어떻게?"
"그날 아침으 누우신 자리서 기양 못 일어나시고 말었답니다. 첨에는 아무도 그렇게 끄정 되신 중을 몰랐지요."
"그럼 오늘까지 벌써 나흘째나 되지 않었는가."
"예"
"그런데 왜 인제서야 그 말을 허는가? 그날로 올 일이지."
"일어나실지 알고요"
"원, 사람... 참"
인월댁은 쯔쯔 혀를 차고, 소식을 전한 안서방은 근심스럽고 송구스러운 낯빛으로 두 손을 맞잡고만 서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인월댁은 그 걸음으로 원뜸의 청암부인에게 서둘러 올라갔다. 그리고 그런 뒤로도 지금 벌써 몇 차례인지 모르게 종가에 다녀온 것이다. 그네의 걸음걸이는 초조하고 빨랐다.
"이날 펭상에 질쌈만 허시제 덧문 한 번을 활짝 안 열고, 마당에도 제대로 안 나오시든 인월마님이 저렇게 자조 원뜸에 오르내리시능 거이 암만해도 청암마님 오래 못 사실랑갑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소복을 하고 아랫몰에서 원뜸 사이를 오르내리는 인월댁의 모습에서 까닭 모를 불안을 느낀 평순네는 놉들과 같이 중뜸의 고추밭을 매다가 공연히 몸 둘바를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