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혼불 1. 6. (2/2)
어느 틈에 점봉이네가 콩심이네 곁에 바싹 다가서서 어깨를 짚으며 그 귓바퀴에 대고 입김 부는 소리로 대답한다.
"워메 참말로 지랄허고 자빠졌네잉, 누가 들으먼 어쩔라고오."
"아, 넘 들으라고 허는 이얘기 아니였어? 나는 또 부러 소문 내 줄라고 그릿제잉. 한 번 더 말해 주까?"
점봉이네가 말끝을 채 못 맺고 히히히, 괴상한 웃음을 짓깨물며 터뜨린다. 콩심이네가 옆구리를 꼬집은 것이다. 그 웃음 소리에 걸려 유성 하나가 하늘의 변두리로 은꼬리를 길게 남기며 진다.
"자아, 자신의 죄과를 알렷다."
방안에서 짐짓 위엄을 떨치는 굵은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나왔다. 아마 이제부터 신랑을 다루기 시작할 모양이었다. 강모는 고개와 어깻죽지만 방바닥에 닿은 채 공중으로 두 다리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형국이이서, 얼굴로 핏기가 쏟아지며 몰렸다.
"이실직고를 하렷다."
"도무지 뉘우치는 기색이 없군."
"그럼 매우 쳐야지."
"쳐라."
누군가 홍두깨를 높이 치켜든다.
"남의 문중에 뛰어들어서 귀한 처자를 훔친 죄는 이렇게 다스려야."
치켜든 홍두깨가 강모의 발바닥으로 떨어진다.
"아."
강모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아찔한 아픔이었다.
"아퍼? 아아직 멀었네."
이번에는 좀더 세게 내려친다.
"으아."
장난으로 그러는 것이련만 발바닥이 얼얼하며 복숭아뼈까지 저린다.
"허허어. 이러언 엄살 좀 보라지. 이래 가지고 어찌 무슨 용기로 남의 규방에는 침범을 했던고오?"
다시 홍두깨가 발바닥을 친다.
철썩
따악.
내려치는 홍두깨와 강모의 비명, 사람들의 농담과 터지는 웃음 소리들은 박자라도 맞추듯이 함께 어우러지며 촛불에 일룽거린다.
"자네 감히 허씨 문중을 넘보았겄다? 우리가 그렇게 울도 담도 없이 허술한 줄 알았던고?"
"거기다가 자네 어쩌자고 인제서야 얼굴을 내미는가? 일각이 여삼추라고, 날만 새면 동구밖에 무슨 기척이라도 있는가, 있는 목, 없는 목 다 뽑아 올리고 내다보며 학수고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자네 그간 어디 가서 무엇 허다 인제 왔는가?"
"못쓰네, 못써어,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닐세."
"다시는 그리 말게, 이제 아주 아무 데로도 못 가게 더 쳐라. 더 쳐."
"발병이 나면 제가 어디로 갈 것인가. 십 리는커녕 방문 바깥도 못 나자지, 아암."
에에이잇. 아무래도 단순히 농담만 같지는 않은 말 끝에 홍두깨가 발바닥에 쏟아진다. 사람이 바뀌어 가면서 내려치는 것이다. 갈수록 매가 맵다.
"아구구우."
"어림없네. 어림없어. 아주 오늘 밤 결판을 내자고."
강모는 아픔을 참지 못하여 울상이 되어 버리는데 콧 등에 땀이 돋아난다. 어쩌든지 발목을 배 보려고 버둥거렸지만, 비끄러맨 광목 띠는 그럴수록 더욱더 발목을 죈다. 그때 방안으로 걸게 차린 술상이 벌어지게 들어왔다. 이에 잠깐 사람들은 술렁하였으나,
"이까짓 것으로는 안된다고 여쭈어라. 손바닥만한 술상 하나로 어찌 이렇게 큰 죄인을 풀어 주랴?"
인욱이 안채를 향하여 소리를 친다.
"가서 신부 오라고 해라."
"신부가 와서 빌어라."
"신부 어디 있어? 신부."
술상을 받은 방안은 그로 인하여 흥이 막바지에 오른 듯 떠들썩하다.
"신부 추우울."
누군가 초례청의 흉내를 낸다.
"신부 잡아 와."
그러나 신부는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안되겠다. 신랑을 더 쳐라."
"허씨 문중을 초개같이 내버리고 도적을 따라 평생을 살겠다니, 이런 고연 심보가 또 있는가? 신부 죄도 절대로 용서 못헌다아."
"쳐라."
"두 몫을 한꺼번에 매우 쳐라."
"아직도 신부가 안 오는가? 저어기 오고 있는가?"
"안되겠구나. 다리가 부러지게 혼 좀 나야겄다아."
한 사람이 일부러 목청을 돋운다. 옆에서 홍두깨를 번쩍 쳐든다. 후려칠 기세다. 강모의 잔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촛불이 펄럭 나부끼며 춤을 춘다. 강모는 온몸이 얼얼하여, 어서 빨리 이 곤경을 벗어나고 싶기만 하다. 사람들의 흥겨움과는 전혀 무관하다. 발목에서는 이미 쥐가 나고 있었다.
에에에잇.
휙, 소리가 나며 매찬 홍두깨가 발바닥으로 사정없이 떨어지려는 찰나, 방문간에 신부가 나타났다.
"아아, 신부 왔구나아."
"열녀로다, 열녀야."
"자네 잘 왔네, 아니, 그런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겁없이 왔는가? 이게 바로 자네 물어 갈 호랭이 굴일세."
"호랭이야 따로 있지. 아, 신부 잡아 먹을 호랭이는 홍두깨 든 자네가 아니라, 이 꽃각시 같은 새신랑이네. 이 사람."
"아하하아, 그런가아? 그렇다면 이 몽둥이는 이제 쓸모가 없지 않은가? 무겁기만 하고. 옛다, 아나, 너 가져라."
드디어 흥겨움은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효원의 얼굴은 불빛에 그늘이 져서 그렇게 보이는가. 그러지 않아도 각이 선 얼굴이 그 음영 때문에 좀더 단단해 보인다. 불빛이 비치는 쪽의 얼굴은 가면처럼 보이고 그림자 진 쪽은 차가워 보인다. 효원은 드디어 강모 옆으로 다가섰다. 강모는 두 젊은이의 어깨에 발이 매달린 채 방바닥에 고개를 대고 거꾸로 신부 효원을 올려다보았다. 신부의 얼굴이 푸른 빛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굳어 있다고도 느껴졌다. 거꾸로 올려다보는 신부의 몸집은 그 큰 키와 더불어 태산처럼 거대하다. 신부는 우뚝 서서 강모를 내려다본다. 강모의 얼굴은 팥죽 빛깔이었다.
"풀어라, 신랑을 풀어 주어. 신부가 풀어."
떠들썩한 홍소가 터진다. 그네는 침착하게 강모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자 잡힌 쪽의 발목이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퉁, 내려뜨려진다. 띠를 어깨에 매고 있던 사람이 그 끝을 놓아 준 것이다.
와아아.
방안에서 환성이 일고, 마당에서는 웃음 소리가 출렁거린다. 효원은 다른 쪽 발목도 그렇게 했다.
"풀어, 고리를 풀어라."
"신랑 발목이 그렇게 꽁꽁 묶여 있어서야 어디 신부를 데리고 가겠는가?"
"풀어라, 풀어."
"여보게, 이실, 그 홀맺힌 게 다아 인생의 업고라네. 마디마디, 한평생 가는 길에는 마음 고생, 고달픈 몸, 맺히고 맺힌 것도 많을 것이네. 자네, 속 시원히 풀고 가게."
효원은 번 듯이 드러누워 버린 신랑 강모의 발치에 앉는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홀맺은 매듭을 풀어 보려 한다. 그러나 장정들이 있는 힘껏 기운대로 묶어 놓은 것이라 풀릴 기척도 보이지 않는데, 손톱만 아프고 아리다. 그것도 한 번만 그렇게 묶은 것이 아니라 고리고리 야무지게도 예닐곱 마디씩이나 묶여 있으니, 강모의 양쪽 발목에는 고가 사슬처럼 얽혀 있다. 효원은 순간 망연하였다. 강모는 이미 아랫도리 감각이 없어진 것 같았는데, 그만 맥이 풀려버려 아예 눈을 감고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몸이 두웅 떠오르는 것도 같았다가, 다시 그대로 수욱 가라앉는 것도 같아진다. 즐겁고 흥에 겨운 마음으로 휩쓸려 매를 맞았다면 이다지도 힘이 들지는 않았으리라. 효원은 효원대로 맺힌 심정이 있어, 차라리 죽을 만큼 실컷 두들겨 맞게 두어 버릴까, 싶은 억하신정까지도 치밀었다. 그러나 효원은 이윽고 강모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더니, 자기 입을 바목에 가져다 댄다.
와아아.
다시 함성이 일어나 뒷등에 쏟아진다. 강모에게는 그 소리가 아득하여 무슨 꿈결처럼 들린다. 효원은 이빨로 단단히 매듭을 문다. 나무토막 같다. 돌덩어리를 문 것 같기도 하다. 이빨이 들어갈까 싶지가 않았다.
"풀지 마소, 풀지 말어. 그렇게 발목 묶여 갖꼬 각시 앞에 잡혀 있을 때가 좋을 것이네. 여보게, 이실."
효원은 풀릴 것 같지 않은 매듭을 위아랫니로 마주 물고, 왼손으로는 발목을 부여잡고, 오른손으로는 매듭의 고를 잡아당긴다. 거의 필사적인 기분이 들었다. 움쩍도 하지 않는 고를 기어이 풀어 내려는 효원의 구부린 뒷등에는 무서운 오기가 서린다.
"이실, 인제 한평생 살어 봐. 신랑 발목 비끄러매서 묶어 두지 못한 것이 참말로 한될 날이 있을 것이네."
"지금이 좋지. 지금이 좋오아."
효원은 드디어 한 마디를 풀었다. 고개 하나를 넘어선 것 같았다. 네가 나를 이 앞으로 대관절 몇몇 고비에서 이렇게도 애를 먹일 것이냐, 내가 네 발치에 어푸러져 무슨 속을 한평생 상헐라고 지금부터 이러느냐, 네가 누구이냐. 네가 과연 누구이길래 이 첩첩한 고갯길에 이렇게 나를 어푸러지게 하느냐. 효원은 이를 앙 다물었다. 혼인한 뒤에 신부를 남겨 놓고 본가로 가 있던 신랑이, 날을 잡아 처음으로 처가에 재행 오는 날, 이날이야말로 혼인날보다 더 흥겹고 재미가 있어, 정작 신랑과 더불어 한판 놀아 보려는 신부 문중의 대소가 일가 친척들이 다 모여 장난 삼아 신랑을 다루는 것이고, 누구라도 장가들 적에는 홍두깨로 매를 맞는 것이니 함께 따라 웃으면서 치를 수도 있는 일이었으련만, 효원의 가슴에는 광목띠보다 더 단단하고 질긴 매듭이 서리를 트는 것이었다. 강모가 갑자기 발목으로 피가 몰리는 아찔하고 후끈한 느낌에 눈을 떴을 때, 효원은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마지막 하나를 금방 풀어낸 것이다. 안팎의 사람들은 덩실 춤이라도 추는 시늉을 하여 불빛 아래 술상을 내고, 받고, 따르고 하였으나 강모와 효원은 각각 혼곳랸하여 차라리 멍하고 무감하였다. 효원은 그날 그때의 생각을 하며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갓 신행 온 신부의 방에서 깊은 밤중에 한숨 소리가 새어 나가서는 안되기 때문에 소리를 억눌러 죽인다. 이제는 사랑채의 작은사랑 등불도 꺼지고 말았으니,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사람은 온 집안에 효원뿐이었다. 불빛이 푸르게 느껴진다. 젊은 밤에 푸른 등불이 웬말인가. 다사로운 온기가 없는 불빛이다.
... 신랑 발목 비끄러매서 묶어 두지 못한 것이 참으로 한될 날 있을 것이네.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였던가. 개 짖는 소리도 잠잠하여지고, 바람결에 들려오던 다듬이 소리마저 밤이 이슥하니 아득하게 멀어지는데, 문득 강모의 발목과 광목띠, 그리고 마디마디 맺히고 묶여 있던 고가 떠오른다.
"나는 아무래도 동경으로 가야겠소."
강모는 신행 오던 날 밤이 늦어서야 마지못한 듯 건넌방으로 들어와 효원의 맞은편에 다리를 개고 앉더니, 양 무릎에 주먹 쥔 손을 올려 놓고 눈을 약간 내리뜬 채 말했다. 마치 외어 온 구절을 낭독이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에 힘이 들어 있어 어색하였다. 이것은 또 무슨 소린가. 효원은 마음이 철렁하여 강모를 또바로 바라보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단지, 무슨 동경에 가고 오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깊은 곳에 숨겨진 속뜻이 있는 것 같았다.
"미안한 일이오."
강모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대실에 가기 전에 할머니께서도 허락을 하셨소."
허락이라는 말에 힘을 주며 강조한 뒤에
"얼마가 걸릴는지는 나도 몰라요. 그러니 그렇게 알고 있으시오. 음악을 공부하러 갈 작정이니까. 지금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니 준비 끝나는 대로, 바로 떠날 거요. 아마 몇 년 걸리겠지만." 하고는 '바로', '몇 년'같은 말에서 머뭇거리면서 한동안 숨을 쉬었다가 잇는다. 그는 결코 하기 쉬운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듣고 있던 효원은, 지금까지 일 년 동안, 친정에서 없는 소식을 기다리던 것과는 전혀 다른 캄캄한 절망을 느꼈던 것이다. 그 절망은 불길한 예감을 머금고 있었다.
"신부가 가마에서 내릴 대, 시댁 지붕 꼭대기를 보아서는 절대로 아니된다. 그러니 각별 유념하고 다소곳이 들어가거라."
효원의 어머니 정씨부인이 신행길을 떠나는 여식에게 간곡히 당부하던 말이 새삼스럽게 사무쳐 왔다. 그것은 과부가 되지 말라는 뜻이었다. 물론 정씨부인은 그 뜻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와 같은 언사를 아무리 경계하는 뜻이라고 할지라도, 새각시가 부정을 탈까 보아 입에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효원은 그 뜻을 알고 있었다. 민간에 널리 퍼져 있는 그 말의 뜻을 꼭 들어서만 알고 새기겠는가. 또한 굳이 그런 당부가 없었다 하더라도, 어떤 신부가 감히 우귀일에 시댁의 마당에 똑바로 서서, 구름같이 에워싼 시댁붙이들 어깨 너머로 그 높은 지붕 꼭대기를 우러러 바라볼 수 있으리오. 그때 후행으로는 효원의 부친 허담과 종조부 허근이 동행하였다. 효원의 일행이 강모와 더불어 기차에서 내렸을 때, 정거장에는 한필의 나귀와 주렴을 늘이운 가마가 한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댁에서 마중을 보낸 것이다. 가마 곁의 교군꾼 두 사람은 동저고리에 바지 차림이었는데 머리에는 패랭이를 비딱하게 썼다. 이미 그들 일행이 정거장에 닿기도 전에 마을 사람들은 겹겹으로 돌러서서 신부 구경을 나와 있었다. 거멍굴의 매안뿐만 아니라 이웃 아낙들도 두루치 자락을 거머쥐고 팔짱을 낀 채 입담들을 나누었고, 민상투 바람의 남정네며 타성들, 문중의 지친 먼 촌들이 저마다 끼리끼리 모여 서서 기차가 당도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기차가 석탄가루를 날리고 목쉰 소리로 미끄러져 들어와서는 일행 중에 처음으로 눈에 띈 사람은 허담이었다.
"바깥 사둔 양반잉게비여. 하앗따아, 풍신 좋네에. 저 키 좀 봐."
"그런디, 그 옆에 저 노인 양반은 누구디야? 쉬염도 흐으여니 좋고 아조 점잔헥 생겠그마는."
그것은 허근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정거장에 허옇게 나와 선 사람들의 뒷전에서 옹구네와 평순네도 누구한테 질세라 서로 한 마디씩 하며 고개를 빼문다. 그 틈바구니에 아낙 하나가 어깨를 비집어 넣는다.
"신부는 어딧능교?"
"무신 하님, 짐꾼들만 자꼬 내리쌓네. 하앗따, 기차 하나 사 부렀능게비다. 대실 사람들 내리고 나먼 기양 텅 비어 불겄다."
"어, 어, 저어그 새서방님 아니여?"
"어디? 어디이?"
"아, 쩌어그... 저."
"참말로오. 학생복을 입어 놔서 못 알아봤그만 그리여 신랑이 왜 사모관대는 안했시까아?"
"머언 기찻속으서끄장 그러고 온당가? 인자 갈아입을 터지."
"저건 누구대? 저 각시가 신부여? 저 노랑 저구리 뿔겅 치매가?"
"아이고매에... ."
한 아낙이 주저앉을 듯이 호들갑스럽게 탄식한다. 때마침 일행은 그 아낙의 앞을 지나가게 가까이 다가왔다.
"어짜 옳이여... ."
"빌어묵을 놈의 예펜네. 지랄도. 방정을 떨고 자빠졌네 시방."
"아니, 무신 신부가 저렇게 크다냐아?"
"커서 머이여. 기왕이먼 큰 거이 좋제."
"아이고매. 저래 갖꼬. 어디 신랑이 신부를 각시라고 보듬아 줄 수나 있겄능가? 몸통이 신랑 두 배는 되겄네이."
"호랭이 물어갈 노무 주둥팽이, 신부가 듣겄다."
옆의 사람이 말한 사람을 윽박지르는 모양이었으나, 효원은 그 말들을 똑똑히 듣고 말았던 것이다.
"세신랑이 엥간치 이뻐야 말이지. 남자 중에도 맵시 나고 이쁘게 생긴 남잔디, 신부는 기양 누님맹이네."
"하이간에 살집 한 번 좋그만 그리여."
"달뎅이같이 훠언헌디. 머엇이 어쩐다고들 그래싼당가아."
"근디 당뎅이가 너무 무거서 동산에 떠오르다가 가라앉겄는디?"
효원은 목소리도 낯설고 말투도 귀설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하는 말을 그대로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들었다. 들리지 말라고 소리를 죽여가며 하는 말이라서 더욱 잘 들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디 성깔은 아조 매섭겄어."
"관상이 대단한 얼굴이여. 저것 좀 보아."
"대가 세겄구만."
"대실서 와서 대가 찼이까?"
"저래 갖꼬 새서방님허고 궁합이 맞으까? 당최 어째 내 눈에... ."
"키익, 속궁합 속이사 누가 얼겄어? 들으가 본 사램이나 알 일이제잉. 앙 그리여?"
"떽끼, 이런 손."
거멍굴의 남정네들은 뒷전에서 따라가며 킥킥거린다. 효원은 가마에 올라앉으며 비로소, 이곳이 저 나서 살던 곳 대실이 아닌 것을 실감하였다. 그리고 동여맨 가슴의 어두운 곳에서 무거운 피가 둑근둑근 뛰는 것을 느꼈다. 시댁의 마당에 내렸을 때, 가마 문이 열리고 발을 내디딘 효원은 무슨 오기에 치받친 사람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둘러선 사람들 앞에 나섰다. 그 모습은 비장해 보이기조차 하였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효원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짓눌리는 듯한 어개를 비팅겨 올렸다. 어쩌면 어깨에서 나뭇가지 무러지는 소리라도 들릴 것처럼 힘이 겨웠었다. 그래서 둘러선 사람들의 시선을 비키며 턱을 세우고 눈을 높이 떴다. 그때, 효원의 눈에 들어온 것이 시댁의 검은 지붕 용마루였다. 용마루는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 같았다. 용마루의 눈과 효원의 눈이 순간 서로 부딧치는가 싶었다. 아찔했다. 그러더니 효원의 다리에 쥐라도 난 것처럼 후르르 떨리며 힘이 빠졌다. 하님의 그네를 에워싸듯 부축하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국수 장국에 수정과와 화채가 놓인 입맷상이 방으로 들어왔으나, 효원은 손도 댈 수가 없었다. 손가락조차도 남의 것 같은 것이다.
"좀 먹어 두게. 이따가 폐백 드릴라면 힘들고 기운 빠지네. 한 술 들어, 안 먹히더라도."
한 부인이 친절하게 숟가락을 쥐어 주었으나, 그네는 힘없이 상 위에 놓고 말았다.
"옷을 갈아입어야지."
아무래도 신부가 음식을 먹지 못하리라고 짐작한 부인은 상을 물리게 하고, 효원에게 폐백차림을 지시한다. 폐백을 드릴 시간이 된 것이다. 대실에서부터 따라 온 수모와 하님이 벗기고 입히고 꾸미는 대로 내맡기고 있던 효원은 대청마루의 폐백상 앞에서 다시 한 번 크게 가슴을 내려앉았다. 흥겹고 다홍 비단이 덮인 폐백상 위에 대추와 편포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 시부모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기채는 대실 초례청에서 얼핏이나마 보았으나 율촌댁은 초면이다. 율촌댁이 효원을 놀라게 한 것이다. 남색 치마에 연두색 저고리를 입은 율촌댁은 저고리에 물린 자주색 회장으로 인하여 그 단아하고 고운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평소에 치장을 하지 않아 누구의 눈에 휘황하게 띄지 않는 편이었으나, 그네가 용색이 단려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거기다가 이렇게 물색 고운 옷을 격식대로 갖추어 입고 나서니, 그 얼굴빛은 분홍이 물들어 비치고, 이제 막 무르익은 삼십대 여인의 여염함까지도 숨길 수 없이 번져나서, 한집의 사람도 다시 돌아보게 하였다. 강모의 모색이 율촌댁을 많이 닮은 것을 효원은 알아보았다. 그네의 눈에도 율촌댁은 젊고 아름다웠다. 그런 시어머니 앞에 서 있으려니, 원삼에 족두리를 쓴 자신의 덩어리가 더욱더 크게 느껴진다.
"시어머니가 외나 새각시맹이네잉."
"하이고오. 율촌마님 시집오실 적으는 어뜨케나 고우시던지 온 동네에 꽃피었었구만, 그래도 인자는 많이 변허곗지머어."
"아 그때 벨멩이 꽃각시 아니였간디? 지금도 그 모색이 그대로여."
후두둑.
신부의 치마폭에 대추가 쏟아진다. 사배반의 절이 끝나자, 이기채가 집어 던져 준 대추이다.
"손이 귓한 집이니라. 아들을 그만큼 많이 낳도록 해라."
수모가 얼른 조심스럽게 치마폭에 쏟아진 대추를 신부의 원삼 소매안에 넣었다가, 그릇에 담아 내보낸다. 시어머니는 난도질하여 얄팍하고도 둥글넙적하게 지어 말린 쇠고기 편포 위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어루만진다. 신부의 모든 흉과 허물을 덮어 달하는 뜻이다. 편포를 쓰다듬는 흰 손가락에 푸른 옥가락지가 차게 보였다. 좀체로 몸에 지니지 않는 것인데 그날은 새며느리를 맞는 날이라 특별한 장식으로 꾸민 것이다. 청암부인은 이기채와 율촌댁이 폐백을 받은 다음, 손부 앞에 앉았다. 순서로 보면 할머니 청암부인이 먼저이나, 직접 낳아 기른 부모가 우선한다, 하여 부모 뒤에 따로 폐백상을 받는다. 청암부인은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효원을 바라보았다. 부인의 눈에 효원은 우선 아녀자다운 어여쁨과 오밀조밀함보다는 기상과 도량이 있어 보였다.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음성을 내렸다.
"너는 귀한 사람이니라. 온 집안이 경사스럽게 너를 반겨 맞으니, 부디 마음으로부터 이곳을 네 집이라 여기어라. 이제부터는 여기가 네 집이다. 그러고, 반다시 아들을 낳도록 해라."
노인이라서 그러한가. 효원은 고개를 숙인 채 청암부인의 말씀만을 듣고 있는데도, 알지 못할 위안과 다사로움을 느꼈다.
그 다음부터는 누구에게 몇 배를 하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수모가 부축하여 주고, 하님이 큰머리를 잡아 주는 대로 일어서고 앉고 절을 하고 하였다. 백숙부모 내외에게 하는 절만 하여도 사배씩 팔배를 하였으니, 아무리 곁에서 부축하고 잡아 주어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며 어지러웠다. 거기다 빈 속이어서 더한 것이다. 상호례가 끝나고 율촌댁은 대청에 효원과 마주앉아 관례를 시켜 주었다. 연두 곁마기, 다홍 겹치마, 열두 폭 대무지기, 여덟 폭 곁풍무지기, 여섯 폭 연봉무지기, 모시 분홍 속적삼, 노랑 속저고리, 저고리 삼작과 당의 원삼을 신부에게 내주면서 입히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신부 효원의 머리채를 빗치개로 드르르 갈라 놓는다. 수모는 갈라진 머리를 두줄로 땋아서 쪽을 짓는다. 그 머리채에는 이성지합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어른들께는 원삼 차림으로 동항에게는 당의 차림으로 평절을 한다. 참으로 길고 긴 절차였다. 엷은 옥색 달련 도포와도 같은 제사옷 천담복으로 갈아입은 뒤, 사당에 올리는 폐백까지 끝내고 나니, 이제 혼인에 따른 순서는 다 끝난 것 같았다.
"비로소 너는 이 집안의 증손부가 되었다."
청암부인은 다정히 효원의 손을 잡고 치하하여 위로하였다. 효원은 그대로 무너져내릴 뻔하였다. 차마 그러지 못하고 대신 얼굴빛이 창백하게 질리자 부인이 놀라서
"고단했구나."
하더니, 몸소 일어나 효원을 건넌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럼면서 다시 한 번 손부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간곡하게 당부하였다.
"오늘은 아주 좋은 날이다.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그냥 잠들지 말아라. 심신의 정성을 다하여 아들 낳을 꿈을 꾸도록 해라. 알겠느냐."
효원은 대답 대신 오른손을 방바닥에 짚어 알았다는 표시를 한다.
"부디 명심하거라."
청암부인이 한 번 더 다짐을 한 뒤 큰방으로 건너가자. 효원은 어깨의 마디마디부터 허리, 다리, 발가락까지 노그라져 내리며 온몸의 천근이나 된 것처럼 가누기가 힘들었다. 허리를 뒤로 젖혀 버티어 보다가 앞으로 구부려 보다가 무릎을 세워보다가 하고 싶었지만, 낯설고 어려운 마음에,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움쩍도 하지 않았다.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기도 하였다. 사방에 둘러보아도 모두 어른들뿐이며, 아랫사람이라고 누구 하는 얼굴도 없었따. 심지어는 마당을 오가는 발자국 소리마저도 모두 다 처음 듣는 귀설은 것들뿐이다. 그러다가 한밤이 깊어서야 마지못한 듯 건넌방으로 들어온 강모가 한 말은
"나는 아무래도 동경으로 가야겠소."
였다. 그때 효원은, 검은 눈을 부릅뜨고 효원을 바라보는 것 같았던, 용마루가 순간적으로 머리에 떠올랐다. 효원의 눈빛과 용마루의 눈빛이 마주치던 그 아찔함도 그대로 되살아났다. 사위스러운 생각이 펀뜻 들었다. 이것이 대체 무슨 재앙인가. 막연하던 연기가 그만 캄캄하게 절벽처럼 눈앞을 가로막더니, 가슴마저 막히게 하였다. 이 사람이 오늘 밤에도 이 방에 올 뜻이 전혀 없었던 게 아닐까? 효원은 장 속에 접혀진 채 그대로 있는 하얀 삼팔주 수건에 생각이 미친다. 선홍의 혈흔으로 꽃무늬 놓여 어느덧 해가 바뀐 지금도 막막하게 흰 빛을 소복같이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좋은 날이니,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그냥 잠들지 말라고 당부하던 청암부인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린다. 삼팔주 수건과 청암부인의 목소리가 서로 얽혀들면서 칭칭 감긴다.
"그만 잡시다."
강모는 강모대로 고단했던지 이불 위에 쓰러지듯 몸에 던져 눕는다. 그는 지금 막 큰방의 할머니에게 불리어 갔다가, 한 말씀 듣고는 마지못해 이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강모가 작은사람에서 건너오지 않는 기미를 알고 청암부인은 강모를 불렀다.
"이제 그만 건너가서 자거라."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짤막하게 한 마디 했을 뿐이지만 강모는 거역하지 못하고, 그 앞에서 건넌방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그러나 강모의 심정은 착잡하였다. 동경으로 음악 공부를 하러 떠나겠다고 더듬거리며 말을 떼고 나니, 더욱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도무지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여인이 나의 무엇인가 싶어지는 것이다. 불이 꺼지고 나면 어른들이야 무엇을 짐작할 수 있으리. 그리고 나는 날이 밝으면, 어디로든 떠나 버리리라. 어디로든. 강모는 불을 불어 끄고는 잠시 후에 깊이 잠든 시늉을 하였다. 그때 강모가 잠들지 않은 것을 효원은 알고 있었다. 옛말에 공방살이라는 말이 있다더니, 이것이 바로 그런 것인가. 효원은 가슴속이 써늘하게 식어 내리는 것을 느꼈다. 어둠은 쇠붙이처럼 날카롭고도, 섬뜩하고 차갑게 살에 닿았다. 이제 동짓달, 지월이니 문풍지를 울리는 외풍도 차겠지만, 꼭 그러해서만은 아닌데 온몸이 시렸다. 효원은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서, 다음날 밤부터는 쉽게 불을 끄지 못하고 한밤의 허리가 겨워지도록 홀로 그렇게 앉아 있게 되었다. 벌써 오늘이 몇 날째인가. 머리 속이 아득하다. 그네의 눈에는 불빛이 푸르게 보인다. 젊은 밤에 홀로 앉아 바라보는 등붕리라서 그러한가. 불빛마저도 차갑게 느껴진다. 지나가는 바람에 더르르 풍지가 운다. 효원이 그렇게 건넌방에 홀로 앉아 있을 때, 강모는 소리를 하러 가는 척하고 슬그머니 사랑채의 작은사랑에서 빠져 나온다. 어둠 속에서 보아 그런지, 그의 몸집은 헐렁하게 느껴진다. 토방으로 내려서는 걸음도 힘이 없다. 마치 오래 않고 난 사람이 서투르게 내딛는 것처럼 아차스럽기도 하다. 집안은 이제 괴괴하기까지 하다. 섬돌 밑에서 울어대던 귀뚜라미와 풀벌레들의 낭랑한 울음소리조차도 흔적없이 스러져 버리고, 그 대신 마른 잎사귀 구르는 소리만이 스산하게 발 끝에 채인다. 그것은 오류골 작은집의 검은 살구나무 둥치에서 떨어져 날리는 낙엽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강모의 허옇게 마른 입술에서 일고 있는 까스라기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일는지도 모른다. 물을 못 먹은 가슴의 한쪽 귀퉁이가 부스러지며 그렇게 마른 나뭇잎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닐까. 강모는 깔깔한 혀끝으로 입술을 축여 본다. 혀끝과 입술이 까칠하게 말라 붙는다. 강실아... . 그는 자신의 심정을 억누르기라도 하려는 듯 숨을 죽이며, 캄캄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무거운 어둠에 가슴이 잦아드는 것도 같고, 그대로 터져 나가 버릴 것도 같다. 그러나 너를 어이할 수 있으리야. 강모가 토해 내지 못한 채 참고 있는 한숨은, 연기처럼 매웁고 자욱하게 살 속으로 저미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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