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실 → 수필
|
|
|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함석헌
제3부
남강 선생님 영 앞에 (1/2)
정치란 무엇입니까? 역사란 무엇입니까? 선생님, 오늘 1979년 2월 4일 예순 돌을 맞는 삼일절을 앞두고 같지 못한 제자 석헌은 슬프고 답답하고 외로운 마음을 금할 길 없어, 감히 붓을 들어, 살아 계신 하나님 품 안에 계시면서 이 나라를 지키시고 계신 선생님 영 앞에 정성을 모아 지나간 것과 지금 있는것과 앞에 내다뵈는 것에 관하여 한 말씀 사뢰려 하옵니다. 아, 생각하오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선생님께서 잊을 수 없는 1930년 5월 9일 아침에 마음 막힌 저희들을 학교 뜰에 모아놓으시고, 말씀을 하시다 하시다 못해 아니 끊어지는 말씀을 불덩이를 삼키듯이 끊으시면서, “너희들이 그렇게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이제는 다시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하시고는 말씀을 딱 끊으시고, 울부짖는 저희들을 두시고 아주 떠나가 버리신 것이 어느덧 반 세기가 거의 다 되어갑니다.
계실 때에 가르쳐주신 말씀 지키지 못했고, 떠나가신 다음 남겨 놓으신 뜻 잇지 못한 죄인이 어찌 감히 입을 열어 지껄일 수 있겠습니까마는, 여기 또 마지못한 곡절이 있습니다. 계실 때에 보여 주시던 그대로의 헤가림과 어여삐 여기심을 가지시고 살펴주시기 비옵니다. 잡지사 ‘뿌리깊은 나무’는 그 이름을 뿌리라 붙인 것이 뜻이 있어 한 줄로 아옵는데, 이제 그들이 이 못난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그어진 38선이 마침내는 겨레의 몸과 마음 위에 영원히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남겨놓고 말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나머지, 그것을 합장시키는 지극히 작은 바늘뜸의 하나로, 부족한 저더리 이북에 있는 마음에게로 보내는 편지를 한 장 쓰라는 부탁을 보내왔습니다.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이라 생각되었으므로 두 번 생각함 없이 선뜻 대답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붓을 들어 쓰려니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붓을 대지 못하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동안에 약속했던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연기한 날짜마저 다 되어 이 밤이 새버리면 끝이 나게되니 몸 둘 곳이 없습니다.
선생님, 결코 쓸 말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해방이 됐는데, 부끄럼과 고통의 종살이가 끝났는데, 그러나 또 기쁨과 감격에 들뛰며 춤추던 가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그 가엾은 미끼를 옷을 바꿔 입혀서 다시 제 울타리에 넣으려는 흉악한 곰과 독수리의 서로 끌고 당기는 싸움에 민족의 허리가 끊어졌는데, 그러자 또 어리석은 민중이 죽음으로 땅을 지킬 생각은 못하고 제각기 살기 찾아 남으로 북으로 부모 형제 처자가 서로 헤어졌는데, 또 헤어진 비참함도 부족하다는 듯이 그 부자 형제가 총칼을 들고 서로 죽였는데, 또 전쟁은 그만두었다면서 30년이 지나도록 하루도 쉴 날이 없이 전쟁을 하고 있는데, 또 원수된 형제는 지구의 구석구석을 돌며 서로 집안의 흉을 드러내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는데, 또 동족을 서로 죽임으로 미친 마음 이제는 이성도 잃고 양심도 마비되어 권력과 돈만 알아, 없는 놈은 악독하게 날이 섰고 있는 놈은 퇴페의 진창에 빠졌는데, 어떻게 쓸 말이 없겠습니까? 할말은 너무 많아 가슴이 터질 지경입니다.
선생님,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고 개도 보고 짖을 달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잘 비비는 소도 대고 비빌 담이 없는 데 어떻게 합니까? 사람이 없습니다. 건너다보고 말할 마음이 없습니다. 어디다 대고 호소를 하고 넋두리를 해야겠습니까? 누구를 건너다보고 울어야겠습니까? 인비목석이라지만 마음이 죽으면 돌과 나무만도 못합니다. 한숨을 쉬면 나뭇잎도 흔들릴 줄 알고, 통곡을 하면 먼 산도 메아리라도 울려 보낼 줄을 압니다. 그러나 제게는 창가의 나뭇잎만한 마음도, 건너 산의 바윗돌만한 심정도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제 마음은 답답합니다. 선생님, 제가 얻어 들은 것이 있다면 오산을 내놓고 어디서겠습니까? 친구가 있다면 오산 물 먹은 것들 속에서가 아니고 또 어디서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서 아무리 찾아도 하나도 마음 가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물론 저의 부족 때문인 것을 압니다. 그러나 또 시대의 바람이란 것도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모든 것에 사사로이라는 것이 없으시고 또 생각없이 하신다는 일 없으신 선생님께서 일찍이 이 저를 특별히 불러 말씀해주신 것이 있음을 자나깨나 기억하고 있는 저로서겠습니까? 제 마음은 답답하고 슬프고 외롭습니다.
선생님, 이것이 제 못남 때문입니까? 시대의 변천 때문입니까? 정치란 무엇입니까? 역사란 무엇입니까? 오늘 오후 성경모임, 그것은 마치 선생님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에 선생님을 모시고 학교 교실서 한줌만큼 되는 학생들을 데리고 했던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마는, 이 명동 한복판에서 하는 그 모임을 마치고 돌아와 모든 것을 제쳐놓고 이 밤이 새기 전에 약속의 글을 써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앉았을때에, 제 모습은 마치 저 유명한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시에 그려진 장나꾸러기나 뱃군한테 잡혀 갑판 위에 퍼득이는 신천옹같이 불쌍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 새가 좋습니다. 신천옹이라 이름한 이유는 이놈이 날기는 잘해 태평양의 제왕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고기를 잡을 줄은 몰라서 갈매기란 놈이 잡아다가 이따금 흘리는 것을 얻어먹고 살기 때문이랍니다. 그래 일본 사람은 그 새를 아호도리, 곧 바보새라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이 바보새란 이름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 사는 꼴도 바보새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해방 후의 제 살림은 그렇습니다. 마음은 푸른 하늘에 가 있으면서 밥벌이할 줄은 몰라 여든이 다 되어 오는 오늘까지 친구들의 호의로 살아가니 그 아니 바보새입니까? 제가 이북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속에는 여름 구름산같이 떠오르는 말을 품으면서도 말해줄 어느 얼굴 하나를 못 찾아내서 방바닥을 치며 퍼득이는 것도 이 하늘바라기와 갈매기의 관련 비슷한 무슨 미묘한 모순이 있어서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이것은 또 웬일입니까? 그렇게 말은 할 것이 있는데 바라보고 할 얼굴을 못 찾아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제 머릿속에 갑자기 어디선지 '남강 선생 영 앞에' 하는 소리가 살별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저 자신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분명 선생님의 영이 바보처럼 가엾이 퍼득이는 제 꼴을 보시다 못해 오셔서 계시해 주신 것이라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이 자식아, 말할 데가 없으면 왜 나한테 못하느냐?"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영입니다. 일순간에 무지한 뱃군놈의 갚판 같은 이 서울의 학대와 모욕을 다 잊고 태평양의 상공을 날게 됐습니다. 이제 "둥지 안에 누워 자는 고운 새끼를 먹일것 얻노라고 해가 맞도록 골몰하게 다니던 늙은 비둘기"의 "훨훨훨 날아와서 벅벅 구르르"하는 인자한 눈동자와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제 오산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썩었습니까?
선생님, 먼저 유언을 실행 못한 죄부터 말슴드려야겠습니다. 선생님은 가시면서 그 끊어져가는 가쁜 숨을 가지시고도 "나 죽거든 이 뼈다귀 쓸데없이 묻어 썩히지 말고 생리 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 공부하는데 쓰게 해라" 하셨습니다. 일생을 두고 학교와 겨례를 위해 그저 바쳐만 오셨던 선생님이신데, 돈 있으면 돈 바치셨고, 땅 있으면 땅 바치셨으며, 살 남았으면 살을, 마음 남았으면 마은을 바치셨는데, 그러다가 나중에는, 남들은 그것 위해서는 있는 것을 다 팔아서라도 산다는, 이름까지 바치셔서, 남이야 욕을 하거나 오해를 하거나 상관 않으시고 오직 스스로의 정성에 만족하시면서 그저 자라나는 것들 키워주시는 한 가지만을 생각하셨는데, 이제 그것조차 못하시게 되는 마지막 순간이 오니 그럼 이 남은 말 못하는 뼈다귀로라도 부르짖어야 한다 하시는 생각에서 하신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은 그 정성에 녹아 이를 윽물어 인정을 참고라도 그 말씀대로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악독한 일본 관리는 그 백골에마저 자유를 허락치 않았습니다. 그래 할 수 없이 저희들은 그 말씀하시던 백골을 옆에 모시지 못하고 유리 항아리에 넣고 방부제를 더해서 봉한 후 황성산 턱 밑에 그것을 묻고 날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15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바람이 그 솔가지 사이에 불기만 하면 선생님의 음성 같았고, 눈이 그 풀위에 덮이기만 하면 풍진에 흩날리는 선생님의 허연 수염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남강의 백골이 땅 속에서 운다"고 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무심하시지 않아 해방의 날이 왔습니다. 어찌 선생님을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정말 그날이 왔으니 그 우는 백골을 청천백일 아래 내놓고 말씀을 듣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역사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앞문으로 승냥이 내보내니 뒷문으로 더 흉악한 곰이 들어왔습니다. 저희들은 일제 때 모양 또다시 울음을 속으로 삼키고 쓴웃음을 지어야 했습니다. 선생님, 이제 자유자재하시는 영이신 아버지, 아버지는 다 아시고 다 보시지요. 이제 오산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썩었습니까? 그 유언은 어디로 갔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다 죽고 다 썩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영에 있지 육에 있지 않습니다. 아무 놈도 대답해주지 않는 때에, 어느 얼굴도 나타나는 것이 없는 때에 선생님의 영은 빛으로 뚫으셨고 말씀으로 저를 흔들었습니다. 제석산 황성산은 무너질람 무너지라 하시고 장군바위는 녹으려거든 녹으라 하십시오. 선생님의 정성 그 엉킨 정신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현실을 보면 한심한 점도 많습니다. 이북에는 이제 오산학교란 것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여기는 오산학교란 것이 있습니다. 아마 선생님이 와보신다면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사실 육이오 전쟁 이후 부산에서 오산학교를 시작한다 할 때 저는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있고 그 때가 허락되는 때라면 해서 좋습니다. 그렇지 못할 때는 그 이름은 아니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중에서라도 교육은 해야 한다는 것은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오산이란 이름을 붙이는 것은 오산을 사랑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거기서는 오산 정신을 살려내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산을 내세우는 것은 선생님을 팔아 이득을 얻자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과연 제가 걱정했던 대로 오산은 지금 아무 정신 없는 사람들 집단입니다. 이북에서는 선생님의 백골이 울고 있는 대신 여기서는 선생님의 동상이 울고 있습니다. 선생님 살아 계실 때 일본 사람에게 끌려 제주도에 귀양살이 하셨지요. 지금 선생님의 동상이 어린이 공원이라는데 가서 혼자 우시고 계십니다. 선생님 마음이 무었입니까? 늙은 비둘기로 춘원이 잘 표시했습니다. 둥지 안에 자라는 고운 새끼를 못 잊어 동분서주하시던 선생님의 마음이 머무실 곳은 '지붕 위에 지저귀는 참세 무리' 같은 뜨거운 가슴의 학생들 사이이지 구경꾼들의 먹고 내버리는 쓰레기 사이가 결코 아닙니다. 얼마 아니되는 더러운 돈과 똥 묻은 명함에 팔리는 놈들, 어린아이도 알 만한 그 판단도 못하고 있습니다.
첫번 동상을 세우던 때의 일을 저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자세로 하자는가 말씀드렸더니 "나는 평생에 나음나음 나가는 것이 좋으니 걸어나가는 모양으로 하라" 하시어서, 그것은 만들 수가 없다 했더니, 선생님께서는 항상 말해주고 싶은 것이 내 심정이니 "말하는 모습으로 하라" 하셔서 그렇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제막식이 다가오자 어디서도 참을 살리려 하시는 선생님은 "식을 하는 날에는 관청 손님 오고 해서 형식적인 말이나 했디 정말 내가 너희에게 하고 싶은 말 못한다" 하시면서 그 전날에 학생들을 그 동상 앞에 모아 놓으시고 그 잊지 못할 똥 잡수시던 말씀을 해주시면서 봉사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여기 내 동상을 세워준다고 하지만, 어째서 그것이 서게 되는지 아느냐? 내가 똥 먹었기 때문이란 말이야" 하시는 말씀으로 시작하셔서는, 오산학교 초창시기에 모든 것이 다 부족하고 그저 열씸 하나로만 꾸려나가는데 뒷간이 아주 허술했다, 추운 겨울날이면 쌓이는 똥이 얼어 산봉우리같이 자라 올라간다. 나중에는 가 앉는 사람의 엉덩이를 찌를 지경이 된다. 그런데도 변소 사용하러는 다 가지만 그것을 치우려는 사람은 없다. 그래 선생님이 그것을 보시다 못해, 손수 도끼를 들고 뒷간 밑으로 들어가 그 황금산 꺼내시는데, 그러노라면 이따금 튀어나는 그 금 부스러기가 입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있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저 태연히 퉤해서 뱉어버리시고는 또 도끼질을 계속하시는 것이었다는 그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선생님, 세월이 얼마나 간들 그 광경을 제가 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 또 언젠가는 학생들 앞에서 삼일 운동을 일으키시고 감옥에 가셨던 말씀하시면서, 감방 안의 변기를 손수 닦으셨더니 처음에는 젊은이들이 "선생님이 그것을 하셔서 되겠습니까?" 어쩌구 하더니 나중에는 그것은 저 선생님이 하시는 것이거니 하고 내맡겨두더라는 것, 그래서 선생님께서 날마다 손으로 그 변기를 닦으시면서, "하나님, 이후에 놓여 나가서도 일생을 두고 이 민족의 똥통이나 닦을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기도하시었다는 말씀을 하신 것도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선생님 동상, 사랑하는 학생들은 다 빼앗기고 혼자 무심한 구경꾼 속에 울고 서 계시니 가슴 아파 견딜 수 없습니다. 선생님, 한 말로 그 쥐 무리, 여우 무리를 꾸짖어 내몰지 못하는 이 저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것만입니까? 동문회에서 오산 칠십년사를 엮는다고 합니다. 역사의 사가 어떤 글자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역사를 쓰면 어떻게 합니까? 칼 끝으로 아무리 참을 인자를 써도 거기서 나오는 피는 그것이 악이라고 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건만 역사 위에서 죽은 것은 빌라도와 그의 로마제국이었지 예수가 아니었습니다. 요새는 세상이 온통 거꾸로 뒤집혔습니다. 새털을 무겁다 하고 천근은 가볍다 하며, 정의는 감옥에 가 있고 악은 옥좌에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지가 천지의 위치대로 있지 못하고 지천이 됐을수록 길하다는 주역의 해석은 진리입니다. 이 우주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에 역사의 붓을 드는 것은 팔아먹으려는 심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기성회 방에다가 교원들을 모아 놓으시고, '난상공의' 하자고 하시면서 말씀을 하시다가는 "어려워!" 하시면서 긴 한숨을 내쉬시던 모습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그 심정을 살펴드린다고 했던 저로서도 이제 와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데, 하물며 그것조차도 모르는 것들이, 더러운 욕심이 그 눈구석에 박혀 있고 어리석은 교만이 그 콧날 위에서 춤추는 것을 제가 다 뚫어보고 있는데, 그래 감히 어디라고 장난을 한단 말입니까? 동네 썩은 된장은 학교에서 다 치운다고 하던 때, 선생, 제자가 한 덩어리로 어울려, 백두산의 자란 범은 백두호라고 부엄 중의 부엄으로 울리느리라. 우리들은 오산에서 자라났으니 어디를 가든지 오산이로다. 라고 부르던 때의 일을, 그 이야기를 들을지언정, 그 공기를 마시고 그 냄새를 맡은 사람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 슬픕니다. 지금은 어두움의 권세 밑입니다. 고난의 역사를 말한 저로서도 이 고난의 길이 이렇게 길 줄은, 그 사나움이 이렇게 지독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
|
|
글나눔 → 추천글
|
|
|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원수를 감동시킬 수 있는 힘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말가리다라는 여인이 고아원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뉴올리언즈 지방은 흑인이 많은 탓인지 기부금 같은 것이 여간해서 모이지 않았고 갈수록 고아원 경영은 힘들어져만 갔습니다. 연말이 다가오고 크리스마스가 닥쳐오자 말가리다 부인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든지 선물을 마련해 아이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기 때문입니다. 부인은 거리에 나가 사람들의 동정을 얻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검은 옷을 몸에 걸친 뒤 연말의 분위기에 젖어 흥청거리는 술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테이블을 돌면서 부드러운 미소와 겸손한 태도로 사람들에게 동정을 바라고 다녔습니다. 얼굴을 돌리는 사람, 마지못해 돈을 주는 사람, 갖가지의 사람들 중에 갑자기 주정뱅이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시끄러워! 남은 좋은 기분으로 술 마시는데 그런 기분 나쁜 얼굴 내밀지마! 이거라도 먹고 꺼져 버렷!"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가 갖고 있던 맥주컵을 느닷없이 부인의 얼굴에 내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앗!"
몸을 피할 사이도 없이 컵은 부인의 얼굴에 맞아 박살이 났고 부인의 얼굴은 유리조각으로 찢겨 피가 났습니다. 술집 안의 손님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부인이 어떻게 나오는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수건을 꺼내서 상처를 지긋이 누르면서 산산이 부서진 컵의 유리조각을 하나하나 주워서는 두 손으로 받쳐들고 미소를 지으며 주정뱅이에게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컵은 나에게 주시는 선물로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러나 가엾은 고아들에게는 어떤 선물을 주시렵니까?"
한동안 어리둥절한 침묵 끝에 "와!" 하는 환성과 더불어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돈을 내놓았습니다. 그 주정뱅이 테이블 위에도 그의 지갑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그 곁엔 '이 돈을 불쌍한 고아들에게'라고 쓴 메모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사랑은 폭력보다도 강하고 원수의 마음까지도 감동시킬 수 있는 위대한 힘입니다.
미련한 자의 마음은 그의 입 속에 있지만, 현명한 자의 입은 그의 마음속에 있다 - (B. 프랭클린)
|
|
독서실 → 경제/경영/성공
|
|
|
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4. 다르게 끈질기게 파고들어라 - 시추 경영
대기업은 싫습니다
5년 전에 천안공장으로 한 청년이 찾아왔다. 지금도 별다를 게 없지만 그때의 미래산업은 정말 보잘 것 없는 규모의 중소기업이었다. 직원공채 같은 건 부담스러워서 시도해본 적도 없었다. 자매결연을 맺은 공업고등학교에서 보내주는 아이들을 키워서 쓰곤 했다. 이렇다 할 학벌을 갖춘 고급인력이란 아예 욕심도 내지 않았다. 노력해봐야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절이라 이 청년의 방문은 더욱 의외였다. 가져온 이력서며 성적증명서를 보니 첫눈에도 매우 우수한 인재라는 판단이 들었다.
"박우열이라고 합니다. 한양대 기계공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고 올해 군대도 마쳤습니다."
"그래 찾아온 용건이 뭔가."
"받아주신다면 미래산업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반가움에 앞서 나는 그 속마음이 궁금했다. 저 정도의 조건이라면 대기업으로 달려가야 정상이었다. 한 번에 실패하면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반드시 대기업에 들어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세태가 아닌가. 지금도 미래산업은 주변에 보이느니 허허벌판 아니면 공장뿐인 천안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조건으로 충분하다. 놀기 힘들고 장가가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이 청년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자네 실력을 보니 대기업을 들어가도 충분할 것 같은데 어째서 미래를 찾아올 생각을 했나?"
"대기업은 싫습니다. 저는 비전 있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슨 기회 말인가?"
"제가 공부하고 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유망한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면 저한테도 많은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대기업에는 경쟁자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당돌했지만 밉지 않은 녀석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허락했으면서도 나는 일부로 계속 질문을 던졌다.
"이 촌구석에서 일하기 답답하지 않겠나?"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느니 금상첨화 아닙니까?"
"자네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에는 회사가 너무 작지 않은가?"
"사실 저는 좀더 작은 회사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여기도 너무 커서 좀 불만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사옥도 멋있고, 사장님도 멋있고, 아무튼 저는 꼭 여기서 일해야 되겠습니다."
얼마 전 그 박우열이 장가를 갔다. 말주변도 없이 직원들 주례에 하도 시달리다 보니 이제는 아예 공식적으로 주례거절을 선언했던 바였다. 그런데도 박우열은 예의 넉살로 나를 구워삶았다. 내가 주례를 서지 않으면 결혼식을 안 하겠다며 협박했던 것이다. 평소의 성정으로 보아 박우열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주례를 허락할 수밖에. 결혼식 당일. 나는 예식장 구석에 앉아 수첩을 꺼내놓고 복잡한 머릿속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신랑 친구들이 내게 몰려왔다. 강연이다 인터뷰다 해서 한동안 꽤나 번잡을 떨었기 때문인지, 미래산업과 정문술이라는 이름이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는 듯했다. 더구나 신랑친구들도 대부분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는 녀석들인지라 대부분은 나를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마땅한 주례사 내용도 잡히지 않던 차에 그 녀석들과의 대화는 오히려 반가웠다.
"우열이놈, 미래에 가서 무지 출세했습니다. 동기들 중에서 아마 제일 팔자 좋은 녀석일 겁니다."
"자네들은 훌륭한 기업에서 좋은 대우받으며 일하고 있지 않나."
"회사만 크면 뭐합니까. 장래도 불투명하고 매일 그날이 그날입니다."
"미래산업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나."
"에이, 그래도 우열이는 지금 과장 아닙니까. 저희들은 기껏해야 대립니다, 대리. 게다가 우열이는 팀장이니까 저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할 것 아닙니까. 동기들은 우열이를 제일 부러워한다니 까요."
그가 미래산업을 선택했던 것은 그저 단순한 객기가 아니라 나름대로 충분한 분석과 연구의결과일 것이다. 그 많은 중소기업 중에서 굳이 천안까지 내려와 미래산업을 선택한 것도 심상치 않거니와, 소위 말하는 대기업에서 그려질 자신의 인생지도와 미래산업에서 그려질 또 하나의 인생지도를 두고 그가 얼마나 고심했겠는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동기들이 모두 대기업으로만 향할 때 엉뚱하게도 박우열은 스스로 지방의 중소기업을 택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기회가 더 낳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중소기업에서 성장하면 자기분야 이외의 것들도 접할 기회가 더 많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중소기업에서 성장하면 자기분야 이외의 것들도 접할 기회가 많아진다. 박우열은 기술개발 분야뿐 아니라 조직관리와 리더십 등 경영전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어했다. 박우열의 착상은 적중했다. 시셋말로 동기들 중에서 '가장 출세한 녀석'이 된 것이다.
그 녀석은 여러모로 나와 닮았다. 평범하고 편안한 것을 싫어한다는 점 말고는 욕심이 많은 점이나 저돌적이라는 점등이 특히 그렇다. 그를 보면 나의 젊은 날이 생각나서 흐뭇하다. 그 녀석도 나처럼 타고난 '거꾸로 경영인'이다. "대기업은 싫습니다. 저는 비전 있는 중소기업에서 잃고 싶습니다." 그가 미래산업을 선택했던 것은 그저 단순한 객기가 아니라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기회가 더 많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동기들이 모두 대기업으로만 향할 때 엉뚱하게도 박우열은 스스로 지방의 중소기업을 택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기회가 더 많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
|
독서실 → 국내소설
|
|
|
혼불 - 최명희
혼불 1. 5. (1/5)
암담한 일요일
"흥, 애국금자탑?"
강태는 차락 차락 소리를 내며 넘기던 책장 한 끝에 눈을 박고는 비웃음을 날린다. 음성 끝이 꼬여서 뒤집힌다.
"누구를 위한, 누구의 애국이란 말이야? 쓸개 빠진 놈들."
"뉘 쓸개요?"
침 뱉는 목소리를 받아 강모가 묻는다.
"이 따위 책을 만드는 놈과, 이런 글을 쓰는 놈들이지."
"뭔데 그래?"
"아주, 고직구(고딕)로 제목을 뽑았어요."
이것 봐라, 이것 봐. 내던지듯 강모의 턱밑까지 치켜올려 들이대 준 책의 첫머리에는, 아닌 게 아니라 시꺼멓고 굵은 글씨로 제목을 삼아 "애국금자탑" 이라 박혀 있고, 이어서 부제로 "총후의 반도 헌금 삼백만원" 이라고 붙어 있었다.
"총후... 라니?"
"후방도 전선이라는 말 아니냐?"
"그래, 조선 반도에서 소위 애국 헌금이 삼백만 원이나 모금되었다는거요? 이런 거금이... ?"
"읽어 봐라. 좀."
북지사변이 발발한 이래 군을 위시하야 각방면에 쇄도하는 국방헌금 휼병위문금은 막대한 금액에 달하고 잇는데 총독부 조사에 의하면 시월말까지 근 삼개월에 전반도로부터 모인 국방헌금은 조선군과 용산사단에 이백삼십사만육천원 이외에 총독부를 통하야 한 헌금을 합하면 약 이백오십사만육천원에 달하야 기타 애국비행기 시사기와 다수의 고사기관총 제군사기재도 헌납이 되어 있다.
"어이구, 대단하네."
"그게 말이 좋아 헌금이지 순전히 조선 사람들 기름을 짜 갈취한 것 아니겠냐?"
그러니까, 북지사변이 발발한 이래, 군을 위시하여 각 방면에 쇄도하는 국방헌금과 휼병위문금이, 지난 삼 개월 만에 조선 반도로부터 용산사단으로 모인 것이 물경 이백삼십사만 육천원, 그리고 총독부를 통해서 들어온 것이 이십여 만원, 도합 이백오십사만 육천원이라는 거지?"
"거기다가 애국비행기 열넉 대, 고사 기관총 다수, 외에도 여러 가지 군사 기재가 헌납되었다는 말을 열심히 써 놨잖어."
"고사 기관총이 뭡니까?"
"항공기 쏘는 데 쓰이는 기관총이지."
강태는 천장을 향하여 조준하는 자세로 앙각을 지어 보인다.
"더 읽어 봐. 점점 더 가관이니까."
또 휼병위문금도 조선군사후원연맹에 약 오십만육천원, 조선군병사단에 약 이십삼만이천원, 합계 칠십삼만팔천원으로, 이들 반도인의 적성을 말하는 정재는 실로 삼백이십팔만사천원에 달하고 잇다. 또 이밖에 현금 이외에 위문대가 십일만사천개 기타 위문품도 삼십만정에 달하였다고 한다.
"도무지 얼른 계산이 안되네."
읽다 말고 어이가 없어, 강모는 실소를 했다.
"어디 한 번 적어 볼까? 이 엄청난 어릿광대짓 놀음비용을."
강태가 백로지 한 장을 뒤집는다.
조선군사후원연맹 약 50만 6천 원
조선군병사단 약 23만 2천 원
합계 약 73만 8천 원
"이들 반도인의 참된 정성을 말하는 깨끗한 재물이 실로 삼백이십팔만 사천 원에 달하고 있다? 아까 것까지 합해서 말이지?"
"또 있잖아요? 현금 이외에."
위문대 11만 4천 개
기타 위문품 30만 점
"그것뿐이냐? 경기도 수원군에서도 양성관이란 작자가 주도해서 비행기값 걷는 데 앞장을 서 가지고, 볼 만한가 보더라."
애국기 '수원호'
경기도 수원군에서는 양성관 외 삼명의 발기에 의하야 애국기 '수원호'의 헌납운동을 이르키고 있는데 거 구월 이십일일의 발기인회 석상에서 일만사천원의 헌금이 모힌 이래 예정액이든 사만칠천원 넘기엇슴으로 허군수가 대표하야 일전 군사령부를 방문, 육군기 일기의 헌금수속을 발벗다. 더욱 칠천원의 잔여기금으로 다시 해군기를 헌남코저 운동을 이르키고 있다.
"굉장하군, 굉장해."
"이건, 자진 열성파들 작태지. 오죽했으면 비행기 한 대 값 예정이던 사만 칠천 원을 휙 초과해서 칠천 원이나 더 걷혀 버렸을까. 기가 막힐 일이지. 정말 기가 막힐 일이야. 과잉충성에 날넘을 놈들."
"그 칠천 원으로는, 다시 해군기를 헌납코저 모금 운동을 일으키는 기금으로 삼겠다는데?"
"쥐 같은 놈들."
"아직도 끝이 안 났어. 헌금 이야기는 더 있는데요?"
강태가 벌떡 일어선다.
"너 혼자 읽어라. 나는 간다."
"아니, 왜? 더 있다 가지요."
엉거주춤 따라서는 강모를 남겨 두고, 강태는 언제나처럼 칼로 자르듯 바람 소리를 일으키며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다. 강태는 강모한테 놀러 왔다가도 갈 때는 느닷없을 만큼 순식간에 사라진다. 강모는 항상 그런 강태의 모습에 무춤해서 망연해지곤 하였다. 강모는 무렴을 지우고자 아까 왔던 책을 다시 펼친다.
경기도서만 백만원
사변 발발 이래 경기도와 관내의 부군 경찰서를 통하야 도민으로부터 헌납된 애국기관총, 방공기재비와 황군 위문금은 합계 백사만일천원에 달하였다. 온 나라 조선 강토가 열성적인 애국심에 불타 오직 일본을 위한 헌금에 몸 바치고 있는 것 같은 글이었다. 그것은 드디어 한 여학생의 편지를 정점으로 애절하게 북받쳤다.
장병을 울린 여학생의 편지
일지사변과 반도의 전성기
얼마 전에 피로 물드린 일장기를 진정하야 만인을 감동식힌 강계공립보통학교에 또 총후의 미담. 어린 정성의 결정인 마흔일곱 장의 센닌바리를 앞에 노코 헌병 분대장을 위시하야 감격의 눈물을 흘니게 한 일이 있다. 그 모든 사정은, 교장에게 보낸 다음의 의뢰문에 의하야 알 수 잇다.
교장 선생님.
장절하다고 할는지, 용맹하다 할까요, 포악무도한 지나 병정과 싸우는 무적 황군 용사들의 용감한 전투를 선생님에게서, 신문에서, 라디오에서 듣고, 우리들은 황군 병정들에 대한 보은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일본에 난 것을 마음으로 기뻐하며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이와 갓치 아모러한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잇는 것을 생각하면 자연 머리가 숙으러집니다. 사변 이래, 전 반도에서도 많은 센닌바리를 보내엿습니다. 누구이든지 모다 옷는 얼골에도 비장한 결심이 보이엿습니다. 그래 센님바리를 보낼 때마다 우리들도 무엇을 하여야 하겠다는 마음이 불갓치 이러낫듯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녀자이고, 보통학생입니다. 우리들도 할 수 잇는 일이 없는가 여러 가지로 생각하야 보앗습니다만 조흔 생각이 나지 안엇습니다. 그러하든 중, 어느 때 선생님께 어느 학교 생도들이 매일 아침 일즉 니러나, 신사에 가서 황군의 무운장구를 기도한다는 말삼을 드렷습니다. 그래 우리들은, 그러한 것이면 우리들도 할 수 잇다고 생각하고 그 잇흔날 아침부터 신사에 보여 황군의 무운장구와 일본 국민으로 난 감사한 마음으로 참배하고, 지성껏 신사 소재를 실행하기로 결정하엿습니다.
그리하는 중 싸흠은 점점 더 커져서 병정들의 고난은 일층 더하야, 저 황군의 눈물겨운 전투 상황과, 어린 보통학교 생도들의 열성을 매일갓치 선생님에게서 듯고 신문에서 보앗습니다. 그리하야 우리는, 신사참배만으로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자치회 때, 우리들이 일하야 번 돈으로 센닌바리와 위문주머니를 만들어 보내자고 약속하엿습니다. 그 말을 선생님께 엿주었드니 '참 조흔 일이니 최후까지 그와 갓흔 성심으로 하야 봅시다.' 하시고 대단 깁버하시면서 여러 가지로 격려하야 주시엿습니다. 그래 우리들의 결심은 점점 더 강하야졌습니다. 그 다음부터 우리 교실의 한 모퉁이에는 삐루 병과 사이다 빈 병이 하나둘 모여지기 시작하엿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는 대로 많은 돈이 모여지지 않엇습니다. 그리하야 우리는 어느 월요일 날 탐을 리용하야 모다 각각 호미를 갖고 산으로 갓습니다. 산에 가서 도라지를 캐엿습니다. 그때 날은 퍽으나 더웠습니다. 모도 다 땀을 흘리며 열심으로 각각 자긔 것을 모으니 겨우 한 바게쓰 가량 되엿습니다. 하로에 모은 것이 한 바겟쓰나 되니 다 깃거워하며 학교로 도로가 손과 발을 깨끗하게 싯첫습니다. 잇흔날은 그것을 팔러 나갓습니다. 대동병원으로 가니, 고맙게도, 십 전 어치 되는 것을 일 원이나 주었습니다. 우리들은 깁버하면서 학교로 달녀갓습니다.
그리하여 그 돈을 선생님에게 맛기고 그 다음에 또 며칠 동안, 집집이 도라다니며 리유를 말하고는, 헌 잡지, 신문, 빈 병 등을 어덧습니다. 오후에 나갓든 터이라 밤이 되어서야 도라왔읍니다. 우리의 손에는 빈 병이, 세 개 네 개씩 들리워졌읍니다. 그리고 신문지를 판 돈이 사 원이 넘게 되니 우리는 너무도 조하서 선생님을 돌너싸고 깁버 뛰엿읍니다. 이러케 모흔 돈이 오 원이 넘는지라 '인제 한 사람이 일 매식의 센닌바리도 될 수 있소, 침으로 수고들 하엿소.' 이러케 선생님이 말씀하셧슬 때는 참으로 여간 깁부지 안었음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센닌바리를 시작하여 하로 밧비 우리 용사들에게 보내려고 정터로, 또는 여러 가정으로 도라다니며 참마음이 싸힌 한 바눌, 한 바눌을 뀌여매 바쳤읍니다.
황국신민의 서
1. 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하련다.
2. 우리 황국신민은 서로 신애 협력하여 단결을 굳게 하련다.
3.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 단련, 힘을 길러 황도를 선양하련다.
강모는 보던 책장을 덮었다. 탁, 소리가 나게 덮은 책을 방 구석으로 던져 버리고,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미끄러지듯 드러누웠다. 오른팔로 머리를 받친 채 물끄러미 장지문 쪽을 바라본다. 아자살창에 투명한 햇살이 밀려와 있었다. 창호지가 하얗게 눈이 부시다. 며칠 전, 하숙의 부인이 문짝을 떼어 내다가 물을 발라 벗겨내고 새로 바르더니, 아직도 방안에는 갓 바른 풀냄새가 은근하게 떠 있다. 강모는 손가락으로 창호지를 퉁겨 본다. 탱탱하게 탄력 있는 문종이에서 둥 둥 소리가 울린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 같다. 그러나 그 소리에는 서글픈 여운이 남는다. ... 우울한 시대, 우울한 인생. 강모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낮은 구름에 비를 머금은 것처첨 축축하고 무겁게 강모에게도 덮여오는 것을 느낀다. 바깥은 쾌청한 날씨 같은데, 그는 발끝부터 적시워 오는 구름의 습기 때문에 전신이 후줄근해지고 있었다. 베개를 하고 있는 팔도, 물 먹은 솜같이 무겁다. 도무지 자기의 한 몸이 천 근 같다. 그러다가도 이 한 몸, 흔적도 없이 형체도 없이 스러져 버릴 것만 같다. 흡사 안개나 연기처럼. 어쩌면, 얼었던 산 비탈의 황토흙이 해토가 되면서 버슬버슬 부스러지며 안개 내리듯, 몸뚱이가 그렇게 흐무러지는 것도 같다.
강모는 천장을 바라본다. 그의 눈은 둥그렇게 쌍꺼풀이 졌으면서 큰 편이다. 크고 둥근 그 눈에는, 무엇을 경계하는 빛이 없었고, 오히려 유순하면서도 불안스러운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몽상적이었다. 그 물기에 젖은 몽상의 그늘에는, 남성적인 어떤 힘보다도 따스하고 서글픈 친화의 심정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숙의 부인도 늘 "우리 도련님." 이라고 부르며 강모를 어여뻐하였다. 이제 열여섯 살, 고등보통학교 삼학년이니 결코 어린 나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강모의 전신에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그렇게 아직도 어여쁜 '도련님'을 못 벗고 있었다. 그러나 눈에 비하여 입술은 가늘고 붉었다. 얼핏 이기채를 닮은 듯하였지만, 이기채 쪽이 날카로운 기상을 견고하게 품고 있다면, 강모의 강면하고 가느다란 입술은 고와 보이면서도 내성적인 고집을 단단히 물고 있다고나 할까. 어쨌든 흰 얼굴에 큰 눈이 보여 주는 허가 있다면, 그것을 입술의 빛깔과 선이 막아 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 입술은, 한 번 다물리면 그뿐일 것 같았다. 좀체로 헤프게 열리지 않고, 여간해서는 속에 있는 심정을 잘 쏟아놓지도 않을 듯싶다. 그래서 그의 얼굴은, 얼른 보기에는 무척 곱고 다감한 인상이었지만 어쩐지 냉정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강모는 창호에 어리는 햇살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암담함이 햇살로 하여 더욱 짓눌리어 온다. 문득 그는, 벽에 걸어 놓은 만돌린과 기타에 생각이 미쳤다. 아아, 그렇지. 강모는 이윽고 몸을 일으켜 선다. 그리고 벽에 걸린 기타를 내려 들고, 구석 자리에 기대어 앉았다. 몸통을 끌어안은 그의 손 끝에, 부드럽고 탄력 있는 기타의 줄이 닿자, 몸의 긴장과 그 탄력이 서로 알맞게 솜을 맞추며,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아진다. 이상하게 허전한 가슴에 안기는 양감이 있어서인가. 강모는 숨을 들이쉰다. 두웅. 튕겨져 나오는 음률이, 창호지를 두드렸을 때 울리던 음향처럼 낮은 공명을 일으킨다. 공명은 방안이 아니라 몸 속으로 울려들었다. 강모는 줄을 고르며 속으로 읊조린다. ...글루미 썬데이... 마당에서는 누가 놀러 왔다가 돌아가는 모양인지 신발 끄는 소리들이 들리며, 배웅하는 인사말이 오간다.
|
|
글나눔 → 추천글
|
|
|
|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37. 천국의 문
<그대에게 의식이 있으면 이미 천국을 선택한 것. 눈 뜨고, 깨어 있고, 의식 있으라! 그건 오직 그대한테 달렸다>
한 무사가 고명한 선사를 찾았다. 탁월한 무사인 그가 묻기를, <지옥이 있소이까? 천국이 있소이까?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문은 어디 있소이까?> 그는 탁월한 무사였지만 단순하였다. 무사들은 단순하다. 마음을 읽을 줄 모른다. 무사들은 딱 두 가지 밖에 모른다. 생과 사 밖에 모른다. 그는 그밖에 어떤 가르침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정말로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 문을 알아서, 지옥을 피해 천국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정말로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선사가 말하기를
<그댄 누군고?>
무사가 답하기를,
<무사요.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있는 대장이오. 왕께서도 날 존경하시오>
선사는 껄껄 웃으며,
<그대가 무사라구? 거지 새끼 같은 걸!>
무사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그는 선사를 찾은 목적을 까맣게 잊고 순식간에 칼을 빼들어 선사를 치려 하였다. 선사가 다시 껄껄 웃으며,
<고놈이 바로 지옥의 문일세. 이 칼과, 이 분노와, 이 자만이 바로 지옥의 문을 열지. 안 그런가?>
무사는 돌연 깨달았다. 살기가 씻은 듯이 걷히면서 칼이 칼집으로 도로 꽃혔다. 선사가 다시 말하기를,
<아하, 바로 여기에 천국의 문이 있지. 안 그런가?>
천국도 지옥도 그대 속 안에 있는 것. 그대가 의식 없이 습관적일 때 지옥의 문이 열리고, 깨어 있어 의식 있을 때 천국의 문이 열린다. 마음이 곧 천국이요 지옥이되, 밖에서 찾지를 마라. 천국과 지옥은 인생의 끝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으니 매 순간순간 문은 열린다...순간순간마다 그대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지 않느냐.
|
|
독서실 → 동서고전
|
|
|
|
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1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소의 꼬리보다 닭의 벼슬이 낫다 - 소진
"속담에 '차라리 닭의 벼슬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않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나라가 신하의 예로 진나라를 섬긴다면 소의 꼬리와 무엇이 다를 바 있겠습니까?"
소진은 동주의 낙양 사람으로 제나라에 있는 귀곡 선생을 찾아가 학문을 익혔다. 그가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누더기 옷에 초라한 몰골이어서 형제자매와 형수, 아내, 처첩들조차 비웃으며 냉대와 구박이 심하였다. 소진은 꾹 참고 방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그 당시 그를 유난히 사로잡은 것은 태공망의 병법서로 알려진 "주서의 음부"였다. 1년이 지나자 그는 스스로 '췌마'라는 특이한 독심술을 익힐 수 있었다. 즉 가만히 앉아서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능히 제후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그 무렵 진나라 효공이 죽고 혜왕이 즉위하였다. 소진은 진나라로 가서 혜왕을 설득하였다.
"진나라는 사방이 산과 물로 이루어져 있어 천하의 요새입니다. 그리고 동쪽에는 함곡관과 황하가 있고, 서쪽에는 한중이 있으며, 남쪽에는 파, 촉, 북쪽에는 대군과 마읍이 있습니다. 따라서 진나라의 많은 선비들에게 병법을 가르친다면 대왕께서는 천하를 얻어 천자의 자리에 오르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혜왕은 바로 얼마 전에 상앙을 죽인 뒤라, 혀끝만 놀려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을 극히 싫어하였다.
"새도 깃털과 날개가 다 자라지 않으면 날지 못하는 법이오. 우리 진나라는 아직 정치가 안정되지 못했으니 천하를 도모할 수 없소."
소진은 할 수 없이 조나라를 찾아갔다. 조나라 숙후의 아우 봉양군은 소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소진이 연나라로 가서 무려 1년을 기다려 어렵게 문후를 만날 수 있었다.
"연나라 동쪽에는 조선과 요동이 있고, 북쪽에는 임호와 누번이, 서쪽에는 운중과 구원이, 그리고 남쪽에는 호타와 역수가 지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영토는 사방 2천여 리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연나라는 병력이 수십 만이나 되고, 전차가 6백 대, 군마가 6천 두에 이르며, 군량은 수년 동안 충분히 먹을만 합니다. 지금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는 곳은 연나라뿐입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은 조나라가 연나라의 남쪽에 있으면서 방패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조나라와 진나라는 다섯 번 싸워 조나라가 세 번, 진나라가 두 번 이겼습니다. 그래서 두 나라 다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연나라 입장에서 볼 때 조나라는 백 리 안에 있고, 진나라는 천 리밖에 있습니다. 연나라는 가까운 조나라와 합종하여 먼 진나라에 대항해야 걱정거리가 사라집니다."
소진의 말을 듣고 문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대의 말이 맞소. 우리 연나라는 작은 나라로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소. 그대가 조나라와 합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마침 조나라 숙후의 아우 봉양군이 죽었다. 그래서 소진은 어렵지 않게 조나라 왕을 만날 수 있었다.
"제가 가만히 천하의 지도를 살펴보니 제후들의 땅을 합하면 진나라의 5배가 되고, 군사를 합하면 진나라의 10배가 됩니다. 6국이 하나로 힘을 합쳐 진나라를 친다면 반드시 깨뜨릴 수 있습니다."
소진은 이렇게 숙후를 설득하여, 연, 조, 한, 위, 제, 초의 6국이 합종을 해야한다는 데 동의를 얻어내었다. 그 다음에 소진이 간 나라는 한나라였다. 그는 한나라에서도 6국이 합종을 하여 강국인 진나라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의 합종책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나라의 입장을 설명한 후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속담에 '차라리 닭의 벼슬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않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나라가 신하의 예로 진나라를 섬긴다면 소의 꼬리와 무엇이 다를 바 있겠습니까?"
한나라 혜선왕은 발끈 화를 내면서 팔을 걷어붙이더니, 이내 소진의 말에 따르겠다고 말하였다. 소진은 한나라 다음에 위, 제, 초 3국을 차례로 방문하여 각 나라의 입장에서 6국 합종책을 설파하여 마침내 6국동맹을 성취시켰다.
위나라 양왕에게 소진은 이렇게 말하여 설득하였다.
"주서에 '새싹 때 끊지 않으면 덩굴이 길게 얽혔을 때 어찌할거나, 작을 때 베지 않으면 장차 도끼를 써야하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왕! 재빠른 사리판단을 하십시오, 장차 큰 근심이 되고 나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제나라의 선왕에게 소진은 이렇게 말하여 6국 합종의 동의를 얻어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치려면 한나라와 위나라 땅을 등지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곤란합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깊이 들어와 공격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는, 이리가 언제나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한나라와 위나라가 뒤쪽을 위협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두렵고 의심스러우니까 밖으로 공강치고 거만스럽게 굴면서도 진나라가 감히 전진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진나라를 섬기다 오명을 쓰느냐, 아니면 나라를 부강케 하는 실리를 얻느냐, 양단간에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또한 소진은 초나라에 가서 이렇게 말하여 위왕의 고집을 꺾었다.
"옛말에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리고,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대책을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이 온 뒤에 근심하면 이미 늦습니다. 진나라는 호랑이와도 같은 나라여서 온 천하를 삼키려는 야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나라는 천하의 원수입니다. 원수를 기르기 위하여 원수를 받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대왕께서 현명한 판단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소진은 이러한 말들로 설득하여 각 나라의 왕이 6국 합종에 동의할 수 있게 하였다. 6국의 합종을 문서로 만들어 진나라에 보내자, 진나라는 감히 함곡관 밖을 엿보지 못하였다.
이처럼 소진의 변론술은, 요컨대 치밀한 계산과 상대방의 심리적 약점을 찔러 그것을 조종할 줄 아는 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능력을 인정받아 6국의 재상을 겸임하였다. 평생 힘써 1국의 재상을 하기도 힘든데, 혀끝 하나로 6국의 재상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합종 : 힘이 약할 때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과 힘을 모아라. 힘을 모으면 강대한 상대자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중소기업이 공동의 브랜드를 만들어 대기업에 맞서는 것도 이같은 대응방법이다.
독초를 씹으면 삼키기 전에 뱉아라
"지금 연나라와 진나라가 쳐들어온다면 제나라는 위기에 처합니다. 아직 대왕이 삼킨 독초는 뱃속까지 들어간 것이 아니니, 이제라도 토해내시면 위태로운 제나라의 목숨을 구하실 수가 있습니다."
소진에 의해 6국 합종이 이루어진 이후 15년간 천하는 태평하였다. 그러나 진나라는 제나라와 위나라를 부추겨 조나라를 치게 함으로써 합종의 맹약을 깨뜨리는 계략을 꾸몄다. 제나라와 위나라가 쳐들어오자, 조나라왕은 소진을 불러 두 나라가 맹약을 깬 것에 대하여 문책하였다. 소진은 곧 자신이 연나라로 가서 왕을 설득해 조나라와 함께 합종을 위반한 제나라를 치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렇게 되자 두 나라는 군사를 거두고 예전대로 6국 합종을 지키겠다고 하였다. 이처럼 사태가 돌변하자 진나라 혜왕은 회유책으로 작전을 바꾸어 자신의 딸을 연나라 태자에게 시집보냈다. 그후 연나라의 문후가 죽고 역왕이 즉위하였다. 국상 중일 때 제나라 선왕이 연나라를 쳐서 10개 성을 빼앗았다. 연나라 역왕이 소진을 불러 말하였다.
"제나라가 저번에는 조나라를 공격하더니, 이번에는 국상중인 우리 나라를 쳐들어왔소. 이대로 참고 있는다면 우리 연나라는 천하의 웃음거리밖에 안 되오. 이렇게 되도록 씨를 뿌린 사람은 그대이니, 어서 제나라에 가서 우리의 빼앗긴 땅을 찾아주시오."
소진은 몸둘 바를 몰랐다.
"반드시 찾아오겠습니다."
소진은 곧 제나라로 가서 왕에게 크게 두 번 절하여 축하를 드린 다음, 다시 뻣뻣하게 고개를 세운 채 뜻하지 않은 불행에 대하여 조문하였다. 제나라 왕이 물었다.
"그대는 어째서 방금 경사를 축하한다고 말한 후 곧바로 말을 바꾸어 조문을 하는 거요?"
소진이 말하였다.
"옛말에 '굶주린 사람이 방금 굶어죽을 순간에 처해도 오훼(독초의 일종)를 먹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당장 배를 채우는 데는 좋으나 곧 죽음을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는 그 오훼를 드셨습니다. 그래서 조문을 한 것입니다."
"오훼를? 과인이 언제 그 독초를 먹었단 말이오?"
제나라 왕은 무슨 뜻인지 몰라 눈을 크게 떴다.
"연나라는 약소국이라고 하나 강국인 진나라와 사돈 관계입니다. 대왕께선 연나라의 10개 성을 얻었으나, 이제 진나라와는 원수지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약한 연나라가 선봉을 서고 강한 진나라가 그 뒤를 엄호하여 쳐들어온다면 제나라는 위기에 처합니다 .아직 대왕이 삼킨 독초는 뱃속까지 들어간 것이 아니니, 이제라도 토해내시면 위태로운 제나라의 목숨을 구하실 수가 있습니다."
제나라 왕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자신이 소진의 말처럼 독초를 입안에 넣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지경이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우리가 빼앗은 10개 성을 연나라에 되돌려준다면 괜찮겠소?"
"물론입니다. 그러면 제나라는 덤으로 이익을 얻습니다."
"어떤 이익이오?"
"우선 연나라는 이유없이 잃어버린 10개 성을 되돌려 받으니 기쁠 것이고, 진나라 역시 자신의 위력을 두려워하여 제나라가 10개 성을 되돌려주었다고 생각하여 어깨가 으쓱 올라갈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원수를 풀고 돌과 같은 굳은 친교를 얻게 되는 것'이니, 일거양득이며 또한 전화위복이라 아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나라 왕은 곧 소진의 말을 옳게 여겨 연나라에게 10개성을 되돌려주었다.
실수 : 잘못은 빨리 인정할수록 좋다. 시기를 놓치면 사과를 해도 상대가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화해와 용서의 미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교질 역할을 해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