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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1004호
2020.6.23. (음 5.3)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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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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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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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할 때 매우 조심해야 되지만 바꿀 때는 더욱 조심해야 되는 것이 輿論. ― 조쉬 빌림즈(美 유머리스트, 1818~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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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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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삼다도, 삼무도, 삼다삼무도. 제주도를 이르는 말이다. 바람과 여자와 돌이 많은 섬, 도둑과 거지와 대문이 없는 섬, 그리고 이 세 가지가 각각 많고 없는 특징을 담아 부르는 표현이다. 이런 특성은 21세기 제주에서는 사실상 사라졌다. 바람과 돌은 여전하지만 2014년 남녀 비율은 반반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여성 우세는 간데없다’인 셈이다. 제주 세태를 담은 삼무도는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철도, 고속도로, 국도가 없는 ‘삼무’가 되었다. 도로 총연장은 3200㎞가 넘지만 모두 지방도다. 이 시대의 ‘삼다’는 유커(중국인 관광객), ‘제주 흑돼지’를 내건 고깃집, 횟집 차림표에 씌어 있는 돔이 아닐까 싶다.
지난달 말 제주에 다녀왔다. ‘고등어회를 맛보고 싶다’는 일행의 뜻에 따라 찾은 횟집은 뜻밖에 한갓졌다. 으깬 얼음 위에 얹혀 나온 고등어회는 기왕에 알던 맛이 아니었다. 소문만 요란한 ‘맛집’과 사뭇 다른 느낌. 맛의 비결을 물어보니 ‘선어(말리거나 절이지 아니한, 물에서 잡아낸 그대로의 물고기=생선)가 아닌 활어(살아 있는 물고기)만 쓰기 때문’이란다. 주인의 자부심 가득한 말이 믿음직했지만 ‘숙성한 회가 더 좋다’는 이도 있으니 꼭 그래서인 것만은 아닐 듯했다. 고등어회를 먹자니, 고도리(고등어의 새끼) 구이 생각이 났다. 갈치 횟감으로 제격인 풀치(갈치의 새끼) 생각도.
우럭볼락을 뼈째 우려낸 뽀얀 국물의 우럭탕은 별미였다. ‘우럭’ 하면 대개 물고기를 떠올리지만 사전은 ‘우럭’의 본말로 ‘우럭볼락’을 제시한다. 곁들이로 차려진 참돔과 돌돔 구이의 쫀득한 듯 푸석한, 푸석한 듯 쫀득한 맛이 오묘했다. 돔과 도미는 같은 것이지만 본딧말인 도미(20개)보다 준말인 돔(73개)을 붙인 이름이 훨씬 많다.(표준국어대사전) ‘물고기 도미’(약 17만건), ‘물고기 돔’(약 29만건)의 검색 결과도 다르지 않다.(구글) 우럭과 우럭볼락, 돔과 도미. 언중은 발음하기 쉬운 걸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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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해
새로운 맛을 알게 된 때는 혼인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엄마 밥상’에 ‘장모 밥상’이 더해지면서 맛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처가와 본가의 음식 맛은 같은 듯 달랐다. 밥상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맛깔은 미묘하게 갈렸다. 고깃결 따라 찢어낸 장조림과 넓적하게 썰어낸 그것의 차이는 육개장의 걸쭉하고 맑은 국물에서도 나타났다. 김칫국을 먹는 횟수는 줄었고 토란국이 상에 오르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잦아졌다. 난생처음 맛본 음식도 생겼다. 함경도가 고향인 장인어른 덕분이다.
매콤 새콤한 맛에 비릿한 느낌 살짝 묻은 독특한 향이 입안에 퍼지던 때를 기억한다. 조밥에 고춧가루, 무채 따위를 양념해 참가자미를 한데 버무려 삭힌 반찬, ‘가자미식혜’로 알고 있던 가자미식해였다. 무와 고춧가루가 들어가 맵고 칼칼한 안동식혜가 있으니 함경도엔 ‘가자미식혜’가 있으려니 싶었다. ‘식혜’와 ‘식해’?
1963년에 펴낸 <신찬국어사전>은 ‘식해’를 ‘생선젓’으로만 풀이하고, 양주동이 감수한 <국어대백과>(1980년)는 식혜의 2번 뜻으로 ‘생선을 토막쳐서 소금과 조밥과 고춧가루 따위를 넣고 만든 찬’으로 설명한다. 옛날 사전은 ‘식해=생선젓’을 가리킨 셈이다. 신문기사를 보면 1980년대까지는 식혜, 그 이후엔 식해를 쓴 비율이 높아진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식해를 ‘생선젓’과 비슷한말로 제시하면서 ‘생선에 소금과 밥을 섞어 숙성시킨 식품’으로 풀이한다. 설날 ‘고향 맛’을 전한 특집 프로그램은 당연히(!) 사전을 좇아 ‘-식해’라 했다.
북한 <조선말큰사전>은 ‘생선을 토막쳐서 얼간했다가 채친 무우와 함께 밥을 섞어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하여 버무려서 삭힌 반찬’을 식혜라 한다. 함경도 출신 누구는 “함경도에서는 ‘-식혜’라 했다. 엿기름을 넣어 만들기 때문”이라 주장하지만 힘을 얻지는 못한다. 같은 음식을 두고 남한은 ‘식해’, 북한은 ‘식혜’라 하는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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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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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 기형도
어둑어둑한 여름날 아침 낡은 창문 틈새로 빗방울이 들이친다.
어두운 방 한복판에서 김(金)은 짐을 싸고 있다.
그의 트렁크가 가장 먼저 접수한 것은 김의 넋이다.
창문 밖에는 엿보는 자 없다.
마침내 전날 김은 직장과 헤어졌다.
잠시 동안 김은 무표정하게 침대를 바라본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침대는 말이 없다.
비로서 나는 풀려나간다, 김은 자신에게 속삭인다.
마침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나를 끌고 다녔던 몇 개의 길을 나는 영원히 추방한다.
내 생의 주도권은 이제 마음에서 육체로 넘어갔으니 지금부터
나는 길고도 오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내가 지나치는 거리마다 낯선 기쁨과 전율은 가득 차리니
어떠한 권태도 더 이상 내 혀를 지배하면 안된다.
모든 의심을 짐을 꾸리면서 김은 거둔다.
어둑어둑한 여름날 아침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젖은 길은
침대처럼 고요하다.
마침내 낭하가 텅텅 울리면서 문이 열린다.
잠시 동안 김은 무표정하게 거리를 바라본다.
김은 천천히 손잡이를 놓는다.
마침내 희망과 걸음이 동시에 떨어진다.
그 순간, 쇠뭉치같은 트렁크가 김을 쓰러뜨린다.
그곳에서 계집아이같은 가늘은 울음소리가 터진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빗방울은 은퇴한 노인의 백발위로 들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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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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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함석헌
제2부
내가 겪은 관동대지진
목구멍 넘어가면 그만
내가 본향에서 와세다로 이사를 나가는 날 주인하고 있었던 그 집 부부가 나를 보고 하는 말 중에 “뜨거운 것도 목구멍 넘어가면 그만이다” 하는 일본의 옛 격언을 말해주었습니다. 목구멍 넘어가면 그만이라 했건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 말이 오늘날까지 걸려 있어 다른 말은 다 잊었는데 그것만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본래 듣는 그 순간 조금 불쾌하게 들렸었습니다. 내가 자기네 신세를 잊어버릴 것이라고 찔러주는 말로 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물론 지진으로 쓰라린 일 겪었지만 잊어버리라는 위로의 의미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쩐지 가슴이 찔리우는 것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좌우에 날을 가진 칼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잊는 것이요 또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잊어버려야 하고 잊어버려서는 안되기도 합니다. 이 날까지 잊지 못했다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또 다 잊어버렸다면 사람은 못됐을 것입니다. 지진도 그렇고 학살사건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보면 평화주의자들이 흔히 하는 “잊지는 못하지만 용서는 한다”는 말은 참 좋은 말입니다. 용서의 서자는 여심 곧 같은 마음입니다. 선악, 시비, 화복은 서로 달라도 마음은 한 마음에 가야 합니다. 한 마음에만 이른다면 잊지 못해도 잊은 거요 잊어서도 잊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하나됨 곧 참이요 사랑입니다. 인생, 역사의 문제는 이렇게 해서만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은 정말은 지나간 다음에 있습니다. 살았으면 가가 아닙니다. 그 뒤처리를 맡은 것이 삶입니다. 지진과 불길과 칼날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 문제 아니라, 그 무너진 것을 일으켜 세우고 불탄 재를 쓸어내고 죽은 사람을 묻고 원수와 다시 만나서 살아야 하는 것이 살람의 일입니다. 환란에서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자 사람들은 차츰 반성하기 시작 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 큰 재난의 원인을 무엇이냐 스스로 물었고 조선 사람들은 제 학살당한 동포를 조사하고 추도하고 그것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여기 끔찍한 시련의 의미와 거기 대해 급제냐 낙제냐가 갈리는 것입니다.
과학이냐 천견이냐
첫째, 이 환란의 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 대해 두개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하나는 일본의 과학이 부족해서 그렇게 됐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 사람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첫째 대답을 먼저 하고 나선 이는 가가와 도요히코였습니다. 그는 “사선을 넘어서”라는 소설로 유명해졌고 빈민굴사업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크리스천이니 여러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나는 지진 직후 그가 와세다대학에서 하는 강연을 들었습니다. 그는 무산계급 노동자를 위해 싸우느니만큼 “사람들은 이 지진을 하나님의 천견이라 하지만 만일 천견이라면 하나님이 왜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들은 두어두고 아무 죄 없는 심천, 본소 지역의 30만 노동자를 죽여 버렸느냐!” 하고 목을 짜 부르짖었습니다. 그의 의견으로 하면, 지진 나라에 살면서 일본 사람이 과학적인 정신이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참혹한 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천견 곧 하나님의 책망이란 설명을 한 것는 우치무라 간조입니다. 사실은 천견이란 말은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먼저 했답니다. 그는 유명한 큰 재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가와가 자본가는 왜 그냥 두었냐고 쏘아 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부시와의 자세한 말은 어디서 얻어듣지를 못했고 공공연한 비판으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우치무라가 자기의 성서연구 모임에서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일본 민족의 죄를 책망하기 위해서 그런 재난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한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50년간 일본 사람이 사실로써 대답한 것을 본다면 그 대답은 둘 다 들은 것 같지 않습니다. 외면으로 보면 부흥은 곧 놀랍게 됐고 오늘 일본은 과학 연구와 공업의 일선에 서서 나갑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6,7층 이상의 건물은 지진 때문에 지을 수 없다 해서 큰 집이라는 것이 환내 빌딩이었는데 지금은 일본 건축술은 놀랍게 발달해서 몇 십 층도 있지 않습니까? 그 의미로 한다면 가가와의 경고는 어느 정도 들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보면 일본의 공해는 세계에서 앞장을 섭니다. 지진은 어느 지역에 한때 해를 입힐 수 있지만 공해는 전역을 아주 멸종시킬 수 있습니다. 과학 일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천견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런 문구를 기억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일제 말년을 건지는 예언자 야나이 하라다다오는 대동아전쟁 때 일본 열도를 동해의 면도칼이라 했고, 중국의 교만한 머리의 털을 깎기 위해서 하나님이 너를 들었지만 그 머리를 다 깎은 후 면도칼 너는 어쩌려느냐고 울었습니다. 중국의 교만을 부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면도칼은 자신의 교만을 과연 버렸을까요? 요새 일본서 그 학살사건에 죽은 사람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다고 그것을 스스로 반성 비판하는 글도 나왔답니다. 나는 그것을 크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해의 물결을 타고 새로 대륙으로 밀려드는 새로운 형태의 침략의 면도칼에 비하면 너무도 약한 거나 아닐까?
일본은 과연 죄를 뉘우쳤을까? 회개는 사람 마음의 깊은 곳의 사실이니 남은 말할 수 없습니다. 겉에 나타난 것을 보고 말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만일 관동대진재를 하나님의 책망으로 알아 서양문명 수입에서부터 청일,러일전쟁, 한국병탄을 죄로 알아 깊이 뉘우쳤던들 대동아전쟁의 참혹과 수모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만두고 대진재 이후의 부흥이 사실은 조센징을 희생으로 잡아 제사지내고 된 일이라는 것만 알았더라도 아시아의 역사가 이렇게 더 어려워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죄한 조센징 왜 죽였습니까? 당시에 일어나던 공산주의자들이 혁명 일으킬까 두려워서 민심 수습책으로 한 것입니다. 사실 그 때에 공산혁명이 일어났던들 일본은 지진 정도가 아니라 큰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5년 10년 내에 부흥이고 뭐고 생각할 여지도 없습니다. 어리석은 대동아전쟁을 일으켜 전국이 거의 초토가 됐다가도 급속히 부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는 진재 당시 공산혁명을 면해 그 후 20년 동안 나라 터를 튼튼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이 조선이라는 가엾은 파리한 염소가 다시 제물이 되어 피를 흘려 제사 지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번영에 한국의 희생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것은 눈감을 수 없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그것을 깨달았을까? 회개는 감정 정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격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일본 성격은 변화했을까? 군대라는 것과 경제와, 침략이라는 것과 관광이라는 것이 형태는 물론 다르지만 속에 숨은 성격이 문제입니다. 이런 말은 묵은 상처를 건드리기 위해서도, 약자의 콤플렉스를 드러내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역사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마음 문제요, 마음은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산 관련을 이루는 하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외 손뼉이 울 수 없듯이 나라 사이의 관계를 참 의미로 정상화하지 못하는 한 일본도 한국도 아시아의 살아남도 세계의 평화도 없습니다.
원흉은 누구냐?
“이게 진짜다” 했던 것은 의미 있는 말입니다. 모든 사건은 결국 진상을 드러내잔 것입니다. 그 의미에서 회복도 생사도 없습니다. 문제의 근본이 어디 있느냐? 사건을 일으킨 원흉은 누구냐? 창조 이래의 인류역사는 어떤 의미로는 이 원흉찾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동대진재의 원흉은 누구냐? 지진 화재가 문제 아닙니다. 그 핵심은 조선인 학살에 있습니다. 수로야 얼마 아니 되지만 그 죽음은 지진 화재에 죽은 것과 의미가 다릅니다. 실지로는 4,5천이지만 그 뜻을 말하면 조센징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니깐, 결국 전체 조선이 학살된 것입니다. 인명, 물자의 손상이 큰 변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잃은 일본 민족이 그 인간성을 잃고 짐승처럼 미쳤던 것이 정말 큰 지변입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래 파죽의 형세로 세계 열강의 지위에 올랐다 해도 제 화를 면하기 위해 생사람을 몇이라도 죽였다면 역사의 시련 장에서는 낙제입니다. 야, 일본이 요것밖에 못되느냐 했습니다. 밉기보다는 가엾었습니다.
이 때까지 해온 이야기에서 아실 것입니다마는 지진 속 불길 속을 항상 두 개의 일본이 숨바꼭질을 하고 이었습니다. 인간성으로 대표되는 일본, 권력으로 대표되는 일본, 어느 것이 참 일본입니까? 물론 첫째 것입니다. 그것은 늘 약해서 맹수 같은 둘째 것에 쫓기고 짓밟히고 처녀같이 강간을 당하지만, 그것이 참 일본이요, 그러기 때문에 이길 것이요,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한때 공산주의가 인텔리 청년 사이에 성했을 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느냐?” 하는 말이 유했습니다. 일본인을 누가 그렇게 미치게 했던가? 지진?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고 선전한 것은 정부였습니다. 그들은 왜 그랬던가? 나라를 건지기 위해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란 것이 무엇입니까? 여기 속은 것이 있습니다. 속은 사람은 물론이고 속인 저희도 속고서 충성인 줄 알고 했습니다. 공산혁명을 막으려고 대삼영을 죽인 감박이는 자기 사혐으로 한 것이 아니라 대 일본제국을 위해 했습니다. 대 일본제국이란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국가주의입니다. 그것이 동양평화란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켰고, 한국을 먹었고, 혁명을 막기 위해 조센징을 제물로 잡았습니다. 혁명은 왜 무서워 합니까? 그것으로 일본이 망할까 봐? 아닙니다. 혁명으로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는 것은 지금 있는 정권입니다. 국가란 언제나 그렇습니다. 모든 도둑의 근거는 이 소위 국가라는 것입니다. 국가란 이름 하에 나라를 도둑 해 가지고 있는 소수의 지배자, 이것이 대 일본제국이었습니다. 그것이 제 권좌를 뺏길까 봐 한 흉계가 조선인 학살입니다. 이 점에서 제물이 됐던 우리도 우리를 제물로 잡았던 동해의 면도칼도 다같이 반성할 것은 우리를 속여 미치게 했던 이 원흉을 잡아내는 일입니다.
원흉은 이제는 이미 잡혔습니다. 그러나 그 잔당은 아직 남았고 안정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일본에만 있는 것 아닙니다. 이제 역사는 그 살갗으로 사람을 구별하던 정도는 벗어났습니다. 관동대진재의 제단에서 피를 한데 섞은 일본의 씨알과 한국의 씨알은 이 역사의 원흉의 잔당을 잡아 새 시대를 여는 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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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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狐疑不決(호의불결)
狐(여우 호) 疑(의심할 의) 不(아닐 불) 決(터질 결)
술정기(述征記)의 이야기. 맹진(盟津)과 하진(河津)은 모두 황하(黃河)에 있는 나루터이다. 맹진은 지금의 중국 하남성 맹현(孟縣)에 있었으며, 하양도(河陽渡)라고도 하였다. 하진은 중국의 산서성 하진현(河津縣)에 있었다. 이 두 곳은 양자강보다는 좁고, 회하(淮河)나 제수(濟水)보다는 넓었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면 두꺼운 곳은 몇 장(丈)에 달했으므로, 거마(車馬)들도 얼음 위로 통과할 수 있어 나룻배보다 편리하였다. 하지만 얼음이 막 얼기 시작할 때에, 사람들은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먼저 여우들을 건너가게 하였다. 여우는 본시 영리한 동물로서 청각이 매우 뛰어났다. 여우는 얼음 위를 걸으면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곧 얼음이 갈라지는 것을 예감하고 재빨리 강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여우가 강을 다 건너간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안심하고 수레를 출발시켰던 것이다.
의심많은 여우의 성질을 이용한 사람들의 지혜. 이는 사람들이 여우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지나친 의심은 사회의 결집력을 약화시킨다. 이제는 서로 믿는 분위기가 필요한 때이다. 狐疑不決 이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함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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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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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할아버지와 꽃 - 전난수
"할아버지, 제가 심을까요?"
"아니, 얼마 안 남았는데 뭘."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점차 가는 빗줄기로 변했다.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에 맞춰 콧노래를 부르다가 비가 좀 그친 것 같기에 2층으로 올라갔다.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넓은 개천가에 할아버지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코스모스를 심고 계셨다. 내가 비닐 우산 하나를 받쳐 들고 대문을 나왔을 때는 거의 다 심고 벌써 얼마 남지 않았다. 그 할아버지를 도와 드리고 싶은 마음보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할아버지 옆에 나란히 앉아 우산을 받쳐 드렸다.
"할아버지, 이 꽃 어디서 얻으신 거예요?"
"이거, 저기 학교서."
내가 심겠다고 호미를 청하자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이건 늙은이가 심어야 잘살아."
그런 할아버지의 말씀은 젊은 사람을 꾸짖는 교훈처럼 들렸다.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셨어요?"
"나? 여든이 훨씬 넘은 늙은이지."
난 물끄러미 할아버지의 손을 보았다. 울퉁불퉁 힘줄이 튀어나온 거친 손이 계속 꽃모를 다듬고 어루만져 흙을 제친 구덩이에 꽂고 있었다.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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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추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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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목발에 의지하지 않는 마음
어떤 사람이 '강아지 팝니다'라는 광고를 냈더니, 어린 소년 한 명이 찾아와서 값을 물었습니다.
"한 마리에 25불은 내야 하는데......"
주인의 말에 실망한 소년이 말했습니다.
"2불 5센트밖에 없는데...... 하여간 강아지를 보여 주시겠어요?"
"아무렴, 보여 주고 말고, 돈이 지금 당장 모자라더라도 어떻게 하는 방법이 있겠지."
그러면서 주인은 털뭉치같은 조그만 강아지 다섯 마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소년은 강아지를 이리저리 살피고 난 뒤, 주인에게 간청했습니다.
"이 강아지는 다리를 절름거리는군요. 제가 이 강아지를 사고 싶어요. 모자라는 돈은 차차 조금씩 갚아 드리기로 하고 살 수 없을까요?"
"평생 다리를 절 텐데?"
주인의 반문에, 소년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한쪽 바지를 걷어올리며 자기의 성치 않은 다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저도 잘 걷지 못하고 절름거리지요?"
그러고는 연민에 가득 찬 눈으로 그 강아지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이 강아지에게는 많은 사랑과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저 역시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았지요. 불구의 몸으로 자라는 것이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니거든요."
주인이 그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강아지를 가져가거라. 네가 이 강아지를 잘 보살펴 줄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도 남겠다. 자, 돈은 필요없으니 그냥 가져가거라."
소년은 강아지를 받아들고는 온몸을 쓰다듬으며 한없이 기뻐했고 아저씨 역시 흡족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보다 타인을 위해 사는 경우에 보다 만족이 크다.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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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경제/경영/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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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2. 거꾸로 경영
백프로 믿고 맡겨라 - 신뢰 경영
캠페인 좋아하는 기업문화
창업 초기에 잠시 관련을 맺고 들락거리던 어느 스프링 제조업체가 있었다. 스프링 제조용 금형을 주문 받기 위해 몇 번인가 내가 찾아간 적이 있는 회사였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그 회사에서 실시하고 있는 '초관리'가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특히 IMF 시대를 맞아 매우 귀중한 모범이 되고 있다는 것이 그 기사의 요지였다. 요즘은 불황을 이기자는 취지의 기획 물이 TV에도 자주 등장한다. 성공한 경제인사의 강연도 잦다. 이 회사의 '초관리'가 그런 곳에서도 인기절정이다. 이 회사는 일본에서 시도하던 '5S 운동'부터 시작해서 '초관리운동', '사력 0.01운동'으로 엄청난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내운동을 주도했던 간부는 벌써 4백여 회가 넘는 강연을 다녔단다. 무엇이 그리 대단한지 좀 살펴보자.
'5S운동'이란 정리, 정돈, 청소, 청결, 예절, 이 다섯 가지를 철저히 하자는 운동이다. 이 다섯 단어의 일본식 발음을 따라 '5S'가 되었다. 이 회사의 전 직원은 매주 월요일 오전 7시 20분부터 공장과 사무실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서류함부터 유리창까지 말끔하게 정리한다. 이 회사는 이어서 본격적인 '초관리운동'에 돌입했다. 연간 근무 일수(일수)의 총시간을 초 환산하고, 다시 이것을 연봉으로 나누어 직원의 1초당 임금을 계산한다. 연봉 1,400만 원을 받는 직원의 연 근무일수가 250일이고 1일 근무시간이 8시간이라 치자.
(250×8시간×3,600초)÷1,400만 원 =2원
이 사람의 초당 임금원가는 2원이다. 이 사람이 스프링 하나 생산할 때 10초가 걸렸다면 20원의 임금이 들었다는 얘기다. 이 사람이 담배를 한 대 태우는 데 350초가 걸렸다면 700원이 낭비되는 셈이다. 화장실에서 동료와 100초 동안 잡담을 하면 200원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출근시간이 오전 8시임에도 불구하고 전 직원들이 7시에 나와 회의를 하고 교육을 받는다. 업무시간에는 '돈 버는 일'만 하자는 것이다. 솔선수범하자는 구호 아래 간부들은 출근시간이 더 빠르다. 과장은 7시, 부장은 6시 30분, 임원은 6시가 출근시간이다.
최근 고안했다는 '0.01운동'이라는 건 이른바 '물가절약운동'인 모양이다. 1%의 물자라도 아끼자는 뜻이다. 직원 1인당 한 달에 15건 이상씩 '낭비 제거안'을 의무적으로 적어내도록 했다. 여기서 채택된 낭비절약 아이디어들은 실로 기가 막힐 정도다. 방문자에게 회사약도를 팩스로 보낼 때 수신자 이름을 연필로 써서 다음에 또 사용한다. 종이컵과 음료수 캔은 꼭 찌그러뜨려 버려서 쓰레기봉투 수를 줄인다. 다 쓴 무선호출기 건전지를 전자계산기에 다시 넣어서 계속 사용한다. 장갑을 작업용과 청소용으로 번갈아 K한 번씩 사용하면 좀더 오래 쓸 수 있다. 다른 업체로부터 받은 대봉투는 사내용으로 다시 사용한다. 화장실 입구에는 자석 게시판을 붙여 마지막 사용자가 불을 꼭 끌 수 있도록 한다. 사무실 각 직원의 책상 위에는 모두 형광등 끈이 하나씩 달려 있다.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이 운동의 주역이라는 사람의 의자 뒤쪽에는 이러한 안건들이 적힌 수천 장의 제안서를 모아둔 금고가 있단다. 내가 이렇게 까지 자세히 이야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회사나 그 회사에 열광하는 매스컴까지도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쓸데없는 이벤트를 고안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을 전 직원들의 두뇌가 아깝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행동하면서 낭비되는 시간보다, 시간을 아끼자고 온갖 희한한 방법들을 연구하면서 낭비되는 시간이 더 아깝지 않은가. 물론 전 직원을 그 저도 볶아댔으니 효과가 없지는 않았겠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 연평균 20%대의 매출신장률, 연간 매출 150억 규모, 연간 94일의 유급휴무, 20% 수준의 부채비율, 대기업수준의 직원복지 등등을 달성했단다. 특히 사내 원가절감 캠페인을 통해, 대기업에서 요구하는 가격보다 오히려 더 낮은 납품단가를 자진해서 적용했다는 것이다. 정말 경하할 일이다. 그 회사는 74년 창업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스프링만 만들고 있다. 신제품 개발과 신기술 연구 쪽으로 쓸 머리가 없어서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좁은 테두리 안에서 마른걸레만 있는 힘껏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물 한 방울 똑 떨어지면 '해냈다!'고 함성을 지르는 꼴이다. 가장 커다란 낭비는 그러한 '운동' 때문에 직원들이 받고 있을 스트레스다. 지켜야 할 원칙이 많으면 많을수록 창조적인 사고는 퇴화되게 마련이다.
요즘 가볼 일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 회사를 머릿속에 떠올리자면 거미줄로 가득한 미로를 연상하게 된다. 조금만 움직여도 위반할 것 투성이다. 잠시만 한눈을 팔면 낙오되거나 길을 잃는다. 귀에는 항상 '2원, 4원...'하고 계량기 도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매스컴을 위해 사진 찍힐 때 말고, 과연 그 회사에 웃음이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미래산업에는 사훈도 없고 운동도 없다. 일년이 가야 회의란 것도 별로 하지 않는다. 무슨 특별한 철학 같은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편안하게 믿고 맡기니 결국은 다 잘되더라는 식의 대책 없는 낙관이 있을 뿐이다. 나는 오히려 연구원들에게 '제발 절약하지 말고 돈 좀 열심히 쓰라'고 독려한다. 창조적 사고가 먼저 가고, 여건이 뒤따라가야 물건이 생기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의 머리가 여건에 맞춰 제한되면 결국은 죽도 밥도 안 된다. 미래산업의 1992년도 매출액은 30억 원이었고, 3년 후인 1995년도 매출액은 318억 원, 1996년도에는 454억, 1997년에는 615억 2,300만 원이었다. 상장회사 중에서 유일하게 3년 연속 매출액 대비 당기 순이익이 30% 이상선을 기록했다.
그 동안 미래산업에 무슨 별난 운동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운동이나 이벤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업문화가 오히려 우리의 성장밑천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쓸데없는 이벤트를 고안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을 전 직원들의 두뇌가 아깝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행동하면서 낭비되는 시간보다, 시간을 아끼자고 온갖 희한한 방법들을 연구하면서 낭비되는 시간이 더 아깝지는 않은가. 미래산업에는 일년이 가야 회의란 것도 별로 하지 않는다. 무슨 특별한 철학 같은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편안하게 믿고 맡기니 결국은 다 잘되더라는 식의 대책 없는 낙관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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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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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피천득
보스턴 심포니
'재즈'라도 들으려고 AFKN에다 다이얼을 돌렸다. 시월 어떤 토요일이었다. 뜻밖에도 그때 심포니 홀로부터 보스턴 심포니 75주년 기념연주 중계방송을 한다고 한다. 나의 마음은 약간 설레었다.
1954 년 가을부터 그 이듬해 봄까지에 걸친 연주 시즌에 나는 금요일마다 보스턴 심포니를 들으러 갔었다. 삼층 꼭대기 특별석에서 듣는 60센트짜리 입장권을 사느라고 장시간 기다렸다.그런데 이때마다 만나게 되는 하버드 대학 현대시 세미나에 나오는 학생이 있었다. 그는 교실에서 가끔 날카로운 비평을 발표하였다. 크고 맑은 눈, 끝이 약간 들린 듯한 코, 엷은 입술, 굽이치는 갈색 머리, 그의 용모는 아름다웠다. 오케스트라가 음정을 고르고 '샹들리에' 불들이 흐려진다.
갑자기 고요해진다. 머리 하얀 컨덕터 찰스 먼치가 소나기 같은 박수 소리를 맞으며 나온다. 바톤이 들리자 하이든 심포니 B플랫 메이저는 미국 동부 지방 불야성들을 지나 별 많은 프레에리를 지나 해지는 태평양을 건너 지금 내방 라디오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그는 이 가을도 와이드나 연구실에서 책을 읽고 벌써 단풍이 들었을 야드에서 다람쥐와 장난을 하고, 이 순간은 심포니 홀 삼층 갤러리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을 것이다. 꿈 같은 이태 전 어느 날 밤 도서관 층계에서 그와 내가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고 웃었다. 그 미소는 나의 마음 고요한 호수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음향과 같이 사라졌다. 중계 방송이 끊어졌다. 7,000 마일 거리가 우리를 다시 딴 세상 사람으로 만들었다. 하이든 심포니 1악장은 무지개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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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23. 기도
<남들의 사랑과 기도에 간섭하지 말라. 자신은 사랑하고 기도하는 법을 안다는 바보같은 생각일랑 버려라. 남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기도하든 그들한테는 적절한 것임을 알아 존중하라>
모세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기도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기도 소리가 웬지 이상스러워서 모세는 걸음을 멈추었다. 기도가 영 엉터리인 건 물론 신을 모독하는 짓거리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 사람은 중얼거리고 있었다.
<신이여, 제발 당신 곁에 가까이 가게 해주옵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꼭 맹세하지만 당신의 몸을 깨끗이 닦아 드리겠습니다. 더럽다면요. 그리고 전 훌륭한 구두장이 이니까 당신께 꼭 맞는 구두를 만들어 드릴께요. 아무도 당신을 보살피지 않잖아요, 주여... 제가 당신을 보살피겠어요. 당신이 병이라도 나신다면 제가 돌보고 병원으로 모시겠어요. 그리고 또 전 훌륭한 요리솜씨를 갖고 있거던요>
모세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만! 그런 엉터리 기도일랑 그만 둬! 그댄 지금 뭐라 하는가? 신께 이가 들끓는다는 건가? 신의 옷이 더럽다면 그걸 빨아 드리겠다구? 도대체 누구한테서 그런 엉터리 기도를 배웠는가?>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런 거 배운 적 없어요. 전 가난한 무식쟁이죠 제가 기도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쯤은 저도 알아요. 제 나름대로 하는 거예요. 제가 아는 것이라곤 이런 것뿐이죠. 제겐 이가 아주 많이 들끓어서 신께서도 분명 이 땜에 속상하실 거라 믿어요. 또 제가 먹는 음식이 아주 형편 없는 거라서 때때로 배가 몹시 아프죠. 신께서도 분명 그러실 거예요. 이건 진짜 제 체험이고, 제가 아는 거라곤 그런 거뿐예요. 전 제가 아는 대로 기도할 뿐예요. 그러나 당신이 정말 올바른 기도를 아신다면 제발 제게도 좀 가르쳐 주세요>
모세는 기꺼이 그 사람에게 올바른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 사람은 넙죽 절하며 깊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를 보내고 나서 모세는 아주 즐거웠다. 모세는 대단히 뜻깊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며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그러나 신께서는 매우 분노하였다. 신이 말하기를,
<사람들을 내게 가까이 데려 오도록 내 그대를 거기로 보냈거늘, 그대는 도리어 내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을 잃었구나. 그대가 그에게 가르쳐 준 그 올바른 기도란 전혀 기도가 아니다. 기도란 법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것. 사랑 자체가 곧 법이니, 딴 법이 있을 수 없는 것>
사랑이 있으므로 은총이 일어나는 것. 사랑이 있으므로 진리가 일어나는 것. 그대가 진리를 알 때 진리는 곧 자유이다. 딴 자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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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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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뉴욕 시 Mulberry 가]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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