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8. 베틀가 (1/3
인월댁은 드디어 북을 놓는다. 그리고 허리를 편다. 두두둑, 허리에서 잔뼈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갑자기 전신에 힘이 빠진다. 그네는, 오른손 주먹으로 왼쪽 어깨를 힘없이 몇 번 두드려 보다가 허리를 받치고 있는 부테의 끈을 말코에서 벗긴다. 뒷목도 뻣뻣하고 다리도 나무토막처럼 굳어져서 이미 감각이 없는데, 마치 그네가 베틀에서 내려앉기를 재촉이라도 하려는 듯 닭이 홰를 친다. 벌써 세 홰째 우는 소리가 새벽을 흔든다. 용두머리 위에 놓인 바늘귀만한 등잔불이 닭이 홰치는소리에 놀라 까무러치더니, 이윽고 다시 빛을 찾는다. 방바닥으로 내려앉은 인월댁은 그제서야 허릿골이 빠지는 것처럼 저려와 그대로 무너지듯이 드러누워 버렸다. 불기 없는 바닥이라 등이 서늘하다. 비록 여름이지만, 늘 이렇게 새벽녘이 되면 찬 기운이 돌아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한여름에도 이다지 속이 치운 걸 보니. 이제 사지 육천 마디마디 시린 바람이 들어차는가 부다.) 그것은 이 방이 북향 뒷방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한낮에도 볕이 들지 않는 까닭에 일년 열두 달 햇빛을 쐬지 못한 냉기가 벽 귀퉁이에 고여 있는 셈이었다. 거기다가 집이라고 해야 부엌 한 칸과 창호지만한 안방, 그리고 베틀이 있는 뒷방뿐이었지만 하루 한나절도 손에서 북을 놓지 않았으니, 문득 생각하면 방안에 고인 냉기가 몸 속으로 스며들어 살이 식어 내리는 것도 같았다. 그네는 희미한 등잔물 아래 비치는 앉칭널을 바라본다. (내가 반평생을 저기 앉아서 보냈구나.) 그네가 금방 벗어 놓은 부테가 앉칭널 위에 얹혀 있는 것이 마치 무슨 허물 같다. 인월댁은 무심코 창문을 바라본다. 북향으로 난 창문은 아직도 캄캄하다.
지금쯤은 한밤의 어둠에서 깨어난 새벽이 푸르스름하게 공기 속으로 풀려들고 있겠지만, 북향 뒷방 길쌈하는 이 방에는 빛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제풀에 흔들리다가 잠잠히 빛을 밝히고 그러다가 금방 꺼질 듯이 잦아드는 미영씨 기름 등잔 하나만이, 방안의 묵은 어둠을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베틀에 앉은 채 밤을 새웠으나, 이렇게 방바닥으로 내려와 누워도 몸만 물먹은 솜처럼 무거울 뿐, 새벽잠이나마 들어 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그물이 말러서 밑바닥을 뒤집고 있당 거이요?"
담장 밖에서 옹구네의 목소리가 찰지게 들린다. 그 소리를 신호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양철 부딪치는 소리며 물지게 삐그덕거리는 소리, 부산하게 고샅을 지나가는 바쁜 걸음 소리들은 원뜸으로 넘어가는 것이 분명하였다.
"아이고매, 그렁게 후딱 가서 미꾸라지 건져 먹는 것은 이 흉년에 괴기국 한 그륵이 어디냐마는, 일은 참말로 일어났네잉."
저것은 공배네의 목소리이다.
"시상 돌아가는 꼬라질를 조께 보시오. 아, 물 밑바닥만 뒤집히겄소? 내가 발바닥 붙이고 섰는 이 땅뎅이도 언지 홀까닥 뒤집힐랑가 모르는 판인디, 누가 아요? 인자 거꾸로 서서 대그빡으로 땅을 짚고 손바닥으로 걸어댕기는 날이 올랑가?"
거멍굴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첫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옹배기나 양철 대야, 물동이, 물통을 하나씩 옆구리에다 끼고 산 밑에 저수지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청호라고 불리는 저수지의 넘치던 물이 어느 날부터인가 마르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물 밑바닥이 뒤집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수지의 둘레가 사방 오 리라고 소문이 나 있는 청호는 지난번만 하여도, 조개바위의 등허리가 거뭇 비치다가 잠기다가 할 만큼 줄었었다. 청암부인이 웅덩이만 하던 것을 그렇게 넓고 깊게 파 놓은 뒤에는, 웬만한 가뭄에도 수면이 파랗게 찰랑거리며 물비늘을 일으키던 청호는 날마다 내리쪼이는 뙤약볕에 드디어 견디어 내지를 못하였다. 청호가 그럴 정도였으니 동네 우물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걸핏하면 황토물을 토하며 뒤집히던 우물물, 샘물들은 이제는 아예 두레박을 두 손에 받치고 섰다가, 한 바가지가 채 고이기도 전에 곤두박질을 치며 거꾸로 머리를 박고 퍼내야 했다. 그것도 부지런한 사람이 먼저 차지를 하기 때문에, 한 발만 늦으면 그날 하루 물 구경을 못하고 마는 일이 빈번하였다.
"하이고오. 일월성신이 굽어살피사 비나 한 줄금 쏟아져 줍소사."
밑바닥이 마르는 우물가에 물통과 동이를 한 줄로 늘어놓고 관솔불을 밝힌 채 꼬박 밤을 새우며 하늘을 우러러 보건만, 하루살이 모기떼만 극성스럽게 달겨 붙을 뿐, 별빛은 흐려질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은 것이 벌써 근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우물과 샘물이 그러한데 논바닥은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논이란 논은 모조리 거북이 등짝처럼 쩌억쩌억 갈라지고, 자라나던 벼포기들은 꺼칠한 모가지를 허옇게 들고 꼬딱 선채로 말라 비틀어졌다. 사람들이 먹을 물도 이 지경이 된데다가 논의 물꼬가 마른 것은 어느 날짜였는지 짐작조차도 할 수가 없으니.
"시상. 기양 논바닥에 가서 팍 어푸러져 쌔바닥을 박고 죽어 부리제 이 꼴 저 꼴 못 보갔네. 주뎅이에 침도 다 말러 터져서 어디다 뱉어 볼 수도 없응게. 이러고 앉아서 꼬실라져 죽어야제."
하고 옹구네가 두 다리를 퍼벌리고 앉아 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디, 이런 가뭄 속에도 신선맹이로 물 안 먹고 사는 양반은 무슨 재주까잉? 이슬만 따 먹능가아?"
옹구네는 허벅지까지 걷어 올린 삼베 두루치를 두 손으로 말아 쥐고 평순네에게 말을 건넨다. 먹을 물은 없어도 그네의 살에는 물이 올라 탱탱하다.
"또 먼 소리가 허고 자퍼서 그렁고? 주뎅이가 근지럽제, 시방, 독자갈 아닌 담에야 누가 물을 안 먹고 산다고 그리여?"
"누구는 누구? 인월마님 말이제. 요새 같은 때 언제 한 번 물 질러 나오도 안허고 얼굴도 안 뵈잉게 허는 말 아니여?"
"원뜸에서 안서방네가 날마둥 한 동우썩 이어다 주능갑대."
"하이고오, 누구는 좋겄다아, 이런 년의 팔자는 내 손발 오그라지먼 그대로 앉은뱅이맹이가 되야 갖꼬 디져 불고 말 거인디, 어뜬 사람 팔짜 좋아 그런 시상을 사능고오."
옹구네는 인월댁의 초가 쪽을 향하여 눈까지 흘겨 보인다. 도톰한 눈두덩 꽁지에 빈정거림이 묻어난다. 평순네는 으레 그런 옹구네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응대를 한다면 핀잔을 주게 되었다.
"무신 노무 팔짜가 어디를 봉게로 그렇게도 좋당가? 그 양반 사정을 몰라서 그런 소리 허능갑네."
"사정을 앙게 더 그러제잉. 나도 인자 요 다음 시상으 날 적으는 기연히 양반으로 나야겄다. 두 손발 펜안히 내놓고 살어도, 이고 지고 갖다 바치는 것만 받어먹는 시상 한 번 살어 보고 죽었으면 원이 없겄네."
"인월마님이 머 두 손발 놓고 살간디? 이날 펭상 이십 년을 단 한 가지 아무 낙도 없이 베틀에서 내리오들 못하고, 여치 베쨍이맹이로 베만 짜다 청춘이 다 가신 양반인디. 무신 부러울 팔짜가 없어 그 양반 팔짜를 쪼사쌓능고...? 무단히."
"하여튼간에 이 복더우 가문 날에 물걱정만 않는 팔짜라도 나는 부러뵈능 것을 어쩔 거이여? 그나저나 저수지 무도 인자 바닥이 뵌다데잉. 조개바우가 집채뎅이맹이로 시커멓게 솟아났다든디."
이런저런 소리들을 주고받으며 우물가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리며 넋을 놓고 있던 거멍굴의 아낙네들은, 마침 춘복이가 어둠 속에서, 삼태기에 펄떡펄떡하는 붕어와 가물치를 무겁게 들고 오는 것을 어젯밤 보았던 것이다.
"춘복아. 너 그거 머이냐?"
공배네가 고개를 꼬아올리며 물었다. 그 바람에 아낙들이 웅긋중긋 일어서며 삼태기를 넘겨다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함박만큼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다.
"어디서 난 거이여?"
옹구네의 검은 눈빛이 번쩍, 관솔 불빛에 빛났다.
"방죽으서 건졌네."
"방죽? 청호 말이여?"
평순네가 놀란다.
"거그말고 방죽이 또 있간디요?"
"어쩔라고 거그 치를 이렇게 겁도 없이 건져 온다야? 청암마님 아시먼 큰 베락
날라고, 왜 이런 일을 했당가아..."
평순네의 얼굴에 근심과 두려움이 지나간다.
"난리는 먼 놈의 난리가 난다요? 사램이 날이 날마동 밀지울만 먹고 똥구녁이 찢어지는디다가 날까지 가물어농게 오장육부가 다 말러 비틀어지는 판국에, 임자 없는 괴기 조께 건져다 먹는다는 누가 무신 소리를 헐 거이여?"
춘복이가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사람들은 입에 군침이 돈다.
"임자는 왜 임자가 없당가? 청암마님이 임자제잉."
공배네가 얼른 평순네의 말을 거든다. 그러면서, 그것보다 훨씬 더 걱정스러운 일이라는 듯, "춘복아, 청호으 물이 참말로 그렇게 다 말러 부렀냐? 삼태기로 괴기를 건지게?"하고 물었다.
"방죽 바닥에 물괴기가 기양 막 드글드글 헙디다. 시커매요. 인자 올농사는 다 틀려 부렀다고요. 가망이 없응게, 일찌감치 넘보다 한 발이라도 얼릉 가서 붕어 새기 한 소쿠리라도 후딱 건지능 거이 지일이요. 하늘만 체다봐도 말짱 헛심만 씨이는 일잉게."
춘복이가 삼태기를 추스리자 붕어의 미끄럽고 검은 등허리에 관솔 불빛이 기름비늘처럼 번뜩였다. 우물가의 아낙네들 눈빛도 따라서 번뜩였다. 옹구네는 춘복이의 삼태기를 탐욕스럽게 넘겨다보더니, 덥석 손을 넣어 한 마리를 잡아 보려고 한다.
"왜 이런데요?"
춘복이가 삼태기를 털어낸다.
"하이고오오... 가물치도 있네잉?"
옹구네의 손이 머쓱하게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간절한 탄식처럼 말꼬리를 뺀다. 그 말꼬리에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끈끈하게 묻어났다. 그러나 모른 척하고 춘복이는 쩔걱쩔걱 발바닥에 물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 잠겨 앞길도 잘 보이지 않는 농막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떠꺼머리 총각으로, 거멍굴 산 비댕이 밭 기슭에 얽어 놓은 농막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춘복이가 사라지는 쪽을 바라보고 있던 아낙네들은 이미 우물물이 고이거나 말거나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내일 꼭두새벽, 남보다 먼저 나서서 저수지로 달려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들. 저수지 바닥 말르능 거는 걱정도 안 되고, 괴기 건져 먹을 일만 그렇게 신바람이 난당가? 청호으 물이 바닥나먼 그걸로 끝장이나능 거이여, 끝장."
공배네가 못마땅한 듯 핀잔을 주자
"성님. 우리가 머 언지는 시작이고 끝장이고 딱부러지게 있었간디요? 거멍굴에 엎어져 삼서 무신 햇빛 볼 날이 있다요? 이런 년은 날 때부텀 그거이 아니라 끝장 아닝교...? 눈구녁에 뵈이먼 먹고, 안 뵈이면 굶고, 닥치는 대로 사능 거이제. 무신 바랠 거이 있능교? 인물이 출중허드라도 청암마님이 될 수가 있소오. 행실이 음전허다고 인월마님이 될 수가 있소. 생긴 대로 산다고, 나는 타고난 팔짜대로 살라요. 눈앞에 물괴기 있으면 건져 먹고, 저수지 밑바닥 말르먼 목 태우고 살제 머."
웬일인지 옹구네는 흥이 나 있었다. 고개를 까딱거려가며 무어라고 주워섬기더니, 물도 긷지 않고 빈 물동이를 옆구리에 끼고는 횅하니 자기네집 쪽으로 가 버렸다. 그 바람에 한 자리를 앞당겨 앉게 된 평순네는 속으로 (지랄허고 자빠졌네. 먼 사연이 있어서 물도 안 질어 갖꼬 저렇게 궁뎅이를 흔들어댐서 종종걸음을 치능고.)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옹구네가 급하게 일어나서 가느라고 빠뜨리고 간 또아리를 대신 챙겼다.
바람 한 점 없는 밤이었다. 사람의 속을 모르는 별의 무리만 쏟아지게 총총하여 공배네와 평순네는 서로 마주보며 한숨을 쉬었다. 별이 기울면서 졸음이, 매캐한 생쑥 모깃불의 연기에 섞여 덤벼들었다. 어떤 아낙은 벌써 물통에 얼굴을 묻고 엷은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새벽녘이 가까워서야 한 동이의 흙탕물을 길어 올린 평순네는, 뜨물같이 부우연 머리 속이 흔들거리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서 동이를 머리에 이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또아리를 옹구네에게 주고 갈까. 내일 날 밝으면 줄까, 궁리하였다. 옹구네는 평순네와 토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기 때문에 아무러나 무관한 일이기는 하였다. (이 빼빼 마른 가문 날에도 어디 이슬 맺힐 물끼는 있었등고.) 평순네의 다리에 잡초가 감기면서 이슬이 느껴진다. (아이고오. 한숨 눈 붙일 새도 없이 날이 새 부리고 말겄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참말로 이 노릇을 어쩌까잉. 눈에 뵈능 거는 머엇이든지 한심 천만, 큰일이 나기는 날랑갑다. 난리가 날라먼 산천초목이 몬야안다등마는. 그나저나 동이 트먼 평순이 아부지라도 일찌감치 원뜸으로 올라가서 괴기를 좀 건져 와야 할랑가. 그래도, 청호가 청암마님이 쥔이신디, 아무리 캉캄헌 새복에 몰리 건져 온다고는 해도, 그거이 도독질이제 사람 헐 일은 또 아니고잉. 넘들은 다 가서 퍼올랑갑등마는 그나저나 어쩌끄나. 시상에도, 그 강물맹이로 시퍼렇게 넘실대든 청호으 물이 바닥이 나서 괴기가 구물구물, 손으로 건져지다니...) 평순네는 이마로 흘러내리는 물을 손으로 씻어 뿌려 버린다. 그네는 막, 옹구네의 사립문을 지나쳐 가지 집 문간에 들어서려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
농막 쪽에서 오는 길이 분명한, 희뜩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아서였다. 그냥 들어가도 좋았겠지만, 평순네는 그 자리에 서서 이마로 흘러내리는 동잇전의 물을 연신 손으로 훑어 뿌리면서, 눈에 모를 세우고 그림자를 기다린다.
"하이고매. 깜짹이야. 누구당가아?"
평순네는 짐짓 이제 막 사립문간으로 들어서는 시늉을 하다가, 놀랐다는 듯, 다가온 그림자 쪽으로 화들짝 돌아선다. 그림자는 옹구네였다. 한들거리고 걸어오던 옹구네는, 느닷없는 사람 소리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순간 머쓱하여 어쩔 줄 모르더니 들고 있던 함지박을 뒤쪽으로 감추려고 한다.
"하앗따아. 물동우만 옆구리에 뀌어 들고, 또아리도 내팽개치고, 무신 볼 일로 그러고 갔당가? 대가리 벗어지게. 여그 내가 줏어들고 왔그만. 사방에다 그렇게 질질거리고 댕길 거이 많아서 좋겄네."
평순네는 물동이를 붙들고 있는 두 손을 내리지 않은 채, 허리춤에 묶어 온 또아리를 옹구네 보고 풀어 가라 한다. 옹구네는 실로 난색을 감추지 못했다. 들고 있는 함지박을 땅에 놓지 못하고 주춤거리기만 할 뿐, 선뜻 어쩌지를 못한다.
"아기갸, 얼릉 풀어 가랑게. 나도 후딱 집이 들으가서 밀지울이라도 싯쳐 갖꼬 한 숟구락 먹어야제잉. 왜 이렇게 사람을 문깐에다 촛대같이 세워 논당가아? 그 손에는 머엇 들었간디 그리여? 신주단지맹이로 뫼세 들고는? 으엉?"
평순네는 일부러 급한 소리를 한다. 자기가 속으로 눈치채고 있는 것을 기어이 알아내려고 하는 수작이 분명하였다.
"호랭이 물어갈 노무 예펜네. 무신 목청이 그렇게 때까치맹이로 땍땍거린디야? 지랄허고 자빠졌네. 누가 자개보고 또아리 챙게 돌라고 했능게비. 시기잖은 일은 허고 그려? 그께잇 노무 또아리, 시암 바닥에다 천날 만날 내부러 두먼 누가 가지가께미, 잘났다고 받들어서 챙게 들고 댕기는고?"
옹구네는 뒤로 감추려던 함지박을 마지못하여 땅에 내려놓으며 한 마디 쏘아붙인다. 그네는 평순네의 속셈이 어디 있는지를 눈치 못챌 만큼 둔하지는 않다. 이럴 때는 맞붙어 버리는 것이 상수다.
"어이고오, 호랭이 물어가네에. 똥 뀐 놈이 썽 내드라고, 됩대 꼬깔을 씌우고 있네잉."
"조께 지달러 봐."
옹구네는 캄캄하여 잘 보이지도 않는 평순네의 허리춤을 더듬어, 허리끈에 묶여 대롱대롱 매달린 또아리를 풀어낸다. 그러는 사이 평순네는 함지박에서 제법 묵직한 무게로 자멱질을 하는 물 소리를 들었다. (그러먼 그렇제, 가물치 아니여?) 순간 평순네는 역겨움이 목에 꼬이는 것을 느꼈다. (허고 댕기는 지랄 좀 보라지) 속으로 콧방귀를 킁, 하고 뀌었다. 그렇지만 다음 순간. 평순네의 눈앞으로 살진 가물치가 도대체 몇 년을 묵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탐스러운 몸채의 배를 커다랗게 뒤집으며 덤벼들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영험한 물 속에서 배암과 흘레하여 낳는다는 가물치, 그것은 실제로 방죽 옆의 나무에 기어 올라가, 그 가지 끝에서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퉁, 퉁, 떨어진다는 신묘한 물고기가 아닌가. 깊은 밤 정적 속에서 장단 맞추는 소리처럼 쿠웅, 쿵, 울려오는 난데 없는 소리를 들으면,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린다지.
"가물치 승천 헐랑갑다."
어른의 팔뚝만큼 한 것이 짙은 암청갈색 검은 빛을 띠는 등허리에 가로 한 줄로 무늬가 놓여 있고, 등 지느러미 양쪽으로는 여덟 개의 무늬가 점점이 박혀 있는 가물치의 저 허연 배, 돌이 지난 얘기보다 더 무겁고 크고 탄탄한 것 그것은, 평순네에게는 평생에 한 번만 먹어 보았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간절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청호의 물 밑바닥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노닐던 가물치며 조개바위와 더불어 노니는 물고기는, 붕어새끼 한 마리일지라도 다치지 않는 것이, 이십여 년 동안 문중과 인근 사람들 사이에 말없이 지켜져온 불문율이었다. 그러니 그 속에서 건져온 가물치라면, 산삼 못지않은 보약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가물치. 평순네는 입에 침이 돌았다. 지금까지 평순이를 비롯하여 연년생으로 자식 여섯을 낳는 동안 단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가물치였다. 산모에게 그렇게 좋다는 것을. 크고 기름진 것은 그만두고라도 새끼 한 마리조차 고아 먹어 보지 못하였다. 그것을 어찌 감히 꿈에라도 언감생심 맛볼 수가 있었으랴. 풀뿌리를 삶아 먹을망정 굶지만 않는다면 그것으로 하늘에 감사할 일이었다. 더욱이나 평순이 아버지는 오른쪽 팔이 꼬부라져 붙은 채 쓰지 못하여 헝겊 쪼가리 한가지 아닌가.
"가물치여?"
안 물어도 되는 말이었지만, 평순네는 이상한 원한과 아니꼬움, 그리고 역겨움이 뒤섞인 한 마디를 뱉어냈다. 그네는 허리까지 구부리며 함지박 속을 들여다본다. 어는 새 그네의 눈은 함지박에 꽂혀 있었다. 그러나, 새벽빛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어두운 속에서 그것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옹구네는 대답 대신, 풀어 낸 또아리 끈을 입에 물고 또아리를 머리에 얹는다. 그리고는 함지박을 불끈 들어올려 머리에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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