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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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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함석헌
제2부
내가 겪은 신의주학생사건 (3/3)
쉰 날
살문이 육중한 소리로 내 귀에 덜컥 하고 닫히고 감방 안에 주저 앉으니 모든 일이 꿈만 같았다. 해방이 됐다기에 이제 밝은 날이 오는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 내게 잘못이 없으니 마음은 평안하고 몸도 감옥살이는 여러 번 해봤으니 별로 겁날 것이 없었다. 이것이 나의 다섯번째의 감옥 길이다. 첫번은 1923년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동경 지진통에 한국 사람 모조리 학살할 때에 끌려가서 하룻밤 자고 나온 것이고, 두번째는 오산에서 1930년 남강 선생 돌아가신 후 난데 없는 ML당 사건의 연루자라는 이름으로 정주경찰서에 가서 한 주일 있은 것, 세번째는 1940년 평양 송산리에 농사학원 하러 나갔다가 계우회 사건에 걸려 들어가 대동경찰서에 1년 있은 것이고, 네번째는 1942년 성서조선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와서 1년 있은 것이다. 이번은 그날 당장 죽지 않은 것도 다행이람 다행이지만, 이제 다시 나갈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공산당이란 법도 도덕도 없는 세계아닌가? 저희에게 맞지 않으면 인정도 도리도 없다. 그래서 첨부터 나가려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다만 잊을 수 없는 것은 어머니 일이다. 속이 그리 약한 분은 아니요 의리도 알고 신앙도 깊은 분이니 노상 어쩔 줄 몰라 하지야 않겠지만, 그전에도 내가 감옥에 갔을 때는 자기도 얼마나 심한가를 알아본다고 여울 반 밖에 나가 새워보는 마음에 오늘 또 이렇게 된 것을 보고 그 마음이 어떠할까? 더구나 아버지는 내가 대동경찰서에 있는 동안 세상을 떠나서 이제 믿을 건 나뿐인데, 그 내가 이렇게 됐으니 이제 집 일을 어떻게 꾸려나갈까? 평생에 시란것을 써본 일이 없다가 이름이나마 시라 하여 쓰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을 이때 어머니 생각 때문에 한 것이었다. 허락되지 않은 조건 아래서 한없는 느낌을 표현해보자니 자연 시라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가족까지도 일체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간수는 소련 군인이 하나 있을 뿐인데 그리 까다롭지는 않았고 최영춘이 들어 있었는데 그는 노래를 잘 불러서 밤이면 서로 노래를 불러가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다. 아무도 면회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밖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는데 한 주일도 더 지나서 비로소 첫 면회를 받았다. 본래 우리청년회와 비슷하게 여자청년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계명선,김일선 두 분이었다. 계명선씨는 나와 연갑되는 용암포 사람이고 김일선 씨는 전라도 사람이지만 어린 시절에 계명선씨께 배운 일이 있는 관계로 늘 같이 살며 용천지방에 많이 와 있었다. 청년회를 조직하자 내가 문교부에 있는 탓으로 자주 왕래가 있었는데, 소련 사람들은 공공단체는 상당히 존중하는 줄을 아는지라, 그 권리를 가지고 사령부에 대들어 나를 면회할 허가를 얻어가지고 온 것이었다. 가족도 엄두를 못내는 생지옥에 여자들의 몸으로서 거기까지 들어온 것을 보니 그 고마움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후 얼마동안을 며칠에 한 번씩 꼭꼭 먹을 것을 사가지고 왔다. 왔다 간 후에 그것을 되풀이되풀이 생각해보고 또 올 날을 기다리는 것이 나의 단 하나의 위로였다. 몰래 들여준 연필과 종이조각으로 기다리는 며칠 동안데 생각한 것을 적었다가 온 때에 그것을 주어 보내곤 했다. 어머니 생각, 나라 생각에서 시작해서 여러가지 느낌을 썼으나 그들에 대한 따뜻한 정을 느낀 것을 적은 것이 가장 많았다.
심문은 소련 사람이 했는데 그것이 가관이었다. 말이 통해야 심문을 하지. 통역이란 것이 하르빈서부터 데리고 온 일본 갈보인데 그들의 소련말 실력 정도는 알 수 없으나 도대체 그 지식 정도가 형편없었다. 역사 지리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를 정도다. 그러니 거기다 내 운명을 맡기고 심문을 당하는 내 신세란 우스운 것이었다. 그래도 일제시대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심문 조서를 꾸미는 데는 내 머리를 썼다. 일본 형사만 해도 이따금은 인정에 호소해서 나를 이해시킬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이들에겐 첨부터 불가능할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물적 증거가 있지 않는 한은 딱 잡아떼기로 했다. 그것이 효과가 있어 그랬는지 김일선 씨 말대로 김일성이 그때 바로 나서려 하는 때이므로 민심을 얻기 위해 정치적으로 해서 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다시 나오려니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꼭 50일을 지나고 갑자기 나가라는 바람에 나왔다. 사실 김일선,계명선 두분은 그때 그 불편 위험한 상태에서도 평양까지 왔다갔다하며 내 구명운동을 했다.
최영춘 씨는 참 좋은 분이었는데 종내 나오지 못하고 시베리아로까지 끌려갔는데 그 후 어찌 됐는지 알 길이 없다. 그가 나오지 못하게 된 데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공산당놈들이 집어먹은 것 때문이라는 것, 사실 그는 아무 죄도 없었다. 다만 이유필 씨를 진심으로 도왔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산주의자들이 소련 사람한테 나쁘게 보고를 해서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심문을 다 한 다음 무엇이나 할 말이 있거든 하라고 하니, 이가 그것을 곧이들어 이날까지의 공산당의 잘못된 행길을 일일이 들어 말했다는 것이다. 나도 그것은 그 자신의 입으로부터 심문받고 나온 후에 들은 기억이 있다. 물론 그의 말은 다 사실이지 거짓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그것을 심문 관리에다 말했다는 것은 잘한 일이 아니었다. 경찰이나 헌병은 아무리 인정미를 뵈는 듯해도 거기 넘어가서는 아니된다. 언제나 심문대에 앉을 때는 저 사람과 나는 이해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아무리 그럴듯한 소리를 해도 농담이라도 그것은 결국은 나를 잡자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최영춘 씨 경우도 혹시 그렇지 않을까? 하여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아까운 사람이다.
갑자기 턱 내놓으니 어디로 갈까? 아무리 가까워도 미안한 일이 되지 않을 데로 가야지. 그래 여자청년회로 갔다. 내 마음은 순 인간적인 열린 마음으로 갔을 뿐이었다. 한 주일을 유하고 용암포 집으로 내려갔으나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색안경으로 보리라는 생각은 도무지 못했다. 간수의 눈을 피해가며 휴지 조각에 몇 수씩 적어 내보낸 글이 나와보니 그대로 정서가 되어 책으로 매여 있었다. 삼백 수가 넘었다. 곧 인쇄를 하자 하며 제목을 묻기에 생각 끝에 '쉰 날'이라고 했다 있는 날 수가 쉰이니 쉰날이요, 격에도 맞지 않는 정치한다 나섰다가 잡혀가 썩고 썩다가 왔으니 쉰 날이요, 내혼은 그동안 편안히 쉬었으니 또 쉰날이다. 살아난 줄 알았으나 나와 보니 산 것이 아니었다. 1946년 1월 11일에 나왔는데, 그해 12월 24일 바로 크리스마스 저녁 때 마침 내 맏딸 은수가 첫 아기를 낳게 됐고 집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내가 가 있었는데, 난데없이 보안대 사람이 오더니 또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 끌려가서 또 한달을 있었다.
또 놔주기에 놔주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내보내는 대신 한 주일에 한 번씩 보안서에 오라는 것이었다. 첨에는 멋모르고 갔다. 지방에 어떤 사정이 없느냐 묻는 것이었다. 별일 없다고 몇번은 넘겼으나 나중에는 화를 내고 아주 사람의 이름을 지명하면서 그 사람의 뒤를 밟아 보고하라는 것이다. 그제서야 아, 스파이질을 하라는구나 알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때 이유필씨 후임으로 위원장으로 있던 내 존경하는 선배인 백영엽 목사 아닌가? 그것은 죽어도 못할 일이었다. 에라 아주 쉴 곳으로 가자, 38선을 넘을 결심을 했다. 1947년 2월 26일 문간에 기대서 "내 생각 말고 어서 가거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뒤에 두고 떠나서 영 돌아갈 수 없는 길인 줄은 모르고 그래도 머지않아 일이 바로 되겠지 하며 나를 이남으로 넘겨주기 위해 일부러 박천서 이백 리 넘는 길을 걸어온 박승방씨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온 이곳이 이렇게 쉴 곳이 못될 줄은 알지도 못했다. 그날에 총을 맞아 죽은 혼들인들 어찌 평안히 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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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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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고난 속에 피는 사랑
영국의 위대한 탐험가 색클톤 경이 대원들과 탐험을 하던 중에 생긴 일입니다. 아주 다급한 상황에 처해 있던 그는 임시 대피소에서 밤을 지내게 됐습니다. 식량도 다 떨어졌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 건빵 한 봉지씩을 대원들에게 나누어 줬습니다. 과연 안전지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극도로 지친 대원들은 잠이 들었지만 색클론 경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한 대원이 벌떡 일어나는 게 아닙니까? 그는 다른 대원들이 잠들었는지 확인한 후 손을 뻗치더니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동료 대원의 건빵봉지를 훔쳐가는 것이었습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색클톤 경은 기가 막혔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기의 생명까지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겼는데,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동료의 마지막 건빵을 훔치다니! 저런 사악한 인간이 있을까? 그런데 다음 순간 색클톤 경은 깜짝 놀랐습니다. 친구의 건빵을 훔친 대원은 훔쳐온 건빵 봉지를 열더니 자신의 건빵을 꺼내서 친구의 봉지에다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채운 봉지를 다시 살며시 동료 대원의 머리맡으로 옮겨 놓는 것이었습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생사의 고비를 헤매이는 그 경황에서 그것은 실로 위대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행복을 받고 행복을 주는 것은 항상 인간의 큰 기쁨이니라. 사랑하면서 둘이 서로 산 보람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천상의 기쁨이라 해야 할 지니라.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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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경제/경영/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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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3. 인재는 키워서 써라 - 텃밭 경영
훔쳐보지 않고 키우겠다
미래산업은 사람 욕심이 많은 기업이다. 그래서 앉아서 기다리는 걸 참지 못한다. 다소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일찌감치 투자하고 오랫동안 키우려고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년 정도를 미리 내다보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의 모습을 알아야 미래에 필요한 인재를 오늘에 미리 구할 수 있다. '리더십의 제1요체는 선견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이미 말했지만 미래연구소의 설립과 관계된 일련의 사건들은 전혀 내 타입이 아니었다. 그래서 감히 '파계'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미래산업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이미 나름대로의 인력충원법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필요한 인재를 스스로 양성하겠다는, 말하자면 '자력갱생'의 원칙이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말하면서 흔히 '3난(난)'이라고들 한다. 자금난, 기술난, 인력난이다. 물론 이 '3난'이 중소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땅에서 기업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공통된 어려움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에게 특히 난감한 것은 바로 '인력난'이다. 사람은 빌려올 수도, 만들어낼 수도 없다. 스스로 찾아오길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중소기업이 고급인력을 확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어떻게 된 세상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꼭 대기업으로만 몰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뱁새눈이 된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남의 집안에서라도 훔쳐와야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현재의 봉급보다 더 높은 봉급을 제시하여야 할 테고, 직급이나 승진 등에 관한 비전도 함께 제시하여야 한다. 얄미운 짓이지만 무턱대고 욕할 수만도 없지 않은가.
도덕성 시비를 떠나 이런 식의 인력흐름이란 분명 소모적인 것이다. 당사자에게는 지금까지 수행하던 업무를 중단하고 새로운 업무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므로 분명한 인생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이전 기업에서는 당연히 해당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 인력을 훔쳐온 기업에서는 기업수준에 맞지 않는 과잉지출을 감수해야 G나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낭비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비애가 여기에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싶어도 도무지 사람을 구할 수 없다. 사람을 훔쳐오자니 비난이 두렵고 스스로도 한심하다. 남에게 칭찬 받지는 못할망정 욕을 먹으면서까지 기업을 해야 하다니, 스카우트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주변머리도 없는 경영자들은 그저 '요즘 젊은 것'들을 원망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바로 내가 겪어왔던 갈등이다. 어렵사리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 막상 새로운 일을 시작할라치면 같이 일할 사람이 없다. 이때의 막막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나 역시 사람을 훔쳐올까 고민도 많이 했고, 결국은 지긋지긋한 세태를 원망하기도 했다.
미래산업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풍전기공이라는 조그마한 금형 공장을 운영한 적이 있다. 그 사업은 어이없는 사기와 실패로 마감되었지만 그 쓰라린 경험이 내게는 예방주사나 마찬가지였다. 미래산업을 창업하자마자 나는 인재양성에 매달렸다. 기술력은 사람과 함께 간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훔쳐올 재간도 없는 바에는 차라리 시간과 돈이 좀 들더라도 스스로 키워서 쓰자는 생각이었다. 일류대학의 공대 출신들을 포기하자 당연히 공고 생들에게로 눈이 갔다. 강원도나 전라도 쪽의 공업고등학교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필요한 숫자보다 좀더 많은 인원을 수련 생으로 입사시켰다. 일을 시켜보고 가능성 있는 아이들은 정식으로 채용해서 꾸준히 일을 가르쳤다. 성장하는 만큼 대우해주려고 노력했다. 모험이긴 했지만, 이왕 시작한 이상 성패가 분명해질 때까지 멈추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미래산업이 자랑하는 '공고 4총사'가 있다. 지금까지의 미래산업을 책임지고 이끌어왔던 일등공신들이다. 백정규는 현재 부사장이 되었고, 백영근은 매거진 사업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두철은 현재 설계팀장이고, 선기상은 전자개발부장이다. 물론 '키워서 쓰기'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좀더 규모가 커지고 안정되었다는 점 말고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이미 배운 것보다 앞으로 배울 것들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바로 젊은이들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산다. 모두들 기성품들만 좋아하다. 최고의 교육코스를 통과한 한결같은 모범생들만 좋아한다. 모범생들 또한 기성품들만 좋아한다. 발전가능성 있는 중소기업보다는 이미 최고로 인정받은 대기업들만 좋아한다. 참으로 재미없는 세태다.
인력난을 호소하는 기업인들을 만나면 나는 서슴없이 '키워서 쓰라'고 말한다. 그러면 으레 '팔자 좋은 소리' 운운하는 비명이 튀어나온다. 하루가 급해 죽을 지경인데 어느 천년에 사람을 키워서 쓰느냐는 것이다. 물론 필요한 사람을 키워서 쓴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장차 필요하게 될 인력이란 어떤 모습일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고, 그러한 생각에 맞춰 미리미리 사람을 알아보고 가르쳐야 하는 미련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레 겁먹고 불평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험이 낫지 않은가. 값비싼 기성품들만 짝사랑하는 것보다야, 눈 딱 감고 순백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지식자본이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시대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 지식자본은 우연히 생겨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천해야 진정 쓸모 있는 지식자본이 형성된다. 나는 거칠지만 재주 있는 인재들을 일찌감치 골라 키워서 지식인들을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산업은 학교에 가깝다. 미국의 어느 호텔 청소부로 일하는 사람은 다년간의 연구 끝에 호텔 청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법칙 화했다. 그는 미국의 능률협회에서 주는 대단한 상을 받았다. 요즘 들어 새롭게 정의되는 '지식인'이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안에서 법칙과 노하우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다. 무조건 학벌 좋고 책만 많이 읽은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말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다.
엊그제 사내 리펙토링 중간성과 보고회가 있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경영평가단의 도움으로 그간 많은 경영합리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나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리펙토링, 좋다. 문제가 있다면 찾아서 고치는 것이 옳다. 그렇지만 너희들,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둬라. 리펙토링으로 절약하고 합리화되는 것은 아주 작다. 정말 중요한 것은 조직관리가 아니라 행복관리다. 너희들이 어느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는지를 잊으면 안 된다. 미래산업은 학교다. 너희가 하고 싶은 건 뭐든지 다 해보고 배워둬라. 그래서 진정한 미래형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솔직히 돈은 회사가 너희한테 줄 것이 아니라, 너희가 회사한테 줘야 한다. 수업료는 내고 학교를 다녀야 할 게 아닌가."
미래산업은 창업하자마자 나는 인재양성에 매달렸다. 기술력은 사람과 함께 간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미래산업이 자랑하는 '공고 4총사'가 있다. 지금까지의 미래산업을 책임지고 이끌어왔던 일등공신들이다. 나는 거칠지만 재주 있는 인재들을 일찌감치 골라 키워서 지식인들을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산업은 학교에 가깝다. 정말 중요한 것은 조직관리가 아니라 행복관리다 너희들이 어느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는지를 잊으면 안 된다. 행복하지 않다면 리펙토링이고 뭐고 다 때려치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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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국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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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 최명희
혼불 1. 2. (2/2)
"모도오부우추우울."
수모는 신부를 인도해 나오시오. 종조부 허근의 목소리가 귀에 역력히 들리며, 그 소리에 깜짝 놀라운 어머니 정씨가 창황히 방문을 열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그때, 열린 그네의 방문 앞에는 하얀 백포가 깔려 있었다. 안방에서 초례청까지 펼쳐진 그 광목필은 누가 밟고 지난 흔적 없는 것으로 햇빛을 되쏘는 것도 아닌데 눈이 부시었다. 효원은 길처럼 열려 있던 광목필을 새삼스럽게 몇 번이고 떠올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지. 마당에 가득 차 넘치는 사람들이며 초례청에 둘러선 하객들도, 심지어는 사모관대하고 있는 신랑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오로지 하얗고 막막한 광목필을 밟으며, 방문에서 마당까지가 이렇게 먼 길인가 하였을 뿐이었다. 그 막막함이 마음을 짓누른다. 짓눌리는 것은 마음만이 아니었다. 몇몇 겹으로 싸고 감으며 갑옷처럼 입고 입은 옷의 압박과 무게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것이다.
그네는 다리속곳, 속속곳, 단속곳, 고쟁이를 입고, 그 위에 또 너른바지를 입었는데, 너른바지 위에 대슘치마를 입었다. 대슘치마는 모시 속치마였다. 모시 열두 폭에 주름을 잡아 만든 이 속치마의 단에는 창호지 받친 흰 비단이 손바닥만한 넓이만큼 대어져 있어, 그러지 않아도 풀을 먹여 날이 선 모시 바탕에 힘을 받쳐 주는 것이었다. 수모인 당숙모는 효원의 가슴을 동여매듯이 치마 말기를 힘 주어 묶었다. 무명 말기가 나무 판자처럼 가슴을 압박했다. 그 대슘치마 위에, 드디어, 속옷으로는 마지막 무지기를 입었다. 무지기는 빳빳하게 풀을 먹인 모시 열두 폭을 층층히 폭을 넓혀가며 한 허리에 달아 붙인 것이라. 예닐곱 가지나 포개 입은 속옷 위에 더욱더 부하게 부풀어 보였다. 길이가 짧아서 발등까지 내려오지 않는 까닭에 '발 없는 치마', 무족치마라고도 하는 이 무지기는 치마허리에서 무릎까지 닿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삼층짜리도 있고 오층짜리도 있는데 신부옷이라 효원은 호사스럽게 일곱층짜리를 입는다. '무족'이 치마라서 무지기인가. 무지개같이 물들어서 무지기인가. 층층마다 엷은 일곱 색의 물감을 들여 은은한 그 빛깔은 이름 그대로 마치 무지개처럼 고와서 보는 사람을 취하게 하였다.
"효원이는 좋겄다. 인제 시집가거든 시부모님 사랑 마않이 받고, 신랑한테 귀염 받고, 좋은 자식 낳고, 부디 잘 살그라."
무지기 위에 다홍치마를 입히며, 수모인 당숙모는 발원 축수하는 사람처럼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며 말했다. 대소가에서 가장 복 많은 부인이라고, 궂은일 안 보고 살아온데다가 첫아들을 낳고, 오복 두루 갖춘 사람이 신부 시중을 들어야 한다 하여 당숙모가 수모 노릇을 한 것이다. 같은 속치마지만 대슘치마로는 덧단까지 댄 하단을 벙벙히 퍼지게 하여 커다란 둥그러미를 만들고, 무지기로는 허리를 층층이 살려서 빳빳하게 힘을 준 다음, 드디어 다홍치마를 겹쳐 입으니, 그야말로 덩실한 그 차림 하나만으로도 온 방안이 풍성하게 차 오르면서, 정말 옛말대로 서로 앉은 것 같고 앉아서도 선 것같이 보였다. 아래 옷을 치장하는 것에 비하여 윗도리는 오히려 허술했다. 살빛 같은 연분홍으로 물들인 명주 속저고리 하나를 입고는 그 위에 바로 초록 삼회장 저고리를 입었다. 나비처럼 가벼운 저고리였다. 그리고는 끝으로 도포보다 커다랗고 호화로운 다홍의 활옷을 입고, 붉은 공단에 심을 넣어 홍황 무늬를 금박으로 찍은 대대를 띠어 단단히 묶었다. 효원은 수모가 시키는 대로 팔을 날개처럼 커다랗게 벌리고 서서 숨을 들이쉬기도 하고 어깨를 들어올려 펴기도 했다. 도대체 가슴을 묶어내는 말기와 띠는 몇겹이나 된단 말인가. 금방 질식이라도 할 것 같았다.
"인제 조금만 참아라. 신랑이 시원하게 풀어 줄 게다. 그 손이 약손이지. 넘의 손은 다아 소용없는 것이다."
재종조모가 농담을 던지자 방안의 부인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 웃음에는 은근한 비밀이 번져났다. 그러나 지금 그네는 혼자 앉아 있는 힘을 다하여 허리를 버티면서 무너질 것만 같은 몸을 견디고 있는 것이었다. 가슴에서 쥐가 나는 것 같았다. 한쪽이 저르르 저리기 시작하더니 그만 감각이 없어지는데, 주먹을 쥔 손이 힘없이 풀려 버린다. 손가락 끄트머리가 차게 식으며 저희끼리 선뜻하게 부딪친다. 효원은 그럴수록 숨을 가슴 위쪽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목에 힘을 모르고 턱을 안쪽으로 당겨 붙였다. 온몸의 감각은 이미 제 것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몸의 마디마디를 죄고 있는 띠들이 터져 나갈 것만 같다. 그렇지만 효원은 꼼짝도 하지 않고 기어이 견디어 내고 있다. 그대로 앉아서 죽어 버리기라도 할 태세다. 그네는 파랗게 질린 채 떨고 있었다. 그만큼 분한 심정에 사무쳤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으리라. 내 이 자리에서 칵 고꾸라져 죽으리라. 네가 나를 어찌 보고... . 이미 새벽을 맞이하는 대숲의 바람 소리가 술렁이며 어둠을 털어내고 있는데도 효원은 그러고 앉아 있었다. 그네는 어금니를 지그시 맞물면서 눈을 감는다. 입술이 활처럼 휘인다. 대숲에서 일고 있는 새파란 바람 소리가 가슴에 성성하다. 대나무 잎사귀들이 칼날같이 일어선다. 벌써 장지문의 창호지에는 희부연 새벽 빛이 밀려오는 있었다.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효원은 무엇을 결심한 듯이 허리를 젖힌다. 그리고 한삼을 걷어 올린 손을 뒤로 돌려 활옷의 대대를 풀었다. 툭, 소리가 나며 대대가 스스로 미끄러진다. 차근차근 겉옷부터 벗는 그네의 손은 침착하다. 벗은 옷은 한 가지씩 가지런히 개켜서 웃목의 병풍 앞에 포개 놓은 뒤 버선을 벗는다. 그것은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겉버선이나 속버선이나, 기름종이를 발뒤꿈치에 대고 수모가 있는 힘을 다하여 신겨 놓은 것이라. 처음 신었을 때는 일어설 수조차도 없었다. 칼날을 밟은 것 같은 아픔 때문이었다. 방의 네 귀퉁이를 엉금엉금 걸어 보며 뒤뚱할 때,
"첫날밤에 신부 버선 벳기다가 뒤로 나가떨어져서, 병풍을 풍 뚫고 그대로 나가떨어져 머리방아 찧은 신랑 이 얘기 생각나우?"
하고 당숙모가 웃음을 깨물며 말하자 한 부인이 손을 저으며 막는다.
"그게 얼마나 귀한 병풍인데 그만 구멍이 나서."
손을 젓는 부인이 얼굴을 붉히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양이, 본인의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병풍만 뚫고 말았던가?"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없었고?"
모여앉은 부인들은 짓궂은 말꼬리를 이어가면서 웃었다. 효원은 그 이야기를 생각하며 드디어 버선을 벗어냈다. 콧등에 땀이 돋아나고 힘이 빠졌다. 갑자기 속박에서 풀린 발이 얼얼했다. 두 손으로 발을 감싸며 주무른 뒤, 그네는 다시 새 버선을 챙긴다. 초록 저고리와 붉은 치마로 갈아입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큰비녀를 뽑더니 머리를 풀어 내린다. 숱이 많고 칠흑 같은 머리채다. 그네는 잠시 그러고 앉아만 있다. 네가 나를 어찌 알고... 나를. 그 생각이 다시 한 번 가슴속에는 부뚜질하며 치밀어 오른다. 숨을 가라앉히려고 경대를 앞으로 당겨 뚜껑을 연다. 귀목판에 생칠을 하고 백동 장식을 붙인 경대의 거울이 일어선다. 거울 속에는 더 깊은 어둠이 고여 있었다. 아직 거울을 보기에는 이른 시각인가. 방안은 어느덧 희끄무레하건만 거울은 컴컴하다. 경대 서랍에서 빗치개를 꺼내 가리마를 타 보려고 하였으나, 손이 떨릴 뿐 얼굴도 보이지 않는데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네는 빗치개를 힘없이 떨어뜨리며 등뒤의 신랑을 돌아본다.
아아.
그네는 아직도 잠들어 있는 신랑을 바라본 순간 그나마 지탱하고 있던 마음의 밑바닥이 흙더미처럼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퍼엉 뚫리면서 그 한가운데로 음습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도 역력히 느껴진다. 뚫린 자리는 동굴처럼 어둡고 깊었다.
아아... 저런 것을 믿고... . 효원이 본 것은 신랑의 민둥머리였다. 배코를 쳤는가.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 드러난 그의 머리통은 어린아이와 다름없이 동그랗고 작은데, 검어야 할 부분이 허옇다. 푸른 기운마저 돈다. 까까머리였던 것이다. 그 민숭한 모습이 효원에게는 그렇게 충격적이고, 까닭없이 절망스러웠다. 손바닥에 서늘한 땀이 배어난다. 이제야 막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간 지 한두 해 되었으니, 의당 머리를 깎았으련만, 그리고 그런 머리를 처음 본 것도 아니었건만, 효원은 가슴을 진정하기가 어려웠다. 비릿한 역겨움이 목을 밀어 올린다. 강모는 고개를 돌려 누우며 두 팔을 무겁게 들어올린다. 무엇을 잡으려는 시늉을 한다. 효원은 의아하여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손은 허공에 잠시 떠 있다가 힘없이 떨어진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모는 어느덧 매안의 아랫목 밭둑머리에 서 있었다. 아른아른한 아지랑이가 향불 연기처럼 오르는 마을의 뒤쪽으로, 벼슬봉과 노적봉, 선녀봉들이 물결을 이루며 마을을 병풍같이 두르고 있다. 그 봉우리들의 소나무 빛깔이 신맛이 돌게 푸르다. 그리고 노적봉 아래 다소곳이 다정하게 엎드린 초가의 지붕 위로 햇살이 빗질하듯 내리고 있었다. 햇살은 너무나 고요하여 숨이 질린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집안에 소리 죽여 들어앉아 있는 것도 같고, 어쩌면 온 마을의 집집이 텅 비어 있는 것도 같았다. 괴괴하기까지 하였다. 강모는 홀로 아지랑이와 햇살 속에 서서 이상하게 숨이 막히고 고적했다. 그 고적이 우무같이 엉기어 내려앉은 햇살에 어깨가 무거웠다. 무거움에 핏줄이 짓눌린다. 햇살에 짓눌린 핏줄이 석류 벌어지듯 쩌억 소리를 낸다.
... 강실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밭둑머리 저쪽에서 연분홍 빛깔이 팔락 나부끼는 것이 보였다.
... 강실아...
강모는 그게 강실이인 것을 금방 온 몸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의 마음이 잦아들게 간절하여 연분홍 옷자락을 불러냈는지, 아니면 그네의 모습이 거기 먼저 보여 그가 불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강실이는 오류골 작은집 사립문간의 검은 살구나무 둥치에 반쯤 가리어져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 보였다.
... 강실아...
그러나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강실이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부를 수가 없으니 마음은 더 간절해져서 헛발을 딛는다. 아무리 발을 떼어도 제자리였다.
... 이리 와, 강실아.
여전히 햇살은 두꺼운 장벽처럼 흔들리지도 않고, 강실이의 연분홍 옷자락은 그만한 자리에서 보일 듯 말 듯 나부끼고만 있다.
... 나 좀 보아.
어쩌면 그것은 강실이가 아닐는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강모는 어찌할 길 없는 마음이 뒤엉기어 사무치면서 핏줄이 때기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는 두 손을 내밀어 팔을 뻗어 본다. 그러나 무거운 햇살을 가로막을 뿐, 손이 닿기에는 너무나도 아득한 자리에 강실이는 서 있었다.
... 나 좀 보아.
목소리가 터지면서 마음 놓고 부를 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투명한 물 밑바닥에 가라앉은 것처럼 허위적거려지기만 할 뿐, 강모는 한 발자국도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햇살이 물엿처럼 녹는다. 그대로 숨이 멎어 버릴 것만 같았다. 다리와 가슴과 머리 위에 채우고 그보다 더 아득한 공중까지 넘치는 간절함이 강모의 목을 누른다.
... 나 좀 보아.
순간, 강실이는 강모가 부르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이 살구나무 저쪽에서 홀연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강실이의 모습이 선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네가 다가온 것도 아니었는데 , 그렇게 아주 가까이서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강실이는 연분홍 치마에 연두색 명주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그네는, 자주 고름을 손가락에 감은채, 고개를 갸웃 돌리고 있어서 금방 돌아서 버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햇살이 아지랑이에 일렁거리면서 강실이를 에워싸고 있다. 마치 그네도 아지랑이가 되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연분홍 치마와 연두 저고리의 애달픈 빛깔이 흔들린다. 햇살은 강실이의 검은 머릿단에 푸르게 미끄러진다. 그 머리 위에는 눈부신 자운영 화관이 씌워져 있었다. 진분홍과 흰색이 봉울봉울 어우러진 자운영 화관은 햇무리마냥 휘황하고도 아련하게 강실이의 머리를 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 햇무리가 광채를 뿜으며 강모의 눈을 아프게 쏘았다. 찔리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그것은 초례청의 신부가 쓰고 있던 오색 찬란한 화관과 뒤범벅이 되어 강모의 가슴팍으로 쏟아진다. 흙더미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사태가 난 것도 같았다. 햇살이 무서운 속도로 쏟아지며 무너진다.
... 강실아아.
가슴 속살에 자운영 꽃잎이 톱날처럼 박힌다.
... 아아.
강모는 가슴을 오그린다. 톱날에 베인 자리에서 피가 빠짓이 배어난다. 그러나 그 아픔은 어깻죽지에서 오는 것이었다. 누군가 강모의 어깨를 장작으로 후려쳤다. 한 번만이 아니라 정신없이 내리치는 그 매는,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뭇사람이 한꺼번에 때리는 몰매였다. 강모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덕석에 말어라. 쉬어 갈라진 그 목소리는 오류골 숙부의 것이 분명하다. 이놈, 이 인륜 도덕이 무언지도 모르는 천하에 못된 노움. 짐승 같은 놈, 네 이노오옴. 가문에 먹칠을 하고 상피붙은 네 놈이, 그래 사람이란 말이냐. 사람의 가죽을 쓰고 네가 이놈, 감히 어디서. 햇살처럼 몰매가 쏟아진다. 비명도 없이 강모는 매를 맞는다. 돌팔매가 날아온다. 찢어지고 깨진 강모의 피투성이가 된 몸을 누가 뒤에서 순식간에 덕석으로 덮으며 두르르 말아 버린다.
허억
강모는 숨이 막혀, 두 손으로 덕석을 밀어내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꿈에서 깬 그는 비로소 긴 숨을 내뿜었다. 식은 땀이 축축하게 배어났다. 아직 방안은 날이 채 밝지 않아, 땀이 번지어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감추어 주고 있었다. 그는 무망간에 웃목의 신부를 바라보았다. 신부는 녹색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받쳐 입고, 장지문 쪽으로 돌아앉아 머리에 비녀를 꽂는 중이었다. 강모에게는 그 뒷모습만 보였으나, 그가 일어나는 기척이 있었는데도 그네는 돌아보지 않았다. 비녀를 다 꽂고 나서도 밀기름 바르는 시늉을 하며 쪽 지은 머릿결을 침착하게 다듬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 뒷모습이 단호해 보인다. 꿈에서 막 깨어난 탓일까. 그보다는 낯설고 어려운 그네의 뒷모습 때문일까. 가슴이 무겁고 답답하다. 강모는 문득 꿈에 자기를 숨막히게 감았던 것은 덕석이 아니라, 어쩌면 강실의 머리 위에서 빛나던 햇무리가 아니었던가 싶어진다. 깨어난 지금도 그 햇무리는 온 몸을 에워싸고 동여매면서 드디어는 모가지까지 감아 올리며 숨을 조이는 것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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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29. 감사
<그대의 가슴이 감사로 가득 넘치면 아무리 굳게 닫힌 문이라도 열리느니>
아주 소수의 여자들만이 선의 궁극에 도달했는데, 그 중 한 보살이 여행할 때였다. 날이 어둑어둑하여서 한 마을로 들어선 그녀는 밤을 지낼 곳을 구하여 이집 저집을 찾았다. 그러나 집집마다 죄다 문을 쾅쾅 닫아버리는 것이었다. 그 마을은 오랜 불교전통을 지녔었지만 어느 한 집도 이 보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리어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동네 밖으로 내몰았다. 매섭게 추운 밤이었다. 늙은 보살은 잠자리는커녕 밥 한 술 얻어먹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야산의 한 벚나무 밑에다 겨우 몸을 개댈 곳을 만들었다. 그러나 너무도 추웠기 때문에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들짐승들이 어둠 속을 설치고 다녔다. 깜빡 졸던 그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너무나 추웠기 때문이었다. 아, 그때 그녀는 보았다. 봄날의 밤하늘에 고고한 달빛을 받으며 벚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못내 아름다움에 겨워 그녀는 벌떡 일어나 마을 쪽을 향해 큰 절을 하였다.
내 잠자리를 거절한
친절한 사람들아,
덕분에 이 고고한 달빛
벚꽃 아래서 날 찾았네.
그녀는 자신의 잠자리를 거절한 사람들한테 크게 감사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필경 어느 집 지붕 밑에서 잠들었을 것이고, 또 그랬더라면 꽃피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저 활짝 핀 벚꽃과, 고고한 달빛과의 속삭임, 고요한 밤, 완전한 침묵의 밤을.
삶은 무한한 것. 매 순간이 삶의 선물인 것. 매 순간 신이 오는 것을, 거절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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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동서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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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1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글이나 말이나 다 공허한 것 - 노자
"장사를 잘하는 사람은 재물을 깊이 간직하고도 겉으로는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군자는 마음 속에 덕을 지니고 있으나 그 외모는 바보처럼 보이게 합니다."
초나라 고현 출신인 노자의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이다. 그는 주나라 왕실의 서고인 수장실에서 사관으로 일하였다. 어느 날 공자가 찾아와 노자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청하였다. 당시 공자는 제자들을 이끌고 이나라 저나라로 옮겨다니며 벼슬 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래,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오?"
"예에 대하여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과연 예란 어떤 것인지요?"
노자가 공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미 옛 성현들의 살과 그 뼈는 다 썩었는데, 오직 그 말만 남은 것이 바로 예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공자가 다시 물었다.
"그대가 말하는 예란 겉모습일 뿐입니다. 군자란 때를 잘 만나면 벼슬을 하지만, 때를 잘못 만나면 바람에 흔들리는 쑥대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사를 잘하는 사람은 재물을 깊이 간직하고도 겉으로는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군자는 마음 속에 덕을 지니고 있으나 그 외모는 바보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러니까 일부러 덕을 드러내보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덕과 예는 어떻게 다른가요?"
"덕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고, 예는 드러내는 것입니다. 일부러 드러내다 보니 예에는 가식이 섞이게 됩니다. 그러니 예를 빙자하여 교만한 자나 욕심 많은 자가 되지 말 것이며, 일부러 얼굴과 태도를 꾸미거나 산만한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은 전혀 자신에게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예에 대하여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공자는 실망하여 돌아갔다.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공자는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새가 잘 난다는 것을 안다. 물고기가 헤엄을 잘 친다는 것도 안다. 네 발 달린 짐승이 잘 달린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또한 달아나는 것에게는 그물을 칠 수 있고, 헤엄치는 것에게는 낚시를 드리울 수 있으며, 날아 다니는 것에게는 활을 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인지요?"
제자가 물었다.
"용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달리는 짐승도 아니고, 헤엄치는 물고기도 아니고, 나는 새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다. 그는 용과도 같은 존재이다."
공자는 이처럼 노자를 '용'에 비유하였다. 노자는 도와 덕을 닦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학문을 스스로 숨기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였다. 노자는 오랫동안 주나라에 있었으나,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스스로 떠났다. 그가 길을 떠나 관에 이르렀을 때, 관령 윤희가 말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어디로 숨으려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선생님을 뵐 수가 없겠군요. 어려우시겠지만 저를 위해 좋은 글을 남겨주실 수 없겠습니까?"
"글이나 말이란 다 공허한 것이라네."
"그렇지만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한 말씀이라도 남겨 주십시오."
윤희의 간청에 의해 노자가 글을 지은 것이 바로 "도덕경"이란 책이다. 이 도덕경은 상하권 5천여 자로 되어 있다. 노자는 도덕경만 남겨놓은 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 이후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공자와 같은 연배의 노래자란 사람이 나타나 책 15권을 지어서 도가를 설법하였다. 그 역시 노자와 같은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그런 여러 가지 사실을 연유로 하여 그가 노자의 제자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이것도 추측에 의한 것이지만, 노자는 대략 1백60세 혹은 2백 세를 살았다고 한다. 그는 무위의 도를 몸에 지녀 실천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공자가 죽은 지 129년이 되는 해에 어느 사관이 기록한 것에 의하면, 주나라의 태사 담이 진나라의 헌공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진나라는 주나라와 합한 후 5백 년만에 분리되며, 분리된지 70년이 되면 패왕이 될 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담이 곧 노자라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노자의 자는 백양이었으며, 시호는 담이었다. 그 시호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노자는 숨은 군자였다.
진실 : 마음속부터 진실하라.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드러나는 것이 진리이고 일부러 감추려 해도 그 실상이 곧 밝혀지는 것이 허위이다. 아침 이슬은 영롱하지만 한나절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며, 흙속의 보석은 비록 묻혀 있지만 언젠가는 그 빛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일부러 자신을 과장되게 드러내면, 곧 신뢰를 잃게 된다는 걸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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