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 최명희
혼불 1. 1.
청사 초롱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대숲에서는 제법 소리까지 일었다. 하기야 대숲에서 바람 소리가 일고 있는 것이 굳이 날씨 때문이랄 수는 없었다. 청명하고 볕발이 고른 날에도 대숲에서는 늘 그렇게 소소한 바람이 술렁이었다. 그것은 사르락 사르락 댓잎을 갈며 들릴 듯 말 듯 사운거리다가도, 솨아 한쪽으로 몰리면서 물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잔잔해졌는가 하면 푸른 잎의 날을 세워 우우우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울타리 삼아 뒤안에 우거져 있는 대밭이나, 고샅에 저절로 커오르는 시누대, 그리고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왕댓잎의 대바람 소리는 그저 언제나 물결처럼 이 대실을 적시고 있었다. 근년에는 이상하게, 대가 시름거리며 마르기도 하고, 예전처럼 죽순도 많이 나지 않아, 노인들 말로는 대숲이 허성해졌다고 하지만, 그러나 아직도 하늘을 가리며 무성한 대나무들은 쉬흔 자의 키로 기상을 굽히지 않은 채 저희들끼리 바람을 일구는 것이었다. 전에 누군가가 그 소리를 들으면서, 대는 속이 비어서 제 속에 바람을 지니고 사는 것이라, 그렇게 가만히 서 있어도 저절로 대숲에는 바람이 차기 마련이라고 말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날씨마저 구름이 잡혀 있는데다가 잔바람이라도 이는 날에는 으레 물결 소리는 소리를 쏴아 내면서, 후두둑 비 쏟아지는 시늉을 대숲에 먼저 하는 것이었다.
대실의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대숲에서 일고 있는 바람에 귀가 젖어 그 소리만으로도 날씨를 분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와 몸짓까지라도 얼마든지 눈치챌 수 있기도 하였다. 그저 저희끼리 손을 비비며 놀고 있는 자잘하고 맑은 소리, 강 건너 강골 이씨네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이쪽 대실로 마실 나온 바람이 잠시 머무는 소리, 어디 먼 타지에서 물어와 그대로 지나가는 낯선 소리, 그러다가도 허리가 휘어질 만큼 성이 나서 잎사귀 낱낱의 푸른 날을 번뜩이며 몸을 솟구치는 소리, 그런가 하면 아무 뜻없이 심심하여 제 이파리나 흔들어 보는 소리, 그리고 달도 없는 깊은 밤 제 몸 속의 적막을 퉁소 삼아 불어 내는 한숨 소리, 그 소리에 섞여 별의 무리가 우수수 대밭에 떨어지는 소리까지라도 얼마든지 들어 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도 그 대바람 소리에 마을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에 큰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대소가의 안팎에서는 이른 아침에 채비를 하여 원뜸으로 올라가고, 호제와 머슴들도 집을 비웠다. 어른들이 그러니 아이들까지도 덩달아 고샅을 뛰어다니며 신이 나서 연방 무어라고 재재거렸다. 그리고 가까운 촌수의 동서 숙질의 부인들은 아예 며칠 전부터 올라가 있기도 하였다.
그런 마을의 동쪽 서래봉과 칼바위 쪽에 두툼하게 엉키어 있는 회색의 구름은, 그러나 중천에 이르러는 엷은 안개처럼 희부옇게 풀려 둥근 해의 모양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아무래도 구름에 가려진 햇발이라 온기가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이만한 날씨라면 큰일 치르기에 그다지 애석한 것은 아니었다. 벌써 마당에는 넓은 차일을 치고 그 아래 명석을 깔아 두었으며, 명석 위에 펼 화문석까지도 깨끗한 행주질을 몇 번이나 하여 대청마루에 내다 놓았다. 그리고 교배상을 챙긴다. 서래봉의 줄기에서 갈려 나온 낮은 동산이 집터의 뒷등을 이루어 주고, 앞쪽은 툭 트여 마을이 내려다보이며, 마을 건너 강골과의 경계를 내고 있는 강 줄기가 비단 띠처럼 눈에 들어오는 남도 땅의 대실, 이 집의 안팎은 지금 며칠째 밤을 세우고 있었다. 며칠째라고 하지만, 그것은 꼬박 밤을 세우면서 방방이 불을 밝히고 장명등이 꺼지지 않은 날수만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요, 실상 분주하여지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혼인하자는 말이 오간 의혼이 있고, 청혼서가 오가면서부터였다. 그러다가 지난 초여름, 살구가 막 신맛을 올리며 단단하게 여물고 있을 때 도경을 넘어 북도의 남원군 매안에서 사람이 당도하였다. 그는 신랑 될 사람의 사주를 가지고 온 것이다.
주인 허담과 부인 연일정씨는 대청에 돗자리를 깔고, 정갈한 상을 앞에 하여, 정중하게 사주 단자를 받았다. 상 위에 놓인 사주보는 네 귀퉁이에 금전지를 달고, 간지에 근봉이라 쓰인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 다홍의 비단 보를 조심스럽게 펼치자 안쪽은 빛깔 고운 남색인데, 거기 흰 봉투가 들어 있고, 봉투는 봉함 대신 길고 가느다란 싸릿가지를 젓가락처럼 모두어 물리고 있었다. 싸릿가지는 본래 어른의 새끼손가락보다 조금 가늘지만 상서로이 날렵하게 벋은 것을 반으로 쪼개, 봉투 앞뒷면으로 나누어 봉투를 물게 한 것이다. 봉투보다 길어서 뚜껑 위아래 양쪽으로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씩하게 솟아 나와 있는 싸릿가지 머리에는, 청실 홍실의 둥근 타래실이 얌전하게 묶였는데, 그것은 휘황하고 요려하게 굽이쳐 나뭇가지 앞면을 타고 내려오다가 꽁지를 휘이 감으며 뒷면 위쪽으로 올라가 서로 합해졌다. 역시 매듭이 지지 않게 동심결로 묶여 있는 것이었다. 허담은, 그 청, 홍의 타래실을 보며 눈에 웃음을 띄웠다. 그러고 나서부터 집안은 그야말로 대문, 중문은 말할 것도 없고 방문이며 부엌문, 곳간문들이 제대로 여닫힐 겨를도 없이 분주해진 것이다.
정작 오늘은, 뒤안에서 흰떡이며 인절미를 만드느라고 내려치던 떡메 소리와 장작 패는 소리, 그리고 밤낮을 모르고 집안을 울리던 찰진 다듬이 소리 같은 것이 멎어 놓아 차라리 조용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그 대신 사람들이 안채, 사랑채, 뒤안, 부엌, 앞마당, 중마당, 마루, 대청 할 것 없이 그득그득 들어차 오히려 더욱 들떠 있었다. 콩심이는 안채 사랑채의 댓돌에 놓인 신발들을 가지런히 하느라고 조그만 몸을 더 조그맣게 고부리고 손을 재빠르게 놀리면서 정지 뒷문으로 가서 어미에게 적 소작 얻어먹을 생각에 바빴다. 콩심어미는 부엌 뒤문간 곁의 뒤안에서 굵은 돌 세 개를 솥발처럼 괴어 놓고 가마솥 뚜껑을 거꾸로 얹어 연방 기름을 둘러가며, 한 손으로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소맷자락으로 씻어 올리면서 전유어를 지지고 있었다. 그 고소한 냄새 때문에 콩심이의 손을 더욱 빨라지고, 작은 콧구멍이 자꾸만 벌름거려지는 것이었다. 전유어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연한 살코기를 자근자근 칼질하여 갖가지 양념을 넣고 고루 간이 잘 밴 쇠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석쇠에 굽는 냄새, 같은 쇠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이라도 도라지가 들어가 참기름에 섞이는 냄새들이 집 안팎은 물론 온 마을에까지 바람을 타고 내려갔다. 솜씨가 좋은 서저울네는 생도라지를 소금물에 살짝 삶아 건지며 맛을 본다. 그리고 간간한 도라지를 옹백이의 찬물에 우려내는 동안 후춧가루, 소금, 깨소금, 파, 마늘을 언뜻언뜻 챙긴 뒤에, 다시 도라지를 건져내더니 순식간에 옥파같이 곱게 갈아 놓는다.
"얼매나 좋으까이? 연지 곤지에다."
옆에서 떡시루 번을 뜯어내고 있던 점봉이네가 혼자말처럼 탄식하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신랑이 에리단디 신방이 멋인지나 알랑가?"
뒤안의 콩심어미가 어느 결에 듣고 말꼬리를 치켜세우며 참견을 하는데 히히히 하고 웃음을 깨문다.
"저리 가. 아이고 웬수녀르 것."
웃음 끝에, 곁에 다가선 콩심이를 보더니 전유어 한 쪽을 찢어 주며 손짓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나머지 쪽을 자기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전유어를 뒤집는다. 콩심이는 적 조각을 공중으로 치켜들어 혓바닥을 내민다. 치지지이이 치직. 찬모 서저울네도 번철에 도라지와 쇠고기와 갖은 양념을 넣고 참기름을 두르면서, 간장, 후추, 깨소금, 파, 마늘이 서로 섞이며 익어가는 냄새에 양미간을 모은다. 그리고 찌푸리는 것 같은 미소를 머금는다. 이것은 음식 익는 냄새로 맛을 느끼면서, 잘 되어가고 있을 때 보여 주는, 괜찮다는 표시이다. 그네는 도라지 크기로 잘라서 소금물에 살짝 데친 당근에 잣가루와 후춧가루, 참기름을 버무리고는 번철에 익은 것들을 채반에 내놓고 가지런히 챙기면서 색색깔로 빛깔을 맞추어 꼬챙이에 꿰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마당에서는 웃을 소리와, 부산하게 사람들 왔다갔다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어느새 점봉이가 부엌 문간에서 기웃 안을 들여다보며 제 어미 눈치를 살핀다. 어미는 얼른 시룻번을 한 줌 집어 주면서 쥐어박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무리마다 고운 물을 앉힌 무지개떡이며, 김이 천장을 가리는 붉은 시루떡, 그리고 떡가루 사이에 팥고물, 콩, 녹두, 계핏가루, 석이 밤, 잣 들이 곁들여 있는 갖은 시루떡을 네모 반듯하게 썰어 상에 쓸 것을 챙기고는, 부스러진 귀퉁이를 따로 모아 삼베 보자기에 싸둘 생각을 점봉이네는 한다. 어깨뼈는 빠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 많은 음식을 보고, 만들고 눈치껏 먹으며 새끼들한테 먹일 수도 있으니, 어쨌든 잔치는 자주 있었으면도 싶었다. 물론 상객과 신랑이 받는 큰상에 쓸 음식과, 함진아비나 수행한 사람들이 먹을 상에 쓸 음식들은 감히 아랫사람들이 손대지 못했다. 큰상은 우귀 때 신랑 집으로 싸서 보내는 까닭에 그 때깔이나 맛이 출중해야 하는지라, 문중의 부인들이 손수 나서서 온갖 솜씨와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지만, 잔치에 쓸 그 많은 음식을 모두 그 부인들이 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이렇게 찬모와 행랑어멈들이 더운 숨을 뿜고 있는 것이다. 부엌은 사람이 돌아설 자리도 없었다. 결코 더운 날씨가 아니건만, 부엌에 들어찬 사람들의 훈김과 아궁이마다 타고 있는 장작불의 후끈후끈한 화기, 그리고 입도 벙긋할 틈 없이 정신을 못 차리게 분주한 음식 준비 때문에 아낙네들은 저마다 땀을 흘리는 것이었다.
"초리청은 어쩝디여?"
점봉이네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마당으로 가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시룻번을 한 입 급하게 베어 물고는 부엌 바라지 바깥으로 고개를 쑤욱 내민다. 마당의 넓은 차일 아래에는 십장생이 그려진 열 폭 병풍이 붉은 해, 푸른 산, 흐르는 물과 상서롭게 웅크린 바위, 그리고 그 바위가 승천하여 떠 있는 구름이며 바람 소리 성성한 솔과 소나무 아래 숨은 듯 고개내민 불로초, 불로초를 에워싸고 노니는 거북이, 학, 사슴 들이 온갖 자태와 빛깔로 호화롭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아직도 구름은 아까만한 빛으로 해를 품은 채, 좀체로 해의 얼굴을 말갛게 씻어 주려 하지 않는다. 추수가 끝나고, 자잘한 가을 일들이 몇 가지 들판에 남아 있기는 하나, 그런대로 큰손 갈 것은 대충 마무리지은 음력 시월 초순, 바람에 벌써 스산함이 끼어 있다. 허나, 오늘 같은 날, 누가 그런 것에 마음에 두겠는가. 그럴 겨를이 없었다.
"부서언재애배애."
혼례 의식의 순서를 적은 홀기를 두 손으로 받들어 정중하게 펼쳐 들고 예를 진행하는 허근의 목소리는 막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허근은 신부의 증조부이다. 신부가 먼저 두 번 절 하라는 말이 꼬리를 끌며 마당에 울리자, 신부의 양쪽에 서 있던 수모가 신부를 부축한다. 신부는 팔을 높이 올려 한삼으로 얼굴을 가리운다. 다홍 비단 바탕에 굽이치는 물결이 노닐고, 바위가 우뚝하며, 그 바위 틈에서 갸웃 고개를 내민 불로초, 그리고 그 위를 어미 봉과 새끼 봉들이 어우러져 나는데, 연꽃, 모란꽃이 혹은 수줍게 혹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는 신부의 활옷은, 그 소맷부리가 청, 홍, 황으로 끝동이 달려 있어서 보는 이를 휘황하게 하였다.
"하이고오, 시상에 워쩌면 저렇코롬... ."
초례청을 에워싼 사람들의 뒤쪽에서 누군가 참지 못하고 탄성을 질렀다. 거의 안타까운 목소리이다. 신부는 다홍치마를 동산처럼 부풀리며 재배를 하고 일어선다. 한삼에 가려워졌던 얼굴이 드러나자, 흰 이마의 한가운데 곤지의 선명한 붉은 빛이, 매화잠의 푸른 청옥 잠두와 그 빛깔이 부딪치면서 그네의 얼굴을 차갑고 단단하게 비쳐 주었다. 거기다 고개를 약간 숙인 듯하였으나 사실은 아래턱만을 목 안쪽으로 당긴 채, 지그시 눈을 내리감은 그네의 모습에서는, 열여덟 살 세 신부의 수줍음과 다감한 풋내보다는 차라리 일종의 위엄이 번져나고 있었다. 그것은 그네의 골격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버지 허담의 큰 키와도 거의 엇비슷할 만큼 솟은 키에 허리를 곧추 세우고, 어깨를 높이 펴고 있는 자세는, 오색 찬란한 활옷과 화관으로 하여 더욱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네의 그런 모습과는 달리, 화관에 장식된 청강석 나비가 하르르 하르르 떨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신부의 속눈썹도 나비를 따라 떨린다.
"아직 학상이당가아?"
어느 틈에 서저울네가 점봉이네 곁에 바싹 다가서서 숨소리 섞인 귓속말로 소근거린다.
"아직이 머시여? 인자사 열다섯 살이랑만, 앞으로도 창창허지머?"
"워메에... 신랑 이쁜 거어..."
뒤에서 탄식처럼 낮은 소리가 터진다. 목소리를 눌렀기 때문에 그 심정이 더욱 간절하게 들린다.
"하이고오, 신랑 좀 보소, 똑 꽃잎맹이네."
사모를 쓰고, 자색 단령을 입은 신랑은 소년이었다. 몸가짐은 의젓하였지만 자그마한 체구였고, 얼굴빛은 발그레 분홍물이 돌아, 귀밑에서 볼을 타고 턱을 돌아 목으로 흘러내리는 여린 선에 보송보송 복숭아털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는 시키는 대로 나붓이 꿇어 앉으며 신부에게 일배를 한다. 마당을 가득 채운 웃음 소리와 덕담, 귓속말들, 옷자락에 흥건히 배어들 만큼 질탕한 갖가지의 음식 냄새와 청, 홍, 오색의 휘황함에 짓눌리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것이 아직은 어색한 탓일까, 나이 어린 신랑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것은 아까, 대문, 중문을 넘어올 때만 하여도 표가 나지 않았었는데, 신부가 수모들의 부축을 받으며 대례상 저쪽에 마주섰을 때 확연하게 달라진 표정이었다. 긴장을 한 탓이라고나 해야 할는지, 앳된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마주보고,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흥겹게 들떠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고조되면서 물결처럼 출렁거리고, 그 출렁거림은 이제 막바지에 달하여, 반상과 주객을 가리지 않고 한 덩어리로 둥실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우우재애배애."
신부가 다시 두 번 절을 하자 신랑은 답으로 일배를 한다. 돗자리 위에 놓은 신랑의 두 손이 하얗고 나뭇잎처럼 조그맣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허근의 영을 따라 그 자리에 각각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았다.
"신랑은 애들맹이고, 신부는 큰마님 같으네에... ."
"... 금메 말이시."
꼰지발을 딛고 넘겨다보던 두 아낙이 소근거린다.
"시이자아가악치임주우."
허근의 말이 길게 꼬리를 끌며 떨어지자, 대령하고 있던 하님과 대반은 술상 앞에 가서 앉는다. 신랑 상에는 밤이 괴어져 있고, 신부 상에는 대추가 소복하다.
"주욱 마시야제잉."
"워메, 초리청으서 취해 번지면 워쩔라고."
"허어, 장깍쟁이 같은 저것 조께 마셌다고 취헌당가?"
신부측에서 흰 사기잔에 술을 부어 신랑편으로 보내면, 신랑은 그를 받들어 땅에 조금 지운 다음 한 모금 마시고 신부측으로 보낸다. 신부는 신랑이 보내온 이 술을 다 마셔야 한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신랑측이 신부한테 술잔을 보내고, 신부는 아까 신랑이 하던 순서대로 행하는 의례이다. 그러나 신랑과 신부는 모두 술잔을 입에 대는 시늉한 할 뿐, 마시지는 않았다. 가운데 놓인 대례상의 양쪽에서는 불꽃을 너울거리며 한 쌍의 촛불이 타오르고, 그 옆에, 솔가지와 대나무 가지들은 목에 청실 홍실을 감은 백자 화병에 꽂혀 서서 바람 소리라도 일으킬 것처럼 서슬이 푸르고 싱싱하다. 그리고 모처럼 호강을 하느라고 붉은 보에 싸인 채 고개만을 내민 암탉과 푸른 보에 싸인 수탉은, 답답하여 날개를 퍼득거리며 두 눈을 떼룩떼룩 굴린다. 장닭의 늘어진 벼슬이 흔들린다.
이제 초례청의 흥겨움은 막바지에 이른 것 같았다. 하객들은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연신 화사한 농담을 던지며, 혹은 귀엣말을 소근거리기도 하면서, 감개어린 표정을 짓기도 했다. 비복들은 교자상을 서로 맞잡기도 하고, 혼자서 등에 메기도 하여 마당에 내다 놓고, 허리를 펼 사이도 없이 다시 뒤안이며 모퉁이, 행랑쪽으로 줄달음을 친다. 머슴들은 힐끗 곁눈질을 하고 지나치지만, 계집종과 아낙들은 그러는 중에도 잠깐 일손을 놓고, 사람들 어깨 너머로 힐끗 초례청을 넘겨다보며 한 마디씩 참견한다. 신랑의 상객으로 온 부친 이기채는 시종 가는 입술을 힘주어 다물어 아들의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체수가 작은데다가 깡마른 편이어서, 야무지고 단단한 대추씨같은 인상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다문 입술과 더불어 날카롭게 빛나는 작은 눈에 예광이 형형하여 보는 이를 위압하는 것이었다. 그의 전신에는 담력이 서려 있었다. 얼핏, 놋재떨이 소리 같은 금속성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거배애상호서상부하아."
서로 잔을 들어 신랑이 위로, 신부가 아래로 가게 바꾸시오. 허근의 소리가 다시 울린다. 이 순서야말로 조심스러운 것이고, 이제까지의 복잡하고 기나 긴 예식의 마지막 절차이다. 또한 가장 예언적인 성격을 띠는 일이기도 하였다. 사람들도 이때만은 숨을 죽인다. 하님과 대반은 술상 위에 놓여 있는 표주박 잔을 챙긴다. 세 번째 술잔은 표주박인 것이다. 원래 한 통이었던 것을 둘로 나눈, 작고 앙징스러운 표주박의 손잡이에는 명주실 타래가 묶여 길게 드리워져 있다. 신랑 쪽에는 푸른 실, 신부 쪽에는 붉은 실이다. 그것은 가다가, 서로 그 끝을 정교하게 풀로 이어 붙여서 마치 한 타래 같았다. 이제 이렇게 각기 다른 꼬타리의 실끝이 서로 만나 이어져 하나로 되었듯이, 두 사람도 한 몸을 이루었으니, 부디부디 한평생 변치 말고 살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어려운 것은, 그 표주박에 가득 술을 부어 술잔을 서로 바꾸어 마셔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술잔을 바꾸면서 술을 한 방울이라도 흘려서는 안된다. 또 실이 얽히거나 꼬여서는 더욱 안된다. 술방울을 흘리면 흘린 쪽의 마음이 새어 버리고, 실이 얽히면 앞날이 맺힌 일이 많아, 그만큼 고초가 심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님과 대반은, 손에 힘을 잔뜩 주고 온몸을 조심하며 술잔을 서로 바꾸는 것이다. 양쪽 상 위에 서리를 틀고 있는 청실 홍실은 구름 끼인 볕뉘 아래 요요히 빛나고 있다. 하님과 대반은 각기 신랑과 신부에게 표주박을 쥐어 준다.
"시이자아가악치임주우."
허근의 목소리는 고비에 이르렀다. 드디어 하님과 대반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긴장을 하고 조심하면, 일은 더욱 더디어지고 걸리기 마련인가, 아니면, 워낙 명주실이라는 것이 부드럽고 가늘어, 이리저리 옮기지 않아도 제 타래에서 제 실낱끼리라도 얽히는 것일까. 그만 실이 꼬이더니 얽히고 만 것이다.
츳!
허담이 혀를 찼다.
하이고오, 어쩌고오...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소요가 일었다. 그 수런거림은 불기한 음향을 남겼다. 물론 그것은 작은 매듭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마음을 철렁하게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더 어쩔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가느다란 실탈을 헤쳐가며 풀 수도 없으려니와, 그러다가는 표주박의 술마저 엎지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왕에 얽혀 버린 실을 풀어 내다가는 다음 일조차도 그르치게 된다. 허근의 얼굴이 어둡게 찌푸려진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그냥 두라고 했다. 그래서 아까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어깨를 움츠리며 잔을 나르는 대반의 코에 땀을 솟아난다.
아하아아.
하객 중의 한 사람이 탄성을 발했다. 술방울을 흘리지 않고 무사히 잔이 건네어진 모양이었다. 사람들도 저마다 비로소 숨을 튼다. 그리고 이제 점점 끝나가는 예식을 아쉬워하며, 신랑과 신부가 표주박의 술을 남기지 않고 한 번에 마시는지 어쩌는지, 마지막 흥겨움과 긴장을 모으며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했다. 신랑이 잔을 비운다. 대반은 신랑의 손에서 표주박을 받아 상 위에 놓는다. 신부의 차례에 이르자, 사람들은 저절로 흥이 나서 고개를 빼밀고 꼰지발을 딛는다.
"어디, 어디, 나 좀 보드라고오."
누군가 사람들의 틈으로 고개를 비집어 넣으며 말한다.
"밀지 말어. 자빠지겄네잉."
"시잇, 참말로 시끄러 죽겄네에, 쥐딩이 조께 오무리고 있드라고."
신부는 눈을 내리감은 채 수모가 기울여 주는 표주박의 술을 한 방울씩 마신다. 그러나 그것은 시늉만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말로 신부가 한 방울씩 술을 마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흥겹다 이윽고 수모는 잔을 떼어낸다.
왁자지껄
사람들은 한꺼번에 참았던 소리를 터뜨렸다. 한숨을 쉬기도 하였다. 그때 누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와그르르, 웃는 소리가 뒤쪽에서 일었다. 웃음 소리가 대례상 위로 쏟아진다.
"예피일철사앙."
예를 마쳤으니 상을 거두시오.
허근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린다. 그 소리에 신부의 어머니 정씨부인은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이상한 일이다. 한 시름이 놓이고 마음이 가벼워져야 할 터인데, 웬일로 그렇게 힘이 빠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실이... 그렇게... 어찌할꼬... 이 노릇을...
그네는 스스로 머리를 저었다.
(사위스럽다.)
그러나 그네는, 아까 분명히, 실이 얽히는 것을 보았다.
(허나 그런 일은 흔히 다른 초례청에서도 있는 일이 아닌가. 또한 그런 절차는, 모두, 정성을 다하려는 마음가짐을 이르는 것일 뿐, 그까짓 실타래가 무엇을 알랴.)
정씨부인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고인다.
"각조웅기소오."
허근은 예의 마지막 분부를 한다. 이제 모두 제 처소를 따라 자리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례상 위에 놓여 있는 밤과 대추를 신랑 주머니에 넣어 준다. 저녁에 신방에서 먹으라고 했다.
"혼자 다 먹지 말고."
그 말에 마당에서는 다시 한 번 웃음이 일고, 어린 신랑은 귓부리가 붉어진다. 신랑과 신부가 각기 대반과 하님의 부축을 받으며 초례청을 떠나자 마당은 바야흐로 이제부터 흐드러진 잔치에 들어갈 모양이었다. 상객 이기채의 일행과 허담의 대소가는 사랑에 들었다. 그리고 부인들은 안채로 모였다. 그러는 중에도 손님들이 끊임없이 중문을 자나 안으로 들어오고, 집안 사람들은 다리 사이에서 바람 소리를 내며 종종걸음을 친다. 하객들은 마당의 차일 아래 넘쳐났다.
"하이고오. 누구는 좋겄다아."
점봉이네는 신방 쪽을 향하여 탄식처럼 말을 뱉어낸다.
"그런디마시 초리청으서 그렇코롬 청실 홍실이 엉케 부러서 갠찮으까 몰라? 머 벨 일이사 있겄능가잉? 무단헌 생각이제."
콩심이네가 말을 맞받는다. 이제 해는 하늘의 중허리를 지나 서쪽으로 비스듬히 발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 순간에 기우뚱 해가 기울어 날이 저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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