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8. 바람닫이 (5/5)
그러나 개 짖는 것도 잠깐이다. 누렁이가 싱겁게 크엉, 하면서 소리를 멈추면, 이윽고 멀리서 따라 짖던 것들까지도 잠잠해지고, 마을과 집 안은 더 깊은 정적과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가 버린다. 무너질 듯 시커먼 산자락들이 검은 파도처럼 집안을 한 입에 삼켜 버릴 것 같은 그런 밤, 이기채는 홀로 우두커니 앉아 가슴이 패어 나가는 허전함을 담배로 매우려 한다. 그때마다 다친 곳처럼 욱신거리면서 떠오르는 얼굴은 외아들 강모였다. 그러면 이기채는 가슴이 마쳐 숨을 들이쉬어도 시리고 내리쉬어도 답답하였다. 가슴 밑바닥에 무엇이 박히는 것처럼 아프고, 한숨을 쉬면 공이처럼 걸려 이기채는 때때로 담이 걸린 듯도 했다. 그런 강모가 눈앞에 앉아 검은 통을 불쑥 내밀어 열어 보이면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하고 있다. 강모도 심약한 눈빛이 불안하기는 하였지만, 단단히 벼르어 온 말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이기채는 일부러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강모를 쏘아보고만 있다. 바이올린의 네 가닥 줄과 이기채의 날카로운 침묵이 서로 칼날같이 맞부딧치면서 방안을 터질 듯이 숨막히게 한다. 이기채와 강모, 그리고 서로 이 침묵의 줄다리기에서 삼각형으로 팽팽하게 맞서며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음악 공부를 좀 하고 싶습니다."
드디어 강모가 쫓기는 사람처럼 단숨에 뱉어내듯 말해 버린다. 순간 이기채의 눈이 번쩍한다. 그리고는 이기채와 감모의 사이에 부웅 소리가 날 만큼 공간이 팽창한다.
"그래서?"
역시 말끝을 내리누르며 잘라 버린 질문이다. 강모가 말을 잇지 못한다. 이미 이기채의 노여움이 목까지 차 올랐다는 것을 감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어?"
"... ."
"네가 이 앵금을 쳐들고 댕기면서 풍각쟁이 노릇을 허겠다, 이 말이냐?"
"... 아버지."
"아니면 남사당이 되겠다아, 이 말이냐?"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그럼, 그러면 무엇이 되겠다는 것이냐?"
목 안에 짓눌려 삼킨 목소리가 조금씩 터져 나오면서 점점 언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이기채의 성품으로 미루어 아직은 지그시 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풍각쟁이와 음악가는 다릅니다. 저는 음악을 공부하려는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동경에 있는 음악학교에 들어가서... ."
"왜? 허구 많은 공부 중에 하필이면 네가 음악인가 허는 풍각을 공부하려는, 무슨 뜻이 있을 게 아니냐? 왜 그러는 거냐?"
강모는 역시 대답을 못한다. ... 이곳을 떠나고 싶어서입니다. 제발 그럴 수만 있다면 굳이 음악이 아니라도 상관없어요. 측량 기사가 되어도 좋습니다. 구실이야 무엇이 되었든 저는 이곳을 떠나고 싶습니다. 도주하고 싶어요. 저는 이 집안이 무겁고 무섭습니다. 아무도 저를 때리려는 사람 없고, 아묻 저를 해치려는 사람 없건만 저는 마치 가위눌린 것처럼 답답하고,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집채덩이 같은 불안을 속에다 삼키고 있으니 무엇에도 마음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속하지 않고, 훨훨 좀 돌아다니고 싶습니다. 할머니로부터도, 아버지로부터도, 아아, 그리고... .
"네, 이노옴, 왜 말을 못하느냐?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느냐? 말을 해라."
드디어 이기채가 상체를 곧추세웠다.
"왜 말을 못하는 것이냐? 이 철딱서니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천하에 쓰잘 데 없는 놈 같으니라고, 네 이놈, 네가 대체 중정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집구석이 멸문하여 성이 없어지고 문짝에 대못을 치게 생긴 이 마당에, 기껏 네가 하는 일이, 소위 종가의 종손이라는 놈이, 애비는 피가 바트고 뼈가 마르는 마당에 떠억 버티고 앉아서 허는 말이, 뭐가 어쩌고 어째? 음악을 공부하러 일본으로 가야겄습니다? 허허, 집구석이 망헐라면 대들보가 먼저 내려앉는다더니, 일본놈 창씨개명 나무랄 거 하나도 없구나아, 하나도 없어, 아니 내 집구석에서 내 자식놈이 먼저 항허느라고, 제가 자청해서 풍각쟁이가 되겠다니, 성시가 있으면 무얼 허며 가문이 있으면 무얼 헐 것이냐? 아이고, 아주 너한테는 잘되어 버렸구나, 으응? 잘되어 버렸어. 너 같은 놈한테 물려주자고 할머님이 한평생을 그렇게 노심초사 허시고, 너 같은 놈을 자식이라고 믿고, 너 같은 놈을 자식이라고... ."
이기채의 말이 뚝 끓어진다. 강모가 순간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고 숙인 고개를 들었다. 이기채의 모가 선 눈빛이 벌겋다. 그는 외침을 두 손으로 움켜진 채 강모를 노려보았다.
"아버지."
"네 이노옴. 네 놈이 감히 누구보고 지금 애비라고 허는 게야? 네가 내 자식이라면 어찌 이런 짓을 헐 수가 있단 말이냐. 감히 네가 누구 앞에다가 이 따위 것을."
채 말을 맺지 못하는 이기채가 차 오르는 숨을 내뱉기라도 할 듯이 몸을 일으키다 말고, 움켜쥐고 있던 커다란 의침을 바이올린 면상에다 여지없이 동댕이쳐 집어 던진다. 의침은 팽팽한 바이올린 줄에 부딪쳐 공중으로 튀어 오른다. 바이올린 줄이 비명을 지르며 울린다. 기표가 이기채의 손을 잡으려 하는데 이기채는 벌떡 일어서 버린다. 그의 노기가 쩌엉,소리를 내는 같았는데, 이미 바이올린은 그의 손에 잡혀 허공에서 한 바퀴 맴을 돌아, 방바닥에 후려쳐지고 있었다. 바이올린의 몸통이 한순간에 부러지면서 팽팽하던 네 가닥 줄이 힘없이 늘어져 버린다. 강모의 얼굴은 흙빛으로 질려 부르르 떨린다. 그 바람에 귀밑의 궤털이 허옇게 일어선다.
"천하에 몹쓸 놈, 썩 나가라. 이 방에서 썩 나가, 너 같은 놈은 자식도 아니다. 꼴도 보기 싫다."
이기채가 버선발로 방바닥을 구른다. 강모는 얼어붙은 듯 움쩍도 못한다. 무릎 위에 놓인 강모의 두 주먹이 오그라진다.
"왜 그러고 앉어 있어? 꼴도 보기 싫다는데, 아주 집구석이 제대로 망허는구나, 가지가지로, 제대로 망해. 며느리라 허는 것은 손만 컸지 침선 하나 제대로 헐 줄을 아나, 남편의 마음을 잡을 줄 아나, 자식이라 허는 것은 나이 열아홉을 먹도록 사람 구실을 헐 줄을 아나... . 내가 천년을 살겄느냐, 만년을 살겄느냐,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어린아이 티를 못 벗고 매사에 천방지축이냐. 나 죽고 나면 누가 어른 노릇을 챙겨서 헐 것인가. 그냥 앉아서 그대로 망헐 것이다. 그냥 앉어서. 기왕에 가운이 기울어져 망허는 집안이라면 기다릴 거 무에 있어. 서둘러서 망해 버려야지. 그럼 일찌감치 속이나 편허지. 대체 언제부터 집안이 이 꼴로 각동 삼동으로 찢어져서 가닥을 추릴 수가 없게 됐단 말이냐. 대관절 언제부터 이러는 게야."
이기채는 방 가운데 선 채로 노기와 탄식을 가누지 못한다. 기표가 강모에게 손짓으로 바깥쪽을 가리킨다. 나가라는 시늉이다. 강모는 망연하게 앉아 부러진 바이올린 패어나간 장판 자리, 그리고 아까 바이올린을 내던지는 순간, 그 몸통에 맞아 흩어진 담배통과 타구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반은 넋이 나간 사람 같다.
"그다지도 지각이 없어서야 어디 그걸 사람이라고 허겠느냐. 내가 네 나이 대는 집안 살림이 문제가 아니라 종중 살림까지도 혼자서 떠맡다시피 했었다. 그래 네 나이가 그게 적은 나이 같아서, 나이 티를 내고 있는 게야? 어엉?"
강모는 망연히 앉아만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나절의 햇빛 속에 효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이 떠오르자 별안간 강모는 가슴을 깨물린 듯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이빨 하나가 가슴에 박힌 것 같은 얼얼하고도 깊은 아픔이었다.
"어서 나가거라. 큰방 할머님도 뵈어야지. 사랑이 소란하면 공연히 근심하신다. 어서 일어나."
기표는 애써 목소리를 평온하게 하며 강모를 일깨워 부추긴다. 강모가 마지못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자
"안서방."
기표가 바깥에 대고 안서방을 부른다.
"좀 들어오게."
아마 방을 치우라는 말일 것이다. 강모는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오는 안서방과 엇갈려 마당으로 내려서서, 안채로는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멍하니 마당 귀퉁이의 꽃밭을 바라본다. 꽃밭에도 여름은 무성하였다. 자라나는 것들이 더욱 뻗어가는 자라나고 있는 여름 꽃밭에는 햇빛이 눅진하게 녹아 내리고 있다. 저마다 빛깔을 내뿜으며 피어 있는 꽃송이가 잎사귀들이 녹아 내리는 햇빛을 양껏 빨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그 햇빛은 조청처럼 무겁다. 그래서 꽃잎과 잎사귀에는 먼지가 부옇게 앉은 것도 같다. 어찌 보면 식물들이 햇빛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햇빛이 끈적이처럼 꽃잎과 잎사귀에 엉겨서 소리 없이 그 진을 빨아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꽃잎의 입술과 대궁이 허옇게 말라들어 미농지로 만든 조화같이 변한다. ... 나는 한낱 그림자로다. 그는 정말로 자신이 걸어가는 그림자에 불과다고 절감한다. ... 내가 무슨 넋이 있으며, 몸이 있으랴. 또 그런 것들이 있은들 무엇에 쓰겠느가, 무엇에... . 강모는 가슴 밑바닥이 갈라지는 것 같아 숨을 참는다. 갈라터진 사이에 빠짓이 피가 배어나며 쓰라리다. ... 강실아, 기어이 그 생각을 하고 만다. 아까, 동구에서부터 참아 온 생각이다. 아니, 그것이 어찌 동구에서부터만 참아 온 것이었을까. 아까 오류골 작은집의 사립문을 지나면서도, 일부러 살구나무 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그때 무너지게 검푸른 살구나무의 녹음이 강모의 얼굴에 푸른 그늘을 드리워 주었으나, 강모는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었다. ... 네가 없는데, 이제 나를 무엇에다 쓰겠느냐... .
접시꽃 촉규화, 붉은 작약, 흰 작약, 황적색 꽃잎에 자흑점이 뿌려진 원추리들. 그 현란한 꽃밭 그늘에 꽈리가 몇 그루 모여서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그것들은 등롱 같은 열매를 조롱조롱 푸르게 달고 있다. 지금은 그 꽈리 초롱에 물이 돌아 초록으로 열려 있지만, 저것은 가을이 되면 익으면서 주홍으로 투명해진다. 그것이 영락없이 등롱의 모양이어서 이름도 등롱초라고 불리던가.
...강실아.
강모는 그만 가슴이 사무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말없이 등불을 잡아 주던 강실이의 모습이 꽈리밭에 그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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